정치 서평

'리버럴'이 되기 보다는 '리버럴'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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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월저 (2002) /사진제공=Wikimedia Commons

2023.06.09 12:25

National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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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영어 '리버럴'(liberal)은 명사로 쓰는 경우 '진보주의자' '민주당원'을 의미하고, 형용사로 쓰는 경우 '진보적' '민주당쪽에 속한'이라는 의미 또는 '자유주의적' '리버럴한'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자유주의적이거나 관대하거나 '리버럴하다'거나 하는 의미를 갖는 것은 형용사로 쓸 때 뿐이고, 명사로 쓸 때는 십중팔구 진보주의자, 민주당원을 의미합니다. 영국에서는 용례가 미국과 달라서, '리버럴'이 진보주의나 큰 정부를 원하거나 복지국가 확대를 원하는 것과는 좀체 연결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인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는 진영논리에 빠져 다양한 이견에 관대하지 않은 미국 정치에 대해 '자신의 마지막일지 모를' 이 책에서 강하게 문제제기를 합니다. 무슨 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일단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리버럴한' 태도를 가질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자신은 그런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해 평생 싸워왔다는 것이 월저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정치평론지인 내셔널리뷰(2023년 6월 12일자)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월저의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서평을 실었는데, PADO가 전문해석으로 소개합니다. 이 서평을 읽어보면 당장 책을 주문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 같습니다. 한국도 진영화가 심해지고 있어서 월저의 지적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버럴'과 '보수적'이라는 말보다 혼란스러운 말은 없다.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각기 다른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가 어떤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하는지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1932년의 미 대통령선거를 기억할 것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민주당)와 그의 캠프는 자신들을 "리버럴"이라고 불렀다. 그러자 상대편인 후버(공화당)와 그의 캠프는 아연실색하며 외쳤다. "무슨 소리, 우리가 리버럴이지!"


하비 맨스필드1 같은 보수주의 지식인들은 미국 보수주의는 리버럴한 전통, 즉 미합중국 건국의 원칙과 이상을 지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말한다. 다른 (자칭) 보수주의자들은 건국을 엄청난 실수였다고 믿는 경우도 있다.


보수주의라는 단어를 만나면, 이런 질문이 나온다. "도대체 무엇을 보수(保守: 보호하고 지킨다)하려는 것인가?" 예전 1980년대에 우리 레이건주의자들은 "주류 언론"에게 엄청 화가 나 있었는데, 그들이 계속해서 소련의 강경파 공산주의자들을 "보수주의자들"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우린 이렇게 말했다. "봤지? 주류 언론에게 나쁜 놈은 미국사람이든 소련사람이든, 반공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항상 '보수주의자'인거야."



인정하긴 싫은데, 주류언론이 옳게 본 것이 하나 있었다. 소련 강경파들이 고르바초프 개혁에 맞서 소련의 구체제를 지키려했다는 점에서 보수주의자였던 것은 맞다.


오늘날 공화당쪽 거물들은 자신들을 확고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이 점은 정치가나 언론인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전노장 칼럼니스트인 조지 F 윌은 달랐다. 그가 공화당을 떠났을 때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공화당에 합류했던 것도 공화당을 떠난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나는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처칠은 매우 흥미로운 케이스다. 그는 영국 보수당의 기념비 같은 존재인데, 그는 원래 20년간(1904~1924) 자유당(리버럴 파티, Liberal Party) 소속이었다. 폴 존슨은 자신의 처칠 전기에서 이렇게 썼다. "처칠은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리버럴'이었습니다. 물론 전통주의자였고, 보수주의자이기도 했죠."


1962년에 영국의 국회의원 한 사람이 존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그는 당시 80대 후반인 처칠을 우연히 마주쳤는데, 처칠 노인은 그를 노려보더니 "귀하는 누구신가"라고 물었다. "저는 허드스필드 지역구 의원 빌 말라류라고 합니다, 총리님"이라고 그는 대답했다. 그러자, 처칠은 "무슨 당인가"라고 물었고, 그는 "노동당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처칠은 이렇게 말했다. "아 그렇군. 난 리버럴일세. 항상 리버럴이었지."


윌리엄 F 버클리 2세는 습관적으로 "좌파 리버럴들"이라고 표현을 썼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그는 하이에크와 자신의 절친인 갤브레이스를 구분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니면 갤브레이스를 (또 다른 절친인) 밀턴 프리드먼과 구분하고 싶었던 것이다.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 '자본주의와 자유'(이것도 1962년)에서 용어의 문제를 다뤘다. "리버럴리즘이라는 단어가 오염되어 과거 리버럴리즘으로 불렸던 관점이 이제는 종종 보수주의라고 불린다." 프리드먼에게는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독자들에게 공지 내지 경고를 했다. 자신은 "리버럴리즘"(이때엔 이미 '리버럴' '리버럴리즘'이 민주당이나 복지국가, 큰 정부를 의미하기 시작했다-역주)이라는 표현을 계속 쓸 것이며, 자신이 말하는 "리버럴리즘"은 원래의 의미로 자유시민이 좋아할 사상을 의미하는 것이니 미리 알고 있으라는 것이었다.


마이클 월저를 '리버럴'이라고 부르자. 하지만, 그는 친자본주의자는 아니고, 사실 자본주의자에 비판적이다. 우리가 그런 그를 '리버럴'이라고 부르는 것은 "리버럴하다'(형용사)는 뜻이며, 현재 미국에서 사용하는대로 '진보주의자'(명사 '리버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리버럴한' 무슨 주의자인가? 이 이야기는 잠시 후 이어가겠다.


월저 교수는 우리 시대의 최고 정치사상가이자 정치저술가 중 하나다. 1935년생인 그는 (프린스턴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원 명예교수다. 그는 오랫동안 디센트 매거진 편집에 관여했다. 그는 디센트 매거진을 창립한 어빙 하위(Irving Howe)를 자신의 "멘토"라고 부른다.


2002년에 월저는 디센트 매거진에 큰 파장을 불러온 글 한 편을 기고했다. "품격 있는 좌파는 가능한가"가 그 제목이었다. 이 글은 미국의 외교정책에 관한 것이었고, 좌파들이 베트남전 이후 미국 외교정책을 비판해온 것에 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비판은 바보 같은 것이었고, 과했고, 전반적으로 부정확했다"라고 월저는 말했다.


월저의 새 책도 제목에 "품격"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더 흥미로운 것은 제목보다 부제인데,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서의 '리버럴'"이 그것이다.


/사진제공=Yale University Press

/사진제공=Yale University Press


월저는 팬데믹 격리 기간 중 이 책을 썼다.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 프로젝트를 세웠었는데, 월저의 팬데믹 프로젝트는 이 책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이 책을 "지난 60년간 나와 함께 격리생활을 해 준" 자신의 아내 주디스에게 헌정했다.


이 책은 150쪽 밖에 안되는 얇은 책이다. 대화체이고, 가벼운 문체지만, 내용은 매우 무겁다. 이 책은 정치의 기본에 대한, 즉 정치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쩌면 단순한 문제들에 대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내용이 매우 정교하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지성적이다. 하지만, 이 책이 말을 거는 대상은 평범한 일반독자들이다. (내가 보기에, 저자가 그것을 처음부터 의도한 것 같진 않고,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월저의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지 윌이 2019년에 출간한 '보수주의 감수성'(Conservative Sensibility)을 떠올리게 된다. 윌의 책은 640쪽이나 되는 두꺼운 책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두 책이 비슷한 것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보수주의 감수성'은 일종의 경전, '믿습니다' 류의 책이다. 윌은 자신의 책을 "최후 변론"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었지만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이후에 보인 왕성한 활동을 보면 잘 한 결정이다.)


'품격 있는 정치를 위한 투쟁' 서문에서 월저는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책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평생 공부해온 것들, 그리고 현재 믿는 바를 깔끔하게 핵심만 정리했다.


이 책은 총 9장이다. 제1장의 제목은 "왜 형용사인가"다. 마지막 장의 제목은 "누가 리버럴하고 누가 리버럴하지 못한가"이다. 그 사이에 있는 7개 장은 각각 리버럴한 민주주의자, 리버럴한 사회주의자, 리버럴한 내셔널리스트 및 국제주의자, 리버럴한 공동체주의자, 리버럴한 페미니스트, 리버럴한 교수 및 지식인, 리버럴한 유태인을 다룬다.


그래서 형용사 "리버럴"은 무슨 의미를 갖는다는 건가? 이 형용사는 근본적으로 "다원화(多元化)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월저의 생각이다. 형용사 "리버럴"은 차이를 허용하고, 모든 사람들의 개인적 권리를 보장해준다. 월저는 모든 사람이 각자의 주의주장이 무엇이든 리버럴해야 한다고 믿는다. 명사로 사용해 '나는 리버럴이야'라고 하는 것보다 형용사로 사용해 '나는 리버럴해'라고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잠깐만! 월저는 형용사 "리버럴한"과 "품격 있는"을 같은 것으로 보는건가? 내가 보기엔 그렇다. 보수주의자들은 물론 이 말에 깜짝 놀랄 것이다. 적어도 처음엔 그럴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나가면서 그와 함께 생각을 해나가면서 그들은 어느 정도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월저가 모범으로 삼는 사상가 중 한 명은 카를로 로셀리이다. 그는 이탈리아의 작가이고 "리버럴 사회주의"를 주창한 사회운동가였는데, 1899년에 태어났고 파시스트들에 의해 1937년에 살해됐다. "리버럴 사회주의"는 어떤 이들에게는 모순적인 표현으로 들릴 것이다. (사회주의가 리버럴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영국 총리였던 애틀리의 정치가 바로 이 "리버럴 사회주의"의 한 사례였다.


월저가 모범으로 삼는 또 한 명의 인사는 이스라엘의 여성 지식인이자 정치가인 야엘 타미르이다. 그는 1993년에 <리버럴 내셔널리즘>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이 책은 원래 옥스포드대에서 이사야 벌린(리버럴의 전형, 물론 미국식이 아닌 고전적 의미의 리버럴)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것이었다.


내셔널리즘과 국제주의를 다루는 장에서 월저는 "자칭 사해동포주의자(코스모폴리탄)들은 모든 종류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솔직히 나는 자신을 "사해동포주의자"라고 부르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다. 물론 내가 사람들을 아직 많이 못 만나 봤던 것일 수도 있다.


리버럴한 월저는 냉소도 보이고 풍자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반면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월저의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우리가 1960년대에 참여민주주의라고 불렀던 것이 '리버럴한 민주주의'의 한 형태였던 것인지 모르겠다. 당시 정치운동에서 민주주의는 참여적인 사람들의 지배를 의미했던 것 같은데, 이는 솔직히 모든 집회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젊은 투사들의 지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문장도 있다.

한때 정치사상 분야의 어느 일급 학술지에서는 조르조 아감벤(이탈리아의 철학자. 저작으로 '호모사케르' 등이 있다.)을 언급한 각주가 4개 이상이 안 되면 '게재불가'였던 적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과장하는 지도 모르겠는데, 여하튼 당시 그런 느낌이었다.)

이 문장을 읽으니 어느 작곡가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그는 몇 년 전 나에게 보조금을 따내는 요령에 대해 알려줬다. "그 사람들에게 당신이 (인도네시아 전통음악의 요소인) '가믈란'을 작곡에 포함시킨다고 말하세요. 그러면 그 다음주에 돈이 입금됩니다."


월저 교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동의하지 않을테지만, 나는 그가 솔직히 '워우크'(woke)에 반대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자신들이 싫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무너져버리는 학생들과는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 없다. 그는 대학 내에 팽배한 (주류에 자신을 맞추는) 순응주의에 비판적이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서 정치사상을 가르칠 때 반드시 자신의 반대쪽 주장들을 강의내용에 포함시켰다.


월저가 로버트 노직2과 하버드대에서 함께 근무할 때였는데, 한번은 사상적 입장이 다른 이 두 사람이 함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제목의 공동강의를 했다. 이런 것이 바로 대학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라면 마이클 월저 사상에서 좋아할 부분이 많다. 플로렌스 킹3을 기억하는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라면, 나도 그런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고 싶다"고 킹은 말했는데, 월저에 대해서도 이런 기분이 들것이다. 물론 보수주의자가 싫어할 구석도 많다.


나는 평생 왜 사람들이 (심지어 그 훌륭한 월저까지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법관 입명방식과 트럼프의 연방법원 자기사람 채우기를 비교하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모든 대통령은 자기와 뜻이 통하는 사람들을 임명하지 않는가? 오바마도 트럼프도 바이든도!


"나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불평등, 그리고 노동자들을 강제하는 방식을 볼 때 리버럴한 자본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에 솔직히 회의적"이라고 월저는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솔직히 사회주의자보다 더 강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월저 이야기를 계속 듣기로 하자. 그는 선의를 가진 좋은 선생님이고, 나는 내 생각과 다르다고 스트레스로 무너지는 학생이 되지는 않으려 한다.


나는 월저가 흑인과 백인을 뜻하는 "블랙"과 "화이트" 첫 글자를 꼭 대문자로 표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에게는 상당히 '리버럴'하지 않은 모습으로 느껴졌다. 저자가 개정판을 낼 때 한번 검토해줬으면 한다. 그리고 브렛 스티븐스는 자신의 이름 '브렛'을 일반적인 Brett이 아닌 Bret으로 표기하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그리고 principle과 principal을 쓸 때 표기에 늘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저런 문제도 있지만, 이 책은 지금 이대로도 사랑스럽고, 또 심오하며 도발적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내용에 자극을 받아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나는 미친듯이 책에 줄을 쳤고, 내가 여백에 메모한 글자가 월저가 책에 담은 글자보다 많을 듯 하다. 월저에게 뭔가를 배우려는 독자라면 누구든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이렇게 줄을 치고 메모를 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가 말하는 '리버럴'의 의미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용어들, 특히 정치적 용어들에 짜증이 나 있다. 우리는 명사와 형용사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 민주주의" "민족(적) 보수주의" "비자유 민주주의" "민족(적) 사회주의" (아이고!)… 어느 진영인지는 빼고 당신의 생각이 무엇인지만 말해 달라. 그리고 그런 생각이 부디 인간적이고 인간의 자유를 지키는 편에 서길 바란다.



필자 제이 노드링거는 내셔널 리뷰의 선임 에디터이다. 정치평론 활동을 주로 하지만 뉴크라이티리언(The New Criterion) 등에 음악 관련 칼럼을 기고하기도 한다.


저자 마이클 월저(Michael Walzer)는 케임브리지대, 하버드대에서 학업을 마친 후 프린스턴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교수로 정치사상을 가르쳤고, 이후 프린스턴의 고등연구원(Institute for Advanced Study)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의 진보주의 매거진 디센트(Dissent)를 편집했으며, 뉴리퍼블릭, 뉴욕리뷰오브북스 등에 꾸준히 기고했다. 미국의 정치사상, 정치철학 부문에서 그의 권위는 매우 높아서 한 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꼽히기도 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월저 자신은 공동체주의자로 분류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저작을 통해 '리버럴하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파고 들었는데, 미국정치의 진영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려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The Revolution of the Saints), <정의와 다원적 평등>(Spheres of Justice), <마르스의 두 얼굴>(Just and Unjust Wars)이 있다.


본 서평에서 다룬 서적

- Michael Walzer, The Struggle for a Decent Politics: On "Liberal" as an Adjective (Yale University Press, 2023)



1955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매거진.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과 미국기업연구소(AEI) 소속 연구자들이 많이 기고하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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