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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서평

경쟁하는 짐승: 필립 로스의 삶과 문학적 생존의 기예

미국에서, 리얼리즘 혹은 리얼리즘과 경쟁하는 양식보다 더 지배적인 문학 양식은 커리어주의careerism다. 이는 어떤 판단이나 비방도 아니다. 소설가, 단편소설 작가, 심지어 시인조차 책을 쓰는 일만큼이나 경력을 관리하는 데 그야말로 수십 년을 헌신해야 했다. 제도 안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프로필 사진을 찍을 때 취하는 포즈나, 질의응답도 중요하다. 직접 돌아다니면서 독자층을 키우고, SNS 계정의 팬들을 늘리며, 동료들 사이에서 문학계의 훌륭한 시민으로 보이는 일도 물론이다. 이제 모든 젊은 작가에게 이런 요소들 사이에서 얼마간 균형을 잡는 것은 삶의 일부다. 이는 편집자와 에이전트, 아울러 할리우드 거물과 벌이는 통상적인 거래를 상회하는 필요와 생존의 문제다. 과거에 작가가 자신을 신화화하던 방식은 이미 만료되었거나, 유해하게 여겨져 폐기되었다. 옛 문학의 명예의 전당에는 귀족적인 문인(하웰스Howells, 엘리엇Eliot), 노예폐지론자(스토우Stowe), 모험가들(멜빌, 런던, 헤밍웨이), 광인(포Poe), 샤먼(휘트먼), 귀족 출신 망명자(제임스), 보헤미안 망명자(스타인, 볼드윈, 비숍), 바람둥이 망명자(피츠제럴드), 카페사회의 시민(워튼Wharton), 낭만적인 시골 사람(캐더Cather, 토마스 울프), 소도시 연대기 작가(앤더슨), 시골 지주(포크너), 교외의 신사(치버, 업다이크), 방랑자(알그렌Algren), 괴짜(파운드), 주정뱅이(웨스트, 에이지Agee, 베리먼), 댄디(카포티, 톰 울프), 퇴폐주의자(반스Barnes), 현실감각이 결여된 외국인(나보코프), 미쳐버린 귀족(로웰Lowell), 알 수 없는 기벽의 은둔자(샐린저, 핀천, 드릴로), 헌신적인 급진주의자(스타인벡, 렉스로스Rexroth, 라이트, 해밋, 헬먼Hellman, 페일리Paley), 계몽적인 급진주의자(엘리슨Ellison, 메리 매카시), 유명인사가 된 급진주의자(메일러, 손택), 활동가 문인 여성(모리슨), 소외된 이민자의 자식(벨로우Bellow), 새로운 카우보이(코맥 매카시), 힙스터(케루악), 약쟁이(버로우즈), 히피(긴스버그) 등이 있었다. 결국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전업 작가였던 커리어주의자만 남는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전업 작가였던 단 한명의 커리어주의자가 서 있다. 지금까지 미국문학에서 제일 독창적이고 궁극적인 커리어주의자는 필립 로스였다.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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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전쟁 같은 생존: 한국전쟁을 통해 본 1950년대 미국의 인종차별 – 토니 모리슨 '고향'

토니 모리슨은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는 작가이자 가장 영향력있는 미국작가중 한 명이다. 흑인여성작가로서 모리슨은 그동안 미국문단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았던 흑인문화와 역사, 특히 인종차별과 젠더억압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흑인여성의 이야기를 시적인 문체로 진솔하게 그려내는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중적 인기와 비평적 찬사를 동시에 누린 모리슨은 1993년 흑인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빌러비드(Beloved)』로 1988년에 퓰리처상을 받았다. 2019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모리슨은 11권의 소설을 발표했으며 여러 에세이집과 아동문학작품을 남겼다. 또한 1989년부터 프린스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그녀는 2006년 명예교수로 퇴직할때까지 인문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그녀에게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수여했으며 2019년 모리슨의 임종을 접하고 "그녀는 국보(national treasure)"였으며 "잠시라도 그녀와 같은 공기를 호흡한 것이 영광"이라는 추모글을 썼다. 모리슨의 소설들이 지금도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고 깊은 감동을 선사하는 이유는 아마도 가장 보편적인 경험(상실, 사랑, 죽음 등)을 미국을 배경으로 풀어내고 여기에 미국흑인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그녀의 대표작인 『빌러비드(Beloved)』는 노예제도에 시달리던 흑인여성이 자식들을 데리고 도망치다가 잡힐 위기에 처하자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으로 두 살배기 딸을 죽이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더 참혹한 사실은 이 소설이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미국의 상징성에 가려지고 역사속에 묻힌, 그러나 결코 외면할 수 없는 미국의 이야기를 모리슨의 소설은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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