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되어 가는' 소녀: 시인이 상상하는 새로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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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 쇼클리의 시집 '갑자기 우리' 표지. /사진제공=Wesleyan University Press

2024.04.0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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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글을 읽다 보면 눈 앞의 활자들이 선연한 이미지로 변화하는 놀라운 체험을 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읽은 내용이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잘 그려지지 않아서 모호하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시각 예술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그 메시지가 저절로 언어화되어 마음에 곧장 꽂히는 때가 있다. 반면에, 눈으로 본 형체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 와닿지 않아서 약간의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 역시 많다. 때때로, 서로 다른 예술 장르들 사이의 대화와 연대는 단일한 작품 하나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영역을 열어젖힌다. 잘 읽히지 않던 시가 그림 하나로 요약되기도 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던 조각품이 글을 통해 풍성한 서사를 지닌 것으로 다시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에비 쇼클리Evie Shockley의 '걸터앉은perched'이라는 시는 앨리슨 사르Alison Saar의 <파랑새Blue Bird>라는 조각 작품과 이런 대화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2023년에 출판된 쇼클리의 시집 '갑자기 우리Suddenly We'의 표지에는 사르의 소녀상이 등장한다. 갈색 피부를 가진 한 소녀가 붉은색 의자에 앉아 있고, 소녀의 머리에서는 기다란 나뭇가지가 자라나 있다. 그리고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나뭇가지의 끝에는 작은 파랑새가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쇼클리의 시는 이 소녀상에 대해 아주 설득력 있는 설명을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소녀상으로 구체화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그 의미가 더욱 명료해진다. 시와 조각품은 이렇게 서로를 보완하여 빈 곳을 채우고 통합적인 메시지를 구성해 내기에 이른다.

에비 쇼클리 - 걸터앉은 (번역: 조희정)

나는 흑인이고, 예쁘며,

욕망의 뾰족한 끝에 놓인 소녀이다.

내 달랑거리는 발가락들은 휴식하는데

그건 내 몸의 나머지가 거부하는 것이다. 척추를 세우고서,

내 자세는 기대하기를 제안한다. 나는 구릿빛 긴장 속에

균형을 잡는다, 좌절감을 주는 세상에서 내 영혼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몰두하면서.


타인들의 거친 눈길 아래에서, 나는 뻣뻣해진다.


내가 굳어야만 한다면, 나무처럼 될 거다, 생생하게

변화하면서. 내 안에서는, 미(美)에 대한 사랑이 수액처럼

올라와, 내 두피에서 싹을 틔우고는

앞으로 뻗어나간다. 나는 노래를 내보낸다, 푸르고

깃털이 달린 아리아를, 그리고 그것을 향해 자라난다,

합창단은 비어 있지만, 곧 피어날 것이다. 나는

흑인이고 무엇인가 되어 가고 있다.


—앨리슨 사르의 <파랑새>에 부쳐



이 시의 화자인 한 흑인 소녀가 앉아 있는 의자는 몸에 잘 맞지 않아서 소녀의 발가락이 땅에 닿지 않은 채 "달랑거리게" 만든다. 발가락들의 이 불편한 흔들림이 오히려 "휴식"으로 느껴질 만큼, 소녀의 몸 전체는 경직되어 보일 정도로 굳어 있는 상태이다. 억압이나 차별을 시각화할 때 누군가가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흔히 떠올리지만, 어쩌면 그보다도 더욱 현실적인 묘사는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모습은 아닐까? 주변 어디에도 내게 우호적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몸은 편안한 자세를 잃어버리고 대신 단단하게 굳어진다. 마치 잘 모르는 외국어를 억지로 말해야 할 때 입 주위의 근육에 잔뜩 힘이 들어가듯이, "좌절감을 주는 세상에서" 소녀는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구릿빛 긴장"의 상태로 의자에 앉아 있다.


"타인들의 거친 눈길 아래에서, 나는 뻣뻣해진다"라는 한 줄의 문장이 독립된 하나의 연이 되어 있는 이 시의 구성은 적대적인 사람들에 둘러싸인 소녀의 고립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소녀는 이렇게 잔뜩 굳어진 모습으로 자신을 멸시하고 억압하는 세상과 홀로 맞서지만, 그럼에도 소녀의 긴장된 자세는 이런 세상 속에서도 모두 포기해 버리기보다는 무언가 "기대하기를 제안"한다. 굳어진 몸의 "균형"을 어렵사리 잡으면서도, 소녀는 자신의 "영혼을 드러내 보이는 것에 몰두"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흑인 소녀는 억압적인 환경에서도 척추를 곧게 세운 자세로 어떻게든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일관된 의지를 보여 준다.


소녀가 거칠고 사나운 세상에서 살아남아 스스로의 힘을 발견하는 과정은 마지막 연에서 굳어진 자신의 몸을 "나무"로 상상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시의 앞부분부터 언급되었던 소녀의 "욕망"은 이제 "미(美)에 대한 사랑"으로 구체화된다. 긴장으로 경직된 소녀의 몸은 더 이상 고립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꼿꼿함을 밖으로 확장하여 다른 존재를 향해 자신을 활짝 열 수 있는 힘을 지닌 것으로 그려진다. 나뭇가지의 형상을 띤 외부와의 단단한 연결고리가 소녀의 "두피"로부터 힘차게 뻗어나가는 모습은 사르의 <파랑새>라는 조각상에 잘 나타나 있다. 소녀는 세상으로부터 받은 차별과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굳어진 몸을 오히려 타자와의 단단한 연대를 시도할 수 있는 매개로 상상하는 것이다.


물론 소녀의 이런 시도가 처음부터 곧바로 다른 존재와의 의미 있는 관계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쇼클리는 "합창단이 비어 있다"는 표현을 통해 아직 그 나뭇가지에 어떤 존재도 깃들지 않았다는 점을 말한다. 하지만, 쇼클리는 곧바로 무엇인가 "곧 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소녀와 타자 사이의 교류와 연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노래"로 표현되는 미적 통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보여 준다. 적대적인 세상에서 일상화된 긴장이, 또 억압과 차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굳어진 몸의 근육이 역설적으로 든든한 힘이 되어 바깥의 다른 존재에게 믿음직한 어깨를 내어줄 수 있다는 식의 이런 상상은 얼마나 낙관적이며 또 감동적인가?


쇼클리의 시에서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에는 "나는 흑인"이라는 소녀의 분명한 고백이 담겨 있다. 그만큼 이 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경험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의식하면서 전개되기에, 독자의 입장에서 이 시에 접근할 때 이런 맥락을 염두에 두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에 더하여, 쇼클리의 시는 적대적인 세상 속에서 긴장과 굳어짐을 한 번이라도 느껴 본 모든 사람에게서도 공감을 얻을 만하다. 비록 억눌린 존재들 사이의 연대가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무엇인가 "되어 가면서" 곧 새로운 '우리'를 형성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슴 뛰는 기대감은 이 시를 '파랑새'의 노래처럼 희망찬 것으로 만들어 준다.


이렇게 이 시를 끝까지 읽고 조각상의 모습까지 확인하고 나면 시의 제목인 "걸터앉은"(perched)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앉는다'는 뜻을 담은 여러 단어가 있지만, "걸터앉은"(perched)이라는 표현은 아슬아슬한 위태로움,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하는 잠깐의 휴식을 함께 의미한다. 이 단어는 우선 소녀가 굳어진 몸을 변화시켜 생성해 낸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 모습과 연결된다. 자신의 긴장과 경직을 타자와의 연대를 위한 에너지로 활용할 수 있는 소녀의 의지 덕분에 파랑새는 나뭇가지 위에 올라앉아 노랫소리를 들려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걸터앉은" 존재는 과연 파랑새 하나 뿐인 것일까? 어쩌면, 소녀 역시도 자기 바깥의 대상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정서적 평정심을 바탕으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자에서나마 좀 더 오래 균형을 유지하며 "걸터앉은" 자세를 취하게 되지는 않을까? 쇼클리의 시는 아직 이 모든 과정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시의 마지막 행에서도 소녀가 여전히 "무엇인가 되어 가는" 중이라고 말한다. 시와 조각상을 통해 이 '되어 감'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보는 것은 소녀와 파랑새 모두에게, 그리고 나아가서 독자들에게 작은 구원이 되어 고된 현실을 넉넉하게 견디고 다시 함께 일어설 힘을 나누어 줄 수도 있을 듯하다.

원문: perched

i am black, comely,

a girl on the cusp of desire.

my dangling toes take the rest

the rest of my body refuses. spine upright,

my pose proposes anticipation. i poise

in copper-colored tension, intent on

manifesting my soul in the discouraging world.


under the rough eyes of others, i stiffen.


if i must be hard, it will be as a tree, alive

with change. inside me, a love of beauty rises

like sap, sprouts from my scalp

and stretches forth. i send out my song, an aria

blue and feathered, and grow toward it,

choirs bare, but soon to bud. i am

black and becoming.


—after Alison Saar's Blue Bird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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