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러시아는 유라시아 국가들을 잃고 있다

미국과 유럽 동맹국들이 러시아의 쇠퇴하는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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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AP/뉴시스

2025.08.29 15:29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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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언젠가 이런 식의 말을 했다고 합니다.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자는 심장이 없다. 하지만 소련을 재건하고자 하는 사람은 뇌가 없다.' 현재의 러시아를 잘 보여주는 명언인 것 같습니다. 소련이라는 제국은 복원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이 공산주의 제국은 아니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푸틴은 이런 러시아인들의 염원에 부합하는 대외정책을 실천해왔고, 이에 따라 독립해버린 주변국가들을 러시아 주변에 모으려 노력해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벨라루스를 사실상 보호국으로 만든 것이고, 크름(크림)반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침공입니다. 물론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나토 확장 저지라는 이유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기간 중 러시아의 얼마 되지 않는 군사력과 기타 역량이 우크라이나쪽에 집중되면서 다른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러시아의 존재가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은 중국 나름대로 무역 및 교통로를 확대하고 군사적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러시아라는 제국의 종주국 눈치를 보던 작은 국가들이 서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포린어페어스 7월 24일자 기사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유라시아 정책' 방향을 조언합니다. 미국이 직접 개입할 여력은 없을 테지만 이해관계가 밀접한 EU나 한국, 일본 등 유럽-아시아 동맹국들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관여해야 할 것이며, 무엇보다 러시아의 압박에 맞설 수 있도록 구소련 국가들이 서로 무역하고 교통할 수 있도록 도우라고 조언합니다. 8월에 미국 중재로 체결한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평화협정이 모범적인 사례일 듯 합니다. 아제르바이잔이 아르메니아를 사이에 두고 이격되어 있는 지역을 아제르바이잔 본국에 연결하는 회랑을 미국 기업이 주도해 건설하고 99년간 관리하는 방안에 두 나라가 합의한 것입니다. 이 회랑을 통해 아제르바이잔은 우호국인 튀르키예로 석유를 실어나를 수도 있고 아르메니아와 무역을 할 수도 있습니다. 교통로를 통해 러시아의 '근린' 국가들이 서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연대해나갈 수 있게 됩니다. 이 기사는 구소련 '유라시아' 지역에서 러시아, 중국, 그리고 미국이 어떻게 세력을 유지 및 확충해나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내륙 '유라시아' 지역은 강대국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곳으로서 대만해협, 남중국해와 함께 미중 패권경쟁이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곳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이 지역 정세를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러시아의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은 소련 이후의 유라시아에서 영향권을 회복하려는 더 광범위한 움직임의 한 부분이다. 2022년의 침공은 동유럽, 남캅카스(남코카서스), 중앙아시아의 많은 러시아 이웃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러시아가 여전히 그들의 주권과 영토 보전에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을 확인시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의 관심과 자원을 대규모로 소모한 만큼, 이는 동시에 많은 국가들에게 기회가 되었다. 러시아가 전쟁에 매달린 틈을 타 이들 국가는 상호협력을 강화하고, 지역 밖으로의 파트너십을 새로 맺거나 심화시키며, 옛 제국 종주국과 묶여 있던 유대의 일부를 느슨하게 풀었다.


구소련 '유라시아'의 많은 정부들은 러시아의 침공을 비판하는 데에는 조심했지만, 현실에서는 주권과 독립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이래 미국이 이 지역에서 추구해온 핵심 목표다. 러시아군의 무기 수요로 인해 러시아 정부가 약속한 수출을 이행할 수 없게 되자, 아르메니아 같은 국가는 유럽과 인도 등 다른 공급처로 눈을 돌렸고, 다른 지역 국가들은 튀르키예, 심지어 중국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으로의 재배치를 위해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에 주둔한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자, 양 지역의 국가들은 러시아가 오랫동안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부추겨왔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기 시작했다. 더 넓은 지리상의 협력이 강화되면서 무역 연결성을 강화하고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는 대안 교통로를 구축할 새로운 기회도 창출되고 있다. 과거 종주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면서, 이 지역 국가들은 러시아 그리고 다른 강대국들과 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점점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 보여주듯, 러시아는 지역적 패권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2014년 전면 침공 이전에도 러시아는 크름(크림)반도를 합병하고 돈바스 지역에 개입했으며, 그보다 앞선 2008년에는 조지아를 침공했다. 오늘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다른 많은 나라들에 대해서도 배타적인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여전히 러시아의 최우선 순위지만, 러시아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카자흐스탄, 몰도바에 대한 일종의 종주권을 추구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나머지 국가들에 대해서도 좀 거리는 있지만 소련제국의 시선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외교정책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명시한 2023년 러시아 외교정책 개념은 이들 국가들을 "근린 지역"(ближнее зарубежье)이라 부르는 용어를 부활시켰으며, "수세기에 걸친 공동 국가 전통, 깊은 상호의존 … 공통의 언어와 밀접한 문화"를 내세워 이들을 러시아의 영향권에 두려는 정당화 논리를 제시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투가 잦아들면, 러시아는 다른 이웃들을 러시아가 주도하는 다자체제에 끌어들이고,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며, 그들 나라의 시민사회를 겨냥해 러시아식 법률을 채택하게 하고, 그들 영토 내에서 러시아 군사 및 정보 기구의 존재를 더욱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려 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 근린 유라시아 국가들은 점점 더 서로 연결되고, 상호협력적이 되며, 심지어 평화로 가는 발걸음을 떼고 있는데, 미래에 러시아가 지역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을 저지하려면 이러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은 유럽연합(EU), 인도, 이스라엘, 일본, 한국, 튀르키예, 영국 등과 함께 여러 나라를 아우르는 다국적 인프라, 공급망, 안보, 그리고 지속적 외교적 관여에 더욱 투자해야 한다. 이 지역 국가들은 러시아에 대한 역사적 의존을 줄이려는 자신들만의 방법을 계속 찾을 것이지만, 미국과 그 파트너들 역시 그들의 탈러시아 노력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힘의 공백

러시아가 관심과 자원을 우크라이나로 돌리면서 처음에는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에 공백이 생겨 더 큰 불안정과 갈등을 부추겼다. 2022년 가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간, 그리고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간의 국경 긴장이 폭력적으로 격화되었다. 과거에는 러시아가 이러한 갈등이 확전되지 않도록 막는 주요 중재자였지만,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선 강화를 위해 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양쪽에서 병력을 철수하느라 그러한 역할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러시아가 제대로 개입하지 못한 탓에, 페르가나 계곡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키르기스-타지크 국경 충돌이 처음에는 격화되었다. 이 충돌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그중 최소 37명이 민간인었다), 1만 명이 넘는 이들이 피란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후 충돌은 수그러들었고 러시아 세력의 부재는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다. 양국 지도자들은 의도적으로 러시아를 배제한 채 협상에 나섰고, 올해 초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페르가나 계곡 국경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합의에 최종 도달했다. 이 합의는 이어 2025년 3월 타지키스탄 후잔드에서 열린 첫 번째 정상회담으로 이어졌으며, 이 자리에는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정상들이 모여 세 나라의 접경 지역에서의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남캅카스의 상황은 키르기스-타지크 국경 문제보다 훨씬 폭발적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휴전 합의에 따라 아르메니아에 배치했던 러시아 평화유지군 일부를 철수하고,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국인 아르메니아의 반복된 군사 지원 요청을 거부하자, 아제르바이잔은 러시아가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고 2023년 봄 아르메니아인들이 점령하고 있던 있던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침공했다. 공세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 군은 러시아 평화유지군을 향해 사격까지 가했으며, 결국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 전역을 완전히 탈환하고 아르메니아인들이 운영하던 분리 독립 정권을 해체했다. 이 지역의 거의 모든 아르메니아계 주민들은 탈출했다.


나고르노-카라바흐의 붕괴는 지역 지정학을 근본적으로 재편했다. 남아 있던 러시아 평화유지군이 철수했고, 아제르바이잔과와 아르메니아는 평화 구축이라는 어려운 과정에 들어섰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협상가들은 여러 차례 만나 협상을 진행했으며, 올해 3월에는 양국 관계 정상화와 영토 분쟁 해결을 담은 평화협정 합의문 초안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 합의는 또한 외국 평화유지군의 철수를 공식화하여 향후 러시아군의 재배치 시도를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직 서명이 이뤄지지 않았고 무산될 가능성도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의 진전은 고무적이다.1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타지크 협상 모두 러시아의 중재 없이 진행되었다. 러시아 정부는 오랫동안 지역 영향력 확보 전략의 일환으로 소규모 이웃 국가들 간의 갈등을 유지관리하면서 그들의 대러시아 의존을 지켜왔다. 오래된 농담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갈등에서 러시아가 늘 지지했던 쪽은 바로 "갈등 그 자체"였다. 그러나 러시아가 부재한 가운데 외교적 돌파구가 가능해졌다. 구소련 유라시아 국가들은 더 큰 주체성을 발휘하며 협력을 선택했고, 스스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공백 메우기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른 국가들이 러시아의 전통적 영향권에 개입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다. 이들 대부분은 러시아와 무난한 관계를 유지하며 러시아에 대항하려는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유라시아 내륙이 더 넓은 세계와 연결됨에 따라 이들 작은 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아르메니아는 러시아에 대한 무기 의존을 끝내기 위해 프랑스와 인도로부터 새로운 무기 체계를 도입했는데, 인도를 택한 것은 부분적으로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하는 파키스탄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아르메니아는 2022~23년 사이 인도산 무기만 15억 달러어치를 구매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아제르바이잔의 녹색에너지와 농업에 투자하고 있으며, UAE 기업은 2025년 1월 조지아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동산 투자를 단행했다. 유럽연합은 2022년 처음으로 '중앙아시아 전략'을 공식 채택했고, 현재 이 지역 최대 외국인 투자 공급원이 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러시아 외 행위자는—특히 중앙아시아에서는—중국이다. 중국의 중앙아시아 5개국과의 무역 규모는 2023년 894억 달러에서 2024년 948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이는 해당 국가들의 대러시아 교역 규모의 두 배가 넘는다. 중국은 또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중앙아시아 전역으로 이어지는 가스 파이프라인과, 중국 신장성 카슈가르에서 우즈베키스탄 안디잔으로 연결되는 철도 등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에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싱가포르 컨소시엄은 조지아 정부가 미-조지아 컨소시엄과의 이전 계약을 취소한 뒤, 조지아 아낙리아 심해 컨테이너 신항만 건설 입찰을 따냈다. 중앙아시아는 특히 전기차 생산업체를 중심으로 중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중요한 시장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경제적 존재감 확대와 더불어 중국은 조용히 안보적 영향력도 확대하고 있다. 안보 협력은 타지키스탄에서 가장 진전되었으며, 중국은 자국의 주요 무장 경찰 조직인 인민무장경찰(武警)을 아프가니스탄 접경 지역에 배치했다. 중국은 또한 타지키스탄에 무기와 장비를 판매하고 공동 훈련과 연습에도 참여하고 있다.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들 역시 중국산 방공 시스템 구매 계약을 체결했으며, 우즈베키스탄의 국방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은 중국-파키스탄 합작 전투기 도입 계약을 최종 확정하는 단계에 근접해 있다.


유라시아 내륙에서 확대되는 중국의 존재는 미국으로 하여금 '러시아 영향력 약화에 따른 중국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은 역내 국가들이 더 즉각적인 위협인 러시아 팽창주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아낙리아 항만은 조지아가 중국뿐만 아니라 다른 파트너들과의 교역을 크게 확대할 수 있게 해주며, 러시아 경제에 대한 의존을 줄여줄 수 있다. 또 중국은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 무역파트너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위협하는 러시아 활동에 대해서는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침해할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지역의 또 다른 강력한 행위자는 나토(NATO) 회원국인 튀르키예다. 튀르키예 정부의 요청으로, 원래는 튀르키예, 아제르바이잔, 중앙아시아 튀르크어권 국가들의 문화적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설립된 튀르크어권국가기구(OTS)는 이제 점점 더 카스피해를 가로지르는 에너지 협력 추진에 몰두하고 있다. 여기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천연가스를 유럽에 수출하는 프로젝트와 카스피해 양측에서 생산 능력 확대를 위해 공동 투자하는 계획이 포함된다. 2020년과 2023년 두 차례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군이 (형식상) 러시아가 지원하는 아르메니아를 격파할 수 있었던 것도 튀르키예의 군 현대화 지원 덕분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압도적 승리는 지역 전반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소련 유산의 군대가 서방식으로 재편될 수 있고, 재편된 군대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튀르키예의 지원을 통해 다른 국가들 역시 자국 군대 내 제도적, 문화적 변화를 추진하고 나토식 군대로 개편하는 경로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승리는 많은 나라들에게 튀르키예 방산 기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타지키스탄을 제외한 모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튀르키예제 드론을 구입했으며, 2024년 가을에는 튀르키예 드론 제조업체 바이카르가 카자흐스탄에 생산 시설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튀르키예는 또한 훈련, 자문, 합동 군사훈련, 군사 전문교육 등 다양한 형태의 안보 협력을 이들 국가와 추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튀르키예와 갈등 관계를 이어온 아르메니아조차 아제르바이잔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튀르키예와의 방위 협력을 검토하는 고위 인사들이 있다. 아르메니아와 튀르키예의 관계정상화와 장기간 폐쇄됐던 국경 개방, 튀르키예 투자의 확대는 남캅카스에서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크게 강화할 수 있으며, 이는 러시아가 최종 합의를 막기 위해 아제르바이잔의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러시아 공군이 아제르바이잔 제트 여객기를 오인 격추한 사건 이후)과 아르메니아의 니콜 파시냔 총리(러시아가 쿠데타 음모를 지원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모두와 갈등을 빚는 이유 중 하나다.

새로운 네트워크

유라시아 내륙을 세계시장과 연결하는 새로운 무역 및 운송 패턴도 등장했다. 2000년대 초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원유 파이프라인과 바쿠-트빌리시-에르주룸(BTE)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이 그랬듯, 지난 10년간 확장된 동서 방향의 파이프라인, 철도, 도로망은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의 소규모 국가들에게 추가적인 통행 수수료 수익을 제공하고, 에너지 수출국들에게 새로운 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이러한 수입과 시장 접근은 이들 경제의 대러시아 의존도를 줄여준다.


새로운 인프라 건설은 상당 부분 캅카스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카자흐스탄의 비판에 불쾌감을 표시하기 위해 텡기즈-노보로시스크 파이프라인(러시아 경유)을 통한 카자흐스탄 원유 수송을 반복적으로 방해하자, 카자흐스탄은 유럽에 공급하는 원유의 상당 부분을 (러시아를 우회하는) BTC 파이프라인(러시아 우회)을 통해 수송하기 시작했다. 2006년 개통된 이 노선 건설에는 미국과 EU가 강력한 정치적,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다. 카자흐스탄은 2024년 3월 아제르바이잔과 새로운 합의를 체결해 이 파이프라인을 통한 공급을 더욱 확대하기로 했다.


2022년 이후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에서 벗어나면서, 지역 내 천연가스 생산국과 파이프라인 통과국들에게 추가적 기회가 주어졌다. 2022년 7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알리예프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의 대EU 가스 수출을 두 배로 늘린다는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어 투르크메니스탄도 아제르바이잔, 튀르키예를 거쳐 유럽으로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데 원칙적으로 합의했는데, 이는 2021년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이 카스피해 자원 분할 문제를 해결하기로 합의한 것이 뒷받침됐다. 유럽 기업과 정부들은 이 지역을 잠재적 녹색에너지 공급원으로도 주목하고 있으며, 특히 아제르바이잔은 석유, 가스 수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신규 수송교통로 프로젝트는 '중앙회랑'이다. 이는 2013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카자흐스탄 운송 기업들이 개통한 노선으로, 카자흐스탄, 카스피해, 캅카스를 거쳐 중국과 유럽을 연결한다. 그동안 경제성 문제, 인프라 부족, 지역 내 분쟁으로 발전이 지체됐으며, 대륙 간 무역 대부분은 이미 인프라가 구축돼 있고 통과할 국경이 적은 러시아쪽 북부회랑을 거쳤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서방 제재와 외국 기업들의 러시아 철수로 북부회랑을 통한 물류량은 급감했고, 중앙회랑의 교역량은 크게 늘어났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따르면, 중앙회랑을 통과하는 중국발 컨테이너 열차 수는 2023년에서 2024년 사이 33배 증가했으며,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항만 물동량도 21% 늘어났다.


중앙회랑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려면 병목을 해소하고 규제를 간소화해야 한다. 2024년 4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EU-중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EU는 '글로벌 게이트웨이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양 지역간 연결성 강화를 위해 100억 유로를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홍해에서 후티 반군의 해상 공격, 탈레반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외국인 투자 개방 의사, 러시아의 장기적 불확실성은 모두 이 노선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우크라이나 정전 합의 이후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 제재를 해제하고, 러시아 통과 리스크가 줄어든다면, 각국 정부와 개발은행들의 행동 의지는 약화될 수 있다.

양다리 걸치기

이러한 전개는 러시아가 자국의 전통적 영향권에서 주도적 지위를 잃을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리적 근접성, 엘리트 간 친밀함, 제정 러시아 및 소련 지배의 긴 유산 덕분에 러시아는 여전히 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상당한 하드파워, 소프트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면서도 러시아와의 좋은 관계를 중시한다. 많은 국가들은 2022년 2월 이후 러시아의 서방 제재 회피 노력으로 이익을 얻었다. 미국과 유럽 정부들은 러시아에 이중용도 품목이 반입되도록 도운 혐의로 이 지역 수십 개 기업을 제재한 바 있다. 또 많은 구소련 유라시아 국가들에게 러시아에서 일하는 자국 노동자들의 송금은 중요한 수익원이자 러시아의 영향력 원천으로 남아 있다. 2024년 3월 모스크바 콘서트장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 이후 러시아가 불법 이주 단속을 강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러시아의 정치적 영향력도 여전히 남아 있다. 푸틴은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 등 다른 지도자들(그리고 때로는 잠재적 후계자로 키워지고 있는 이들의 자녀들)과 정기적으로 회담을 가진다. 러시아는 벨라루스를 사실상의 보호령으로 만들었으며, 조지아의 집권당 '조지아의 꿈'과 몰도바 야당 정치인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지난해 조지아의 정치적 노선이 극적으로 전환되면서, '조지아의 꿈'은 시민사회를 탄압하는 러시아식 법안을 채택하고 EU 가입 협상을 중단했다. 몰도바 역시 운명이 불투명하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으며, 러시아의 후원을 받는 단체들이 오는 9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수송 인프라에서 배제되기는커녕 오히려 참여하고 이익을 얻고 있다. 예컨대 카자흐스탄이 유럽으로 더 많은 석유, 천연가스를 수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도, 카자흐스탄 정부는 지난 6월 첫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러시아 국영기업 로사톰에 맡겼다. 러시아는 아제르바이잔, 이란과 협력해 '북남(北南) 회랑'을 만들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를 아제르바이잔-인도-이란을 거쳐 인도양과 연결시키는 도로, 철도, 해상교통로 사업이다. 이들 국가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도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아제르바이잔이 이 북남회랑과 중앙회랑 양쪽에서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는 지역내 많은 국가들의 접근 방식을 보여준다. 이들은 러시아와 서방 간 대결에서 한 편을 드는 대신, 경쟁이 제공하는 기회를 포착하려는 것이다.

윈-윈

1997년 존스홉킨스대 연설에서 스토브 탤벗 당시 미 국무부 부장관은 "미국은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의 모든 책임 있는 행위자들이 승자가 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으며, 이 지역이 19세기 '그레이트 게임' 당시처럼 열강 각축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3년여 동안의 전개는 세계(그리고 미국)가 극적으로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소련 유라시아가 그 비전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더 가까워지게 했다.


오늘날 캅카스와 중앙아시아는 여전히 미국 전략에서 주변적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미국이 인도태평양(인태)으로 외교적 초점을 옮기고, 트럼프 대통령이 강대국의 세력권 개념에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 지역에 일정한 관심을 기울였다. 예컨대 이번 달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협상이 진행되는 가운데, 톰 배락 주튀르키예 미국 대사는 미국 민간기업이 아제르바이잔 본토와 아르메니아를 거쳐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아제르바이잔 영토로 본국과 아르메니아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음)을 연결하는 통로(회랑)를 운영할 수 있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중립적 제3자가 이 통로를 관리한다는 아이디어는 앞선 협상에서 논의된 적이 있었지만, 미국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는 점을 미국 관리가 시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다 포괄적인 지역 전략은 미국 행정부가 추가 부담 없이 에너지 자원에의 접근과 경쟁국 견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유라시아 내륙의 전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EU, 튀르키예, 다른 동맹국과 파트너들이 이 지역에서 적극적 존재감을 유지하도록 장려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진행 중인 노력에도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남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정부들이 더 큰 지역 협력을 추구하도록 조심스럽게 격려해야 하며, 요청을 받을 경우 지역 합의에 기여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현지 행위자들이 주도권을 쥐도록 두어야 한다. 또한 역내 국가들과 협력해 무역 장벽을 낮추고,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프로젝트에 미국을 포함한 서방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무역투자 협정은 2015년부터 매년 열려온 미국-중앙아시아 외교장관회의(C5+1)의 핵심 의제가 돼야 한다. 정상들이 참여하는 C5+1 회의는 2023년에 단 한 차례 열린 바 있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한 차례 더 C5+1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주도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국이 유라시아 내륙 국가들과 핵심 목표를 공유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들 국가의 국내 정치체제가 미국의 취향에 꼭 맞지는 않을 수 있으며, 다수는 러시아, 중국, 이란과 생산적 관계를 유지하길 원할 것이다. 지정학적 위치상 선택지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국가와 국민들은 러시아가 자신들을 러시아 영향권에 편입시키려는 시도에 저항할 것이다. 미국에게 이 지역이 러시아나 다른 수정주의 세력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하는 일은, 구소련 유라시아 국가들이 다변화된 경제적, 정치적 관계를 추구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노력은 반드시 미국이 원하는 조건대로 이뤄지지는 않더라도, 더 자유롭고 개방된 지역을 만드는 데 기여하며, 이는 곧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부합한다.




제프리 맨코프(Jeffrey Mankoff)는 미 국방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며 전략국제연구소(CSIS)의 비상임 연구원이다. 그의 저서로는 '유라시아의 제국들Empires of Eurasia'가 있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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