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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다섯 가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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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사진=AFP/뉴시스, 로이터/뉴스1

2024.05.10 14:11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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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지금도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앞으로 전쟁이 어떻게 끝나느냐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미국의 러시아 역사학 권위자 스티븐 코트킨은 2024년 4월 18일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장문의 에세이에서 러시아의 다섯 가지 미래를 검토합니다. 러시아와 세계 모두에 긍정적인 시나리오부터 모든 것이 혼돈에 빠지는 시나리오까지 다양합니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러시아의 미래에 미칠 영향은 최근 러시아의 현격한 대중 의존도에도 불구하고(러시아가 이미 중국의 '속국'이 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충분한 고찰이 이뤄지지 못한 부분인데 이 글은 그 지점에 대해서도 상세히 살피고 있습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경험 차원을 넘어서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역사학의 대가가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의 궤적을 어떻게 조망하는지(코트킨의 시각에 동의하느냐는 차치하더라도) 보여주는 이 글을 모든 독자분께 자신있게 권합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교롭게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습격한 2023년 10월 7일, 71세가 됐다. 푸틴은 하마스의 광란을 생일 선물로 여겼다. 자신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둘러싼 상황을 바꿔버렸으니까. 선물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였을까, 그는 외무부로 하여금 10월 말 모스크바에 하마스 고위 인사들을 초대하게 해 양측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로부터 몇 주 후, 푸틴은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는 2024년 3월 선거에 출마해 5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얼마 후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고분고분한 언론인 무리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서방이 지쳐가는 모습을 떠벌리는 자신의 모습을 취재할 수 있는 특권을 베풀었다. "거의 전 전선에 걸쳐 우리 군대는—겸손하게 말해서—상황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푸틴은 생방송에서 자랑했다.


2024년 2월 16일, 러시아 연방교정국은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7)가 북극권에 위치한 감옥에서 갑자기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나발니는 수감 중에도 수백만 명의 추종자들에게 푸틴의 선거에 어떻게 항의할지에 대한 지침을 계속 전달해왔다. 한 달 뒤 치러진 선거 결과를 보면 크렘린이 적어도 푸틴의 확실한 승리를 선언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고 말할 수 있겠다.


푸틴은 스스로를 새로운 차르로 자리매김하려 한다. 하지만 진정한 차르라면 다가오는 권력승계 위기나, 그 위기가 현재의 권력 유지에 미칠 수 있는 악영향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푸틴에게는 그런 걱정이 있다. 그것이 그가 선거를 치르는 척해야만 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이제 78세가 되는 2030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다. 러시아 남성의 기대수명은 67세도 못된다. 60세까지 산 이들은 80세 정도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에서 100세 이상 산 것으로 인증된 사람은 거의 없다. 푸틴이 언젠가 그 희귀한 대열에 합류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스탈린조차도 결국은 죽었다.


푸틴의 전임자 보리스 옐친은 후계자를 지명하고 그의 권력 장악을 도운 희귀한 차르 지망생이었다. 1999년 옐친은 건강 문제에 직면하고 퇴임 후 자신과 부패한 친구들의 '가족'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푸틴을 선택해 자신의 자유와 유산을 보호해달라고 했다. "러시아를 돌봐달라"고 옐친은 작별 인사로 남겼다. 2007년 76세의 나이에 옐친은 자유인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보호자(푸틴)는 후원자(옐친)의 본보기를 따르길 꺼렸다. 2008년 푸틴은 옐친이 직면했던 것과 동일한 연임 제한을 인정하고 대통령직에서 잠시 물러났다. 푸틴은 그 자리에 무명의 정치인을 앉히고 총리로 이동한 뒤 2012년 대통령 3선에, 그리고 4선에 복귀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위조한 입법부로 하여금 사실상 임기 제한을 없애도록 헌법을 개정케 했다. 스탈린 역시 병이 악화되는데도 권력을 고집했다. 그는 후계자의 등장을 용납하지 않았고, 결국 치명적인 뇌졸중으로 쓰러져 자신의 오줌 웅덩이에 빠졌다.



푸틴은 스탈린이 아니다. 스탈린은 초강대국을 건설하는 한편, 수천만 명을 기근, 강제노동수용소, 처형 지하실, 잘못 관리된 방어전에 내몰아 죽게 만들었다. 반면 푸틴은 자신이 선택한 전쟁에 수십만 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한편 임시방편으로 굴러가는 불량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그럼에도 푸틴과 스탈린을 비교하는 건 도움이 된다. 스탈린의 체제는 제도화된 집권당(공산당)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없이는 살아남기 어려웠다. 소련 붕괴와 함께 시작됐지만 1991년을 훨씬 넘어 지속된 기존 질서의 와해 속에서 푸틴은 새로운 독재를 공고히 했다. 이 취약성과 경로의존성의 융합은 지리, 국가-제국 정체성, 뿌리박힌 전략문화 등 쉽게 바꾸기 어려운 여러 요인에서 비롯된다. (19세기 러시아의 풍자가 살티코프-셰드린은 자기 조국에 대해 '5~10년마다 모든 것이 극적으로 변하지만 200년 동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언제 어떻게 푸틴이 사라질지와 무관하게, 그의 인격화된 독재 체제와 (더 넓게는) 러시아는 이미 미래에 대한 질문에 직면해 있다. 이로 인해 그가 다음번에는 어떻게 허를 찌르고 들어올까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났다.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 파트너들은 리비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중앙아프리카에서 번번이 그에게 허를 찔렸다.


푸틴 정권은 스스로를 인류를 대신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산산조각 내는 쇄빙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떨까? 피할 수 없는 지도자의 필멸성과 더 큰 구조적 요인에 비춰볼 때 향후 10년, 그리고 그 이후 러시아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아니면 진화하지 않을 것인가?


러시아 미래에 대한 각각의 시나리오의 배당률을 알고 싶은 독자들은 베팅 시장을 참고하면 된다. 반면 서방의 관리들과 다른 의사결정권자들은 일련의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한다. 현재 추세를 바탕으로 예측해 우발상황 계획 수립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허를 찔리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에는 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며 예측이 불가능한 일, 이른바 '블랙스완'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겸손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현재 상상할 수 있는 러시아의 미래는 다섯 가지이며, 미국과 동맹국들은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미국은 여러 정권에 걸쳐 러시아나 중국 같은 곳을 변화시킬 레버리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배웠다. 이들 국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제국으로 시작해 미국은 물론 서구의 형성보다 훨씬 이전부터 자신들을 고대 문명으로 찬양해온 곳들이다. 그들은 조지 버나드 쇼의 연극 '피그말리온'의 등장인물이 아니다. '피그말리온'의 등장인물은 길거리 부랑자에서 우아한 숙녀로 변신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이들은 권위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정권에서 미국이 지배하는 국제체제의 책임감 있는 이해당사자로 전환될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들의 '성격'을 바꾸려는 노력은 변함없이 상호 비난과 환멸을 낳는다. 푸틴이나 시진핑 같은 지도자들은 어떤 희망찬 과정을 변덕스럽게 뒤로 되돌린 게 아니다. 적지 않은 부분에서 그들은 그 과정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미국과 그 파트너들은 러시아의 궤적을 바꿀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대신 무슨 일이 펼쳐지든 대비해야 한다.

시나리오 1: 프랑스처럼 된 러시아

프랑스는 뿌리 깊은 관료제와 군주제 전통을 지닌 나라다. 그리고 불안한 혁명의 전통도 있다. 혁명가들이 군주제를 폐지했지만 군주제는 마치 공화국이 생겨났다 사라지듯 왕과 황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사라졌다. 프랑스는 광대한 식민지 제국을 건설했다가 잃었다. 수세기 동안 프랑스의 통치자들, 특히 나폴레옹은 이웃 나라를 위협했다.


오늘날 이런 전통들은 여러 면에서 살아 있다.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이 1856년 저작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에서 통찰력 있게 관찰했듯이, 혁명가들이 과거와 결정적으로 단절하려 한 노력은 결과적으로는 국가주의 구조를 무의식적으로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공화제 체제가 공고해졌음에도 베르사유 궁전 등에 남아있는 상징적 모습,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부르봉 왕조 통치자들의 동상, 그리고 막대한 권력과 부가 파리에 집중된 과도하게 중앙집권화된 통치 형태에서 프랑스의 군주제 유산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공식적인 제국은 상실했지만 프랑스는 여전히 자부심이 맹렬히 강한 나라다. 많은 시민들과 찬양자들은 프랑스를 세계와 유럽에 대해 특별한 사명을 가진 나라이자 국경을 훨씬 넘어 사용되는 언어(매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의 60%는 프랑스가 아닌 다른 나라 국민이다)를 가진 문명으로 본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오늘날의 프랑스는 법치를 누리며 더 이상 이웃을 위협하지 않는다.


러시아 또한 미래에 어떤 성격의 정치체제가 들어서더라도 지속될 국가주의적이고 군주제적인 전통과, 더는 모험주의적이진 않으나 여전히 제도와 기억 속에서 영감과 경고의 원천으로 살아 있는 불안한 혁명 전통을 지니고 있다. 물론 전제군주 로마노프가는 절대군주 부르봉 왕가보다 훨씬 덜 제약을 받았다. 러시아 혁명은 심지어 프랑스 혁명보다 훨씬 잔인하고 파괴적이었다. 러시아가 상실한 제국은 해외가 아닌 인접 지역이었고 프랑스보다 훨씬 더 오래, 사실상 현대적인 러시아 국가가 존재했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지속됐다. 러시아에서 모스크바가 나머지 지역을 지배하는 정도는 심지어 프랑스에서 파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능가한다. 러시아의 지리적 광대함은 프랑스를 압도하며, 유럽뿐 아니라 코카서스, 중앙아시아, 동아시아와도 얽혀있다. 러시아와 공통점이 많은 나라는 거의 없다. 하지만 프랑스는 그 어느 나라보다 러시아와 공통점이 많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이런저런 측면에 실망하더라도 프랑스가 풍요롭고 평화로운 러시아에 가장 가까운 현실적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현대 프랑스는 위대한 나라지만 비판자들이 없는 건 아니다. 또 다른 이들은 프랑스가 이민자 동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탄한다. 만약 러시아가 프랑스처럼—전제주의와 혁명의 과거를 즐기면서도 더 이상 이웃을 위협하지 않는 법치 민주주의 국가가—된다면 이는 매우 높은 수준의 성취가 될 것이다. 다른 이들은 프랑스의 강대국 허세와 문화적 배타주의를 지적한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과도한 국가주의, 불균등한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 높은 세금, 그리고 광범위한 사회주의적 정서를 비난한다.


프랑스는 오늘날의 모습이 되기까지 고통스러운 길을 걸었다. 로베스피에르의 혁명 테러, 나폴레옹의 파국적 팽창주의, 나폴레옹 3세의 셀프 쿠데타(선출된 대통령에서 황제로), 파리 코뮌에 의한 권력 장악, 2차 세계대전에서의 신속한 패배, 뒤이은 비시 협력정권, 식민지 알제리 전쟁, 1958년 은퇴에서 복귀한 샤를 드골 대통령의 초헌법적 행위들을 떠올려보라. 어쩌면 러시아에도 하향식으로 자유주의 질서를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줄 드골 같은 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끌릴 수 있겠다. 비록 그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당장 러시아에는 보이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이 오늘날의 프랑스를 만들었다고 여기는 건 영웅전 작가들 뿐이다. 역사적으로 불안정했던 순간들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세대를 걸쳐 민주적이고 공화주의적인 국가의 공평무사하고 전문적인 제도, 다시 말해 사법부, 공무원, 자유롭고 개방적인 공론장을 발전시켜왔다. 단지 옐친이 드골이 아니였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1991년의 러시아가 30년 전의 프랑스에 비해 안정적이고 서구식 헌법질서와 훨씬 더 떨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다섯 번째 임기의 취임식에 레드 카펫을 걸으며 도착하고 있다. 2024.05.08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모스크바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다섯 번째 임기의 취임식에 레드 카펫을 걸으며 도착하고 있다. 2024.05.08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시나리오 2: 러시아의 후퇴

어떤 러시아인들은 프랑스와 유사한 나라로의 변신을 환영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이들은 그런 결과를 혐오할 것이다. 오늘날 세계가 '푸틴주의'라 이르는 것은 1970년대 러시아어 정기간행물과 단체에서 처음 등장했다. 반서구주의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적이고 원한에 찬 신비주의적 민족주의로, 명목상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며 슬라브주의, 유라시아주의, 정교회에서 일관성 없이 빌려온 개념으로 가득하다.이런 견해를 수용하는 권위주의적 민족주의 지도자를 상상할 수 있다. 푸틴처럼 미국이 러시아 파괴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도 러시아의 어두운 장기적 미래를 깊이 우려하고 푸틴에게 그 책임을 돌릴 준비가 된 인물 말이다.다시 말해, 푸틴의 지지 기반에 호소하면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러시아에 해롭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인구는 러시아의 '피와 땅1' 민족주의자들, 군 수뇌부, 그리고 많은 보통 사람들에게 특별히 아픈 지점이다. 1992년 이래 상당한 이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인구는 줄어들었다. 노동가능인구는 2006년 약 900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지금은 8000만 명도 안 된다. 참담한 추세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지출로 러시아 군수산업 기반이 촉진됐지만, 최우선 부문에서조차 노동력 감소의 한계가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군수산업 부문은 필요한 것보다 노동자가 약 500만 명 부족하다. 가장 생산적인 연령대인 20~39세 노동자 비율은 향후 10년간 더욱 감소할 것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푸틴을 기소하게 만든 우크라이나에서의 어린이 유괴조차도 전쟁의 엄청난 사상자로 가중되는 러시아인 수의 감소를 뒤집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인구 추세를 상쇄할 만한 생산성 향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는 생산의 자동화 규모와 속도에서 세계 최하위권에 속한다. 로봇화 수준은 세계 평균에 한참 못 미친다. 우크라이나와의 전면전이 국가 예산을 잠식하기 시작하기 전에도 러시아는 교육 지출에서 세계 순위가 놀라울 정도로 낮았다. 지난 2년 간 푸틴은 수천 명의 젊은 IT 인력이 징집과 탄압을 피해 떠나도록 함으로써 러시아의 경제적 미래 상당 부분을 기꺼이 포기했다. 그렇다. 광적인 민족주의자들은 러시아에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속으로는 강대국에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


러시아가 프랑스처럼 되지 않을 경우, 극단적 반서구주의의 장기적인 대가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러시아 민족주의자의 부상이 러시아가 국제질서에서 안정적 위치를 찾는 가장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가 된다.


광활한 유라시아의 지리와 세계 각국과의 오랜 관계, 그리고 기회주의의 연금술 덕분에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경제에 필수불가결한 많은 물품을 여전히 수입할 수 있다. 이런 임기응변과 전쟁에 익숙해진 국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엘리트들은 통계 수치가 암담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상품수출국으로서 러시아의 장기 발전은 선진국들로부터의 기술 이전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서방을 그 기술 출처로 이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하마스의 허무주의에 대한 푸틴의 상징적 포용은 첨단기술 상품과 서비스의 주요 공급국인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불필요하게 긴장시켰다. 보다 기초적인 수준에서 러시아 엘리트들은 선진국 세계와 물리적으로 단절됐다. 아무리 쾌적하다 해도 아랍에미리트의 은신처가 유럽의 별장과 기숙학교를 대신할 순 없다.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권은 이번에도 전쟁에 대처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입증했다. 그러나 푸틴의 국내 투자와 산업 다각화는 심각할 정도로 부족하고 전쟁으로 인구 압박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기술적 후진성을 더욱 악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엘리트 다수를 포함하고 있는 극렬 민족주의자들이 그로 인해 러시아가 자멸을 길을 걷고 있음을 인정하게 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사석에서 푸틴이 자신의 노쇠한 정권의 생존 문제를 러시아라는 전설적인 나라가 강대국으로 생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와 혼동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적어도 역사적으로는 그런 깨달음이 방향의 전환, 대외적 팽창에서 국내 재건으로의 전환을 촉발했다. 2023년 여름, 용병 지도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군대가 모스크바로 진군했을 때, 그것은 군 장교들의 합세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것이 프리고진이 진군을 중단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푸틴을 지키기 위해 정권 지지자들을 즉각 결집시키지도 못했다. 프리고진의 반란 사건은 정권에 대한 무의식적 국민투표 역할을 했고 푸틴 정권이 휘두르는 억압적 권력 내부의 어떤 공허함을 드러냈다.


러시아의 후퇴는 푸틴이 보다 빨리 퇴진하거나 그의 자연사 후에 일어날 수도 있다. 푸틴이 제거되지 않더라도 그의 통치에 대한 의미 있는 정치적 위협으로 인해 푸틴이 후퇴를 택해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든 그것은 러시아가 끝없이 서방에 맞설 수단이 부족하고, 이를 시도하는 데 터무니없는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필요불가결한 유럽과의 관계를 중국에 대한 굴욕적 의존과 맞바꾸며 영구히 잃을 위험이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대체로 전술적인 움직임을 수반할 것이다.

시나리오 3: 중국의 속국이 된 러시아

푸틴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러시아 엘리트들은 서방보다 나은 대안을 개발했다고 자랑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과거 양국 정부의 까다로운 관계, 1960년대 악명 높은 중소결렬(이는 짧은 국경 전쟁으로 절정에 달했다)을 알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그 충돌은 공식적으로 국경 획정으로 해결(중국인들은 불공정한 조약이라고 비난한다)됐지만 러시아는 청나라로부터 빼앗은 영토를 여전히 지배하는 유일한 나라다. 그럼에도 이 사실이 중국과 러시아가 대규모 합동 군사훈련(지난 20년간 빈도와 지리적 범위가 커졌다)을 포함해 관계를 강화하는 걸 막지는 못했다. 두 나라는 나토의 확장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간섭에 대한 러시아의 불만에 대해 완전히 보조를 맞추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중국의 대러 지원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중러 화해는 푸틴과 시진핑의 등장 이전부터 있었다. 1980년대에 덩샤오핑은 1960~1970년대 마오쩌둥이 했던 것보다 더 중대한 러시아와의 결별을 감행했다. 덩샤오핑은 중국 생산자들을 위해 미국의 국내시장에 대한 접근권을 획득했는데 이는 중국에 앞서 일본, 한국, 대만의 경제적 변혁을 가능케 한 묘수였다. 덩샤오핑이 공산주의 소련과 이혼하고 미국 및 유럽 자본가들과 사실상 경제적 결혼을 한 것은 중국의 중산층을 낳은 놀라운 번영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계속 얽혀 있었다. 덩샤오핑이 택한 후계자 장쩌민은 소련 공장에서 교육을 받았던 인물로, 그는 미중 결혼 관계를 깨뜨리지 않으면서 러시아를 정부情婦로 다시 데려왔다. 장쩌민의 러시아 무기 구매는 러시아의 황량한 군산복합체를 되살리고 중국의 자체 무기 생산시설과 군대를 현대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 1996년 장쩌민과 옐친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대단치 않은 규모의 양자 무역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국내 경제 호황은 간접적으로 소련 시대의 민간 생산을 죽음에서 되살리는 데 일조했다. 소련이 질은 낮지만 양은 많이 생산했던 강철부터 비료에 이르기까지 산업 원료에 대한 세계 수요를 끌어올려 가격을 인상시킨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중산층을 만드는 데 일조한 것처럼 중국도 러시아의 중산층과 푸틴의 경제 호황을 만들어내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양국 국민 간 사회적, 문화적 관계는 여전히 얕다. 러시아인은 문화적으로 유럽인이며, (영어에 비해) 중국어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소련이 한때 공산주의 세계의 중심이었던 덕분에 일부 고령 중국인은 러시아어를 하지만 그 수는 많지 않고, 중국 학생들이 대규모로 러시아에 유학했던 시절은 이제 먼 기억이다. 러시아인들은 중국의 힘을 경계하고, 약점을 경멸하는 많은 중국인들은 온라인에서 러시아를 조롱한다. 중국공산당의 핵심 인사들은 모스크바가 유라시아와 동유럽 전역에서 공산주의를 파괴한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푸틴과 시진핑 사이의 개인적 관계의 깊이가 이런 취약한 기반을 보완해왔다. 두 사람은 집권 중 무려 42번이나 만나며 '브로맨스'에 빠져들었고, 서로를 "나의 가장 친한 친구"(시진핑이 푸틴에 대해), "친애하는 친구"(푸틴이 시진핑에 대해)라고 공개적으로 칭송했다. 두 영혼의 권위주의적 연대는 변치 않는 반서구주의, 특히 반미주의에 의해 뒷받침된다. 중국이 예전의 하위 파트너에서 이제 상위 파트너가 되면서 두 이웃 독재국가는 관계를 격상시켜 2013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를 발표했다. 공식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간 교역은 2023년 2300억 달러를 넘었다. 물가상승을 감안할 때 30년 전의 양국 교역액은 약 160억 달러 정도였고 불과 2010년대 중반만 해도 780억 달러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2023년 수치는 키르기스스탄, 터키, 아랍에미리트 같은 제3국을 경유해 위장된 수백억 달러 규모의 양국 무역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러시아로부터 군용기 엔진을 사들인다. 하지만 그 외에는 의존의 방향이 반대가 된다. 서방의 제재로 러시아의 국내 자동차 산업은 더 빠르게 중국에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모스크바는 현재 상당한 규모의 위안화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 상품에만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수십 년에 걸친 무수한 회담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에서 시작해 몽골을 거쳐 중국으로 가는 신규 대규모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대한 최종 합의는 여전히 없다. 중국 지도부는 에너지나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는 것을 예민하게 피해왔다. 반면 중국은 이미 태양열과 풍력 발전에서 세계 선두주자이며, 원자력 분야에서도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서 정상 회담을 마친 뒤 열린 만찬서 건배를 제안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서 정상 회담을 마친 뒤 열린 만찬서 건배를 제안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러시아 엘리트들은 (그들의 상상 속에서) 미국이 자국을 예속하거나 해체시키려 한다고 격렬히 비난하면서도 푸틴 러시아의 대중국 종속에 대해서는 별달리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최근 러시아 논평가들은 13세기 노브고로드 공국(제정 러시아의 전신인 모스크바 대공국Muscovy에 통합된 여러 국가들 중 하나)의 알렉산드르 넵스키 공작 이야기를 다시 꺼내고 있다. 서쪽 전선에서는 십자군과, 동쪽 전선에서는 몽골군과 대치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넵스키는 서쪽의 십자군과 싸우기로 선택해 빙판 위의 전투에서 튜턴기사단을 물리쳤으며, 동쪽에서 침략하는 몽골과 화친을 맺기 위해 중앙아시아를 횡단해 킵차크 칸국의 수도로 가서 러시아 대공작으로 인정받았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서방 기독교인들은 러시아의 동방정교회 정체성을 훼손하려 했던 반면, 몽골인들은 단지 러시아가 조공을 바치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 함의는 오늘날 중국과의 화친이 러시아로 하여금 정체성을 포기하도록 요구하지 않는 반면, 서방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정체성을 포기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허튼소리다. 러시아인들이 학교 교과서에서 일률적으로 '몽골의 굴레'라고 불렀던 것에서 벗어나는 데는 수세기가 걸렸지만 러시아는 서방과의 관계 속에서 수세기 동안 살아남았고 결코 서구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비서구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반서구적인 것은 아니다. 물론 자유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비자유주의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분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러시아는 푸틴이 그 상황이 견딜 수 없다고 결정하기 전까지 20년 동안 소련 해체 후의 국경 안에서 존재했다. 서방과의 다리를 불태운 후 그 탓을 서방에게 돌린 푸틴에겐 이제 중국의 호의에 의지하는 것 말고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중러 관계의 불균형이 계속 커지면서 전문가들은 러시아를 중국의 속국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중국만이 한 나라가 자신의 신하가 되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 경우 중국 정부는 러시아 정책은 물론 인사까지 좌우하며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중국은 러시아에게 구속력 있는 조약상 의무가 없다. 푸틴이 가진 것이라곤 올해 70세이며 언젠가는 죽게 될 시진핑의 말뿐이다. 그럼에도 두 지도자는 계속해서 미국의 패권 추구를 비난하고 밀접하게 협력하고 있다. 각자의 독재 정권에 안전한 세계질서를 만들고 자기 지역을 지배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누구도 바라지 않는 사실상의 예속 관계를 이끌고 있다.

시나리오 4: 북한처럼 된 러시아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의존도가 심화되면서 푸틴 또는 그의 후계자는 역설적으로 북한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 이는 마찬가지로 시진핑이나 그의 후계자에겐 경각심을 줄 수 있다. 한국전쟁에서 북한을 돕기 위해 개입하면서 마오쩌둥은 속담을 인용해 입술(북한)이 없어지면 이(중국)가 시려질 것('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말했다. 이 비유는 완충buffering 행위와 상호의존 조건을 모두 내포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중국 논평가들은 특히 북한의 도발적인 2006년 핵실험 이후 북한을 도와줄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왔다. 유엔 제재(중국도 동참했다)에 직면한 북한 지도부는 핵무기와 미사일 사업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였는데 이는 서울과 도쿄뿐 아니라 베이징과 상하이에도 도달할 수 있다. 그래도 중국 지도부는 결국 2018년 북한 정권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북한이 식량, 연료, 기타 많은 것에 대해 중국에 극단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중국 정부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충성파들은 때때로 이가 입술을 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미 중국의 지배층이 여러 차례 발견했듯, 김정은이 언제나 자신을 후원하는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는 건 아니다. 2017년, 그는 외국에서 중국의 보호를 받고 있던 이복형제 김정남을 암살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아무리 중국을 격분케 하더라도 중국이 평양의 정권이 무너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얼마든지 중국에 반항할 수 있다.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한반도는 미국의 조약 동맹국인 한국의 주도로 통일될 것이다. 이는 중국이 70년 넘게 정전 협정으로 중단된 상태인 한국전쟁에서 결국 패배했음을 의미하게 된다. 한반도 완충지대의 상실은 대만 흡수통일에 대한 중국 정권의 선택지와 내부 계획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 가까이에서 더 적대적인 외부 환경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불안정은 중국으로 유입되는 경향이 있었고, 난민의 유입은 중국 동북부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잠재적으로 훨씬 더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과 일종의 역의존 관계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유사한 입장에 놓이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과 밀접한 관계가 없으면 결코 강대국으로 지속된 적이 없다.


러시아와 북한은 모든 면에서 비슷한 점이 거의 없다. 러시아의 영토는 북한보다 142배나 더 크다. 북한은 러시아와 달리—김씨 일가의 후계자가 당 대회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지도자로 인정을 받아야 하긴 하지만—일종의 왕조를 갖고 있다. 북한은 또한 중국의 유일한 공식 조약 동맹국이다. 양국은 1961년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일부 중국 논평가들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로 인해 중국이 더 이상 북한이 공격을 받더라도 북한을 방어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조약이 폐기된 것은 아니다). 북한은 한국이라는 라이벌과 마주하고 있어, 이 점에서 러시아보다는 (사라진 지 오래된) 동독을 더 닮았다.


그러나 이런 차이점들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일종의 거대한 북한이 될 수 있다. 대내적으로 억압적이고, 국제적으론 고립되고 일탈적이며, 핵무기로 무장하고, 중국에 비굴하게 의존하지만 여전히 중국을 거스를 수 있는 나라 말이다. 푸틴이 2022년 2월 베이징에서 "한계 없는 동반자 관계"라는 중러 공동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우크라이나 침공 계획에 대해 중국에게 얼마나 미리 일러두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크렘린 대변인은 평화 협정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부가 중국의 모호한 문서를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받아들였음에도 말이다. (키이우에 파견된 중국의 실무급 평화 사절단은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했다.) 나중에 중국 외교관들이 시진핑이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서약을 끌어냈다고 만천하에 자랑한 후, 푸틴 정권은 전술핵을 벨라루스에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평화 계획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시진핑이 푸틴과 함께 크렘린의 화려한 계단에 나타난 일이 있었는데 그 계단은 1939년 나치 치하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가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면서 스탈린과 소련 외무장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와 함께 내려갔던 바로 그 계단이었다. (중국은 이후 핵 배치를 비난했다.) 이러한 에피소드들 중 그 어느 것도 러시아가 중국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려고 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러시아가 어떠한 대가를 치르지 않고서도 중국을 당황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북한 시나리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을 품게 됐다.


프리고진 반란 이후 시진핑은 "양국과 양국 국민의 근본 이익"을 강조해왔는데, 이는 양국의 특별한 관계가 크렘린의 현 정권보다 오래갈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사실 권위주의 중국은 자국의 북쪽 국경과 연한 러시아에 친미 정권이 들어설 경우 친미 정권으로 통일된 한반도보다 훨씬 위험한 상황이 된다. 적어도 중국이 해상 봉쇄에 놓일 경우 어느 정도 대안이 될 수 있는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에 대한 접근성이 위태로워진다. 하지만 설사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물질적으로 거의 얻는 게 없다 해도 러시아가 서방으로 선회하는 것을 막는 일은 중국의 국가안보 최우선 과제로 남을 것이다. 친미 러시아는 (닉슨 대통령의 마오쩌둥과의 '데탕트'가 서방이 신장 지역에서 소련을 감시하는 것을 가능케 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서방의 중국 감시를 강화시킬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갑자기 광활한 북부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부터 상당한 군사력 자산을 재배치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러시아가 북한 같은 행태를 부리더라도 이를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시나리오 5: 혼돈 속의 러시아

푸틴 정권은 심지어 대규모 전쟁의 극심한 압력 아래서도 대체로 안정적으로 보인다. 광범위한 서방 제재 아래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은 아직까지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10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가 각기 감독했던 러시아 국가2는 두 차례 모두 예기치 않게, 그러나 철저히 붕괴되었다. 그러나 동유럽에서 중앙아프리카, 중동에 이르기까지 해외에 열심히 혼돈을 야기하는 러시아는 그 스스로도 혼돈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혼돈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후퇴하지 않은 대가가 될 수도 있다. 푸틴 정권은 내부의 도전과 변화를 막기 위해 혼돈과 미지의 위협을 휘두른다. 가까운 미래에 푸틴 정권의 붕괴를 초래할 만한 원인들이 많다.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되는 국내 반란, 당국의 관리 능력을 넘어서는 자연재해, 핵시설의 우발적 사고나 고의적 파괴, 지도자의 우발적 혹은 비우발적 죽음 등이다. 러시아 같이 제도가 부식되고 정당성이 취약한 나라는 갑작스러운 스트레스 테스트에서 급변에 취약할 수 있다.


그러나 무정부 상태에서조차 러시아는 소련처럼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KGB의 마지막 수석 분석관이 한탄했듯이 소련은 초콜릿 바3와 닮았다. 소비에트연방의 구성국(15개 연방 공화국)들은 주름이 잡힌 것처럼 구분되어 있어 쪼개져 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반면 러시아연방은 대부분 민족에 기반하지 않고 준국가적 지위도 없는 영토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타타르스탄, 바시코르토스탄, 마리엘, 야쿠티아처럼 민족적 명칭을 가진 구성단위 대부분은 해당 민족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않으며 주로 깊숙한 내륙에 위치해 있다. 그렇지만 북카프카스 같은 불안한 국경 지역에서는 연방이 부분적으로 해체될 수 있을 것이다. 칼리닌그라드—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끼어 있고 러시아 본토에서 600km 이상 떨어진 러시아의 작은 주—는 취약할 수 있다.


(모스크바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다섯 번째 임기의 취임식을 마친 뒤 성모승천 대성당의 미사에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참석을 하고 있다. 2024.05.08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모스크바 로이터=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다섯 번째 임기의 취임식을 마친 뒤 성모승천 대성당의 미사에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참석을 하고 있다. 2024.05.08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모스크바가 혼돈에 휩싸인다면 중국은 로마노프 왕조가 청나라로부터 빼앗은 광활한 아무르 유역을 되찾기 위해 움직일 수 있다. 일본은 한때 일본이 통치했던 북방영토(러시아인들은 남쿠릴열도라고 부른다)와 사할린섬, 그리고 아마도 일본이 러시아 내전 중 점령했던 러시아 극동의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무력으로 행사하려 할 수도 있다. 핀란드는 한때 그들이 통치했던 카렐리야 지역의 일부를 되찾으려 할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은 러시아의 전반적인 붕괴를 촉발시키거나 러시아의 대규모 동원을 자극함으로써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혼돈이 시작되면 큰 영토 상실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범죄 조직과 사이버 범죄자들이 더욱 활개를 칠 것이다. 핵과 생물학 무기, 그리고 그것들을 개발하는 과학자들이 흩어질 수 있다. 이는 소련 붕괴 당시에 뒤따랐을 수도 있었던 악몽이었지만 대체로 모면할 수 있었던 일이다. 이는 당시 많은 소련 과학자들이 더 나은 러시아가 탄생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러시아인들이 희망과 분노를 어떻게 저울질할지 예측하기란 어렵다. 혼돈이 반드시 최악의 시나리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 아마겟돈은 단지 연기되었을 뿐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륙의 막다른 골목

여기서 다루지 않은 러시아의 미래 시나리오 하나는 푸틴 정권의 대변자들 뿐만 아니라 푸틴을 비판하는 극우파들 사이에서도 널리 퍼진 것으로, 러시아가 유라시아를 지배하고 국제 문제의 핵심 중재자로 활동하는 (그들 버전의) 다극화 세계 속에서 모스크바가 하나의 극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찾고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크렘린 충성파 정치학자 세르게이 카라가노프는 작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위대한 유라시아 강국, 북유라시아, 인민의 해방자, 평화의 보증자, 그리고 다수 세계4World Majority의 군사-정치적 핵심이다. 이것이 우리의 명백한 운명이다."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 혹은 카라가노프가 말하는 '다수 세계'는 일관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러시아가 그 핵심으로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에 걸쳐 있으면서 자급자족하는 초대륙으로서 러시아라는 프로젝트는 이미 실패했다. 소련은 발트해와 흑해의 제국 내부 뿐 아니라 제국 외부의 위성국들까지 억지로 붙들고 있었지만 결국 헛수고였다.


러시아의 세계는 우크라이나의 거의 20%를 점령했음에도 사실상 축소되고 있다. 영토적으로 (칼리닌그라드를 제외하고는)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대제의 정복 활동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유럽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게다가 태평양에 등장한 지 3세기가 넘었지만 러시아는 결코 아시아의 강대국이 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는 2차 세계대전이 1905년 러일전쟁의 패배에 대해 일본에게 복수할 기회를 주고, 중국 만주에서 차르의 지위를 회복하고 한반도 일부로 세력을 확장할 기회를 주었음에도 그러했다. 러시아는 결코 문화적으로 아시아에 정착하지 못할 것이고, 원래도 미미했던 바이칼호 동쪽의 인구는 소련 붕괴 이후 더욱 줄었다.


인근 지역에서 러시아의 영향력도 감소해왔다. 구소련 국경지대의 비러시아인 대다수는 과거의 지배자와 점점 더 관계를 끊고 싶어 하며 러시아에 재흡수되는 건 정녕 원치 않는다. 아르메니아인은 적의를 갖고 있고, 카자흐스탄인은 경계하며, 벨라루스인은 러시아와의 관계에 갇혀 불행해한다. 유라시아주의와 슬라브주의는 대부분 죽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비러시아계 슬라브인 대다수는 유럽연합과 나토에 합류했거나 합류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웃 유럽 국가들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나토 존재 이유는 불확실해진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가 지속가능한 법치국가로 발전해야만 나토를 깰 수 있음을 뜻하는데 푸틴은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걸고 이에 저항한다.


 [모스크바=AP/뉴시스] 18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려 이 자리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17일 실시된 러시아 대선에서 득표율 87.28%로 압승하며 5선에 성공했다. 2024.03.19.

[모스크바=AP/뉴시스] 18일(현지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크림반도 합병 10주년 기념 음악회가 열려 이 자리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의 모습이 스크린에 나오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5~17일 실시된 러시아 대선에서 득표율 87.28%로 압승하며 5선에 성공했다. 2024.03.19.


러시아가 다른 국가들을 끌어당기는 세계의 무게중심으로 기능할 근거는 없다. 러시아의 경제 모델은 아무런 영감을 주지 못한다. 주요 원조 공여국 역할을 하기에는 형편이 어렵다. 무기 판매 능력은 더 떨어졌다. 자국에 무기가 필요하고 심지어 과거에 자기네가 팔았던 무기체계까지 사들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몇 경우에는 이젠 다른 '왕따' 국가들과 물물교환을 하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위성국가들에게 각종 지원을 해주던 국가로서의 강력한 지위도 잃었다. 러시아는 이제 이란 및 북한과 함께 국제법을 무시하고 훨씬 더 큰 골치거리를 약속하며 열렬히 무기를 교환하는 불량국가 클럽에 속해 있다. 하지만 다른 좋은 기회가 있다면 이들 국가들이 (먼저 국가가 붕괴되지 않는 이상) 서로를 배신하는 걸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서방은 반서방 '파트너십'보다 더 회복탄력성이 강하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를 비난하길 거부했던 구소련의 파트너 국가들도 러시아를 자국의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발판으로 볼 뿐, 러시아를 경제개발의 파트너로 보진 않는다. 러시아의 외교정책은 기껏해야 전술적 이득을 가져다줄 뿐, 인적자본 증대, 최첨단 기술에 대한 접근 보장, 내부 투자와 신규 인프라, 개선된 거버넌스, 기꺼이 상호 의무를 지는 조약 동맹 같이 현대의 국력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전략적 이득은 안겨주지 않는다. 원자재와 정치적 폭력 외에 러시아가 해외로 수출하는 유일한 것은 재능 있는 사람들뿐이다.


러시아는 유럽과 밀접한 관계가 없으면 결코 강대국으로 지속된 적이 없다. 푸틴이나 그 후계자에게 유럽으로 돌아가는 길은 매우 먼 길이 될 것이다. 그는 200년 넘게 지속됐던 스웨덴의 중립 정책과 70년 넘게 이어진 핀란드화(핀란드가 주요 대외정책 결정에서 소련·러시아를 거스르지 않도록 양보한 상태) 끝내고 두 나라 모두 나토에 가입하게 만들었다. 많은 것이 독일의 성향 변화에 달려 있다. 만일 2차대전 후의 독일이 놀라운 변혁 대신 오늘날의 러시아처럼 진화했다면 유럽의 운명, 나아가 세계질서는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해보라. 독일은 러시아와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조건으로 평화통일을 확보했고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 파트너십을 일궈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러시아가 자신의 정치적 행동, 어쩌면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서는 더 이상 독일과 거래를 성사시켜 유럽과의 관계를 되살릴 수 없다. 게다가 러시아가 체제를 바꾼다 해도 폴란드와 발트 3국이 이제 서방의 동맹국이자 유럽연합의 영구회원국으로서 러시아와 유럽의 화해를 단호히 가로막고 있다.


러시아의 미래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의 품 속으로 더 깊이 떠내려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경을 무릅쓰고 유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서방에 대한 광범위한 양보나 중국에 대한 지속적인 예속을 피하고, 유라시아를 지배하며, 권위주의와 약탈에 안락한 세계질서를 세우면서 경제적 역동성을 되찾아 강대국으로 버티는 것은—러시아가 이룰 수 있는 능력 밖의 일이 될 것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을까?

러시아의 기본적인 대전략은 간단해 보인다. 군대, 무법자적 역량, 비밀경찰에 엄청나게 과잉투자하고 서방을 전복시키려 노력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전략적 입지가 아무리 절박해지더라도—러시아의 입지는 자주 그러하다—서방이 약화되기만 하면 러시아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서방의 분열 너머로 일부 러시아인들은 조용히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는 환상을 품는다. 서양과 동양이 서로를 때려눕히고 러시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상대적인 입지를 크게 개선할 것이다. 결론은 자명해 보인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일치단결을 유지해야 하고, 중국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억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기존의 선택지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다. 하나는 타협이다. 러시아 통치자들이 가끔 필요로 하지만 좀처럼 추구하지 않으며, 러시아가 이를 추구할 때도 서방이 유지하기 어렵게 만드는 선택지다. 다른 하나는 대결이다. 러시아 정권이 요구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그리고 서방에게는 기회비용이 너무 큰 선택지다. 더 나은 대안으로 가는 길은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이 통념을 따라야 한다는 건 아니다.


미국의 정책에 대한 비판에서 러시아의 '정당한' 이익을 인정하라는 요구가 자주 들린다. 하지만 강압적 세력권에 관용을 베풂으로써 사들이는 강대국 간 안정은 언제나 덧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그로 인해 희생된 작은 나라들의 고통과 미국의 가치를 훼손한 데 따르는 불명예는 항상 남았다. 닉슨과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의 책략 이후, 중국과 러시아는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음을 생각해 보라. 군비통제는 사실상 죽었다. '데탕트'는 많은 사람들이 그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도 전에 사라졌지만 인도차이나,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 등에 남긴 피해는 지금도 뼈아프게 남아 있다. 키신저는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가 국제문제에서 자신처럼 영리한 균형잡기를 하지 못한 다른 이들의 탓이라고 주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손재주에 의존하는 어떤 균형도 실은 균형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포용을 지지하는 이들과 과거에 포용을 실행했던 이들은 중국에 대한 수십 년간의 미국의 포용 정책이 보기보다 영리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경제성장이 중국을 개방적 정치체제로 이끌 것이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또한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실패의 위험에 대비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사후적 이미지 세탁은 글로벌 공급망의 현저한 불안정(코로나19 팬데믹이 보여준 것처럼)과 미국 방위산업 기반의 한심한 상태(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것처럼)에 의해 반박된다. 러시아의 경우, 미국은 동유럽과 발트 3국 거의 전부를 나토에 받아들이는 식으로 대비책을 세웠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냉철한 평가 때문이었다기 보다는, 2차대전 후 얄타회담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대한 약속을 미국이 이행할 힘이 없었던 치욕5과 1989년 공산권 붕괴 이후 잠재적 신규 가입국들의 가입 요청 때문이었다. 나토 확장 비판론자들은 그것이 러시아의 보복주의를 야기했다고 비난하는데 마치 억압적인 권위주의 정권이 이웃 국가를 침공하는 게 러시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고 나토가 확장되지 않고 더 많은 나라가 취약한 상태로 남아있었더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처럼 말한다.


평화는 능숙한 외교와 결합된 힘을 통해서 이룩된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공조된 압박을 유지함과 동시에 러시아 정부에게 후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이는 차세대 군사 도구를 통해 레버리지를 만드는 한편 미국의 동맹국 및 파트너와 긴밀히 협력하고 영향력 있는 비정부 인사들 간의 이른바 '트랙2'(또는 '2.0 트랙') 교류의 도움을 받아 협상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미국은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상황 판단을 바꿀 가능성에 대비하고 그것을 부지런히 촉진해야 한다. 러시아가 프랑스처럼 되지 않을 경우, 극단적 반서구주의의 장기적인 대가가 바람직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러시아 민족주의자의 부상이 러시아가 국제질서에서 안정적 위치를 찾는 가장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가 된다. 단기적으로 그 방향으로 가는 한 걸음은 키이우에 유리한 조건으로 우크라이나에서의 싸움을 끝내는 것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합병에 대한 법적 인정 없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유럽연합, 또는 다른 국제기구 가입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휴전하는 것이다. 러시아 민족주의자 장교나 관리가 그런 조건을 받아들일 기회를 얻기 전에 푸틴이 자신의 전쟁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치러야 할 높은 비용은 지속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소모전에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점령지에서 발생하는 반란으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후퇴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만들기 위해 미국과 그 파트너 국가들에겐 친러 정책이 필요하다. 러시아인들을 푸틴의 품 속으로 더 밀어넣고 서방이 러시아를 멸망시키려한다는 그의 주장을 확인시켜주는 대신, 서방 정책결정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꼭 제퍼슨식 민주주의의 이상을 받아들일 생각은 없더라도 푸틴과 러시아를 동일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려는 러시아인들을 비자, 일자리, 투자 기회, 문화 교류 등으로 환영하고 보상해야 한다. 오직 친서방 러시아 정부만을 기다리고 보상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서방은 또한 러시아가 세계적 규모로 훨씬 더 큰 약탈을 자행할 가능성에 대비하면서도 러시아가 그렇게 하도록 몰아가서는 안 된다. 일부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혹은 차기 대통령)에게 뒤집은 닉슨-키신저 책략, 다시 말해 중국에 맞서 러시아에 외교적으로 손을 내밀 것을 촉구해왔다. 물론 중국과 소련은 닉슨-키신저 책략 훨씬 전부터 이미 분열된 상태였다. 반면 오늘날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떼어내는 것은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다. 설사 성공한다 해도 그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구소련 영토에 강압적으로 세력권을 재창출하는 것을 애써 눈감아줘야 할 것이다. 한편 중러 관계의 밀착은 양국 모두의 국제적 신인도를 떨어뜨렸고, 이는 미국의 아시아 및 유럽 동맹국들을 미국과 훨씬 더 가깝게 묶어주었다. 미국은 뒤집은 닉슨-키신저 책략이 아닌, 오히려 중국에게 러시아를 통제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업데이트된 닉슨-키신저 책략의 순간에 처할 수 있다.

해외의 기회, 국내의 기회

미국의 정책은 중국의 정책과 유사해졌는데 중국이 벽에 부딪힌 바로 그 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은 상호주의 없이 적들에게도 사업의 기회를 열어주었다. 지난 70년간 미국 대전략의 최대 역설은 그것이 작동해 놀라울 정도의 번영을 공유하는 통합된 세계를 조성했다는 점과 그럼에도 이제 이를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른바 산업정책과 보호주의가 라이벌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 파트너, 친구, 잠재적 친구에게도 나라를 부분적으로 닫아버리고 있다.


물론 기술 수출통제는 중국에 대해서든 러시아에 대해서든 정책 옵션의 하나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긍정적 의미에서 무엇을 제공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전략적 무역정책—미국이 마련했다가 포기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이니셔티브에 반영된—은 현재의 미국 국내 정치 분위기에서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영리한 행정부라면 이런 접근법을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한 야심찬 노력으로 포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질서는 정당성, 본받을 만한 모범, 노력하는 이들에게 열린 체제를 필요로 한다. 미국은 한때 동맹국과 파트너 뿐 아니라 개방된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가 약속하고 대체로 성취한 번영—세계사적 수준에서 불평등을 줄이고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 명을 빈곤에서 구제하며 탄탄한 중산층을 키워낸—과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에게 경제적 기회와 동의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은 그 역할을 양도했고, 중국이 경제적 기회(대부분 국가들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서)와 제조업 실력(기술 노하우, 물류 숙련도, 숙련공의 중심지로서)의 동의어가 되도록 허용했다. 국제사회에서 잃어버린 위치를 되찾고 국내적으로 계층이동성의 엔진을 재가동하기 위해, 수학 교사가 겨우 150만 명밖에 없고 동아시아와 남아시아로부터 수학 분야 지식을 수입해야 하는 나라인 미국은 10년 내에 100만 명의 새로운 수학 교사를 양성하는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과학, 공학, 컴퓨터, 경제학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언어인 수학의 능력이 부족해 전공을 공부할 수 없는 학생들을 대학에 입학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부와 자선가들은 성과 지표를 충족하거나 능가하는 지역 전문대학community college에 상당한 고등교육 자금을 재배정해야 한다. 주정부는 기존 고등학교에 직업학교와 훈련을 재도입하거나 고용주와 파트너십을 맺어 새로운 독립 직업학교를 여는 방식으로 야심찬 직업학교 및 훈련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 미국은 인적자본 뿐만 아니라 주택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환경 규제를 대폭 줄이고 건설업자 보조금을 없애 시장이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젊은이들을 위한—세대간 요소를 넣을 수도 있겠다—국민복무제6national service를 도입해야 하는데 광범위한 시민의식과 모두가 함께한다는 감각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냉전 시기 과학 및 국가 프로젝트에 동원됐던 수준의 엄청난 규모로 사람과 주택에 투자하고 시민정신을 재발견하는 것만으로는 국내에서 기회 균등을 보장하기에 충분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정책은 미국의 국제적 리더십과 함께 미국의 국력을 구축했던, 믿을 수 있는 공식으로 돌아가는 필수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미국은 다시 한번 대외적 대내적으로 모두 기회와 동의어가 될 수 있고, 더 많은 친구를 사귀며, 미래에 어떤 러시아가 출현하든 그에 맞설 능력을 계속 기를 수 있다. 미국의 모범과 경제적 실천은 과거에 러시아의 궤적을 바꿨다. 환상을 덜 갖는다면 이번에도 다시 그렇게 할 수 있다.



스티븐 코트킨은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의 클라인하인츠 시니어 펠로우다. 프린스턴대학교에서 33년간 역사학을 가르쳤다. 스탈린 전기 삼부작의 마지막 편 'Stalin: Totalitarian Superpower, 1941-1990s'이 출간 예정이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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