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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의 '소년 위기', 1900년대의 '소년 문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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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Derek Brahney/The New York Times

2025.08.22 16:09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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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 개념을 유행시키고 '나 홀로 볼링'이라는 책으로 미국의 공동체 붕괴를 경고한 것으로 유명한 하버드대의 로버트 퍼트넘이 새로운 논점을 들고 왔습니다. 그는 최근 '소년과 남성에 대하여'라는 책을 쓴 리처드 리브스와 함께 미국 사회에 '소년 위기'가 심각하다는 내용의 상당히 긴 에세이를 8월 15일 뉴욕타임스에 실었습니다. 남자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한국에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우리 아들은 방에 처박혀 식구들과 대화도 안 하고 아무것도 안 해요"라는 이야기가 사방에서 들리고 있는데, 미국도 상황이 비슷한가 봅니다. 문제는 이러한 '소년 위기'가 '아무것도 안 한다'에만 그치면 그래도 덜 위험하지만, 사회적 범죄로 이어지거나 전체주의나 군국주의 열병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것입니다. 이 에세이에서도 지적하지만 소년이나 젊은 남성들이 현재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립되어 "매우" 외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외로움은 영혼을 파괴합니다. 옛 철인들은 '오직 인간 위에 있는 신, 그리고 인간 아래 있는 짐승만이 혼자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양성평등이 세상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예상 못한 그림자를 드리운 것 역시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보이스카웃 같은 학과외의 활동입니다. 미국은 양성평등을 이유로 보이스카웃을 소녀들까지 단원으로 받아들이면서 '코에드'(coed: 원래는 '남녀공학'이라는 뜻)인 '스카우팅 아메리카'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보이스카웃의 자매단체인 걸스카웃은 소녀들만 받는 단체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소녀들이 소년들보다 더 많이 스카웃 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YMCA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단체의 M은 남성(Men)인데 이를 사람(Men)으로 재해석하면서 YMCA도 남녀 모두 받아들이는 '코에드' 단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단체의 자매단체인 YWCA(W는 Women의 첫글자)는 지금도 여성 전용 단체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YMCA, YWCA 모두 합치면 이 기독청년 운동의 직원, 임원 대부분이 여성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청소년 단체가 양성평등을 명분으로 여성 중심으로 바뀌게 되면서 남자 청소년들에게 자신들만의 공간은 스포츠 클럽밖에 안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신체적 차이가 있으니 스포츠에서는 남녀가 함께 어울리기 어렵겠죠. 그런데, 여기도 문제가 있습니다. 이들에게 형(빅브라더)처럼 함께 어울리면서 스포츠를 가르쳐줄 성인 남성들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남자들만 있는 단체에서 불미스러운 폭력(성폭력도 포함됩니다) 스캔들이 종종 발생하자 이런 단체에 자발적으로 가입해 봉사하겠다는 선의(善意) 조차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성인 남성들이 기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본'을 강조하는 퍼트넘과 리브스는 성인 남성들이 용기를 내 어린 남자 아이들에게 멋진 남자가 어떤 모습인지 함께 어울리면서 롤모델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남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따를 선배들을 원하고, 또 성인 남자들은 뭔가 세상에 봉사를 하면서 삶의 이미를 찾고 싶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이 어린 남자와 성인 남자들이 함께 스포츠를 하고 캠핑을 하면서 다시 '사회적 자본'을 쌓으며 공동체를 회복해나간다면 현재의 '소년 위기'는 사라질 것이며, 범죄와 폭력적 정치의 위험성도 함께 사라질 것이라는 것이 필자들의 주장입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마을 전체의 일이다'라는 표현이 와닿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에세이가 실린 곳은 미국 진보파의 매체인 뉴욕타임스이고, 리브스의 새 책 '소년과 남성에 대하여'를 출간한 곳은 미국 진보파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라는 점입니다. 미국 진보주의자들이 대선 참패에 대해 '복기'를 하고 있는 듯하며, 이 에세이도 그런 복기 내지 반성의 일환으로 보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은 이른바 "소년 문제"를 안고 있었다. 거리를 배회하며 말썽을 부리는 소년들, 학교를 무단결석하는 소년들, 범죄에 휘말리는 소년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문제는 기술 변화, 이민, 그리고 심화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충격과 더불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정책결정자들이 대응에 나섰다. 이를테면 보편적 공립교육이 그 한 예였다. 그러나 진정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시민사회의 대응이었다. 불과 1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주요 청소년 지원 단체들이 속속 창립되었다. 빅브라더스Big Brothers(1904), 연합소년클럽Federated Boys' Clubs(1906), 보이스카우트(1910), 걸스카우트(1912), 4-H(1912) 등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소년들과 남성들은 어려움 속에 있다. 다시금 기술 변화, 이민, 그리고 커져가는 불평등으로 뒤흔들리는 미국에서 그렇다. 2010년 이래로 젊은 남성들의 자살률은 30%나 증가했으며, 이제는 중년 남성보다도 높다. 대학 학위 취득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1%로 떨어졌는데, 이는 1970년 여성의 비율보다 낮은 수치이다. 20~24세 남성 열 명 중 한 명은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학교에도 다니지 않고,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1990년 대비 두 배에 달하는 비율이다. 이러한 위기는 미국의 진보시대1 수준의 대응을 요구한다. 정부 정책 차원을 넘어, 시민사회의 제도적 기여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남성의 곤경을 충분히 인식하는 데 더디다. 반(反) 여성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 한 이유다. 하지만 이미 경종은 울리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개빈 뉴섬 주지사(민주당)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것은 주 정부가 "캘리포니아에서 점점 커져가는 남성과 소년들의 사회적 연결과 기회의 위기"라고 규정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계획이다. 뉴섬 주지사는 이 명령이 "모든 젊은이에게 자신이 중요한 존재이며, 삶의 목적과 존엄, 일, 그리고 진정한 사회적 연결의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도가 미시간의 그레첸 휘트머 주지사(민주당), 유타의 스펜서 콕스 주지사(공화당), 메릴랜드의 웨스 무어 주지사(민주당)에 의해서도 발표되었다. (이 글의 공동 저자인 리처드 V 리브스는 이러한 계획에 다수의 주지사들과 협력하고 있다.)


이른바 남성의 위기는 일자리와 학위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계의 위기이기도 하다. 남성과 소년들이 점점 더 시민적, 가족적, 사회적 삶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길을 잃은 것은 부분적으로 외로움 때문이다. 15세에서 34세 사이의 소년과 남성 25%는 갤럽조사에서 전날 하루 동안 "매우" 외로움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젊은 남성 7명 중 1명은 가까운 친구가 전혀 없다고 답했는데, 이는 1990년의 3%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다. 30세 미만 남성의 3분의 2는 "남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마지막 통계가 드러내는 절망감을 생각해보라.


너무나 많은 소년과 젊은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사회적 자본이 부족하다. 이는 그들 자신에게도, 나아가 사회 전체에도 위험하다. 이렇게 외롭고 고립된 젊은 남성들은 주로 온라인상의 극단적인 목소리에 쉽게 휩쓸릴 수 있다. 이들은 정당한 고통을 위험한 분노로 바꿔놓는다. 하지만 증상과 진짜 원인인 '단절'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단순히 소셜미디어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패턴이 아니다. 한나 아렌트는 1930년대 독일 나치의 충원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적, 정치적 구조가 붕괴될 때 외롭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젊은 남성들이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와 폭력의 유혹에 얼마나 취약해지는지 간파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들의 탓만은 아니다. 오랫동안 주류 사회는 소년과 남성이 직면한 실제 어려움을 외면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훈계하는 손가락이 아니라, 도와주는 손길이다.


물론 소년과 남성을 위하는 것이 소녀와 여성을 등한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성별 임금 격차 해소, (특히 빅테크 분야) 여성 리더십 확대, 산부인과 건강의료 서비스 접근성 확대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이 문제를 주도하는 모든 정치인들이 강조하듯, 양성평등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우리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소녀와 소년 모두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것이다.


무어 주지사는 2025년 주정(州政) 연설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남성과 소년들을 돕는 우리의 사명은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우리의 가치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아들과 딸을 둔 아버지로서, 나는 두 아이가 신이 주신, 신을 기리는 모든 기회를 마음껏 누리며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정부 정책의 큰 역할이 있다. 더 많은 남성 교사, 더 많은 견습 기회, 남성 친화적 정신건강 서비스, 아버지를 위한 더 긴 유급휴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동시에 시민사회의 대응을 요구하는 공동체 위기이기도 하다.


20세기 초반, "소년 문제"는 선정적인 언론 보도와 문화적 불안을 낳았다. 시민 지도자와 정치 지도자들은 거리를 배회하며 소란을 일으키는, 교양 없고 무법한 소년 무리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남북전쟁 이후 수십 년간 미국은 급격한 기술 혁신—확장된 철도와 전기망, 전화, 자동차 등—에 힘입어 산업화가 폭발적으로 진행됐다. 마크 트웨인이 이를 "도금시대"라 풍자했듯, 상류층은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은 썩어가는 시대였다. 사회문제도 역시 빠르게 불거졌다. 이는 1890년 제이콥 리스가 '다른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에서 뉴욕 로어이스트사이드 빈민가 이민자들의 참혹한 생활상을 사진으로 고발하면서 극명히 드러났다.


산업화는 급격한 도시화, 급격한 이민 증가, 불평등과 빈곤 심화를 낳았다. 1870년에서 1920년 사이 반세기 동안 도시 거주 미국인의 비율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1850년 외국 태생 인구는 10%가 채 되지 않았지만, 이후 50년간의 이민 물결로 그 수치는 50% 가까이 증가했다. 주요 도시에서는 이민자와 그 자녀가 인구의 4분의 3을 차지했다. 최상위 1%가 차지하는 국민소득의 비중은 1870년의 10% 미만에서 1913년에는 20%에 근접할 정도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국 역사상 이처럼 경제와 사회가 폭발적이고 고통스럽게 변모한 시기는 없었다.


특히 빈민층, 이민자 계층, 노동자 계층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가정생활을 파괴했다. 부모들은 과로로 지쳐 있거나 무력했고, 심지어는 아예 집에 없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낯선 환경 속에서 이끌 시간도, 언어적 능력도 없었다. 그들의 권위는 무너졌고, 일부는 아예 자녀를 감당할 수조차 없었다. 이와 거의 맞먹는 수준으로, 빈곤한 이민자 공동체에서 지역사회의 유대 역시 무너졌다. 시카고의 선구적 사회학자 연구팀은 이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해체된" 공간, 즉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낮은 사회적 자본' 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 모든 이유로 인해 노동계급 소년들은 지역사회로부터 고립되었으나, 자기들끼리는 뭉쳤다. 1930년의 한 조사에 따르면 도시에 사는 소년의 14%가 매일 저녁을 집 밖에서 보냈는데, 농촌 소년의 5%와 비교해 현저히 높은 수치였다. 시카고의 일부 이민자 지역에서는 소년의 30%가 매일 밤 거리를 배회했다.


그 필연적 결과는 갱단, 비행 청소년, 폭력, 그리고 사회적 소란이었다. 이 어린 소년들이—사실상 여전히 아동이었던 이들이—흡수한 문화는 또래들의 문화였다. 또래 문화는 남성적 강인함을 독려했다. "계집애 같다"(sissy)는 가장 센 모욕이었다. 또래 규범은 신체적 힘과 공격성, 위험을 감수하고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을 부추겼다. 이러한 비행 청소년 문화는 사회학자 엘리야 앤더슨이 훗날 "거리의 규범"이라고 부른 바 있는 가치 체계와 일치했다.


새로운 문제가 모든 사회 계층의 젊은 남성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계급 아이들에게 훨씬 더 심각했고, 진보시대 개혁가들의 관심도 바로 이들에게 집중되었다. 당시 혁신적 대책 가운데 일부—이를테면 고아원과 같은 100년 된 시설—는 오늘날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특수교육과 같은 다른 대책들은 놀라울 만큼 시의적절하다.


정부차원의 개혁은 특히 교육 분야에서 두드러졌다. 개혁가들의 목표는 단순히 소년들을 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범죄를 줄이고 모범적 시민성을 함양하는 데 있었다. (일부 개혁가들은 민족적, 종교적 편견에 의해 동기부여되었으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의무교육과 학업 기간 연장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많은 소년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무단결석자가 늘어났고, 동시에 결석 단속인력의 수도 늘어났다.


'소년 문제' 연구의 권위자인 줄리아 그랜트는 "위험 계층의 소년들을 쉽게 학교에 몰아놓을 수 없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개혁가들은 소년들이 소년다운 본성을 발현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고 썼다.


정부 주도 개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시민사회의 대응은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앞서 언급한 빅브라더스에서 보이스카우트에 이르기까지 청소년 단체의 붐이 일어난 것이다. 이미 반세기 앞서 출범했던 YMCA(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기독교청년회)는 이 시기에 급속히 확장되었으며, 1909년에는 "미국의 모든 남성과 소년에게 수영을 가르치자"는 전국적 캠페인을 시작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단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 전역에서 수만 명의 어른들이 자신들의 도시와 마을에서 청소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보이스카우트였다. 영국에서 창립된 이 단체는 1910년 미국에 도입된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꾸준히 회원 수가 증가했다. 개혁가들이 아이들을 유인해 올바른 품행을 가르치려는 공간을 찾던 그때, 보이스카우트는 즐거움(하이킹과 야외 활동)과 도덕교육(신뢰, 충성, 도움, 우정, 예의, 친절 등을 맹세하는 끊임없는 스카우트 선서)을 절묘하게 결합한 장이었다. 보이스카우트를 창립한 로버트 베이든파월은 당시의 산업적 언어를 빌려 이를 "인격 공장"이라고 표현했다.


체육과 레크리에이션 시설도 인기가 있었다. 조직화된 청소년 팀 스포츠가 확산되었고, 새 체육관, 수영장, 그리고 다양한 방과후 활동이 등장했다. 1891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필드에서, 종교적 영감을 받은 사회개혁가 제임스 네이스미스는 연중 실내에서 최소한의 장비로, 부상 위험이 적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을 찾다가 농구를 발명했다. 5년 뒤 보스턴에서는 사회운동가들이 독일의 사례를 차용해 최초의 공공 놀이터를 마련했고, 1906년에는 미국 놀이터협회가 창립되었다.


미국 캠핑협회의 전신은 1910년에 세워졌으며, 전국의 여름 캠프는 1900년 100곳에서 1918년 1000곳으로 열 배 증가했다. 19세기 말 교회와 다른 종교 기관들은 "근육질의 기독교"를 내세우며 미국 청년의 영혼을 지키려는 운동을 주도했다. 이들은 영국에서 비롯된 주일학교 운동, 구세군, YMCA 같은 혁신적 모델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민사회 혁신에 가장 중요한 것은 멘토, 특히 남성 멘토였다. 스카우트 지도자, 코치, 목사, 빅브라더스 같은 이들이다. 오늘날 결핍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멘토링(공식적, 비공식적)의 수준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또래에 비해 낮은 상황인데, 현재의 사회과학 연구는 멘토링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멘토링은 학교 출석률과 학업 성취를 높이고 약물 남용을 줄인다.


한 세기 전 개혁가들은 "소년 문제"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 성인 남성들이 소년을 이끌어 사회적으로 성숙한 남성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시민사회적 제도와 공간을 구축하는 데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다시금 배우고 실천해야 할 교훈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최근 "소년과 남성이 지도, 의례, 규율, 격려를 받을 수 있는 더 많은 사회적 제도를 갖춰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지역 사회의 성인 남성들을 중요한 자산으로 보면서, "소년들에게 단 하나의 특정 롤모델이 아니라 여러 롤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어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한 아이를 기르는 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 중 일부는 반드시 남자 어른이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 청소년들이 성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배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나 2025년의 현실에서 이러한 제도들은 두 가지 주요 이유로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첫째, 소년과 남성을 돕겠다는 분명한 목표로 삼는 기관 자체가 줄었다. 지난 세기의 "소년 위기" 시기에 설립된 단체들 대부분은 합병 등의 과정을 거치며 남녀공용 형태로 전환되었고, 현재는 소년보다 소녀를 더 많이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예외는 1990년에 이름을 바꾼 '보이즈 앤 걸즈 클럽'인데 이 클럽은 여전히 소년의 비율이 55%로, 소녀보다 약간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른 경우, 과거에 남성 전용이던 기관들이 남녀공용으로 바뀐 반면, 그 자매 기관들은 여성 전용 조직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보이스카우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소녀의 입단을 허용하는 논란 끝에 '스카우팅 아메리카'로 재편되었다. 현재 약 100만 명의 '스카우팅 아메리카' 단원 중 약 20%가 소녀다. 그러나 여전히 소녀만 단원으로 받는 걸스카우트에는 100만 명이 넘는 단원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이 두 스카우팅 단체 전체에서 소녀가 소년보다 50% 더 많아졌다.


YMCA(M은 Men의 머릿글자)는 1978년에 성차별을 금지하고,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아동, 청소년, 지역사회의 복지를 지원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오늘날 YMCA 회원의 다수는 여성이며, 직원의 3분의2 이상—주목할 점은 6명의 최고 임원 모두—가 여성이다. 자원봉사자도 대부분 여성이다. 모든 지표에서 YMCA는 이제 여성 중심 단체가 되었다. (한편, YWCA는 여전히 여성 역량 강화를 분명한 목표로 하는 여성 전용 단체로 남아 있다.)


소년과 남성을 위한 단체들의 점진적 소멸은 포용을 향한 바람직한 흐름과, 단일 성별 환경이 구시대적이거나 심지어 해롭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그러나 남성 중심 기관이 사라진 사회가 소년들이 훌륭한 남성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이상적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이브한 발상이다. 실제로 뉴욕의 이글아카데미와 같은 공립 남학교에 다니는 소년들이 긍정적 성과를 거둔다는 증거도 있다.


둘째, 남성 자원봉사자가 부족해 소년과 젊은 남성을 돕기가 어려워졌다. 4-H의 젊은 자원봉사자 중 남성은 20%에 불과하다. 또 '빅브라더스 빅시스터스'를 통해 멘토로 등록하는 여성의 수는 남성보다 거의 두 배에 이른다. 그 결과 멘토를 못 찾는 10대 소년의 수는 소녀보다 거의 두 배에 달하며, 이들은 경우에 따라 1년 가까이 더 오랫동안 대기해야 한다. 멘토를 갖는 것이 대학 진학률을 10%나 높이는 효과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현실은 소년과 소녀 간 기회의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시민사회 기관들은 이제 대응을 시작하고 있다. '빅브라더스 빅시스터스'는 미식축구리그(NFL)과 협력하여 "빅드래프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남성들의 자원봉사를 장려하는 캠페인이다. 올해는 유색인종 남성 멘토 등록이 7% 증가했다. 예비 남성 멘토들은 포커스그룹 조사에서 멘토링 외에 다른 남성들과 교류할 기회도 원한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빅브라더스 빅시스터스'는 보다 집단 기반의 멘토링 방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역사적으로 스포츠는 소년들에게 규율, 멘토십, 동료애를 가르치는 장이었다. 특히 다른 방과후 활동들이 점점 소녀들에 맞추는 상황에서 스포츠만은 단일 성별 환경 속에서 이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추정에 따르면, 고등학교 연령대 소년들의 스포츠 참여 비율은 2012년 50%에서 2023년 41%로 감소했다. 저소득층 소년의 경우 이 비율은 25%로 더 낮아졌다. 비용 장벽—예컨대 참가비를 내야 하는 원정 스포츠 팀 등의 증가—이 한 요인이지만, 또 다른 원인은 남성 코치의 상대적 부족이다.


남성 자원봉사의 걸림돌 중 하나는 잠재적 아동 학대자로 보일 수 있다는 두려움이다. 이때문에 일부 부모들은 남성들로만 구성된 환경을 꺼리게 되었다. 가톨릭교회와 보이스카우트를 뒤흔든 아동 학대 스캔들은 부모들로 하여금 남성 중심 기관에서 자녀의 안전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보이스카우트를 상대로 한 배상 합의금은 지금까지 7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미국의 많은 주 연간 지출보다도 큰 액수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기관들에서는 아동 안전이 최우선이 되고 있으며, 아동 학대에 대한 공포는 마치 부모의 감독 없이 노는 아이들이 유괴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유사하다. 그런 두려움은 물론 충분히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지나칠 경우 아동과 청년의 활동을 제한해 해로울 수 있다.




오늘날 소년과 남성이 직면한 문제는 한 세기 전과 매우 달라 보일 수 있다. 문제가 뒷골목보다 알고리즘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결과는 유사하다. 학교는 여전히 소년들의 흥미를 끄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 학위가 없는 남성들의 임금은 정체 상태다. 저소득층 지역사회에서는 결혼율이 붕괴했고, 일자리는 보건의료 같은 여성친화적인 부문에서만 늘고 있다. 소년과 젊은 남성들을 지탱해 줄 사회적 발판을 제공해야 할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우리에겐 길 잃은 소년들이 너무 많고, 이들 다수는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동시에, 20대와 30대 남성들은 여성 또래보다 사회적 고립 위험이 더 높아졌다. 많은 남성들은 삶의 목적과 사회에 기여할 기회를 갈망하고 있다. 더 많은 성인 남성들이 멘토, 코치, 튜터로 활동하게 하는 것은 소년들의 삶을 개선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삶에도 더 많은 구조와 의미를 부여하는 길이다.


한 세기 전, 성인 남성들은 소년들을 위한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 나섰고, 사회의 환호를 받았다. 오늘날도 그런 시도가 마찬가지로 긴요하다. 우리에겐 지도를 원하는 소년들이 있다. 우리에겐 삶의 목적을 찾는 성인 남성들이 있다. 우리에겐 남성 자원봉사자를 간절히 찾고 있는 시민사회 제도들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100년 전 "소년 문제" 개혁가들이 보여주었던 것과 같은 시민적 에너지의 분출, 제도적 혁신, 그리고 위험을 무릅쓴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실험 정신을 다시금 불러와야 한다.


오늘날의 소년 위기는 성인 남성들에게 다시 호소하고 있다. 성인 남성들이 그 부름에 응답할 때다.



로버트 D 퍼트넘은 하버드대학교 공공정책학 교수로, '나 홀로 볼링'을 비롯해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바 있다.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으로 유명한 정치학자다. 리처드 V 리브스는 American Institute for Boys and Men의 창립 회장이며, '소년과 남성에 대하여: 왜 현대 남성은 발버둥치는가, 이 문제는 왜 중요하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Of Boys and Men: Why the Modern Male Is Struggling, Why It Matters, and What to Do About It'의 저자이다.



1825년 창간된 미국의 진보 성향 일간지로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퓰리처상을 수상(130회 이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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