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럼은 지난달 공산당 대회가 개막했을 때 이미 베트남의 최고 지도자였다. 그러나 1월 23일 그가 더 많은 권력을 거머쥔 채 대회가 막을 내렸을 때, 그는 더 빨리 미소를 짓고, 하노이의 붉은 장식이 드리워진 컨벤션 홀에서 동지들과 악수를 나누며, 더 많은 일을 서두르는 듯 보였다.
새로운 정치국 명단이 그가 당 서기장과 국가주석을 겸임하게 될 것임을 확인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이는 베트남의 권력 분점 관행을 깨는 조치였다—그는 여러 관리들 가운데 가장 먼저 회견장에 들어섰고, 가장 먼저 자리에 앉았다. 중앙에 놓인 그의 짙은 목재 의자는 다른 의자들보다 훨씬 더 컸다.
"이번 대회는 새로운 비전을 요구하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소집됐다"고 그는 대부분이 국영 언론 소속인 일군의 기자들에게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68세의 또럼은1 이제 수십 년 이래 가장 강력한 베트남 지도자가 됐다. 그는 아시아의 중대한 전환점에서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 미국은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고 있고, 중국은 수출과 군사 장비 분야의 지배력을 통해 국가적 침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그는 이 일당 체제가 이전에 끌어올린 그 어떤 지도자와도 크게 다르다. 그는 전직 공안 수장이면서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고, 친(親)기업 개혁가이며, 네 자녀를 둔 이혼한 아버지이고, 고급 와인과 케니 지(Kenny G) 음악을 즐기는 글로벌리스트다. 그의 부상 방식 또한 이례적이었다. 집권당 최고위층과 여러 계파 간의 타협을 통해서가 아니라, 2045년까지 베트남을 부유한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며,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운명을 그에게 의존하는 충성파 블록을 구축함으로써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그는 다른 경쟁자들을 밀어낸 반부패 드라이브 기간 동안 공안부를 이끈 뒤, 2024년 당 서기장에 올랐다. 이어 정부 개편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했는데, 63개 성(省)을 34개로 통합하고, 성 지도자는 자신이 근무하는 지역 출신일 수 없다는 당 규정을 엄격히 적용해 측근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그는 정치국 결의안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제시했다. 기술 발전을 우선시하는 결의 57호, 민간 기업을 경제의 추진력으로 삼겠다는 68호, 베트남의 법은 기업을 통제하기보다 지원해야 한다고 선언한 66호, 그리고 외교 정책을 보다 적극적인 '국제 통합'으로 이끌겠다는 59호가 그것이다.

이들 조치는 실제로 이행될 경우 1980년대 베트남의 경제 개방 이후 가장 중대한 개혁으로 널리 평가된다. 그러나 또럼을 비판하는 이들은 그의 통치 방식이 전제적 연고주의에 더 가깝다고 우려한다. 그가 비판자들을 신속히 구금하고 있으며, 생산성이 낮거나 팔리지도 않는 주택을 과잉 건설해 크게 빚을 떠안고 있는 재벌들을 정치적 연줄때문에 우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의 강력한 보호무역주의와 중국의 수출 보조금 속에 자유무역의 창이 닫혀가면서, 또럼에게 주어진 시간은 줄어들고 있다. 그는 기한이 명시된 실행 계획이 곧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오리건대학교 미·베트남 연구센터 소장인 뚜엉부 교수는 "그는 희망과 기대감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권력을 움켜쥐려 한다"고 말했다.
여러모로 평범치 않은 인물
또럼은 누구인가? 그는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얻지 못할 경우 무엇을 할 것인가?
1940년대 호치민의 독립 운동 이후, 베트남 지도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각본 없는 언론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이 기사는 수십 명의 관료, 기업 경영자, 외교관들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작성됐으며, 또럼의 저술과 연설문에 대한 검토도 포함하고 있다. 또럼과 함께 일해본 많은 인사들은 반대 의견 단속이 주요 경력이었던 최고 지도자에 대해 좀 더 자유롭게 말하기 위해 익명을 요청했다. 또럼 서기장은 뉴욕타임스의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또럼은 교조적이지도, 카리스마가 넘치지도 않은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소규모 모임에서는 매력적인 사람이며, 자신의 진짜 의도를 숨긴 채 큰 위험에 도전할 수도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는 1957년 하노이 남동쪽 흥옌성의 유서 깊은 강변 마을 쑤언까우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공산주의 혁명가였다. 가족은 대가족이었고 가난했으며, 대부분의 이웃들과 마찬가지로 초가지붕을 얹은 집에서 살았다.
또럼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이웃들은 그가 벽돌로 얼기설기 포장된 수백 년 된 마을 길을 따라 논으로 향하곤 했다고 전했다. 그는 게와 달팽이, 물고기뿐 아니라 이 지역의 별미인 쥐를 잡아먹기 위해 들로 나가곤 했다.
그는 사교적이고 학구적인 아이로 기억되지만,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또꾸옌 대령은 전쟁 기간 대부분을 남베트남에서 공산 반군의 보안 장교로 복무했으며, 이후 가족의 고향 성(省)에서 경찰 수장을 지냈다. 아버지가 아주 고위급 관리는 아니었지만, 1974년 또럼이 공안 엘리트의 주요 양성 기관인 정부 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는 계승유지해야 할 유산을 안고 있었다.
"또럼은 '왕자들' 중 한 명이었다"고 뚜엉부 교수는 말했다. "그래서 훨씬 더 야심이 컸다."
익명을 요구한 국가 공안 관계자들은 그의 출세가 결코 필연적이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동안 그는 두각을 나타내는 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의 현장 업무 능력은 유능한 동료들에 비해 떨어졌다. 대신 그는 인맥 구축으로 이를 보완했는데, 특히 상관들과의 관계에 공을 들였다. 이 때문에 그는 자기 집보다 상사의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는 농담까지 나왔다.
그는 정치 교육 과정을 통해서도 인맥을 넓혔다. 베트남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베트남이 급속한 성장과 인터넷의 확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공안부가 거의 끊임없이 조직 개편을 거듭한 점 역시 그의 경력에 도움이 됐다.
그의 세련된 감각과 풍요로운 삶에 대한 취향은, 그를 아는 서방 인사들이 흔히 가장 먼저 언급하는 부분으로, 업무와 결혼을 통해 형성됐다.
1990년대 후반 그는 고향에서 알고 지내던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저명한 예술가 집안 출신의 텔레비전 프로듀서이자 화가인 응오 프엉 리와 재혼했다.
2008년 또럼은 국가 공안의 핵심 부서인 총국 I, 암호명 A11의 부국장 11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의 상관은 그보다 겨우 한 살 많았지만, 현장 업무 능력 면에서는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당은 두 자녀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지만, 또럼에게는 네 명의 자녀가 있었다. 첫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과 딸을 두었고, 두 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 둘을 두었다.
이 시기 그는 종종 혼자 국립음악원 콘서트홀을 찾아 학생들의 연주를 감상했다. A11에서의 업무는 그를 외국 관리들과 자주 접촉하게 만들었고, 2010년 8월 그는 해외 순방에 동행하는 업무를 포함한 직책을 맡으며 공안부 부부장으로 승진하는 데 성공했다.
현직 및 전직 외교관들은 당시 또럼과의 대화가 폭넓은 주제를 아우르는 것이었다고 기억한다. 영어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잘 했고,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 압박을 받을 경우에도 단호한 "아니오"를 피하고 "음, 음" 하며 '아마도'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또한 그는 베트남이 세계에, 특히 미국에 더 개방돼야 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버드 국제개발연구소 베트남 프로그램의 전 소장이었던 톰 밸리는 2017년 켄 번스가 제작한 베트남전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검열 없이 베트남 내에서 상영될 수 있도록 또럼이 조치했다고 말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주베트남 미국 대사를 지낸 테드 오시어스는 하노이에서의 첫 만남에서 또럼이 무역 문제를 꺼냈을 때 놀랐다고 회고했다. 이후 여러 차례의 회동에서도 그는 무역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
현재 호찌민시에서 사업을 하고 강의도 하고 있는 오시어스는 "또럼은 단순한 경찰 관료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또럼은 2006년 베트남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남부 출신의 응우옌 떤 중 당시 총리의 측근이었다. 그는 응우옌 떤 중과 함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했다. TPP는 미국의 역내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설계된 자유무역협정이었지만,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거부됐다.
또럼은 또한 역사를 논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938년, 981년, 1288년에 중국과 몽골의 지배 시도에 맞섰던 베트남 장군들을 자주 언급했다. 이들은 적을 은밀히 유인한 뒤, 하노이 동쪽 박당강에 설치한 쇠촉을 단 말뚝으로 격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거대한 말뚝들은 만조 때 물속에 숨겨져 있었다. 물이 빠지자 중국의 대형 선박들은 말뚝에 찔려 침몰했다.
오시어스는 "또럼은 이 아이디어를 매우 잘 알고 있었다"며 "적의 무게를 역이용해 적들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타오르는 용광로'
2016년 당 개편 과정에서 또럼은 공안부장직에 올랐다. 응우옌 떤 중은 총리직 연임 시도가 실패하면서 사임했고, 엄격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인 응우옌 푸 쫑이 당 서기장으로 재선됐다. 또럼은 응우예 푸 쫑의 최고 공안 책임자가 됐다.
응우예 푸 쫑의 이른바 '타오르는 용광로' 반부패 운동은 두 사람을 더욱 밀착시켰다.
2017년,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또럼은 국영 기업에서 횡령 혐의를 받던 전직 관료 찐 쑤언 타인을 체포하기 위한 매우 위험한 작전을 지휘했다. 찐 쑤언 타인은 독일로 도피해 망명을 신청한 상태였다. 독일 검찰은 찐 쑤언 타인이 베를린에서 베트남 요원들에 의해 납치돼 슬로바키아를 거쳐 몰래 옮겨졌다고 밝혔다. 당시 또 럼은 슬로바키아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찐 쑤언 타인에게 종신형이 선고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또럼이 응우옌 푸 쫑의 신뢰를 얻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당 관계자들은 응우옌 푸 쫑이 또럼에게 '반부패의 검'을 쥐여줬다고 말했다. 그리고 역사 속 옛 장군들처럼, 그는 가장 주목받는 희생자들이 스스로의 과신 속에 그 검 위로 떨어지도록 했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호황 속에 휘말린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베트남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많은 관리들이 각종 사업 거래라는 '꿀단지'에 손을 넣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또럼 역시 2021년 한 차례 스캔들에 직면했다. 온라인 영상에는 그가 런던에서 다른 관리들과 함께 '솔트 베'로 알려진 유명 셰프로부터 고기를 입에 받아먹는 장면이 담겼다. 이 셰프는 24캐럿 식용 금박으로 감싼 스테이크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베트남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들에 따르면, 당시 국가주석이었던 응우옌 쑤언 푹은 럼에 대한 징계를 원했다. 그러나 또럼은 이에 맞섰다.
결국 응우옌 쑤언 푹은 2023년 부패 의혹에 휩싸인 끝에 사임을 강요당했다. 이후 또럼은 응우옌 쑤언 푹의 모든 당직을 박탈했다.
다른 사람들도 응우옌 쑤언 푹과 똑같은 굴욕을 겪게 되었다. 2024년 초, 당 서기장이었던 응우옌 푸 쫑이 임종을 앞둔 상황에서, 또럼의 반부패 운동은 베트남 최고 지도자 자리를 노리던 다른 모든 후보를 밀어냈다.
또럼은 그해 5월 국가주석이 됐다. 그리고 두 달 뒤 쫑이 사망하자, 그는 최고 자리인 당 서기장도 함께 맡았다. 당시에는 일시적인 겸직이었지만, 이제는 5년 임기로 확정됐다.
뉴욕과 트럼프
외교는 또럼이 초기에 우선순위로 삼은 분야 중 하나였다. 그는 2024년 8월 중국을 국빈방문했다. 이는 베트남에서 취임한 직후 관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첫 방문지였다. 이어 다음 달에는 유엔 총회 참석을 위해 뉴욕을 찾았다.
그의 일정에는 컬럼비아대 방문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연설을 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했는데, 이는 일당 체제 지도자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로우 기념 도서관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공학 및 경영 분야의 학자들과 기업인들을 비공개로 만났다. 이 자리는 컬럼비아대 역사학자 리엔항 응우옌과, 하버드에서 컬럼비아로 자리를 옮긴 베트남전 참전 용사이자 전후 화해 활동가인 톰 밸리가 주선했다.
현장에 있었던 여러 인사들은 분위기가 활기차고 긴박했다고 전했다. 그들은 또럼이 경제발전 아이디어들에 대해 보인 열정과 경제발전에 신속히 도달하기 위한 연구에의 관심에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3개월 뒤 그는 자신의 '4대 기둥' 가운데 첫 번째인 결의 57호를 발표했다. 이 결의안은 기술적 도약의 주요 장애물로 규제에 따른 병목을 지목했으며, 일부에게는 글로벌 기업들을 향한 분명한 초청장처럼 보였다.
유아기에 베트남을 떠났고, 패망한 남베트남 정부의 시민이자 군인이었던 친척들을 둔 리엔항 응우옌 교수는 "나는 또럼이 개혁가일 것이라고 기대를 걸고 있었다"며 "그리고 (만나보니) 그는 분명히 그랬다"고 말했다.
또럼의 보좌진은 곧 대통령이 될 인물 도널드 트럼프에게도 그와 같은 인상을 남기기를 기대했다. 또럼 측은 이번 방문에 앞서 면담을 요청해 둔 상태였다.
또럼이 컬럼비아대에서 연설한 다음 날인 9월 24일, 트럼프는 아들 에릭 트럼프와 함께 어느 서명식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는 또럼의 고향 성(省)에 '트럼프 골프 단지'를 건설할 권리를 얻기 위해 수백만 달러를 지불한 베트남 개발업자가 함께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은 또럼을 외면했다.

2025년에는 관세가 뒤따랐다. 세율은 치솟았다가, 베트남 정부의 간청 끝에 20%로 낮춰졌다. 백악관이 베트남의 핵심 산업인 가구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자, 또럼은 비공개 회의에서 좌절과 혼란을 표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베트남은 트럼프의 '평화위원회(Board of Peace)'에 가장 먼저 참여한 국가들 가운데 하나였다. 또한 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C-130 수송기와 시코르스키 헬리콥터를 구매하는 계약을 마무리했다고 관계자들은 밝혔다. 또럼은 미국이 아직 승인하지 않은 최고위급 방문2을 계기로 이러한 구매를 공식 발표하길 희망하고 있다고 이들은 전했다.
마르크스주의적 성향을 지닌 그의 일부 비판자들은 또럼이 베트남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통적인 권력균형을 뒤흔들고, 미국에 다가서며, 국가의 특혜를 받는 기업들의 올리가르히들과 지나치게 밀착함으로써 체제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반면, 표현의 자유 확대를 기대하는 이들은 그가 또 다른 시진핑이 되어, 시간이 갈수록 경직된 당 중심의 권위주의자로 굳어질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는 이미 수많은 강경 단속을 지휘해 왔다. 환경운동가들,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 "공포에 기반해 국가는 발전할 수 없다"고 쓴 한 언론인, 그리고 2023년에는 금박 쇠고기 식사를 풍자하는 영상을 제작해 국수 그릇에 양파를 과장되게 뿌리는 장면을 연출한 베트남 활동가까지 단속 대상이 됐다. 이 활동가는 반(反)국가 선전물을 제작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5년이 넘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새로운 접근'
기자회견에서 또럼은 특히 이전 당 대회들에서 도출된 세 개의 긴 문서를 하나의 간략한 요약본으로 압축한 점을 설명할 때 자부심을 드러냈다.
"우리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했다.
현재 학계와 관료 사회에서 제기되는 핵심 질문은 이것이다. 그의 변화가 효과를 거둘 것인가, 그리고 그것이 개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국가 전체를 위한 것인가.
베트남 경제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인구 1억 200만 명의 이 나라는 부유해지기 전에 고령화에 직면할 위험에 놓여 있다. 고등교육 수준은 역내 경쟁국들에 뒤처져 있다. 대기오염은 악화되고 있다. 베트남에 진출한 중국 공장의 급증은 트럼프의 무역정책 담당자들을 자극할 수 있으며, 중국산 수입품의 범람과 맞물려 베트남의 제조업 기술 축적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

또럼의 고향 쑤언까우는 그의 야망과 위험을 상징하는 기념물처럼 서 있다. 그의 소박했던 생가는 이제 옅은 노란색 담장 뒤에 여러 채의 널찍한 건물이 들어선 단지로 바뀌었고, 주변에는 새로 지은 학교와 도로, 축구장, 그리고 한때 오염됐던 연못이 깨끗하게 정화된 채 자리하고 있다.
인근에는 크레인이 솟아오른 거대한 주거·상업 복합단지가 들어서 있다. 크레용처럼 화려한 색으로 칠해진 건물들 사이 광장에는 이탈리아 조각상의 모형들이 세워져 있다. 베트남판 '엡콧 센터'같은 곳이다.
이곳은 한때 또럼이 먹을 것을 찾기 위해 헤매던 논밭이었다.
최근 방문했을 때, 새로 놓인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밝은 조명은 희망을 예고하는 듯했지만, 가까이 다가가자 이미 완공된 수백, 어쩌면 수천 채에 이르는 고급 빌라들은 불이 꺼진 채 비어 있었다.
베트남 전체가 또럼이 성공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의 핵심 전략적 동반자입니다. 인구 1억 명의 거대 시장이자 활발한 인적 교류의 장이며, 최근 K-9 자주포 등 한국산 무기 체계까지 도입하는 등 양국 관계는 다방면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트남 권력 서열 1위인 또럼 공산당 서기장의 향후 행보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럼 서기장은 전임 서기장의 서거 이후 공산당 서기장과 국가주석직을 임시 겸임해 왔으며, 이번 당 대회를 통해 양대 요직의 겸임과 향후 5년의 임기를 공식화하는 수순을 밟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서기장, 국가주석, 총리, 국회의장 등 이른바 '4주석' 체제로 권력을 분산해 온 베트남의 집단지도체제가 또럼 서기장 집권 이후 1인 집중 체제로 재편되는 양상입니다.
오랜 기간 경찰 및 정보 업무를 관장해 온 전형적인 '공안통'이라는 이력 탓에 보수적이고 폐쇄적일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2월 9일 자 뉴욕타임스(NYT) 보도에 따르면, 그는 예상외로 유연하고 개방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됩니다. 외국 인사들과의 소통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케니지나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등 문화적 소양도 깊다는 것입니다. 특히 경제 성장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어, 외빈 접견 시 경제 협력 논의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베트남이 직면한 최대 과제는 단연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의 지정학적 줄타기일 것입니다. 강대국 사이에서 실리를 챙겨야 하는 서기장의 치열한 고심이 엿보이는 가운데, 최근 그의 대미(對美) 밀착 행보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출범시킨 가자지구 '평화위원회'에 가입하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을 적극적으로 타진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이번 인물 분석 기사는 새 임기를 시작하는 베트남 최고 지도자의 성향과 비전을 가늠할 수 있는 훌륭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경제 및 안보 관점에서 베트남의 전략적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또럼 체제의 베트남이 미·중 사이에서,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외교적 행보를 펼칠지 지속적인 관찰과 대비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