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美·中 '균형자'가 되겠다는 인도의 '강대국'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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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뉴델리에서 2024년 8월 15일 목요일, 인도 독립기념일 기념행사 중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7세기 무굴 시대의 붉은 요새 기념물에서 국민에게 연설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025.07.25 15:11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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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린어페어스 7/8월호에 실린 이 기사는 인도의 현 상황 진단과 정책 조언 두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먼저 인도는 당분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정도로 '강대국'이 될 가능성은 없다고 딱 잘라서 말합니다. 무엇보다 중국에 비해 경제가 너무 작다고 봅니다. 중국경제가 연 2% 성장, 인도경제가 연 8% 성장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21세기 중반쯤 인도의 경제력이 중국을 얼추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중국이 2% 성장할 것 같지도 않고, 인도가 8% 성장할 가능성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10% 이상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인 해가 많았지만, 인도는 겨우 6% 전후 성장률을 보여왔을 뿐입니다. 앞으로 이것이 더 높아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게다가 인도가 자랑해온 자유로운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도 모디와 집권 BJP당 아래서 심각히 흔들리고 있고, 이것이 인도의 내부단결을 해치고 인도의 '소프트파워'를 훼손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인도가 미중 사이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겠냐고 이 기사는 질문합니다. 그리고 필자는 미국과 연대할 것을 조언합니다. 균형추 역할을 한다면서 중국, 미국 양쪽 모두에 각을 세우지 말고 미국과 손을 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미국과 함께 세계를 지배할 히말라야 이북의 중국에 어떻게 맞설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지난 5월 세계 재래식 군사력 4위로 평가 받는 인도는 친중 국가인 파키스탄과 공중전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인도의 프랑스제 라팔 전투기가 파키스탄의 중국제 J-10 전투기에 패배했습니다. 인도는 전투기의 구성도 강대국에 의존하지 않기 위해 미국제 대신 프랑스제 등을 구입해왔습니다. 그 결과가 공중전 패배였습니다. 어쩌면 이 사건이 이번 포린어페어스 기사의 결론과 상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는 미국, 중국, EU와 함께 4개의 극을 구성해 유연하게 전개되는 '다극체제'를 이끌 수 있을까요? 아니면 북쪽의 이웃나라 중국의 힘에 짓눌려 기세를 못 펴는 '마이너 강대국' 또는 '0.5극'으로 남게 될까요? 이 모든 것을 결정할 변수는 중국입니다. 중국이 인도에 얼마나 위협이 될지가 모든 것을 결정할 것입니다.


21세기 들어 미국은 인도를 강대국으로 부상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해 왔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워싱턴은 인도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민간 핵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대규모 협정을 체결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인도의 군사 역량을 강화하고 밖으로 힘을 투사할 수 있도록 방산 협력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동안 미국은 인도와 민감한 정보 공유를 개시하고, 기존에는 동맹국에게만 허용되던 첨단 기술을 인도에도 제공하기로 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미국은 인도에 첨단 전투기 엔진 기술을 넘겼다. 이처럼 미국은 최근 계속해서 인도와의 외교, 기술, 군사 협력을 심화시키며, 부시가 천명한 "21세기에 인도를 주요 세계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는 약속을 이행해왔다.


이러한 약속의 근거는 명확했다. 미국은 냉전 시기의 반목을 넘어서기를 원했다. 냉전 당시 양국은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해 있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그럴 이유가 사라졌다. 여기에 더해, 인도 이민자들이 미국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면서 양국 간 인적 교류는 심화되었고, 인도는 탈냉전 이후 경제 개혁을 통해 미국 기업과 자본을 자국 시장으로 적극 유치했다. 이러한 변화의 저변에는 보다 깊은 지정학적 기회가 자리했다. 양국 정부는 이슬람 테러에 맞서 싸우는 것뿐 아니라, 보다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는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고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데에도 공동의 이익이 있음을 인식했다. 미국은 강한 인도가 곧 강한 미국으로 이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국과 인도가 모든 사안에 의견을 같이하는 것은 아니다. 인도는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계속 군림하는 세계 질서를 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인도가 진정한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다극체제를 지향한다. 이는 중국이라는 단기적 위협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어떤 국가든 단독 패권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틀어막으려는 전략이다.


인도는 다극체제가 세계 평화는 물론 자국의 부상(浮上)을 위한 핵심요소라고 믿는다. 그래서 전략적 자율성을 철저히 유지하며 공식적인 동맹을 꺼리고, 미국과 가까워지면서도 이란, 러시아 같은 서방의 적대국과도 관계를 유지한다. 이는 다극적 국제질서를 진전시키기 위한 행동이다. 그러나 이 전략이 효과적일지 현실적일지 미지수다. 인도는 지난 20여 년간 경제적으로 성장했지만, 장기적으로 미국과 균형을 이루는 것은 내버려두고 중국을 견제하기에도 충분치 않다.. 인도는 21세기 중반기쯤에는 국내총생산(GDP) 기준 강대국 수준에는 도달하겠지만, 초강대국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으로는 남아시아에서 가장 유력한 재래식 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 우위도 절대적이지 않다. 지난 5월 교전에서는 파키스탄이 중국산 방공무기로 인도 전투기를 격추하기도 했다. 중국과 파키스탄이라는 양면의 위협에 직면한 인도는 항상 양면전 가능성을 우려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인도의 최대 강점 중 하나였던 자유민주주의가 힌두 민족주의의 부상과 함께 약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종족 및 종파 간 긴장을 고조시키고 주변국과의 갈등을 악화시켜 안보 자원을 내부에 투입하게 만들며, 대외적인 힘의 투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인도의 이러한 비자유주의적 전환은 자국에 유리하게 작용해 온 규범 기반 국제질서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인도의 상대적 열세, 다극체제에 대한 집착, 그리고 비자유주의적 방향 전환은 인도가 스스로를 정당하게 강대국이라 여길 수 있게 되는 시점이 도래하더라도 원했던 만큼의 글로벌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할 것임을 의미한다. 세계 3위 또는 4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는 일은 보통 한 국가의 국제적 위상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지만, 인도에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2047년, 즉 독립 100주년이 되는 시점에도 인도는 여전히 중국의 세력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외국 파트너에 의존해야 할 수 있다. 그러나 동맹은 물론 긴밀한 협력 관계조차 꺼리는 인도의 특성상, 외부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특히 미국 외교정책이 점점 더 거래 중심으로 변하거나, 미국이 인도를 경쟁자로 인식하게 될 경우 그 어려움은 더욱 가중될 수 있다. 향후 수십 년간 인도는 분명 강해지겠지만, 그 힘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될 것이며, 세계에서의 영향력 역시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높은 기대

냉전 시기 대부분 동안, 인도의 경제 성과는 그 잠재력에 비해 부진했다. 독립 이전 100년간의 정체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1950년부터 1980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약 3.5%에 불과해 다른 개발도상국들보다 낮았다. 1980년대 들어 정부가 제한적인 경제 개혁을 추진하면서 평균 성장률은 약 5.5%로 상승했지만,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1991년, 나라심하 라오 총리와 마노한 싱 재무장관은 인도의 통제 경제 체제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규제와 생산 통제, 폐쇄적 시장 구조로 인해 경제성장을 억눌러왔던 이른바 '허가제 지배'(License Raj) 체제를 철폐하면서 본격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인도 경제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인도는 연평균 약 6.5%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이례적으로 오랜 기간 지속적인 성장 궤도를 이어왔다. 이를 통해 수천만 명의 빈곤 인구가 생계를 개선할 수 있었고, 인도는 세계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 중 하나로 재부상했다. 이러한 점은 미국이 인도를 중국 견제의 유력한 파트너로 간주하는 주요 배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인도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성취에는 미치지 못한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중국은 1970년대 말 경제 개방 이후 연평균 약 9%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1979년부터 2023년까지 15차례나 두 자릿수 성장을 이뤄냈다. 반면 인도는 한 번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적이 없다. 이로 인해 양국의 경제 규모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비슷했지만, 오늘날에는 중국 경제가 인도의 거의 5배에 달한다.


중국은 축적한 부를 바탕으로 인도보다 훨씬 큰 국제적 영향력을 구축했다. 보다 크고 정교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인도태평양 지역과의 경제적 통합을 강화하며 상당한—때론 질식 수준의—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인도는 종종 자신감 있는 레토릭을 사용하면서도,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중국과의 직접적인 대결을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이 같은 열세에 대해 인도인들은 불만스럽다. 인도 관리들 상당수는 언젠가는 북쪽 이웃을 따라잡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중국 경제는 크게 둔화되었으며, 현재 연평균 성장률은 4~5% 수준으로 인도보다 낮다. 부동산 위기, 지방정부 부채, 서방 시장 접근성 제약 등의 요인이 중국의 성장률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인구 구조다. 수년간 지속된 둔화 끝에 중국 인구는 2022년 처음으로 감소했고, 급속히 고령화가 진행 중이다. 노동 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중국의 장기 경제 전망과 국제적 영향력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반면 인도는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인구는 여전히 증가세이며, 상당 기간 노동연령 인구가 풍부한 상태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 둔화가 인도의 추월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추세를 감안할 때, 인도 경제가 이번 세기 중반 이전에 중국을 따라잡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인도가 중국과 대등한 위상을 갖추기 위해서는 향후 25년간 연평균 8%의 성장을 지속해야 하며, 동시에 중국은 연평균 2% 수준의 극히 느린 성장에 머물러야 한다. 이는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인도는 아직 제조업 부문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고, 비교우위를 결여하고 있어 향후 발전 가능성도 제한적이다. 수출을 가로막는 과도한 보호주의에 집착하고 있으며, 연구개발 투자도 매우 부족하다. 훌륭한 테크기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기술 수준은 여전히 뒤처져 있으며, 방대한 인적 자본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도 충분하지 않다.


세계은행이 2023년까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 같은 제약을 고려할 때 인도의 향후 20년간 연평균 성장률은 과거 10년과 마찬가지로 약 6%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만일 중국이 같은 기간 연평균 2% 성장에 머무를 경우, 인도의 중국 대비 위상은 분명 개선될 것이다. 21세기 중반 무렵이면 인도 GDP는 중국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앞으로도 연평균 2% 이상의 성장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 여러 과제를 안고 있음에도, 중국은 인도에 비해 여전히 경제적 우위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높은 문자해독률, 숙련되고 상대적으로 건강한 인구, 더 높은 기술력, 더 풍부한 자본 축적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 로보틱스, 에너지 저장, 정보통신 등 핵심 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어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성장 잠재력을 유지할 수 있다. 만일 중국이 연평균 3% 성장만 하더라도, 인도가 6%의 성장을 유지한다 해도 양국 경제 규모는 여전히 중국이 인도의 세 배에 가까울 수 있다.


물론 장기적인 경제 성장 예측은 언제나 불확실하다. 그러나 과거로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면, 인도는 이번 세기 중반쯤이면 강대국 반열에는 오르겠지만, 중국, 미국, 유럽연합(EU)과 함께하는 4대 세력 중 가장 약한 국가로 남을 것이다. 중국과 동등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며, 미국과는 더욱 큰 격차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인도의 길

이러한 상황에서 인도가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다면, 결국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인도태평양 지역 내 다른 어떤 국가도, 호주나 일본조차도, 2050년까지는 미국을 대신해 줄 만큼의 역량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다. EU는 집단적으로 경제력,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달리 중국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는다. 결국 인도와 미국은 앞으로도 협력을 계속할것이며 해야한다.


그러나 양국 간에 무한한 우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은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인도는 자신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어떤 형태의 동맹에도 쉽게 응하지 않을 것이며, 양국 협력관계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할 것이다. 인도는 집단방어 체제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 비동맹 지위를 집요하게 지켜나갈 것이다.


인도가 공식적인 동맹 체제를 꺼리는 이유는 식민지 과거에 일부 기인한다.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가 어떤 강대국의 '추종 세력'이 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영국 식민 지배하에 수 세기를 보낸 국가로서, 다시는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부상 중인 강대국은 향후 완전한 전략적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과도기적 시기에 어떠한 제약도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신념에 있다. 인도 정책 결정자들은 동맹 관계가 수반하는 제약—특히 자신보다 강한 국가와의 동맹—이 자국의 종속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국제 체제 내 다양한 지정학적 틈새를 이용해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한다고 우려한다. 근본적으로 인도는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타국들이 자국의 이익 외에는 어떤 동기도 갖지 않는다고 보며, 이에 따라 다른 나라의 지원도 그 나라가 적절한 이익을 얻을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전제한다. 따라서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 인도는 무거운 대가를 지불할 필요 없이도 그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도는 미국의 의도와는 다르더라도, 국제질서를 다극체제로 이끌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총리는 2004년 이를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인도는 일극체제가 오늘날 세계의 균형 상태라고 믿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모든 주요 세력의 정당한 열망과 이해를 수용하는 협력적 다극세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인도 정치권 전반은 이러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세계는 본래 다극적이며, 국제질서는 이제 다극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으며, 다극체제야말로 어느 한 국가가 타국에 일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은 자신의 2020년 저서 '인도의 길: 불확실한 세계를 위한 전략'(The India Way: Strategies for an Uncertain World)에서, 인도는 "세계적 모순들이 만들어내는 기회를 식별하고 활용함으로써 국가 이익을 증진하고 가능한 한 많은 국가들과의 관계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도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극체제는 인도의 이러한 전략을 약화시키는데, 다른 강대국들에 대해 '이이제이'(以夷制夷)식 외교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양극체제는 인도에 보다 유리하다. 실제로 냉전 시기 동안 인도는 소련과 미국 사이에서 양측을 교묘히 활용하며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구조는 다극체제다. 다극세계에서는 인도가 활용할 수 있는 균열과 연대의 축이 훨씬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도의 전략은 현실적으로, 반미 성향을 띤 국가들과의 관계를 포함한 다양한 양자·다자 파트너십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인도는 이러한 포럼에서 미국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경우도 많지만, 미국과의 양자 관계를 심화시키면서도 때로는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예컨대 인도는 기후 정책, 무역 특혜, 데이터 주권, 전자상거래 규범, 글로벌 거버넌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미국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고위 외교 영역에서도 인도는 미국의 제재에 반대하며 제3국들과의 전통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서방의 지배에 반대하는 '글로벌사우스' 연대를 지지해 왔다. 이란, 러시아와의 전통적 관계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도덕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인도는 중국과 국경 지역에서의 긴장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양자 관계 유지를 모색하며, 가능한 협력의 여지를 찾아왔다. 미국과 달리 인도는 중국과의 양자 관계에서 급격한 변화를 감당할 수 없으며, 향후 미국의 대중 전략 변화에 따라 상황에 따라 중국 쪽으로 기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도의 이러한 노력은 세계를 실질적으로 더 다극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경제 추세가 지속된다면, 21세기 중반이 되어도 미국과 중국이 압도적인 두 축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으며, 진정한 다극체제는 여전히 요원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세계는 사실상 양극 구조로 귀결될 것이다. 이 경우 인도는 난처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인도는 브릭스(BRICS)나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비서구 포럼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면서 미국을 실망시키겠지만, 이들 포럼 내에서의 영향력은 대부분 중국에 쏠릴 가능성이 높고, 많은 비서구 국가들 사이에서도 중국이 인도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역대 행정부가 이러한 인도의 행보를 의도적으로 묵과해 왔기에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현재의 미국 정부처럼 질투심이 강한 정권이 들어선다면, 인도의 이러한 행보에 대해 보복을 가하려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인도가 일부 양자 무역을 미국 달러가 아닌 당사국 통화로 결제하려는 시도는, 미국의 제3국 제재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의도된 것이지만,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한 현 미국 정부에 의해 협력 축소라는 대응을 불러올 수 있다.


설령 인도가 이런 보복을 피하더라도, 다극체제는 다른 차원에서 인도에 불리할 수 있다. 진정한 다극체제에서는 미국이 지금처럼 공공재로 제공하는 여러 혜택, 예컨대 인도양 해상교통로 보호 등에서 인도가 얻는 이익이 줄어든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인도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재정적, 안보적 부담을 감수해야 할 수 있다. 또 다른 두 강대국인 미국과 EU가 가장 약한 축인 인도를 지원하지 않고 방치할 경우, 인도는 중국에 대한 균형을 유지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다극체제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일극체제보다, 혹은 미중(美中) 양극 체제보다 인도에게 더 불리할 수 있는 셈이다. 따라서 인도의 현재 접근법—미국의 지원은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동시에 미국의 영향력을 제한할 다극 세계를 추구하는 전략—은 비생산적이며 현명하지 못한 노선일 수 있다.

다수의 폭정

인도의 강대국으로서의 자질은 외교 정책뿐 아니라 내부 정치에도 좌우된다. 그리고 현재 인도는 이 측면에서 심각하고 위험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수십 년간 인도는 민주주의의 놀라운 성공 사례로 꼽혀왔다. 1947년 독립 이후 인도는 총 18차례의 총선을 실시했고, 평균 투표율은 60%에 달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참여율은 증가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인도는 처음부터 성별, 카스트, 경제적 지위와 무관하게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시민들은 평등권,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핵심적 기본권을 보장받았으며, 이는 사법적 절차를 통해 실질적으로 행사될 수 있었다. 물론 1975~77년, 인디라 간디 총리가 그 악명높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독재적 통치를 감행하며 야권 인사를 대거 투옥했던 암흑기가 존재했다. 그러나 인도 국민은 이에 맞서 싸웠고, 간디 총리가 독재를 굳히기 위해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 오히려 정권을 교체하며 권위주의에 철퇴를 가했다.


인도 민주주의가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민주주의가 실패하기 쉬운 조건 속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 있다. 정치학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의 지속성은 1인당 소득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독립 후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곧 독재 또는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인도는 달랐다. 빈곤 상태에서도 인도는 경쟁 선거와 개방적 정치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성공은 부분적으로 인도의 헌법 덕분이었다. 인도 헌법은 모든 사람에 대한 존중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수의 폭정을 방지하기 위해 인도는 시민권의 기준을 종교, 재산, 인종이 아닌 '출생지 원칙'(jus soli)으로 정의했다. 종교 및 자선 기관을 자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소수자 권리를 포함해, 종교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법적 장치도 마련했다. 또한 언어 공동체 단위로 주(州)를 구성하는 연방제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했다. 중앙과 지방 모두에서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강화하여 행정부 권한에 제동을 걸었으며, 시민들이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시민사회의 공간도 보장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인도의 정치 체제는 단순히 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이었다.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 건국의 이상을 "정의로운 수단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인도의 건국자들은 가난한 나라에서도 개인의 권리를 철저히 보호하며 빠른 경제성장을 약속하는 권위주의를 거부할 수 있다고 믿었고, 실제로 이를 증명해냈다.


그러나 오늘날 인도는 이러한 기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냉전 시기의 인도는 경제 성과가 미진하더라도 자유주의적 정치 문화를 견고하게 유지했지만, 오늘날의 인도는 오히려 더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자유주의와 권위주의의 오염이 뚜렷해지고 있다. 오랜 세속정치의 전통은 이제 힌두 민족주의에 의해 가려지고 있으며, 이들은 인도를 힌두인의 나라로 간주하고, 종교적 소수자는 기껏해야 2등 시민일 뿐이라는 인식을 내세운다. 이 이데올로기는 '힌두뜨바'(Hindutva)로 불리며, 인도 건국 세력에 의해 분명히 배격되고 주변화되었지만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었다. 1990년대 이후 정치 영역에서 다시 부활한 힌두뜨바는 '바라티야 자나타당'(BJP)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했으며, 2014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압도적인 승리로 집권한 이후 그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확대되었다.


이러한 부상은 약 2억 명의 무슬림과 3천만 명에 가까운 기독교인을 소외시키는 일련의 정책들로 이어졌다. 동시에 BJP는 이전까지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하층 카스트의 힌두인들을 재흡수하려 하였으며, 이를 통해 거의 10억 명에 달하는 통합된 힌두 유권자 블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힌두 민족주의자들은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등 인도 소수 종교들도 사실상 힌두교의 일종이라고 주장하며, 인도 아대륙(亞大陸)에서 기원한 종교 전통만이 '진정한 인도인'의 조건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러한 인도 헌법의 세속주의 이상에 대한 공격은 권위주의의 심화와도 병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헌법 자체를 개정하는 방식으로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헌법을 전면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부 제기되고 있다. 현실에서는 시민권에 관한 기본 규범이 의도적으로 침식되고, 본래 중립적이었던 국가 기관들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방식으로 권위주의적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비상사태 시기를 연상시키듯, 모디 정부는 세무 당국 등 법 집행 기구를 동원해 야당, 시민사회, 규제기관, 야당이 집권한 지방정부 등에 대한 위협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인도의 민주주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여전히 경쟁적인 선거가 존재하며, 인도가 다시 자유주의로 방향을 틀 수 있다는 희미한 징후도 감지된다. 최근 총선에서 BJP는 단독 과반을 상실했고, 현재는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사실 BJP는 단 한 번도 전체 유권자의 과반 지지를 얻은 적이 없다. 인도의 소선거구제 덕분에 의회의 의석 과반을 확보했을 뿐이다. BJP가 전력을 기울였음에도 힌두뜨바 이념은 대다수 유권자의 절대적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인도 야권은 여전히 전체 주(州)의 3분의 1에서 집권하고 있으며, 자유주의 진영은 위축되었지만 힌두뜨바 물결에 저항을 계속하고 있다. 간헐적으로나마 사법부 및 독립 기구들도 행정부의 권한 남용을 견제하고 있다. 따라서 인도가 '비자유주의적 강대국'이 될지 여부는 여전히 미정이다.


그러나 만약 인도 정치가 자유주의로 회귀하지 않는다면, 이는 전 세계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 인도는 자유민주주의의 모범 사례로서의 위상을 잃게 되며, 세계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유주의 모델 국가'로 기능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평화적 정치와 경제 번영을 약속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강화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질서의 붕괴를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인도와 미국이 모두 지속적으로 '비자유주의적 민주국가'로 전락할 경우, 양국이 과거 수십 년간 그 혜택을 누려왔던 전후 질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두 나라에서 자유주의의 후퇴가 고착화될 경우, 이는 다른 국가들에서도 유사한 정치세력의 부상을 정당화하고 강화시킬 수 있다. 2015년 뉴델리 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마치 미래를 내다본 듯 "미국이 다양성을 보존하면서도 공통의 노력과 목표 아래 협력할 수 있는 나라임을 입증하고, 인도가 그 거대한 규모와 수많은 차이를 지닌 상황에서도 민주주의를 지속적으로 확인해낸다면, 이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모범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과 인도는 이런 모범이 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비자유주의로 기운 인도는 국력 면에서도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 BJP의 정책은 인도를 이념적·종교적으로 심각하게 양극화시켰고, 변화하는 인구 구조를 의회에 어떻게 반영할지를 둘러싼 미해결 문제는 지역 및 언어 공동체 간의 분열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이는 점점 더 분열된 미국과 유사한 모습이다. 미국에서 극단적 대립은 제도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 퇴행을 초래했지만, 인도처럼 국가와 사회의 기반이 더 취약한 나라에서는 그 파괴력이 훨씬 더 클 수 있다. 극단적 대립은 인도 정부에 대한 무장 반란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으며, 외부 세력들이 인도 내부에 혼란을 조장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무슬림에 대한 이념적 적대감이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과의 외교적 긴장을 고조시킬 경우, 이러한 갈등이 국경 너머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내부 안보 비용은 증가하고, 그로 인해 인도가 해외에서 영향력을 투사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소진될 수 있다. 설령 이러한 대립이 새로운 위기를 낳지 않더라도, 인도 국민의 동원력을 약화시켜 국력을 모으는 것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강대국이 못 될 수도

평범한 경제성장률, 모든 국가와 관계를 맺되 어떤 국가와도 특수한 관계는 갖지 않으려는 지속적 행태, 그리고 국내에서의 자유주의 쇠퇴가 결합되면서, 인도는 물질적 성장과 달리 글로벌 영향력은 기대에 못 미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가 세계 3~4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더라도, 개발지표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어, 거대한 인구가 중국, 미국, 유럽의 시민들처럼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거나, 이들이 국가 권력의 생산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경제 규모는 성장하겠지만, 빈곤과 불만이라는 구조적 과제가 사회안정과 국가역량을 지속적으로 위협할 것이다.


게다가 인도의 성장이 계속해서 내수시장 확대에만 의존하고, 중국처럼 세계시장과의 결합을 추진하지 못한다면, 성장 속도는 필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인도는 주변 국가들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학자들은 오랫동안 '강대국'의 최소 조건으로 국경 너머로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꼽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인도는 동아시아와 중동이라는 핵심 지역에서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향후 수십 년간 중국과 미국이 해당 지역에서 계속 활동할 것이기에,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도 낮다. 인도의 경제발전을 이들 지역의 변화와 더 긴밀하게 연결시키려는 전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미 인도는 남아시아 내에서도 당연한 우위를 지속가능한 지역패권으로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설령 인도가 향후 20년간 연평균 6% 성장한다 해도, 아시아에서 중국에 가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도는 외부세력과의 포괄적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외부를 통한 균형' 전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이다. 국내 혼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향후 수십 년간 여전히 국제체제 내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남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도와 미국은 최근 몇 년간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인도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는 데 주저하면서 이러한 성과는 제한되고 있다. 양국은 상호보완적 경제 구조를 갖추고 있음에도, 경제관계는 기대만큼 강화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제약은, 인도가 '여러 방향의 연대'를 통해 다극체제를 추구하는 데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인도가 조만간 중국, 미국, 유럽과 대등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독자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가시권에 있지도 않을뿐더러, 중국에 대한 실질적인 공동방어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만약 인도가 자국 군사 역량을 충분히 확장해 중국의 위협을 독자적으로 억제하고, 중국의 위협을 받는 다른 인도태평양 국가들도 지원할 수 있다면 이러한 전략적 결함도 용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인도가 이 두 가지 목표 중 어느 하나라도 달성하기는 어렵다.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중국과의 GDP 격차를 감안할 때, 인도는 국방 현대화 경쟁에서 북쪽 이웃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중국의 군사 역량은 인도를 앞서 있고, 국방에 대한 부담이 낮은 중국은—중국은 GDP가 충분히 크기 때문에 국방비에 인도보다 적게 쓸 수 있다—경제성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국방비를 계속 늘릴 수 있어, 군사적 우위를 더욱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렇기에 미국과의 공동방어 협력에 더 긴밀히 나서기를 꺼리는 인도의 태도는, 중국 견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도가 다극질서를 추구하면서 국제질서와 관련된 여러 사안에서 미국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오히려 미국과의 전략적 공조가 더욱 절실한 시기다. 인도는 미국의 역할 축소를 요구하면서 동시에 독자적으로 중국을 억제할 수 있다는 환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이 과거 인도의 이러한 행보를 용인해온 데에는 양국이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다는 점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그러나 양국이 모두 비자유주의적인 경로를 걷게 되면, 더 이상 공유된 가치에 기반한 유대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 대신, 관계는 점점 거래중심적 성격을 띠게 될 것이고, 미국은 인도에 대해 협조의 대가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2기 집권 아래 인도에 대한 접근 방식은 이미 이러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인도가 향후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본질적으로 상충하는 다극질서에 대한 인도의 집착은 미국에 있어 매우 불편한 현실이 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인도가 중국과 관련된 일부 사안에 있어 미국과 협력할 의향은 있지만, 중국 문제조차도 모든 주요 분야에서 미국과 완전하게 보조를 맞추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인도가 아시아에서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인도에 얼마나 많은 자원과 신뢰를 투자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하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적 미국은 자유주의적 인도를 계속 지원할 수도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 될 수 있으며, 그 비용이 지나치지 않고 인도의 성공이 일정 부분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인도나 미국 중 어느 한쪽이라도 비자유주의를 유지한다면,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할 이념적 기반은 사라지게 된다.


물론, 가치가 아닌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보다 협소한 미-인도 관계가 양국에 곧바로 재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축소된 야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냉전 이후 양국 관계의 대전환은 한때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개선하고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관계는 거의 전적으로 '공통의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는 데 국한될 수 있다. 이렇게 협소한 목표 아래에서는 인도도, 미국도, 나아가 세계 전체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애슐리 J 텔리스는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타타 전략문제 석좌이자 선임연구원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에는 미 국무부의 고문 및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랜드연구소 선임 정책분석가이자 랜드대학원 정책분석학 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는 '극적인 비대칭: 남아시아의 핵무장'(Striking Asymmetries: Nuclear Transitions in Southern Asia) 등이 있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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