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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가 강대국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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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부안 바조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 돈 쁘라뭇위나이 태국 외교부 장관, 팜 민 찐 베트남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소네사이 시판돈 라오스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술탄, 훈센 캄보디아 초일,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타우르 마탄 루악 동티모르 총리가 11일 (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라부안 바조에서 열린 제42차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3.05.19 11:03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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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머지않아 동남아시아가 한국, 일본, 중국, 대만의 동아시아보다 잘 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IMF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의 현 경제성장 추이를 볼 때 20년 뒤쯤 선진국 반열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양국은 인구가 약 1억, 2.7억으로 인구대국입니다. 이런 인구대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 선진국 수준에 오르게 된다면 국력이 전세계 톱 클래스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한국 경제를 쉽게 추월할 것입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외교도 잘 합니다. 자기들끼리 아세안(ASEAN)이라는 국가연합을 만들어 다른 나라들과의 외교협상에서 큰 협상력을 갖습니다. 자신들의 안보, 경제 포럼에 미국, 중국, 러시아나 한국, 일본 같은 역외(域外) 국가들을 초빙하는데, 아세안의 힘 때문에 많은 나라들도 기꺼이 참여합니다. 포린어페어스 5·6월호는 '비동맹'을 주제로 여러 글을 실었는데, 동남아시아의 오랜 비동맹 외교 전통도 다뤄지고 있습니다. 합쳐서 7억의 인구를 가지고 전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는 아세안은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한국으로서 놓쳐서는 안 되는 시장이며 외교 파트너입니다. 머지 않아 젊고 부유하고 군사력도 세고 무엇보다 외교도 잘하는 동남아시아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세안의 전통적인 '비동맹' 외교를 다룬 포린어페어스 기사를 전문번역으로 소개합니다. Look South!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점점 더 적대적으로 변함에 따라 나머지 세계의 눈빛은 점점 불안해져만 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미국을 감시하고 미국의 기술을 훔치려 한다고 지속적으로 비난해왔으며 가장 최근에는 미국 영공에 풍선을 띄워 정찰했다고 고발하기도 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이 중국을 세계 시장에서 떼어내려 한다고 주장해왔다. 양측은 무역 전쟁을 벌이고 있으며 군비지출을 늘리고 있는 중이다. 대만을 둘러싼 폭력적 충돌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이 우려스러운 경쟁은 많은 나라들에게 골칫거리를 안겨주었다. 특히 개발도상국들에게 가장 큰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은 적을 응징하는 일을 도우라며 파트너와 동맹국을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 양자와 좋은 관계를 맺어옴으로써 수억 명의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현재 진행 중이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은 비록 폭력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글로벌 사우스1에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던 무역 시스템을 약화시킬 것이다. 또한 만약 두 강국이 전쟁에 돌입한다면 더 작고 약한 나라들은 그 분쟁에 끌려들지도 모른다.


미국과 중국의 대결 구도에서 동남아시아보다 집중적인 압력을 받게 된, 혹은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을 지역은 그리 많지 않다. 거의 7억 명이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중국의 영향력 확대의 실험장으로 여겨지곤 한다. 중국 정부는 동남아시아를 종종 자국의 "주변부"로 부르곤 한다. 또한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하에 동남아시아에 다양한 기반 시설을 건설하는 동시에 동남아시아 해역에 강한 군사적 존재감을 쌓아가고 있다. 미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 주도 프로그램에 동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심지어 중국산 시스템이 낮은 비용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데 도움을 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파트너와 동맹국들이 다양한 중국 기술 금수조치에 협조하기를 원한다.


동남아시아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요구들은 너무나 친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냉전 기간동안 동남아시아 지역은 소련과 미국 (그리고 나중에는 중국이)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거대한 투쟁의 주요 무대가 되어 있었다. 그 경쟁과 폭력으로 정규전, 내전, 체계적인 국가 폭력이 저질러졌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그 시절을 따스한 마음으로 추억하지 않는다. 그것을 되풀이할 생각은 더더욱 없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미중갈등의 새로운 시대는 지난번의 그것을 연상시킬만한 것이 아니다. 중국의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 의존하지 않고도 중국의 지배 시도에 저항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에 의존하는 대신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 즉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다자기구들을 설립하고 강화함으로써 스스로 독립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이나 미국과 관계를 강화한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판단과 실행에 따른 것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미중 경쟁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도록 활용하며, 두 강대국을 경쟁시켜 동남아시아의 경제적 이득이 되게끔 하는 방법을 익혀 왔다. 동남아시아는 강대국들을 한데 불러모을 수 있는 외교적 힘을 갖게 되었다.


동남아시아가 현재의 입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과 미국의 긴장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어느 한쪽을 택하라는 강한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한 덩어리로 움직이는 단일한 무언가와 거리가 먼 지역이다. 각국은 서로 다른 대외 정책과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 중 일부는 서로 충돌한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빠른 성장과 커져가는 경제 규모는 동남아시아 각국이 해가 갈수록 더 강한 나라가 될 것임을 예상케 하며, 그러한 경제력에 힘입어 시간이 지날수록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한때 강대국의 분쟁지로 여겨졌던 동남아시아는 오늘날 강대국 갈등을 조절하는 역할 모델이 될 수도 있다.

그때와 지금

냉전 기간 내내 동남아시아는 내적 분열을 겪었다. 동남아시아 지역의 여러 국가들, 가령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는 반공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산주의 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다른 나라, 가령 캄보디아 같은 나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이 다스렸다.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은 긴장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예컨대 1967년 공산권에 속하지 않는 국가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해 아세안을 창설했던 것이다. 한편 라오스와 베트남의 공산주의자들은 피흘리는 내전을 치렀고 승리했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과 함께 동남아시아는 이 쓰라린 과거를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가령 베트남은 외교적 고립을 극복하고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개혁적이며 개방적인 국가로 거듭난 것이다. 아세안은 과거 적성 국가에까지 문호를 개방하여, 공산주의 반대를 위한 기구에서 넓은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추구하는 국제 기구로 탈바꿈했다. 아세안은 동남아시아의 외교 국방 지도자들을 한데 불러모아 신뢰구축과 분쟁예방에 협력하는 안보 포럼이 되었다.


동남아시아는 이러한 평화로부터 막대한 배당금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국제 체제는 글로벌 통합을 촉진했고, 덕분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의 허브가 되었으며 많은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여 대외적 연결과 경제 성장을 북돋웠다. 1990년, 세계 경제 40위권 국가 중 동남아시아 국가는 단 두 곳 뿐이었다. 2020년 현재는 그 숫자가 여섯으로 늘었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 사이의 경쟁은 이러한 성과를 위협하고 있다. 걱정스럽게도 퍽 익숙한 모습이다. 가령 미국은 민주주의를 전파한다고 주장하며 중국과의 경쟁을 정당화하고 있다. 수십년 전 베트남에서 전쟁을 벌일 때와 같은 논리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중 그런 설명에 납득하고 미국 편을 들어줄 나라는 별로 없을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정치 체제가 작동하고 있는 곳으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이념의 선을 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심지어 베트남마저도 이념에 따라 대외 정책을 펼쳐 나갔던 과거를 떨쳐내고 자신들을 지원할 수 있는 나라라면 어느 곳과도 손을 잡고 있다. 그렇게 베트남이 사귄 새로운 친구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인 것이다.


(하노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 (현지시간) 하노이에서 부이 타인 선 베트남 외교장관과 회담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노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15일 (현지시간) 하노이에서 부이 타인 선 베트남 외교장관과 회담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미국은 동남아시아인들에게 호감을 잃어가고 있다. 인도 태평양 전략의 일환으로 이념을 강조하는 것은 그 실책 중 일부일 뿐이다. 미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갈라서도록 압력을 넣고 있는데 이는 심지어 싱가포르처럼 오래도록 미국과 함께해온 나라에서도 깊은 반감을 불러오고 있다. 그렇게 압력을 넣는 행위는 미국이 그 경쟁자의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지금껏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양자택일을 강요해왔던 것이다. (가령 2017년 중국 정부는 싱가포르의 리셴룽 총리를 일대일로 포럼에 초대하지 않았다. 리셴룽은 국제상설중재재판소가 필리핀의 편을 들어주며 중국 패소를 선언한 재판 결과를 옹호했던 것이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하고 중국에 맞선 무역 조치를 꺼내든 후, 미국 역시 동남아시아를 향해 어느 한쪽의 편에 서라고 강요하는 강대국의 대열에 합류하고 말았다.


물론 중국 정부도 동남아시아에서 제 발등을 찍는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존재감은 동남아시아에 매력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으나, 중국의 경제적 제안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는 것이다. 가령 중국은 자국 정부가 채무국을 쥐고흔들 수 있게끔 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를 떠안기곤 한다. 현재 라오스의 대중국 채무는 120억 달러에 이르는데 이는 라오스 GDP의 65퍼센트에 육박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대중국 외채는 2021년 6월 말 현재 21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2011년 말과 비교해볼 때 다섯 배나 늘어난 것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닌 민간 추산에 따르면 그 액수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중국이 캄보디아에 주고 있는 부담은 다소 다른 형태다. 중국은 투자의 댓가로 캄보디아의 레암 해군기지 사용권을 얻었는데, 그 기지를 통해 중국군은 남중국해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제성장을 포기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중국의 진정한 경제적 역량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중국은 동남아시아의 해역에서 권리를 주장하고 산호초에 군사 시설을 건설해왔는데, 이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게 중국의 호전성을 상기시켜준다. 중국의 이런 공격적인 태도는 미국의 호전적 행동과 맞물려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두 강대국의 갈등이 조만간 폭발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어쩌면 그 갈등은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지만, 특히 동남아시아에 재앙과도 같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가령 대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인다면, 군사적으로 강화되어 있는 남중국해에 분명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동남아시아에서 자유로운 항해는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 당사국이 해저 인터넷 케이블을 통제하거나 절단하면서 동남아시아 지역의 통신마저 지장을 겪게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미중 분쟁은 여러 동남아시아국 함대를 향한 공격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건 동남아시아의 무역과 공급망은 타격을 입게 되며 이는 동남아시아 경제를 고꾸라뜨릴 것이다.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

중국과 미국 사이에 군사적 분쟁이 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사실상 동남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인지하고 있다. 둘 중 어떤 나라가 해당 지역을 지배하는 것 역시 정치적으로건 경제적으로건 나쁠 수 있다는 것 또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잘 알고 있다. 중립은 이 온갖 이질적인 국가들의 집합이 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다. 문제는 그것을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이냐다.


물론 각기 다른 국가들은 서로 다른 접근법을 택할 것이다. 어떤 국가는 30여년 전, 중국과 미국이 서로 잘 지냈고 동남아시아가 특정 진영으로 떠밀리거나 끌려들어가지 않았던 시절의 대외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말레이시아나 태국은 과거의 적극적인 외교에서 물러났다. 자국 내 불안정한 상황에 정부의 주의가 온통 쏠려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답습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안전한 선택처럼 보일 수 있다. 중국이나 미국과 척질 가능성을 무릅쓰고 노선을 바꾸거나 목소리를 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전략은 지는 전략이다. 아세안 국가들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방관자 신세로 전락해 강대국들이 군사 훈련을 하거나 심지어는 그들의 앞바다에서 싸우는 모습을 구경만 하는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수동적 태도는 이 동남아시아의 중소 국가들에게서 그들이 그렇게 고생해서 지켜낸 자주성을 빼앗을 수도 있다. 만약 동남아시아가 중립노선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그 방식은 신중해야 하며 현명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동남아시아는 늘어나는 긴장감 속에서 조심스럽게 행보를 택해 왔다. 2019년 아세안은 미국의 공격적인 인도 태평양 전략에 대한 응답으로 <인도 태평양 전망>이라는 백서를 발간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제로섬 경쟁을 지양하며 그 어떤 단일한 강대국에 지배적 지위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백서는 지역 정치외교의 중심에 강대국 대신 아세안을 올렸다. 아세안은 스스로를 격상시킨 셈이었는데, 이후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지난 수십 년간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외부의 투자를 끌어들였고 역외와의 교역을 확대했다. 아세안은 자신들의 외교 원탁 회의에 다른 나라들을 끌어들임으로써 동남아시아 지역 정치에 있어서 객체가 아닌 주최측의 입지를 다져 왔다. 예컨대 '아세안 플러스 국방장관회의'는 아세안의 10개 회원국에 더해 중국, 러시아, 미국 등 다른 나라의 국방장관을 한데 불러모아 지역과 국제적 사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외부에 문을 여는 이 회의의 독특한 다자주의가 미국인들로서는 선뜻 와닿지 않는 듯하다. 미국인들은 세계를 친구와 경쟁자로 나눠 보는 경향이 강한데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엔 이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하지만 모든 이들과 협력하는 것은 그 어떤 적도 만들지 않기 위한 좋은 방법일 것이다.


(서울=뉴스1) =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왼쪽 여섯 번째)이 15일부터(현지시간)베트남 하롱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제27차 한-아세안 대화(ASEAN-ROK Dialogue)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2023.5.1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뉴스1) =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왼쪽 여섯 번째)이 15일부터(현지시간)베트남 하롱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제27차 한-아세안 대화(ASEAN-ROK Dialogue)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2023.5.16/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동남아시아는 외교와 안보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세안이 주도하는 다자 안보체제 하에서 동남아시아는 외부 국가들과 여러 다자 혹은 양자 협약을 맺어 왔다. 중국, 라오스, 미얀마, 태국이 함께 메콩강을 순찰하는 비상설 그룹 같은 것을 사례로 꼽아볼 수 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호주, 뉴질랜드, 영국과 맺었고 50년도 더 된 5개국 방위 협정 같은 제도적 합의 좋은 사례다. 지정학적 환경이 열악해짐에 따라 이미 많이 도입되어 있는 이런 종류의 파트너십은 숫적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복잡하고 때로는 중첩되는 다양한 외교협정들은 모든 나라와 관계하되 특정국과 독점적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에게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필수적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역외 국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에서 점점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가령 작년 캄보디아는 세간의 주목을 받은 동아시아정상회의를 주최했으며, 태국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협의회(APEC) 포럼을 개최했고, 인도네시아는 G-20를 주최했다. 인도네시아의 의장국 역할은 특히 성공적이었다. 2022년 11월, 인도네시아는 발리에서 G-20 회의와는 별도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초빙해 두 나라 사이의 냉랭한 분위기를 걷어내는 약식 정상회담을 이끌어냈다. 이는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최초의 일이었다. 호주의 앤서니 알바니즈 총리도 시진핑과 별도 회담을 가졌는데, 이로써 호주와 중국 정상간의 오랜 침묵도 막을 내렸다. 인도네시아가 중립적 태도를 취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이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다자주의가 지니는 무한한 가치에 대한 동남아시아인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주었다.


몇몇 동남아시아 정부는 미중 경쟁 구도에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이 있음을 개별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중국과 미국의 충돌은 동남아 정치인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일이지만, 미중 양국의 정부는 어느 한 편에 서지 않는 나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덕분에 젊은 인구가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동남아시아는 여러 경제적 혜택을 얻어낼 수 있었다. 가령 베트남은 미국이 중국과 디커플링하는 것에서 막대한 이득을 얻어냈는데, 미국이 중국에 있던 공장을 베트남으로 이전했던 것이다. 인도네시아 역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같은 미국 기업들로부터 큰 투자를 받아냈다. 동남아시아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점점 더 중요한 지역이 되어가고 있다.

모두가 모든 곳에서

동남아시아의 균형 외교가 영원히 통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미중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많은 분석가들은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언젠가는 한쪽 편에 서야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심지어 싱가포르의 지도자인 리셴룽 역시 중국과 미국의 대결 구도를 전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2018년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언젠가 아세안 역시 어느 편에 서야 할지 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냉전과 사정이 다르다. 당시 동남아시아는 대부분 가난하고 갓 독립한 약한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오늘날 아세안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대개 중진국 수준에 있으며 동남아시아의 외교가 보여주고 있다시피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가올 미래에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력은 그 인구와 마찬가지로 더 늘어날 것이다. 경제력과 인구의 증가는 중국과 미국 모두가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인구는 줄어들고 있으며 미국은 국내 정치의 양극화로 인해 경제 성장 및 리더십 역량 확충에 있어서 난관을 겪을지 모를 상황이기 때문이다. 경쟁 관계에 있는 두 국가는 향후 수십여년간 상대적인 국력 약화를 겪게 될 것인데, 이는 미중 양국과 아세안 국가들 사이에 벌어져 있는 힘의 간극을 좁히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다가올 수십년은 동남아시아 지역이 국제적으로 앞서갈 수 있는 시기가 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동남아시아 권역이 향후 몇 년 간 세계 그 어느 곳보다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할 것이라 예측하고 있다. 만약 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게 된다면 동남아시아가 아시아-태평양 권역의 성장을 이끌게 될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제1위 인구대국 인도네시아와 제3위 인구대국 베트남은 20년 후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행보를 밟고 있다. 그때가 되면 동남아시아의 세계적 영향력 역시 확연히 늘어날 것이다.


아세안 회원국 대부분에게 있어서 요동치는 세계는 환영할만한 일이 아닐 것이다. 국제 관계의 관리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고, 여러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그런 것보다 자국의 개발에 우선순위를 두고 싶어할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유연성과 적응력 덕분에 심지어 어려운 시기에도 해당 지역 국가들은 번영과 영향력 확대를 지속해나갈 것이다. 유연한 적응 전략은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하여금 파편화된 세계를 잘 다룰 수 있게끔 해주며 서로 어울리지 못하는 집단간의 거래를 이룰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동남아시아의 적극적 중립 접근법은 냉전기 비동맹운동이 택했던 수동적인 비동맹보다 확실히 더 나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방대한 외교 커넥션 망은 그들의 정치적인 운신의 폭을 확장시킬 것이며, 협상력과 경제성장을 강화시킬 것이다. 많은 국가들과 사귀는 것은 어느 나라와도 사귀지 않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일이다.


어쩌면 동남아시아의 전략은 '비동맹'이 아니라 '다동맹'으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동남아시아는 맺을 수 있는 한 많은 관계를 맺고 많은 선택지를 확보하려 한다. 중국과 미국 뿐 아니라 호주, 인도, 일본, 유럽 국가들 역시 동남아시아 지역과 무역, 투자, 국제 대화 참여 등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모든 연결고리를 만드는 일에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동남아시아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이, 개발도상국들이 강대국들의 갈등을 피하면서 스스로 국제 무대의 주도적 선수가 되는 것은 효과도 좋고 충분히 가능한 전략이다.



흐엉 르 추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대학의 퍼스 미국 아시아 센터에서 선임 펠로우로 일하고 있으며, 미국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비상근 펠로우다.


역자 노정태는 자유기고가·번역가로,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칸트 철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 시사·정치 전문지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프리랜서』, 『탄탈로스의 신화』, 『논객시대』 등이 있다.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실전 격투』, 『정념과 이해관계』, 『밀레니얼 선언』,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 『아웃라이어』,『칩 워』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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