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만의 눈부신 경제적 성취가 불안한 긴장을 낳고 있다

대만의 통화는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되어 있고 무역흑자는 세계 최대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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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2025.12.12 15:59

The 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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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은 명목 1인당 GDP뿐만 아니라 물가를 감안한 PPP에서도 한국, 일본보다 높습니다. 숫자로만 본다면 대만인들은 한국인, 일본인보다 잘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대만인들은 소득도 낮고 주택 가격도 너무 높아 실제 생활 수준은 숫자와 다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11월 15일에 '대만 경제 호황 뒤에 숨어 있는 리스크'라는 커버스토리를 실었고, 아래에 소개하는 기사를 빅리드 기사인 '브리핑'으로 내보냈습니다. 이 기사가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 경제가 대만 경제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현재 한국의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과거 외환위기 영향으로 1997년에 1695원까지 올랐다가 노무현 정부 당시 환율이 900원대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지만 보통은 1000원을 조금 넘는 정도를 유지했습니다. 이러던 환율이 최근 몇년간 계속 오르더니 2023년을 기점으로 급등하고 있습니다. 물론 원화 가치가 낮으면 수출기업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국내 물가를 높이고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을 낮춰 서민들의 생활을 압박하다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대만은 대만달러 평가절하 정책을 '국책'으로 오랫동안 이어왔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서민들의 생활고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책이 언제까지 지속가능할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과거 국민당 정권 이래 모든 대만 정권은 중앙은행(중화민국중앙은행: 약칭 CBC)을 경제정책의 중핵 기관으로 장악해 통화량 확대, 기준금리 인하, 미국 국채 매입 등의 정책을 통해 '대만 달러 저평가' 정책을 유지해왔다고 합니다. 대만과 한국의 경제 사정을 비교해가며 이 기사를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환율 1500원 육박'입니다.


대만은 눈부신 경제적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동시에 충격적인 불균형에 흔들리고 있다. 대만은 물가를 감안한 1인당 소득(PPP)이 호주, 독일, 일본보다 높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지만, 이코노미스트의 빅맥 지수에 따르면 통화가 세계에서 가장 저평가된 경제이기도 하다. 대만 경제는 질주하고 있지만, 난장판 같은 조정을 겪을 위험도 안고 있다. 경제 운영이 진퇴양난의 '셰익스피어식 딜레마'를 자주 수반하는 일은 아니지만, 대만이 맞닥뜨린 난제는 실로 고통스럽다. 대만 중앙은행(CBC)은 나라를 이렇게 부유하게 만든 정책을 쉽게 포기하기 어렵지만, 그 정책을 고수하는 것 역시 분명 지속가능하지 않다.


겉으로는, 들려오는 소식들이 모두 좋다. 세계는 TSMC와 다른 현지 업체들이 만들 수 있는 속도만큼 대만산 반도체를 쓸어 담고 있다. 반도체와 서버 수출은 지난 5년 동안 300% 폭등했으며, 그 이전부터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이 급증은 천문학적인 무역흑자를 낳았다. 10월 대만의 월간 상품무역 흑자는 226억 달러(연율 기준 GDP의 3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적 소득 흐름과 무역수지를 포함한 경상수지 흑자도 올해 들어 GDP의 16%까지 불어나 2010년대의 10%에서 크게 늘었다.


대개 한 나라의 수출이 급증하면, 그 나라의 통화는 강세를 보이기 마련이다. 외국인이 그 나라 상품을 사기 위해 더 많은 현지 통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경제에 해를 끼칠 수 있다. 1970년대 이코노미스트는 네덜란드에서 천연가스 수출 호황으로 네덜란드의 통화인 길더화가 절상되어 다른 네덜란드 상품이 외국인에게 더 비싸지며 비가스 부문의 경제가 타격을 받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네덜란드병"이라는 표현을 만들어냈다.


수십 년 동안 대만이 수출 중심 방식으로 번영을 이루는 동안, 대만 중앙은행은 현지 통화 가치를 억제해 이런 상황을 피하려 해왔다. 실제로 대만 달러를 대량 발행해 팔고, 그 대가로 미국 달러를 사들였다. 이는 대만 수출품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큰 왜곡을 초래했다. 대만의 경상수지 흑자는 비대해졌고, 외환보유액은 쌓여갔으며, 집값은 급등했다. 이러한 불균형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꾸준히 확대되어 왔으며, 현재는 유사한 다른 경제들과 비교해 훨씬 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를 '대만병' 혹은 '포르모사 독감'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즉,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통화 가치를 억누르려고 노력할 때 나타나는 우려스러운 경제적 긴장이다. 이 증세는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치료 없이 나아질 가능성은 분명히 없다.


너무나 낮은 통화 가치

이 질환의 가장 분명한 증상은 대만 달러의 가치다. 그것은 얼마나 저평가되어 있을까? 빅맥 지수는 맥도널드의 동일한 햄버거는 각국의 상대적 부(富)를 감안하면 어느 나라에서든 같은 가격이어야 한다는 전제에 기반한다. 대만의 빅맥 가격을 미국 달러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미국보다 훨씬 낮다면, 이는 대만 달러가 저평가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대만의 빅맥 가격은 미국보다 56% 싸다. 미국이 대만보다 약간 더 부유하다는 점은 전체 그림에서 큰 변수는 아니다. 이를 조정해 계산하면, 대만 달러는 55% 저평가되어 있으며, 이는 올해 초 비교적 큰 폭의 절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코노미스트가 추적하는 53개 통화 중 가장 저평가되어 있다.


대만 달러의 가치를 비교하려는 보다 정교한 시도들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준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윌리엄 클라인이 만든 지수는 통화의 "기초적 균형환율", 즉 경상수지 흑자를 GDP의 3% 이하로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을 평가한다. 클라인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 이후 대만 달러는 이 균형 수준보다 평균 24% 약세를 보여왔다.


대만 중앙은행은 대만 달러 가치를 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단지 "바람에 약간 맞설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만 중앙은행이 환율의 방향에 무관심하다면 외환보유액은 오르내리거나, 많아야 투자 수익 때문에 소폭 증가하는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실제로는 외환보유액이 1998년 900억 달러(GDP의 32%)에서 6000억 달러(GDP의 72%)까지 꾸준하게, 그리고 대규모로 증가해 왔다.


이 '포르모사(대만) 독감'의 또 다른 증상은 대만의 거대하고 계속 커지는 경상수지 흑자다. 대만 중앙은행은 이것이 다른 나라들의 적자의 수학적 결과라고 설명한다. 미국처럼 저축보다 투자가 많은 국가들은 그 반대인 대만 같은 나라가 차이를 메워주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왜 대만의 저축이 그렇게 많은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가능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빈약한 국내 투자 기회, 급속한 고령화로 인한 노후 대비 저축, 갑작스러운 수출 호황 등이다. 그러나 이 어떤 요인도 저축 과잉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국내 투자가 비정상적으로 낮아 보이지도 않는다. 국내 투자는 GDP 대비 비율로 독일, 일본, 한국 등 다른 부유한 수출지향 국가들과 비슷하다. 대만의 인구 구조 또한 동아시아에서 특별히 예외적이지 않다.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비슷한 한국의 경우 초과저축 규모는 대만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 5년 동안 반도체 수출이 급증하긴 했지만, 그 규모는 지난 25년간 대만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된 전체 흐름을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대만의 저축 규모는 수출 촉진을 위해 설계된 경제의 전형이라 할 중국과 거의 비슷하다. 대만의 국민총저축률은 GDP의 39%로, 선진국 평균 22%를 훨씬 웃돌며 중국(42%)과 거의 같은 수준이다. 이처럼 저축이 많다는 것은 대만 국민이 누릴 수 있었던 소비가 크게 억제되어 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1998년 이후 민간소비는 GDP 대비 비중이 20%포인트나 떨어져 45%가 되었다. 이 역시 중국(40%)과 비슷하며, 선진국 평균인 60%보다 훨씬 낮다.


노동자들의 고통

이 모든 분석이 건조하고 기술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대만 중앙은행은 사실상 대만의 수출 경쟁력 유지를 위해 평범한 대만 국민의 생활수준을 희생하고 있는 셈이다. 비판가들은 대만 중앙은행이 수출 증가를 거의 광신적 집착으로 최우선시해 국가에 여러 방식으로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통화 가치를 약하게 유지하면 수출업자에게는 보조금 역할을 하지만 수입업자는 그만큼 손해를 본다. 식량과 연료(차량 및 발전용)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대만에서는 이것이 곧 저소득 가구에서 수출기업 소유주와 종사자에게로의 소득 이전을 의미한다.


대만 노동자들은 억울함을 느낄 만한 이유가 있다. 노동생산성은 1998년 이후 두 배로 늘었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이나 임금이 억제된 중국과 달리 임금은 이에 보조를 맞추어 상승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산출 단위당 받는 임금을 나타내는 단위노동비용은 같은 기간 25% 감소했다. 다시 말해, 대만 산업 생산이 커지는 동안 그 과실에서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몫은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무엇보다 대만 중앙은행의 정책은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려 평범한 대만 국민의 구매력을 더욱 약화시켰다. 통화를 싸게 유지하기 위해 찍어낸 대만 달러가 시중에 넘쳐나면서 금리가 하락한 것이다. 대만 중앙은행은 예금증서(CD)를 발행해 금융 시스템에서 현금을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이 돈의 일부를 흡수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태화'는 부분적일 뿐이다. 대만의 은행들은 여전히 자금이 넘쳐흘러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주택 구매자들에게 평균 2%의 금리로 대출을 해왔다(1998년 평균 금리는 8%). 이런 초저금리와 높은 저축률이 결합하면서 집값은 천문학적으로 치솟았다. 대만 중앙은행은 최근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시도했고 가격이 약간 조정되었지만, 여전히 1998년 대비 4배 이상 높다. 타이베이의 중위 주택가격-소득 비율은 16(즉 1600%)으로 런던, 뉴욕, 서울보다도 높다.


정책 결정자들과 유권자들조차 이러한 비용을 수출 주도 성장을 지키기 위한 감내할 만한 희생으로 여길지 모른다. 그러나 불룩해진 경상수지 흑자가 만들어낸 불균형은 금융위험을 키울 수도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대만 중앙은행은 대만 달러를 팔아 쌓아온 막대한 외화를 해외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준비금 축적 속도는 둔화되었는데, 이는 대만 중앙은행이 미국이 또다시 대만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일 수 있다(미국은 과거 두 차례 그렇게 한 적이 있다). 대신 대만 중앙은행은 생명보험 산업이라는 채널을 통해 이 막대한 외화를 보다 은밀하게 흘려보내는 방법을 찾아냈다.


대만에서는 생명보험의 인기가 대단히 높아, 1인당 평균 두 개 이상의 보험을 보유하고 있다. 보험사들은 가계 저축을 외국 자산, 주로 미국 국채에 투자한다. 2012년 이후 이들 보험사의 해외자산 보유 비중은 두 배인 31%로 늘어난 반면, 대만 중앙은행의 비중은 절반으로 줄어 19%가 되었다. 대만 중앙은행은 외환스와프 시장에서의 개입을 통해 보험사들의 위험을 줄여주며 해외투자 열풍을 부추겼다. 지난해 말 기준 대만 중앙은행은 770억 달러 규모의 관련 파생상품을 보유했는데, 사실상 보험사들이 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하는 비용을 크게 낮춰준 셈이다.


대만 보험사들은 보험가입자들에게 9600억 달러의 지급 약속을 해두었고, 이를 수익률이 더 높은 해외 자산(주로 미국 자산) 7000억 달러로 뒷받침하고 있다. 이 산업은 결국 대만 달러로 된 약속을 미국 달러 자산으로 떠받치는 불안한 미스매치를 안고 있다. 대만 중앙은행이 환율 변동 노출을 줄여주었다고 해도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만 달러가 강세로 전환되면 보험사의 해외 자산 가치는 감소하지만, 부채는 줄지 않는다. 미국 경제학자 브래드 셋서와 조시 영거는 헤지되지 않은 위험이 약 2000억 달러, 즉 대만 GDP의 약 4분의 1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대만 달러가 급격히 절상될 경우 보험사들은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파산하도록 내버려두면 대만 저축자들에게 치명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이제 보험사들은 '너무 커서 망하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대만 중앙은행이 단순히 무모해서 이런 정책을 펴는 것은 아니다. 그 정책의 뿌리에는 대만이 느끼는 취약성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이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시도 때문에 대만은 IMF 회원국이 아니다. 따라서 통화위기가 발생하면 의지할 뚜렷한 구제 장치가 없다. 중국과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외화 부족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약한 통화와 그로 인해 축적되는 막대한 외환보유액은 첫 번째 위험을 막고 두 번째 위험을 대응하는 데 모두 도움이 된다. 대만 중앙은행은 이러한 접근이 1997~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동안 정당화되었다고 믿는다. 당시 한국이 IMF에 580억 달러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던 것과 달리, 대만은 큰 타격 없이 위기를 넘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출을 중시해온 정책 덕분에 대만은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잘되고 있는 일을 굳이 바꿀 이유가 있을까?


현 상황을 지키려는 강력한 세력들이 즐비하다. 수출업체들은 통화 절상을 막기 위해 당연히 맹렬히 로비한다. 골드만삭스의 추산에 따르면, 상장 대만 제조업체 수출의 절반은 환율이 10%만 올라가도 수익성이 사라질 수 있다. 저기술 제조업체는 제조업 일자리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들은 주로 가격 경쟁에 의존하기 때문에, 싼 통화는 거의 생존 자체에 필수적인 요건이다. 기계공업 대표이자 공작기계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데이비드 추앙은, 올해 대만 달러가 절상되면서 회사가 고통스러운 계약 재협상을 벌여야 했다고 말한다.

대만 제조업의 취약성

가격 결정력이 더 큰 반도체 업체들조차 대만 달러가 절상되면 타격을 입는다. TSMC는 환율이 1% 오를 때마다 영업이익률이 0.4%포인트씩 깎인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다른 반도체 업체인 '윈 세미컨덕터스'의 데니스 천은, 제조업체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부가 통화 "투기꾼"들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이런 요구에 공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기에 대만 중앙은행이 정부에 이전하는 이익금은 이미 핵심적인 재원으로 자리 잡았다. 2023년에는 이 이전 이익이 전체 정부 수입의 6%를 차지했는데, 선진국 평균은 0.4%에 불과하다. 어떤 호황기에는 대만 중앙은행이 정부 수입의 15%를 책임진 해도 있었다.


대만 중앙은행은 대만 정치에서 비상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관료들은 대만 중앙은행을 두려워한다. 한 전직 장관은 "우리 중 누구도 전능한 총재를 비판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1998년부터 2018년까지 총재를 지낸 펑후이난과, 그가 직접 지명한 후임 양진룽은, 비판자들이 속한 기관의 상사에게 전화를 직접 걸어 항의하기로 유명했다는 것이, 관련 상황을 직접 아는 네 사람의 증언이다.


2021년 출간된 대만 중앙은행 비판서 '부유해질 특권'에서 대만 경제학자 네 명은 대만 중앙은행이 비판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을 두고 "저개발국 중앙은행과 같은 행태"라고 주장했다. 미국 연준처럼 합의 기반으로 움직이는 중앙은행과 달리, CBC에서는 펑후이난과 양진룽 두 사람이 의사결정을 사실상 장악해왔다는 것이다.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대만 중앙은행 부총재를 지낸 천난광은 "대만 중앙은행 내부에서도 외환정책에 비판적인 동료들이 많다"며 "하지만 대만 중앙은행에는 다양한 형태의 위협 수단이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전직 부총재에 따르면, 대만 중앙은행 총재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만에서 총통 다음이다. (펑후이난의 재임 기간은 네 명의 대통령 임기와 맞물린다.) 이는 부분적으로 대만의 정치사를 반영한다. 중국 내전에서 패한 국민당 정권이 1949년 대만으로 퇴각한 뒤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는 1987년까지 유지됐다. 중앙은행은 집권 국민당이 구축한 권위주의 체제의 일부가 되었고, 총재직은 고위 공직으로 가는 디딤돌로 여겨졌다. "국민당은 경제를 장악하려면 중앙은행뿐 아니라 시중은행까지 틀어쥐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지금도 별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만 중앙은행 이사 출신이자 근간 예정인 대만 경제제도 관련 책의 저자인 우쫑민의 말이다.


오늘날 대만 중앙은행이 전문관료 조직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권력을 과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2021년 대만 중앙은행은 몇몇 대형 외국 은행의 통화 헤지 거래를 금지했다. (이들이 저질렀다고 지목된 잘못은 곡물 파생상품 투기를 부추겼다는 것이었다.) 이런 강경한 태도는 외국 은행들을 겁먹게 만든다고, 최근 대만에서 영업을 확대한 한 은행 직원은 말한다. 대만 중앙은행의 비판을 받으면 영업에 타격이 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만 중앙은행은 내부의 이견도 꺼린다. 두 번째 전직 부총재는 "대만 중앙은행의 환율정책을 비판한 뒤 집권 국민당 의원들로부터 '투기꾼들에게 길을 터주는 행위'라며 공개적으로 질책을 받았다"고 회고한다.


대만 중앙은행은 자신들의 실적이 모든 것을 증명한다며, 중앙집중과 위협 행위에 대한 비판을 "근거 없는 주장"으로 일축하고 비판자들의 동기를 문제 삼는다. 대만 중앙은행은 대만 달러가 강세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에 전혀 설득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대만 중앙은행도 결국 외부 압력에 밀릴 수 있다. 5월에는 미국 통상 협상단이 대만 달러 절상을 요구했다는 소문만으로 이틀간 환율이 9%나 뛰어오르는, 위기 상황에서나 볼 법한 급등이 벌어졌다. 지난 몇 달 동안 대만 달러 가치는 다시 서서히 떨어지고 있지만, 대만은 아직 중국, 일본, 한국과 달리 미국 새 행정부와 통상 협정을 타결하지 못했다. 대만 달러의 가치는 진행 중인 협상에서 언제든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 사이 세계가 대만산 반도체를 향한 끝없는 수요를 이어가면서 대만의 무역흑자는 계속 치솟고, 통화 절상 압력은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 이는 생명보험사들의 통화 미스매치가 내포한 위험을 키우고, 미국 협상단 내부의 반감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다. 대만의 통화 평가절하 정책은 과거에는 나름 잘 먹혀들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지속 가능성은 점점 더 의심스러워지고 있다.

1843년 창간돼 국제정세와 정치, 경제, 사회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주간지. 정통 자유주의 성향의 논평, 분석이 두드러지며 기사에 기자의 이름(바이라인)을 넣지 않는 독특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PADO가 가장 탐독하는 매거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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