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성의 저수조: 가브리엘 칼보코레시의 『새로운 경제』

가리엘 칼코레시의 시집 '새로운 경제' 표지. /사진제공=Copper Canyon Press

오늘날 책 제목에 "경제"라는 단어가 들어간 시집을 집어들면서, 누구라도 희망이나 안도감을 느끼게 될 것 같지는 않다. 2025년의 경제란 무역 전쟁이고, 주택 부족이며, 한 판의 달걀 값이 치솟는 현실이다. 이 주제만으로도 충분히 논쟁적인데, 가브리엘 칼보코레시(Gabriel Calvocoressi)는 사순절을 기념하는 일련의 시들을 통해, 최근 시집 『새로운 경제』(The New Economy)의 후반부를 종교에 할애한다. 칼보코레시는 자신을 "유일무이하게 미국적인 목소리"라고 부르는 것을 오래도록 거부해 왔다—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종교와 경제를 둘러싼 불안한 집착만큼 첨예한 문제는 드물다. 그런데도, 칼보코레시는 특유의 호기심과 유머를 통해 이처럼 자주 정치화되는 주제들을 비틀어 놓는다. 그 결과 『새로운 경제』에 실린 시들은 넘치는 생기와 감각적인 풍성함으로 빛나며, 그렇지 않았다면 진부하고 상투적으로 느껴졌을 개념들을 현대적 상황과 연결될 수 있는 풍성한 기회로 바꾸어 놓는다.


이 책은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역사들이 소용돌이치듯 휘몰아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그것은 삼림 파괴만큼이나 보편적이면서도, 차가운 얌 국수 한 그릇만큼이나 구체적이다. 첫 번째 시 「해먼드 B-3 오르간 저수조」("Hammond B-3 Organ Cistern")는 "내가 자살하고 싶지 않은" 모든 날들을 기리는 축하의 노래다.


거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
나와 하이파이브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보이면 뛰어오른다,
그러니까 정말로, 뛰어오른다.

"할렐루야!"라고 시는 끝을 맺는다. 그러나 칼보코레시의 환희는 오래가지 않고, 시인은 곧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한다.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걸까?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솔직하게 말하지" 못한 채 이어지는 시들에서, 칼보코레시는 나무들에게 말을 건네고, 점점 더 큰 위기들로 나아가며, 인류가 어떻게 자신의 땅과 다른 동물들을 저버렸는지를 떠올린다. "우리가 어떻게 / 우리가 신성하다고 생각했을까? 우리가 /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이런 생각은 시인을 구역질 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보코레시는 개인적인 비극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첫 번째 섹션 곳곳에는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들에게 바쳐진 일련의 「네가 그리워」("Miss you") 시들이 흩어져 있으며, 그 시편들은 이 시집을 친밀하고 관계적인 공간에 단단히 붙들어 둔다. 자신을 이해해 주고,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야기하도록" 도와주었을 누군가와의 식사. 후추와 육두구로 간을 한 구운 토마토, "부풀어 오른 파란 재킷": "요즘엔 그게 유행이야. 새 걸 하나 가져다줄게, / 네가 잠깐만이라도 들러 준다면."


첫 번째 섹션의 시들은 불안에 차 있고, 신체적 제약, 밀폐된 방들, 환경 파괴와 같은 물리적 위협들이 장황하게 열거되어 짓눌려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을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는 칼보코레시의 시선은 혼란스럽기보다는 오히려 조화로운 사유를 보여 준다. 그 불안의 밑바탕에는 놀라울 만큼 단단한 현실 감각,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결의가 깔려 있다. 2017년, 칼보코레시는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Los Angeles Review of Books)에서 조너던 파머(Jonathan Farmer)와 대화를 나누며 "민주적인 시"(democratic poem)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대신해 나서서 말할 수 있는 세계를 불러오는 개념이다. 첫 두 권의 시집, 『내가 아멜리아 이어하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The Last Time I Saw Amelia Earhart, 2005)와 『묵시록적 진동』(Apocalyptic Swing, 2009)이 각기 고유한 목소리를 지닌 다양한 페르소나들을 담고 있었다면, 칼보코레시는 2017년 시집 『경이로운 로켓』(Rocket Fantastic)의 목표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그 매개체들, 그 인물들이 완전히 자기 자신처럼 들리면서도 동시에 나처럼 들릴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왜냐하면 그들은 나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새로운 경제』는 이러한 전통을 이어 간다.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새로운 경제"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민주적인 시와 그 잠재력에 대해, 끈질기게 희망을 품으면서.


어떤 결론을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는 칼보코레시는, 몸 안에서 존재한다는 것의 혼란을—젠더의 문제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쇠락해 가는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경험과 그에 따르는 책임까지 포함하여—솔직하게 다룬다. 이 시집은 앎과 모름 사이를 흔들리듯 오간다. 영혼이나 몸을 가리키는 말들은 추상적이고 영적인 것들("빛의 몸," "그릇," "통로들")에서부터, 원초적이면서도 묘하게 유쾌한 표현들("피부 자루," "피부 집," "너의 동물")까지 폭넓게 펼쳐진다. 유기체와 그 환경 사이의 경계는 견고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나무들과 나는 입을 / 함께 벌리고 다른 / 종류의 매개체가 된다." 칼보코레시는 시 제목에 "저수조"(cistern)라는 단어를 가장 자주 사용하지만, 본문 전반에 걸쳐 이 용어는 한 사람의 몸, 호수, 눈이나 귀를 가리키기도 한다—각각의 사물은 다른 무언가를 담거나, 심지어 그것이 될 잠재력을 지닌다. 한 편의 시는 이렇게 단순하게 시작한다. "도처에서 미끄러지며." 처음에는 무엇이 정확히 미끄러지고 있는지 모호하지만, 시의 제목은 여섯 가지 서로 다른 주어의 가능성을 드러낸다. 「빛 몸 저수조 눈구멍 진자 귀환」("Light Body Cistern Eyehole Pendulum Return"). 빛은 앞뒤로 흔들리며 칼보코레시를 후광처럼 감싸다가, 갑자기 이렇게 전환된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 있었고, 그 구역질은 … 빛이 되었다." 시간과 공간은 손아귀를 벗어나고, 내적인 혼란은 현실의 환경으로 넘쳐흐른다. "시장 안에서. 식탁에서."


칼보코레시가 한 편의 시를 새로운 패러다임 속으로 느슨하게 내려 앉히면서 마무리할 때, 문득 찾아오는 명료한 순간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시들의 구조적 모호함 때문에 언제라도 생각을 바꿀 여지는 남아 있다. 「나의 폐경 이행기 몸 저수조 실망 얼마나 뜻밖인가」 ("My Perimenopausal Body Cistern Disappointing How Surprising")에서 칼보코레시는 자신의 자궁을 "슬픈 세입자"라고 부른다.


어느 날 그 세입자는 바뀌어 
나타났다, 내 집주인으로. 나는 하루 종일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내가 무엇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그 시계,
그러나 한 번도 원한 적 없던 것.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못할 것.

경제적 거래로 비유된 이 관계에서 시인에게 부여되는 역할은 분명하지 않다. 시인은 자신의 몸의 주인일까, 아니면 그 몸의 피해자일까? 행 나눔은 이러한 효과를 더욱 증폭시킨다. "바뀌어"—즉 방향을 틀고, 비틀리고, 전환한—세입자의 이미지는 갑작스럽고도 단정적인 듯 보이면서도 모호하게 멈춘다. 그러다 그것은 다시 타동사 "바뀌어 나타났다"라고 풀려나가며 의미가 뒤집힌다. 하지만, 마지막 행들은 또 다른 가능성을 암시한다. 몸은 그저 "기묘한 동반자"일 뿐이다. "나를 내려다보던 이 베개. 베개 / 피부와 지방의 베개가 […] 최선을 다했다. 나를 덮으려고." 자기 자신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서, 칼보코레시는 어떤 최종적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을 거부하며, 아무런 비판 없이 불확실성과 불편함을 기록한다.


그 시들의 결말이 언제나 그렇게 체념적인 것만은 아니다. 칼보코레시는 때때로 현실 바깥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면서도 황홀한 해결책을 상상한다. 한 편의 「네가 그리워」("Miss You") 시에서 시인은 친구와 농구를 한다. "나는 굴 속에서 가장 사나운 호저야. 친구, / 밝은 분수에서 마시자. 빛이 / 우리 수염 돋은 턱에서 똑똑 떨어진다." 한편으로는 화자가 상상 속의 이상적인 몸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문자 그대로 인간이라기보다 호저에 더 가까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 시의 장난기 어린 분위기는, 인간이 아닐 때 가장 기쁨에 차 있는 듯이 보이던 칼보코레시의 초기 화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경이로운 로켓』에 실린 「면도」("Shave") 역시 비슷한 자신감을 발산했다. "내가 숫사슴이기에 나는 고개를 / 좌우로 돌린다. […] 보라, 암사슴이 다가오고 / 비둘기들도, 그리고 또한 / 나를 지나가게 두는 늑대도." 그 늑대는 어쩌면 단순히 시인이 곁으로 지나가게 두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시인이 어떤 새로운 존재—숫사슴, 호저, 동물—로서 통과하도록 허락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사순절 시들"의 마지막 섹션에 실린 「오늘은 시가 없어」("No Poems Today")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경제"(economy)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칼보코레시는 "오늘은 시가 없다"고 쓴다. "네가 여기 있으니까. 먹을 수 있는 따뜻한 / 빵이 있으니까. 치즈와 잼을 곁들여." 집에 찾아온 친구와 함께 시인은 씨앗 카탈로그를 들여다보며 풍요로운 세계를, 원하는 모든 식물을 심을 수 있는 공간을 가진 집을 상상한다.


나는 여전히 
우리 앞에 수년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다고 
상상할 수 있어. 우리가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곳.
새로운 경제, 그리고 그래, 나는
밤에는 운전할 수 없다는 걸 알아. 하지만 누가
미래에 어딘가로 가야 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친구들이 찾아오겠지. 별들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게 얼마나 좋을지 상상해 봐.

새로운 경제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 수도 있다—이 시집에 실린 몇몇 시들은 돈과 성공이 지닌 매혹을 인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풍요는 아예 부(wealth)라는 사회적 패러다임이 부재하다고 전제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경제란 생산이나 소비 같은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것을 가지고 잘 살아가려는 태도, 돌봄과 배려를 실천하려는 헌신을 뜻한다—사순절 동안 매일 자리에 앉아 한 편의 시를 쓰며 그 시간을 최대한으로 살아내는 기쁨 같은 것 말이다. 「무엇이 오늘 내게 최고의 즐거움을 가져왔을까?」("What brought me the most pleasure today?")에서 독자들은 몸이 아프고 코가 막히던 시간을 지나 "마침내 양파 냄새를 맡게" 되는 화자의 안도감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시는 이 짧은 순간을 몇 분으로, 심지어 몇 초로까지 쪼개어, 각각의 기쁨을 기린다. "고양이 털의 온기. 내가 일하는 동안 / 기다리고 있는 이 한 잔의 차." 칼보코레시의 절제된 문장 역시 이러한 태도를 구현한다. 한 편의 시를 통해 인류의 이기심을 곱씹으며, 시인은 언어보다는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한다.


모든 존재는 어떻게 제 이웃을
도살하게 되는지, 배가 고프면
또      진짜 그렇다면.

혹은, "정말로 너라는 동물을 알라"고 쓸 때, 칼보코레시는 그 행이 하나의 진술로도, 곧 당신이 동물이라는 사실을 정말로 알라는 명령으로도 읽힐 여지를 남겨 둔다.


『새로운 경제』는 이러한 모호함을 찬미한다.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 단어들은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기보다 오히려 확장시키며, 정체성이 미끄러지는 과정을 반영한다. 시집의 마지막 시들은 종교와의 관계 속에서 모순적인 면들을 담아낼 수 있을 만큼 언어를 확장하는 칼보코레시의 능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준다. 화자는 그리스도를 자주 생각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어렸을 때도 그랬다." 실제로 시인의 어린아이 같은 경외와 혼란은 그리스도를 이 책에서 가장 신비롭고, 기이하며, 심지어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이미지로 만든다. 칼보코레시는 십자가 형벌을 상상한다. "그 고통 // 은 물론이지만," 그 너머로, 위의 "하늘은 어떻게 보였을지," 혹은 아래의 땅은 어땠을지를 생각한다. 황량했을까, 아니면 어떤 식물들은 꽃을 피우고 있었을까? 그리고 동시에 확신에 차 있으면서도 머뭇거리는, 자기 인식적인 고백이 이어진다. "나는 / 그것을 시처럼, 혹은 // 시를 위해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런 종류의 경제가 아니다." 다시 그 단어가 "시"라는 단어와 같은 행 안에서 등장한다. 그것은 솔직한 호기심을 북돋아 주는 경제다. 시를 위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시와는 별개로 아름다움과 진실을 추구하려는 태도 말이다.


"예수라면 무엇을 했을까," 칼보코레시는 솔직함과 아이러니를 반씩 섞어 자문한다. "범퍼 / 스티커 말고," 시인은 덧붙인다. " 사랑이 많은 만큼 / 분노 또한 많았던, 보살이자 / 젊은 남자. 그 젊은이는 / 무엇을 했을까?" 이보다 더 민주적인 것이 있을까. 오늘날의 기독교 슬로건 하나가 『새로운 경제』 속에서 더 넓은 가능성의 길로 열리는 것. 자비의 한 장면—십자가 위의 예수가, 신으로서가 아니라 한 젊은 남자로서, 또 하나의 젠더화된 매개체로서, 불교적 열반에 이르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