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작가와의 대화] 아다니아 쉬블리: 팔레스타인에서, 트라우마와 안일한 언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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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의 영문판 표지. /사진제공=New Directions

2024.01.0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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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 주 - 윤경희>


아다니아 쉬블리(1974~ )는 팔레스타인 작가이자 미디어와 문화학 연구자이다. 영국과 프랑스 텔레비전의 911 테러 및 후속 전쟁 시각화에 관한 논문을 쓰고, 소설 세 권과 에세이 한 권을 출간하고, 여러 매체에 희곡, 단편소설, 산문을 발표했다. 이 중 『사소한 일』(2017)은 전승희 번역으로 강에서 출판되었다.


팔레스타인인은 1920년부터 1946년까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받고 1948년 이스라엘에 의해 추방과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이후 영토 대부분을 빼앗겨 전통적 유목 생활을 누리는 대신 거주지 제한을 겪고 있다.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가리키는 아무런 표지가 없고, 아랍과 아랍인이 멸칭이 되고, 이스라엘의 공습 경보를 들을 때마다 공포에 말이 막히는 경험을 해오면서, 쉬블리는 이러한 언어의 누락, 삭제, 폄훼, 불능, 침묵을 사유와 글쓰기의 깊은 원천으로 삼는다.


2023년 10월 18~23일에 개최된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쉬블리에게 리테라투어상이 수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0월 7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한 다음, 카르스텐 오테라는 독일 평론가가 쉬블리의 『사소한 일』이 반유대주의적이라 트집을 잡고, 도서전 측은 이스라엘과 전적으로 연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팔레스타인 작가를 위한 시상식을 열기를 연기했다. 〈뉴욕타임스〉는 도서전 측이 쉬블리와 협의했다고 보도했지만, 쉬블리는 소식을 일방적으로 통보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수십 년 동안 말이 지워지고 상처를 입는 것을 겪으면서 쉬블리가 지속적으로 사유한 "들을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학적 이율배반의 주제를 다시금 방증한다.



아랍 번역 문학을 소개하는 매체 〈아랍리트(Arablit)〉에서는 2023년 10월 16일 "팔레스타인의 문학적 목소리를 위한 공간을 폐쇄하고, 아다니아 쉬블리가 [도서전의] 결정을 미리 상의했다며 잘못된 주장을 펴고, 독일 언론이 쉬블리의 소설을 공격하는 것에 대응하여," 이에 항의하는 공개 서한을 발표했다. 서한에 번역, 편집, 출판, 언론, 문학 행사 조직, 창작에 관여하는 주체 1600여 명이 서명했다. 독자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저항과 연대는 독서이다. 아다니아 쉬블리,『사소한 일』, 전승희 옮김, 강, 2023을 같이 읽기를 청한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말들은 자기 자리를 찾을 것입니다: 트라우마와 안일한 언어에 관하여 팔레스타인에서 전하는 글쓰기


미레이유 주차우Mireille Juchau

2020년 9월 17일, BOMB Magazine (원문)


아다니아 쉬블리Adania Shibli의 『사소한 일』(2017) 전반부에서 이스라엘 국방군 장교와 그의 부대원들이 네게브 사막에서 베두인 소녀 한 명을 생포하여 유린한다. 1949년의 일이었다. 작가는 냉정한 전지적 시점과 과학 수사 같은 디테일을 통해 고통을 인식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기 몸의 통증에도 무감한 집요한 가해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중반에 이르러 소설은 현시점에서 당시의 범죄를 조사하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동요하는 마음으로 비약한다. 쉬블리의 엄정한 언어와 형식적 혁신은 마치 텍스트 여러 겹을 덧쓴 양피지 같은 효과를 창출한다. 과거가 현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방사선을 쬐는 듯, 실제는 부지불식간에 상상의 표면 위를 감돈다.


쉬블리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팔레스타인과 독일을 오가며 생활한다. 나는 그를 베를린 문학의 집에서 잠시 마주친 적이 있다. 1년 후 그의 세 번째 소설 『사소한 일』을 읽을 때,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아마추어 탐정의 이야기에 나는 온몸이 관통당하는 것 같았다. 소설의 배경은 과거와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가르는 불안정한 경계선 위이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 두 집단을 오가며, 그 사이의 교란된 땅, 박해, 불의에 주의를 집중하고 점령 치하 삶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데 있어서, 소설은 초연한 거리 감각을 유지한다.


우리는 쉬블리와 그의 아들이 팬데믹 격리에서 풀려난 직후 이메일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베를린은 여름이었고, 이들은 감염자 수가 치솟기 전에 팔레스타인으로 여행을 떠날 계획이었다. 여정은 그리스 코르푸 섬에서 일단락된 상태였다. 쉬블리는 그리스와 독일에서, 그리고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사진제공=National Book Foundation

작가 아다니아 쉬블리. /사진제공=National Book Foundation


미레이유 주차우(이하 MJ): 선생님은 『사소한 일』의 집필에 12년을 들이셨지요. 언어와 형식에 대해 생각하다가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고요. [과거 이스라엘 장교의 이야기와 현재 팔레스타인 여성의 말로 이분화된] 소설의 형식 및 시점의 대비를 처음부터 명확하게 염두에 두셨나요?


아다니아 쉬블리(이하 AS): 안일한 언어는 어떻게 고통을 초래하는가, 다른 한편 안일한 언어로 어떻게 고통을 회피하는가, 이 문제를 사색하던 중에 소설을 발상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 없이 오로지 이 두 가지 단초에서 출발했어요. 그런 다음 언어가 찾아왔지요, 12년 동안, 한 단어 한 단어씩이요. 형식과 내용은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는 말들을 장악하려는 대신 그저 매일 아침 그것들이 느릿느릿 나타나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말들은 때로 파리 같은데, 제가 살짝이나마 움직여서 놀래키면 날아가 버릴 테니까요. 소설의 각 부분마다 저에게 그것을 써나가는 절차를 명하는 것 같았습니다. 통제해 보기도 했지만, 효과가 형편없어서 그런 부분은 결국 삭제해야 했어요. 설명하기 곤란한데 그래도 매혹적인 과정이었습니다.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조리 있게 말할 수 없군요. 텍스트의 필자로서 그렇게 변변찮은 활약을 했다는 것을요. 때로 무섭기도 해요. 과정을 전혀 통제하지 않는다면 일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진행될 수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동안 우연이 중대한 역할을 맡아 저보다 더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MJ: 선생님은 여러 언어에 능통하지만 글은 아랍어로만 쓰시지요. 이 소설의 영어본을 위해서는 번역자 엘리자베스 자케트와 협업하셨어요. 언어가 작품의 출발점이었다고 하니, 두 분이 언어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누셨을지 궁금합니다.


AS: 저는 아랍어, 영어, 히브리어, 프랑스어, 한국어, 그리고 독일어를 압니다. 그 중 몇몇 언어는 상대적으로 더 잘하고요. 어떤 언어는 다른 언어 때문에 더 서툴게 되거나 아니면 더 유창해지기도 해요. 소설은 아랍어로만 쓰는데, 왜냐하면 이 언어는 마녀 같기 때문이에요. 놀랍고, 웃기고, 미쳤고, 마음씨 좋고, 잘못에 관대한 마녀요. 아랍어는 저에게 무엇이든 허용합니다. 아랍어는 제 삶에서 경험한 가장 친밀한 자유의 공간이랍니다.


번역 과정은 지난하지만 보람 있었습니다. 번역자에게 『사소한 일』의 텍스트는 마치 과적된 짐 같았을 텐데요, 소설의 언어를 형식적으로 결정하고 조직하는 데 특수한 경험이 개입되었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식민화와 압제에 의해 언어가 훼손된 방식들이라 할까요. 이러한 언어적 경험을 아랍어로 쓰려면 공간적 여유와 엄밀성이 요구됩니다. 쓴 것과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우리는 지속적인 교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케트는 이 정도로 고될 줄 예상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고, 편집자들도 [쓴 것과 쓰지 않은 것의] 여러 겹의 층위에 다가서려 애썼어요. 저는 사실 아무 언어도 유창하지 않아요. 어떤 낱말이 어떤 자리에 놓여서는 안 된다는 것만 감지할 뿐입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정확한 말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아랍어로 글을 쓸 때는 그 말을 찾아내는 데 며칠이나 걸리기도 해요. 영어에서 그 말은 더군다나 더 멀리 있지요. 하지만 어쨌든 저는 제 책을 읽을 필요가 없고, 그래서 안도감이 들어요, 저는 번역자와 작업할 때만 다시 제 책으로 돌아가는데, 그렇더라도 사실 그것을 다시 읽어야 할 의무는 없어요. 어떤 텍스트에든 작가로서 전념을 다하고 나면, 그리고 그것이 마침내 출판되거나 책 형태로 나오면, 저는 그것을 독자로서 결코 들여다 보지 않습니다. 출판된 제 텍스트를 읽는 데 왜 거부감이 드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기란 구명 밧줄 같은데도요.


MJ: 선생님의 독창적인 문체, 언어의 엄정함, 그리고 형식적 혁신으로 인해 우리는 꿈결의 영역에 진입하면서도, 동시에 감각을 자극하는 디테일들에 단단히 발 딛고 서게 됩니다. 소설의 두 부분은 회귀하는 모티프들로 연결되는데요. 짖는 개, 휘발유 냄새, 사막의 식물들 같은 것들이요. 글쓰기 과정에서 이러한 테크닉은 어느 시점에 생겨났는지요?


AS: 저는 언제나 반복에 매혹되었어요. 같은 말이 다시 등장할 때 상황의 경미한 변화에 따라 완전히 다른 생을 살게 되는 것에요. 오래도록 이런 현상에 골몰했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한 단계에서 그가 나에게 "미쳤어"라고 하는 것과 관계가 파국에 이르렀을 때 그렇게 말하는 것의 차이 같은, 저는 이런 게 재미있어요.


MJ: 마치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씀이시죠. 소설에서 몇몇 모티프가 다시 등장할 때, 그것은 애초의 효과를 환기하면서도 아주 다른 자질들을 띠는데요. 전반부에서 트라우마를 일으켰던 것은 후반부에서는 부조리의 일부가 되어요. 반복과 회귀라는 주제는 『사소한 일』에서 기술된 정치적 현실과 관련하여 특수한 역할을 하는지요?


AS: 정치적 현실과 그것을 분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고통에 관해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 듣는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다가도 지치게 되어요. 반복이야말로 바로 고통이 여전히 계속되고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할지라도요.


반복에 관해 문득 재미있는 일화가 떠오르네요, 질문과 상관없는 것이지만요. 20대 초반에 저는 예루살렘 구시가의 초등학교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비디오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모집 정원은 12-15명이었는데 약 200명이 지원했어요. 그래서 선발 기준을 고안했지요. 어린이들에게 그날 아침 근처 구시가의 통행문과 교문 사이 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한 쪽짜리 글을 쓰라고 했습니다.


그 중 190편 이상이 등교하다가 시각장애인 할아버지를 마주쳤는데 그가 길을 건너게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는 아이들이 서로 베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를 착한 사람으로 재현하는 가장 진부한 수사법에 기대면서요, 무언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말이죠. 이런 유형의 이야기를 쓴 아이는 뽑지 않았습니다. 아마 하나는 뽑았던 것 같네요, 약간 더 정교하게 쓴 것으로요. 그러다 어느날 수업 하러 학교에 가는 도중에 청백 줄무늬 교복을 입은 학생들 십수 명이 무리 지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각장애인 주위에 모여서 그가 길을 건너는 것을 도와주고 있더군요. 이 사건으로 인해 반복에 흥미가 점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문학에 관하여, 그리고 무엇이 현실적이라 인지되고 비현실적이라 인지되는지에 관하여, 제가 중요하게 배운 것 중 하나입니다.


MJ: 아이들 열 명이 반복의 의례를 행함으로써 사건이 다른 층위에 기입되는 것이로군요.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 소설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됩니다. 경합하는 현실들에 맞선다는 점에서요. 범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아내고자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로 운전해 가면서, 주인공은 여러 판본의 지도를 참조하지요. 하나는 이스라엘 당국에서 제작한 것인데 팔레스타인 마을들을 나타내는 징표가 전혀 없어요. 1948년 이전에 제작된 지도들에는 있는데요. 삭제와 동화에 관한 사유가 글쓰기 과정의 일부가 되었는지요?


AS: 지도 위 삭제된 언어의 자리는 우리가 언어의 배반을 처음 경험하는 장소입니다. 지도에서 팔레스타인을 삭제하는 짓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언어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어릴 때부터 이처럼 생략된 것들을 읽어내면서 구축됩니다. 이는 제가 첫 번째 소설을 쓸 때부터 관심을 기울였던 주제이기도 해요.

MJ: 선생님께서는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언급해 달라는 요청을 받으면 그것은 "폭력 행위[이며, 그에 응하는 것은] 인류의 역할"이라 말하며 거절하시는데요. 무언가의 "대변자"가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을 때 예술가로서의 주권을 어떻게 지키시는지요? 이러한 상황과 관련하여 독일과 팔레스타인의 차이가 있나요?


AS: 저는 어떤 것이든 대변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전혀 없어요. 사람들은 눈치가 좋아서 제가 제 작품조차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아요. 조심스럽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독일에서든 어디에서든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사실, 팔레스타인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특권적 위치를 지녔음을 전제하며, 저는 그런 입장에 동참하고 싶지 않습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저의 관심은 개인적인 것이지 문학적인 것이 아니에요. 팔레스타인에 대한 관심은 저의 문학을 형성합니다. 그렇더라도 저의 문학은 결코 팔레스타인에 관한 것이 아니랍니다. 저의 문학은 불의의 상황으로서, 그리고 고통과 수모가 정상화된 상황으로서, 팔라스타인의 안에서, 그리고 팔레스타인으로부터 존재합니다. 저의 문학은 언어의 한계를 드러냅니다. 인간들이 어떻게 태어난 첫 날부터 인간성을 박탈당하게 되는지 관심을 기울이는 자라면 누구든, 고통받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자기를 설득해 보라고 요구함을 넘어서, 그 고통을 해소시킬 방법을 모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고통을 보면서도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지요. 노예제, 식민화, 홀로코스트, 그 외에도 무수한... 이러한 행위들은 기나긴 시간에 걸쳐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것에 눈을 감는 법을 터득했어요.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 제가 탐구하는 것은 입장 취하기에 골몰하는 아무나가 아니라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었습니다. 이 문제에서 우리는 우리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어요. 특권 있는 자들은 어떻게든 자기의 특권을 타인들을 위해 희생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저는 냉혹하기보다는 현실적이어요. 염소들조차 다른 염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 그것을 알아차리건만, 인간들이라고 그러지 못할까요? 인간들이 그러지 않는다면, 저는 팔레스타인이든 무엇이든 모든 것에 대해 오로지 염소들만 신뢰할 권리를 갖고 염소들과만 말할 것입니다.


MJ: 이전 소설 두 권, 즉 『우리 모두 공평하게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2004)와 『접촉』(2002)을 포함해서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예술가 모나 하툼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하툼은 "나는 정치적인 진술을 직접적으로 하려는 게 결코 아니다. 머릿속에 정치적 사안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배경으로 존재한다. 작품에서 전경으로 나서지 않으며, 내 역사의 것으로 특정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 형식이다. 나는 질료에 그리고 미학에 집중한다"고 했어요.


AS: 하툼의 작업 방법에 혹하네요. 문학의 차원에서 저 역시 고민이 커지고 있거든요. 열 살 무렵 수업 시간에 실험적인 시를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언어가 기능성과 도구성으로부터 단숨에 스스로를 해방하는, 그런 유형의 시에 너무나 매혹되었습니다. 저는 서사 형식에 진정으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다가, 이 점은 제 글쓰기의 초창기부터 드러납니다만, 지난 몇 년을 거치면서는 서사 형식에 아예 지독한 구역감을 느끼게 되었어요. 구역감이라 말할 수밖에 없는데, 선형적 구조에 바로 그런 신체적인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에요. 마치 독재 정권 같은, 거대 서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구조 안에서입니다. 최악의 압제자처럼 강고하지요. 압제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라면 선형적 구조를 사용하려 합니다. 형식이 내용을 진술할 수 있게요. 선형적 서사 구조는 독재자입니다. 하지만 하툼과 달리 저는 추상이 아니라 엄밀성을 추구합니다. 텍스트 안에 존재하고자 하는 말들은 엄밀해지는 가운데 자기 자리를 찾습니다.


MJ: 흥미롭군요. 관습적 서사와 압제의 관계를 그렇게 분석적으로 서술하는 작가는 처음인 것 같아요. 임레 케르테스가 떠오르는군요. 케르테스는 『운명』(1975)을 "무조" 소설로서 썼는데, 왜냐하면 조성이란 규정되었거나 상호 합의된 도덕을 내포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케르테스는 "정지 상태의 도덕이 없는, 오로지 경험의 본원적 형식들만 있는 소설을 쓰기를" 바랐어요.


선생님께서는 『사소한 일』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구조적 경계선이 있도록 디자인하셨는데요. 다른 경계선들도 거듭 출몰하고요. 현시점의 주인공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오갈 때 통과해야 하는 검문소, 부대 장교와 베두인 소녀 사이의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허용치, 잔혹 행위에 대해 알아낼 수 있는 것과 오로지 짐작할 수만 있는 것 사이의 경계 같은 것들이요. 글을 쓰거나 구성할 때 경계선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셨는지요?


AS: 경계선들은 무엇을 막고 왜 막는가, 저는 이 문제에 이끌립니다. 때로 경계선을 인지하는 것과 그것의 의미는 상황이 변할 때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도요. 관찰하다 보면 꽤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2012년에 저는 「모두를 위한 벽」이라는 희곡을 썼는데요. 어떤 전시회 개막식에서 다투는 두 연인에 관한 극입니다. 우리는 이 극을 어떤 전시장에서 전시 첫날에 공연했어요, 사람들이 연극인 줄 모르게 하고요. 내용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장벽와 검문소가 필요한 이유를 정당화하는 이스라엘 외무부의 보고서에 기반한 것이었답니다. 정부의 프로파간다 뉴스의 표절판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단어 몇 개만 바꿈으로써, 그저 몇 개만요, 그리고 텍스트를 연인들의 대화로 설정함으로써, 프로파간다는 너무나 친숙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경계선이 바뀌어 어떤 영토가 다른 영토가 될 때, 그것이 의미를 어떻게 비약시키는지에도 저는 흥미가 있어요. 이를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시인 친구가 있는데, 연극의 결말에 아주 흡족해져서 대단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이스라엘 외무부의 프로파간다가 내용이었다고] 이야기해주었더니, 자기가 프로파간다를 칭송하고 있었다는 것을 순식간에 깨달은 듯, 얼떨떨한 침묵에 빠지더군요. 관계를 끝내려는 연인과 국가 프로파간다를 가르는 선은 무엇일까요?


MJ: 들으면서, 『사소한 일』이 정치적 행동과 개인의 삶의 관계를 얼마나 정교하게 보여주는지 상기하게 됩니다. 연극은 독일에서 공연되었나요? 독일에서라면 효과가 각별했을 것 같은데요. 개인의 삶에 침범하는 국가 폭력을 망각한 적이 없는 곳이니까요.


AS: 네, 베를린 세계문화의 집에서요. 단 한 번만 공연되어서 효과는 일시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멀거니 서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초반부에 연극적 상황인지 불분명할 때조차도요, 어느 정도 시사점이 있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러한 무관심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사회에서 일반적이니까요.


MJ: 선생님의 소설에는 급작스러운 균열부가 있는데요, 초연한 삼인칭 서술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서 과열된 집요한 어조로 바뀝니다. 이러한 비약은 트라우마에 무지하지 않겠다는 거부처럼 느껴집니다. 젊은 주인공은 진실을 입바르게 말하는 데 거침 없는데, 고독과 어우러진 가차없는 자기 의혹 때문에, 알아낸 사실들로 인해 고통받지요. 글을 쓰실 때 이 점을 의식하셨나요?


AS: 저는 진실을 전하는 자로서의 주인공의 역할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진실에 가닿고자 할 따름, 진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보고자 할 따름입니다. 그가 말하는 것이 진실이라면, 흥미롭겠네요. 왜냐하면 그는 근시니까요. 게다가 말을 더듬지요. 이런 식으로 진실에 가닿을 수 있을까요? 끊어지고 부서진 언어로 말할 때, 진실은 어떻게 들릴까요? 소설에서 중요한, 또는 중요했던 유일한 진실은, 문학적 차원에서의 폭력은 언어적 차원에서도 느낄 수 있고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더듬음은 메타포가 아니라 언어에 침습한 집단적 경험입니다. 눌변이나 말더듬음의 징후는 언제 나타나는지, 누군가 어떤 말을 하기 전후로 언제 마른침을 삼키는지, 언제 어떤 단어를 발음할 수 없는지, 저는 이런 것들에 언제나 호기심을 느낍니다. 이는 그 상황에 존재하는 모종의 취약성을 시사하고, 저는 그 말들이 왜 나타났거나 나타나지 않았는지 알아내려는 사설 탐정과 같습니다.


(번역: 윤경희)




인터뷰어 미레이유 주차우는 호주의 소설가로 '우리가 없는 세상'(The World Without Us)가 2016년 빅토리아 총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인터뷰이 아다니아 시블리는 팔레스타인 출신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다. 그는 영어, 독어 등으로 번역소개된 '마이너 디테일'로 필명을 세상에 알렸다.


역자 윤경희는 문학평론가이자 번역가로 파리 8대학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문학과 예술을 가르친다. 산문집 《분더카머》와 《그림자와 새벽》을 썼고, 앤 카슨의 《녹스》와 그림책 여러 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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