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위기: 거의 만나지 않아도 그들은 여전히 내 '친구'일까?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중장년층 남성이 겪는 외로움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의 경우, 여성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사교 활동을 이어가는 반면, 남성들은 뚜렷한 취미나 목적이 없다면 동성 친구들과 그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일조차 드물어집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중장년 남성들 역시 운동이나 등산 등 동호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오랜 벗들과 여행을 떠나는 등 관계 맺기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보편화되면서,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이라는 고도화된 분업 체계 속으로 편입됩니다. 특정 직군에서 수십 년을 몸담고 나면 타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의 접점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따라서 분업 체계에 갇히기 이전의 순수한 사교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스포츠나 인문교양 활동은 이러한 사교성을 기르는 데 훌륭한 매개체가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교류를 위해서는 고도화된 분업이 초래한 인간관계의 단절을 뛰어넘어야만 합니다. 미국 시사 매거진 애틀랜틱(The Atlantic)의 3월 19일자 에세이는 미국 남성들이 겪는 '우정의 상실' 문제를 따뜻한 시선으로 짚어냅니다. 나아가 이제는 서먹해진 옛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라는, 소박하지만 울림 있는 해법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강아지는 한켠에서 잠들어 있었고, 나는 식탁에 앉아 연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스물한 살 난 아들 샘은 바닥에 다리를 꼬고 앉아 기타를 만지작거리며, 친한 친구 하나가 데이트를 망친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로코 녀석, 참 바보야." 샘이 이야기를 마치자, 나는 다정하게 말했다. 샘이 맞장구쳤다. "그래도 전 걔가 좋아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러다 아들은 기타 줄을 퉁기던 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빠는 사실 친구가 별로 없죠?" 결코 상처를 주려는 말은 아니었다. 샘으로서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나도 친구는 있어." 내가 말했다. "자주 만나지 못할 뿐이지. 그래도 여전히 친구라는 건 변함없어. 그걸로 충분해."


샘은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던 것 같다. 그 순간의 나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지만. 그러고는 나를 배려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아들의 한마디는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내 우정은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내가 말한 것처럼 내 삶에 우정이 여전히 남아 있는 걸까? 나는 친구들에게서 무엇을 얻고 있었으며, 또 그들에게 무엇을 내어줄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차는 이미 식어 있었다.


실제로 남성들은 우정을 이어가는 자연스러운 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2021년에 실시된 한 조사에 따르면, "가까운 친구가 전혀 없다"고 답한 남성의 비율은 1990년의 3퍼센트에서 15퍼센트로 크게 늘었고, 현재 자신이 가진 친구의 수에 만족한다고 답한 남성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친구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정서적 지지를 받았다고 응답한 남성은 다섯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아들의 말을 들은 뒤 며칠 동안, 나는 점점 더 자주 친구들을 떠올렸고, 그들 중 누군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눈 것이 언제였는지를 헤아리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남성과 우정에 관한 글들을 찾아 다니며 읽기 시작했다. 가족 외의 가까운 관계들로부터 서서히 멀어진 이런 상황은 결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링크를 타고 빠르게 클릭해 가다 보니, 통계들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미국 공중보건국장은 '외로움과 고립'을 '유행병'으로 공식 경고했다. 심지어 미국에서 가장 친근한 성 상담가로 사랑받아 온 루스 박사도 말년에는 성보다 외로움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다.


연구자들은 '사회적 관계가 빈약한' 사람들에게서, 치매 발병 위험이 무려 50% 더 높아지고, 심장질환 위험은 29%, 뇌졸중 발생은 32% 높아진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사회적 고립이 건강에 미치는 해로움은 비만이나 운동 부족, 대기 오염은 물론, 하루 6잔 이상의 음주나 하루 15개비의 흡연보다도 더 크다. 하버드대의 한 연구는 더 장수하고 건강하며 행복한 삶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식단이나 운동이 아니라, 공동체와의 긍정적이며 지속적인 연결이라고 결론지었다.


캔자스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좋은 친구를 만드는 데에는 200시간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잃는 것은 훨씬 더 쉽다. 친밀한 우정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지속성이다.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다.


내가 젊었던 시절, 그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같은 삶의 궤도를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 저마다의 요구를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가까웠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멀어지고 흩어졌다.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만나 친형처럼 지냈던 세브, 몇 해 뒤 알게 된 쇼비즈니스계의 동료 매튜, 가장 오랜 친구이자 어린 시절 나의 롤모델이었던 에디,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사귄 존과 돈. 모두 소중한 친구들이었다. 여러모로 그들은 내 삶의 많은 부분을 받치고 있던 초석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드물게 전화 통화를 하기는 했었고, 그럴 때 우리는 웃으며 근황을 나누었다. 그것은 그저 빛나던 지난 시절의 잔영이었을까.


연구자들은 '사회적 관계가 빈약한' 사람들에게서, 치매 발병 위험이 무려 50% 더 높아지고, 심장질환 위험은 29%, 뇌졸중 발생은 32% 높아진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내 우정의 경험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나는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란 전형적인 유년기를 보냈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집앞 차 진입로에서 농구를 하고, 나무 판넬로 된 지하실에서 몰래 플레이보이를 훔쳐보던 시절이었다. 나는 네 형제 중 셋째로, 수줍음이 많고 친구의 폭도 넓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구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이십대 초반에 나는 영화계에서 꽤 성공을 거두었다. 말 그대로 '하룻밤 사이에' 세상에서 내 위치는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채 공적인 인물이 되었다. 주변을 미끄러지듯 맴돌며 조용히 살아가는 데 만족했고, 특별해지고 싶긴 했지만 노골적인 관심을 갈망하지는 않았던 내가 어느 순간 세상의 중심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사람들이 내게 몰려들었다. 나는 이 갑작스럽고 불편한 유명세 이전에 알았던 친구들 곁으로 파고들어 더욱 단단히 나 자신을 감아 넣었다. 술을 지나치게 마시기 시작한 것은 새로 얻은 성공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 내재하던 알코올 의존 성향 때문이었다. 나는 세상에서 물러났고, 내 안으로 숨어버렸다.


스치듯 짧았던 명성이 잦아들고, 음주 습관도 제어되었을 무렵 나는 거의 서른 살이 되어 있었다. 내가 나 자신과 보내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 찾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나서야, 나는 여성들과 맺었던 거의 모든 우정이 사실상 가벼운 유혹과 언젠가 함께 잠자리에 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당연히 바뀌어야 했다. 남성 친구들의 경우, 고개를 들어 보니 몇몇 가까운 오랜 친구들이 이미 멀리 떠난 뒤였다. 가끔 새로운 인연을 맺기도 했지만, 그것을 키워나가려는 마음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을 무렵 겪었던 진정성 없는 공허한 인간관계에 대한 환멸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내 안의 어떤 두려움 때문인지, 혹은 시간이 지나며 굳어버린 습관 때문인지,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새로운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일에 흥미를 잃었고, 심지어는 꺼리게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혼자 있는 시간도,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언제나 일이 있었다. 삶은 충만하게 느껴졌다. 적어도, 이 정도면 충만한 것같았다.


그러나 아들과 나눈 대화 이후, 아내가 내게 경고했었던 어떤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의 과도한 자기 성찰, 내향성, 그리고 회피 성향이 나라는 존재를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갉아먹고 있다는 것이다. 내 경험의 폭을 좁히고, 기쁨을 줄이며, 내가 줄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이도록 허용하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애정 어린 투로 (?) 내가 점점 괴팍한 노인처럼 되어 간다고 놀리기도 했다. 정말로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의지만 있다면, 답은 분명했다. 내가 자초한 고립이 내 삶을 축소시키고 있었고, 나를 더 왜소한 인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한때 나의 친구들은 내 시야를 넓혀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항구가 되어 주었다. 그 소중한 친구들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한 걸까.


매튜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내가 켄터키로 오는 것에 흔쾌히 동의했다. 곧바로 비행기 표를 샀다. 그러나 출발 며칠 전, 매튜는 전화를 걸어 와 일정을 취소했다. "요즘 상황이 너무 안 좋아." 그가 말했다. 일도 엉망이고, 그의 아들도 "어려운 일"을 겪고 있었다. 우리는 몇 주 뒤로 만남을 미뤘고, 나는 비행 일정을 다시 잡았다. 하지만 매튜는 또다시 취소했다. "그냥 봄에 보자." 그가 말했다. "그때쯤이면 상황이 좀 나아질 거야." 나는 결국 항공권을 환불했다.


존은 히말라야에서 등산 중이었고, 돈은 자동 회신 이메일로 일본에 장기 체류 중이라는 사실을 알려왔다. 하지만 세브와 연락이 닿았을 때, 그는 들뜬 기색으로 내가 볼티모어로 내려오면 함께 길을 나서자고 제안했다. "체서피크 만에 한번 가보고 싶었거든." 세브가 말했다.


로드트립이라니. 그 시절처럼, 미국 전역을 종횡으로 누비고, 아일랜드에서 몇 주씩 길을 잃고 헤매기도 했던 젊은 날들처럼 말이다. 세브와 나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열아홉이었고, 그는 나보다 열 살이 많았다. 본명은 스티븐이지만, 나는 거의 40년 동안 그렇게 부른 적이 없다. 우리는 함께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고, 일요일 오후면 전화기를 붙든 채 무릎에 뉴욕타임스 여행 섹션을 펼쳐 놓고는,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곳들을 함께 꼽아보곤 했다.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그러다 어느 추운 크리스마스 날, 나는 불쑥 세브에게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가서, 진짜로 어디론가 떠나보자고 제안했다. "언제? 지금?" 세브가 물었다. "지금," 내가 말했다. 놀랍게도 세브는 30분 만에 택시를 타고 나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곧 뉴어크 공항에서 출발 안내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초저가 항공사의 원조 격이던 피플스익스프레스에 한 시간 뒤 출발하는 푸에르토리코행 항공편이 있었다. 표 두 장을 샀다. 그날 밤, 우리는 산후안의 한 술집에 앉아 있었다. 헤밍웨이처럼 수염을 기르고 스페인 억양을 지닌 남자가 우리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해안 바로 앞에 있는 작은 섬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비에케스라는 섬이었다. 낙원이라고 했다. 미 해군이 자주 그 작은 섬을 표적 삼아 포격 훈련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조준이 정확한 데다, 지금이 크리스마스인만큼 해군도 분명 폭격을 쉬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6인승 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에케스는 버려진 땅처럼 황량했다. 포격 때문이었는지 도로는 갈라지고, 수풀은 듬성듬성 볼품없이 엉켜있었고, 오래 돌보지 않은 흔적이 역력했다. 차는 한 대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도 거의 없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그런 소박함이 천국처럼 느껴졌겠지만, 젊은 시절의 내게는 마이타이 칵테일과 수영장이 더 천국에 가까웠다. "여긴 여자가 없잖아." 세브가 말했다.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우리는 곧장 공항으로 되돌아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 탑승객은 우리 둘뿐이었다. 조종사가 가는 길에 세인트토머스에 들러 짐을 좀 내려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럼 한 번 더 오가는 수고를 덜 수 있거든요." "그러죠, 뭐. 어차피 산후안도 그저 그랬어요." 내가 말했고, 우리는 화물과 함께 그곳에 내려버렸다.


택시 운전석에 길게 땋아 내린 드레드락1 머리를 한 라스타파리안2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요즘 분위기는 어때요?" 세브가 물었다. "조용하고 평화롭지, 형씨, 조용하고 평화로워." 느긋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가 아는 호텔로 우리를 데리고 가는 길에, 내가 물었다. "혹시 대마초 살 수 있는 곳 있을까요?" 운전사는 충혈된 눈을 백미러로 돌려 나를 힐끗 바라보더니, 말없이 다음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기분 좋게 취해 몽롱한 상태로, 우리는 언덕 위 (수영장이 딸린) 호텔에 내렸다. "이제 좀 제대로 된 여행 같군."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한밤중에 나는 가려워서 잠이 깼다. 옆 침대에서 세브가 뒤척이는 소리, 몸을 찰싹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마디 외침이. "빈대다!"


우리는 나가서 수영장 옆에 앉았다. 공기는 무겁고 답답했고, 별도 보이지 않았다. 수영장 물은 너무 차가워 들어갈 수가 없었다. "네 전화를 안 받았어야 하는 건데," 친구가 말했다. "진심은 아니겠지, 세브." 그는 투덜거렸다. "그래도," 나는 애써 밝은 면을 보려 했다. "적어도 비는 안 오잖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번개가 번쩍였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대비였다. 우리는 웃기 시작했다. 발작처럼 걷잡을 수 없는 웃음, 평생의 우정이 빚어지는 웃음이었다.


체서피크 만이 푸에르토리코에 비할 곳은 아니었지만, "차로 두어 시간쯤이 아마 내 허리가 버틸 수 있는 한계일 거야"라고 세브는 말했다. 몇 해 전, 그는 척추가 좁아지면서 신경이 눌리는 척추관 협착증을 치료하기 위해 큰 수술을 받았다. 통증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회복은 길고 험했다. 나는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수술이 별 효과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허리는 이전보다 더 악화되었다.


내가 볼티모어로 내려가기 전날, 세브는 병원 예약을 이유로 약속을 취소했다. 일정이 겹친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니 이상했지만, 그냥 넘겼다. 우리는 다시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몇 주 뒤, 막 그를 만나러 집을 나서려던 순간 전화가 다시 울렸다. "사실 내가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어." 세브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힘겨워 보였다. "지금 상태가 좋지 않아. 오래 걷는 것도 힘들고, 차에 그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버텨내질 못해." "괜찮아. 멀리 안 가도 되잖아." "그리고 밤새 계속 뒤척이느라 제대로 잠을 못 자." 낮밤 구분도 없이 수면 패턴도 완전히 엉망이야."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 조금만 더 미루자." "알겠어." 내가 말했다. "그럼 내가 내려갈테니 저녁이나 같이 먹자." "밥 한끼 먹자고 그 먼 길을 운전해서 올 필요가 있겠어?" "어차피 가려고 했는데 뭘. 겨우 몇 시간 거리잖아. 별거 아니야." "나 진짜 그럴 상황이 아니야.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내 말 좀 들어줘." 이제 그는 간청하고 있었다. "지금은 정말 때가 아니야. 곧 보자. 약속할게." 세브의 목소리에서 고통, 아니 두려움까지 느껴졌다. "그래," 나는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 곧 보자."


전화를 끊고, 문 옆에 놓아둔 하룻밤 짐 가방을 힐끗 본 뒤, 다시 연한 차를 한 잔 더 끓여 늘 앉는 부엌 식탁 자리에 앉았다. 강아지가 다가와 쓰다듬어 달라고 코를 들이밀었지만, 나는 손짓으로 조용히 물리쳤다.


친구들이 저마다 바쁘고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쉽기는 했지만, 그들을 탓하지 않았다. 이해한다고, 적어도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화를 곱씹을수록 마음이 점점 편치 않았다. 친구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위태로운 기색이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우리의 관계를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은 건 아닐까? 우정이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시들어버린 걸까? 다음에 그를 만나는 자리가 그의 장례식이 되는 건 원치 않는다고 생각하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걸까?


그날 밤,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뒤엉켜 웅성거렸지만, 의식 깊숙한 곳에서 한가지는 뚜렷해졌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 나의 삶이 점점 더 좁아지게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인가, 아니면 관계를 위해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감수할 것인가. 한때 우정은 내 삶의 중심에 있었다. 다시 그럴 수 있을까? "에라, 모르겠다." 나는 어둠 속에서 중얼거렸다. "다 만나러 가자."


해가 떠오르자, 나는 차에 올랐고, 볼티모어로 향했다. 그리고 세브의 집 문을 두드렸다.



앤드루 매카시는 미국의 배우, 여행작가, 감독이다. 'Walking with Sam: A Father, a Son, and Five Hundred Miles Across Spain', 'Brat: An '80s Story', 'Just Fly Away', 'The Longest Way Home' 등 네 권의 책을 집필했으며 모두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여행작가로 다수의 상을 받으며 12년 동안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배우로서 '프리티 인 핑크Pretty in Pink'와 '회색 도시Less Than Zero'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에세이는 그의 신간 'Who Needs Friends'의 일부를 각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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