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털루 전투에서 한 군인이 웰링턴 장군에게 다가와 '아군이 전장 너머에서 나폴레옹을 발견하고 현재 조준하고 있다'고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발포할까요?' 하지만 웰링턴은 발포 승인을 거부했다고 한다. 적군 사령관이자 적국의 수장을 살해하는 것은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며 만약 사령관이 죽지 않았다면 누가 전투에서 이겼을지 모르게 되어 진정한 승리를 이루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웰링턴과 나폴레옹의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가능성은 있어요." 두 지도자의 전기 작가인 앤드루 로버츠는 말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이끌어낸 이 오래된 질문에 생각거리를 던진다. 과연 '참수 작전', 즉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을 의도적으로 표적 살해하는 것이 전쟁이나 외교 정책의 적절한 전술이 될 수 있는 시점은 언제인가?
역사를 공부하거나 국제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국가가 암살에 관여한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중동 전쟁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정치 지도자들을 노골적이고 심지어 자랑스럽게 표적으로 삼는 것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월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생포한 미국의 작전은, 암살은 아니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두 사건 모두 금기가 깨졌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란에 대한 개전 공습으로 1989년부터 이란의 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하메네이를 대신할 사람이 누구든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죽일 의도가 있음을 솔직하게 주장했다. 트럼프는 전략의 사소한 사안인 양 태연하게, 이란 지도부에 대한 초기 공격으로 예상 후계자 대부분도 제거되어 미국 정부가 더 이상 누구에게 어떤 요구를 제시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고 밝혔다.
학자들은 국가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는 것에 대한 관점이 변화해왔다는 데 동의한다. 국제법 자체는 상당히 일관성을 유지해왔다. 평시 및 자국 영토 밖에서 정치 지도자들은 다양한 외교적 면책특권을 누린다. 전쟁 시에는 일반적인 무력 충돌의 법규가 적용된다.
"핵심 쟁점은 적 전투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죠." 베테랑 미국 외교관이자 변호사인 필립 젤리코는 설명한다. "적 지도자들도 적 전투원으로 간주될 수 있어요." 민간인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한(이것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만) 국제법은 그들을 보호한다.
따라서 외국 지도자를 살해(또는 납치)의 표적으로 삼는 것이 합법적인지에 대한 질문의 답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법학자들은 국가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는 것 자체에 대한 법적 금지의 존재를 노골적으로 거부한다.
그러나 법이 전부는 아니며, 국가가 다른 국가 지도자를 암살하는 행위는 여전히 기존의 정치적, 도덕적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다. "최근까지는 모두가 손해를 본다는 이유로 지도자 암살이 국제적으로 금지된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였어요." 런던 킹스칼리지의 전쟁학 명예교수인 로렌스 프리드먼은 말한다.
테러리스트 표적의 '살생부'를 가지고 작전을 수행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1년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것은 첩보 활동의 성공으로 여겨졌다. 많은 사람들은 최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에 대한 삐삐(무선호출기) 공격을 실행하고 2024년에 그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를 암살한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 원수나 정부 수반에 관해서는 그 기준이 더 높았다. "국가 지도자들은 다른 범주에 속해요." 미국 정부의 암살 개입에 관한 책 '대통령의 살생부The President's Kill List'의 저자이자 스완지대학교 국제관계학 교수인 루카 트렌타는 말한다. "이것은 수 세기 전부터 이루어진 합의로 받아들여졌죠. 전쟁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서로의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이 규범을 위반한 사례는 적지 않다. 트렌타 교수는 1963년 CIA가 지원한 쿠데타로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이 살해된 사건,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 지도자 하피줄라 아민을 암살한 사건, 그리고 식민지 독립 지도자들에 대한 프랑스의 작전들을 예로 든다. 이스라엘에 관해서는 "건국 이전부터 오랜 암살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그곳에서조차 정치 지도자에 대한 공격은"좀 더 어려운 문제"였다고 트렌타는 평가한다. 야세르 아라파트의 경우가 그랬다.
참수 전술의 선례는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아볼 수 있다. 포로로 잡힌 지도자들을 행렬에 내세우는 로마의 "개선식" 관행은 미국의 마두로 축출과 유사성을 띤다. 이는 의심의 여지 없는 적의 지도부를 잘라내는 '참수' 공격이지만 그 대상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다.
현대에 들어서는 암살이 테러단체 지도자들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민족주의 운동의 수장들을 상대로 더 흔하게 사용되어 왔다. 미국 외교관 젤리코는 테러리즘에 대한 선례를 언급하면서도 "미국 같은 나라가 국가 지도자를 표적으로 삼는 것은 현대적인 전략 변화"라고 말하며, 이러한 변화를 "질적으로 다른 기술적 능력"의 출현에 기인한다고 본다. "만약 국가들이 [더 빨리] 그러한 표적 공격을 달성할 수 있었다면 진즉에 시도했을 거예요."
다시 말해, 정부들이 이러한 능력에 더 익숙해지면서 그 합법성에 대한 관점도 진화해왔으며, 이는 일반 대중보다 (일부) 정부에서 더 빠르고 더 멀리 나아간 것처럼 보인다.
트렌타는 이를 세 단계로 구분한다. 20세기 후반까지 국가가 후원하는 암살은 비밀작전이었고, 종종 대리인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어떠한 개입도 공개석상에서는 부인했다. 만약 발각되면 비난을 받았다.
미국 상원 처치위원회Church Committee의 판단은 이를 잘 보여준다. 1975년, 국가 지도자 및 관리들에 대한 암살 시도에 미국의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을 조사한 후 발표한 위원회의 중간 보고서는 당시에도 널리 퍼져 있었고 지금도 분명히 그러한 견해를 담고 있다.
"강압과 폭력의 방법을 선택하면 인명 손실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하지만 개별 외국 지도자에 대한 냉혈적이고, 표적화되고, 의도적인 살해와 다른 형태의 외국의 내정 간섭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보고서 발표에 따른 압력으로 암살이 행정명령으로 금지되었는데 처음에는 제럴드 포드 대통령 하에서, 그 후 연속적인 행정명령으로 이어졌으며 로널드 레이건이 서명한 명령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레이건 대통령 재임 시절에도 참수 작전에 대한 공식적인 관점은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1986년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카다피에 대한 공격에서 미국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의도되지 않았거나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함으로써 이를 법의 테두리 안에 두는 것, 즉 암살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했지만 적 지도자에 대한 공격을 부인하고 은폐할 필요성은 덜 느껴졌다. 2003년에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미국의 참수 공격이 뒤따랐다.
내가 인터뷰한 여러 전문가들이 2020년 트럼프 1기 행정부에 의한 이란 사령관 카셈 솔레이마니 살해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3단계에서는 국제법에 대한 어떠한 존중도 사라졌다고 트렌타는 말한다. 비밀주의도 사라졌다. 오히려 "[표적 살해]가 큰 구경거리가 된다." 카리브해에서 마약 밀매 혐의를 받는 보트에 대한 공격과 마두로 급습작전이 그러했듯이.

이 세 번째 단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최선은 이제 어떠한 위선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행위가 일반화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가? 규범이 사라지면 무엇을 잃는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애초에 그 규범이 존재했던 이유를 되돌아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 가지 이유는 항상 '상호적 이기심'이었다. 한 지도자가 표적이 되면 모든 지도자가 표적이 될 수 있다. 국가 지도자에 대한 다른 외교적 보호와 유사한 이유로, 상호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더 유리하다는 논리가 있었다.
이 규범은 또한 400년 동안 이어진 우리의 베스트팔렌 국가 체제를 뒷받침하는 철학과도 들어맞는다. 이 체제는 국가에 불가침성을 전제로 한 주권을 부여한다. 국가주권의 인격적 화신인 국가원수를 공격하는 것은 전체 국제체제의 기반을 약화시키고, 그와 함께 우리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불완전하게나마 구축해 온 규칙들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마두로 급습과 같은 비살상적인 경우를 포함하여 '정권 참수' 작전이 실행될 때, 관련자들이 해당 국가가 불량국가가 되었거나 범죄자들에게 점령되었다고 암시하며 그 국가의 지위를 폄하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가원수나 정부 수반이 표적이 되었을 때 그것이 주로 과거 '제3세계'로 불린 곳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애초에 이 규범이 누렸던 선택적 존중에는 인종차별이나 제국주의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으며, 이는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주로 가난한 나라의 지도자들을 문제삼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받은 것과 같은 유형이다.
참수 살해에 가담하는 국가는 도덕적 우위를 잃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트렌타는 지적한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를 거부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이는 중요한 지적이다. 이 규범의 증발은 국제적 규칙 전반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프리드먼은 국가원수와 정부 수반의 살해가 흔했던 이전 시기, 즉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는 종종 무정부주의자들이 이를 저질렀다고 지적한다. 이는 무정부라는 말 그대로 기존 질서를 뒤엎으려는 시도였다. 그러한 시도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대공이자 왕위 계승자였던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암살은 제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그런 역사 때문에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를 암살하겠다는 생각이 매력적으로 들렸어도 실제로 행동에 옮기진 않았을 겁니다."
국가지도자들이 더 이상 금단의 영역이 아니라는 불안감의 한 가지 근거가 우리가 아는 질서의 종말을 예고하는 것이라면, 어떤 질서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강대국 경쟁의 귀환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과거에 참수 공격에 반대하는 규범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더 흥미로운 가능성은 정치학자 스테이시 고다드와 에이브러햄 뉴먼이 "신왕정neo-royalism"라고 부른 것인데, 이는 정치가 "국가적 목표보다는 좁은 개인주의적 이익에 봉사하는 소수의 초엘리트 집단에 의해 구조화된" 질서이다. 두 학자는 지배계층에 의한 개인적인 재산 및 권력 축적에 초점을 맞추지만 경쟁자 지도자의 물리적 파괴라는 프리즘을 통해 전쟁을 보는 것보다 더 신왕정적인 것은 없어 보인다.
고다드는 두 경우 모두 "주권적 불간섭 규범, 즉 영토 경계가 국제정치와 국내정치 사이에 일종의 방화벽을 설정해야 한다는 관행의 완전한 붕괴"가 있다고 말한다. "신왕정 체제에서 주권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에 이러한 유형의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아요." 국가와 그 지도자 사이의 구별도 무너진다. "국익이라는 것은 없고, 오직 지도자들과 그 측근들의 이익이나 변덕만이 있을 뿐"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실제로 트럼프는 참수 공격의 한 동기가 이란이 자신을 죽이려 했기 때문이라고 암시하며 "그가 나를 잡기 전에 내가 그(하메네이)를 잡았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에 반대하며, 중요한 것은 참수 작전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지 여부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는 적을 혼란시키고, 낙담시키고, 사기를 꺾고,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이루어질 것이라고 프리드먼은 말한다.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독재체제를 상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리드먼은 이스라엘에서처럼 위협이 생사에 대한 것으로 느껴질 때 참수 작전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의 주장은 이들이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며 우리를 제거하려 하니, 이들과 깨끗하게 싸우지 않을 것이라는 거예요." 윤리적으로도 "전면전 대신 한 명을 제거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매력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죠." 이는 1945년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사용을 둘러싼 논쟁을 연상시킨다. 파괴적인 공격이 항복을 신속하게 강요함으로써 더 많은 생명을 구하리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참수 작전은 실제로 효과가 있는가? "미국은 과거 참수 작전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요." 젤리코는 말한다. 프리드먼은 참수 작전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누구와 대화할 수 있겠어요? 후임자가 우리가 제거한 사람보다 나을 게 없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만약 살해된 사람이 인기가 있다면 참수 공격은 결집 효과를 일으켜 적의 전의戰意를 진작시킬 수 있다.
테러리스트 네트워크에 대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해당 집단이 특정 수준의 조직력에 도달했을 때 참수 공격은 종종 효과가 없을 수 있다고 이 주제를 다룬 책의 저자 제나 조던은 쓴다. 오히려 "참수 작전은 이런 집단이 보복 공격을 감행하도록 대담하게 만들거나 이전에 수동적이었던 추종자들이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영감을 줄 수 있다."
트렌타 역시 회의적이다. "반란 진압 작전을 할 때마다 참수 전략이 따르죠." 그는 말한다. 그는 체념한 듯한 분위기로 묻는다. "만약 참수 작전이 특별한 효과가 없었다면 우리는 왜 아직도 그것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다른 것들도 다 그렇죠."
올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對)이란 공세는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직접 겨냥하면서 막을 올렸습니다. 이는 적국의 핵심 수뇌부를 제거하는 이른바 '참수 작전'입니다. 그 이후로도 이란 지도부 요인들의 폭사가 잇따랐습니다. 지난 1월 3일 전격적으로 단행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역시 동일한 맥락의 참수 작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체제에서 핵심 우두머리만을 정밀 타격해 도려낸 격이기 때문입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3월 28일자 보도에 따르면, 적의 수뇌부만을 외과 수술식으로 제거하는 전술은 역사적으로 빈번하게 활용되어 왔습니다. 다만, 근대 베스트팔렌 체제 이후 '국민국가(또는 민족국가)'가 등장하며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국가와 국민이 일체화되고 '국민이 곧 국가'라는 원칙이 자리 잡으면서, 지도자 개인을 제거하는 외과적 타격은 점차 그 실효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수 수뇌부=국가'라는 전근대적 구조에 머물러 있는 체제들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수뇌부 타격만으로도 체제 전체를 굴복시킬 여지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대이란 참수 작전의 성패는 이란이 과연 '국민국가'의 원리로 작동하는지, 혹은 '소수 수뇌부' 중심의 독재 국가로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라면 작전이 주효하겠지만, 전자의 경우라면 실질적 타격 없이 이란 국민의 거센 반발만 자극할 공산이 큽니다. 물론 정상적인 국민국가라 하더라도 수뇌부의 유고로 인한 권력 공백은 국가 역량의 약화를 초래합니다. 하지만 그 여파는 단기적 혼란에 그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감행한 이번 수뇌부 제거 작전이 중동 정세에 어떠한 파장을 불러올지, 그 귀추를 예의 주시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