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휴대폰은 아폴로 우주선을 달로 안내했던 거대한 컴퓨터보다 메모리 용량이 200만 배 더 크고 수천 배 더 빠르다. 이처럼 놀라운 크기 축소는 트랜지스터를 점점 더 작게 만들 수 있는 인류의 능력 덕분에 가능했다.
각 트랜지스터는 모든 컴퓨팅의 기본 언어인 1과 0 사이를 전환할 수 있는 미세한 스위치이다. 트랜지스터 수십억 개가 반도체라고 불리는 작은 실리콘 칩에 집적된다. 칩 하나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가 들어갈수록 더 많은 논리 회로 및 메모리 회로를 담을 수 있으며, 더 많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첨단 반도체는 단언컨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다. 지난 5년 동안 반도체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지정학적 발화점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쟁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를 제조하려는 모든 국가나 기업은 단 하나의 기업 ASML에 의존하고 있다. 2020년 BBC가 "비교적 덜 알려진 네덜란드 기업"이라고 불렀던 ASML은 직경 30cm 웨이퍼에 트랜지스터 수십억 개를 집적하는 데 필요한 정밀도로 칩에 트랜지스터를 새길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장비를 만든다.
이 장비들은 대략 2층 버스만 한 크기이다. 장비 한 대를 배송하는 데에는 화물 컨테이너 40개, 화물기 3대, 트럭 20대가 필요하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이다. 부품은 10만 개가 넘으며 장비가 지속적으로 올바른 파장의 빛을 생성하려면 이 모든 부품이 완벽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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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ASML은 이러한 장비의 유일한 공급업체이며 앞으로도 한동안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는 반도체 제조 업계에서 후발 주자로 출발했다. 경쟁사들을 추월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력, 외국 경쟁사에 대한 대규모 지분 매각, 검증되지 않은 기술에 대한 거대한 도박 등 유럽 기업들과는 거리가 먼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필요했다.
빛이 있으라
ASML의 성공 비결은 포토리소그래피photolithography(종종 리소그래피 또는 노광 기술로 불림)라는 기술에 있다. 반도체 웨이퍼를 빛에 노출시켜 패턴을 전사하는 방식도 여기에 포함된다. 1950년대 초기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이러한 패턴을 손으로 직접 그리려고 시도했지만 웨이퍼에 물리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무엇이든 웨이퍼에 흠집을 내거나 오염시키거나 패턴을 왜곡시켰다. 벨 연구소와 미군을 위해 연구하던 과학자들은 웨이퍼와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않고도 빛을 이용해 동일한 패턴을 인쇄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칩을 만들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일반적으로 실리콘으로 된 얇은 반도체 웨이퍼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웨이퍼는 빛에 노출되면 반응하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라는 화학물질로 코팅된다. 포토리소그래피 공정에서는 세밀한 패턴을 통해 포토레지스트가 코팅된 웨이퍼에 빛이 투사되며 노출된 부위가 부드러워진다. 이후 웨이퍼를 씻어내 부드러워진 부위를 제거하면 그 아래에 있는 실리콘이 드러난다. 그런 다음 웨이퍼는 전하를 띤 염소나 브롬 가스를 분사하는 식각 장비로 옮겨져, 노출된 실리콘에 원하는 패턴을 새기게 된다. 이는 나중에 텅스텐과 구리 같은 금속으로 채워져 트랜지스터를 전원에 연결한다. 이렇게 식각된 층들은 결합되어 트랜지스터들의 복잡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업계는 점점 더 짧은 파장의 빛을 사용하여 점점 더 정교한 식각 기술을 개발해 왔다. 파장이 짧을수록 빛의 회절이 줄어들어 빛이 더 직선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번짐 없이 더 선명하고 세밀한 디테일을 찍어낼 수 있다. 이를 통해 더 정밀한 패턴 투사가 가능해지며 결과적으로 더 작고 조밀하게 집적된 트랜지스터를 만들 수 있다.
초기 리소그래피는 가로등과 유사한 수은 증기 램프에 의존했지만 보다 현대적인 장비는 아르곤과 불소 가스를 사용하여 만든 레이저에 의존한다. 2010년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레이저를 통해 193nm 파장을 여러 번 노출하여 22nm 크기의 형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장 진보된 형태인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는 가장 작은 칩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2025년에 출시된 가장 작은 칩은 3nm 크기라고 선전됐는데 이는 사람의 머리카락보다 약 2만5000배 더 얇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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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만들기 위해 액체 주석 방울을 챔버 안으로 방출한 후 단일 빛 펄스로 타격하여 액체를 녹이고 납작하게 만든다. 주석 방울이 계속해서 떨어질 때 두 번째로 더 강력한 펄스가 주석을 기화시켜 극자외선 리소그래피에 필요한 짧은 파장의 빛을 방출하는 초고온 플라즈마를 생성한다. 그런 다음 이 광선은 약간 오목한 거울들을 연속으로 반사하면서 집중되는데 이 거울들은 만약 독일 영토만 한 크기로 확대하더라도 흠집의 크기가 밀리미터 단위로 측정될 정도로 결함이 없다. 거의 모든 고체 물질이 이처럼 짧은 파장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엔지니어들은 표준 리소그래피에서 사용되는 유리 렌즈 대신 거울을 사용해야 한다.
빛은 최종적으로 칩에 인쇄할 패턴이 포함된 마스크에 도달한다. 마스크의 패턴은 대개 칩에 원하는 크기보다 몇 배 더 크기 때문에 이후 빛은 두 번째 거울 시스템에 의해 반사된다.
빛이 마스크에서 반사된 후에는 각 지점에서 퍼져나가는 광선 다발의 형태로 패턴을 전달한다. 다음 거울들은 이 광선들을 안쪽으로 기울여 광선이 넓게 퍼지는 대신 더 짧은 거리에서 다시 모이게 한다. 각 지점에서 나온 광선이 더 일찍 모이게 되면 이들이 형성하는 이미지는 물리적으로 더 작아진다. 엔지니어들은 세심하게 모양을 맞춘 여러 거울로 이 과정을 반복하여 초점을 유지하면서 패턴을 일정한 크기로 축소시킨다. 네 번의 축소 과정을 거친 후 빛은 웨이퍼에 도달한다.
위대한 축소
더 긴 파장의 빛은 뭉툭한 끌처럼 작용하여 거친 모양을 잡는 데는 적합하지만 더 세밀한 디테일을 담아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파장이 긴 광파는 반사되어야 하는 레티클reticle의 미세한 패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크다. 파동은 자신보다 작은 물체를 만나면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대신 자연스럽게 물체의 가장자리를 따라 퍼지거나 구부러진다. 동일한 디테일을 조각하려면 이 뭉툭한 끌로 같은 지점을 여러 번 깎아내야 한다(이 과정에서 가장자리가 더 흐릿해진다). 리소그래피는 최첨단 공정 노드에 필요한 고해상도 패턴을 구현하기 위해 파장을 극자외선 영역까지 줄여야만 했다.
13.5nm에 불과한 짧은 파장은 한 번의 노출로 더 정밀한 패턴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극자외선 리소그래피는 7nm 노드에서 포토리소그래피 패턴화 주기 3~4회를 1회로 통합시킬 수 있다. EUV 기술이 없다면 5nm 노드를 생산하기 위해 최대 100가지의 서로 다른 단계를 거쳐야 할 수도 있다.
극자외선 리소그래피는 구형 기술을 수차례 반복해서 사용할 때보다 웨이퍼에 더 정확한 패턴을 생성할 수 있었다.
오늘날 ASML은 리소그래피 전체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분야에서는 사실상 독점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ASML의 EUV 장비는 1억2000만 달러(1700억 원) 이상의 가격에 판매된다. 시가총액이 4000억 달러(560조 원)가 넘는 ASML은 유럽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기원
ASML은 네덜란드의 거대 소비자 가전 기업인 필립스Philips에서 시작됐다. 1970년대 동안 필립스는 전 세계 전자 시장의 약 20%를 점유하고 있던 대형 반도체 제조업체였다. 이 시기의 리소그래피 장비는 400nm 이상의 파장을 사용하여 1000nm 크기의 패턴을 새겼다. 당시 업계는 정확도를 잃지 않고 먼지나 결함이 섞여 들어가는 일 없이 크기를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필립스는 광학 및 정밀기계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체 프로토타입 제작에 착수했다. 1980년대 초가 되자 프로젝트는 난관에 부딪혔다. 회사는 비용 절감을 모색하고 있었으나 엔지니어들은 장비 개발과 생산을 완료하려면 현재 가치로 2억8000만 달러(4000억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1984년, 필립스는 반도체 업계에 장비를 판매하던 네덜란드 대기업 ASM인터내셔널과의 합작 투자로 'Advanced Semiconductor Materials Lithography'(나중에 이 긴 이름은 버리고 약어인 ASML을 사용하게 됨)를 분사시켰다. 사업은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시장 점유율도 없었고 브랜드 인지도도 없었다. 회사의 첫 번째 제품인 PAS 2000은 상업적으로 실패작이었다. 이 장비는 전기모터 대신 유압(파워 스티어링처럼)을 사용하여 노출 시 웨이퍼를 고정하는 테이블을 이동시켰다. 이 방식은 부드럽고 정밀했지만 누유가 잦았다. ASML이 처음 참석한 컨퍼런스에서 한 업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경기는 이미 끝났어요. 여러분이 들어갈 자리는 없습니다." ASML은 다시 전기모터로 방식을 바꿨다.
ASML는 처음부터 이례적인 방식을 취했다. 일본의 대기업 니콘과 캐논이 수직적으로 통합된 구조였던 반면, ASML은 렌즈나 모터 같은 핵심 부품을 아웃소싱하여 최종 장비를 조립하고 최적화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아웃소싱을 감안할 때 ASML이 명확하게 정의된 하위 시스템을 갖춘 모듈식 설계를 채택하는 것은 타당했다. 유럽 제조업계는 이러한 접근법을 비웃었다. 독일 엔지니어들은 ASML의 경영진에게 중요한 부품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면 문제를 자초하는 것이며 모든 통제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ASML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하위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 낼 자본도, 전문성도, 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1988년에 이르러 ASML은 붕괴 위기에 처했다. ASM인터내셔널은 이미 발을 뺐고 필립스는 회사 폐쇄를 고려했다. 전략적 기술에 있어 유럽이 아시아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는 상황을 특히 우려했던 단 한 명의 필립스 이사회 임원, 거트 로렌츠Gerd Lorenz가 회사를 구했다. 로렌츠는 유럽이 반도체 제조 부문에서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필립스가 ASML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도록 설득하는 데에는 충분했지만 회사의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ASML은 여전히 경쟁력이 없는 열등한 공급업체에 불과했다.
ASML은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여 1991년에 출시된 자사의 첫 번째 상업적 성공작인 PAS 5500을 개발했다. 당시 니콘의 포토리소그래피 시스템이 더 정밀했지만 ASML의 모듈식 설계 덕분에 현장에서 장비를 빠르게 수리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가동 중단 시간이 단축되었으며 고장 났을 때 부품을 쉽게 교체할 수 있어 장비의 수명을 연장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것이 바로 IBM의 반도체 R&D 부문 디렉터 존 켈리가 일본 장비 대신 PAS 5500을 주문하도록 IBM을 압박하게 만든 핵심 요인이었다. ASML은 마침내 글로벌 무대로 진출했다.
첫 돌파구
ASML의 성공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에 진행되어 R&D 부문에서 큰 이점을 제공한 두 가지 프로젝트에 달려 있었다. 첫 번째는 1997년에 시작된 '극자외선 유한책임회사'(EUV LLC)라는 민관 파트너십이었다. EUV LLC는 원래 구출 임무로 시작되었다. 1997년 이전에는 기초 반도체 연구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소수의 연구소에서만 수행되었다.
EUV 연구를 위한 본래의 프로그램은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산디아 국립연구소,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를 결합한 '가상 국립연구소virtual national lab'였다. 각 연구소는 서로 다른 구성 요소를 담당했다. 리버모어는 거울과 광학에, 산디아는 광원과 시스템 엔지니어링에, 버클리는 테스트용 고급 장비에 집중했다. 그러나 1996년, 에너지부(DOE)의 예산 삭감으로 인해 가상 국립연구소 프로그램이 존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에서 세계적 선두 주자였던 인텔은 이 연구를 유지하기를 열망했으며, 미 에너지부 역사상 동종 최대 규모의 민관 파트너십인 EUV LLC의 설립을 주도했다. 설립 후 6년 동안 이 회사는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개발에 2억7000만 달러(4000억 원) 이상을 투자했다. 이는 회원사들에게 지분을 판매하여 조달한 자금으로, 회원사들은 생산되는 포토리소그래피 도구를 가장 먼저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 파트너십은 처음에 미국 기업으로만 가입 자격을 제한했다. ASML은 일본의 주요 경쟁사인 캐논, 니콘과 함께 초기에는 가입이 차단되었다.
처음부터 이 파트너십에 합류한 유일한 기성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는 실리콘밸리그룹 뿐이었는데 이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단 5%로 ASML의 20%에 크게 못 미쳤다. 이처럼 작은 제조업체에 의존하는 위험성을 우려한 나머지 참여기업들은 전체 시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외국 기업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ASML은 미국 내에 연구 센터를 설립하고 미국에서 판매되는 시스템 부품의 55%를 미국 공급업체로부터 조달하겠다고 약속하는 조건으로 참여가 허용되었다. 실제로는 이 조건이 한 번도 강제되지 않았다. 일본의 경쟁력에 대한 미국 내의 광범위한 두려움 때문에 일본 경쟁사들은 결국 끝까지 합류가 허용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막대한 지적 재산과 공정 노하우를 구축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민관 파트너십은 참여기업에게 창출된 지적 재산을 사용할 수 있는 비독점적 라이선스를 부여하지만 이 경우에는 파트너십에 속한 기업들이 완전한 소유권을 갖게 되었다.
2001년, ASML은 현금 흐름 문제에 직면한 실리콘밸리그룹을 인수했고, 이로써 ASML은 파트너십에 남은 유일한 장비 제조업체가 되었다. 컨소시엄이 최초의 완전한 규모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프로토타입인 '엔지니어링 테스트 스탠드'를 생산했을 때, ASML은 리소그래피 분야의 최전선에 홀로 서 있었다. 이는 13.5nm 빛이 칩에 조밀한 형태를 인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시연이었다.
엔지니어링 테스트 스탠드가 제작될 무렵, 이 프로그램은 이미 안정적으로 극자외선을 생성할 수 있음을 증명해 냈고 이를 바탕으로 엔지니어들은 실제 생산 도구에 사용할 수 있는 거울과 렌즈를 만들기 시작할 수 있었다. 장비의 처리량을 어떻게 높일지, 생산 환경에서 광원의 출력을 어떻게 증가시킬지 같은 남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ASML은 실제 환경에 가까운 곳에서 장비를 테스트해야 했다. 그러나 그토록 초기 단계에서 그처럼 방대하고 위험한 프로젝트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반도체 제조업체는 없었다.
ASML의 성공에 필수적이었던 두 번째 프로젝트는 벨기에의 연구기관 아이멕(IMEC)이었다. 아이멕은 여러 기업으로부터 장비를 수집하여 연구자들이 각 기업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면서 실제와 가까운 환경에서 장비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관이다.
잠재 고객들이 차세대 리소그래피 기술에 대해 서로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기 시작하자 ASML은 아이멕을 활용하여 자사의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프로토타입을 홍보했다. ASML의 목표 클라이언트 목록 최상단에는 오늘날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이 된 TSMC가 있었다. 1987년에 설립된 TSMC의 역사는 그 탄생부터 ASML과 얽혀 있었다. ASML의 이전 모회사였던 필립스가 TSMC 지분 27.5%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멕에 전시된 ASML의 장비를 본 것이 계기가 되어 TSMC는 EUV 개발에 ASML과 파트너십을 맺게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캐논과 니콘은 자신들의 연구에 대해 입을 굳게 닫았고 외부 기업과 협력하려는 노력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식은 이론적으로 자신들의 작업에 대한 더 큰 통제력을 유지하고 가치사슬의 더 많은 부분을 장악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기초 물리학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할 책임뿐만 아니라 그에 따르는 모든 재정적 위험까지 홀로 떠안아야 함을 의미했다.
ASML 장비의 거의 모든 부품이 다른 회사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ASML은 5000개가 넘는 기업들로 이루어진 방대한 공급망의 지배자가 되었다. ASML은 지난 몇 년 동안 매우 계획적으로 공급업체를 다변화해 왔다. 지출의 80%가 유럽과 중동 지역의 기업들로 흘러가며(이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은 제외), 이는 미국이나 아시아에 기반을 둔 핵심 공급업체들이 직면할 수 있는 잠재적 수출 제한, 관세 및 기타 지정학적 위험을 줄여준다. 또한 ASML은 공급업체들이 자신들로부터 얻는 수익 비중을 25% 이하로 유지하도록 유도하여 변동성이 큰 반도체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부분의 부품은 다수의 소규모 공급업체로부터 공급받지만 ASML은 대형 공급업체와는 깊은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ASML은 광학 기기 제조업체 자이스(Zeiss)의 지분 24.9%를 인수했다. 레이저 제조업체 트룸프Trumpf의 부회장 페터 라이빙거는 "ASML과 트룸프는 사실상 합병된 회사"라고 말했다.
전쟁의 승리
극자외선 리소그래피는 EUV LLC가 설립된 지 20년, 아이멕이 설립된 지 34년이 지난 2018년이 되어서야 성공적인 상업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 기간 동안 EUV 기술은 점점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있었다. 2015년까지 ASML은 R&D에 연간 10억 달러(1조5000억 원) 이상을 지출하고 있었는데 이는 2010년 전체 지출액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2014년까지 업계는 아무런 수익 보장 없이 극자외선 리소그래피 분야에 총 200억 달러(30조 원) 이상을 투자했다.
ASML이 이 블랙홀에 계속 돈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미 경쟁사들을 물리쳤기 때문이다. 2010년경 이 회사는 전체 리소그래피 시장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인텔, 삼성, TSMC와 깊은 관계를 맺으며 급성장하는 스마트폰 시장의 지배적인 공급업체가 되어 있었다. ASML은 2000년대에 결정적인 기술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이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될 무렵 전체 반도체 산업은 물리적 장벽에 부딪혔다. 수십 년 동안 단순히 짧은 파장으로 전환함으로써 회로 크기는 꾸준히 작아져 왔지만 표준 193nm 빛(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500분의1 수준)은 더 작은 회로를 그리기에는 너무 뭉툭했다.
니콘은 파장이 157nm로 더 짧은 새로운 광원을 개발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짧은 파장의 빛은 일반 유리에 흡수되고 왜곡되었기 때문에 니콘은 플루오린화 칼슘calcium fluoride으로 렌즈를 만들어야만 했다. 이 물질은 희귀하고 깨지기 쉬운 결정으로 연마 비용이 비싸며 열을 받으면 균열이 생기기 쉬웠다. 업계는 이 '건식' 리소그래피 경로에 수억 달러를 쏟아부었으나 결국 제조 과정의 난관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ASML은 맺어둔 파트너십 덕분에 이러한 막다른 골목을 피할 수 있었다. TSMC의 연구원 번 린(Burn Lin)은 ASML에게 액침 리소그래피immersion lithography라는 기술로 전환할 것을 조언했다. ASML은 기존의 193nm 빛을 계속 사용하되 렌즈와 실리콘 웨이퍼 사이에 수분층을 두었다. 물컵에 담긴 빨대가 구부러지고 커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비 안의 물이 광파를 구부려 초점을 선명하게 만들어 새로운 렌즈 없이도 더 작은 회로를 인쇄할 수 있게 해주었다.
ASML은 트윈스캔(TWINSCAN)이라는 혁신적인 장비 아키텍처를 도입하여 이러한 이점을 더욱 강화했다. 구형 장비에서는 실리콘 웨이퍼의 표면이 평평한지 측정하기 위해 기계가 멈춰 있는 동안 광원이 작동을 멈추고 대기해야만 했다. ASML은 이를 듀얼 스테이지 시스템으로 교체했다. 두 개의 테이블을 갖춘 거대한 장비가 백그라운드에서 한 웨이퍼를 측정하는 동시에 다른 웨이퍼에는 인쇄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제조 공정의 유휴 시간이 사라져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시간당 훨씬 더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니콘이 2005년 157nm 프로젝트를 포기했을 무렵, ASML은 시장의 53.2%를 차지하며 업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ASML의 장비는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비슷한 니콘 기기가 3000만 달러(450억 원)인 것에 비해 거의 두 배에 달하는 5500만 달러(800억 원)를 청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조차도 충분하지 않았다. ASML은 2006년부터 프로토타입 EUV 장비를 아이멕에 납품하기 시작했지만 이 장비들은 너무 느리고 고장이 잦아 상업적으로는 쓸모가 없었다. 2012년, 여전히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에 시달리던 ASML은 EUV 개발 자금을 계속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회사의 연구개발을 유지하려는 절박한 시도이자 EUV 시장에서 영원히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도박이기도 한 과감한 조치로, ASML 경영진은 회사의 지분 23%를 자사의 가장 큰 세 고객사인 인텔, TSMC, 삼성에 매각하는 공동 투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또한 ASML은 이 자금으로 리소그래피 광원을 생산하는 공급업체 중 하나인 사이머Cymer를 25억 달러(3조5000억 원)에 인수하는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 인수를 통해 ASML은 연질 엑스선 광원을 완성하기 위한 사이머의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주석 방울을 전자를 잃을 만큼 강하게 타격하면서도, 떨어져 나온 파편이 거울을 뒤덮지 않을 만큼 정밀하게 맞추는 공정이 포함된 기술이었다. 그들은 단일 펄스에서 벗어나 레이저 펄스를 두 개로 분리함으로써 이를 달성해 냈다. 예비 펄스가 방울의 모양을 다듬고 메인 펄스가 플라즈마를 생성하는 방식이었다. 이를 통해 효율성과 안정성이 향상되었다.
ASML과 TSMC의 긴밀한 파트너십은 특히 결정적이었다. 2014년, TSMC는 이제 자사의 최대 고객이 된 애플을 위한 첫 번째 칩을 출시했는데 애플은 당시 TSMC의 기존 장비 성능을 뛰어넘는 고성능 칩을 생산하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ASML은 상업용 EUV 장비를 서둘러 완성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 놓였다.
두 회사는 매우 긴밀하게 협력했기 때문에 EUV 개발 감독을 맡은 TSMC의 사업부 디렉터 앤서니 옌Anthony Yen은 두 회사를 "한 팀"이라고 표현했다. 현장의 ASML과 TSMC 엔지니어들은 한 달간 하루 500장의 웨이퍼라는 필요한 처리량에 도달할 때까지 끊임없이 문제를 해결하고 반복 작업을 수행하며 지칠 줄 모르고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공동 팀은 주석 방울 생성기와 레이저가 각 방울을 타격하는 방식 모두를 재설계했다. 새로운 설계는 동일한 자외선 에너지를 생성하면서도 원래 크기의 약 절반에 불과한 방울을 만들어 냈다. 방울이 작아지면 기화될 때 떨어져 나가는 파편이 훨씬 적어지며 이는 주석이 집광 거울에 쌓이는 속도를 늦춰준다. 거울의 성능 저하가 더디게 진행되므로 교체 횟수가 줄어들어 장비가 더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가동될 수 있다.
이 파트너십은 ASML에게 큰 승리였다. ASML이 주요 엔지니어링 및 상업화 과제들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TSMC가 EUV라는 최첨단 기술의 얼리 어답터가 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2019년에 이르러 TSMC는 7nm 공정의 대량 생산을 확대하고 있었으며 그해 연말이 되자 EUV 칩을 탑재한 최초의 스마트폰들이 판매되기 시작했다.
한편 극자외선 리소그래피에 대한 믿음이 그토록 강하지 않았던 니콘과 같은 경쟁사들은 사실상 이 기술을 포기했다. 2013년 연례 보고서에서 니콘은 자사의 EUV 기술 발전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언급했으며 이후 연례 보고서에서 이 기술이 다시 언급되는 일은 없었다. ASML이 R&D 분야에서 앞서 나가고 핵심 고객 수요를 독점하는 가운데 경쟁사들이 금융 위기의 여파로 자신들의 R&D 지출을 정당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ASML은 이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기업이 되었다.
암묵지의 중요성
일찍이 ASML은 업계의 다른 경쟁자들보다 위험을 더 잘 수용하는 문화를 배양했다. 회사는 잠재력 높은 인재를 일찍 승진시켰으며, 수십 년 동안 핵심 노동자들을 유지한 성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화의 대부분은 회사가 겪었던 힘들었던 초기 시절의 산물이다. ASML은 회사를 구하기 위해 젊은 세대의 재능이 필요했기에 그들을 기꺼이 빠르게 승진시키고 권한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마르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는 1984년 ASML에 합류했다. 그는 합류 후 18개월 만에 승진하여 29세의 나이로 회사의 초기 플래그십 프로젝트 중 하나를 주도하게 된 두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반 덴 브링크는 커리어 내내 ASML에서 일하며 2024년 은퇴할 때까지 사장 겸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역임했다. 성과보다는 연공서열을 더 보상하는 경향이 있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일본의 경쟁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경우가 훨씬 드물었다.
포토리소그래피처럼 장비를 조립하는 데 엄청난 양의 암묵적 지식이 사용되는 분야에서는 최고의 노동자들을 유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한 ASML 엔지니어는 중국 내 ASML의 최고 경쟁사 중 하나인 상하이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의 설립자 허룽밍에게 설사 설계도가 있다 하더라도 상하이 마이크로가 ASML의 제품을 복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SML의 제품에는 수백 년은 아닐지라도 수십 년간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ASML 경쟁사들은 전직 ASML 엔지니어들을 채용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시도해 왔으며 전직 ASML 노동자가 독점 정보를 불법적으로 넘겨준 사례도 최소 한 건 보고된 바 있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그 격차를 좁히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거인
ASML은 유럽에서 보기 드문 거대 테크 기업이다. 이 기업의 성공은 대륙의 편협함이 아닌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협력의 결과물이었다. 만약 ASML이 미국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캐논과 니콘이 여전히 덜 발전된 리소그래피 산업을 장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기업들과의 협력 역시 그에 못지않게 중요했다. 수직적 통합은 니콘과 캐논에게 완전한 통제력을 부여했지만 내부 자원의 한계 내에서만 혁신을 이루도록 제약했다. 10만 개가 넘는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에서 그 한계는 치명적이었다. ASML의 모듈식 접근 방식은 사이머를 인수하고 자이스에 투자하여 최첨단 물리학 기술을 도입할 수 있게 해주는 동시에, 인텔 및 TSMC와 같은 고객들에게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이 전략은 모든 부담을 홀로 짊어지려던 경쟁사들을 지출액과 성장 속도 면에서 모두 능가하는 강력한 집단적 엔진을 만들어 냈다.
여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다. ASML은 EUV 기술의 성공 보장조차 없는 상황에서 기술 개발과 상업화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었다. 201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많은 반도체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성공적으로 상용화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이제 이 기술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하지만 ASML, 나아가 유럽 대륙 전체가 가만히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ASML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산업 중 하나의 필수불가결한 기둥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동안에도 다른 이들은 칩 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은 아마도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이며 불과 몇 년 안으로 5nm 크기도 충분히 작다고 여겨지지 않게 될 것이다.
닐 해커는 글로벌 탄소 제거 인증 기관인 아이소메트릭Isometric에서 파트너십 총괄을 맡고 있다. 기후테크 혁신을 위한 재원 조달 방안과 사회적 조정 문제의 해결책을 탐구하는 데 깊은 관심을 두고 있다. 아이소메트릭에 합류하기 전에는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을 활용해 오프체인off-chain의 데이터를 이더리움 네트워크로 연동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웍스 인 프로그레스는 2020년에 창간된 지식 매거진으로 '세상을 발전시키는 새롭고도 과소평가된 아이디어'를 깊이 있게 다룬다. 글로벌 핀테크 유니콘 기업인 스트라이프Stripe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지적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 공공 정책, 메타과학, 도시 계획, 에너지, 수송 기술, 의학 연구는 물론 미학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반도체 산업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시라면 ASML이라는 기업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최첨단 칩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노광(리소그래피) 장비를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이죠. 이 분야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네덜란드 회사인 ASML이 중국에 장비를 판매하지 말라는 미국의 압박에 쉽게 굴복했던 것도 기억하실 겁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단지 미국의 영향력이 세서만이 아닙니다. 사실 ASML의 장비에 사용되는 많은 기술들이 미국에서 개발한 기술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미국 기업도 아닌 유럽 기업이 미국의 최첨단 기술을 사용하는 세계 유일의 EUV 노광 장비 제조사가 된 걸까요? 미국의 매거진 '웍스 인 프로그레스' 4월 23일자 기사는 ASML의 역사를 잘 정리해서 보여줍니다.
ASML이 업계 후발 주자로 시작해 업계에서 대체가 불가능한 세계 유일의 반도체 장비 업체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습니다. 전문가들도 비관적으로 봤던 EUV 기술에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29세의 직원에게 회사의 플래그십 프로젝트의 지휘를 맡긴 조직문화와 TSMC를 비롯한 타 회사와의 폭넓은 파트너십도 있었지만 지정학적인 측면도 컸습니다.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일본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의 공포 때문에 처음에는 미국 기업만 허락했던 기술 파트너십에 일본 기업은 배제하고 유럽 기업인 ASML을 허락한 것이 결국 ASML을 세계 반도체 업계의 핵심으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 이 구도는 과거 일본의 자리에 중국이 들어간 형태로 AI 같은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재현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2.0 이후 조금 퇴색되기는 했지만 미국은 그동안 자국 주도의 파트너십에서 파트너들에게도 상당한 기회를 나누어주곤 했습니다(중국 주도 파트너십의 사례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두드러집니다). 미국 주도의 기술 파트너십에 들어간 기업들 중에 훗날 AI 업계의 ASML이 탄생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