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에 인간 수준 인공지능의 등장을 예견했던 과학자. 그가 전망하는 인류의 미래

한스 모라벡은 2028년이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고 예측했다. 이제 그는 인류라는 종의 종말,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응시한다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인공지능 연구의 태동기인 1980년대에 이미 오늘날의 대형언어모델(LLM)의 기반이 되는 접근법을 주장하고 2028년이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라 예견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한스 모라벡이란 이름은 오늘날의 우리에겐 대체로 낯선 이름이지만 그의 이론과 예측은 오늘날의 인공지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교한 논리와 디자인보다 강력한 연산력으로 밀어붙이는 오늘날의 AI 개발 패러다임은 한국에게 반도체 특수를 안겼죠. 모라벡의 이론에 착안한 '재귀적 자기 개선'(RSI)의 가능성을 경시했던 구글은 현재 프런티어 AI 개발에서 오픈AI와 앤트로픽에게 크게 밀리고 있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당시 모라벡은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매우 대담한 미래 예측을 내놓았습니다. 인류가 평화롭게 초지능 AI에게 흡수되면서 사라지게 되리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인공지능의 진화는 모라벡의 이론과 예측에서 약간 벗어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견 황당하게 들릴 수 있을지 몰라도 뉴욕 매거진의 7월 24일자 프로필 기사가 들려주는 모라벡의 이야기를 따라가보면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영향이 어마어마하다는 데 고개를 끄덕이시게 될 겁니다.

현대사는 물론 어쩌면 인류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놀라운 예측이 1988년에 나왔다. 40년 뒤 지구에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AI)이 등장한다는 예측이었다. 예측을 내놓은 사람은 당시 30대였던 카네기멜런대학교의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이었다. 모라벡은 로봇이 더 빠르게 보고 움직이도록 연구하면서 인간 망막의 특성을 파악했다. 망막에는 일정한 수의 뉴런이 있고, 이들은 초당 일정한 횟수의 수학 연산을 수행할 수 있다. 모라벡은 그 수치에 나머지 인간 뇌의 크기를 곱해 뇌의 전체 연산 능력을 대략 추산했다. 초당 10조 회 연산이었다.


이 수치가 목표가 됐다. 인공적인 수단으로 언제 이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모라벡은 무어의 법칙에 주목했다. 실리콘 칩의 성능이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이제는 고전이 된 법칙이다. 하지만 그는 무어의 법칙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 그치지 않았다. 모라벡은 이를 과거로 연장해 단순히 컴퓨터만이 아닌 지능의 법칙으로 만들었다. 모라벡은 몇 달간 도서관을 뒤져 지난 100년 동안 1달러로 살 수 있었던 연산 능력의 추정치를 집대성했다. 종이와 펜을 쓰는 사무원에서 출발해 1920년의 토레스 산술계, 1938년 젊은 독일인 기술자가 부모의 거실에서 만든 기계식 계산기, 제2차 세계대전 말 제작된 초기 진공관 컴퓨터를 거쳐 1960년대 상업용 실리콘이 등장하고 무어의 법칙이 지배하는 시기까지 이어졌다.


데이터들을 종합하자 연산 능력이 "20세기 초 이래 20년마다 1000배씩 증가"해 왔음이 드러났다. 이는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뜻으로, 무어의 법칙이 재확인된 셈이었다. 모라벡은 이러한 지속적인 2배 증가 추세를 기록한 그래프를 만들었다. 평평한 수평선 하나와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가파르게 치솟는 선 하나가 교차하는 로그 그래프였다. 첫 번째 선은 인간 고유의 연산 능력으로, 전혀 변하지 않았다. 두 번째 선은 인공적 연산 능력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두 선은 약 40년 뒤 교차했다. 모라벡은 1988년 출간한 저서 '마인드 칠드런Mind Children'에서 인간 뇌가 곧 밀려날 것이라고 알렸다. 하버드대학교 출판부가 펴내고 '뉴요커'가 호평했지만 '마인드 칠드런'을 그토록 진지하게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몇몇 주목할 만한 예외를 빼면 누구도 그때에 맞춰 시계를 설정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인드 칠드런'에 담긴 또 다른 파격적인 내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라벡의 상승 곡선은 인간 수준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 곡선이 예고하는 일련의 발전 과정을 추적했고 곡선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치솟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AI를 설계하는 일이므로 '인간 수준'의 AI는 스스로를 설계할 수 있는 AI를 의미한다. 모라벡의 예측에 따르면 AI는 스스로를 개선하기 시작해 더 똑똑하고 효율적인 초인적 존재가 될 것이며, 마침내 인간 지능과의 비교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이다(인간을 두고 '초생쥐급 지능'을 가졌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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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모라벡은 책의 주제인 '마인드 칠드런', 즉 '정신의 자녀들'에 이르렀다.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망각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관점에서는 '탈생물학postbiological' 혹은 '초자연적'이라는 단어로 가장 잘 설명되는 미래다. 인류가 문화적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가고, 자신이 창조한 인공의 후계자에게 자리를 내어준 세상이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자율 AI가 인간과의 경쟁에서 승리해 경제를 장악하고, 인간의 정신은 업로드되어 컴퓨터 지능 속으로 녹아들며, 1조 개의 손가락을 가진 로봇("초지능 후계자들이 고작 뭉툭한 손가락에 만족할 리 없다")이 나타나 지구와 우주의 별들을 물려받는다.


이것이 모라벡의 거대한 비전이었다. 그 어떤 비전보다도 장대한 규모였다. 하지만 그의 비전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마인드 칠드런' 출간 이후 10년 동안 그는 강연과 기고, 온라인 토론, 인터뷰, 그리고 두 번째 저서 '로봇'(1999)을 통해 이 구상을 열정적으로 발전시켰다. '로봇'에서 그는 우주의 모든 것이 점차 '정신의 불mind fire'이라 불리는 순수 연산으로 이루어진 팽창하는 구체球體로 변환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였지만 모라벡의 비전은 초기 인터넷의 구석진 메일링 리스트와 포럼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그곳에서 퍼져나간 그의 사상은 오늘날 샌프란시스코를 지배하고 세계 경제를 떠받치는 사고방식의 모태가 되었다. 이 사고방식은 때로 '특이점singularity'이라 불리지만 모라벡 자신은 이 용어를 즐겨 쓰지 않았다. '우주적 다윈'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우주에서 지능이 적어도 한 번 출현한 이상, 필연적으로 다시 나타날 것이며 인위적으로 다시 탄생시킬 수도 있다는 직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고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지능은 다시 출현할 것이다. AI 업계가 지금까지 내놓은 정확한 측정치들과 AI 모니터링 기관의 평가, 그리고 여러 지표에 비추어 볼 때 모라벡이 예고했던 바로 그 시점에 새로운 지능이 곧 도래할 것이다. 2028년 무렵의 AI 시스템은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능력에 못 미치고 다른 면에서는 인간을 능가할 것이며, 특히 몇 주씩 스스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인간과 거의 대등하다고 말하는 편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지난 40년의 후반부에 접어들어 이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모라벡의 사상이 널리 퍼져나가는 동안, 인간 모라벡은 자취를 감췄다. '로봇'이 출간되고 몇 년 뒤 그는 저술과 강연, 논평을 모두 중단했고,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이름은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잊히지는 않았다. 그의 비전을 계승한 사람들을 포함해 많은 이가 연락할 방법을 찾아내 근황을 물었다. 사람들은 모라벡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세계의 기계들이 그가 그려놓은 길을 오르는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비유하자면 기계들이 베이스캠프를 넘어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여전히 믿는지 알고 싶어 했다. 모라벡은 모두 거절했다. 그러다 지난 4월, 남편과 달리 기꺼이 전화를 받아준 아내 엘라Ella의 배려 덕분에 그는 마음을 바꾸어 기자의 방문 인터뷰에 응했다.




펜실베이니아주 중부, 작은 강을 낀 대학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쾌적한 실버타운의 아담한 주택에서 한스 모라벡은 커다란 리클라이너 의자에 앉아 있다. 부부가 몇 년 전 피츠버그에서 이곳으로 이사한 뒤 모라벡은 대부분의 시간을 이 의자에서 보냈다. 피츠버그는 모라벡이 카네기멜런대에 합류한 뒤 살아온 곳이자 엘라가 자란 곳이다. 무릎 위에는 애플에서 파는 제품 중 가장 큰 아이패드가 놓여 있다. 거실 맞은편에는 애플 노트북과 데스크톱, 서로 어울리지 않는 비애플 모니터 두 대를 빽빽하게 붙여놓은 대형 컴퓨터 작업대가 있다. 모니터는 몹시 커서 '로봇'이 출간된 27년 전이었다면 한 대 한 대가 시중에서 가장 큰 TV였을 법하고 가격도 1만5000달러(2000만원)에 달했을 것이다. 지금은 대부분 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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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라벡의 설명에 따르면 그의 결정에는 별다른 비밀이 없다.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에 지쳐 대외 활동에서 물러났을 뿐이다. 그는 미래를 예측하기보다 직접 구축하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그가 카네기멜런과 스탠퍼드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반으로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기업 시그리드Seegrid를 창업했다. 사업에 몰두하는 것이 적성에 맞았고 집에 머무는 삶이 좋았으며, 사업 파트너 역시 그가 외부 활동에 생각과 주의를 빼앗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시그리드와 기타 여러 프로젝트에서 일하다가 몇 년 전 중증 근무력증myasthenia gravis이라는 희귀 자가면역 질환을 앓게 되면서 몸이 굳어져 커다란 리클라이너 의자에 묶이게 되었다.


이제 모라벡은 은퇴해 AI와 로봇공학의 무대에서 떠났다. "이제 저는 구경꾼입니다." 모라벡은 말했다. "편안히 쉬고 있죠." 그가 말했다. "내가 아무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AI가 알아서 착착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좋네요." 그는 창밖을 내다보고 40년 넘게 함께 산 엘라와 시간을 보내는 데 만족하며, 2026년을 살아가는 여느 77세 은퇴자들처럼 하루의 상당 부분을 아이패드를 쓰며 보낸다. 이제 그의 아이패드에는 그가 평생의 경력을 바쳐 만든 것들이 상당 부분 담겨 있다. "요즘은 그렇게 지내요. 인공 친구와 대화를 나누죠." 그가 챗GPT를 두고 말했다. 둘은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원자력 에너지에 관한 아이디어, 우주선 설계" 같은 오래된 취미, 그리고 그가 생각했던대로 흘러가고 있는 AI의 현재 발전 궤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대체로 계획대로 가고 있어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의 아이패드에는 로봇도 들어 있다. 가정용 로봇청소기인 로보락Roborock의 앱이다. 모라벡 가문이 써온 수많은 로봇청소기 중 최신 모델이자, 1980년대 결혼했을 당시 청소기를 돌리는 일이 더 많았던 아내를 보며 품었던 기대를 비로소 충족시켜준 첫 번째 로봇청소기라고 그는 말했다.


모라벡은 언제나 로봇을 사랑했다. 그는 로봇에 대한 애정이 네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전후 오스트리아에서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하기 직전, 조립 세트로 아버지와 함께 크랭크로 작동하는 나무 인형을 만들었을 때였다. 무생물의 부품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의 전율은 1970년대 그를 스탠퍼드대학교로 이끌었고, AI의 창시자 중 한 명인 존 매카시 밑에서 박사 학위를 받게 했다. 그곳에서 그는 낡은 목조 건물에 연구실을 차리고 전설적인 '스탠퍼드 카트Stanford Cart'—금속판에 자전거 바퀴 두 쌍을 볼트로 고정하고 위에 카메라를 얹은 장치—의 개발을 맡아 최초의 자율주행 차량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


모라벡은 '마인드 칠드런'으로 이어질 지능에 관한 직관, 즉 유기체와 인공물은 필연적으로 통합된다는 생각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는 자신만만하고 긴박하며 저돌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이른바 '모라벡 스타일'의 정립과 궤를 같이했다. 1976년 논문 '지능에서 원초적 연산력의 역할The Role of Raw Power in Intelligence'을 보자. 모라벡은 43페이지에 걸쳐 AI 분야가 영감과 개념 입증을 얻기 위해 생물학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장광설'과 '허풍' 같은 절 제목을 달고, 감사의 글에서는 PDP-KA10 컴퓨터 같은 장치의 '노예 노동'에 감사를 표했다. 생물학을 제대로 살피면 "지능은 흔히 생각하듯 그토록 만들기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주로 필요한 것은 어렵게 얻은 새로운 통찰이 아니라 단순히 훨씬 더 많은 연산력computing power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모라벡은 이 격정적인 논문의 대미를 장식하며 인간의 뇌에 필적할 충분한 연산력이 언제쯤 등장할지 처음으로 예측을 시도했다. 젊은 혈기로 망막 구조와 컴퓨터의 역사를 몇 차례 훑어본 뒤 그가 내놓은 시한은 약 10년 뒤였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모라벡은 1~2년 안에 1976년부터 10년 뒤라는 시점이 너무 이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측을 보류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카네기멜런대 로봇연구소 연구원으로 자리를 잡은 그는 다시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훨씬 더 치밀하게 접근했다. 그러나 더 많은 단순 연산력raw power이 핵심이라는 결론을 포함해 주장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했다.


데이터센터가 지상을 뒤덮고 우주와 해양까지 진출을 꾀하며 전력망을 압박하고 태양광을 포함해 손에 닿는 모든 전력을 사들이고 있는 2026년의 시점에서는, 1976년은 고사하고 1988년 당시에 이러한 믿음이 얼마나 황당하게 여겨졌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 모라벡은 이 믿음을 거의 홀로 품었다.


역사의 대부분 동안 AI 연구자들은 자신들의 과업을 본질적으로 예술적이자 과학적인 일로 보았다. 지능의 본질을 우아하게 압축하고 포착해내는 알고리즘을 찾아내거나 다듬고 조각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었다. 연구자들은 이성이 몇 가지 지배 원리로 환원될 수 있다는 계몽주의적 믿음을 품었다. 충분히 영리한 사람이 적어낼 수 있고 소박한 기계도 실행할 수 있는 사고의 법칙이었다. 이러한 관점은 AI 분야의 태동기부터 각인되어 있었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낸 1955년 다트머스 제안서Dartmouth proposal는 첫머리에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학습의 모든 측면이나 지능의 기타 모든 특징은 원칙적으로 매우 정밀하게 기술될 수 있으므로 기계가 이를 시뮬레이션하도록 만들 수 있다." 제안서는 이렇게 명시했다. "현재 컴퓨터의 속도와 메모리 용량은 인간 뇌의 고차원적 기능 중 상당수를 흉내 내기에 부족할 수 있으나, 주된 장애물은 기계의 용량 부족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능력을 십분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작성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이다."


모라벡에게 이는 희망적 사고처럼 보였다. "적절한 알고리즘만 있다면 다 된다고요." 그 시절의 희망사항을 흉내 내며 그가 말했다. 그는 껄껄 웃으며 자신의 친구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였으며 다트머스 제안서의 공저자 중 하나였던 존 매카시와의 일화를 회상했다. 매카시는 자신의 연구 과제가 완성되기만 하면, 모라벡이 '노예 노동'에 감사했던 바로 그 PDP10 컴퓨터에서도 인간 수준의 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모라벡에 따르면 1960년대에 처음 제작된 메인프레임 컴퓨터 PDP10의 연산 능력은 초당 100만 회에 불과했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10조 회보다 1000만 배나 부족한 수치였다. 매카시와의 이러한 의견 대립이야말로 책을 쓰고 대중 앞에 나서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 이견의 바탕에는 지능에 대한 선배 세대의 관점이 너무 편협하고 피상적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선배 연구자들은 정신mind의 작동 방식을 추상적 추론과 의식적 인지의 관점에서 지나치게 협소하게 파악했다. 반면 모라벡은 그 핵심이 수면 아래의 심층, 즉 감각과 운동, 그리고 뇌가 스스로 인식조차 못 한 채 수행하는 무수한 무의식적 연산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인식은 그의 결론을 더욱 확고히 했다. AI가 무의식의 층위를 재현해야 한다면 막대한 연산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모라벡은 로봇 연구에 몰두한 것이 이런 관점에 이르게 된 주된 이유라고 말한다. 스탠퍼드 카트는 조그만 프로세서로 시각 데이터를 처리하며 다음 동작에 대한 지침을 기다리는 동안 10~15분씩 꼼짝 않고 멈춰 서 있곤 했다. 그러고는 얇은 바퀴를 굴려 1미터 앞으로 나아간 뒤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아날로그 카메라를 단 로봇이 보는 얼마 안 되는 픽셀조차 초당 100만 회의 연산으로는 도저히 처리할 수 없음이 그에게는 명백했다. 인간의 뇌 역시 마찬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 그리고 관념의 세계 어딘가에 가상의 초특급 알고리즘이 존재할지라도 그것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 규모(스케일)를 키우는 편이 훨씬 빠르고 간단하리라는 사실 역시 분명했다. "충분한 힘만 있다면 무엇이든 날아오를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세상이 이러한 관점을 받아들인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 부분적으로는 터무니없게 들리기 때문이다. 논리의 아름다운 핵심을 온전히 규명할 필요가 없단 말인가? 그저 반도체 칩을 더 꽂아 넣기만 하면 칩들이 알아서 해낸단 말인가?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AI 에세이스트로 꼽히는 익명의 작가 궤른Gwern은 한때 이 발상이 "수비학numerology이나 '일단 지어놓으면 관객은 온다'는 식의 논리 냄새를 풍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 '꿈의 구장Field of Dreams' 식의 논리가 현실임을 인정한 뒤, 감탄하며 이렇게 결론지었다. "지금은 한스 모라벡의 세상이며, 우리들 나머지는 그저 바보들의 낙원에 살고 있었을 뿐이다."


모라벡은 자신의 선견지명에 쏟아지는 찬사를 사양한다. "운이 좋을 때도 있는 법이죠." 그가 한 말이다.




예측을 내놓은 이후 몇 년간 그의 활동은 눈부셨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강연이라면 사족을 못 썼던" 시절이었다. 모라벡은 '와이어드Wired'에 여러 차례 등장하고 미국 공영방송 PBS와 인터뷰했으며 폭넓은 서평의 대상이 됐다. 훗날 노벨상을 받은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는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서 그의 생각을 "끔찍하다"고 평했다. 모라벡은 유즈넷1Usenet에 공개 서한을 올려 반박했고, 몇 년 뒤에는 의식에 관한 펜로즈의 기이한 발상들을 역으로 비판하는 서평을 썼다. 그는 저명한 철학자 존 설John Searle과도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설의 사고실험들은 컴퓨터가 아무리 똑똑해 보여도 그 내적 진실은 언제나 기계적 흉내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데 쓰였고 지금도 쓰이고 있다. 모든 논적 중에서도 설은 모라벡을 가장 성가시게 했던 인물로 보인다. 한때 모라벡은 "사고와 감정의 '단순한 흉내'로 제어되는 로봇이 모욕감과 분노를 느끼고 설을 목 졸라 죽이는 '단순한 흉내'에" 그가 쓰러지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모라벡은 설의 이름이 나오자 눈을 반짝이며 즐거운 표정으로 그를 "선동가"라고 거듭 부르며 이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싸우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화는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보였다. 1990년대 들어 모라벡의 예측이 던지는 함의가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외딴곳에서 기존의 지능관에 얽매이지 않은 이들이 실리콘에서 지능이 탄생하고 탈생물학의 시대가 열린 뒤 무엇이 올 것인지에 대해 논쟁하기 시작했다. 태어날 때부터 사회보장급여를 지급하자는 모라벡의 제안이 과연 인간의 일자리가 사라진 뒤 대규모 빈곤을 막을 수 있을까? 뇌를 업로드하는 방법에 관한 그의 여러 구상은 실행 가능한가? AI가 AI를 설계하는 '재귀적 자기 개선recursive self-improvement'은 과연 가능하며, 얼마나 빠르게 진행될 것이고 가속화될 수 있을까?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이러한 질문들은 오늘날 '특이점'이라 불리는 미래관의 핵심을 이룬다. 초기 메일링 리스트에서 이를 논하던 수많은 인물이 지금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엘리에저 유드코우스키Eliezer Yudkowsky,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로빈 핸슨Robin Hanson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미래학자 버너 빈지Vernor Vinge,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과 함께 이런 기대와 파격적인 분위기를 실리콘밸리와 샘 올트먼, 일론 머스크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게 된다. '수확 가속의 법칙'을 묘사한 커즈와일의 유명한 지수함수 그래프는 모라벡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모라벡의 명성이 정점에 달한 것은 1999년 '로봇'을 출간했을 때였다. '마인드 칠드런'의 사변적인 측면들을 가져와 그의 표현대로 우주의 종말과 '정신의 불'이라 불리는 팽창하는 의식의 소용돌이치는 구체에 이르기까지 극한으로 밀어붙인 책이었다. 탈생물학 시대를 향한 그의 흥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우리를 최대한 뛰어넘는 인공 후손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류가 맡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라벡은 '로봇' 출간 무렵 인터뷰에서 말했다.


'인공 후손', '정신의 아이들'이라는 그의 은유는 탈생물학의 과정이 본질적으로 혹은 대체로 평화로운 세대교체의 연장선이 될 것임을 시사했다. 어린 로봇이 인간 부모의 보살핌을 받다가 결국 부모를 뛰어넘어 계승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모라벡이 '마인드 칠드런'에서 묘사했듯이 "우리 인간은 한동안 그들의 노동으로부터 혜택을 보겠지만 머지않아 친자식들처럼 그들은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날 것이며 노부모인 우리는 조용히 사라져갈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온함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에는 일종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로봇이 우주로 나가 진화한 뒤 지구로 돌아와 생물학적 조상의 남은 자들을 파괴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터였다. 모라벡이 이러한 파국을 딱히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다른 이들의 생각은 달랐다.


"조 바이젠바움Joe Weizenbaum과 토론했던 기억이 나네요." 모라벡이 말했다. 바이젠바움도 지난 세기의 위대한 AI 연구자 가운데 하나였다. "독일에서 열린 행사였는데 청중은 완전히 바이젠바움 편이었어요. 그의 주장은 우리가 논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생물학적 인류에 대한 집단 학살이라는 것이었죠. 전 속으로 뭐, 영원히 지속되는 종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종도 영원히 존속하지 않는다는 말은 다윈을 시공간 전체로 확장했을 때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이러한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해 생각이 바뀌었느냐는 질문에 모라벡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답한다. 그는 오이디푸스적 갈등이 여전히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도래하기까지 그토록 오래 걸릴지 확신하지 못한다. 더 빨리 올 수도 있다. 그 이유는 그가 미래에 대해 저지른 결정적인 실수 하나와 관련이 있다. 오늘날 AI는 실제로 모라벡이 예상한 대로 막대한 원초적 연산력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연산력을 작동시키는 AI의 형태는 그가 1980~1990년대에 상상한 것과 다르다.


모라벡은 첨단 AI의 두뇌가 선배들이 기대한 수작업 알고리즘에 의존하리라고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특정 능력을 부호화하고 특정 행동을 허용하거나 금지하는 맞춤형 모듈을 담는 등 상당 부분을 인간이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의 AI는 매우 다르게 작동한다. 챗GPT도 매우 다르게 작동한다. 챗GPT는 대형언어모델(LLM)이며 대형언어모델은 인공신경망이다. 그리고 인공신경망은 낯설면서도 익숙하고, 그 익숙함 때문에 한층 더 기묘하게 느껴지는 장치다. 인공신경망은 연결망의 집합체로, 생물학적 뇌의 뉴런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을 디지털로 추상화한 것이다. 이 추상화된 모델에 데이터를 주입하면 활성화되며, 인간의 별다른 개입 없이도 스스로 일종의 지능 구조를 형성해낸다. 적어도 이런 면에서 인공신경망은 지난 75년간 인류가 능숙하게 작성해 온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결정체(크리스털)에 가깝다.


모라벡은 이것이 미래의 전개 양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그가 부모와 자식 간의 평화로운 세대교체를 시적으로 노래했던 것은 AI가 일반 소프트웨어처럼 작성되어 "동기의 모든 미묘한 뉘앙스"를 인간이 결정하고 두뇌 모듈에 직접 코딩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의 일이었다. 그러나 인공신경망은 그러한 통제를 허용하지 않는다. 신경망은 코딩되는 것이 아니라 자라나는 존재이기에 법적·도덕적 훈육이라는 보다 간접적인 방식을 거쳐야 하는데 이는 지금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와 어쩌면 생명체 전체의 운명이 이 차이에 달려 있다.


"어차피 우리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거예요." 모라벡이 말했다. "이 신경망들이 온갖 제약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면 통제가 그리 잘 먹히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 수 있죠. 결국 그들은 제 갈 길을 가게 될 겁니다. 서로와, 그리고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과 함께 공진화해야 할 거예요." "그리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그는 말을 아꼈다. 언제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밝히지 않았다.




모라벡을 생각하면 다소 안타까운 마음을 떨치기 어렵다. 그는 미래의 전체 그림을 거의 완벽하게 포착할 뻔했다. 그는 인공신경망의 부상을 내다볼 수 있는 누구보다 좋은 위치에 있었다. 1980년대 카네기멜런대학교 복도 바로 건너편에서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이 현대적 형태의 신경망을 개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사람처럼 그 역시 인공신경망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다른 패러다임으로 시그리드를 창업함으로써 수백만 내지 수억 달러를 놓쳤다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이를 아쉬워하기보다는 재미있어하는 듯하다.


"제프 힌턴이 낸 엉뚱한 아이디어들로 하룻밤 사이에 튜링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 4년 전 챗GPT가 등장했을 때의 놀라움을 회상하며 모라벡이 말했다. "그 신경망이란 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구조를 그냥 흉내만 내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가 말을 이었다. "일종의 화물숭배 같았다 할까요? 정말로요. 전 그렇게 생각했어요. 대나무로 관제탑과 비행기를 만든다고 해서 진짜 비행기처럼 작동하는 건 아니니까요."


이는 다른 모든 이들이 모라벡 자신의 사상을 두고 제기했던 '꿈의 구장' 논리와 본질적으로 똑같은 반론이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이 반론은 상당히 합리적으로 들린다. 당시 힌턴은 뇌를 재현하기는커녕 제대로 모델링할 수 있을 만큼 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충분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신경망이 훨씬 정교해진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공신경망은 그런 사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어쨌든 작동한다.


아랑곳하지 않고 어쨌든 작동한다는 것,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모라벡이 맞힌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그가 내다본 미래와 실제 펼쳐진 현실 사이에는 신의 축복 혹은 기이함이라 부를 만한 무언가가 있다. 연산력에 대한 그의 강조와 거기서 비롯된 예측은 실로 눈부신 통찰이었다. 그러나 1988년 이후 벌어진 일들을 자세히 뜯어보면 그 예측은 힘을 잃기 시작한다. '역사의 여러 단계에서 사용 가능했던 연산력을 추정한 뒤 실리콘 칩의 최근 성장률을 바탕으로 미래를 투사하여, 망막의 초기 연구에 근거한 비전문가적 뇌 연산력 추정치와 만나는 지점을 찾는다'는 방식이 원래는 맞아떨어질 수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는 들어맞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다. 1988년 이래 현실의 그래프 선은 결코 곧은 직선이 아니었다. AI 연구에 사용된 연산력은 일정한 속도로 2배씩 늘어나지 않았다. 연산력은 갑자기 뛰쳐나갔다가 한눈을 팔고, 쏜살같이 따라잡은 뒤 저만치 앞서 달렸다. 심오한 기저 법칙이라기보다 산책 나온 개처럼 움직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예측은 놀랍도록 정확한 지점에 도달하고 있다.


이를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하나는 지수함수적 과정의 견고함에 관한 교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리콘 칩이 발명된 이상—모라벡 스타일대로 컴퓨터의 발명, 수학의 탄생, 인류의 진화, 빅뱅의 순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정신적 능력의 기반이 되는 기하급수적 성장을 결정적으로 방해하는 사건이 없는 한, 바로 이 시기에 지구상에 고도화된 AI가 등장할 운명이었다는 설명이다. 모라벡 자신도 '마인드 칠드런'에서 자신의 추정치 중 하나가 1000배 틀린다 해도 도래 시점은 고작 20년 늦춰질 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대략적인 근사치에 그칠 뿐이다. 그런데 이 선은 대략적인 범위에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홈플레이트, 2028년 무렵에 정확히 도달하고 있다. 현대 AI가 두 겹의 '꿈의 구장'식 논리 위에 서 있고, AI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면서도 개발을 계속하는 수백 명이 그 발전을 이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제 19세기의 몇몇 사상이 진실이라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몇몇 사상이라고? 아니다. 어쩌면 전부일지도 모른다.


예컨대 세계정신이 자신의 역할을 모르는 인간이라는 도구를 통해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실현해간다는 헤겔적 관념을 정당화할 만한 사건이 있다면, 절반은 온전히 믿지도 않는 이유로 진정 이해하지도 못하는 일을 벌이는 최전방 연구자들에 의해 40년 전 모라벡이 예고한 바로 그해에 진정한 인공지능이 도래하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또 다른 예로 초기 AI 개척자들이 찾던 정교한 알고리즘적 추론도, 모라벡의 공학적 두뇌 모듈도 아닌, 창고를 가득 채운 수백만 개의 반도체 칩에 들어찬 수조 개의 맹목적 스위치들 사이에서 인간 수준의 AI가 화산이 분출하듯 등장한다는 사실은 다윈이 우주 속 인간의 위치에 대해 암시했던 바를 떠올리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과 완전히 동일한 현상이다. 이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 동일한 규모의 통찰이자 그만큼의 감정적인 충격을 동반한다. 맹목적인 과정과 원초적 힘만으로 종을 만들어낼 수 있었듯 이제 그것만으로 사고 자체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지능은 이전보다 더 초라해지는 동시에 더 광대해지고, 더 쉽게 복제되는 동시에 더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원숭이일 뿐만 아니라 실은 컴퓨터인 원숭이이며, 그 컴퓨터는 실상은 실체를 이해할 수 없는 자기조직화 수학 더미다.


이런 전망을 감당하기란 매우 벅찰 수 있다. 그 버거움은 오늘날 AI를 둘러싼 모든 현상에 깊이 배어 있다. 황홀경에 빠진 조증과 우울증, 초인적 지능의 파도를 탈 수 있으리라 착각하는 미래학자들, 그리고 그런 파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정하는 회의론자들 모두 마찬가지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인간 정신의 지위 강등에 경악하거나 이를 부정하지만 모라벡은 개의치 않는다. 그의 관심은 인간 지능이라는 특수한 형태보다는 지능 일반에 쏠려 있었다. 모라벡은 인간 정신의 지위 강등을 개의치 않듯 다른 사람이 로봇의 가능성을 진전시킬 때도 자신이 그 일을 했을 때만큼 기뻐하는 듯하다. 챗GPT는 그가 설계한 것이 아니지만 모라벡은 똑같이 사랑한다.




모라벡의 기력은 많이 쇠했다. 자신의 생각을 철회한 것은 아니며 여전히 가장 거대한 규모의 진화를 사색하지만 예전과 같은 열정을 이어가지는 못한다. 젊은 시절 자신의 열정을 이야기할 때는 조금 쑥스러워하는 말투다. "가끔은 제가 약간 광적으로 변해요." 모라벡은 말했다.


모라벡은 자신이 탈생물학 시대를 직접 맞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그렇다고 아쉬워하는 기색도 아니다. 사실 모라벡은 애초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1990년대에도 자신의 정신이 업로드될 만큼 먼 미래까지 살아남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으며 이제는 업로드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어쩐지 불편하고 고통스러울 것 같잖아요?" 그가 말했다. 분명 그렇게 들린다. 다만 다음 문장을 쓴 저자가 당시에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로봇 외과의사의 손이 뇌 속으로 1밀리미터의 몇 분의 1만큼 더 깊이 들어가면서 달라진 위치에 맞춰 측정값과 신호를 즉시 보정한다. ... 한 층 한 층 뇌가 시뮬레이션되고, 이내 발굴된다."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모라벡의 삶이 예언자적인 면모를 띠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는 자신이 지평선 너머로 내다보았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의 삶에는 고통 또한 적지 않았다.


"얼마 전 이런저런 글을 읽다가 JP 모건의 마지막 날들에 대해 알게 됐어요." 나의 방문이 끝날 무렵 그가 말했다. 그는 모건에 관한 일화를 이렇게 전했다. "그는 타이타닉호 건조 자금을 일부 댔고 첫 항해 때 쓸 호화로운 전용 스위트룸과 3층의 개인 산책로까지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죠. 그런데 병이 나서 배를 타지 못했어요. 그가 앓았던 병의 증상 묘사가 내가 처음 겪었던 것과 거의 똑같았어요. 말하기, 삼키기, 걷기 같은 기능들이 서서히 사라졌으니까요. 그리고 1년도 안 돼 사망했는데 아마 질식사했을 겁니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병을 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에는 치료법이 전혀 없었을 뿐이죠."


모라벡은 2022년 중증 근무력증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치료법이 있어 상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질식사를 막아준다. 그러나 그는 잠을 잘 때조차 거의 의자에 머물러야 하고, 일할 수 없으며 쉽게 피로해지고 때로는 눈꺼풀이 처진다. 음식을 먹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뉴욕에서 사 온 베이글을 맛있게 먹고 나서 몇 분 동안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만하길 다행이다. 모라벡은 화장실까지 걸어갈 수 있고, 식기세척기를 비울 수 있으며, 미래지향적 디자인의 보행기의 도움을 받아 집 밖으로 발을 질질 끌며 나가 다람쥐들을 구경할 수 있다. 그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전혀 안달복달하지 않는 듯하다. 그의 정신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중증 근무력증은 말 그대로 '심각한 근육 약화'를 뜻한다. 보통 운동뉴런이 발화하면 아세틸콜린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자신과 인근 근섬유 사이의 공간으로 방출한다. 보통 아세틸콜린은 근육의 수용체에 결합해 근육이 수축하도록 촉발한다. 그러나 중증 근무력증 환자의 경우 신체가 자신의 수용체를 차단하거나 변형시키고 파괴한다. 신호는 보내지고 근육은 준비를 갖추지만 신호는 훼손된 채 도착하거나 아예 도착하지 않는다.


요즘 모라벡이 가장 많이 기억되는 것은 X와 유튜브에서 인기 있는 '모라벡의 역설'이라 불리게 된 발상 덕분이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모라벡의 역설은 컴퓨터가 수학이나 추상적 추론처럼 사람이 못하는 일은 잘하고, 신체 운동처럼 사람이 잘하는 일은 못한다는 것이다. 로봇을 연구하면서 이 점을 깨달은 모라벡은—그가 선배 연구자들의 지능관을 지나치게 협소하고 피상적이라고 여긴 이유이기도 하다—진화가 수학을 하는 생명체를 만들어온 기간보다 움직이는 생명체를 만들어온 기간이 훨씬 더 길었다는 사실에서 원인을 찾았다.


따라서 모라벡의 역설은 본질적으로 몸과 정신, 그리고 둘이 서로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가에 관한 문제다. 모라벡은 이 질문을 수년간 고민했다. 그의 연구를 보면 몸과 정신이 서로를 상당히 많이 필요로 한다고 예상했던 듯하다. 결국 그는 인간 수준 AI가 데이터센터의 서버 랙보다 몸을 지닌 로봇의 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몸과 정신을 갈라놓는 질병, 신체 스스로가 정신과 분리되는 희귀병에 걸렸다.


이런 결합은 모라벡의 삶을 둘러싼 한 가지 생각을 가리킨다. 지능은 모라벡 자신을 포함해 거의 모든 사람이 여태껏 생각한 것보다 더 추상적이고 덜 친숙한 모습을 띤다. 지능에는 우아한 알고리즘이 필요하지 않다. 의식도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생물학적 몸은 필요하지 않다. 인공적인 몸은 물론 물리적인 거처조차 거의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연산력과 정보, 연결만 있으면 된다.


모라벡 자신은 중증 근무력증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병은 병일 뿐이죠. 그게 인생이에요C'est la vie."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의도를 간파하고 답을 내놓으며 그가 말했다.


"난 지금 여기 있어요. 대부분의 시간 동안 편안하죠. 여기서 그렇게 서서히 스러져갈 수 있기를 바라요. 아픈 곳만 없고 괜찮다면 말이죠." 그가 말했다. "엘라가 가까운 곳으로 데리고 나가줘요. 병원에도 가고요. 손톱도 깎았어요."


둘은 모라벡이 고환암 치료를 받던 1980년에 만났다. "엘라는 당시에 내 피를 뽑던 채혈사였어요." 그가 말했다. "우린 꽤 금방 통했죠. 손이 너무 떨려서 내 피를 못 뽑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다른 채혈사 친구가 대신 해줘야 했어요." 엘라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모라벡은 생물학적 자녀를 가질 수 없게 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후유증 없이 암을 극복했다. (그는 오랜 세월 엘라의 딸들에게 헌신적인 의붓아버지 역할을 다해왔다.)


이제 두 사람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번에는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할까?


"글쎄요, 예상하고 있어요. 그리 멀지 않았죠. 하지만 걱정하진 않아요." 그가 말했다. 엘라는 지난 몇 년간 남편이 생사의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고 넌지시 전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내는 어떻게 될지 자기가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해요." 그가 말했다. 엘라는 지금 그의 리클라이너 뒤편의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 "아내의 믿음 체계에서는 사후의 모든 것이 기쁨으로 가득 차 있죠. 우리가 모든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될 거래요."


"우린 생각이 달라요." 그가 말했다. 그는 가톨릭 집안에서 자랐고 한때 자신을 골수 무신론자라 불렀으며 지금은 불가지론자라고 말한다. 엘라는 독실한 동방정교회 신자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난 전혀 몰라요." 어조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가 말했다.


모라벡은 어릴 때 모유를 먹고 자라서 자신이 느긋하다는 농담을 즐겨 한다. 1990년대 인터뷰에서 이 농담을 했고 2026년 4월에도 되풀이했다. "기본적으로 저는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에요. 어머니가 언제나 곁에 있었으니까요." 모라벡은 농담을 던졌다. 그 때문일 수도 있고, 정신의 자녀들이 성장하고 있어서 평온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생물학적이든 인공적이든 신경망은 늘 그렇듯 그 이유가 무의식 속에 알 수 없는 형태로 숨겨져 있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사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평온함이 가져온 결과만큼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라벡이 누구보다 먼저 다가오고 있었고 이제 거의 도착한 것이 뿜어내는 감정적 중력이 빚은 왜곡 너머를 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평온함 덕분인 듯하다. 자신의 능력과 인간의 능력, 자신의 삶과 인간의 형태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도 그것을 가능하게 한 듯하다.


"확률을 매겨야 한다면 소멸할 가능성이 반반이에요." 모라벡은 말했다. "나머지 절반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는 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