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7 13:04
4~5년 전 어느 날, 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나는 20대로 중견급 IT 기업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뭘 창업할지 혹은 어떤 분야에 집중하고 싶은지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조차 없었다. 하지만 나는 창업자가 되는 것이 올바른 다음 단계라고 확신했다.
대학에서 나는 인문학 분야를 전공했다. 철학자나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난을 감수할 배짱이 없었다. 중상류층에서 탄탄하게 자랐음에도 불구하고?혹은 그 때문에?늘 가난해지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자본가가 되고 싶다는 나의 열망은 졸업 후 몇 년이 지난 후, 내 모교에서 가르쳤던 전직 교수님의 신간 출판기념회에 참석했을 때 구체화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청중석에서 나를 본 교수님은 수상 경력에 빛나는 작가, 인기 있는 서점의 주인, 저명한 평론가 등 여러 저명한 문인들과 함께 하는 호화로운 만찬에 나를 초대했다. 유명 작가들에 대해 수다를 떨며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지만 계산서가 도착했을 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우리는 은밀하게 테이블을 둘러봤고?IT 업계에 종사하는 젊은 나와 나보다 수십 살 더 나이가 많지만 예술에 대한 헌신 때문에 가장 먼저 계산서에 손을 뻗지 못하게 된 그들?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계산을 할 만한 부자가 주변에 없음을 깨달았다. (결국 나눠서 냈다.)
나는 늘 계몽주의 시대의 젠트리들이 부러웠다. 똑똑했기 때문에 지적, 예술적 돌파구를 만들어낼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 말고는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젠트리의 현대판이라 할 수 있는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들 또한 부러웠다. 만일 내 스스로 집안의 재산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충분히 부르주아적인 생활수준을 포기하지 않고도 내 지적 야망을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나는 '슈퍼파이어1FATFire' 같은 이름의 레딧 게시판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자신의 '숫자', 다시 말해 영원히 기분 내키는대로 살 수 있을 만큼의 금액에 집착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느 화창한 주말, 친구들은 해변에 놀러 간 사이 카페에서 스프레드시트를 펼쳐놓고 예상되는 평생 지출의 현재 가치를 더하여 나 자신에게 필요한 금액을 추산하던 게 기억난다. 물론 안전인출률2safe withdrawal rate, 가상의 자녀를 위한 사립학교 학비, 가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하는 만찬과 같은 수당도 고려해야 했다. 나는 600만달러(78억원)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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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목적과 수단을 부합시키는 것이다. 나의 목적이 빠른 재정적 독립이라면, 나의 수단은 젊음, 혈통, 학자금 대출 없음, 뛰어난 업무 능력, 조합수학combinatorics의 능력 부족(때문에 퀀트투자에는 적합하지 않았다)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상 과학 소설을 좋아하고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놀았을 정도로 테크놀로지를 좋아했던 게 도움이 됐다. 아마도 가장 현명한 방법은 FAANG3 중 한 곳에서 일하면서 안정적으로 연간 수십만달러를 버는 것이었으리라. 하지만 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는 2010년대 중반이었다. 아직 투자 광풍이 극에 달하기 전이었지만,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에게 자본을 쏟아붓고 있었다. 나와 같은 졸업반 학생 중 하나는 창업한 지 2년밖에 안 된 스타트업을 인생을 바꿀 만큼 큰 금액에 팔아치웠다.
몇 차례 잘못된 시작 끝에 나는 친구의 소개로 내 공동창업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내 신경증적 성향과 균형을 이루는 방식으로 친근하고 밝은 성격이었고 나는 그를 즉시 좋아하게 됐다. 우리는 비슷한 시장을 탐색하다가 유망한 아이디어 하나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당시 핫했던 업계의 한 구석에 있는 시장으로, 겉보기엔 지루해 보이지만 큰 시장이었다. 우리는 위워크WeWork에서 일련의 화이트보드 세션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매 세션이 끝나면 술집에 가서 술에 취해 우리의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며 빠른 속도로 친구가 됐다. 우리 둘 다 돈을 원하지만 그 금액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데 동의했다. "당신의 '금액'은 얼마예요?" 내가 물었다.
"우리 각자 몇 백만 달러를 벌면 충분할 걸요." 그는 말했다.
모든 창업자는 골드러시로 향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를 갖고 있지만 내가 결국 고용하게 될 경영 코치는 실제로는 두 가지뿐이라고 말한다. 부자가 되고 싶은가? 다른 목적을 위해 부를 창출하는 것이다. 아니면 왕이 되고 싶은가? 여기서 돈은 세상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려는 노력의 부산물에 불과하다.
당시 나는 부자가 갖는 자유를 원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나는 내가 게임에서 이기는 패를 빨리 포착하지 않으면 게임을 바로 중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내 운명을 결정할 마지막 패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중산층 창업자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서류상으로는 미미하게 부유한, 실패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성공도 아닌, 역사상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거인과 쓰레기를 만들어낸 시대의 황혼 속에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채로 버티고 있는, 당신이 들어봤을 수도,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는 사업체의 소유주다.
폴 그레이엄Paul Graham?미국을 선도하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이자 현대 스타트업 시대의 수호신 중 하나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설립자?의 팬이라면 아마도 (돈만 바라는) 용병이 된 게 나의 원죄라고 할 것이다. 2000년대 초 첫 번째 IT 버블이 꺼질 때부터 2012년 페이스북의 기업공개에 이르기까지 약 10년 동안,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것은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한 일이었다. 창업자가 자금을 확보하거나 최고의 인재를 고용하려면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전 세계의 정보를 정리하고(구글), 세상을 더 가깝게 연결하고(페이스북), 어디에서나 살 수 있게 한다(에어비앤비). 이상적인 창업자는 선문답의 주인공 또는 '마법사의 돌'에서 소망의 거울을 마주하는 해리 포터와 같은 존재다. 돈을 좇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 하지만 고객의 목소리를 좇으면 결코 원하진 않았지만 갖게 돼 참 다행인 부를 얻을 수 있다.
[PADO 트럼프 특집: '미리보는 트럼프 2.0 시대']
창업자들이 실제로 얼마나 이 계율을 따랐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수익성 있는 출구를 찾는 용병들에게 스타트업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된 세 가지 일이 일어났다. 2008년 이후 금융은 덜 멋있어졌고 전반적으로 수익성도 떨어졌다. 지난 10년 동안 페이스북을 필두로 몇몇 스타트업이 견고하고 엄청난 수익을 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자율이 제로로 떨어지면서 수익을 추구하는 자금이 넘쳐났고, 먼 미래에 창출할 수익(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창출하는 유일한 수익이기도 하다)의 스프레드시트상 가치가 상승했다. 이 강력한 조합은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산사태가 일어나듯 스타트업에 자본을 투자하게 만들었다. 이후 몇 년 동안 이러한 벤처 자금의 일부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기업에 투자된다. 일부는 위워크 같은 돈 먹는 하마에게 들어갔다. 너무 많은 돈이 피라미드 사기가 난무하는 암호화폐의 황무지에 투입됐다. 그리고 아주 작은 한 조각이 내게 떨어졌다.
공동창업자를 만나기 전, 나는 개인적으로 볼 때 매력적이면서도 상업적으로 실현 가능한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위해 1년을 보냈다. 벤처캐피털 친구들에게 틈새 미디어 회사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했을 때, 그들은 친절했지만 별로 감명을 받은 느낌은 아니었다.
"어드레서블addressable 마켓은 어때?" 내 친구 T가 만찬 중에 물었다. 번역하자면, 당신이 성공하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줄 수 있느냐다. 그는 내가 자신에게 사업 아이디어를 피칭해 식사비용을 회사에 청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게 기뻤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유명 은행으로 벤처캐피털 업계에 진출했지만 상대적으로 인색한 접대비 정책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건 큰 사업이 될 수 있어!" 내가 말했다.
"에이, 우리 둘은 큰 것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은데." 그는 대답했다. 나는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스타트업이 대략 연간 1억달러(1300억원)의 매출을 창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없다면 침대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걸 곧 알게 됐다. 이는 회사가 그 숫자의 몇 배의 가치가 있음을 의미하는데 이는 회사가 인수되거나 상장될 경우 일반 투자자가 '펀드 리턴return the fund', 다시 말해 투자한 총금액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게 만든다. 나는 냉혹한 멱법칙power law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실패하기 때문에 성공하는 놈은 크게 성공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벤처 자금 없이 힘겹게 사업을 시작해 볼 수도 있었으리라. 업계에서는 이를 '부트스트랩bootstrapping'이라고 부른다. 벤처 업계에서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할 가능성이 없는 부트스트랩 기업을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라고 부른다. 이 표현이 뜻하는 바는 '참 잘했어요. 어른들이랑 놀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놀이터에서 노세요'다. 내가 공언한 목표를 고려하면 부트스트랩을 하는 게 더 합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업계에 흘러다니는 벤처 자금이 너무 많았고, 마음 한구석에는 기왕 할 거면 제대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6백만 달러 이상을 벌어보면 어때? 그래서 나는 경영 컨설턴트의 시각으로 초점을 좁혀서 '벤처 규모' 비즈니스의 특징인 어드레서블 마켓, 총 마진, 필요한 순추천고객지수NPS, 평생 가치 등을 조사했다. 궁금하다면 구글에서 이러한 용어의 의미를 검색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 용어들은 모두 달러 표시를 뜻할 뿐이다.
공동창업자와 아이디어를 논의하면서 나는 머릿속으로 벤처캐피털이 승인한 체크리스트를 검토했다. 대형 시장 ? 확인. 불만족한 고객으로 인해 파편화된 환경 ? 확인.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사업은 흥미롭지만 지루해 보이는?작업 자동화, 인적 자원 정보 시스템 같은?게 좋다. 경쟁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파티에서 멋있게 들릴수록 성공하기는 어렵다. 완벽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조바심이 났고, 급하게 환심을 산 끝에 우리는 펀딩을 시도하기로 결정했다. 충분한 자금?나는 50만달러(6억원) 정도로 추산했다?을 확보할 수 있다면 우리 둘 다 직장을 그만두고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나는 와이콤비네이터에서 만든 편리한 템플릿?문제, 해결책, 고객을 찾는 방법, 모든 변동성의 제거?에 따라 PPT를 만들었다.
많은 거절을 받았다. 우린 놀랐다. 물론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두 사람이 예쁘게 꾸민 단어 수십 개만 갖고 수십만달러를 얻으려 하게 만드는 세상이 더 놀랍겠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거절을 받아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거절이 계속 쌓여가면서 포기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러다 최초의 '예스'를 받았다. 내 또래의 투자자와의 전화 한 통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뭐 잘못될 게 있겠어요?" 그는 물었다.
"음, 많이요." 나는 우리의 가설에 있을 수 있는 결함과 각각의 문제에 대한 이론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난 이를 일종의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 토론에서 주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주장하다가 긍정적으로 전환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는 무언가를 확신하는 것 같았다.
"법인 설립은 하셨나요?" 그가 물었다.
그가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이메일을 보냈을 때, 나는 우리가 통화한 30분 동안 그가 무엇을 알게 됐길래 투자를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계산해보면 엄청난 시급이었다. 나중에 나는 그가 부자였고 여러 곳에 투자를 많이 했음을 알게 됐다. 업계의 전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투자는 아주 작은 금액이었다. 첫 해가 지나고 나서 다시는 그에게서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지금도 우리 캡테이블4cap table에 올라있으며 자면서도 돈을 벌고 있다.
우리는 그의 '예스'에 탄력을 받아 다른 투자자를 확보한 다음, 스트라이프Stripe에서 기업가들이 쉽게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만든 도구를 사용하여 법인을 설립했다. 웹 양식에 회사 이름을 입력하면서 나는 수십 년 전 아버지가 작은 회사를 시작했을 때 델라웨어에 있는 법률 대리인에게 직접 편지를 써야 했던 게 떠올랐다. 창업을 결정할 때 더 많은 '마찰'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잠시 고민했다. 마찰을 줄이는 것이 (어느 정도는) 모든 스타트업 게임의 핵심이다. 원할 때 택시를 부르고, 원할 때 음식을 소환하고, 명령에 따라 원하는 음악을 무한정 재생하는 라디오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버튼을 클릭하고 양식을 제출한 후 법인 설립을 완료했다.
우린 작은 규모의 팀을 꾸렸다. 최고 수준의 연봉을 지불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비리그, 빅테크, 경영컨설팅 업계 출신의 세계를 넘어 머니볼 방식으로 시장에서 잘못 책정된 연봉을 가진 인재를 찾았다. 그중 최고의 인재들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처음 1년여 동안은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기쁨과 우리가 엉성하게 만든 제품이 고객을 실망시키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우울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요동쳤다. 나는 대부분의 고객은 일만 처리되면 별 관심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20%가량은 까다롭긴 하지만 합리적이며 3%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그 어떠한 지원을 해줘도 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제품은 심리상담이기 때문이다).
내 마스터플랜 속에 숨겨진 가정 하나는 내가 창업 과정에서 겪는 감정 소모를 피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스타트업은 상어와 같다. 생존하려면 움직여야 한다. 그러나 움직임은 변화를 의미하고, 변화는 변동성을 의미하며, 변동성은 호재와 악재 사이의 널뛰는 걸 의미한다. 성공하려면 나쁜 날보다 좋은 날이 평균적으로 더 많아야 한다. 그렇다고 나쁜 날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훌륭한 창업자는 다른 어떤 특성보다도 일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정의된다. 내 자존감이 사업의 성과와 얽히게 되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호시절에는 기분이 좋았다. 이후 몇 년 동안 회사는 성장했다. 예전에는 몇 년 동안 파티에서 "무슨 일 해요?"라는 질문을 교묘하게 피하고 피할 수 없었을 때는 우리가 노리는 시장의 평범함에 대해 겸양하듯 대답했었는데 이젠 파티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 스타트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몇은 심지어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마음에 들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2021년, 코로나19와 그 여파로 인해 IT 업계의 거품이 피크를 찍었다. 기업인수목적회사SPAC가 의심스럽지만 섹시한 기업들에게 상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공했다. 암호화폐는 본격적인 항해를 시작했다. 내가 아는 다른 창업자들은 냅킨에 끄적인 수준만도 못한 사업 계획을 갖고 터무니없이 많은 자금을 확보하기도 했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자금을 모은 새로운 거물급 벤처캐피털의 등장에 힘입은 일이었다. 창업자는 이러한 투자자에게 자신의 주식을 판매해 때때로 회사가 평생 벌어들인 수익보다 개인적으로 더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내 자신에게 지급하는 급여 외에는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이런 돈을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 광란의 시기가 끝나갈 무렵, 우리의 마지막 펀딩 라운드에서 한 초대형 펀드의 파트너에게 피칭을 시도한 적이 있다. 우리 비즈니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20분 만에 우리 말을 끊더니 "분명 실현 가능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히 크지 않을 겁니다"라고 퉁명스레 말했다. 시장의 심리는 우리 업종에 불리하게 돌아섰다. 우리는 마치 전력질주를 하며 제자리를 지키는 듯했다. 한편 혁신의 광활한 지평?한 저명한 암호화폐 전도사의 트위터 소개글처럼 불변의 돈, 무한한 개척지, 영원한 삶?을 열겠다고 선언한 스타트업들은 엄청난 밸류에이션과 대중의 찬사를 받으며 무빙워크를 타고 속도를 내고 있었다.
당시 우리 회사 내부의 분위기는 혼란스러웠다. 우린 지속가능한 성장을 거듭하며 까다로운 고객도 만족시키고 있었지만 우리 줌Zoom 회의 화면 밖에 펼쳐진 세상은 그야말로 환희에 도취된 상태였다. 마약을 하지 않더라도 파티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친구들이 마약에 취한 모습을 보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지 않기란 어렵다. 투자자에게 허구를 파는 것이 유료 고객에게 진짜 제품을 파는 것보다 창업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고 있다는 아이러니가 나를 당황케 했다. 하지만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년간의 노력 끝에 나는 우리가 구축한 문화와 제품에 대해 감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실제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2021년의 시장에서 우리의 사업 목적은 진기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우리 사업도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였을지 모른다.
시장의 최정점에서 열린 파티에서였다. 나보다 몇 살 위인 다른 창업자를 만났는데 그는 확실히 성공해 내가 꿈꿔온 금액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유동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나는 돈이 그렇게 많으면 어떤 기분인지 그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볼 수 있을 만큼 취한 상태였다. 그도 분명하게 답할 수 있을 만큼 취한 상태였다. 네, 돈이 졸라 많은 건 멋지죠.
이게 바로 에쿼티과 현금의 차이다. 아스펜과 칸Cannes의 황금 시간대에 열리는 파티, 도시에서 가장 좋은 동네에 있는 멋진 아파트(그가 거기서 애프터 파티를 열었을 때 봤다), 미국 다른 지역과 유럽의 주요 도시(그는 연중 한두 달은 거기서 살았다)에 있는 다른 아파트들. 원하는 사람과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만날 수 있다. IT 전문가들은 물론이고 그가 얼마나 벌었는지 알게 된 일반인 모두의 존경을 받는다. 나 자신이 그의 주변에 있을 때 공손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이를 잘 안다.
"더 나빠지는 것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아마 짐작할 수 있을 걸요." 그는 말했다.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은 당신을 인간이라기보다는 신화 속 존재나 돼지저금통처럼 대한다.
"더 많이 벌고 싶어요?" 내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쯤 되자 모든 게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 다섯 번째로 방문한 술집에서, 술보다 대화에 더 취해 비틀거리며 걸어나왔다. 하지만 내가 그런 이야기에 매료됐다는 사실에 당황할 정도로 정신이 말짱하기도 했다. 금액상으로 볼 때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그가 이미 갖고 있는 돈의 티끌에 불과했다. 그가 가진 만큼의 돈이 '필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간에게 필요한 금액에 대해 내가 스프레드시트로 아무리 계산하더라도 합리화가 불가능한 그런 규모의 부였다(그래서 그가 사소한 것에 그렇게 돈을 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젠 내 '금액'이 턱없이 적어 보였다. 그날 밤 나는 시장 규모에 대한 꿈을 꾸었다. 안구를 직접 누르면 나타나는 것과 비슷한 빛의 나선의 이미지가 내 무의식 속에 나타나 점점 더 넓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난 스트레스를 받은 상태로 잠에서 깼다.
오늘날 시장 상황은 누구에게도 예외 없이 일변했다. 회사는 나의 기대보다 느리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스타트업들, 심지어 지난 몇 년간 펀드레이징을 주도했던 인기 기업들조차도 힘든 기색을 보이고 있다. 일부는 이미 스펙터클하게 사라졌고, 살아남은 기업들은 메가펀드로부터 모금한 막대한 자금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메가펀드로부터 유치한 자금을 먼저 상환해야 하기 때문에 수백만달러를 기대했던 직원과 초기 투자자들은 투자 받을 때 했던 호언장담을 실제로 성사시키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금리 상승이 그 원인이지만, 창업자와 투자자들이 멱법칙을 기대하며 움직이는 것의 단점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됐다고도 할 수 있다. 최초의 벤처 펀드가 만들어진 것은 트랜지스터처럼 막대한 시간과 금액을 투자해야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초기술을 개발하려는 혁신가들을 명민한 투자자들이 도울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앞뒤가 뒤바뀌었다. 홈런을 노리는 자본과잉 벤처펀드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스타트업과 시장 전체가 완전히 새로 만들어졌다.
엑싯 시장은 말라붙었다. 나는 아직 내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몇 년 안에 달성할 확률은 꽤 높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실망스럽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앞으로 할 일이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회사에선 우리가 횡재, 손쉬운 기업공개, 운 좋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는 M&A 요정의 간택을 놓쳤다는 분위기가 좀 있는 게 사실이다. 직원들의 사기에 안 좋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 팀은 행복한 것 같다.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이 이제 스타트업에게 '닥치고 성장'은 잊고 수익성을 확보하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가 (부분적으로는 우연히) 계속 해왔던 일이다. 요즘 대거 등장하는 AI 회사들을 제외하면 하늘은 땅으로 추락하는 이카루스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우린 늘 여기 있었다.
고금리 시대가 뒤집어 놓은 많은 풍경 중에는 스타트업 씬도 있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빙하기로 창업자가 스타트업을 성공시키고 자기 지분을 매각해 큰 돈을 벌어 떠나는 '엑싯exit'의 꿈은 훨씬 더 요원해졌습니다. 미국 스타트업 씬의 분위기는 어떨까요? 이를 피부로 느끼는 듯 생생하게 표현한 글이 최근 뉴욕매거진에 실려 반가운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어느 정도 성공적이지만 엑싯을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중견' 스타트업의 창업자인 익명의 글쓴이는 자신이 창업하게 된 계기부터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우 솔직하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