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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배넌: '레닌주의자'를 자처하는 트럼프 MAGA 운동의 흑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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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2024.04.26 16:09

Washingt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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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등장 이후 미국 정치의 양극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공화당의 퇴락입니다. 링컨과 시어도어 루스벨트, 아이젠하워, 트루먼의 정당이었던 공화당은 이제 공공연히 선거 음모론을 거론하고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앞장서서 가로막는 고립주의의 정당이 돼 버렸습니다. 미국이 갈 길을 택하는 것은 미국 유권자의 몫이겠지만 공화당의 이러한 변화가 세계 속에서 미국의 지위를 떨어뜨리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 주된 원인은 공화당을 주변부에서부터 조금씩 잠식하다가 이제 공화당 주류를 위협하고 있는 극우파의 득세인데 이를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영향만으로 치부하면 안 됩니다. 스티브 배넌은 MAGA 운동의 '흑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인물로, 레닌, 에릭 호퍼, 크리스토퍼 래쉬의 통찰을 빌려 미국이라는 국가의 체계를 무너뜨려고 합니다. 아직까지 미국 대선의 향방은 예측하기가 어렵고, 설사 트럼프가 당선된다 할지라도 이미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던 배넌이 다시 중용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배넌은 미국 민주주의의 손꼽히는 위험요소로 남을 것입니다. 정치운동의 새로운 장을 연 인물로서도 배넌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검은 철조망의 장막이 미국 국회의사당 구역의 밝은 대리석 기둥 주위를 휘감았다. 4미터 높이의 장벽 위에는 면도날형 철조망이 덮여 있고, 방탄복과 소총을 든 전투복 차림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는 의회가 트럼프의 선거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증하려는 걸 막기 위해 일군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를 점거하는 폭동을 일으킨 사건이 벌어진 후, 의회를 지키고자 급조된 것이었다. 이 요새화가 지나친 것인지 부족한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분명 너무 늦었다. 이제 이 철조망은 연방정부 청사를 캐피톨힐 인근의 낮고 다채로운 집으로 가득한 아름답고도 유서 깊은 지역과 단절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이 타운하우스 중 한 곳의 지하실에서 스티븐 K 배넌은 곧 방송을 시작할 참이었다.


자신의 팟캐스트 스튜디오에 앉은 배넌은 평소처럼 잠이 부족하고 카페인을 과다 섭취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날 아침, 2021년 2월 첫 번째 토요일에는 그의 매섭고 작은 눈이 흥분으로 반짝였다. 그는 자신의 긴 회색빛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는 두꺼운 검은색 헤드폰을 착용했는데 머리칼 끝이 올리브색 야상의 견장에 스칠 정도였다. 배넌에게 이 'MAGA1 체 게바라' 스타일은 새로운 것이었다. 2017년 백악관 웨스트윙에 있던 자신의 사무실—그는 자신의 사무실을 '워룸war room'(전쟁상황실)이라고 부르곤 했다—에서 즐겨 입던 프레피 스타일로부터의 변신이었다.


백악관 전략가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가 팟캐스트 진행자가 된 것이 추락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배넌에게는 본연의 자리를 찾은 것에 더 가까웠다. 그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 그에게 쉽게 어울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바로 엄청난 온라인 팔로워를 거느린 외부의 선동가다. 이 타운하우스 지하실은 지난 몇 년 간 브라이트바트뉴스Breitbart News의 본부였다. 이 매체는 반동적인 우익 내셔널리즘—근래에는 온라인 세대를 위해 '대안우파alt-right'로 리브랜딩되었다—을 대변하는 매체로 부상하고 있었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워싱턴 정가는 면도를 안 해 수염이 수북한 목에 셔츠 여러 겹을 입고 등장한 배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배넌은 이 타운하우스를 "브라이트바트 대사관"이라고 부르며 그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겼다. 그 이름에 걸맞게, 타운하우스 위층의 방들은 마치 국빈 방문을 위한 것처럼 장식돼 있었다. 노란색 브로케이드 커튼, 크리스탈 샹들리에, 화려한 거울, 링컨을 주제로 한 침실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는 진청색 카펫에는 흰색 별이 아로새겨 있었다. 2013년 11월, 이 타운하우스에서 열린 책 출판 기념회에서 배넌은 "나는 레닌주의자"라고 선언했었다.


필자의 신간 'Finish What We Started'의 표지. 이 기사는 이 책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사진제공=Little, Brown and Company

필자의 신간 'Finish What We Started'의 표지. 이 기사는 이 책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사진제공=Little, Brown and Company


"무슨 뜻이에요?" 인근에 위치한 보수 싱크탱크 소속의 역사학자 로널드 라도시Ronald Radosh가 충격을 받아 물었다. 라도시는 레닌이 인류의 고통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너무나 잘 알았다. 레닌의 개념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그가 1902년 논문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제안한 혁명정당revolutionary party이었다. 혁명정당은 경쟁이나 능력이 아니라 이념에 대한 충성심을 기반으로 사회를 조직하기 위한 제도였다.



"레닌은 국가를 파괴하길 원했죠. 제 목표도 그렇습니다." 배넌이 답했다. "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오늘날의 모든 기득권을 파괴하고 싶어요."


배넌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가톨릭 군사학교에서 그는 1492년 스페인 재정복을 기독교 서구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의 계속되는 문명 충돌의 전환점으로 배웠다. 성인이 된 그는 훈족의 왕 아틸라와 위대한 군사 작전에 관한 책을 탐독했다. 그는 역사, 특히 역사적 주기cycle의 개념에 집착했는데, 이는 시간이 미국인들이 보통 배우는 것처럼 선형적으로 진보하는 게 아니라 고대 전통의 관점처럼 뚜렷한 단계로 반복하는 패턴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었다. 배넌은 특히 역사학자 닐 하우Neil Howe와 윌리엄 스트로스William Strauss의 1997년 책 '제4의 전환The Fourth Turning'에 나오는 버전의 주기론을 좋아했는데, 이 책은 미국 역사를 고점, 각성, 해체, 위기의 20~25년 길이의 주기로 정리했다. 이 책은 전 세계와 미국에서 내셔널리즘과 권위주의가 부상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배넌은 단순히 이 예언을 공부하거나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예언을 직접 실행하는 사람이자 다음 시대를 건설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래서 트럼프가 2015년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 위해 황금색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면서 그가 처음 한 생각은 "저건 히틀러야!"였다. 이는 나치의 프로파간다 영화에서처럼 권력의 미학을 본능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는 트럼프에게서 자신이 조장하고 있는 사람들의 불안감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미국인의 불만과 욕망을 스스로에게 투영할 수 있는 인물을 보았다.


스티브 배넌. /사진=Bill O'Leary/The Washington Post

스티브 배넌. /사진=Bill O'Leary/The Washington Post


대중운동을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배넌의 생각은 에릭 호퍼Eric Hoffer의 영향을 받았다. 호퍼는 종종 '부두의 철학자'라 불리는데 샌프란시스코 부두에서 하역부로 일하면서 첫 번째 책 '맹신자들The True Believer'을 썼기 때문이다. 이 책은 1951년 출간됐을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시대를 이해하는 지침서가 됐다. 호퍼는 민족주의, 공산주의, 종교를 막론하고 모든 대중운동은 공통적인 특징을 공유하며 식별 가능한 경로를 따른다고 주장했다. "기존 제도를 약화시키고, 대중을 변화의 아이디어에 익숙하게 하며, 새로운 신념에 대한 수용성을 만드는 예비 작업은 무엇보다도 먼저 모두에게 연설가나 작가로 인정받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다." (리얼리티 TV 스타는 어떨까?) 그러나 그런 지도자들만으로는 대중운동이 일어나는 조건을 만들 수 없다. "허공에서 운동을 일으킬 수는 없다." 호퍼는 썼다. "운동과 지도자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따르고 복종하고자 하는 열의와 현상에 대한 강렬한 불만이 있어야 한다.


호퍼의 저작은 지도자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추종자, 즉 평범한 사람들이 광신도가 되는 과정을 포착했다. 사회에서 성공적이고 잘 적응한 사람들은 열성분자가 되지 않았다. 때로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대중운동에 빠져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나중에 벌어지는 일이었다. '맹신자들'은 자기 발전이 아니라 "자기 포기self-renunciation"을 추구하고 있었다. 모든 개인적 실망을 동반하는 개인의 정체성을 버리고 "신성한 대의와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새로운 자부심, 자신감, 희망, 목적과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얻는 것이다. 맹신자가 되기 쉬운 부류는, 호퍼식으로 말하면 가난한 사람, 고군분투하는 예술가, 사회 부적응자, 유별나게 이기적이거나 그냥 삶이 지루한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전망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어 보일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를 위해 살 절박한 필요성을 느낀다." 호퍼는 썼다. "모든 종류의 헌신, 충성, 자기 포기는 본질적으로 우리의 무의미하고 망가진 삶에 가치와 의미를 줄 수 있는 무언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이다."


브라이트바트의 독자층을 구축하고 있던 배넌에게 불만에 찬 젊은 남성들은 준비된 '맹신자들'이었다. 배넌이 처음 이 '미개발 자원'을 발견한 것은 홍콩에서였다. 당시 배넌은 중국 노동자들에게 월드오브워크래프트 게임을 시켜 획득한 아이템을 서구 게이머들에게 실제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회사와 일하고 있었다. 그 사업은 망했지만 배넌은 젊은 게이머와 밈 제작자들의 온라인 서브컬처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는 곧 그들의 에너지를 이끌어내 정치로 돌릴 수 있었다.


브라이트바트의 조회수는 2015년 트럼프 후보의 인기에 불이 붙고 있다는 배넌의 직감을 확인해 주었고, 배넌은 그 사이트를 트럼프 선거운동의 비공식 미디어 파트너로 포지셔닝해 공화당 경선을 뒤흔들었다. 배넌이 엉망진창인 트럼프 캠프를 공식적으로 접수하게 됐을 때, 혼란스러운 전당대회와 커지는 러시아 스캔들의 여파로 선거운동은 어수선한 상태였다. 그는 명료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일관성을 갖춘 마무리 메시지를 제공했다. 그 메시지는 "블루칼라 억만장자" 트럼프가 평범한 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분명히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기성 정치질서를 날려버리고 잊혀진, 그리고 뒤처진 미국인들의 대변자가 되리라는 내용이었다. 배넌이 하고 있는 일에서 호퍼의 영향을 본 사람은 배넌 본인 외에도 더 있었다. 트럼프의 상대 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맹신자들'을 꺼내 선거 캠프 스탭들과 공유했는데, 그가 이 책에서 자신이 극복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파괴적인 에너지에 대한 묘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백악관 수석 전략가로서 배넌은 "새로운 정치 질서"의 서광을 예고했지만 7개월만에 잘렸다.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네오나치들이 버지니아주 샬럿츠빌에서 남부연합군 장군 로버트 리의 동상 철거에 반대하며 행진하고, 그 중 한 명이 차를 몰고 맞불 시위대 군중을 들이받아 한 젊은 여성을 죽인 사건이 발생한 후 트럼프는 배넌을 내쫓았다.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횃불을 든 폭도를 옹호한 것은 트럼프였지만 백악관 내 우익 민족주의의 아이콘이었던 배넌(게다가 그 인상을 보라)은 적절한 희생양이었다. 해고로 배넌은 일시적으로 트럼프와 불화를 겪었지만, 그들이 공유하는 정치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헌신까지 흔들지는 못했다. 배넌은 브라이트바트 대사관으로 돌아가 컴백을 준비했다.


트럼프 정부 백악관에서 수석 전략가로 일하던 시절의 스티브 배넌. 2017년 1월 31일. /사진=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트럼프 정부 백악관에서 수석 전략가로 일하던 시절의 스티브 배넌. 2017년 1월 31일. /사진=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배넌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었다. 너무나 많은 대담한 계획이 진행되고 있어서 배넌이 정말로 무언가를 찾아냈는지, 아니면 그냥 허풍을 떠는 건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헝가리에서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우익 권위주의자들에게서 공동의 대의를 찾았다. 그는 로마 근처의 중세 수도원에서 유럽 민족주의자들을 양성하는 기관을 시작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이탈리아 정부와 법정에서 맞섰다. 그는 새로운 후원자도 찾았다. 궈원구이郭文贵라는 망명 중인 중국 억만장자인데 그는 중국 공산당을 타도하는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직접 액션 영웅을 연기하기도 했다. 배넌과 궈는 G-코인 또는 G-달러라고 불리는 암호화폐 발행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눈총을 받았다. (궈는 2023년 체포되어 10억 달러 이상의 유선사기, 증권사기, 은행사기,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되었다.) 배넌은 '워룸'이라는 이름의 팟캐스트를 시작했는데 중간 광고 시간에 궈원구이의 뮤직비디오를 틀었다. 그리고 그는 트럼프가 주장한 멕시코 국경 장벽을 건설하기 위한 모금운동을 위해 몇몇 오래된 친구들과 재회했다. 25만 명 이상이 기부했다. 많은 이들이 겨우 몇 달러밖에 낼 수 없지만 대통령의 대표적인 선거 공약을 이행하는 데 필사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했다 (원래 트럼프는 멕시코가 비용을 댈 것이라고 했다). 배넌과 친구들은 기부자들에게 공개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그들 모두가 자원봉사자이고 모든 돈이 장벽 건설에 쓰일 것이라고 성실하게 장담했다.


2020년 여름, 배넌을 한물간 인물이자 잔챙이라고 무시하긴 쉬웠을지도 모른다. 롱아일랜드 사운드에 있는 궈의 150피트 초호화 요트 갑판에서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해안경비대가 연방 요원들과 함께 나타나 그를 체포했다. 검찰은 배넌과 그의 친구들이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모금한 수백만 달러를 횡령해 자신들의 급여, 여행, 호텔, 신용카드에 썼다는 혐의로 그들을 기소했다.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는 그를 멀리한 지 한참 된 상태입니다."


사실 그들은 다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상태였다. 트럼프는 당시 재선을 준비하고 있었고 2020년 초반에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대유행이 경제를 마비시켰고 대통령을 무능해 보이게 만들었다.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고, 검사를 늦춰 확진자 수를 억제하라고 요구하며, 표백제를 주사하면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그런 대통령이었다. 2020년 6월이 되자 조 바이든은 전국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캠프 총괄(당시 정신건강상 위기를 맞기 직전이었던 디지털 전략가 브래드 파스케일Brad Parscale)을 교체하고 2016년의 마법을 재현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넌은 그 자리를 거절했다. 트럼프 백악관이 코로나 비상사태라는 기회를 놓치고 그 대응을 재러드 쿠슈너, 마이크 펜스, 파우치 박사에게 맡기는 것을 보고, 배넌은 이미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트럼프의 재선 캠프는 이미 구제불능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를 망치는 것은 배넌이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이었고 미리 그 토대를 닦아두는 것도 가능했다.


그의 '워룸' 팟캐스트와 전국의 공화당 관련 단체 행사에서 배넌은 트럼프가 트럼프 지지자들의 대규모 보트 퍼레이드를 보았고 주변에서 바이든에게 투표할 사람을 못 봤기 때문에 트럼프가 이기리라 확신하는 청중들에게 말했다. 배넌은 그들에게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그해 여름부터 민주당이 코로나를 핑계로 규칙을 바꿔 우편투표로 선거를 조작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배넌은 선거 조작이 어떻게 벌어질 것인지 설명했다. 선거일 투표에서는 트럼프가 앞설 것이고, 그는 그날 밤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과 언론은 '아니다, 우편투표를 기다려야 한다'라고 외칠 것이다. 선거인단 결과에 이의가 제기될 것이고, 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2021년 1월 6일 공식적으로 선거를 결과를 인증하기 위해 의회가 소집될 때가 된다. 그렇게 되면, 배넌은 의회가 선거 결과를 공화당이 장악한 주 의회의 소관으로 돌리거나 공화당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게 정말 가능했을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손해 볼 게 없었어요." 배넌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목표는 그 기회를 이용해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바이든의 정당성을 훼손할 만한 장관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공중파 TV에서 그 XX를 찢어발기는 것", 영구적으로 그의 통치 능력을 무력화시키는 것, "바이든 정권을 태어나자마자 죽이는 것". 중요한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그날 의회가 선거 결과를 막을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트럼프가 조지아, 애리조나, 미시건의 공화당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을 승자로 선언하라고 압박하는 동안, 트럼프의 변호사들이 바이든의 당선을 무효화하려는 터무니없는 소송을 제기하고, 공화당원들을 모아 선거인단에 나서게 하고, 부통령 펜스에게 그들을 정당한 선거인으로 받아들이라고 로비하는 동안, 전국의 공화당 활동가들이 결과에 항의하는 '선거 사기 중단' 집회를 조직하는 동안, 민병대 단체들이 무기를 사고 역대 최대 규모 집회를 위한 공격 계획을 세우는 동안, 배넌은 수십만 명의 팟캐스트 청취자들에게 계속해서 1월 6일의 중요성을 과장했다. "이것은 11월 3일(선거일)보다 더 중요하고, 심지어 트럼프 정권보다도 더 중요한 겁니다." 그는 말한다. "이건 국가주의자와 세계주의자 사이의 싸움보다 더 중요해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싸움보다 더 중요해요.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싸움보다 더 중요해요. 이게 핵심입니다. 여러분, 로마 역사를 읽어보세요. 공화국이 몰락하고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제국이 된 과정이 이랬습니다. 우리는 그런 시점에 있어요."


그는 1월 6일 워싱턴에 도착하면 모두가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의 요지는 청취자들, '워룸 패밀리'들이 그 자리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그들은 거기에 있어야만 했다. 그들의 성공은 그것에 달려 있었다. "사람들에겐 일, 가족, 아이들, 학교, 그런 것들이 있죠, 압니다. 하지만 이런 날들은 우리나라 역사상 매우 드물게 일어나요. 이건 여러분이 참여할 수 있는 거예요. 이건 역사가 될 거니까 아이들과 손자손녀들에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살아있는 역사."


마침내 그날이 밝아오자 그가 불러낸 군중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넌은 자신의 계획이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보고, 마치 팟캐스트의 보이지 않는 음파가 물리적이고 인간적인 형태를 띄게 된 것처럼 경이로워했다.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에요. 모두의 예상을 압도합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모든 예상을 말이죠." 그는 1월 6일의 추운 아침날 방송에서 말했다. "이 청중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이것을 정점으로 이끌었어요. 우리는 승리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 모여 있다.    © AFP=뉴스1

(워싱턴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앞에 모여 있다. © AFP=뉴스1


스튜디오 뒤편의 MAGA 모자가 늘어선 하얀 벽난로 선반 위에는 CNN이 나오고 있는 TV가 있었다. 자막에는 '트럼프, 필사적인 쿠데타 시도로 지지자들에게 연설 예정' 이라고 씌어 있었다. 배넌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오늘은 환상의 날이 아니에요. 오늘은 광적인 집중의 날이에요. 집중, 집중, 집중. 우리는 정확히 목표로 다가가고 있어요. 맞아요. 이것이 우리가 항상 원했던 공격 지점이에요. 알겠죠? … 전 첫날부터, 몇 달 동안 계속 말했어요. 그들이 선거를 훔치려고 한다고, 훔치다 발각될 거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는 하원에서 조건부 선거에서 확정될 거예요 … 오늘, 그 방아쇠가 당겨질 수 있어요. 우리가 여기 있습니다. 모두가 이곳에서 열광하고 있어요. 우리는 여러분 덕분에 승리의 정점에 와 있어요. 절대 잊지 마세요."


곧 연방의회의사당 안의 의원들은 밖에서 군중이 포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폭도가 난입했고 의원들은 도망쳤다. 몇 시간 동안 선거 결과 집계와 인증이 중단되었다. 경찰과 주방위군이 국회의사당을 확보하고 의원들이 다시 소집되자 펜스는 트럼프의 요구를 거부했고, 임시 선거가 치러지려면 하원에서 충분한 반대표가 나와야 했지만 공화당 의원들의 반대표는 부족했다. 배넌이 약속한 대승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이었나? 배넌의 잘못이 아니었다. '워룸 패밀리'의 잘못도 아니었다. 배넌은 청취자들이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이 실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기를 바랐다. "우리를 방해한 것은 민주당이 아닙니다." 그는 다음 날 방송에서 말했다. "공화당입니다."


1월 6일 폭동 사건 이후 배넌의 방송은 유튜브에서 퇴출됐고,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차단되었으며, 폭도들도 하나둘 체포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탄핵소추되었으며, 바이든이 취임했고, 트럼프는 퇴임하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배넌을 사면했다. 트럼프의 사면은 배넌을 형사상 위험에서 구출하는 것 이상의 일을 했다. (어쨌든 모금 사기 사건의 공동 피고인들은 사법처리를 피할 수 없었다.) 그것은 또한 배넌에 대한 트럼프의 신임을 회복시켰다. 그들이 수년간 어떤 의견 차이를 겪었든 간에 ("스티븐 K 배넌은 저나 제 대통령직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트럼프는 2018년에 말했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이예요.") 배넌은 틀림없이 트럼프에게 보상받을 만한 일을 했거나 트럼프에게 어떤 가치를 유지하고 있었음이 분명했다. 트럼프가 마라라고로 몰래 도망치는 동안 배넌은 MAGA 유니버스의 대변인으로 계속 떠올랐다.


친트럼프 미디어 생태계는 럼블Rumble, 텔레그램, 비트슈트BitChute 같은 대안 플랫폼과 비주류 웹사이트로 분열되었다. 모두 마이필로우2MyPillow의 협찬을 받았다. 그러나 배넌은 그 무리에서 두드러졌다. 어떤 기준으로 보나 그는 더 많은 청취자를 확보했고,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게스트를 초대했으며, 더 많은 콘텐츠를 쏟아냈고, 의제를 설정했다. 그는 계속 애플의 팟캐스트 앱을 통해 방송을 배포하면서 여러 차례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그는 또한 동영상으로도 팟캐스트를 스트리밍했고, 그의 '워룸'은 트럼프월드의 유명인사와 유명인사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필수 인터뷰 코너가 되었다.


2023년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을 이끈 나이젤 패라지와 함께 등장한 스티브 배넌. /사진=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2023년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영국의 브렉시트 운동을 이끈 나이젤 패라지와 함께 등장한 스티브 배넌. /사진=Jabin Botsford/The Washington Post


매주 평일 3시간, 토요일 2시간 동안 배넌과 그의 게스트들은 '도난당한 선거' 신화의 경전을 만들어냈다. 선거 사기는 첫 번째 부분에 불과했다. 민주당은 언제나 사기를 시도하는 존재이고, 그건 흔들림 없는 팩트였다다. 두 번째 부분, 결정적인 단계는 배신이었다. 선거가 도난당한 것을 알면서도 민주당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 공화당 선거 관계자들과 주 의회 의원들 말이다. 2020년의 모든 혼란은 호퍼가 예견했던 대로 제도를 훼손하고 새로운 신념에 대한 수용성을 만드는 전지 작업을 했다. 이제 1월 6일의 패배를 MAGA 운동의 다음 단계를 위한 결집의 순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배넌에게 달려 있었다.


"좋아요. 미국의 수도에서 생방송으로 전해드리는 '워룸'입니다." 진행자가 오늘의 방송을 시작했다. "여전히 점령된 수도에요. 왜 아직도 주방위군, 무장을 한 주방위군 7000명이 국가 수도에 있는 겁니까?" 배넌에 따르면 그 힘의 과시는 MAGA 운동을 위축시키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저항 의지를 꺾기 위한 "심리전"이었다. 민주당이 트럼프를 반란 선동 혐의로 탄핵소추한 것도, 상원에서 탄핵안을 심판하는 것도 모두 같은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게 배넌의 설명이었다.


배넌은 방송을 시작할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거창한 방식으로 날짜를 발표했다. "우리 주님의 해 2021년, 2월 6일 토요일." 그는 계속해서 청취자들이 혼자가 아니며 그가 허공에 대고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키며 팟캐스트의 다운로드가 "3400만 건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넌은 더 이상 지하실 꼬마들과 장난치는 게 아니었다. MAGA 운동은 성숙했다. 그의 청중은 이제 더 나이 들었다. 50대, 60대 이상, 많은 자녀가 독립한 부모와 은퇴자들이었지만 유대감에 대한 유사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고, 어쩌면 더 온화했던 시절에 대한 기억도 있었다. 그는 급진주의자처럼 보이지 않고 분명 스스로를 극단주의자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닌 것은 그들 주변의 세상이라고. 배넌에게 영향을 준 또 다른 인물인 사회비평가 크리스토퍼 래쉬Christopher Lasch는 60년대부터 이에 대해 썼다. 자유주의liberalism가 실패한 이유는 사람들이 "자유"가 그들에게 가져다준 세상을 보고 자신들이 원하는 건 이게 아니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형편없었다. 현대 생활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무형적이며, 소외되어 있었다. 그 소외감을 다루는 것이 바로 워룸의 전부였다. "행동, 행동, 행동." 배넌은 말한다. "이는 모두 여러분의 능동성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청취자들에게 스스로를 강화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1월 6일 이후의 암울한 나날 속에서 방향감각,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충격과 불만의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에 굶주려 있었다.


최근 트럼프 지지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 가지 아이디어는 제3당, 즉 애국당Patriot Party을 만들어 공화당이 실패했던 모든 방식으로 트럼프를 위해 싸우는 것이었다. 이 제안의 출처는 트럼프 본인이었는데, 그는 정말로 제3당을 창당하기 보다는 자신의 탄핵 사건을 심판하게 될 공화당 상원의원들을 위협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평범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제3당 아이디어에 빠져들었고, 배넌은 그것을 막아야 했다. 그는 제3당이 바보 같은 일이 될 것이며, 모두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일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시오도어 루스벨트조차도 공화당 경선에서 낙선하자 제3당을 창당했지만 당선하지 못했다. 제3당이 하는 일이라곤 두 주요 정당 중 하나에서 누군가를 당선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뿐이었다. 조지 월리스는 리처드 닉슨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공헌했다. 로스 페로는 빌 클린턴을 당선시켰다. 배넌에게는 더 나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배넌이 보기에 미국에는 이미 제3당이 있었다. 그것은 그가 파괴하려는 기득권층이었다. 신보수주의자(네오콘), 신자유주의자, 대규모 기부자, 세계주의자, 월스트리트, 기업주의자, 엘리트. 그는 때로 그들을 '일당uniparty(一黨)'이라고 불렀는데,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선거에서 이기면 오직 그들만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레임이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두 개의 다원주의적이고 큰 천막(빅텐트)을 가진 정당의 구조가 그들 모두를 중도으로 밀어붙여 어느 정도의 안정과 연속성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배넌이 이러한 정체상태가 특히 소위 '워싱턴 블롭Washington Blob'의 영역인 외교 분야에서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믿은 것도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배넌이 보기에 '일당' 바깥에는 민주당의 진보파가 있었는데, 그는 이를 비교적 작은 규모의 유권자층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이들을 밖에 있는 나머지 압도적 다수의 국민은 MAGA였다. 배넌은 MAGA 운동이 기득권층에 의해 억압되고 주변화되는 것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100년을 통치할 수 있는 지배적 연합세력이 될 것이라고 여겼다.


수백만 명의 민주당원들이 MAGA의 추종자가 되기를 갈망하면서도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배넌의 확신은 호퍼에게서 연원한 것이다. 호퍼는 맹신자들이 특정 이념보다는 대중운동과 동일시하려는 욕구에 의해 더 많이 추동되기 때문에 한 대의에서 다른 대의로 '개종'하기가 쉽다는 점을 관찰했다. 배넌은 기존 정당 연합의 외곽을 만지작거려 겨우 51%를 얻으려고 하는 전형적인 정치전략가와 달랐다. 배넌은 이미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한다. 그는 정당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정의하려 한다. 그는 세계주의자, 엘리트 정당인 민주당과 포퓰리즘, MAGA 정당인 공화당 사이의 결전을 원했다. 그런 대결 구도에서라면 그는 공화당이 언제나 이기리라고 확신했다.


애국당 아이디어를 치워버리고 MAGA 운동을 공화당을 통해 활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배넌에게는 딱 알맞은 사람이 있었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내온 사람이자 브라이트바트 시절 그를 위해 블로그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은 댄 슐츠Dan Schultz였고, 이제 그의 시간이 왔다.


댄 슐츠를 방송에 내보내기 전 휴식 시간에 배넌은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소개해 드릴까요?" 이는 그가 모든 게스트에게 하는 표준적인 질문이었다. 대부분 자기 웹사이트나 팟캐스트, 책, 정치행동위원회PAC, 비영리단체501(c)(4)를 가지고 있었다. 방송에 출연해서 홍보할 만한 것들 말이다. "어떤 조직을 대표하고 계신가요?"


그러나 이 게스트는 다른 종류의 대답을 했다. "공화당이요." 댄 슐츠가 말했다.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배넌이 껄껄 웃었다. "공화당이군요."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걸린 스티브 배넌의 사진. /사진=Matt McClain/The Washington Post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걸린 스티브 배넌의 사진. /사진=Matt McClain/The Washington Post



아이작 안스도프는 워싱턴포스트의 기자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MAGA 운동 등을 취재하고 있다. 프로퍼블리카와 폴리티코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사건 이후 MAGA 운동을 다룬 저서 'Finish What We Started'를 2024년 4월 출간했다. 위 기사는 해당 저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877년 창간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손꼽힙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진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로 유명합니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이래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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