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1 15:26
"아멜리아는 빳빳한 시트가 침대에 잘 맞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첫 문장치고는 나쁘지 않았다. 2050년을 배경으로 한 제3차 세계대전 이야기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가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워크숍의 다른 작가들은 더 대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모건 미첼이 동료들에게 '메이드에서 매버릭까지Maid to Maverick'의 플롯을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그녀가 자신만의 방식을 원한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녀는 아멜리아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가정부(메이드)로 일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워크샵 그룹에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전쟁에 돌입하자 아멜리아는 군에 소집된다. 그녀는 정신으로 조종하는 새로운 드론을 운용하는 데 압권의 능력을 보여주며 평가 센터의 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다. 소속부대의 장교들은 그녀를 비웃으며 무시한다. 하지만 이는 아멜리아를 막지 못했다. 그녀는 꾸준히 나아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진주 귀걸이와 깔끔한 포니테일을 한 미첼이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어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다.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의 쌀쌀한 회의실에서 공군 장교 13명—남성 11명과 여성 2명—이 말굽 모양으로 배치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장교들은 날렵하고 근육질이었으며 방산업계 특유의 캐주얼 차림—바지 안에 넣어 입은 스포티한 폴로셔츠, 조종사 선글라스—이었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은 제3차 세계대전에서 펼쳐지는 아멜리아의 모험에 그다지 열광적하진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 장교들은 미국 공군과 우주군 소속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관인 공군대학교 학생들이었다. '블루 호라이즌'이란 이름의 이 독특한 코스는 학생들이 미 공군을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창의적으로 생각하도록 장려한다. 사고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의외의 방법 중 하나는 상상을 가미한 소설을 쓰는 것이다. 지난 6년간 '블루 호라이즌'은 유스풀픽션Useful Fiction이라는 회사의 설립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와 어거스트 콜August Cole을 초청하여 공군 장교들을 공상과학 소설 작가로 변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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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와 콜은 미래의 위협과 그에 대항하는 방법들이 지루한 보고서가 아닌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제시된다면 의사결정권자들이 더 주의를 기울이리라고 생각한다. "스무디에 몰래 과일과 채소를 넣는 거죠." 싱어가 이렇게 설명했다.
"여기서 케일1은 뭐죠?" 그가 미첼에게 물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으신 거예요?" 미첼은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미 공군이 채용 시스템을 현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조직의 지도부가 신입 요원의 평가 방식을 개선하여 사람들이 자신의 기술에 맞는 직무에 배치되도록 하기를 원했다. "이게 미래 전쟁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어요." 미첼이 경고했다.
워싱턴DC의 싱크탱크들과도 일하는 싱어와 콜은 수수한 정장을 입고 전문가다운 용어를 사용한다. 개조식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는 싱어는 밤에 잠들기 위해 군사사 책을 읽는다고 내게 말했다(때로는 역효과가 난다고 한다). 워크숍에서 그는 장난감 병사 그림이 그려진 양말을 신고 있었다.
2000년대 후반에 두 사람이 만났을 때, 둘 다 팩트와 숫자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었다. 콜은 월스트리트저널의 국방 기자였고 싱어는 전쟁에 관한 책을 쓴 정책 분석가였다. 두 사람은 같은 지하철 노선으로 출근했는데 통근 중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은 지정학적 견해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15년 전, 미국 국방부 관계자들 대부분은 대테러counterterrorism의 관점에서 주로 분쟁을 바라보았다. 미국은 여전히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반군들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미래의 전쟁은 다른 종류의 적과 싸우게 될 것이라고 여겼다.
당시 미국 정부는 미국이 중국과 경쟁하기보다는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싱어와 콜을 비롯한 다른 인사들은 중국이 힘과 자신감을 키우고 있으며 언젠가는 패권을 놓고 미국에 도전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또한 강대국 간의 전쟁이 전통적인 전장 뿐만 아니라 온라인과 우주에서도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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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주장들은 이전에도 학술 논문과 책에서 제기되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싱어와 콜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들은 HG 웰스와 존 해킷John Hackett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잘 알고 있었다. 공상과학 소설을 통해 현재에 대해 경고한 작가들이었다. 소설을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한다면 정책입안자들이 더 주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함께 쓴 소설 '고스트 플릿Ghost Fleet'은 2015년에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멀지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홀로그램 지도, 액체 방탄복, 지친 군인들을 깨어있게 하는 '스팀팩' 알약이 등장하지만 묘사된 세계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임을 알아볼 수 있다.
이 책은 충격적인 사건들의 연속으로 시작된다. 중국 우주비행사들이 우주 레이저로 미국 위성들을 파괴하고 중국 사이버 부대가 미군 서버에 악성코드를 심는다. 러시아의 도움으로 중국은 미국의 통신과 무기체계를 무력화한 뒤, 하와이를 침공하여 점령한다. 이야기는 남중국해에서의 결전으로 끝난다.
'고스트 플릿'은 군 장교들과 정부 관리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워크숍에 참석한 한 전투기 조종사는 CIA 요원이 이 책을 읽어보라고 강력히 권했다고 내게 말했다. 이 책은 미 공군과 영국 공군(RAF)의 독서 목록에 올랐다. 백악관, CIA와 여러 정부 기관들이 싱어와 콜을 초청해 브리핑을 요청했다. 호주 의회와 영국 공군도도 초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자신들의 보고서도 '고스트 플릿'처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장황한 문체로 쓰인 긴 보고서를 읽기 싫어 한다는 것이었다. 유스풀픽션은 워크숍을 운영하는 것 외에도 양자 기술에 대한 브리핑이나 사이버 보안 전략에 관한 논문 같은 것들의 연구와 교훈을 뽑아내 이를 단편 픽션으로 만들어낸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실감의 규칙"이라고 부르는 것을 중요시한다. 독자들은 자신들의 세계와 유사점을 발견하지 못하면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외계가 아니라) 지구를 배경으로 해야 하며 등장하는 기술은 이미 존재하거나 개발 중인 것이어야 한다. 그들은 소설 안에 각주를 달아 자신들이 거론하는 이야기가 충분한 증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톰 클랜시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메이드에서 매버릭'의 작가인 미첼은 학창 시절 이후로 서사창작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소설 읽기를 즐겼고(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백년의 고독'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시간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책을 읽을 때는 보통 "무언가를 배우고 싶어서" 역사나 리더십에 관한 책을 고른다. 미첼은 워크숍에 대해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난 글을 잘 못 쓰는데'였다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하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 대부분에게 불편한 일이니까요."
만약 그의 상관이 이 말을 들었다면, 바로 그 불편함이 요점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블루 호라이즌' 프로그램의 부국장이었던 마크 제이콥슨 대령(그는 내가 이곳을 방문한 직후 공군에서 퇴역했다)은 서사창작에 대한 깊은 헌신으로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수많은 단편소설과 먼 은하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썼다.
"이 워크숍은 참가자들이 '다르게 생각하도록' 자극합니다." 제이콥슨이 말했다. "생각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 필요한데 제가 볼 때는 글쓰기가 곧 생각하기예요." 또한 이는 장교들의 의사소통 기술을 연마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미국 국방부("세계에서 가장 큰 관료조직"이라고 제이콥슨은 말했다)에서 무언가를 이루려면 바쁜 상급자들에게 당신의 제안이 가진 장점을 설득해야 한다. "감정적 수준과 지적 수준 모두에서 작용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단순한 사실보다 더 설득력 있겠지요."
과정 중에 장교들은 공상과학 소설가들, 히트 미국 드라마 시리즈 '빌리언스Billions'에서 일한 각본가, 작가가 된 퇴역 장성 등 다양한 연사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글쓰기의 기법을 논의하고 탐구하고 싶은 아이디어들을 워크숍으로 진행했다. 이제 장교들은 펜을 들어 단편 소설의 윤곽을 잡으려 했다.
싱어는 그들에게 서사창작의 "기본 요소"를 상기시켰다. 의도한 독자를 생각하고 그들에게 와닿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세부사항의 목적을 생각해야 한다. 주인공의 눈동자 색깔을 묘사한 것이 줄거리나 성격 묘사에 중요해서인가? 그렇지 않다면, 삭제하라. 그가 잘못 찍은 콤마의 위험성을 경고하자 마른 체격의 조종사가 끼어들었다. "옥스포드 콤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학생들이 이 연습을 완전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싱어가 시계를 보았다. "끝나기 2분 전입니다." 그는 마지막 조언을 던졌다. "문장에서 다섯 단어를 더 줄이세요. 금쪽 같은 자식이라도 스토리에 중요하지 않으면 버리세요.2" 그는 무자비한 자기 편집의 필요성에 대한 격언을 인용했다. 누군가 총을 다시 장전하는 것마냥 '쯔쯔' 소리(결정을 못하고 망설일 때 내는 소리)를 냈다. 다른 장교가 큰 소리로 계산 결과를 말했다. "제가 다섯 단어를 지우면, 단어 수가 마이너스 3이 되는데요."
장교들이 자신들이 쓴 스토리를 공유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구조를 기다리는 조난당한 조종사의 두려움('케일'은 수색 구조 프로토콜 개선의 필요성이었다)과 중국이 미국에서 치명적인 병원체를 풀어놓은 후의 생화학자의 내적 독백(군대가 생물학전 위협에 어떻게 대비할 수 있는지)을 들었다.
수업이 끝난 후 나는 미첼을 다시 만났다. 그녀는 자신이 데이터가 가득한 파워포인트 발표에서 하듯이 단순히 "사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동료들을 설득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논리적 호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을 이해했다. 회의에서 사람들은 종종 아침 커피를 마시지 못해 산만하거나 지루해하거나 짜증을 내곤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숫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은 단순한 숫자 대신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할 수도 있다.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2004)은 베트남전 이후 미군이 초능력을 활용해 볼 생각으로 시도했던 실험들을 다루고 있는 논픽션입니다. 나중에 조지 클루니 주연의 '초 민망한 능력자들'(2009)이란 영화로 극화되기도 했죠. 영화의 전반적인 톤은 우스꽝스럽습니다만 한편으론 미군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나름의 '혁신'을 추구했구나, 정말로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는 다르구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미군은 지금도 (초능력까진 아니지만)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는 이코노미스트의 자매지 1843매거진이 10월 4일 기사에서 다루는 미 공군의 '서사창작' 프로그램도 그 중 하나입니다.
전쟁이라는 유기적이고도 종합적인 활동은 도식화된 매뉴얼에 갇히지 않습니다. 매뉴얼은 과거 전쟁 활동을 정리해놓은 것에 불과해서 막상 새로운 전쟁이 시작되면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쟁이론가인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에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 정치권에서 늘 이야기하는 "정치는 생물"이라는 표현이나 유학에서 말하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 같은 말이 정치(전쟁)의 창조성, 정치(전쟁)의 불가예측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이끌 고위 장교들은 무엇보다 창의적이어야 합니다. 매뉴얼을 익히는 것은 암기력일지 몰라도 새로운 매뉴얼을 쓰는 것은 창조력입니다. 미 공군에서 서사창작 프로그램을 시작한 공군대령은 "글쓰기가 곧 생각하기"라고 말합니다. 생각하는 군 지휘관, 아니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창작 글쓰기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