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지정학

트럼프의 재선은 '소련 붕괴' 이래 최대의 역사적 격변

버락 오바마, 낸시 펠로시, 그리고 민주당 기득권 세력은 진보 정권을 쇄신하려다 오히려 끝장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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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비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4일 (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에 있는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미국 우선 정책 연구소 행사에 참석을 하고 있다. 2024.11.15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2024.11.22 15:28

New States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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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내 정치에 대해 미국 언론들은 심판이나 중계자보다는 '선수'로 뛰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영국 언론이 그 논평에 깊이도 있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저명한 정치철학자 존 그레이가 영국의 시사평론지 뉴스테이츠먼(11일 13일자)에 기고한 미국 대선 평가는 신랄합니다. 그는 이른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에 매몰되어 러스트벨트의 백인들을 보지 못했던 미국 민주당이 스스로를 망쳤다고 비판합니다. 존 그레이의 '리버럴리즘'이라는 표현이 영국식 자유주의와 미국식 진보주의를 아우르는 표현이라 읽을 때 고개를 갸웃하게 되긴 하지만, 그는 시장의 자유를 확대해온 탈냉전시대의 세계화가 미국 러스트벨트의 백인들을 희생시켰고, 이들이 그러한 세계화에 반기를 든 것이 이번 미 대선의 본질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민주당은 여전히 트랜스젠더 타령이나 하고 있었으니 대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획기적인 점이 있는데, 미국의 블루칼라 노동자가 민주당을 버리고 공화당을 지지하기 시작했고, 민주당은 대졸 '화이트칼라 엘리트'의 정당으로 규정되었다는 점입니다. 미국 민주당은 이번 선거의 대패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존 그레이의 이 비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존 그레이가 말하는 트럼프식의 '리버럴하지 않은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미국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의 비판은 비단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역시 세계화에 따른 그림자가 있습니다. 이 그림자를 알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한국 역시 '리버럴하지 못한' 정치에 빠져들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빠져있는지도 모릅니다.


조 바이든은 카말라 해리스의 선거운동 막바지인 10월 29일, 트럼프 지지자들을 "쓰레기"라고 표현하며 판을 망쳤다. 보좌진은 바이든의 발언 기록에 따옴표를 삽입하여 수정했는데 이는 트럼프에게 재선을 안겨준 다수의 유권자들이 아닌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트럼프 지지 집회 연설자를 지칭했다고 암시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렌지색 안전조끼를 입고 쓰레기 수거차를 몰고 위스콘신 집회장에 등장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비슷한 복장을 한 지지자들이 그를 환영했다. 미래의 역사가들은 이를 트럼프가 거둔 압도적 승리의 전조로 기록할 것이다.


해리스의 선거운동을 망쳤지만 바이든은 많은 진보적 리버럴1들이 느끼는 감정을 대변했다. 흔들리지 않는 트럼프의 인기에 망연자실한 그들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동료 시민들을 추악하고, 비이성적이며, 사고능력이 없는 존재로 비난한다. 민주당을 참패로 이끈 하이퍼리버럴2hyper-liberal들은 미국의 인종차별 성차별의 비극적 희생자일 뿐, 도덕적으로 결점이 없고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실재함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이번 미국 대선은 계급의 문제였다. 도시의 황무지에서 절망하고 죽어가는 미국의 산업 노동자들은 진보의 쓸모없는 희생자로 여겨져 버림받았다. 대졸 "지식 노동자들"의 새로운 계급은 찬란한 미래를 향해 즐거이 행진했다. 2016년의 지각변동은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역사는 다시 원래의 궤도로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진보 세력의 통치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트럼프의 재림은 소련의 붕괴와 그 지정학적 결과에 비견할 만한 역사적 전환점을 의미한다. 바로 리버럴한 세계 질서의 결정적 종말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로 미국의 보호에 의존해온 국가들은 피할 수 없는 선택에 직면했다. 스스로를 무장하고 방어하거나, 아니면 떠오르는 권위주의 세력들과 화친해야 한다. 이제 예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국내에 미칠 영향도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처음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는 핵심 간부진—그의 '미국 우선주의' 이데올로기를 공유하는 측근들—이 없었다. 지금은 헤리티지재단과 다른 보수 싱크탱크들이 양성한 수천 명의 인력이 있다. 그는 자신이 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분명 사실이리라—900페이지가 넘는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3' 전체를 실행에 옮기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미국 정부를 재편하기 위한 '프로젝트 2025'의 핵심 권고사항들을 채택할 것인데 여기에는 연방정부의 행정부를 대통령 권력의 도구로 전환하고 수많은 연방기관들을 통제하거나 폐지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글을 쓰는 현재, 그는 의회 양원 모두를 장악하기 직전이었다. 이미 세 명의 보수적인 대법관을 지명한 그는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이 은퇴하면서 더 많은 보수 대법관을 임명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이다. 그의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미국은 다른 나라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의 부통령인 JD 밴스는 노련한 정치인이 되어 있을 것이며 미국 정부 개편을 이어갈 수 있는 강력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미국 헌법의 견제와 균형은 단일 정당이나 개인이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지만 헌법도 영원할 순 없다. 그 결과는 전간기戰間期 파시즘의 단기적 재현이 아닌, 보다 지속적인 것이 될 것이다. 체계적으로 구축되고 깊이 착근한 리버럴하지 않은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다.


리버럴에게 있어서 마지막 희망은 이제 '유럽'이다. 그러나 이는 실존하는 유럽이 아니라 컴컴해지는 유럽을 막기 위해 부적처럼 움켜쥐는 상징이다. 우파와 극우파 정당들이 거의 모든 곳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얻고 있다. 2027년 4월로 예정된 대선이 끝나면 프랑스는 마린 르펜이나 그의 카리스마적 후계자 조르당 바르델라가 이끌 가능성이 높다. 불길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독일 정치에서 결정적 힘을 가진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 반유대주의 학살이 돌아오고 있다. 네덜란드의 빌럼-알렉산더르 국왕은 11월 6일과 7일 암스테르담에서 아약스 팬들과 지속적인 충돌에 휘말린 이스라엘 축구 팬들을 보호하지 못한 네덜란드 정부의 실패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국이 유대인 공동체를 보호하지 못했던 데 견주었다. '유러피언 드림'의 종말은 트럼프의 미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 어떤 일보다도 더 끔찍한 모습을 띠고 있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정부는 역량을 벗어난 상황에 처해 있으며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다. 데이비드 래미와 안젤라 레이너는 과거 그들이 트럼프에 대해 했던 말들을 부인하려고 하겠지만 트럼프는 영국 노동당이 자신을 불신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굽실거리는 전화통화로는 그의 의심을 누그러뜨릴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영국 대표단이 마라라고로 순례를 가서 무릎을 꿇고 권력의 반지에 입을 맞춘다면 좀 누그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노동당 활동가들이 미국 민주당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잊지 않을 것이며, 스타머 총리가 그를 의회 연설에 초청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당 고위 인사들과 연결된 혐오반대 단체가 겨냥했다고 알려진 SNS 기업 X(구 트위터)의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스타머 정부에 호의적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큰 격변은 불가피하다. 트럼프의 나토 탈퇴 위협은 유럽이 방위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강요하기 위한 협상 전술일 수 있지만 유럽의 재무장에는 시간이 걸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블라디미르 푸틴이 침공 중에 장악한 영토를 보유하도록 허용하면서 급작스럽게 끝나면 유럽의 안보를 하룻밤 사이에 붕괴시킬 위험이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는 급증하는 연방 부채와 맞물려 파국적인 무역전쟁과 또 다른 금융위기를 촉발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영국에게 치명적인 시나리오다. 중국을 두고 거론했던 막대한 관세가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는 대만을 시진핑에게 넘기는 미중 거래의 서막일 수도 있다. '넷제로'로의 전환은 없을 것이다. 에드 밀리밴드Ed Miliband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참석하고 있는 COP29 같은 호화로운 회의의 유일한 지속적 결과물은 폐허가 된 수많은 고급 호텔들 뿐일 것이며 이는 트럼프가 다시 한번 미국을 기후변화 조약에서 탈퇴시키면서 발생할 것이다.


리버럴한 질서의 붕괴는 대체로 미국 리버럴들이 도를 넘음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바이든이 대선 후보에서 쫓겨났던 촌극은 이들의 치명적인 약점을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전설을 스스로 믿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섰던 해리스는 바이든보다도 후보로서의 신뢰성이 떨어졌다. 미디어가 만든 해리스의 환영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버락 오바마와 낸시 펠로시가 주도 하에 해리스라는 허상을 만들어낸 민주당 핵심 인사들은 그들이 쇄신하고자 했던 정권의 운명을 스스로 결단냈다.


미국이 벌인 끝없는 전쟁들은 도를 넘은 리버럴리즘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군사 작전은 해외 군사 개입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아마도 한 세대 동안 파괴한 대실패였다. 트럼프에게 투표한 많은 사람들에게 트럼프는 반전 후보였다. 트럼프가 현실주의적이고 거래적인 외교 정책을 고수한다면 파괴적인 신보수주의적neoconservative 십자군 원정은 피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는 분명 자신을 암살하려 한 음모에 관여한 게 거의 분명한 이란에 대해 복수를 모색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 불완전한 평화로 더욱 대담해진 푸틴으로 인해 더 광범위한 유럽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발트해 연안 국가들과 폴란드는 이 리스크에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있다. 유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트럼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



미국 리버럴들의 결정적인 과잉 행보는 국내에서 일어났다. 상당수 유권자들에게는 낙태권을 잃을 수 있다는 여성들의 두려움과 트럼프식 독재의 가능성보다 극단적 리버럴리즘의 과잉에 대한 혐오감이 더 컸다. 경제가 보다 나았던 시절에 대한 기억이 파시즘이 미국을 장악하리라는 예언보다 강력했다. 미국 남부 국경을 통한 무분별한 이민자 유입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 중 해리스 행정부가 이를 막기 위해 효과적인 조치를 취하리라 믿은 사람은 없었다.




오늘날 리버럴리즘은 정치철학이라기보다는 만성적인 형태의 인지부조화에 가깝다. 진보 세력은 경험—진보의 필수 전제조건이다—에서 배우는 능력이 부족한 듯 보인다. 트럼프의 의기양양한 귀환이 그들에게 가한 심리적 충격은 엄청난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많은 이들을 뒤흔든 브렉시트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이 될 것이다. 그들은 상처 입은 자신들의 미덕에 대한 발작적인 한탄과 불굴의 희망에 대한 설득력 없는 신앙고백 사이를 오가며, 치욕스러운 진실을 부정함으로써 제정신을 유지하려 한다. 그들이 만들었고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세상은 속절없이 사라졌으며 그렇게 된 것은 바로 그들 자신 탓이었다.


리버럴리즘적 세계화가 가져온 파괴가 포스트리버럴post-liberal 미국의 기원이 되었음을 인정하는 대신, 그들은 세계화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들을 백인 특권white privilege의 거점이라고 속단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해 급진적 입장을 채택한 것은 전통주의적 가족 옹호자들의 분노를 샀고 미국의 노동자들과 소수민족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는 걸 확정지었으며, 동시에 고전적 페미니스트들과 동성애 평등주의자들을 소외시켰다. 트럼프의 승리가 이토록 압도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상대한 리버럴리즘이 너무나 집요하게 괴팍했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은 이에 비하면 거의 보수적이었다.


미국 대선에 대한 반응은 신화에 사로잡힌 진보 엘리트들의 민낯을 드러냈다. 트럼프를 찍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투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와 가치관, 위험들 사이에서 내린 신중한 선택이었다. (해리스에게 투표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극단적 리버럴들에게 이번 선거는 어둠과 빛 사이의 종말론적 투쟁이었다.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그들이 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 숫자에 의지하리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각종 첨단 수학 모델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 기관들은 2016년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신통치 않은 예언가임이 입증되었다.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대학들이 대량 생산해낸 '지식 노동자' 무리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드러났다. 이 계층의 미래는 암담하다.


리버럴리즘이 항상 오늘날과 같은 유아론적 정통주의solipsistic orthodoxy였던 것은 아니지만 현 세대의 리버럴들이 자기비판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래도 무언가는 배우게 될 것이다. 잔인한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는 동안, 그들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서 쓰레기처럼 버려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존 그레이는 영국의 정치철학자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널리 읽히는 사상가로 손꼽힌다. 이사야 벌린 연구가로도 유명하다. 2008년까지 런던정경대(LSE)에서 유럽 사상을 가르쳤고 현재는 전업 작가로 뉴스테이츠먼에 주로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 '가짜 여명: 전 지구적 자본주의의 환상False Dawn: The Delusion of Global Capitalism'(1998),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Straw Dogs'(2002), '고양이 철학Feline Philosophy'(2020) 등이 있다.


1913년 창간돼 케인스, 버트런드 러셀, 조지 오웰, 버지니아 울프 등이 기고했던 전통 있는 영국 진보 주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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