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Google DeepMind
2025.05.23 15:55
AI(인공지능)가 발전하면서 이 기술이 전례 없는 수준의 부를 소수에게 집중시키는 한편 나머지 다수가 제공하는 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I로 인한 고용 상실 문제에 대해 다양한 사상가들이 제시하는 해법은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UBI)으로 수렴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현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간단한 발상에서 출발한다. AI가 전례 없는 부를 창출하는 동시에 노동자를 대체한다면 그 부를 일부 재분배하는 건 어떨까? 극단적인 수준의 경제적 이익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윈드폴 조항1Windfall Clause 같은 정책 제안처럼 AI 기업들이 전체 경제에서 과도한 지분을 차지하게 될 경우 수익의 일부를 공공에 환원하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편적 기본소득이나 윈드폴 조항과 같은 제안은 부의 재분배가 AI로 인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다는 전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데 이는 정치적, 경제적 권력의 본질을 잘 모른다. 이러한 사후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을 때에는 AI 경제를 장악한 자들의 권력이 유의미한 조세를 피해갈 만큼 지나치게 강력해져 있고, 시민들은 자신의 몫을 주장하기에 지나치게 무력해져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권력의 서사는 역사를 통해 반복되어 왔다. 권력이 한쪽으로 집중되면 권력을 쥔 자들이 규칙을—특히 조세와 부 재분배의 규범을—다시 쓴다. 메디치 가문이 그랬고, 미국의 강도 귀족2robber baron들이 그랬으며, 오늘날의 거대 제약회사들 역시 그러하다. 그러나 도금 시대의 어느 거물도 혁신적 AI가 만들어낼 수 있는 이 새로운 차원의 권력을 손에 넣지는 못했다.
극단적으로 경제 질서가 흔들리는 시나리오에서 소득 재분배는 단지 표면적 증상을 치료하는 미봉책에 불과할 것이다. 경제를 움직이는 AI 자본을 소수가 독점하고 과거 노동으로 경제에 기여하던 다수가 점차 유의미한 경제 활동에서 배제되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부의 재분배는 불평등의 근본적인 동인을 막는 데에 큰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는 항구적인 소득 보조가 요구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환경과학자이자 복잡이론 연구자인 도넬라 메도즈가 1999년 지적했듯이, 소득 재분배처럼 체계의 매개변수를 조정하는 방식은 체계를 변화시키는 데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부의 극단적인 집중이 발생하게 될 경우, 어느 정도의 소득 재분배가 필요할 수는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이러한 불평등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선제적 조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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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분배 대 선분배
AI가 주도하는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자동화기술을 대규모로 활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반면, 이에 필요한 기술이나 자본, 인프라에 접근할 수 없는 이들은 실질적으로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생산비용은 하락하지만 임금 역시 급락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고도화된 AI가 창출하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지 못한 채 허덕이게 된다. 이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에 의존하게 되고, 지급액이 줄어들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고도화된 AI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생산자본 자체가 분배된다. 전세계 사람들이 인터넷과 안정적인 전력 공급, 저렴한 기기 등 핵심 디지털 인프라와 AI 도구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힐 수 있다. 어떤 이들은 AI 기반의 사업을 창업해 주당 몇 시간만 일하고 대부분의 업무는 AI 에이전트에게 위임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서 AI 기반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이 기술을 경제적 기여 뿐 아니라 일터 밖에서의 개인적 목표를 실현하는 데에도 활용하게 된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사람들을 '의존적'으로 만들고, 두 번째 시나리오는 그들을 '참여'하게 만든다.
첫 번째 접근은 재분배, 두 번째 접근은 '선'분배 시나리오로 볼 수 있다. 선분배란 소득을 창출하는 자원에 대한 접근을 평등하게 보장함으로써 불평등을 선제적으로 예방하자는 발상이다. 결과의 평등을 사후적으로 이행하려는 조치들보다, 기회의 평등을 사전적으로 보장하는 접근이 훨씬 더 심층적인 구조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는 그 어떤 사후적 수정 조치로도 달성할 수 없는 효과다.
보편적 기본소득이 일찍 도입되어 사람들이 AI로 인한 경제 혼란이 닥치기 전에 관련 기술에 접근하고 자신의 역량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 자체로 선분배 정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대규모 재분배 정책을 실현할 정치적 의지는 노동시장이 무너질 정도의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형성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이미 극심한 불평등이 현실화된 이후에 보편적 기본소득이 도입된다면 정작 그것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그 지급 수준이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만큼의 협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일 것이다.
선분배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
철학자 존 롤스는 실물 자본 및 산업 역량과 교육 등 인적 자본을 포함한 생산자본이 사회 전반에 폭넓게 분배되어야 한다는 '자산 소유 민주주의property-owning democracy'(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미드의 이론을 차용한 것이다)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이 체제는 기본적 자유와 공정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들로 뒷받침된다. 생산자원은 누진세, 기회의 평등을 확대하는 상속 제도 개혁, 교육·의료·주거 자원에 대한 접근 확대 등을 통해 분산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자원과 자산에 폭넓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는 롤스가 말했듯 이들이 "자신의 생활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경제적 자립을 가능하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 협력과 비교적 평등한 정치적 영향력의 행사도 가능하게 한다. 다시 말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를 복지국가 자본주의welfare-state capitalism와 비교해 보라.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소득을 재분배하지만 부의 집중 자체는 그대로 두어 오히려 의존성과 엘리트 계층의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영속시킨다.
롤스는 자신이 '정의론'에서 제시한 주요 원칙에 근거해 자산 소유 민주주의가 복지국가 자본주의 뿐만 아니라 자유방임 자본주의와 여러 형태의 사회주의 등 그가 분석한 다른 모든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결론지었다. 사회는 모든 시민이 자본에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을 때 가장 공정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선분배를 롤스적 이상을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정의와 실용주의를 모두 충족하는 정책 틀이다. 교육 접근성에서부터 자본 출연에 이르기까지, 선분배 정책은 경제적 참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인간의 주도성을 강화한다. 선분배는 윤리적 호소력을 넘어 더 효과적인 변화의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이 접근은 부가 이미 집중된 후 도입을 시도하는 대규모 재분배가 정치적 저항에 가로막히는 고질적 문제를 피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불평등이 고착화되기 전에 경제적 과정에 사전 개입함으로써 소규모 초기 투자만으로도 재분배보다 더 많은 권력과 자원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미국은 과거에 선분배 정책을 성공적으로 도입한 여러 선례가 있다. '1944년 제대군인 재정착 지원법'으로도 알려진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은 퇴역군인에게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주택 및 사업 융자에 대한 접근을 확대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중산층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또 19세기에는 보편적 초등교육의 확장과 토지 공여 대학의 설립을 통해 산업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숙련된 노동 인구를 양성했다. 이 정책들은 단지 소득을 재분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스스로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했다.
이러한 자본 중심적 접근은 보편적 기본자본Universal Basic Capital(UBC) 개념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는 보편적 기본소득처럼 주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자산을 모든 시민에게 분배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제도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레이 달리오, 네이선 가델스 모두 노에마에서 보편적 기본자본을 옹호한 바 있다. 보편적 기본자본처럼 자산을 분배하는 접근은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이 소득을 분배하는 접근보다 불평등의 본질적 원인을 더 효과적으로 해결한다. 자산의 분배는 수익을 창출하고 불릴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며, 소득을 주기적으로 분배하는 접근처럼 수혜자의 의존성을 강화하기보다 그들이 수익을 창출하고 불릴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고 경제 소유 지분을 늘릴 수 있게 한다. 전후의 제대군인원호법과 미 연방주택청(FHA)이 제공한 주택담보대출은 주택소유가구를 유의미하게 확대해 수조 달러의 가계자산을 창출했다. 그 자산은 초기 수혜자들의 후대에까지 전승되어 여전히 이익을 제공하고 있다. 일회성 자본투입이 월간 소득 투입이 따라갈 수 없는 다세대에 걸친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선분배에 대해 보다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자본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자 아마르티야 센과 엘리너 오스트롬의 풍부한 연구를 비롯해 자산 기반 복지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연구들은 모두 인적자본 투자와 포괄적 소유권 보장의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교육과 의료, 자본에 대한 폭넓은 접근을 보장하는 사회에서 대체로 더 활발한 계층 이동성과 건강한 민주주의를 볼 수 있다. 모두에게 투자하고 모두의 지분을 보장하는 것은 명백한 정치·사회·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
AI 시대에 선분배가 필요한 이유
세상을 변혁시킬 AI에 대비한, AI 가치 창출 활동에 기여할 기회를 폭넓게 분배할 수 있는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컴퓨터 프로세싱 능력과 생산활동에 필요한 하드웨어, 접근성 높은 AI 도구 등 생산자본에 대한 접근을 확대하거나, AI 리터러시 및 역량 개발 프로그램 등 인적자본에 투자하는 방안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정책 대비는 빠를수록 좋은데 그 이유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AI가 전례 없는 경제 변혁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AI의 발전이 이 기술의 옹호자들이 상상하는 수준의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다면, 선분배 제도는 기존의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대신 이를 해소하고 전세계적으로 빈부 간 차별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구현하는 변곡점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제도가 미비해 모두가 기본적인 수준의 기술과 역량을 동등하게 갖추지 못한다면 많은 이들이 AI의 혜택에서 배제될 것이다.
둘째, 고도화된 AI가 인지능력을 보편적으로 증폭시키는 수단으로 개발되면서 특정 산업이 아닌 전 산업에 걸쳐 혼란을 야기할 잠재력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재분배에 의존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다. 요구되는 정책의 규모가 전례 없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두드러지만 일각에서는 AI로 인해 거의 완전한 실업 상태가 발생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더라도 전체 인구의 15% 정도가 임금 하락이나 실직을 경험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와 동시에 수익이 점차 AI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된다면, 롤스의 시각에서 이미 본질적 결함을 지닌 복지국가 자본주의는 자금 조달을 위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붕괴할 수도 있다. 설령 복지국가 자본주의가 유지된다고 하더라도, AI 자본에 대한 접근과 소유권의 불균형이 심화된 경제 구조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불평등의 근원을 해결할 수는 없다.
셋째, AI 기술이 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불평등도 그만큼 빠르게 심화되고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규모 재분배의 필요성을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이를 실행할 수 있는 힘을 잃었을 수도 있다.
선분배의 정치적 중요성
AI 자동화의 사회적·정치적 함의는 매우 크다. 이는 단순히 부의 집중 문제를 넘어, 노동 계층의 이해가 정치적으로 대변될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재계 엘리트들이 더 이상 수익 창출을 위해 대규모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와 정치적 합의를 이루려는 동기 역시 약화될 수 있다.
정부가 노동자, 즉 일반 시민의 이해를 대변하는 상황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오늘날 민주적 책임성은 부분적으로 시민이 납세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정부 운영에는 시민의 생산 활동에서 얻은 세수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AI 시스템이 주요한 부의 창출원이 되고 국가가 조세를 징수하는 대신 혜택을 분배하는 구조로 전환된다면, 시민은 권리를 가진 이해관계자가 아닌 수동적인 수혜자나 고객으로 전락할 수 있다. "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는 말은 거꾸로도 성립한다. 과세가 없다면 대표성도 사라진다.
이러한 정치경제적 불평등은 국가 대 국가의 관계에서 가장 극심한 양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 극단적인 시나리오에서는, 기존의 국가 발전 모델이 무력화되고 덜 발전된 국가가 경제적, 정치적으로 영구적인 의존 상태에 빠질 위험이 있다.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봉건주의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는 오픈AI가 자사의 사명으로 공언했듯, AI의 혜택을 전 인류에게 나누겠다고 약속한 주체들에게 새로운 도덕적 과제를 제시한다.
AI 혁신이 계속 가속화되는 가운데 포용적인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AI가 주도하는 불평등이 어디에 있는 누가 되었든 거의 모든 사람의 경제적, 정치적 권력을 점차 잠식하는 악순환이 도래할 수 있다. 반면 우리 모두가 AI에 대한 일정한 지분을 보유한다면, AI의 경제적 비중이 커지는 만큼 경제적·정치적 포용성이 상호적으로 강화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는 더 정의롭고 민주적인 세상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선분배 솔루션 살펴보기
선분배 솔루션의 범위는 매우 넓고, 아직 더 많은 제안을 필요로 한다. 국가 간 AI 인프라 협력과 같은 실용적인 접근에서부터, 클라우드 컴퓨팅을 공공 자산으로 규제하거나 시민에게 AI 지분을 제공하는 국부펀드 설립 같은 더 야심찬 발상까지 다양한 접근이 존재한다. 지금부터 3가지 유형의 솔루션을 살펴보자.
1. 인적 자본에 투자하기
선분배 접근은 사람들이 AI 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적 차원의 AI 리터러시 프로그램과 접근성 높은 AI 도구의 마련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접근성이란 대형언어모델(LLM)의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계층 이동성을 높이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교육과 역량 훈련, 글로벌 의료 진단 기술, 잡매칭job matching과 공공 서비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AI가 사용된다고 상상해 보자. AI가 사람의 역량을 대체하는 대신, 강화하고 확장하는 도구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금 인센티브나 선구매 계약과 같은 시장 형성 메커니즘을 활용해, 시장 논리만으로는 간과되기 쉬운 공공재 개발에 AI 발전이 집중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2. 생산자본에 투자하기
다자간 기금을 통해 디지털 저개발 지역의 공공 디지털 인프라 개발 자금을 원조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러한 인프라에는 AI 컴퓨팅 자원과 전력, 고속 인터넷과 지급결제 시스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 간 협약을 체결하거나 국제 개발 기구 및 테크 기업의 지원을 통해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 이 주체들은 나아가 '컴퓨트compute'(AI 모델을 훈련하고 배포하는 데 필요한 특수한 칩의 프로세싱 능력)를 공공재로 다루기 위해 협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시민과 단체들은 기본적인 할당량을 제공받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이 현실화되려면, 이 희소자원을 확보하려는 국가 간 경쟁 속에서 상당한 수준의 국제적 협력이 필요할 것이다.
AI 시스템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개발사들은 지역별 차등 가격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 자원 확보 수준이 낮은 지역에는 더 저렴한 가격을, 구매력이나 지불 의사가 높은 지역에는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하는 방식이다. 이와 동시에에 국가적 차원에서는 AI 선도국들이 수출 금융 상품과 기술적 지원을 통해 AI 컴퓨트 인프라와 모델 및 애플리케이션의 활용도를 촉진할 수 있다. 이러한 국제 지원책은 최첨단 컴퓨트 운용 비용이 효율성 개선 속도를 초과할 경우 특히 유용할 수 있다.
3. 금융 수단
여러 금융 수단으로 AI 공급망 내에서의 소유권을 확대할 수 있다. 노르웨이의 석유기금(정부 연기금)이나 싱가포르의 글로벌 투자 펀드 테마섹을 모델로 한 AI 국부 펀드는 자동화 기술을 보다 포괄적인 경제적 번영으로 전환시키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영국의 데이원 프로젝트가 제안한 AI 채권은 이러한 구상의 청사진 중 하나다. 시민들은 채권을 매입해 국가 차원의 AI 생태계에 투자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고정 수익과 더불어 시민 및 공공 복지 프로젝트에 재투자되는 'AI 배당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채권은 여러 자금 조달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AI 수익에 세금을 부과하거나, 지분 이전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도 있다. 미국의 많은 주요 AI 연구는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등 정부 기관의 자금으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AI 기업들이 공공 연구 성과와 인프라를 활용한 정도에 따라 지분을 기여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지분 기여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굴지의 트럭 운송 회사가 AI 기반 자율주행차로 전환하려 한다고 하자. 이 회사는 자율주행 차량 운영에 필요한 인허가와 트럭 운전사의 재훈련을 위한 세금 공제, 기술적 전환 관리에 필요한 우대 대출 등 혜택을 받기 위해 지분을 기여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은 기업 지분으로 구성된 펀드는 공공 배당금이나 서비스 제공에 활용될 수 있으며, 대체된 노동자를 위한 특정 직무 전환 지원 서비스에도 사용할 수 있다. 자율주행 트럭 운송 회사에 의해 대체된 트럭 운전사가 직무 전환 지원을 받음과 동시에 그 회사의 지분도 소유하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방 정부가 지역 AI 투자풀을 조성할 수도 있다. 시민이 재생에너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미국 텍사스 오스틴 시의 에너지 공기업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오스틴에너지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솔라Community Solar, 솔라스탠더드오퍼Solar Standard Offer, 솔라포올Solar for All 프로그램은 시민들이 공유 태양광 인프라에 투자할 수 있도록 하고, 자택 지붕을 수익 창출 자산으로 전환할 수 있게 하며, 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친환경 에너지를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분산 소유 모델을 통해 공동체의 부를 증대한다.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AI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보다 작은 규모로는 노동자 소유 기업으로 전환하거나 우리사주제도employee stock ownership plan를 통해 AI로 인해 인간 노동 수요가 줄어들더라도 노동자들이 회사 지분을 계속 유지하도록 할 수 있다. 다양한 산업에서 운영되는 노동자 협동조합 연합체인 스페인의 몬드라곤 그룹과 같은 노동자 소유 모델은 역사적으로 고용 안정을 유지하고 이익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우선적 가치로 삼아왔다. 이러한 가치들은 AI 자동화로 인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미래의 갈림길
1967년 엑손모빌의 에소Esso가 처음으로 노르웨이 연안 북해 유전에서 거대한 석유 자원을 채굴했을 때, 노르웨이 정부는 여기에 개입해 해당 석유에 대한 주권을 행사했다. 이 엄청난 부를 갖고 어떻게 할까? 노르웨이 정부는 이 부가 천연자원이 풍부한 국가에서 흔히 그러하듯 우연히 그 채굴 시기에 존재했을 뿐인 소수의 초부유층을 만드는 대신, 사회 전반에 걸쳐 장기적으로 분배되기를 원했다. 현재 노르웨이는 석유 수익의 78%를 세금으로 징수하며, 이 세금은 노르웨이 국부펀드로 유입되어 대규모 사회 복지 정책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불평등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경제 전환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또 다른 예로는 산업혁명 시기의 영국 정부와 공장 소유주들의 접근 방식을 들 수 있다. 기계식 직조기가 직물공을 대체하자 공장주들은 그 수익을 독점했고 영국 정부는 시위자들을 총으로 진압하거나 구빈원에 보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러다이트 운동가들은 반기술주의자가 아니라 반착취주의자였다. 그들은 기술 자체에 반대한 것이 아니라, 기술의 혜택이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현실에 저항한 것이었다.
AI는 비슷한 갈림길에 서 있다. AI로 창출한 이윤이 병원과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쓰일 수도 있지만 산업혁명 시대의 최악의 사례가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선분배는 전자의 시나리오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다. AI 자동화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사회 전반에 고르게 분배되도록 보장해 기술 혁신을 수용하면서도 산업혁명 당시와 같은 사회적 대혼란을 완화할 수 있다.
일부는 AI가 '모든' 일을 자동화하게 되면 인간이 부의 창출에 참여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의미해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선분배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더라도 AI 자산의 지분을 소유하거나, AI에 일을 위임하거나, 혹은 일과 무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AI를 활용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이 (거대할 것으로 예상되는) 파이의 한 조각을 가질 수 있다.
선분배는 단순히 경제와 정치의 수단에 관한 논의가 아니다. 이것은 더 폭넓은 포용을 바탕으로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를 건설하는 일이기도 하다. 아이폰은 시장 수요에 맞춘 제품이 아니었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데 능수능란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기업의 의사 결정은 새로운 현실을 창출한다. 그러나 더 폭넓게 분산된 소유권 구조는 어떤 기술이 우리의 세상을 정의할 것인지에 대해 더 다양한 결정을 가능케 한다.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은 매우 짧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시간이 바로 지금일 수도 있다. AI가 불평등을 고착화시키면, 축적된 권력이 재분배 구조를 피해가는 데 쓰일 수 있다. 우리는 AI의 발전에 다수가 참여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지금 행동해야 한다. 단순한 수익 분배를 넘어 진정한 권력의 공유를 통해, 전세계 공동체가 AI를 토대로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새프런 황은 보다 민주적인 신진 기술 구현을 위해 노력하는 '콜렉티브 인텔리전스 프로젝트'의 공동 설립자이자 자문위원이며 앤트로픽Anthropic의 사회적 영향팀Societal Impacts team의 연구원이다.
샘 매닝은 AI 거버넌스 센터Centre for the Governance of AI의 선임 연구위원이다.
인공지능(AI) 기술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 삶에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지만, 동시에 전례 없는 수준의 부를 소수에게 집중시키고 다수 노동의 가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깊은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AI 연구자로서 이전에 한의학과 AI의 공통점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쓴 적 있는 새프런 황이 노에마 매거진에 4월 22일 공동 기고한 이 글은 이미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과 고용 불안정 문제에 AI가 미칠 영향과 그 해법을 모색합니다.
AI로 인한 불평등 심화에 대한 해법으로 흔히 '보편적 기본소득'과 같은 사후적 부의 재분배 방안이 거론되지만, 이 글은 그러한 접근의 한계를 지적하며 더욱 근본적인 해법으로 '선분배'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선분배는 불평등이 고착화되기 전에 생산 자본과 AI 도구, 그리고 관련 역량에 대한 접근 기회를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폭넓게 보장하자는 '선제적 조치'입니다. 이는 결과의 평등을 넘어 기회의 평등을 통해 AI 시대의 혜택을 보다 공정하게 나누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한국 사회가 AI 전환기를 맞아 경제 구조와 사회 안전망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빈곤 문제 해결과 관련해서 생선을 나눠주는 것과 미리 낚시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있는데 생선을 나눠주는 것이 재분배라면 미리 낚시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선분배입니다. 이 글은 노동자, 나아가서는 시민 모두를 위해 일찍부터 '자산'의 관리를 통한 자본의 축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PADO에서 과거 소개한 '부의 불평등 해소, 신생아 '기초자본' 조성은 어떨까'와 상통하며 시민 모두가 참여자가 되는 AI 활용 방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는 '우리를 위한 AI'와 상통합니다. 함께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AI 기술 발전의 속도를 고려할 때 선분배적 조치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역설합니다. 단순히 기술 발전의 과실을 나누는 것을 넘어, AI가 가져올 경제·사회적 권력 구조의 재편 과정에서 시민 다수가 소외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AI 혁신이 만들어낼 미래의 갈림길에서, 한국 사회가 포용적 성장을 이루고 민주적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어떤 선제적 고민과 행동이 필요한지, 그리고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AI 시대를 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심도 깊게 탐색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입니다.
소득의 '재분배'냐 자산(인적 자본 포함)의 '선분배'냐,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