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로이터/뉴스1
2025.06.06 13:20
니얼 퍼거슨은 세계적인 역사학자이자 시사평론가, 전기 작가로, 대표 저서로는 '금융의 지배', '키신저: 이상주의자', '시빌라이제이션', '광장과 타워' 등이 있다. 그는 옥스포드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하버드대, 런던정경대(LSE), 뉴욕대에서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와 하버드대 벨퍼센터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노에마 매거진의 편집장인 네이선 가델스와 만나 트럼프의 정치 아젠다, 중국과의 갈등, 미국 내의 양극화, 그리고 그의 기독교 개종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은 곧 공개될 베르그루엔 연구소Berggruen Institute의 팟캐스트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네이선 가델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여 수립한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즉 규칙 기반의 세계 체제로부터 일방적으로 이탈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급진적 주권주의 노선은, 미국이 이제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기존 '격변의 축axis of upheaval'에 동참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제 이들 주요 강대국 모두가 기존 질서에 도전하며 자신들의 세력권을 구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어떻게 보십니까?
니얼 퍼거슨: 저는 미국이 소위 말하는 권위주의의 축, 격변의 축, 악의 축, 뭐라고 부르든 이런 쪽에 합류하고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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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재집권하기 전 지난 4년 동안 일어났던 일 중 이상한 점은, 바이든-해리스 행정부가 들어서자 전 세계 자유주의자들이 이를 반겼다는 점입니다. '어른들이 돌아왔다'는 식이었지요. 미국의 외교 정책이 동맹을 다시 존중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기대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동맹국들은 크게 실망했고, 그 결과 2020년에는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축이 형성되었습니다. 바로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을 아우르는 축입니다. 이는 2002년 이라크 전쟁 당시 언급된 '악의 축'과는 달리 실제로 존재하는 축이지요. 단지 연설에서 언급된 개념이 아니라, 이들 국가는 경제적, 군사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제 대답은 억제력의 참담한 실패라고 봅니다. 그 시작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였고,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더 악화되었으며, 2023년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이슬라믹 지하드'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저는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을 어느 정도 민주당 정권의 실패에 대한 미국 국민의 반작용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1980년 이란 인질 사태 당시 미국인들이 지미 카터를 거부하고 로널드 레이건을 선택한 상황과 유사합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재선된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것이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에 있어서 좋은 소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지요.
간단히 하나하나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도널드 트럼프가 재선되면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저는 이 전쟁이 푸틴이 원하는대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 봅니다. 끝난다면 말이죠. 둘째로,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이 다시 가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셋째, 중국에 대해서는 관세가 인상되어 압박이 강화되었습니다. 중국에 압박이 강화되고 있는거죠. 북한의 '리틀 로켓맨'은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더 이상 러브레터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합니다.
요약하자면, 이 '악의惡意의 축'에게 있어 트럼프의 복귀는 반가운 소식이 아닙니다.
가델스: 제 말은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격변이란, 자유무역과 신뢰 기반의 동맹에 기초한 통합된 서구 중심의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흔들리는 현상을 뜻했습니다. 미국은 이제 타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규범 기반의 글로벌 체제와는 다른, 보다 독자적이고 주권 중심적 통치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트럼프식 미국은 자국의 중상주의적 힘을 지렛대 삼아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퍼거슨: 사람들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말을 할 때마다 저는 볼테르가 신성로마 제국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것은 신성하지도, 로마적이지도, 제국도 아니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그다지 자유주의적이지도, 국제적이지도, 질서정연하지도 않았습니다. 1945년 이후 그런 체제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생각 자체가 환상입니다.
세계의 실제 권력 구조는 유엔(UN)이 이른바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관장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냉전 시기 두 제국, 즉 미국과 소련이 권력을 두고 다투었으며, 미국은 결코 고전적 의미의 권력 행사를 멈춘 적이 없습니다.
많은 논평가들이 "미국이 다시 제국으로 회귀하다니 충격적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황금기 이후 이렇게 되다니 안타깝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20년 전에 '콜로서스'라는 책에서 이미 이런 주장을 펼친 바 있습니다. 미국은 오랜 세월 동안 제국이었고, 1945년 이후에도 결코 제국이기를 멈춘 적이 없었다는 점을 말입니다.
냉전에서 흥미로운 점은, 양 제국 모두 상대방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면서 자신은 제국이 아니라고 주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국가 모두 기능적으로 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과거 제국들과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전 세계에 걸쳐 군사력과 해군력을 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우리가 자유주의 국제질서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좀 더 회의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의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러한 점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린란드를 원하고, 파나마 운하를 되찾고 싶어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20세기 초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 시대로 되돌아간 셈입니다. 하지만 이는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닙니다. 트럼프는 지난 여름 대선 캠페인에서 매킨리가 자신의 영웅이라고 말했지요. 단지 "관세 사나이"인 매킨리만이 아니라,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획득하고 쿠바에 대한 지배권을 얻었던 바로 그 매킨리 말입니다. 저는 도널드 트럼프 하에서 미국이 다시 19세기 말의 방식으로 돌아간 것이라 봅니다.
관세도 그렇고, 이민 제한도 마찬가지로 19세기 말 방식입니다. 트럼프가 사용하는 포퓰리즘적 언어 대부분은 19세기 말 미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즉시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2024년 선거에서 진보 세력은 큰 타격을 입었고, 현재 미국 정치사상 가장 긴 사인(死因) 분석을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왜 졌는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매킨리적 방식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지금의 현상이 어떤 새로운 전환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사실이 드러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신보수주의자들이 이라크 전쟁 당시 '제국'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사용했던 적도 있지요.
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제가 '콜로서스'에서 주장한 바 중 하나는, 미국은 19세기 영국 수준으로 제국을 운영할 능력이 실제로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미국 제국의 구조에는 몇 가지 근본적인 결함이 존재합니다. 그 점은 명확히 짚고 넘어갈 가치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인력 부족입니다. 미국은 인력을 수입하는 나라이지 수출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덥고 가난하고 위험한 지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파병은 6개월 단위로 제한되곤 하지요.
두 번째는 재정 적자입니다. 미국은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세계 곳곳을 장기적으로 점령할 재정적 여유가 없습니다.
현재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이 국방예산보다 부채 이자 지출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위기의 징후입니다. 16세기 스페인 이후 대부분의 제국들이 비슷한 경로를 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고질적인 '주의력 결핍'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 대중과 정치의 본질적인 특성이라 할 수 있지요. 미국인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해외 문제에 대해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로 인해 베트남,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전쟁을 끝맺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구조적 문제들입니다. 미국 제국은 인지적 부조화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기능적으로는 분명히 제국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정작 미국인 자신들은 제국의 역할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국력은 오르락내리락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어떤 때는 강하게 나가지만, 또 어떤 때는 갑자기 후퇴하지요. 트럼프가 반드시 과도하게 나설 것이고, 그 후에 또 한 차례 후퇴가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가델스: 만약 그나마 규범 기반 질서라는 '허구'조차 사라진다면, 이제는 모든 것이 힘으로 차지하는 대상이 될 것입니다.
로버트 카플란과 같은 일부 분석가들은 이를 "글로벌 바이마르 (체제)"라고 부르며, 강력한 패권국이 존재하지 않을 경우 공백 속에서 어떤 나쁜 질서가 등장할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이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일처럼, 내부적 혼란에서 무언가 위험한 것이 부상하는 상황과 유사하다는 뜻입니다.
반면, 보수적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는 여러 개의 '그로스라움Grossraum', 즉 '대공간'이 출현하여 주요 강대국이 각각 해상, 육상, 기술 영역에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되는 세계를 상상했습니다. 그는 이런 세력권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게 될 것이라 보았지요. 왜냐하면 어느 한 세력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세계 권력 구도는 어떻게 전개된다고 보십니까?
퍼거슨: 저는 그 모든 분석보다 훨씬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를 설명하기 위해 굳이 독일 역사를 끌어올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제2차 냉전Cold War II'에 이미 들어와 있으며, 이는 최소 6년 전부터 시작된 일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오늘날 소련 역을 맡고 있으며, 미국은 여전히 미국의 역을 맡고 있 있습니다. 우선, 이것이 냉전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초강대국이 두 개뿐이라는 점입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든, 양자 기술 분야에서든, 초강대국은 단 두 나라뿐입니다. 그 외에는 없습니다.
둘째, 양측 사이에는 분명한 이념적 차이가 존재하며, 이는 시진핑이 중국 지도자가 된 이후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기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일지라도 미국은 근본적으로 중국과 다릅니다. 미국은 일당 체제가 아니라 양당 체제이며, 법치가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시스템입니다. 대통령조차 법의 제약을 받습니다. 대통령이 이를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중국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념적 차이가 명확한 것이지요.
그리고 1차 냉전 때와 마찬가지로, 양국은 기술 경쟁뿐 아니라 대만과 남중국해를 둘러싼 고전적인 지정학적 경쟁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2차 냉전'은 아직 비교적 초기 단계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사건들은 이 냉전적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은 1950년 한국전쟁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때처럼, 실제 무력 충돌이 발생함으로써 세계가 다시 두 진영으로 나뉘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러시아를 지지하는 국가들을 살펴보면, 1950년대 초 남한과 북한을 각각 지원했던 국가들과 거의 동일한 구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동 역시 과거 냉전의 주요 전장이었습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은 그 시기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였으며, 지금 우리는 다시 거의 정확히 50년 만에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이라는 사태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중동이 다시 세계적 주목을 받는 중심 무대로 부상한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전개를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식은, 1991년 소련이 붕괴된 이후부터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하고, 확실히는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냉전 간기(間期)'로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두 번의 냉전 사이, 우리는 대체로 좋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금융위기나 테러 공격 같은 몇몇 예외적 사건들을 제외하면, 비교적 평화로운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냉전 체제로 돌아왔다고 해서, 그 결과가 반드시 같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즉, 미국이 또다시 냉전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는 뜻입니다.
중국은 과거 소련보다 훨씬 강력한 상대입니다. 훨씬 더 큰 경제입니다. 구매력 기준(PPP)으로는 이미 미국보다 큽니다. 명목 GDP로도 미국의 약 70% 수준에 이르며, 이는 소련이 전성기였던 시절에도 달성하지 못한 수치입니다. 전성기 시절의 소련은 미국 GDP의 44%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따라서 이번 냉전은 미국에게 훨씬 더 어려운 싸움입니다. 우리는 단지 소련 붕괴 이후 꽤 유쾌했던 '간기(間期)'를 보냈고, 이제는 더 크고 더 강력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초강대국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가델스: 그렇다면 앞으로의 세계 질서는 기본적으로 양극 체제가 된다고 보십니까?
퍼거슨: 그렇습니다. 그리고 유럽에 가보면 그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국제정치의 주체가 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번 냉전에서 유럽은 '객체'에 더 가깝습니다. 전략적 자율성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이지요.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의 억제 실패로 인해 유럽에 갑작스럽게 닥친 사태였습니다. 억제력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침공했을 때, 젤렌스키 대통령이 망명을 거부하자 미국이 그를 지지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이 전쟁을 고착시켰으며, 유럽 동맹국들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상 유럽은 방관자였습니다. 유럽 지도자들은 수년간 '전략적 자율성'을 주장해 왔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들이 실질적으로 자율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그런 자율성을 확보하기까지는 아직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또한, 유럽은 인공지능 분야 경쟁에서도 주도권을 가진 플레이어가 아니며, 이는 매우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가델스: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을 요즘 "문명국가civilizational states"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의 연속성을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서구에서도 일론 머스크, 조르자 멜로니, 빅토르 오르반 같은 인물들이 자신들의 문명을 수호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에게 있어서 서구 문명이란, 그녀가 말했듯이 '그리스 철학, 로마법, 기독교적 휴머니즘을 의미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팔란티어 CEO 알렉스 카프의 책 '기술 공화국: 강한 권력, 유연한 신념, 그리고 서구의 미래' 서문도 쓰셨지요.
이러한 서구의 문명론적 주장은, 러시아와 중국이 자신들의 문명을 내세우는 주장에 대한 미러링으로 보입니다. 이런 문화적, 문명적 대립 또한 이 갈등의 중요한 요소로 보십니까? 단순히 이념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 간 충돌이기도 한가요?
퍼거슨: 예, 저도 그렇게 봅니다. 저는 '문명'(시빌라이제이션)이라는 책을 꽤 오래 전에 썼습니다. 부제는 '서구와 그 외의 세계The West and the Rest'였지요. 하버드에서 '서구의 우세, 세계 권력의 원천Western Ascendancy, Mainsprings of Global Power'이라는 과목으로 강의할 때, 제 동료 교수들을 꽤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책과 강의의 핵심 주장은 이렇습니다. 1600년 무렵, 세계에는 어떤 매우 특별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유럽 사람들은 여러 측면에서 세계의 다른 지역들을 앞서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정치 독점이 아닌 경쟁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통치 체계를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그들은 또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그리고 자연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개척했습니다. 그들은 사적 재산권을 기초로 하는 법체계—영미법과 대륙법—를 발전시켰고, 근대 의학을 개척했으며, 소비와 노동에 대한 새로운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와 제도들은 서유럽, 그리고 서유럽인들이 대거 이주한 지역—예컨대 북미—에서 독자적으로 진화해나갔습니다.
물론 이슬람 문명 같은 다른 문명들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들도 많은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제가 방금 설명한 형태의 발전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중국 문명은, 이를테면 서기 1000년 경만 해도 서유럽 어느 지역보다 훨씬 더 고도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천년 중 대부분 기간 동안 중국은 정체되었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서구 우세의 시대가 종언을 맞이하는 시기를 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머지 세계가 결국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자'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을 시작으로 비서구 사회의 사람들이 말하자면 서구 문명의 '대박 앱들'을 다운받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 아이디어와 제도는 인종이나 종교적 배경과 무관하게 작동합니다. 그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만일 이 제도와 사상을 받아들이면, 경제는 성장하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며, 모든 것이 나아지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세계가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서구식 번영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 '시장'과 '과학'을 포함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마오쩌둥의 이념적 편향 때문에 이 체계들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결국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중국은 따라잡았고, 정말 빠르게 따라잡았습니다.
역사를 1600년부터 본다면, 초기에는 중국과 유럽 간 소득 차이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후 이 격차는 극적으로 벌어졌고, 1979년이 되면,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중국인보다 22배나 더 부유했습니다. 하지만 2025년 현재, 그 격차는 약 3배로 줄어들었습니다. 이처럼 극적인 '재수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역사적 순간을 이해하려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다만 중국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서구 문명의 '대박 앱들' 전체를 다운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경쟁'이라는 앱을 다운받지 않았습니다. 즉, 제도 간, 정부 부처 간, 정당 간의 경쟁이라는 개념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법치'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정의의 체계를 통한 책임성이 없다면 법치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과학도 받아들이고, 현대 의학도 받아들이고, 소비 사회도 만들고, 근면한 노동 윤리도 받아들였지만, 경쟁과 사적 재산권을 전제로 하는 정치 제도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체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불완전하며, 궁극적으로는 실패할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앞으로 10년에서 20년 사이에 그 체제는 무너져 내릴 것입니다.
가델스: 그렇다면, 만약 중국 체제가 결국 무너질 운명이라면, 왜 알렉스 카프 같은 인물은 그렇게도 강하게 인공지능과 기술 분야에서 '하드 파워' 우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요? 그렇게까지 공격적으로 나서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퍼거슨: 20세기 역사의 교훈은 매우 분명합니다. 전체주의 정권은 결국 존속 가능하지 않더라도, 그 전성기에는 엄청난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가장 강력할 때,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나치 독일이 그 점을 명확히 증명했고, 소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1990년대의 중국과는 다릅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등하거나 그 이상일 수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보다 더 큰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엄청난 양의 핵무기뿐 아니라 재래식 무기—예컨대 미국 항공모함을 격침시킬 수 있는 첨단 미사일들—도 축적해 왔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경쟁은 단지 미국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도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습니다. 저도 알렉스 카프의 다음 견해에 동의합니다. 즉 만약 중국이 승리하는 세계가 도래한다면, 그 세계에서는 개인의 자유가 아주 빠르게 억압될 것입니다.
전체주의 정권이 인공지능, 사회신용 시스템, 그리고 전방위적 감시 기술을 모두 갖춘다면, 그것은 20세기 중반의 스탈린 체제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강력한 전체주의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는 실재하는 위협이며, 지금이야말로 그 위험이 가장 큰 시점입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업무는 매우 과도하게 확장되어 있으면서 비용조달은 과도하게 부족합니다. 우리는 1차 냉전이 끝난 뒤 '평화의 배당금peace dividend'을 받는다고 착각했고, 그 결과 국방 기술에 대한 투자가 극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 안일함이 오늘날의 취약성을 초래했습니다. 특히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그렇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10년 혹은 20년 안에 자유 사회가 승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유 사회는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큰 위험의 시기가 있습니다. 1930년대가 그랬고, 1960~70년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전체주의 국가들은 자유 사회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능력이 있었고, 실제로 승리할 가능성도 존재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렉스 카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결정적인 기술 우위, 특히 군사 기술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것을 손에 넣는다면, 실제로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가델스: 그렇다면 인공지능은 이 전체 구도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서구에서는 '중국은 혁신할 수 없다'는 믿음이 마치 위안을 주는 신화처럼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오픈소스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딥시크DeepSeek는 생성형 AI에서 서구 최고 수준과 맞먹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퍼거슨: 이 논의에 많은 혼란이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인공지능'AI과 '대규모 언어 모델'LLM이라는 용어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LLM은 AI의 일부이지만, 제 생각엔 핵심적인 부분은 아닙니다.
LLM의 많은 기능은, 인간 담론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능이 생성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 것으로 보이는 텍스트를 빠르게 생성하는 기술이지요. 이것은 일종의 장난감입니다. 몇 초 만에 책을 만들고, 이미지도 만들 수 있지요. 하지만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가짜 인간 콘텐츠'입니다. 물론 이 기술에도 쓸모는 있습니다. 구글이 선도해 온 검색 엔진 모델에는 치명적 위협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닙니다.
AI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규모로 과학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막대한 연산 능력을 활용해 새로운 바이러스의 구조를 탐색하거나 설계할 수 있는 능력, 바로 그런 과학적 AI을 우리는 걱정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이미 현실화된 일이지만, 표적 선정과 발사 결정을 인간이 아닌 AI가 빠르게 수행하는 'AI 기반 무기 체계'도 존재합니다. 헨리 키신저가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가장 크게 우려했던 것도 LLM이 아니라, 과학 연구, 특히 무기 시스템에 AI가 응용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제하겠다고 아무리 말한다 한들, 중국이 자제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들이 AI 이전에도 바이러스 관련 연구, 특히 우한에서 코로나19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기능 강화 연구'를 진행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AI를 통해 훨씬 더 과감하고 급진적인 바이러스 구조 실험이 가능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 상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우려해야 할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입니다.
가델스: 선생님은 헨리 키신저의 전기 작가이시기도 한데요, 키신저는 AI가 계몽주의의 비판적 사고 철학의 산물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AI는 오히려 새로운 철학을 요구하는 기술이라고 했지요. 그는 그 말로 무엇을 의미한 것일까요?
퍼거슨: 정말 인상적이었던 점은 90대에 접어든 헨리 키신저가 AI의 함의를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거의 누구보다도 앞서서 이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챗GPT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파악한 통찰은, 일을 해내고 이런저런 결과를 내지만 우리로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술을 우리가 만들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AI 모델의 추론은 인간의 사고 방식이 아니며, 따라서 그 결과 역시 우리가 설명하거나 해석할 수 없는 방식으로 도출된다는 점이 그에게는 커다란 전환점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는 계몽주의 이전 시대, 나아가 과학혁명 이전 시대로 돌아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 시기의 인간들은 주변 세계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 결과를 신이나 외부 초자연적 존재 탓으로 돌리곤 했습니다. AI의 흥미로운 점은, 이제 우리는 다시금 설명 불가능한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그것을 신의 개입이라 하지 않고, 대규모 언어 모델이라 부르고, AI라 부르게 될 것입니다. 키신저가 걱정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이 중세 농민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금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지요.
가델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지식 발전이 결국 일종의 무지로 우리를 되돌려 보내고 있는 셈이군요?
퍼거슨: 그렇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간의 지위를 강등시키는 일입니다. AI란, 멀리 외계에서 온 존재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든 외계적이고 우월한 지능의 탄생입니다.
류츠신刘慈欣의 SF소설 '삼체三体'를 떠올려보십시오. 그 작품에서 트리솔라 문명의 존재들은 먼 은하계에서 오며, 인간보다 지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월한 종족으로 그려집니다. 우리는 항상 '외계인'은 외부 세계에서 온 존재일 것이라 상상해왔지요. 하지만 결국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만들고, 인간보다 우월한 지능을 부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어디로 이어질 수 있을지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 최소한, 우리는 말(馬)의 운명을 공유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물론 말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매우 아름다운 존재이지요. 하지만 한참 전부터 말은 '급히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인간'을 위한 주요 이동 수단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말을 대체했던 것처럼, 지금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대체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가델스: 미국은 그간 극단적으로 자유로운 개방 사회를 유지해왔고, 급진적인 '워우크woke' 사상도 수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강한 신들strong gods'—가족, 신앙, 국가—의 귀환이라고 불리는 흐름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기독교 전통주의로의 회귀로도 해석되곤 하지요. 우리는 지금 자유주의가 지배 이념으로서 마지막 숨을 내쉬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시 순환되는 하나의 사이클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퍼거슨: 최근에 있었던 이른바 '워우크적 대각성Great Awokening'—즉, 극단적인 진보 이념의 확산—이 놀라웠던 점은 그것이 얼마나 불관용적이었느냐는 점입니다. 이 이념은 대학 캠퍼스를 매우 불쾌한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극좌 진보주의자들은 자신보다 우측에 있는 모든 사상에 대해 극도의 불관용을 보였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일종의 '도덕적 공포 정권'이었고, 짧지만 강렬한 지배였습니다. 사실 지난 60여 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신앙, 국가, 가족에 대해 깊은 애착을 유지해 왔습니다. 당신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들 위를 지나가고 있었을지는 몰라도, 전반적으로 그것이 미국의 현실이었습니다.
1960년대에 일어난 일은, 영어권 세계의 엘리트들이 꽤 급진적인 사회 변화를 수용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성에 대한 규범은 훨씬 느슨해졌고, 다양한 믿음이 정당화되었으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신들은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문화적 전환이 미국의 일반 대중에게 깊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중은 그것을 '에드 설리번 쇼'에서 보았을 수도 있고, 신문에서 읽었을 수도 있지만, 미국 전역의 생활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 변화는 서유럽 대중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벌어진 일은 이렇습니다. 급진 좌파는 경제 영역에서 철저히 패배한 이후,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라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이는 미국 역사와 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인식을 전복하려는 시도로, 의도적으로 분열적이며 개인의 정체성을 공격하는 성격을 띠었습니다. 그들은 인종 차이를 다시 강조했고, '피부색 안 보는 사회color-blind society'라는 개념을 포기했습니다. 극소수 집단인 "트랜스젠더" 같은 카테고리를 무기화하여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시도는 새로운 혁명적 문화 환경을 창출하기 위한 계산된 움직임이었습니다. 그것은 많은 대학들에서 상당 부분 실현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사실 그리 멀리 확장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지난 대선을 둘러싼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민주당 내 좌파가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의 여성 스포츠 참가 권리와 같은 여러 이슈들에서, 일반 대중의 인식과는 너무나 큰 괴리를 보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류 여론은, 그것이 백인이든 갈색인종이든 간에, 정체성 정치와 관련된 이슈들에 있어 좌파가 원하는 방향만큼 이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어떤 심오한 반동이라기보다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그러한 사상들을 거부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거부가 거의 모든 인구통계학적 범주를 가로질러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2020년에서 2024년 사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표심이 이동하지 않은 유일한 집단은 '대졸 백인 여성'이었습니다. 그 외 모든 집단은 민주당 내 진보 좌파가 이루려 했던 방향으로부터 이탈했습니다.
가델스: 그러니까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침묵하는 다수'가 다시 부상한 것이군요.
퍼거슨: 사실 그들은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 다만, 사회 현실과 단절된 과격한 진보 운동이 지나치게 강경해지자 맞서기 위해 다시 표면에 등장한 것입니다. 리처드 닉슨이 "침묵하는 다수"라는 표현을 썼던 것도 1968~69년의 반전 시위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닉슨은 단순히 숫자만 보아도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국 전체 인구에서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파했습니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닉슨은 '침묵하는 다수'에게 호소함으로써, 사실 대다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는 꽤 보수적이고, 규범의 급진적인 변화에는 큰 흥미가 없다는 점을 영리하게 활용한 것이지요.
그러나 좌파는 그 사실을 다시금 잊었습니다. 그들은 1968년과 똑같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젠더 사이, 인종 사이의 관계를 너무 급진적인 방향으로 밀어붙인 것입니다. 그 선을 넘게 되면, '침묵하는 다수'는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좋소, 더는 침묵하지 않겠소. 당신들 말을 멈추게 할 때까지."
가델스: 선생님과 아내이신 아얀 히르시 알리1Ayaan Hirsi Ali 두 분 모두, 최근 기독교로 개종하셨지요. 이것도 지금 이 문화적 전환기의 일부로 보아야 할까요?
퍼거슨: 저희 부모님은 제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스코틀랜드 교회를 떠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물리학자였고,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핑커가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철저한 합리주의자였습니다. 저는 '삶은 우주 속 우연의 결과life is a cosmic accident'라는 공식 입장을 가진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는 무신론을—그 자체로 하나의 신념 체계이긴 하지만—두 단계를 거쳐 버리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역사 연구를 통해서였습니다. 무신론을 기초로 한 사회가 성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실제로 종교의 부정과 극단적 폭력 사이에는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역사상 최악의 정권들은 반反 성직자 활동에 몰두했습니다. 볼셰비키 체제, 마오쩌둥의 중국, 그리고 나치 정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치들은 예수를 유대인으로 간주하며 기독교 자체를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역사적 이유로, 저는 '종교 없는 사회'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토크빌처럼 되었습니다. 신앙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신앙을 갖는 것이 사회 전체에 좋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전환은, 개인으로서 혹은 가족 단위로서도 신앙 없이는 삶을 조직할 수 없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인간 존재의 중심 문제들에 대해 대단히 강력하고 혁명적인 해법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아직까지 그것보다 나은 것을 만들어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그 대안을 만들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저와 아내는 기독교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삶을 선하게 유지하고, 자녀들을 제대로 양육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아얀의 여정은 저와는 매우 달랐습니다. 그녀는 무슬림으로 시작하여 '새 무신론new atheism' 진영에 한동안 몸담았던 인물이기 때문에, 제가 대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매우 철학적인 방식—제일 원리로부터 시작해—기독교 신의 필요성에 도달했습니다. 그녀는 예수의 가르침을 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종의 논리적 유추를 통해 도달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결국 우리 두 사람은 같은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모든 변화는, 아마도 오랫동안 예고되어 왔던 종교적 신앙의 부활이 아주 작은 부분이나마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징후일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야말로 서구 세계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도전에 맞서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리처드 도킨스나 스티븐 핑커의 '경서'만으로는 버텨낼 수 없습니다.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 허무주의적 파시즘 체제인 러시아, 이란, 그리고 급진적 이슬람주의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훨씬 더 깊은 정신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가델스: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했던 대로, 주로 중국을 겨냥한 관세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퍼거슨: 이 관세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가 주도한 중국에 대한 반발의 일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2016년 대선에서 한 세대 만에 처음으로 '중국의 도전'에 정면으로 맞선 정치인이었고, 그것은 그가 승리한 주요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트럼프의 인식 속에서 관세는 보다 공격적인 외교노선으로 돌아가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관세와 기술전쟁은 별개의 것이 아니며, 2018~2019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당시 미국은 단순히 중국 수출품에 관세를 부과했을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조치로 중국에 대한 핵심 기술 수출을 통제했습니다. 특히 반도체 기술이 그러했지요. 그 시작은 트럼프였지만, 바이든이 이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저는 상무부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접근을 제한한 조치를 떠올리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러한 수출 통제가 관세보다 미중 경쟁에 있어서 훨씬 더 중요한 조치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중국의 기술적 경쟁력, 특히 AI 분야의 경쟁력을 직접적으로 타격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단순한 관세 맞불 수준의 대응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희토류 같은 요소들도 포함됩니다. 중국이 상당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이 자원들은 서구 기술에 매우 중요하므로, 그런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큰 의미를 가집니다.
가델스: 몇 년 전 선생님은 '광장과 타워: 프리메이슨에서 페이스북까지의 네트워크와 권력'이라는 책을 쓰셨지요.
오늘날 우리는 '타워'처럼 권력이 집중되는 동시에, '광장'처럼 다수의 목소리가 확산되는 소셜미디어 생태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공화국은 전통적으로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될 때 견제와 균형을 세워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공동체의 분열과 다원화는, 이른바 '부족집단적 사일로tribal silos' 간의 대화 단절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한국계 철학자 한병철(현재 베를린예술대 교수)은 인터넷이 정보 흐름의 방식을 바꿔놓았다고 말합니다. 정보가 이제는 '사적 공간에서 사적 공간으로' 이동할 뿐, 공적 숙의가 이루어지는 공론장public sphere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권력 집중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 흐름이 너무 분산된 결과 공공성이 약화된 현실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균형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퍼거슨: 저는 '광장과 탑'에서, 오늘날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과학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네트워크 과학을 통해 우리는 국가나 대기업과 같은 위계적 존재를 스펙트럼의 한쪽 끝에 위치시키고, 반대편에는 완전히 분산된 네트워크—즉, 월드와이드웹(WWW)의 원래 모습—를 둘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반에 일어난 일은 매우 빠른 속도로 웹이 중앙집중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웹은 우리가 지금 '하이퍼스케일러hyperscalers'라고 부르는 소수의 초대형 기업들에 의해 위계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 기업은 잠시 동안, 인터넷과 정보 흐름을 사실상 지배하는 플랫폼을 구축했습니다. 그 결과 웹은 더 이상 분산 네트워크라고 부르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고, 모든 정보는 이 플랫폼들의 강력한 알고리즘에 의해 필터링되고 통제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여전히 그러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플랫폼들의 권력이 정점을 찍은 순간은 2021년이었습니다. 1월 6일 이후, 이들 기업은 정치적으로 보조를 맞추며 트럼프에게 적대적인 조치를 취했고, 동시에 바이든 행정부를 지지했습니다. 저는 이 상황이 매우 충격적인 전개였다고 느꼈습니다. 2021년 1월에는 두 개의 '쿠데타'를 논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벌어진 어설픈 시도였고, 다른 하나는 빅테크 기업들과 바이든 행정부가 다양한 사안에서 긴밀히 협력하면서 트럼프를 겨냥해 성공적으로 수행한 쿠데타였습니다.
이것은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우려스런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그것을 'X'로 전환함으로써 정치적 독점 구조를 해체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네트워크의 자연적 성향—'호모필리homophily' 즉 유유상종의 경향—때문에 극단적으로 분열되는 새로운 상황에 도달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네트워크든, 심지어 고등학교 친구들 사이의 작은 네트워크조차도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사회를 보면, 제가 '광장과 탑'을 썼을 때보다 지금의 분극화는 훨씬 더 심화되었습니다.
요즘 제가 자주 떠올리는 것은, 제가 자라던 시절의 글래스고입니다. 당시 글래스고에는 전혀 다른 두 공동체가 공존했지요. 가톨릭과 개신교, 셀틱과 레인저스. 이들은 결혼은 물론이고, 서로 마주쳐도 거의 말을 섞지 않았으며, 종종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정당 노선에 따라 마치 글래스고식 분열 상태에 도달한 듯합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은 각기 다른 문화적 공간, 다른 네트워크 안에 살고 있습니다. 곧 X(옛 트위터)에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모두 블루스카이Bluesky로 옮겨갈 것입니다. 이 말은, 양 진영의 공동체가 점점 완전히 분리되어가고 있으며, 이제는 당파적 경계를 넘어서는 '섞임'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것이 공화국에게 매우 위험한 징조라고 생각합니다. 공공의 장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라이벌 부족 혹은 종파들이 서로를 선의로 대하려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진지하게 대화하려 하지 않습니다.
이걸 어떻게 고쳐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인터넷의 구조 자체가 그렇게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대한 '글래스고'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이 상황이 어디로 이어질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정치적 분열증schizophrenic politics'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아주 소수의 주, 소수의 카운티에서 발생하는 작은 변화들이 정치의 흐름을 셀틱에서 레인저스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극단적으로 바꾸어 놓는 식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마다,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보았던 것처럼, 점점 더 병적인 정치 행태를 목격하게 됩니다—가령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성급하고 무분별한 사면 조치처럼 말입니다.
잠시 매우 비관적인 어조를 허락하신다면, 저는 지금의 미국이 '공화국 말기'의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곧, 공화국의 제도들이 잠재적 내전을 방불케 하는 정쟁 속에서 점차 부식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정치적 패배의 대가가 지나치게 커지는 순간, 공화정은 위험해지기 시작합니다. 로마 공화정이 쇠락하고 제정으로 이행했던 경로도 바로 그랬지요.
역사는 어떤 공화국도 250년 이상 지속된 전례가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미국 공화국은 그 말기적 국면에 있으며, 제국의 징후—우리 대화의 시작점이기도 했던—가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미국인으로서 가장 깊이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은 5월 20일 노에마에 실린 인터뷰에서 현재 미국과 세계가 겪고 있는 격변의 본질을 논합니다. 그의 분석은 단순히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미 동맹과 중국과의 관계, 그리고 북한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의 미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거대한 지정학적 담론의 중심을 관통합니다.
이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현재의 미국이 로마공화정 말기, 즉 제정으로 넘어가는 초입을 많이 닮았다는 지적입니다. PADO도 미국 정치에 대해 이 점을 여러번 지적한 바 있는데 퍼거슨도 비슷한 지적을 한 것입니다. 로마공화정이 말기에 접어들자 권력투쟁이 매우 치열해졌습니다. 퍼거슨은 '정치적 패배의 대가가 지나치게 커지는 순간, 공화정은 위험해지기 시작한다'고 지적하는데, 현재의 미국이 이런 상황인 듯 합니다.
퍼거슨은 이 대담에서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도발적인 주장들을 쏟아냅니다. 그는 트럼프의 재선이 푸틴이나 시진핑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닐 것이라 단언하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 실패가 오히려 러시아, 중국, 이란, 북한을 묶는 실질적인 '축'을 형성시켰다고 비판합니다. 특히 그는 우리가 이미 '제2차 냉전'에 진입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마치 1950년 한국전쟁처럼 새로운 진영 대결의 서막을 열었다고 진단합니다. 이는 미중 패권 경쟁의 최전선에 있는 한국 독자들에게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시각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