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제공=New York Times
2025.06.27 14:28
지난 몇 달간 매우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데릭 톰슨과 내가 공동 집필한 책 '풍요Abundance'는 민주당을 구원하거나 파멸시킬 것이란다.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의 헤드라인은 이랬다. "'풍요 어젠다'가 민주당을 구할 수 있을까?" 애틀랜틱은 이 책을 "다가오는 민주당 내전"의 중심에 놓았다.
'풍요'가 출간되기 전, 나는 이 책의 주장이 너무나 쉽게 동의할 만한 내용이라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키지 못할까 봐 걱정했다. 이 책 때문에 라그나로크1가 벌어질 줄은 몰랐다.
하지만 누가 이 책을 위협으로 인식할지에 대해서는 내가 틀렸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민주당이 권력을 잡아온 지역에서 어떻게 통치해왔는지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그 비판의 명백한 대상인 개빈 뉴섬과 캐시 호컬 같은 '블루스테이트'(민주당 강세 지역) 주지사들, 그리고 오바마 및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리들은 대체로 이를 수용했다. 모라 힐리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주택 풍요'를 위한 계획을 제시했다. 책의 주장에 방어적으로 반응할 것이라 예상했던 한 명 이상의 민주당 고위 인사는 자신들이 이 책을 쓸 수도 있었을 것 같다고 나에게 말했다.
지금은 민주당에 있어 유동적인 순간이다. 2024년 대선 참패 이후 민주당은 스스로를 재정비하고 있으며, 어떤 비판이 당의 쇄신에 엮여 들어갈지에 많은 것이 달려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반발은 폐허 속에서 자신들이 부상하고 있다고 보았고 또한 '풍요'가 그 상승세를 꺾을까 우려하는 당내 분파, 즉 반기업 포퓰리스트들로부터 나왔다.
[새로운 PADO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카톡으로 알려드립니다 (무료)]
'풍요'는 미국 정치가 놀라울 정도로 등한시해 온 질문, 즉 '우리에겐 무엇이 더 필요한가, 그리고 그것을 얻지 못하게 막는 것은 무엇인가?'에 더 집중하려는 노력이다. 포퓰리스트 좌파 진영의 내 친구들 중 일부는 바로 그 질문에 반대한다. 반독점 좌파의 중심인물인 제퍼 티치아웃Zephyr Teachout 포덤대학교 법학 교수는 자신이 보는 '풍요'의 문제는 책이 제시하는 정책이 아니라 책이 제기하는 핵심 질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민주당 정치와 정치 전반을 집중된 권력의 문제, 그리고 집중된 권력이 여러 일들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식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좌파 시민단체인 '디맨드프로그레스Demand Progress'는 어떤 메시지가 유권자들에게 더 호소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여론조사를 의뢰하기까지 했다. 유권자들은 미국 생활의 '큰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프레임 중에서 선택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나는 "'주택 생산, 에너지 생산 확대 또는 새로운 도로와 교량 건설을 더 어렵게 만드는 병목 현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거대 기업들이 우리 경제와 정부에 대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놀랍지 않게도 후자가 이겼다.
나 또한 정치인들에게 '병목 현상'에 메시지의 초점을 맞추지 말라고 조언하겠지만 일단 그 점은 무시하자. 나는 이 여론조사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이는 현실의 문제를 선거운동 메시지보다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을 반영한다. 메시지가 여론조사에서 아무리 좋은 반응을 얻더라도, 애초에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리고 민주당이 고전하는 주된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메시지를 선택하기 때문이 아니다. 문제 해결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내가 주택 문제에 자주 집중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연코 평균적인 가계 예산에서 가장 큰 항목이기 때문이다. 노동 계급을 돕고 싶다면 주택 문제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업 권력을 해체함으로써 주택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가?
최근 랜드연구소(RAND) 보고서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에서 공동주택(민간주택과 공공주택 모두)을 생산하는 비용을 비교했다. 평방피트당 비용 측면에서, 캘리포니아에서 민간주택을 짓는 데 텍사스보다 2.3배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 만약 공공주택에 관심이 있다면 격차는 훨씬 더 심각하다. 캘리포니아에서 공공주택 1평방피트를 짓는 비용은 텍사스에서 민간주택 1평방피트를 짓는 것보다 4배 이상 더 드는데 이는 주로 공적자금이 투입될 때 따라붙는 온갖 종류의 복잡한 요구사항들 때문이다.
또한 캘리포니아에서는 주택공급 사업을 완공하는 데 평균 22개월이 더 걸린다. 나는 이러한 격차의 이유가 텍사스는 기업 권력과 과두 지배의 문제를 해결했고 캘리포니아는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지난 3월, 브랜든 존슨 시카고 시장은 시카고가 "공공주택 1만 채를 추가로 건설하기 위해 110억 달러(15조1800억 원)를 투자했다"고 트위터에 썼다. 이는 주택 한 채당 110만 달러(15억18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공공주택 사업자 선정 과정을 파헤쳐 보면 다양한 목표에 대해 각 사업에 최대 100점까지 부여하는 채점 기준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업이 녹색건물 '고급 단계' 인증을 받으면 10점을 받는다. '유색인종(BIPOC) 리더십' 또는 여성이 이끄는 개발팀에게는 11점이 주어진다. 특정 접근성 요건을 충족하면 7점을 얻고, '비용 억제'는 3점짜리다.
존슨 시장은 미국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좌파 성향을 드러내는 대도시 시장이다. 그는 기꺼이 기업 권력과 과두 지배를 공격한다. 그는 또한 미국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도시 시장이며, 시카고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시장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정책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를 낳는다.
오해하지 말라. 기업과 억만장자들이 경제와 정부에 대해 너무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세법은 그들의 기호에 따라 변형되어 있다. 선거 자금 시스템은 그들이 선호하는 후보와 명분에 자유롭게 자금을 대도록 설계되어 있다. 기업 집중이나 독점이 가격을 올리고 경쟁을 질식시키는 시장들이 존재한다. 규제의 내용부터 조달을 관장하는 규칙에 이르기까지,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온갖 종류의 과정들이 그들의 부를 증식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은 50만 달러 이상을 버는 미국인들을 위해 1조1000억 달러(1518조 원)의 세금을 삭감하고, 메디케이드와 식료품 지원에서 1조1000억 달러를 삭감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부패와 사익 추구의 향연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민주당이 이미 잘 아는 문제들이다. 민주당을 괴롭히는 것은 그들이 보기를 거부하는 문제들이다.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정치학자인 스티븐 텔레스Steven Teles는 이 점에 대해 현명하다. 그는 '리얼라인먼트The Realignment' 팟캐스트에서 "포퓰리즘은 '전방위적full-spectrum 포퓰리즘'일 경우에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내가 경쟁 정치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만 포퓰리즘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람들은 저를 믿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로 자신들의 편이라고 믿지 않죠. 그저 평범한 당파주의자라고 생각할 거예요."
나보다 더 좌파적인 친구들과 반대론자들 중 다수가 '풍요'에 '권력이론'이 있는지 물어왔다. 나는 종종 그렇다고 대답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분적으로 그 권력이론이 포퓰리즘적이기보다는 리버럴리즘2적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정치학자 카스 무데Cas Mudde는 포퓰리즘을 "사회가 궁극적으로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라는 두 개의 동질적이고 적대적인 집단으로 나뉜다고 여기는 이데올로기"로 정의한다. 다양한 형태의 포퓰리즘은 이 집단들을 다르게 채운다. 우파 포퓰리즘은 민중을 지리적,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 용어로 정의한다. 부패한 엘리트는 대학 교육을 받고, 외국인이며, 세계주의적인 경향이 있다. 좌파 포퓰리즘은 '1%에 맞서는 99%', 또는 '기업 vs 다른 모든 사람들'로 사회를 경제적으로 양분하는 경향이 있다.
두 형태의 포퓰리즘 모두 미덕virtue을 특정 집단의 고정된 속성으로 취급하고, 정책을 비선호 집단에서 선호 집단으로 권력을 재분배하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건설하는 리버럴리즘"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때, 아메리칸프로스펙트The American Prospect의 편집장 데이비드 데이언은 "우리에겐 권력을 구축하는 리버럴리즘이 필요하다"고 응수하며, 그것을 얻는 방법은 정부가 "과거 경제 전환에서 소외되었던 바로 그 집단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장기적인 변화에 필요한 연합을 구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설명에 따르면 모든 정책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정책이나 사업 자체의 목표다. 아마도 경제를 탈탄소화하거나 공공주택을 짓거나 보청기 시장 내에서의 경쟁을 높이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집단 간의 권력 재분배다. 이 정책이 노조를 더 강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더 약하게 만드는가? 환경운동 단체는? 기업은?
포퓰리즘적 권력이론 하에서는 나쁜 정책이 좋은 정치로 정당화될 수 있으며, 종종 그렇게 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캘리포니아환경품질법(CEQA)이 모든 종류의 프로젝트를 '그린메일3'하는 데 이를 이용하는 노조들에 의해 옹호된다. CEQA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끝없는 소송의 위협은 캘리포니아의 거의 모든 건설 사업에서 환경과 관련없는 양보를 얻어내는 데 사용될 수 있다.
나는 노조 결성을 근본적으로 더 쉽게 만드는 걸 지지한다. 하지만 노조, 석유회사, 님비(NIMBY) 세력, 그리고 억만장자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CEQA가 자신들에게 레버리지를 제공한다고 해서, 건설 자체를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지지하지 않는다.
나의 권력이론은 고전적 자유주의에 더 가깝다. 에드먼드 포셋은 그의 저서 '자유주의: 한 사상의 생애'에서 이를 깔끔하게 묘사한다. "인간의 권력은 냉혹했다. 결코 얌전하게 행동하리라고 믿을 수 없었다.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사회적이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일부 사람들의 우월한 권력은 저항받고 견제되지 않는 한 필연적으로 자의성과 지배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관점을 취한다는 것은 당신의 적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당신의 정치적 반대자뿐만 아니라 이웃도 권력을 남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안전한 권력의 저장소는 없다. 기업은 때때로 국익에 봉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배신하기도 한다. 이는 정부, 노조, 교회,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정치의 복잡한 이해관계를 단순한 도덕극으로 축소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된다.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기업들이 종종 있다.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노조들도 종종 있다.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 그리고 누가 당신과 함께 서 있는지를 알려면, 당신이 무엇을 성취하려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검증되지 않은 정치 전략이 아니란 걸 강조하고 싶다. 지난 50년간 가장 성공적인 전국 단위 민주당 정치인이었던 빌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모두 선거운동과 대통령 임기 내내 이런 전략을 구사했다.
샘 애들러-벨은 뉴욕매거진에 "'풍요 어젠다'는 자본이나 기업 권력과의 중대한 대결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썼다. 이는 틀렸다. 화석연료 이해관계자들과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고는 경제를 탈탄소화할 수 없다. 부유층에 대한 증세 없이는 내가 지지하는 종류의 공공 프로젝트에 자금을 댈 수 없다. 그러나 '풍요'는 자본이나 기업 권력과의 대결이 정치의 전부라고 믿지 않는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기업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의 상당 부분을 만든다. 중요한 것은 기업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지이다. 나는 다른 방법으로는 잃었을 생명을 구하는 신약이 시장에 나오는 것을 보면 전율을 느낀다. 그리고 모든 세대의 정신이 그들의 마지막 한 방울의 주의력까지 착취당하는 것을 보며 절망한다. 기업의 창의성 없이는 녹색전환이 없을 것이다. 또한 화석연료 이해관계자들과의 싸움 없이는 녹색전환이 없을 것이다. 과도한 기업 집중은 분명 문제이지만, 경쟁이 치열한 부문에도 영리를 목적으로 한 악행은 얼마든지 있다. 리버럴리즘이 추구하는 것은 기업의 역량을 공공의 목표에 맞출 수 있도록 기업이 활동하는 시장을 조성하는 것이다. 기업이나 그 안의 사람들을 무조건적인 적으로 취급한다면 그것을 효과적으로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이 할 수 없거나 해서는 안 될 일도 많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강력한 국가가 필요하다. 민주당은 그 강력한 국가의 정당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 많다.
벤 위클러Ben Wikler 전 위스콘신 민주당 의장은 작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근본적으로 민주당원들은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만들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에요. 이는 민주당이 무엇이냐에 대한 매우 오래된 '뉴딜'적 개념이죠." 그는 위스콘신주 그린베이 시내에 수십 년간 흉물로 방치되었지만 주 민주당원들이 돈을 모아 치우기로 한 거대한 석탄 더미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다. "민주당은 그런 거대한 석탄 더미를 치우는 정당이에요." 그는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말은 시기상조임이 드러났다. 석탄 더미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풍요'가 일종의 재포장된 '신자유주의'로 묘사되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다. 신자유주의는 애매한 용어지만, 국가를 족쇄로 채우는 것은 철저히 신자유주의적인 프로젝트였다. 이것은 폴 사빈Paul Sabin과 게리 거슬Gary Gerstle과 같은 역사학자들이 주장해 온 논점이며, 우리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핵심이다. 다시 말해, 신좌파New Left는 국가에 대해 깊이 회의적이었고(종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절차와 소송으로 국가를 묶어두는 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것이 바로 신좌파가 가장 큰 힘을 가졌던 블루스테이트에서 국가가 가장 많은 제약을 받는 이유다. 이는 또한 오늘날 많은 좌파들이 국가가 실패하는 지점을 직시하길 거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제약은 부분적으로 그들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들은 비록 설계자들의 의도를 넘어섰다 할지라도 그들의 성과물이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재분배를 원하지만 그 재분배가 약속한 것을 실현하는 것을 보고 싶다. 만약 민주당이 고속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 고속철도는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전기차 충전기를 짓기 위해 세금을 부과한다면, 그 충전기들은 건설되어야 한다. 만약 그들이 메디케어에서 더 낮은 약값을 약속한다면, 그 낮은 가격은 신속하게 드러나야 한다.
더 높은 세금에 대한 지지를 구축하는 한 가지 방법은 엄청난 수준의 부의 불평등을 지적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그것을 신속하게 제공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두 전략 중 하나는 잘하지만 다른 하나는 못한다. 하지만 이는 우연이 아니다. 정부가 약속한 것을 이행할 수 있도록 정부를 개혁하려면 민주당은 적뿐만 아니라 친구들과도 맞서야 할 것이다.
나는 집중된 기업 권력과 싸우는 데 전적으로 찬성한다. 티켓마스터의 독점을 해체하라! 하지만 나는 종종 기업과 과두 지배의 문제만을 보는 정치가 우려스럽다. 너무나 천편일률적인 권력이론을 가진 정치여서 정책에 대한 명확한 시각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프레임을 벗어난 사안들이 너무나 많다. 공공주택을 짓고 경제를 탈탄소화하려는 좌파는 빠르고, 훌륭하며, 저렴하게 건설할 수 있는 유능한 정부를 필요로 할 것이다. 기업 권력과 맞서는 것만으로는 유능한 국가를 재건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워싱턴DC 주택 개발 사업에서 공공주택 한 채를 짓는 비용을 120만 달러(17억 원)까지 끌어올리는 지역 규제가 있는 세상(여기에는 '옥상 아쿠아포닉스4 농장' 비용이 포함된다)은 좌파가 주택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에게 결코 집을 제공할 수 없는 세상이다. 그것은 좌파가 실질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패할 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풍요'와 좌파의 목표 사이에 어떤 모순도 보지 않는다. 나는 '풍요'가 구상하는 국가의 대대적인 개혁 없이는 현대 좌파의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조차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풍요'와 더 순수한 형태의 포퓰리즘 사이의 긴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 다른 권력이론을 가지고 있다.
복스Vox를 공동창간했고 지금은 뉴욕타임스의 주요 칼럼니스트인 에즈라 클라인은 미국의 대표적 진보 논객입니다. 그가 지난 3월 애틀랜틱의 데릭 톰슨(최근 애틀랜틱을 떠나 서브스택 뉴스레터를 시작했습니다)과 공저한 '풍요Abundance'라는 책은 미국 정계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민주당이 집권한 지역에서 진보 세력이 '좋은 경제발전 촉진'보다는 '나쁜 경제발전 막기'에 집중하면서 만든 과도한 규제로 주택, 공공 인프라의 건설이 지체됐으며 그로 인해 주요 선거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진단입니다.
당연히 미국 민주당 내에서도 책에 대해 폭발적인 반응이 나왔는데 클라인은 6월 8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그 중에서도 '좌파 포퓰리즘'의 반발에 주목하면서 미국 진보 진영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시각 차이를 파고듭니다. 그는 좌우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은 한 사회를 '나쁜 집단 대 좋은 집단'의 이분법으로 본다고 주장합니다. 좌파 포퓰리즘에서 기업은 나쁜 집단이고 노동자는 좋은 집단이며, 백인은 나쁜 집단이고 유색인종은 좋은 집단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이분법이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클라인은 대표적인 민주당 텃밭 도시인 시카고에서 민간주택도 아닌 공공주택 한 채를 짓는 데 15억 원 이상이 든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그는 해결책으로 고전적 리버럴리즘(자유주의)의 미덕을 제시합니다. 모든 권력은 악용되고 부패되기 마련이므로 적절히 이를 견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에즈라 클라인이 생각하는 진보는 기업과 시장, 그리고 규칙을 정하고 엄격히 집행할 국가를 활성화해 '풍요'를 제대로 만들어내고 이를 국민들에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분법적으로 상대를 '악마시'하는 정치에 몰입하면 '정책'에서 실패하고 결국 '정치'에서도 실패하게 됩니다. 근래 들어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들고 있는 한국 정치도 미국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