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지경학(地經學)의 시대가 열렸다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 위협은 훨씬 더 광범위한 변화의 일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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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월 3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뒤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5.08.01 15:51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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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7월 12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 '주말 에세이'는 파이낸셜타임스의 기자이자 현 케임브리지대 킹스컬리지 학장인 사회인류학자 길리언 테트의 글인데, 한 마디로 왜 우리 모두가 PADO와 같은 지정학 매거진을 읽어야 하는지를 잘 정리해놨습니다. 지경학(地經學)이란 지정학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세상은 경제적 논리 하나로만 어느 정도 움직이는 시대가 있는가 하면 정치와 외교가 경제적 논리를 지배하는 시대가 있기도 합니다. 테트는 이를 '지적 진자'(intellectual pendulum)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한미 관세협상 결과를 보면 오랫동안 양국이 협의를 거쳐 체결했던 한미 FTA가 사실상 붕괴되어 버렸습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관세 장벽을 무너뜨렸던 오랜 노력이 있었지만, 다시 국경에 관세 장벽이 하루아침에 세워졌습니다. 이제 시장만 보아서는 국제경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국가와 국가의 '힘의 경쟁' '안보군사의 경쟁'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세상을 읽을 수 없습니다. 테트 말대로 지경학의 시대, 즉 지정학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2008년 1월,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기간 중 나는 브리지워터 헤지펀드 창립자인 레이 달리오를 만나기 위해 한 미팅룸으로 향했다. 그의 팀은 성경만큼 두꺼운 방대한 보고서를 내게 건넸고, 이는 달리오가 신용 사이클에 대해 가진 견해를 담은 것이라며 엄숙하게 설명했다.


나는 예의상 그것을 훑어본 뒤, 너무 무거워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것은 큰 실수였다. 그해 말 전 세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달리오는 해당 보고서의 예측 덕분에 '위기를 예언한 인물'로 추앙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보고서를 버렸던 것이다.


"나는 부채가 어떤 속도로 증가할지, 그리고 신용의 수요와 공급이 경제의 기초 체력 대비 어떻게 전개될지를 계산했어요." 그는 최근 나와의 대화에서 그렇게 설명했다.


17년이 흐른 지금, 달리오는 '빅 사이클How Countries Go Broke'이라는 신간을 통해 새로운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는 본질적으로, 미국이 36조 달러에 달하는 국가 부채를 줄이지 않으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미묘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2008년 당시, 달리오는 경제 및 금융 사이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의 예측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 신간은 2021년작 '변화하는 세계질서Changing World Order'와 마찬가지로 신용 사이클뿐만 아니라 "국내정치 및 지정학적 질서"까지 분석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달리오에 따르면, 정치외교적 긴장이 미국의 부채 악순환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외부 위협에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지출을 계속 늘리고 있으며, 동시에 내부의 정치적 양극화로 인해 재정 개혁은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과거에는 돈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제는 정치와 지정학이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정치가 돈의 세계에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 좌파와 우파 모두에서 1930년대와 유사한 포퓰리즘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정치는 언제나 경제에 영향을 미쳐왔다"면서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며 무시할 수 있다. 실제로 학자들은 오랫동안 이를 연구해왔다. 그러나 달리오의 이 새로운 인식은 금융, 기업, 정부 영역 많은 이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뉴욕에 있는 경영컨설팅사 올리버와이만의 파트너인 다니엘 탄너바움은 "요즘 나는 하루 대부분을 고객들에게 지정학적 리스크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조언하는 데 쓴다"며 "이건 과거엔 없던 일"이라고 말한다.


영국 국가안보실 차장인 조너선 블랙 역시 최근 이렇게 언급했다. "경제와 안보(즉 지정학) 이해가 교차하는 지점이 지금 우리 시대의 정책 결정에 있어 구조적 도전 과제입니다. 이 문제는 국제정상회의뿐 아니라 각국 내각 회의실과 기업 이사회에서도 점점 더 중심 안건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변화가 뚜렷해지자, 이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 하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지경학geoeconomics'이다. 이 개념은 군사전략가 에드워드 루트왁이 1990년 글에서 처음 제시한 것으로 보이며, 그는 이를 "갈등의 논리와 상업의 수단이 결합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최근에는 영란은행 부총재 출신인 폴 터커가 로버트 블랙윌과 제니퍼 해리스가 2016년에 정의한 바를 인용하며, 자신의 저서 '글로벌 갈등Global Discord'에서 지경학을 "국익을 증진, 방어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의 활용"으로 설명한다. 여기에 포함되는 수단으로는 관세, 규제, 공격적 통화 평가절하, 해외 자산 매입, 에너지 및 희토류 수출 통제 등이 있다.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미 터커가 언급한 도구 대부분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유럽연합(EU)이나 한국, 일본, 브라질 등에 대한 관세 위협, 중국인의 미국 농지 매입 금지 추진을 보라. 그리고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이용해 보복 조치에 나서는 사례는 또 어떤가. 다시 말해, 지경학의 새로운 시대는 이미 도래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터커 같은 서방의 관측자들이 이 현상을 설명할 때 흔히 중국의 부상(浮上)을 그 원인으로 든다. 그럴 만하다. 하버드대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이 지적했듯, 역사는 '투키디데스 함정'이라 불리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즉, 기존 패권국이 급속히 부상하는 경쟁국에 위협을 느끼고 양국이 충돌 경로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 개념은 특히 미국과 중국의 경쟁 구도에서 자주 언급되어 왔고, 루트왁의 분석처럼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지경학적이고 중상주의적인 정책들을 꾸준히 활용해왔다.


그러나 이 현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방식이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일종의 '지적 진자 운동'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성장 과정과 초기 직업 경험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배운 뒤, 그것이 '정상적'이고 '영구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1900년 이후 정치경제에 대한 관점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자 운동을 보여왔다. 하나의 사조가 다른 사조와 자리를 바꾸며 흔들렸던 것이다.


이러한 변동 중 가장 시사점이 큰 첫 번째 전환은 1914년에 일어났다. 그 전까지 수십 년 동안 서구 세계는 세계화가 심화되고, 시장 경쟁과 기술 진보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물론 이러한 발전은 제국주의라는 추악한 깃발 아래에서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기 대부분의 엘리트들은 이러한 세계 질서가 전적으로 정상적이며 유익하고, 영속적인 것이라고 믿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19년 저서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1914년 8월에 끝난 그 시대는 인류 경제 발전사에 있어 실로 경이로운 에피소드였다!" 당시 세계화는 너무도 깊이 뿌리내려 있었기 때문에, "런던의 거주자는 아침 홍차를 침대에서 마시며 전화로 전 세계의 각종 상품을 주문할 수 있었고" 투자와 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인종적, 문화적 경쟁자들에 대한 우려 없이 말이다. 경제 논리가 정치를 압도하고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그와 같은 안일한 낙관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보호주의, 포퓰리즘 정치, 민족주의가 폭발하며 세계화와 자유시장 이념은 빠르게 무너졌다. 그리고, 양차 세계대전 사이 이른바 '전간기'(戰間期)에는 상업이 국가전략에 종속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독일 경제학자 알베르트 허쉬만은 1945년 고전 '국력과 대외무역 구조'에서 이 전간기를 회고하며 이렇게 썼다. "국력을 추구하는 경쟁이 무역 관계 전반을 관통하고 있었다."


1945년 이후, 지적 진자는 다시 한번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서구 정부들은 케인스가 주장한 이론, 즉 국가가 공공 재정과 제도를 활용해 국내 수요 사이클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였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같은 기구를 중심으로 동맹국들은 글로벌 무역과 금융 연결을 촉진하기 위해 협력했다. 이는 전간기를 지배했던 무역과 금융의 제로섬적 시각을 거부하는 것이었고, '누가 이기고 있나'는 상대적 부(富) 대신 '모두가 얼마나 나아졌는가' 하는 절대적 부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1980년대에 또 다른 전환이 찾아왔다.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같은 지도자들은 케인스주의적 국내 정책 노선을 거부하고, 잭 켐프 같은 정치인과 유진 파마, 밀턴 프리드먼 같은 경제학자들이 내세운 자유시장 이념을 수용했다. 이들은 시장과 화폐가 수요와 공급이라는 일관되고 보편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고 가정했으며, 이는 물리학과 수학의 도구를 통해 모델링이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개념은 빠르게 팽창하던 금융산업에서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들의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20세기 후반 테크 혁명이 갑작스럽게 도래하면서, 금융인들은 복잡한 수학 계산을 할 수 있는 도구를 갖게 되었는데, 초기에는 계산자(slide rule)를 대체한 휴대용 전자계산기, 이후에는 데스크탑 컴퓨터였다.


그 결과, 금융 모델은 폭발적으로 확산됐고, 이는 금융인들과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경제를 문화나 정치 같은 혼란스러운 요소로부터 차단된 '과학에 준하는 영역'으로 사고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달리오 팀이 다보스에서 내게 수많은 도표가 담긴 성서같은 보고서를 건넸을 때, 그는 단지 자신의 통찰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금융 세계가 '경제'와 '합리적 정책'을 상상하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198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대한 반발과, 케인스가 전쟁의 반작용으로 옹호했던 국제주의 정신에 대한 거부가 맞물린 시대를 보고 있다. 물론 이런 모든 현상을 트럼프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다. 마크 파스토와 이안 플레처 같은 경제학자들이 지적했듯, 신자유주의 혁명 이후의 글로벌 시장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시장이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서구 세계가 무역 관련해서는 자유시장 이념을 수용했지만, 중국 같은 국가는 오랫동안 중상주의적 정책을 고수해 왔다. 그리고 미국이 세계화와 자유시장에서 멀어지는 조짐은 트럼프가 집권하기 전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20여 년 전에 이미 시애틀에서는 좌파 시위대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최근에는 기술과 무역으로 인해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이러한 정서는 좌우 진영 모두로 확산되고 있다. 서구에서 국가의 경제 개입은 이미 2008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정부들이 자국 은행들을 구제하고 양적완화를 통해 화폐시장을 조정하면서 그 흐름이 시작됐고, 이후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 닥친 에너지 위기를 계기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2021년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많은 관세 조치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적극적인 산업정책까지 수용했다. IMF의 연구에 따르면, 이와 같은 조치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선진국 전반에서 급증했다.


그러나 트럼프 진영은 이를 훨씬 더 극단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들은 제로섬 사고방식과 힘의 정치에 집착하는데, 이는 1930년대에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사조였다. 이러한 기조는 단지 관세에만 그치지 않고, 금융 영역까지 영향을 미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백악관은 중국과 같은 경쟁국의 투자자들이 미국 내에 투자하는 것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시사한 바 있으며, 국경을 넘는 투자에 대한 심사 도입도 추진 중이다. 트럼프의 최고 경제 고문 중 한 명인 스티븐 미란은 달러 기반 금융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타국에 '특권 사용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마라라고 플랜'을 구상했다. 또 다른 인사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는 미국의 군사적 우산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장기 미국 국채를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강제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트럼프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체계에서 벗어나려는 국가들에 대해 대규모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다른 국가들이 대응을 고민하는 가운데, 애틀랜틱카운슬 산하의 지경학센터 소속 다니엘 탄너바움은 "우리는 지금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파열을 보고 있다"고 진단한다. 또는 같은 센터의 엘마르 헬렌도른의 표현대로 우리가 현재 "지정학이 돈과 관련된 동기, 시장, 제도, 플레이어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상"을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헬렌도른은 '지경학'뿐만 아니라 '지재학geofinance'(地財學)의 시대까지 도래했다고 말한다.


이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경력을 쌓아온 이들에게는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케인스는 한때 "인간은 환경에 익숙해지는 능력이 탁월한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1913년 당시의 엘리트들이 세계화가 무너졌을 때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오늘날 서방의 기업인, 금융가, 관료들 역시 트럼프의 접근 방식에 당혹스러워하고 있으며, 그것이 잠재적으로 매우 해롭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팀이 일관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 자체를 "그들이 정상적이라고 세뇌하는 것"이라며 조롱하는 이들도 있다. 그의 정책이 너무 혼란스럽고 때로는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트럼프가 전통적 의미의 정책 '계획'은 없을지 몰라도, 그의 '본능'을 주변 인물들이 전략적 방향성으로 다듬고, 협박, 위협, 혼란 유도, 메시지 남과 같은 전술을 활용해 그 전략을 실현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관세와 같은 혼란스러운 전술과 미국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더욱 넓은 아젠다를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트럼프의 '본능'은 두 가지 틀에서 설명될 수 있다. 하나는 알베르트 허쉬만의 '패권' 이론을 적용하는 방식이다. 특정 분야의 핵심 '거점'을 통제하는 국가는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스탠퍼드와 컬럼비아 대학의 경제학자들은 최근 '글로벌 자본배분 프로젝트'(GCAP)를 출범시키고, "대규모 언어모델 AI를 활용해 지경학적 압박에 취약한 글로벌 경제의 영역을 식별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들의 핵심 논지는 다음과 같다. 중국은 (희토류 같은 핵심 공급망 거점을 장악함으로써) 제조업 패권을 쥐고 있으며,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통해) 금융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백악관의 조치들은 중국의 제조업 패권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미국의 금융 패권을 방어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고, 반대로 중국은 미국의 금융 패권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중국의 제조업 패권을 방어하고 있다는 것이다. 테크 패권은 아직 경합중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미중 관계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반응도 설명해준다. GCAP에 따르면, 현재 각국의 최우선 과제는 '강압에 맞설 전략'을 구축하는 것이다. 영국 정부에서는 조너선 블랙 국가안보실 차장이 동료들에게 1938년 영국 정부가 작성한 '경제전쟁 핸드북'을 다시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러시아와 같은 국가의 위협에 대응하는 사고 훈련을 위해서다. 그는 "지정학적 경쟁이 다시 전략적 국정 운영을 불러오고 있다"며 "모든 국가는 국가 권력의 모든 수단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고 역량을 한층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핵심 틀은, 특히 기업을 위한 것으로 '이해관계자stakeholders'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2019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 기업은 오직 주주에 봉사해야 한다는 프리드먼식 '주주우선주의'에 분명히 반대했을 때 '이해관계자주의'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아주 유행했었다. 이 개념은 처음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운동과 연결되어 주목받았다. ESG는 현재 우파 정치인들의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ESG에 대한 비판이 프리드먼식 '주주우선주의'로 복귀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우파 진영은 국가 안보, 에너지 수요, 문화적 애국심 등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존중하는 경영을 기업에 요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 블랙의 말처럼, 지경학과 지재학의 부상은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 협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요구한다. 즉, 어떤 이해관계가 중요한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를 묻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사고 전환이 진정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서구에서 지경학이 확산된 현상이 일시적 현상이며 트럼프가 퇴임하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을 붙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전 세계가 미국을 따라 중상주의나 고립주의로 나아갈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경제학자 닐 시어링이 최근 출간한 신간 '분절의 시대The Fractured Age'에서 지적하듯, 오늘날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사실 중 하나는 아시아와 같은 지역에서 국제 무역이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국가들에게 있어 세계화는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유럽과 같은 지역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수호하려는 의지를 여전히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경학의 문제는 그것이 전염성이 있다는 데 있다. 한 국가가 이를 채택하면, 다른 나라들도 대응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20세기 역사에서 보듯, 지적 진자는 흔히 반대 방향으로 흔들리기 마련이며, 이는 트럼프식 사고방식이 영구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사상에서 한 시대는 몇 개월이 아니라 수년간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20세기 초의 지경학 시대도 10년 이상 이어졌으며, 결국 전쟁이라는 극단적 사건에 의해 종식되었다.


레이 달리오 역시, 오늘날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수년에 걸친 부채-지정학- 정치 사이클의 일부이며, 이는 과거 다른 제국들의 몰락을 가져왔던 흐름과 유사하다고 본다. 그는 최근, 이러한 사이클을 끊기 위한 합리적이고 실행가능한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예컨대 3단계로 구성된 다년간의 부채 감축 계획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는 의회가 전혀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탄식한다. "이건 마치 암초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배 안에서 모두가 좌로 틀지 우로 틀지를 두고 싸우는 상황과 같다."


즉 정치가 모든 것을 망치는 근본 원인이다. 이것은 달리오의 매끈한 경제학적 모델뿐만 아니라 현실의 정책결정 과정 전반을 봐도 그렇다. 이러한 정치적 무능함이야말로 지경학 시대의 본질이며, 동시에 우리가 직면한 중대한 위협이다.



질리언 테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학사, 박사(사회인류학)를 취득한 후 파이낸셜타임스에서 기자, 특파원, 편집위원, 논설위원으로 일하며 인류학적 관점으로 금융에 대해 연구조사하고 글을 썼다. 2023년에는 케임브리지대 킹스컬리지의 학장에 취임했다. 저서로는 '앤스로 비전: 비즈니스와 생활에서 새롭게 보는 법'(2021) 등이 있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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