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연수입 5000만원으로 미국에서 다섯 아이 키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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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26 14:47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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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가 쉬웠던 시절은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겠지만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어려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치솟는 물가에 주거비, 보육비, 사교육비까지, 돈 들어갈 일은 끝이 없죠. 그러다 보니 많은 젊은 세대가 결혼이나 출산을 주저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구에서는 많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일종의 '부의 상징'이 됐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여기서는 정반대의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 8월 18일자 기사에 소개된 이 미국 부부는 소득이 충분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다섯 자녀를 낳아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부부의 사례를 보면 육아에 대한 선택에는 경제적 상황 못지 않게 문화적인 상황도 중요한 역할을 함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대가족에서 자란 경험을 한 사람들은 본인들도 대가족을 꾸리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겪은 현실적인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이 가족을 보면서 저출생이라는 사회 문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브리트니 아이비는 통장에 돈이 별로 없었다. 브리트니와 남편 마이클 아이비는 결혼식 비용을 막 치른 터라 저축한 돈이 1000달러(140만 원)도 채 남지 않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대가족을 원했고 바로 아이를 갖기로 했다. 브리트니는 홈디포 소매점에서 시간당 10달러(1만4000원)를 벌고 있었다. 하지만 조합 소속 건설 노동자인 마이클의 수입은 그보다 세 배 이상이었고, 신시내티 외곽에 소박한 침실 2개짜리 집을 10년 넘게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심했고, 2012년 첫 아기를 맞았다. 브리트니는 20세, 남편은 34세였다. 출산은 어려웠다. 아들의 탯줄이 목에 감겨 있었고, 산도에서 아기를 꺼내는 과정에서 골반이 골절되었다. 그럼에도 브리트니는 첫눈에 반했다. "마음이 세 배로 커지는 것 같죠." 브리트니는 회상했다.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아이비 부부는 이제 3세부터 12세까지, 다섯 자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미국인들이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아이를 갖지 않는다.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역대 최저 수준에 근접했으며, 인구 안정을 위해 필요한 수준보다 훨씬 낮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 여성의 평균 출산 연령은 2000년 27세에서 약 30세로 상승했다.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 미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 내 유력 인사들을 포함한 많은 옹호론자와 정치인들은 미국의 출산율 하락이 사회에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는 1990년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당시 미국은 높은 십대 임신율 때문에 이를 줄이기 위한 전국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는데, 이 캠페인은 적절한 파트너를 기다리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수년간 사람들에게 너무 일찍 아이를 갖지 말라고 망신을 줬어요."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 캠퍼스의 캐롤라이나 인구 센터장인 캐런 벤저민 구초가 말했다. "돈을 충분히 모으고, 파트너를 만나고,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죠."


그러한 기준은 점점 더 도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주거, 보육, 교육과 같은 기본적인 비용이 급등했다. 점점 더 많은 가정이 한 부모의 소득만으로는 생계를 꾸릴 수 없음을 깨닫고 있다. 특히 양육의 기준이 높아지면서 많은 중산층 부모들이 더 풍요롭지만 비용이 많이 드는 양육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앞서나가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해 원하는 것보다 아이를 적게 낳고 있죠." 구초는 말했다.



하지만 브리트니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늘 그렇게 어린 나이에 아이를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편의 나이가 더 많았기 때문에 가정을 꾸리기를 열망했다. 그렇게 하면 자신과 남편 모두 자녀들과, 그리고 어쩌면 손주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간호사인 어머니와 전업주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브리트니는 두 형제와 함께 사촌들 근처에 살았고, 다섯 명이 한데 어울려 동네를 돌아다니며 구멍가게에서 슬러시를 사 먹고 자전거를 타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은 가깝게 지냈고, 브리트니는 자기 아이들에게도 같은 관계를 물려주고 싶었다. 마이클 역시 대가족 출신이었고, 자신만의 대가족을 만들고 싶어했다.


브리트니는 아이를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 있음을 알았다. 2022년 브루킹스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제 자녀 한 명을 17세까지 키우는 데 30만 달러(4억 원) 이상이 든다. 대학 등록금은 별도다.


하지만 브리트니는 아이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대학에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이클도 건설 노동자로 일하며 20세에 첫 집을 살 만큼 충분한 돈을 벌지 않았는가. 그리고 만약 아이들이 대학에 가길 원한다면 언제든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첫째 아들에게 드는 비용은 감당할 만했다. "아기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요." 브리트니가 말했다. "저는 항상 모유 수유를 해서 분유를 살 필요가 없었고, 기저귀와 옷 정도가 아기에게 필요한 전부였어요."


2014년 부부가 둘째 아들을 맞이했을 때 그들은 기뻐했다. 이웃과 가족의 도움, 그리고 남편이 오후에 교대 근무를 마치고 도와준 덕분에 두 사람 모두 계속 일할 수 있었다.


그 무렵 브리트니는 꿈에 그리던 직업을 향해 큰 걸음을 내디뎠다. 브리트니는 인테리어 디자인 준학사 학위를 취득했고,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약 4만 달러(5500만 원)의 대출을 받았다. 그는 홈디포에서 승진하여 시간당 12달러(1만7000원)를 받으며 고객에게 새로운 주방과 욕실을 판매했고, 판매 실적으로 지역 부사장상을 수상했다. 한 해에는 거의 75만 달러(10억4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다 큰아들이 3살 때, 정기적으로 입원해야 할 정도의 천식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브리트니는 아들을 돌보기 위해 시간제 근무로 전환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경력에 있어 잠시 겪는 장애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곧이어 가족에게 또 다른 중요한 일이 생겼다. 브리트니가 임신했는데 이번에는 아들과 딸 쌍둥이였다.


쌍둥이는 2018년에 태어났다. 예정일보다 2개월 반 이상 일찍 응급 제왕절개로 태어나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몇 달을 보내야 했다.

출산 후 브리트니는 결국 8주 휴가를 내고 매일 왕복 2시간 거리의 병원을 오가게 됐다. 차 안에서 유축을 하며 두 아이를 위한 모유량을 늘리려 애썼다. 그 기간이 끝나자 브리트니는 병원에서 시간을 더 보낼 수 있도록 몇 주간의 무급휴가를 더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홈디포 대변인은 회사의 현행 정책은 자격이 되는 모든 부모에게 6주의 유급 휴가를 제공하고, 출산한 어머니에게는 추가로 6주에서 8주의 휴가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쌍둥이가 태어났을 당시 브리트니는 좌절감과 분노를 느꼈다. 그는 직장에 남고 싶었다. "이 회사에서 6년 넘게 일했어요." 그가 말했다. "제가 게으름을 피우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었고요."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집중했다. 아이들의 건강이 안정되면 다시 일자리를 찾을 계획이었다.


"저는 매우 사교적인 사람이라 하루 종일 아이들하고만 지내는 것에 적응하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가 말했다. "어른들과의 대화가 많이 그리워지더라고요."


쌍둥이가 마침내 퇴원하자, 그는 급여도 괜찮고 복리후생도 좋은 동네 식료품점을 포함해 구인공고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계산을 해보니 월급 전부가 보육비로 들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계산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이 싫었어요." 그가 말했다. "저는 일하는 걸 좋아해요."


컨설팅회계법인 KPMG가 정부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매달 최소 120만 명의 근로자가 보육 문제로 결근하거나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하이오를 포함한 미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아기를 종일반 어린이집에 보내는 비용이 주립대학 등록금보다 더 많이 든다. 다른 많은 선진국과 비교할 때, 미국은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모를 위한 지원이 거의 없다.


몇 달이 지나고 몇 년이 흘렀다. 브리트니가 알아채기도 전에 쌍둥이는 3살이 되었고, 그와 남편은 아이를 더 가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지루한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엄마라는 역할이 좋았다. 가족과 함께 동네 공원으로 소풍을 가고, 아이들이 침대에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고, 천냥백화점에서 산 색칠공부에 기뻐하는 모습들을 사랑했다.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흘러갔다. 첫째는 벌써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영재반 수업을 듣고 있었다. 둘째는 마인크래프트와 컴퓨터로 음악 만들기에 빠져 있었다. 벌써부터 아기의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아기가 목에 파고들며 안기는 느낌이 그리웠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그와 남편은 그렇게 생각했다. 다섯째 아이, 딸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들은 뛸듯이 기뻐했다.


2022년 아기가 태어날 무렵, 가족은 위기에 처했다. 마이클이 일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수년간 지붕 공사를 한 것이 허리에 무리를 주었다. 척추의 마모로 인한 증상 악화로 몇 달 동안은 차까지 걸어가기조차 힘들 정도의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쌍둥이가 태어난 이후, 가족은 소득 수준과 쌍둥이 중 하나이 영양 공급관이 필요했던 덕분에 저소득층 의료 지원 제도인 메디케이드 자격을 얻었다. 부부는 메디케이드에 마이클의 MRI 비용을 지불해달라고 청원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고 한다.


절박해진 부부는 결국 직접 현금을 지불했다. 750달러(100만 원)에 달하는 비용을 내기 위해 마이클의 트럭을 팔았다. 마이클이 MRI 촬영을 마친 후에야 메디케이드는 그에게 필요한 수술 비용을 지불하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막내딸이 첫걸음을 떼던 그해 가을, 마이클은 지역 교육구에서 유지보수 및 관리 업무를 하는 일자리를 구해 약 3만4000달러(4700만 원)를 벌게 되었다. 건설업에서 벌던 것보다 훨씬 적은 돈이었지만 꾸준한 수입이 있었고 브리트니는 그 점을 더 선호했다. "이전에는 겨울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름 내내 저축해야 했어요." 그가 말했다. "적어도 여기서는 꾸준한 월급이 나오니까요."


요즘 아이비 가족은 마이클의 월급과 집 옆의 소박한 침실 2개짜리 집에서 나오는 연간 약 4200달러(580만 원)의 임대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들은 10년 전에 그 집을 사서 브리트니의 시누이에게 세를 주고 있다.


무언가 고장 나면 그들은 직접 고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옷은 중고 가게에서 산다. 셔츠는 1달러(1400원), 바지는 2~3달러(3000~4000원) 정도다. 브리트니가 아이들을 위해 새로 사는 물건은 신발, 속옷, 책가방 같은 것들뿐이다.


그는 현 상황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선물이었다.


"아이들의 아기 시절 모든 순간을 지켜볼 수 있어요." 그가 말했다. "딸이 무릎을 다쳤을 때 위로해 주고 항상 곁에 있어 줄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브리트니는 더 많은 사람이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남편이 젊은 나이에 집을 산 것이 행운이라고 느낀다. 그 이후로 집값은 급등했고 고용시장은 경직되고 있어서 그는 왜 어떤 사람들이 자신처럼 큰 가족은 고사하고 가정을 꾸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느끼는지 이해한다.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을 비난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힘든 일이니까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아요."


아이비 가족은 여전히 침실 2개짜리 집에서 산다. 쌍둥이가 방 하나를 쓰고 다른 방에서는 막내가 부부와 함께 자며, 아들들은 거실에 놓인 2층 침대를 사용한다. 마이클은 여러 차례 임금이 올라 현재 약 4만1000달러(5600만 원)를 벌지만 여전히 건설업에서 벌던 것보다는 적다.


현재는 첫째부터 넷째까지 모두 학교에 다닌다. 원격근무가 보편화되면서 한때 브리트니는 그런 일자리를 구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많다 보니, 하루에 네 번씩 아이들을 내려주거나 데리러 버스 정류장에 가야 하고, 버스가 늦을 때는 30분씩 그곳에서 기다리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막내는 2년 뒤에 유치원에 들어간다. 하지만 반일제 프로그램일 뿐이다.


그래도 막내가 1학년이 되면 브리트니는 다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인테리어 디자인 교육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이기를 바라지만 사실 어떤 일이든 하고 싶다.


그는 2028년부터 일자리를 찾아볼 계획이다.


1889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지. USA투데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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