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왜 이리 힘겨울까

기사이미지

2024.03.01 14:02

The Atlantic
icon 13min
kakao facebook twitter

한국의 출생률이 또다시 최저점을 경신했습니다. 육아에 대한 부담이 크다는 게 종종 지적되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지 않으면 한국의 육아 부담이 얼마나 큰지 알기 어렵습니다. 통계 수치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각 사회만의 특징들도 중요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미국에서 나고 자랐으며 결혼까지 했지만 남편의 직장 문제로 영국에 살고 있는 필자가 애틀랜틱 2024년 1월 5일에 기고한 이 글은 미국의 육아 현실을 읽으며 한국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볼 기회를 줍니다(한국의 교육열이 미국에 비해 그리 특이할 게 없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한 국가의 다음 세대 시민을 키우는 일은 국가를 비롯한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필자의 문제 의식에 공감할 독자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출생률 감소의 문제는 육아의 경제적 부담만으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선진적인 육아 정책 등으로 한때 유럽의 수범 사례였던 핀란드는 최근 다시 출생률 급감을 겪으면서 그 원인을 추적했는데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육아를 일종의 '제약'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게 주된 원인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파이낸셜타임스의 핀란드 인구학 전문가 인터뷰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출생률 문제에 대한 대책은 보다 넓은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몇 년 전 어느 날 아침, 큰 딸을 학교에 내려준 후 작은 딸의 수영 강습 시간까지 애매하게 뜬 시간을 때우려고 카페에 들렀다. 그곳에서 우연히 딸과 같은 반인 남자아이의 아버지를 만났다. 그 또한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있었는데 그와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그도 나처럼 배우자의 직장 때문에 영국에 따라온 경우였다. 그의 아내는 의사였고, 새로운 수술법을 배워 가려고 호주에서 온 것이다. 그는 고향의 해안가에 있는 자신의 큰 집으로 돌아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언젠가 미국으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가 물었다. 나는 물론 돌아갈 것이라고 대답했다. 적어도 계획은 그랬다.


그가 이어서 한 말은 당황스러웠다. 최근 그의 아내가 미국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내의 커리어에는 정말 좋겠지만, 아이들에게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했어요."


내가 어떻게 반응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뉴스에 나오는 것만큼 나쁘지는 않다고 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말과 무심한 말투는 잊히지 않는다.



나는 한평생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것에 대해 지극한 고마움만을 느꼈다. 높은 중위소득과 평균 이상으로 큰 집, 세계 최고의 대학까지, 미국은 가진 게 많다. 내가 영국 사람들에게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도대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런데 내가 아이가 있다고 하면 영국 사람들의 어조가 살짝 달라진다. 미국인 부모는 유럽에서 유명하다. 감정적이고, 신경질적이고, 자식을 과보호하고, 학업 성적에 목매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경제학 교수 마티아스 도프케Matthias Doepke가 쓴 표현을 빌리자면 "느긋함과 거리가 멀다." 미국인의 자녀 양육 기준이 유럽을 장악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유럽인도 있다. 하지만 내가 대화해 본 여러 부모들은 미국인 부모에게 동정심을 표했고, 측은하게 여기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에서 새로 부모가 되는 사람들이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하고, 미국에 만연한 총기 폭력에 경악하는 듯했다.


물론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훨씬 심각한 수준의 빈곤과 폭력, 불안정성을 경험한다. 이에 비추어 보면 다수의 미국인들은 정말 운이 좋다. 미국은 부유한 나라이고, 미국의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을 경감할 능력이 있다. 다만 미국은 아동을,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중요한 과업을 개인의 문제로 여긴다.


미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면 아이의 안전과 건강을 유지하고 아이를 잘 돌보는 것은 부모의 몫이다. 이러한 원칙이 확고한 방식으로 정부 정책을 형성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유급 육아휴직이 보장되지 않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38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국제 협력기구인 OECD와 비교했을 때 — 이들 중 대부분이 부유하다 — 미국은 아동 교육과 보육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직접 현금 급여direct cash benefit 지급에도 훨씬 적은 돈을 지출한다(팬데믹 초기에 단기간 동안 광범위한 실험을 해봤지만 결국 무산됐다). 법정 유급 휴가, 병가, 돌봄 휴직, 돌봄 제공자를 위한 연금 크레딧은 통상적으로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제공되지만 미국은 예외다.


나는 호주인 부모의 논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미국은 엄청난 기회의 땅이지만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은 아니란 것이다.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는 일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보장은 적은데 선진국에서 보기 힘든 상당 수준의 불안정 문제를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더 힘들다.




여자가 '모든 것을 해낸다'는 미국의 이상, 다시 말해 풀타임으로 일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나에게 언제나 버겁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대학원을 마친 뒤에는 아이가 크면 일을 늘리겠다는 생각에 파트타임 일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미국에서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보통 휴가가 제공되거나 두 자녀의 양육비를 충당할 만한 일자리가 아니다. 나는 2018년에 둘째 딸을 낳고 완전히 일을 그만뒀다. 남편이 좋은 건강보험이 지원되는 훌륭한 직장에 다니고 있었기에 크게 곤란해진 것은 아니었지만 노동 시장에서 입지를 전부 잃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첫 해에는 집에서 프리랜서 작가 경력을 시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그리고 2019년 말, 우리는 영국으로 이사했다.


영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유한 후기산업 국가들 중에서 학부모들에게 최고 수준의 지원을 제공하는 나라는 아니다. 영국인들은 영국의 지원 수준이 유럽과 미국의 중간 정도라고 말하며, 확실히 가족 정책 면에서는 이 말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대 39주의 유급 휴직을 포함하여 고용이 보장되는 휴직을 1년 채워 쓸 수 있고, 부모에게 현금 급여를 지급하고, 비과세 양육 기금이 있고, 유급 휴가와 병가를 쓸 수 있고, 보편적 의료가 보장되며, 유연한 업무 배정을 요청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미국보다 영국의 부모들에게 주어지는 지원이 훨씬 많다. 나는 비자 상태 때문에 일부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었지만 내 아이들을 포함한 모든 아이들은 3~4세부터 1년에 최소 570시간의 유아 교육이나 보육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영국 아동의 전일제 학교 진학은 대체로 미국의 유치원kindergarten보다 1년 일찍 이루어진다.


이러한 지원들 덕분에 나는 다시 프리랜서 일에 도전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매일 학교에 딸들을 데리러 갈 수 있는 직업을 갖겠다는 꿈을 이루었는데, 이는 상당 부분 영국에서 자녀 양육을 보조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이 글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내 처지가 훨씬 낫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아이 키우기가 버겁고 힘들 때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자녀 양육이 다르게—보다 안정감 있고 안전하게—느껴졌고, 시간이 상당히 지난 후에야 그 이유를 알았다. 아이들의 행복이 전적으로 나와 남편만의 책임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유급 육아휴직 같은 정책이 상징하는 바는 부모는 지원을 받을 자격이 있고, 한 국가의 차세대 시민을 키우는 일은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는 확신이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양육 책임을 감당할 의향이 있는 고용주를 찾아야 하는 부담을 부모들에게 전가한다면, 이는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문제'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미국 고등교육기관에서 일하는 디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해외에 사는 그와 남편의 부모형제들은 그가 미국에서 유급 출산휴가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디나는 휴직 경험을 솔직히 말할 수 있도록 성은 빼고 이름으로만 신원을 밝혀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일하던 학교에서는 유급 휴가를 제공하지 않았고 출산 당시 근무일수 1년을 채우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가족의료휴가법1(FMLA)에 따른 무급 휴가마저도 받지 못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러한 사례를 반복해서 접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임신 기간 중 직장을 옮기거나 파트타임으로 근무했던 이력 때문에 고용 보장 휴직 자격을 '전혀' 얻지 못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잘 겪지 않는 일이다.


디나가 출산할 즈음 적립된 유급 휴가는 3일에 불과했다. 그는 제왕절개 수술을 2020년 가을학기 마지막 주 금요일로 예약했다. 그렇게 해야 주말 동안 회복 후 신속히 복귀해서 채점을 하고 겨울방학 동안 수업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봄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출산 5주차가 된 그는—사실상 팬데믹 덕분에—제왕절개 수술의 통증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교직에 복귀하여 6시간 수업을 하면서 유축과 수유를 했다. 디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이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출산 예정일이 겨울방학과 맞닿아 있어 불행 중 다행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재택 수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했다.


내가 만난 또 다른 엄마, 패트리샤 그린은 장애인 서비스 회사에서 가정 건강 조무사home-health aide로 일하던 중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객 중 한 명이 이따금 난동을 부리며 그의 배를 때리는 바람에 그린은 다른 업체에서 새 일자리를 구했다. 패트리샤도 디나처럼 임신 중에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가족의료휴가법의 적용 대상이 되지 못했다. 설령 휴가를 쓸 자격이 되더라도 그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이를 믿고 맡길 사람이 없었는데도 출산 2주 후에 복직해야 했다. "복직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고,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계속해서 아이의 안전이 걱정될테니까요." 그린의 말이다.


일과 가족의 충돌은 자녀의 일생 동안 계속되고, 당연하게도 이로 인해 재정적으로 취약한 엄마들이 가장 큰 부담을 받는다. 수년 간 미국의 저소득층 엄마들을 연구한 하트퍼드대학교의 사회학자 아만다 프리먼Amanda Freeman은 자신이 조사한 여성들이 모두 직장인이었는데, 급여가 적은데다 복지는 거의 제공되지 않고 직장과 육아를 조율하는 데 필요한 유연성이 전혀 없는 파트타임 직장을 여러 개 병행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고용주가 예고없이 직원의 일정을 게시하고 직전에 이를 변경할 수도 있는 적시 일정 관리 2방식 때문에 아이 돌봄은 물론 아이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기가 어려워졌다. "어떨 때는 감당하기 힘든 보육비를 기껏 지불했더니 근무가 취소되기도 해요." 프리먼의 말이다. 프리먼이 인터뷰한 엄마들은 병가를 낼 수 있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아이들이 아플까봐—혹은 본인이 아플까봐—걱정하게 된다. 다시 말해 출근을 못한다고 직장에 연락하면, 돈도 못 벌고 일자리까지 잃을 가능성도 있다.


내가 만난 또 다른 엄마인 멘디 휴즈는 13년 넘게 월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여러 해 동안 고용주가 야간 근무만 시켰고 어떤 날은 자정까지 일해야 했기 때문에, 그는 대신 돌봐줄 사람을 못 구하면 열 살 아들을 데리고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멘디는 말했다. "일을 빠질 수는 없어요. 다음날 애는 일어나서 학교에 가야 하지요."


프리먼이 인터뷰한 여러 여성들은 특히 각종 자산조사형 사회부조means-tested social assistance에 의지했다. 이런 형태의 지원은 짧고 유동적인 간격으로 지급되고 엄격한 소득 제한과 직업 요건이 적용된다. 지원을 계속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수입이나 일 관련 활동에 대한 상세 정보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 해서 오히려 일과 가족의 충돌에 한 축을 보태고 있다. 프리먼은 일, 자녀 양육, 공공 복지 혜택 찾아 헤매기라는 이 삼중고가 부모에 대한 공적 지원이 꼭 필요하지 않다는 미국적 관점의 직접적인 부작용이라고 주장했다. 보편적인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것이다.


미국에서 실직이란 수입을 잃고 그 돈으로 지불하는 보육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실상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 건강보험, 회사의 퇴직 적금, 어쩌면 사회보장 혜택까지 잃을지도 모른다. 근로소득세액공제, 자녀세액공제 환급가능분, 그리고 때에 따라 빈곤가정일시부조제도Temporary Assistance for Needy Families까지, 우리가 흔히 '복지'라고 생각하는 사회안전망의 대부분은 직장이 있어야 보장된다. 수입이 거의 없는 이들에게 남아 있는 지원은 희박하고 일정하지도 않으며 접근하기(그리고 유지하기)조차 어렵다. 미국의 가정이 이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일과 자녀 양육을 모두 놓치지 않을 방법을 찾지 못하면, 많은 것을 잃게 될 뿐 아니라 크나큰 시련을 겪게 된다.


실제로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는다. 미국인 열 명 중 한 명 이상은 의료 관련 부채가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들 중 상당수는 산후 여성이며, 이들은 열 명 중 한 명 이상의 비율로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다. 미국 아동 전체의 5% 정도는 건강보험이 없으며, 3분의1이 보장이 충분하지 않은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추정치도 있다. 영국의 의료 시스템도 문제가 있지만, 보편적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영국과 다른 나라의 부모들은 의료비 걱정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지 않아도 된다.


미국인 가족은 다른 대다수 OECD 국가의 가족들보다 빈곤하게 살 가능성도 높다.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사회사업을 연구하는 제인 발트포겔Jane Waldfogel 교수는 말한다. "빈곤 아동이 많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대가가 가혹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한 예로, 미국에서 빈곤층으로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가난하게 살 가능성이 덴마크나 독일보다 네 배 높고, 영국이나 호주의 두 배이다.




미국과 비슷한 발전 수준을 보이는 여러 국가에서는 대부분 존재하지 않지만 미국의 부모들이 걱정해야 할 위험 요소가 한 가지 더 있으니, 바로 총기이다. 한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아이들은 다른 부유한 국가의 아이들보다 태어나서부터 18세까지 사망할 확률이 2배에 달하며, 사망 원인 1위는 총기 폭력이다. 미국 아동청소년 사망의 20%가 총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미국과 규모가 비슷하고 부유한 다른 국가에서는 총기로 인한 사망률 평균이 2% 미만이다. 그러나 이 충격적인 통계마저도 총이 유년기를 일그러뜨리고 부모 역할의 수행을 어렵게 만드는 정도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한다.


미국에 만연한 총기 폭력 때문에 2019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케일라 페리는 절대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에서 나고 자란 페리는 2002년 워싱턴DC 전역에서 저격범들이 3주 동안 사람들을 총으로 쏜 사건이 발생하면서 총기 폭력을 처음으로 접했다. 첫 번째 희생자는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였다. 그는 프랑스어 시간에 같은 반 친구가 건네준 쪽지로 그 소식을 들었고, 몇 분 후 학교는 봉쇄되었다. 그는 그 달에는 학교 생활의 모든 것이 이상했다고 소회한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에도 밖에 나가지 못했고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도 없었다. 페리가 총기 폭력의 직접적인 피해자이거나 생존자였던 적은 없지만, 총기 폭력은 그의 세계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는 친구들과 걸어서 하교하던 중 총소리 같은 걸 들었던 순간을 떠올렸다. "집으로 가는 내내 지그재그로 달렸어요. 총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으니까요. 돌아보면 그 나이에 그런 공포를 갖는다는 게 참 슬프지 않나요?"


오늘날 미국인들의 어린 시절을 형성하는 것은 잊히지 않는 총격에 대한 공포다. 학교 내 총격 사건은 지난 수십 년 간 증가해 왔다. 한 집계에 따르면 2022년에 발생한 총격 사건은 총 51건으로, 40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학생 대부분이 학교 총격범을 마주칠 일이 없다고 할지라도, 만연한 총기의 위협과 모든 대응조치—대응훈련, 금속 탐지기, 방탄 백팩—는 학교가 안전하지 않은 곳이라는 인식을 조성한다. 자기 아이가 총격범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끊임없는 두려움 때문에 학부모의 마음 한편에는 항상 불안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학교 내 총격 사건과 학교를 중심으로 구축된 방어 장치는 총기 폭력이 가장 가시적으로 미국인의 어린 시절을 일그러뜨리는 증거일 뿐이다. 이런 건 총기 사망이 만들어낸 작은 파편에 불과하다. 페리가 대학교 1학년 시절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왔을 때, 그의 이웃이 자기 집 진입로에서 무장강도의 총에 맞은 일이 있었다. 사망자는 없었고 페리는 휘몰아치는 총기 폭력의 위협을 평범한 삶의 일부로 거의 받아들였다. "자동차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비행기 추락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 총에 맞을 수도 있지요... 그게 평범한 삶이에요."


페리는 미국을 떠난 후에야 세계 다른 곳에서는 총기 폭력의 일상화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했고, 총기 폭력이 없는 곳에서 성장하면 어떨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아직 아이가 없지만 아이를 갖고 싶기에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언젠가 태어날 자기 아이들이 총기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라에서 살기를 바란다.


나는 팬데믹 기간 1년 동안 미국 밖에서 미국인 독자를 위해 매주 양육 관련 조언을 담은 요약 기사를 쓰는 다소 묘한 입장에 처해 있었다. 유밸디 총기 난사 사건 3이후 미국의 학부모에게 데이터 기반으로 아이를 보호하는 방법을 조언할 목적으로 발행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기사의 저자는 총기 폭력으로 사망하는 아동의 절대적 다수가 학교에서 살해된 것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지적했다. 미성년자 총기 사망 사건의 약 3분의1이 자살이다. 13세 미만 아동이 총기로 인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는 사건의 약 절반이 우발적 사고다.


광범위한 총기 소유만큼 미국의 개인주의를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면서 이 개인주의가 필연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부모에게 전가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예시도 없다. 어떤 비극적 사건도 미국인들이 소유한 총기를 버리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대신 미국은 부모들에게 총기 소유자로부터 자녀를 보호하는 동시에 아이가 절대 우연이라도 총기를 접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과제를 떠안긴다.




이 모든 맥락이 미국인 부모들이 극성스러운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다수의 국가에서 양육 강도는 점점 높아지고 아동기의 자유도는 점점 낮아진다. 그러나 경제학 교수 마티아스 도프케에 따르면 모든 것을 바치는 미국식 자녀 양육의 특성은 다른 나라의 자녀 양육에 비해 극단적이다. 한 예로 미국의 프리스쿨preschool은 훨씬 학업을 중시한다. (작년에 여름 캠프를 검색하다가 우연히 아이들이 코딩을 배울 수 있는 '미국식' 캠프를 발견한 적이 있다.) 북유럽 등지에서는 조기 보육 환경이 자연 속에서 노는 활동에 더 집중되어 있다. "스톡홀름에 살면서 미국식으로 네 살 아이에게 숫자와 글자를 가르치고 바이올린 수업에 등록하면 스웨덴 친구들이 그건 아동학대나 다름없다고 말할 겁니다." 도프케의 말이다.


이렇게 간섭이 심한 양육 방식은 상류층의 독특한 방식으로 시작되었겠지만 지금은 미국 부모 다수의 기준—적어도 염원—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자녀에게 가하는 공부에 대한 압박뿐 아니라 부모들이 엄청난 열의를 가지고 양육에 관한 조언을 듣고, 아이들을 높은 강도로 감시하는 모습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두가 이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을 보유한 것은 아니다. 아만다 프리먼은 저소득 엄마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모두가 '집중 양육4'의 규범을 알고 있고 대부분이 필사적으로 이 기준을 따라하고 싶어하며, 그렇지 못함을 부끄러워한다고 설명했다.


노스웨스턴대학교의 경제학자 한스 슈반트Hannes Schwandt에 따르면 그가 예전에 교단에 섰던 스위스의 여러 지역에서는 보통 아이가 걸어서 등교할 때 부모가 동반하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고 한다. 반면 미국의 아이들은 마치 '전투 지역'에 사는 듯 양육되는 것 같았다고 한다. 페리에 따르면 싱가포르에서도 아이들이 학업에 매우 열중한다는 점은 미국과 비슷했지만(많은 아이들이 방과후 수업을 듣는다), 동시에 어린 시절에 엄청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서 혼자 지하철을 타거나 쇼핑몰에 가기도 한다.


자유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나라의 아이들이 거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개인의 책임과 자립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없다. '기울어진 교육: 부모의 합리적 선택은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시키는가Love, Money, and Parenting: How Economics Explains the Way We Raise Our Kids'의 저자 마티아스 도프케와 공저자 파브리지오 질리보티Fabrizio Zilibotti는 부유한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양육 방식의 차이가 상당 부분 경제적인 요인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 부모들이 (독립성이나 상상력 같은 가치에 비해) 근면성을 강조하는 것도 놀라울 정도로 그 나라의 경제적 불평등과 맥을 같이 한다. 중국인 부모 열 명 중 아홉 명, 미국인 부모의 세 명 중 두 명이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제일 중요한 가치로 근면성을 꼽는다. 반면 같은 응답을 한 스웨덴 부모의 비율은 11%이다. 이러한 결과는 많은 점을 시사한다. 어떤 곳에서든 부모는 자녀가 성공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 하지만, 도프케의 말을 빌리면 "실제로는 경제적 환경이 성공의 의미를 좌우한다."


학교 성적도 잘 받고 자유시간을 대학 지원서에 도움이 될 과외 활동으로 채우라고 강요하면 아이가 힘들어 하겠지만, 당신이 미국에 산다면 이는 훨씬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자유방임형 양육이 가진 물리적, 재정적 위험은 비슷한 수준으로 부유한 다수의 국가보다 미국에서 훨씬 높다.


이 점 때문에 나는 미국으로 돌아갈지 따져 볼 때마다 딜레마에 빠진다. 내가 미국에 돌아가서도 '미국인' 부모가 되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최선의 환경이 갖추어져 있어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항상 불확실하고 벅차다. 그러나 미국에서 부모가 되기로 했다면,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서 살았을 때는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아이의 안전과 가족의 재정안정성에 닥치는 위협에 대처해야 한다. 이 스트레스 요인에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다. 이것도 과정의 일부니까.


여전히 남편과 나는 언젠가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있다. 가족과 가까운 곳에 살고 싶기도 하고, 우리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돌봐드려야 할 테니 결국에는 그래야 할 것이다. 우리 부부는 늘 아이 보기를 도와줄 가족과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면 아이 키우기가 편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친척의 도움이 내 나라가 내 가족을 돕지 않는다는 느낌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족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은 서글프지만 떨쳐지지 않는다.



스테파니 머레이는 영국 브리스톨에 거주하는 애틀랜틱의 기고가로 과거 공공정책 연구원으로 일했다.



1857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문예 매거진. 진보적 성향으로 롱리드 피처, 인터뷰 기사로 유명합니다. 본래 월간지였으나 현재는 1년에 10회 발행하고 있습니다.
 
clos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