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 후에 오는 것들: 시를 통한 소통은 가능한가?

티아나 클라크의 시집 '그을린 땅'(2025) 표지. /사진제공=Simon & Schuster

모임에서 이야기를 유난히 많이 한 다음 집에 돌아오면, 괜히 마음이 편치 않을 때가 있다. 내가 했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가 닿았을지를 이리저리 상상하다 보면, 혹시라도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나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은 없었을지 걱정이 스쳐 지나간다. 사적인 자리에서의 대화조차 이렇게 소통의 문제를 예민하게 만들곤 하는데, 글을 쓰고 난 뒤 독자들의 반응을 짐작해 보는 일은 그보다 한층 더 복잡하고 어려운 심리적 부담을 동반한다. 일단 글쓴이의 손을 떠난 글은 타인의 다양한 해석에 노출되고, 그 해석의 여러 갈래 중에는 처음 글을 쓰며 염두에 두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가는 것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글쓰기란 한편으로는 나를 표현하고 독자의 이해를 기대하는 과정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예상치 못한 오해나 비난까지도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전제를 포함한 행위이기도 하다.


특히 '시'라는 장르는 개인적인 세계를 가장 밀도 높게 드러내는 형식이기에, 시인들이 독자의 반응에 대해 느끼는 불안은 더욱 증폭되기 쉽다. 돌이켜 보면 18–19세기 낭만주의 시기 이후로 시인들은 줄곧 독자와의 소통이 과연 가능한지를 끝없이 되물어 왔고,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를 쓰는 사람들의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시집 『그을린 땅』(Scorched Earth)으로 2025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에 오른 티아나 클라크(Tiana Clark)는 「낭독이 끝난 뒤」("After the Reading")라는 산문시에서, 시 낭송을 마친 이후에 벌어지는 장면들을 생생하게 포착한다. 이 시에 등장하는 다소 과장되고 희화화된 질문들과 반응들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독자와의 소통에 대해 품었던 기대, 그리고 그 기대가 어긋날 때 발생하는 불편함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가 반복해서 불러오는 "낭독이 끝난 뒤"라는 시간은 시가 마무리된 다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소통의 문제를 우리가 구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티아나 클라크 - 낭독이 끝난 뒤 (번역: 조희정)

누군가는 내게 남편이 나를 떠난 건지, 아니면 내가 그를 떠난 건지 물었다. 낭독이 끝난 뒤, 누군가는 화해할 가능성은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잡아 찢은 돼지고기 샌드위치를 입에 쑤셔 넣는 사이, 캐롤라이나 골드 바비큐 소스가 네온빛 노란 용암처럼 양옆으로 흘러내리는 그 와중에. 낭독이 끝난 뒤, 누군가는 나에게 아직도 신에게 기도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톡 쏘는 다이어트 콜라를 한 모금 마셔서 얼음 조각들이 내 윗입술 주위에 모여 부드럽게 부딪히며 젖은 콧수염 같은 자국을 남기던 때에. 낭독이 끝난 뒤, 누군가는 자기 역시 이혼했다고 말하곤 내가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쁘게 사라졌다. 낭독이 끝난 뒤, 한 여자는 내가 마치 산산이 부서지기라도 한 것처럼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가 크루디테1 에 랜치 드레싱을 듬뿍 찍어서 집어 드는 동안에. 낭독이 끝난 뒤, 한 백인 여성이 내 "분노의 시들"에 대해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그 시들이 나의 기쁨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고, 그러자 그녀는 내 팔뚝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건 나의 분노에 대한 거였어요." 고집스럽게. 낭독이 끝난 뒤, 누군가는 울었다고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다정한 말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뒷풀이가 끝난 후, 나는 집에 돌아와 치타 무늬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머리를 감싸고 이를 닦았다.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SF 드라마를 틀었다. 그 드라마 속 배우들은 수학과 페로몬을 이용해 외계인과 대화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나는 그 배우 중 한 명의 키를 검색했다. 그는 키가 6피트 4인치 약 193cm였다. 나는 우주에서 사람들이 최초의 접촉을 하면서 소통하려고 애쓰는 그 드라마를 보다 잠이 들었고, 은하계 사이의 소음이 벌떼처럼 삑삑거리며 방 안을 맴돌았다.




저자 티아나 클라크. /사진=Adrianne Mathiowetz Photography


영미권에서 시는 글로 읽히는 대상이기 이전에 귀로 듣는 언어로 받아들여지며, 학교나 서점, 도서관 등 다양한 장소에서 시인을 초청한 낭독회가 일상적으로 열린다. 낭독이 끝난 뒤에는 대개 시인과 독자 사이에서 작품에 관한 질문과 해석이 오가고, 이 과정에서 공적인 언어와 사적인 언어가 조심스럽게 맞닿는다. 이 시는 이런 낭독회 이후의 시간을 다루지만, 그 자리에서 오가는 말들이 시에 대한 생산적인 소통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번번이 텍스트를 비껴간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포착한다. 독자들은 시의 언어와 이미지에 대해 묻기보다는, 시 뒤에 있을 것이라 짐작되는 시인의 사적인 삶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결혼이 파탄에 이른 과정은 무엇이었는지, 화해의 가능성은 남아 있는지, 신앙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지 같은 질문들은 모두 시 바깥의 이야기이며, 그 관심은 철저히 개인사에 머물 뿐이다.


이 시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낭독이 끝난 뒤"라는 구절은, 소통이 비로소 시작되어야 할 시간이 끝내 실패로 귀결되는 순간을 끈질기게 호출하는 후렴처럼 작동한다. 낭독을 마친 뒤에야 찾아올 법한 안도감이나, 긴장을 풀고 독자들과 편안하게 공감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대신, 진솔하고 의미 있는 대화가 계속 어긋나고 마는 좌절의 리듬이 이 반복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좌절감은 시 전반부를 채우는 음식의 과잉된 디테일을 통해 더욱 또렷해진다. 포크 샌드위치에서 "용암처럼 흘러내리는" "네온빛의 노란 BBQ 소스", "얼음 조각들"이 남긴 "젖은 콧수염 같은 자국", "랜치 드레싱을 듬뿍 찍은" 생 야채의 질감은 단순한 배경 묘사를 넘어, 시인이 실제로 살아내는 세계가 얼마나 물질적으로 구체적이며 감각적으로 높은 밀도를 지니고 있는지를 과시하듯 드러낸다. 그에 비해 청중의 말들은 "이혼", "화해", "기도" 같은 추상적인 범주를 맴돌 뿐, 삶의 구체적인 표면으로 내려오지 못한다. 촘촘한 감각의 현실과 납작한 개념적 언어가 나란히 놓이면서, 이 선명한 대비는 이 시가 포착하는 소통의 실패를 그 어떤 설명보다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이 시에서 "분노의 시들"을 둘러싼 장면은, 소통을 둘러싼 불편함을 넘어 노골적인 불쾌감을 자아내는 핵심적인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시에 대한 해석은 물론 독자의 권리이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독자가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한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해석이 시인에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분노의 시들"을 인상 깊게 읽었다는 말을 건넨 뒤 시인이 자신의 시가 "기쁨"에 관한 것이라고 설명하자, 한 백인 여성 독자는 이를 즉각 부정하며 "아니에요, 그건 나의 분노에 대한 거였어요"라고 말한다. 이는 독자로서의 경험을 나누는 발화라기보다, 시인의 해명을 무효화하고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는 선언에 가깝다. 곧이어 등장하는 "고집스럽게"라는 표현이 암시하듯, 이 장면은 시를 매개로 한 만남이 성립되기보다는 오히려 독자의 견해가 권력이 되어 시인을 침묵시키는 과정을 보여 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가 공감 자체의 가능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역시 이혼했다"고 말하자마자 급히 자리를 떠나는 한 여성에 대해, 시인은 그 행동을 "아주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울었다"고 말하거나 "다정한 말"을 건네는 독자들도 있어서, 시인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이렇게 공감은 때로 실패하지 않고 두 사람 사이를 잇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법도 한데, 안타깝게도 이 시 속의 많은 독자들은 그 지점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시를 들으며 분명 어떤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지만, 그 감정을 끝까지 감당하고 정리된 언어로 건네기에는 주저함이 앞서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은 떠나 버리고, 의미 있는 대화는 시작되지 못한 채 소통은 언제나 문턱에서 멈춘다.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SF 드라마는 이러한 소통의 어려움을 가볍고도 흥미로운 방식으로 반사하는 듯하다. 난생 처음 만난 외계인과 "수학과 페로몬"으로 소통하려는 시도는 인간에게 가장 거대한 소통의 판타지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실패하기 쉬운 상황을 상징한다. 시인이 "낭독이 끝난 뒤" 독자들과 나눈 대화는 마치 외계인과 의미를 교환하려 애쓰는 장면만큼이나 허망한 시도로 느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이러한 좌절을 무겁게 끌어안은 채 마무리되지 않는다. 대신,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시인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이를 닦고, 드라마를 보다가 배우의 키를 검색하고, 이내 잠에 드는 장면들이 차례로 이어지면서, 한 사람의 평범한 저녁이 담담히, 그리고 생생하게 펼쳐져 있다. 아마도 이처럼 구체적인 일상이 시들 속에 이미 고스란히 담겨 있었음에도, 낭독회에서 그것을 삶의 감각으로까지 받아들이지 못했던 독자들과의 소통은 끝내 실패로 남았을 것이다. 그 기억은 SF 드라마 속에서 외계인과 소통하려 할 때처럼, 또렷한 의미에 도달하지 못한 채 요란한 소음만 남기고 흩어져 간다.


이런 허무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완전히 냉소로 기울지 않는 이유는 소통이 실패한 이후에도 시가 여전히 쓰이고 읽힌다는 사실 자체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낭독이 끝난 뒤"에 남는 것은 오해와 침묵, 어색한 질문들뿐이지만, 그 모든 불편함은 결국 다시 언어로 돌아와 한 편의 시로 구성된다. 어쩌면 이 시가 묻고 있는 것은 시를 통해 완전한 이해나 공감에 도달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소통에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말을 건넬 수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이 시는 소통의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탐색하기보다는 소통이 언제나 어긋난 채로 남을 수밖에 없는 조건을 정직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그 어긋남을 견디며 독자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일, 그것이야말로 시인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과업일 것이다.

원문: After the Reading

someone asked me if my husband left me, or if I left him. After the reading, someone asked me if there was a chance for reconciliation as I shoved a pulled pork sandwich in my mouth with Carolina Gold BBQ sauce oozing out the sides like neon yellow lava. After the reading, someone asked me if I still pray to God as I sipped a fizzy Diet Coke and the ice cubes huddled and softly clinked around my upper lip leaving a wet mustache. After the reading, someone said they had been divorced too and then scurried away in a way that I completely understood. After the reading, a woman told me I was worthy as if I was shattered while I picked up crudités with a copious dollop of ranch dressing. After the reading, a white woman thanked me for my "angry poems." I told her they were about my joy, and then she touched my forearm and said, "No, they were about my rage." Insisting. After the reading, someone said they cried, and another gave me a kind word. Thank you. After the after, I went home and changed into my cheetah print pajamas. I wrapped my hair and brushed my teeth. I got in bed and played a sci-fi show on my laptop. The actors on the show were trying to find a way to talk to aliens by using math and pheromones. I googled the height of one of the actors. He is 6' 4". I fell asleep while watching the show about the people in space trying to communicate in first contact, intergalactic noises beeped and swirled around the room like bees.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