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압도하는 AI 인재를 양성하는 중국의 엘리트 교육 시스템

중국의 치열한 고등학교 인재 양성 과정은 과학 및 테크 분야의 선두 주자들을 배출해왔다

/그래픽=PADO (생성AI 사용)

중국식 교육 방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지난 1월 31일 자 파이낸셜타임스(FT) 매거진의 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과거(科擧) 제도를 통해 관료를 선발해 온 중국의 전통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교육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정작 우리는 이러한 주입식 학습이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우려 속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만, 이 기사는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기사는 중국이 이 전통적 교육 방식을 고도화하여 수많은 과학기술 인재를 배출했고, 최근 '딥시크(DeepSeek) 쇼크'가 증명하듯 단기간에 미국의 턱밑까지 추격할 수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실제 중국 대학과 연구소의 약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최상위권 논문 생산량에서 중국은 이미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합친 규모와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이는 응용과학 분야에 국한된 성과이며, 기초과학(순수과학) 역량은 여전히 서구권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외신들의 냉정한 평가이기도 합니다.


과제는 우리 또한 중국식 '영재 양성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입니다.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성적이 진정한 영재성을 담보하는지, 설령 인재를 길러낸들 우리 경제 시스템이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무엇보다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뉴턴이나 진화론을 창시한 다윈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결코 정형화된 시험 공부로 탄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정한 기술 패권은 결국 기초과학에서 판가름 나기 때문입니다. AI를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개량하는 것은 응용과학의 영역이지만, AI의 개념 자체를 창조하는 것은 기초과학의 몫입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현행 교육 시스템이 서구식이나 중국식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 어느 쪽의 장점도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중국의 '영재 육성론'이 그들의 기술 굴기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FT 기사를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다만, 기사의 필자가 중국 영재 프로그램의 수혜자라는 점을 감안하고 기사를 읽으신다면 더욱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되실 것입니다.

약 3년 전, 베이징의 한 제약회사 관리자인 스테이시 탕은 이상한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알 수 없는 유선 전화번호로 걸려온 목소리는 그에게 15세 아들을 시내 명문 고등학교 중 한 곳의 '영재반' 자격 시험에 보내라고 했다.


때는 베이징의 코로나19 봉쇄가 절정에 달했던 2022년 11월이었다. 학교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대면 접촉은 권장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재반 자격 시험 환경은 기이했다. 아이가 승합차 안에서 대학 수준의 수학 문제를 푸는 한 시간 동안 승합차는 베이징의 거리를 달리는 것이었다.


어떤 부모들은 그런 상황에 주저했을지도 모르지만 탕은 아니었다. "다른 나라였다면 즉시 유괴 아니면 그냥 미친 소리라고 의심했을 거예요." 탕은 스타벅스 라떼의 김 너머로 나를 보며 씨익 웃으며 말했다. "대신 저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아들을 바로 보냈어요. 저는 이것이 중국 최고의 교육 자원을 얻을 수 있는 황금 티켓이라는 걸 이해했죠."


탕의 아들은 매년 전국 상위권 고등학교에서 운영하는 과학 중심의 인재 양성 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선발되는 약 10만 명의 재능 있는 중국 십대 중 한 명이었다. '실험반' 또는 '경시반'이라고도 불리는 영재반은 재능 있는 학생들이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컴퓨터과학 분야의 국제대회에 참가하도록 지도한다. 탕 본인도 거의 30년 전 고향인 중국 남서부의 청두에서 영재의 길을 걸었다. 그 덕분에 그는 베이징으로 이주하여 명문 베이징대학에서 공부하고 고임금 직업을 확보할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영재반은 중국 과학, 테크 분야의 선두 주자들을 배출해왔다. 특히 인공지능(AI), 로봇공학,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 현재 미국의 기술 패권에 도전하는 기업들의 발전에 이들이 얼마나 필수적이었는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틱톡의 모회사인 바이트댄스의 창업자와 강력한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의 핵심 개발자들도 영재반 출신이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와 핀둬둬(PDD, 테무의 모회사)의 두 리더 모두 영재반 출신이며, 배달 '슈퍼 앱' 메이투안을 창업한 억만장자도 마찬가지다. 현재 엔비디아의 주요 중국 경쟁사 중 하나인 칩 제조업체 캠브리콘을 설립한 두 형제도 영재반에 있었다. 딥시크와 알리바바의 큐원Qwen에서 선도적인 대형언어모델을 개발한 핵심 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작년 말 텐센트가 오픈AI에서 영입한 저명한 신임 수석과학자는 말할 것도 없다. 명단은 계속 이어진다.


중국의 영재반은 서구의 인재 양성 과정과 중요한 면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이 시스템은 규모 면에서 다른 나라의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둘째, 국가 주도적이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매년 약 500만 명의 과학, 기술, 공학, 수학 즉 'STEM' 전공자를 배출하는 반면 미국은 약 50만 명에 그친다.


이 졸업생 중 수만 명은 영재반 학생들로 16~18세 사이에 정규 수업에서 벗어나 집중적인 학습 기간을 거친다. 다른 학생들이 중국의 두려운 대입 시험인 '가오카오'를 위해 벼락치기 공부를 하는 동안 영재의 길을 걷는 학생들은 화려한 국제대회에서의 성적에 따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명문대에 입학하며 그런 운명을 완전히 피할 기회를 갖는다. 최고의 학생들은 칭화대학교와 상하이교통대학교의 엘리트 컴퓨터 과학 프로그램과 같은 중국 최고 대학의 고급 인재 양성 계획으로 계속 나아간다.


엔비디아의 대만계 미국인 최고경영자(CEO)인 젠슨 황이 지난해 중국 AI 연구원들을 '세계적 수준'이라고 칭했을 때, 그는 아마도 딥시크와 화웨이 같은 국가적 테크 강자들을 구축하고 있는 영재반 졸업생들과 국제적인 AI 기업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앤스로픽이나 오픈AI, 구글 딥마인드의 복도를 오가다 보면 그곳에 있는 수많은 AI 연구자들이 중국 출신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황은 작년 5월 말했다. "그들은 비범하고, 따라서 그들이 비범한 작업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죠."


1년 전,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타국의 경쟁사들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고성능의 대형언어모델 R1을 출시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을 때, 많은 서구 전문가들은 어떻게 작은 중국 연구팀이 미국의 AI 패권에 도전할 위치에 있을 수 있는지 의아해했다. 영재반이 그 해답의 큰 부분이다.




2024년 21세의 나이로 딥시크에서 인턴십을 시작했을 때, 왕즈한은 자신이 곧 미국의 AI 지배력을 뒤흔들 팀에 합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당시 실리콘밸리와 워싱턴DC의 지배적인 담론은 미국의 수출통제가 중국의 AI 발전을 성공적으로 병목 현상에 빠뜨리고 있으며, 중국이 미국보다 1~2년 뒤처져 있다는 것이었다. 중국의 AI 기업들은 오픈AI와 메타가 출시한 모델을 단순히 복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왕은 몇 달 후 스푸트니크 모멘트처럼 회사를 유명하게 만들 R1 모델의 기반이 된 딥시크의 V2 모델을 작업했다. 딥시크는 많은 미국 경쟁사들을 제치고, 다른 나라의 경쟁사들보다 훨씬 적은 고급 칩을 사용하여 세계적 수준의 추론 모델을 생산했다. 오픈AI의 모델은 비공개로 유지된 반면, 딥시크는 전체 개발 과정을 공개했고 R1은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많은 기존 중국 테크 스타트업들과 달리, 딥시크의 팀은 거의 전적으로 국내 인재로 구성되었다. 은둔형의 인물로 딥시크를 창업한 량원펑은 특히 자신의 국내 인재 풀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다. "자체적으로 최고의 인재를 키워내고 싶어요.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항상 추격자에 머물게 될 거예요." 량은 2024년 몇 안 되는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딥시크에서 일하는 것은 왕에게 짜릿한 시간이었다. "핵심성과지표(KPI)도 없고, 위계질서도 없고, 등 뒤에서 지켜보는 사람도 없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할 수 있는 끝없는 자원이 있었어요." 왕은 화상통화로 나에게 말했다. 그는 100명 이상으로 구성된 팀 소속이었는데 팀원 거의 모두가 중국 전역의 영재반 출신이었다. "제 교육 배경은 그들 중에서 가장 덜 화려한 편이었어요." 그의 팀 동료들은 대부분 중국의 상위 2개 대학인 칭화대와 베이징대, 그리고 량원펑의 모교인 저장대 출신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적어도 하나의 주요 국제 과학 대회 참가자이자 메달리스트였다.


왕은 우한의 최상위 고등학교인 화중사범대학 제1부속중학교의 영재반에 들어갔다. 중국 중부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로 손꼽히는 우한은 입시 경쟁이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다. "제가 성장하면서 받은 교육은 극도로 힘들었지만 압박과 치열한 경쟁이 최고의 학습을 이끌어내요." 그는 말했다. "그 과정을 겪고 나면 세상에 감당하지 못할 도전은 없다고 느끼게 되죠."


역사를 좋아하고 고교 대표로 베이징에서 열린 모의 유엔 토론에 나갔던 왕은 많은 급우들과 달리 과학에만 집중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이후 AI 연구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중국 점술에 흔히 사용되는 풍수와 같은 분야에서 딥시크가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공개 데이터 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인문학 관련 지식을 모델에 훈련시키기 위해 '백효생百曉生'(만물박사)이라 불리는 인간 전문가들을 활용한 것이다. 딥시크가 이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지만 일각에서는 인간 전문가 활용이 해당 분야에서 딥시크의 모델 성능이 경쟁사보다 훨씬 뛰어난 이유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왕은 지난해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딥시크를 떠났다. 그는 세상을 보고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그는 학업을 마친 후 미국에 남을지 아니면 귀국할지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그는 미국 비자 신청이 거부된 몇몇 중국인 박사 과정생들을 알고 있다. "이곳 과학 전공 박사 과정의 약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이 이제 불확실성 때문에 귀국을 고려하고 있어요.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한다면 그 압박은 너무 커요." 그는 말했다.


"게다가 중국은 정말 잘하고 있어요."




중국의 하향식 과학 교육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8년 마오쩌둥 주석은 군사력과 중공업에서 서구 열강과 경쟁하는 것을 목표로 대약진 운동을 시작했다. 이 계획은 대규모 기아와 수백만 명의 사망자를 포함한 재앙을 낳았다. 그러나 그 후 수십 년 동안 과학이 국가발전의 핵심이라는 메시지는 교실과 가정을 통해 계속 울려 퍼졌다.


이는 수 세기 동안 기술이나 과학 훈련보다 인문학을 우선시했던 사회에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까지 많은 지역 교육청 벽에는 "인재를 빠르고 일찍 배출하라"는 직설적인 슬로건이 걸려 있었다. 국민 교육 수준을 높이기 위해 9년 의무 교육과 무료에 가까운 교육 계획이 시행되었다. 한편 전국의 몇몇 최고 학교에서는 가장 유망한 젊은 인재들을 양성하고 중국의 인재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영재반이 생겨났다.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는 고등학생들을 위한 일련의 연례 대회로 각각 자체 조직위원회가 운영하고 매년 다른 국가에서 개최된다. 참가국들은 금메달 획득을 바라며 국가 선발 시험을 치른 후 최고의 학생들로 구성된 팀을 보낸다. 수학 올림피아드는 1959년에 처음 도입되었다. 이후 물리, 화학, 컴퓨터 과학, 생물 등 다른 대회가 추가되었다.


1985년, 중국 학생 두 명이 핀란드 요우차에서 열린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 처음으로 참가했다. 그들은 동메달 하나를 가져왔다. 이는 중국 학생들이 시상대를 장악했던 러시아인 및 미국인들과 나란히 경쟁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정표였다. 이듬해 중국은 바르샤바에서 열린 올림피아드에 6명으로 구성된 전체 팀을 보냈다. 그들은 동메달 3개를 가지고 돌아왔고 이는 그들에게 전국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소수의 최고 고등학교들은 용기를 얻어 당시 극히 부족했던 자원을 할당하여, 초재능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수업을 만들고, 특히 올림피아드에 참가하여 중국에 메달을 가져오도록 그들을 양성했다. 최고의 운동선수를 발굴하고 훈련시키기 위해 실행된 전략과 유사했다.


영재반은 빠르게 수천 개의 학교에서 표준적인 특징이 되었고, 그 결과는 인상적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 팀들은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휩쓸기 시작했고 경쟁자들을 훨씬 능가했다. 2025년에 중국 국가대표팀은 올림피아드에 총 23명의 참가자를 보냈고 그 중 22명이 금메달을 가지고 돌아왔다.


2000년대부터 대입 제도가 개혁되어, 대학들이 가오카오 결과에만 의존하지 않고 입학 정원을 배정하는 데 더 많은 유연성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말 학생들을 위한 전국 대회가 마련되었다. 전국 시험에서 최고 상을 받은 학생들은 중국의 아이비리그에 해당하는 '985 공정' 대학 39곳 중 한 곳에 가오카오 점수 없이 입학할 수 있었다.


가오카오를 건너뛸 수 있는 기회는 학생들이 영재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강력한 동기가 되었다. 가오카오 필수 과목인 중국어, 영어, 수학을 3년간 공부하고, 물리, 화학, 생물, 역사, 지리, 정치 중 3과목을 더 선택하여 공부하는 게 중국 고등학생들의 전통적인 경로다. 6개 과목 모두에 대한 시험은 3학년 말에 치러진다. 반면에 영재반 학생들은 '경시 과목'에 집중한다. 예를 들어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에 참가하는 학생은 전국 시험에 응시할 만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3년간의 고등학교 물리 과정을 마칠 뿐만 아니라 대학 수준 과정의 절반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경시에 모든 것을 건 학생들은 다른 것은 거의 공부하지 않을 수도 있다.


영재의 길을 걷는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학부모들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영재반의 모든 학생이 대학에 직접 입학할 자격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매년 약 3%만이 성공한다. 나머지는 고교 생활이 1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오카오를 준비해야 한다. 학부모들의 불만에 대응하여 보다 균형 잡힌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많은 영재반 교과 과정들이 영어와 중국 문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2025년 말, 중국 교육부는 정책을 강화하여 전국 대회 수상자의 상위 10%만이 칭화대와 베이징대에 가오카오 건너뛰고 입학할 자격을 얻도록 허용했다.


새로운 학문적 초점도 등장했다. 테크 업계의 기하급수적인 성장에 힘입어 컴퓨터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정보 올림피아드는 수학과 물리를 제치고 가장 인기 있는 대회가 되었다. 그리고 AI의 부상은 이러한 변화를 초고속으로 이끌었다. 일찍이 2017년에 중국은 AI 개발을 '핵심 국가 성장 전략'으로 개괄했으며 인재 양성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 중 하나로 꼽았다. 이듬해에만 이름에 'AI'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35개의 새로운 특별반이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설립되었다.




중국에서 대학 수준으로 가장 저명한 영재 프로그램 중 하나는 칭화대의 '컴퓨터과학 특별 실험반'이다. 이 반을 가르치는 유명한 중국 컴퓨터 과학자 앤드루 야오의 이름을 따서 '야오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하버드에서 수학하고 프린스턴에서 가르친 야오는 양자컴퓨팅과 암호학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로 유명하다. 그는 컴퓨터과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한 유일한 중국인이다.


그런 점을 감안할 때 미국 학계에서 야오의 위치는 확고해 보였다. 그러나 2004년, 그는 프린스턴의 종신 교수직을 떠나 칭화대에 컴퓨터과학 학부 프로그램을 설립했다. 이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 경쟁의 역학이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로 여겨지는 상징적인 움직임이었다. 야오의 야망은 간단했다. 중국에 MIT나 스탠퍼드와 동등한 수준의 인재 양성 허브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10년도 채 되지 않은 2018년, 그는 한 인터뷰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이제 우리 학생들이 (미국 최고 대학의 학생들보다) 실제로 더 낫다고 생각해요."


야오반에 선발된 첫 학생 중 한 명은 작년 IPO 이후 69억 달러(9조7000억 원)의 가치를 지닌 로보택시 스타트업 포니AIPony.ai의 공동 창업자이자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러우톈청이었다. 러우는 영재반 챔피언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정보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다. 그 상을 무기로 그는 모든 최고 대학과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었다. 지난 9월 그는 내게 진학할 대학을 선택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야오 교수님 때문에 망설일 게 없었어요. 저는 최고로부터, 그리고 최고와 함께 배우고 싶었죠."


야오반은 매년 약 30명의 학생으로 시작하며 각 학생은 경시대회와 가오카오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인재들이다. 예를 들어 학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도 야오반 학생 27명 중 24명은 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였고 3명은 각 성의 가오카오 수석이었다.


러우는 칭화대에서 성공적으로 성장하며 세계 최대 컴퓨터과학 경시대회에 계속 참가했다. 구글 코드잼에서 2회 연속 우승하고 다른 큰 상들을 수상한 후, 그는 중국 최고의 코더로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40세인 그는 중국의 선도적인 자율주행 회사 중 하나를 경영하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매년 코딩 대회에 참가한다. "녹슬지 않도록 매년 연마하는 거죠." 그는 말했다.


러우는 가오카오에 필요한 암기 학습에 의존하기보다는, 학생들이 선생님조차 풀 수 없는 가장 어려운 문제에 도전하도록 돕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장려한 영재반 시스템의 공을 인정한다. 그가 배운 것은 2020년 포니AI의 전략적인 개편에도 도움이 됐다고 그는 말했다. 그의 스타트업은 인간이 로보택시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 가르치는 기존 모델에서 인간이 로보택시의 목표를 정의하고 스스로 학습하게 하는 새로운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체기에 도달해 있었다.


어려운 결정이었다.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자율주행 세계 모델을 구축하는 데 수년을 소비해야 함을 의미했다. 하지만 러우는 그것이 성과를 거두었고, 심지어 다양한 과제에서 인간을 능가할 고도로 자율적인 시스템인 일반인공지능(AGI)이라는 목적지를 향한 길을 제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것이 자율주행의 궁극적인 지능으로 가는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루는 내게 말했다. "저는 AGI가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방식, 즉 대형언어모델(LLM)과 같은 일반 지능의 방식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분야별로 AI는 제대로 훈련된다면 인간 지능 수준에 도달하고 그 이상이 될 겁니다. 자율주행은 가장 먼저 그 수준에 도달하는 분야 중 하나가 될 거고요. 5년 안에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한편 러우는 아직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의 교육에 이 유도된 자기 학습 이론guided self-learning theory을 적용하고 있다. "우리는 딸에게 목표를 설정해주고 기본적인 규칙을 가르쳐요. 나머지는 딸이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죠."




물론 수년간 영재반에서 열심히 훈련받은 수백만 명의 학생들 중에는 실패자나 예외적인 인물도 있기 마련이다. 나는 그중 하나였다.


십대 시절, 나는 수학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동부 도시 항저우 최고의 고등학교 중 한 곳의 영재반에 들어갔다. 소설 읽기와 쓰기에 관심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과 부모님의 기대감의 무게는 저항하기에는 너무나 강했다. 나는 지역 교육청의 한 관리가 나를 설득하려고 말했던 걸 기억한다. "과학에서 메달을 딸 기회가 있는데, 상상 속 인물에 대해 글을 쓰며 그 기회를 낭비하고 싶으냐?" 그는 교장 선생님의 초대를 받아 나와 또 다른 고집 센 학생에게 영재판 과정에 합류하도록 설득하러 왔었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했다.


나의 고등학교 1학년은 비참했다. 영어, 중국어 선생님은 일반 학급과 같은 선생님이었지만 영재반은 수학, 물리, 화학, 생물 전담 선생님이 따로 있었다. 각 학생은 수학과 적어도 한 과목 이상을 전공으로 선택하고 경시 대비를 위한 추가 수업을 들어야 했다. 나는 가장 덜 지루해 보이는 선택지로 화학을 택했고 2년간의 강도 높은 훈련에 돌입했다. 그 기간 동안 우리는 2학년 말 전국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3년 과정의 고등학교 교과과정과 대학 수준 화학 및 수학의 약 절반을 마쳐야 했다.


그런 학습량을 소화할 시간을 벌기 위해 우리 반은 역사, 지리, 정치를 그냥 포기했다. 체육을 유지할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학교는 결국 학생들이 그렇게 집중적인 학습을 지속하기 위해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찬성 결정을 내렸다. 나는 옆에서 몰래 소설을 읽었는데 소설책을 100페이지 단위로 찢어 벽돌처럼 두꺼운 교과서에 숨겼다. 그 결과 내 성적은 좋지 않았고, 나는 상을 타서 학교에 명예를 가져오는 데 가망이 없다고 여겨졌다.


어느 날, 메달을 딴 동문의 강연을 듣는 동안 무언가 깨달았다. 만약 내가 대학 직행 자격을 얻을 만큼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면 고등학교 3학년 전체를 완전한 자유 속에서 즐길 수 있으리란 것이었다. 더 이상 학교도, 숙제도, 모의고사도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가오카오를 준비하는 3학년은 1학년보다 훨씬 더 나쁠 것이었다.


새로운 동기가 부여되자 나는 화학을 진지하게 공부하기 시작했고 놀랍게도 화학이 재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몰입형 학습 환경은 일종의 진공 상태를 만들어 방해 요소를 차단했다.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하는 것은 소중하게 느껴졌다. 내 반 친구들은 자극이 되었고, 나를 더 배우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우리 반에서 상을 받고 대학 직행 자격을 얻은 8명의 학생 중 한 명이었다. 내 최종 점수는 커트라인보다 단 1점 높았다. 나는 끔찍한 가오카오를 피할 수 있었다.


실제로 비교적 자유로운 1년이 뒤따랐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밤낮으로 공부하는 동안, 이미 대학 입시를 통과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계단 청소와 같은 잡다한 일을 배정받았다. 하지만 우리 중 일부는 몰래 빠져나와 최고의 국수집을 방문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영화를 보러 가며, 책 속에 파묻혀 잃어버린 2년을 만회하려 했다.


대학과 전공을 선택할 시간이 왔다. 나는 중국 최고이지만 완전히 다른 길인 베이징대의 화학과 푸단대의 저널리즘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때 화학 올림피아드 국가대표팀을 선발하는 시험이 있었다. 내 점수는 100점 만점에 23점이었다. 선발된 모든 후보자들은 만점을 받았다.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결국 나는 우리 반에서 비과학 전공을 선택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내 영재반 동기 50명 중 약 3분의1은 현재 중국과 미국의 테크 관련 회사에서 고위직을 맡고 있다. 나머지 학생들도 금융, 의료, 학계 전반에 흩어져 대체로 잘 지냈다.


중국의 천재 계획은 국가 차원에서 확실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이 프로그램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그 모든 공부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이제 주기율표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질문하는 호기심, 추론하는 훈련, 그리고 미지의 것을 마주하는 용기는 계속 남아있다.


43세의 영재반 졸업생이자 20년 전 글로벌 코딩 대회 챔피언인 다이원위안은 글로벌 AI 경쟁에서 인재를 중국의 핵심 우위로 본다고 내게 말했다. "중국에는 생성형 AI 모델이 1000개 이상 등록되어 있는데 이는 다른 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이 정도 규모로 구축할 수 있는 엔지니어 팀을 다른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어요?"


2014년, 다이는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어준 AI 소프트웨어 사업체인 포스 패러다임Fourth Paradigm을 설립했다. 부업으로 그는 여전히 모교인 상하이교통대의 코딩 대회 팀을 지도하고 있다. "저는 중국이 20년 전 AI 인재가 전무했던 상태에서 그들을 대량 생산하는 수준으로 성장해온 과정을 직접 목격했어요." 그는 말했다. "우리의 가장 최첨단 작업 중 일부는 이제 갓 졸업한 신입들이 하고 있어요. 곧 세상을 바꿀 진짜 천재들은 그들 중에 있을 수 있죠."



우즈징은 상하이 소재 푸단대학교 출신으로 블룸버그를 거쳐 현재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주로 아시아 테크 업계를 취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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