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는 과연 진실일까? 시인이 해체하는 과거의 이야기

캐시 린 체의 시집 'Becoming Ghost'(2025) 표지. /사진제공=Washington Square Press

다큐멘터리나 넌픽션으로 제작된 영상을 보게 될 때면, 우리는 흔히 꾸며진 이야기와는 구별되는 '진정성'을 기대하게 된다. 누군가가 실제로 체험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풀어놓는다는 전제는, 그 자체로 그 경험과 역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각색된 영화나 소설을 넘어 마침내 '정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알 수 있으리라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마주할 준비를 갖추고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그 안에서 접한 내용을 '사실'이라 받아들이며 살아가게 된다.


베트남계 미국인 시인인 캐시 린 체(Cathy Linh Che)는 「좀비 지옥의 묵시록: 다큐멘터리」라는 시에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러한 믿음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한다.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프란시스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감독의 영화로, 1979년에 개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이 작품은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의 소설 『어둠의 심연』(Heart of Darkness)을 베트남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재해석한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전쟁을 실제로 겪은 이들의 시선에서 <지옥의 묵시록>을 '다큐멘터리'로 다시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시인은 이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런 작업이 가지게 되는 수많은 문제적 요소를 짚어나가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이 과정을 거쳐서 시인이 보여주는 것은 허구를 배제한 진실이야말로 얼마나 허구적인가에 관한 역설이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역사를 재현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왜곡과 인공성을 수반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있는 그대로의 과거'에 접근한다고 믿지만, 그 안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언제나 선택되고 편집된 장면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인 목소리들이다.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는 과연 진실을 전달하는 장르일까, 아니면 진실처럼 보이도록 구성된 또 하나의 서사에 불과한 것일까? 캐시 린 체의 시는 이 물음을 독자 앞에 남겨둔 채, 우리가 믿어온 '기록'과 '증언'이라는 형식 자체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요청한다.

캐시 린 체 - 좀비 지옥의 묵시록: 다큐멘터리 (번역: 조희정)

아버지와 나는 번갈아 가며

연출을 맡는다. 우리는 형편없는


공동 연출자다—아버지와 나는 둘 다

그 이야기를 각자의 시선이


고집하는 방향에 가깝도록

잡아끈다. 아버지는 배관을 뚫는


뱀 같은 철사를 등 뒤로 휘두르더니

팔을 벌려 그리스도처럼 서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는

집으로 돌아오기를 거부했다.


언제 아버지는 더 이상 우리 아버지가

아닐까? 그리스도가 재림하여


그의 살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울 때.

내 아버지는 난민이었다,


전쟁은 그의 동족들을

좀비로 만들어버렸고


아버지는 그들로부터 도망쳤다.

나는 카메라를 움켜잡고


그의 삶에 관하여

짧은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우리는 <지옥의 묵시록>에서 한 장면을 고르고,

공정한 이용이라 표시한 뒤, 성우를 고용해서


아버지가 영어를 꽤 많이 말하는 것처럼

연기하게 한다. 때로는 실제에 더 가까이 가려면


인공적인 것이 필요하다.

다리는 무너져 내리고


성우는 웃으며,

아버지의 대사를 읽는다.


캐시 린 체. /사진=Katie Bloom


<지옥의 묵시록>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서 베트남 전쟁의 '진짜'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 전쟁을 몸소 체험한 사람의 기억이 필수적이라고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이 시는 처음부터 아버지와 딸이 "번갈아 가며" 그 다큐멘터리의 연출을 맡는다는 설정에서 시작된다. 전쟁의 역사를 직접 경험한 아버지, 그리고 그 역사를 가족들의 이야기와 다른 매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접한 딸, 이 둘은 서로 어긋난 관점에서 다큐멘터리를 구성해 간다. 그래서 그들은 "형편없는 공동 연출자"가 되어 버린 채 이야기를 사이에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며, 이 과정에서 하나의 일관된 서사는 성립되지 못하고 만다.


아버지가 "배관을 뚫는 뱀 같은 철사"를 등에 휘두르고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흉내 내며 서 있는 장면은 그가 바라보는 전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아버지에게 베트남 전쟁은 평범한 이들이 죄 없이 희생되어 갔던 참혹한 사건이지만, 그는 그 무참한 상황 속에서조차 구원의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종교적 이미지를 통해 재현한다. 반면에, 딸이 그려내는 전쟁의 상황은 이보다도 훨씬 더 비인간적이며 부조리하다. 시의 제목을 "좀비 지옥의 묵시록"이라고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딸의 입장에서 베트남의 과거를 재구성하면서 "그리스도가 재림"하여도 구원을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먹어치우게 될 정도로 망가지고 뒤틀린 상황을 설정한다. 그리고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우리 아버지"와 마주하는 친밀한 순간을 지워 버리고서, 시인은 아버지를 카메라 앞의 대상으로 밀어내어 전쟁이 만들어 낸 폭력적 현실을 보여주는 이미지로 재구성하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친숙한 "우리 아버지"의 모습 대신 '다큐멘터리'에 적합한 등장인물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언어의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베트남의 역사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베트남어를 말하는 것이 가장 '진정성' 있어 보이는 연출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어를 주로 사용하는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화면 아래에 계속 자막을 사용하는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성우를 기용하기로 결정한다.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성우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대사를 전달하며, 이 선택을 가리켜서 시인은 "때로는 실제에 더 가까이 가려면 인공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진술한다. 사실은 영어를 잘 말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성우의 더빙을 입히는 작업은 관객에게 마치 아버지의 경험을 자신들이 익숙한 언어로 직접 듣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맥락에서 "인공적인" 허구는 "실제"를 담은 진실로 포장되기에 이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진짜 "아버지"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시에서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다음 장면은 한편으로 전쟁 중의 폭격과 파괴를 표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한 세대의 경험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매개로서의 "다리"가 붕괴하는 상황을 암시한다. 아버지와 딸의 엇갈리는 서사들은 도저히 하나로 수렴될 수 없으며, 그 사이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간극이 생겨나게 된다. 심지어 전쟁의 처절함을 담은 "아버지의 대사"를 읽으면서도 "성우"는 웃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참여하여 아버지의 역할을 대신하는 "성우"조차도 과거의 역사에 몰입하여 그 고통에 전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다큐멘터리' 속의 목소리가 결코 아버지 자신의 온전한 것이 아니며 고통의 기억이 타인의 연기로 대체된 상태에 놓여 있을 뿐임을 폭로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과연 역사의 진실을 어느 만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언뜻 보아 이 시는 그러한 시도가 근본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드러내는 듯하다. '진정성'이란 결국 환상에 불과하며 우리가 타인의 실제 경험에 도달할 수 있다는 기대는 늘 배반으로 돌아올 운명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흥미로운 것은 시인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서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딸의 위치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욱 실감 나게, 또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어떻게든 찾고 있다는 점이다. '기록'과 '증언'이 결국 허구로 귀결되는 과정을 자조적으로 묘사하면서도 그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는 시인의 모습. 그 속에서 우리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을 쉽사리 하나의 서사적 형태로 정리해 버리기 전에 서로 엇갈리는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탐색하고 이해해 보기를 권유하는 이 시의 숨겨진 메시지를 읽어내게 된다.

원문: Zombie Apocalypse Now: Documentary

My father & I take turns

directing. We are terrible


codirectors—he & I both

yank the narrative


closer toward our own eye's

insistence. He whipped


a plumbing snake across his back

then held his arms out like Christ.


I cinched shut my eyes

& refused to come home.


When is my father no longer

my father? When Christ descends


and gobbles up his flesh.

My father was a refugee,


fleeing the zombies

that war made


of his own people.

I grab the camera


& make a short documentary

about his life.


We select an Apocalypse Now film clip,

label it fair use, and pay a voice actor


to play my father speaking so much

English. Sometimes artifice is necessary


to get closer to the real thing.

The bridge collapses


& the voice actor laughs,

reading my father's lines.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