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전해 주는 기억들: 시인이 회상하는 어린 시절

리처드 사이컨의 시집 'I Do Know Some Things'(2025) 표지. /사진제공=Copper Canyon Press


오래 전의 기억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되살아나지만, 그중에서도 음식이 불러오는 감각은 유난히 강렬한 울림을 남긴다. 친구들과 어울려 먹었던 떡볶이의 매콤한 맛이나 가족과 함께 동네 중국집에서 먹던 자장면의 맛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특정한 음식의 맛과 향은 과거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되살려내며, 때로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그 시절의 감정까지 함께 불러오곤 한다. 특히 집에서 부모가 자주 만들어 주던 음식은 한 사람의 삶에서 정서적 중심을 형성할 만큼 깊은 의미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먹거리가 넘쳐나는 오늘날에도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어떤 맛, 그리고 거기에서 촉발되는 과거의 기억들에 대해 더욱 짙은 향수를 느끼곤 한다. 때로 음식은 그 자체의 맛보다도 그것을 먹었던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곁에 있었던 사람들을 기억하게 만드는 매개가 된다. 그러나 음식에 얽힌 기억이 언제나 따뜻하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음식은 잃어버린 가족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음식은 오래된 상처를 다시 불러오기도 한다.


리처드 사이컨(Richard Siken)의 '알본디가스'(Albondigas)는 이러한 음식과 기억의 관계를 독특한 방식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제목에 사용된 "알본디가스"는 스페인과 중남미 지역에서 널리 먹는 미트볼 수프로, 시인의 인종적, 문화적 배경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음식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수많은 음식 가운데 하필 이 요리를 시의 제목으로 선택했을까? 산문에 가까운 형식으로 쓰여진 이 시를 읽다 보면, "알본디가스"가 단순히 그리운 유년기의 맛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히려 이 음식은 어린 시절의 결핍과 상실, 그리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가족의 기억을 환기하는 매개로 기능한다. 사이컨은 "알본디가스"라는 요리를 통해 아픈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이를 과장된 비극으로 그려내는 대신 담담하고 유머러스한 어조로 풀어낸다.

리처드 사이컨 - 알본디가스 (번역: 조희정)

부모님은 이혼한다는 말을 하려고 나를 레드 랍스터에 데려갔다. 부모들은 늘 끔찍하고 중요한 일, 이를테면 실패 같은 걸 말해야 할 때면 아이를 레드 랍스터에 데려간다. 어차피 식당하나를 아이에게 망쳐 놓게 될 거라면, 레드 랍스터나 올리브 가든 같은 시시한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레드 랍스터에 갔다. 부모님은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집에 와 있던 형이 대신 말해 주겠다고 했다. 형이 말했다. 나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물건을 집어던지는 동안 형은 나를 진정시키려고 「맥캐버티: 미스터리 고양이」를 읽어 주려 했다. 형은 그것마저 망쳐 버렸다. 원래는 레드 랍스터만 망쳐야 했는데 말이다. 나는 형이 준 장난감 스쿨버스를 부수려 했지만 너무 튼튼하게 만들어지고 원목으로 되어 있어서 포기했다. 내가 네 엄마가 되기 싫은 게 아니라, 누구의 엄마도 되고 싶지 않은 거야. 날 필리스라고 불러도 돼. 우리 친구가 되는 연습을 해 보자. 내가 돌아오면. 아버지는 가정부를 고용했다. 그녀는 요리를 잘하지는 못했지만 멕시코 음식을 많이 만들었고, 나는 그게 좋았다. 그녀가 처음 알본디가스를 만들었을 때, 아버지는 그걸 미친 사람이 만든 마초볼 수프인 줄 알았다. 아버지는 그녀를 미친 사람이라고 몰아붙였다. 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였고, 손을 쓰지 않으려고 식탁 가장자리를 꽉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것 역시 내게는 망가져 버렸다. 그녀는 떠났어야 했지만 떠나지 않고서, 미래의 새엄마가 부엌에서의 자리를 두고 경쟁에 뛰어들어 이길 때까지 버텼다. 부모님은 재혼한다는 걸 알리려고 나를 레드 랍스터에 데려갔다. 나는 팝콘 새우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는 에펠탑 사진이 있는 엽서를 내게 보내왔고, 모든 게 얼마나 멋진지 나한테 써 보냈다. 그 엽서에는 국내용 우표가 붙어 있었다.



이 시에서 시인이 경험한 어린 시절은 예쁘고 소중한 추억으로 가득하기는커녕 트라우마로 채워져 있다. "망치다"(ruin)라는 단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면서, 유년기의 여러 상징물들이 시인에게 그리움보다는 상처와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매개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전달된다. "레드 랍스터"나 "올리브 가든"은 미국에서 가족 단위 외식 장소로 널리 알려진 식당이지만, 이 시에서는 아픈 기억과 결부되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의해 오염된 공간으로 변모한다. 부모의 이혼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진 장소는 더 이상 편안하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남아 있지 못하게 된다. 그뿐 아니라 형이 동생을 진정시키기 위해 읽어 주었던 동화 역시도 상처를 환기하는 대상으로 바뀌어 버림으로써 함께 "망쳐진다." 어린 시절 아끼던 "장난감 스쿨버스" 또한 분노와 좌절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이 된다. 이렇게 아이를 둘러싼 공간과 사물들은 영원히 "망쳐진" 것들이 되어 시인의 기억 속을 떠돌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되살린다.


어머니가 집을 떠난 뒤 등장하는 "가정부"의 존재는 이 시에서 특히 흥미롭다. 멕시코 음식을 자주 만들어 주던 그 "가정부"는 가족의 중심 인물이라기보다 주변부에 머무는 존재이지만, 시인은 그녀가 만든 음식에 대해서만은 분명한 호감을 드러낸다. "알본디가스" 역시 어린 소년에게는 낯선 음식이었을 텐데, 그는 이 요리를 "좋아했다"고 회상한다. 흥미로운 점은 부모가 만들어 준 음식에 대한 기억이 시 속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 반면, 멕시코 출신 가정부가 만든 음식은 시의 제목으로까지 선택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시인의 기억 속에서 음식 자체의 맛보다 그것을 만들어 준 사람과 그 음식을 둘러싼 상황이 더 중요하게 남아 있음을 보여 준다. "알본디가스"는 그저 요리 이름일 뿐 아니라, 가족의 해체와 정서적 결핍 속에서 희미하게 남아 있는 돌봄의 흔적을 환기하는 매개가 된다. 시인이 이 음식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것도 바로 그러한 기억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알본디가스"라는 음식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는 단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이 요리를 "미친 사람이 만든 마초볼 수프"라고 부르고, 나아가 멕시코인 가정부까지 "미친 사람"으로 몰아세운다. 아버지는 "알본디가스"를 하나의 멕시코 음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신이 알고 있는 유대인들의 음식인 마초볼 수프의 변형으로 간주해 버린다. 이는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관점에 맞추어 해석하고 평가하려는 아버지의 태도를 보여 준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그가 "목소리를 높여" 격앙된 반응을 보이면서도 "손을 쓰지 않으려고 식탁 가장자리를 꽉 붙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장면은 언제라도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불안한 긴장감을 형성하며, 가정부가 느꼈을 곤혹스러움과 어린 시절 시인이 아버지 앞에서 경험했을 두려움을 자연스럽게 겹쳐 보이게 만든다. 비록 물리적 폭력은 행사되지 않지만, 낯선 음식과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신의 기준만을 고집하는 아버지의 태도는 이미 폭력의 한 형태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인이 어머니에게서 충분한 위안을 얻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는 "누구의 엄마도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며 자신이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고, 더 나아가 아들에게 자신을 이름으로 부르며 "친구가 되는 연습을 해 보자"고 제안한다. 성인의 입장에서 보면 솔직한 고백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시는 이 대목을 따옴표조차 없이 길게 이어지는 문장 속에 배치함으로써 당시 소년이 느꼈던 혼란과 당혹감을 그대로 전달한다. 결국 어머니의 말은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언어가 되지 못한 채, "레드 랍스터"나 "장난감 스쿨버스"처럼 상처와 결부된 기억의 한 조각으로 남게 된다. 어린 시절의 사물들이 모두 "망쳐진" 것들로 남았듯이, 어머니의 말 또한 이해와 위안의 언어가 아니라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상실의 기억으로 시인의 마음속을 떠도는 것이다.


시의 마지막 장면은 이러한 가족 관계의 공허함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재혼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시 한번 레드 랍스터로 데려간 아버지 앞에서 시인은 더 이상 분노를 터뜨리지 않으며, 대신 "팝콘 새우를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어린 시절의 격렬한 감정은 어느새 무감각과 체념으로 대체된 듯 보인다. 한편으로, 어머니는 에펠탑이 그려진 엽서를 보내 와 자신이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를 자랑한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아들을 향한 안부 인사처럼 보이는 이 엽서는 마지막 한 문장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그 엽서에는 국내용 우표가 붙어 있었다." 시는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이 문장으로 끝나 버리고, 그래서 이 문장은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긴다. 어머니는 마치 프랑스에 가 있는 것처럼 에펠탑 사진이 담긴 엽서를 보내지만, 실제로는 미국 안에서 이 엽서를 보낸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시인이 문제 삼는 것은 어머니의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어머니가 보여 주려는 삶과 어머니의 실제 삶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인 듯하다. 어머니는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이 행복하고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미지, 그리고 그 바쁜 삶 때문에 아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을 테지만, "국내용 우표"는 어머니가 엽서에 쓴 글이 허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차 없이 폭로해 버린다.


또한, 엽서에 붙어 있던 "국내용 우표"는 어린 시절 시인이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실망감, 나아가서는 배신감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소년이 기대했던 가족의 모습은 항상 존재하지 않았고, 믿고 싶었던 이야기들은 언제나 어딘가 비어 있었다. 에펠탑이 담긴 엽서는 그런 어긋남을 상징하는 마지막 이미지가 된다. 흥미롭게도, 이렇게 서글픈 과거의 이야기들은 결코 비장하거나 감상적인 어조로 전달되지 않는다. 시인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고발하거나 부모를 단죄하기보다, 마치 오래된 일화를 들려주듯 예전의 상황들을 건조하게 서술해 나가며, 그 담담함 때문에 독자는 오히려 더 큰 슬픔을 느끼게 된다. 시인은 '알본디가스'에서 어떤 특정한 음식에 대한 향수를 노래한다기보다, 그 음식을 중심 매개로 삼아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 그리고 그 속에서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돌봄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시인의 회고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시에서 결국 시인이 끝내 잊지 못한 것은 음식의 맛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을 둘러싸고 있었던 사람들과 관계의 흔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원문: Albondigas

My parents took me to Red Lobster to tell me they were getting a divorce. Parents always take you to Red Lobster when they need to tell you something awful and important, like failure. They figure if they're going to ruin a restaurant for you, it should be somewhere lame, like Red Lobster or Olive Garden. We went to Red Lobster. They couldn't bring themselves to say anything. I was confused. My brother, visiting, offered to tell me. He told me. I didn't take it well. To calm me down, he tried to read "Macavity: The Mystery Cat" to me while I was throwing things. He ruined it. We were supposed to ruin Red Lobster. I tried to break a toy school bus that he had given me but it was too well made and solid wood so I gave up. It's not that I don't want to be your mom, it's that I don't want to be anyone's mom. You can call me Phyllis and we can work on being friends. When I get back. My father hired a housekeeper. She wasn't a good cook but she made a lot of Mexican food, which I liked. The first time she made albondigas, my father thought it was matzo ball soup made by a crazy person. He accused her of being a crazy person. He raised his voice and gripped the edge of the table to keep his hands down, so that was ruined for me as well. She should have left but she didn't, she stuck around until my future stepmother entered the competition for the slot in the kitchen and won. They took me to Red Lobster to let me know they were getting married. I had popcorn shrimp and nodded along. My mother sent me a postcard with a picture of the Eiffel Tower, telling me how great things were. It had domestic postage.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