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꿈: 고통 속에서도 시를 보듬는 시간

/그래픽=PADO(생성AI 사용)

더워도 너무 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중이다. 내리쬐는 햇살과 길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 거기에 축축한 습도까지 합쳐져서 무더위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는다. 날씨와 계절은 이렇게 아주 강력하게 우리에게 감각되며, 우리는 온도의 오르내림과 그에 따른 풍경의 변모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게 된다. 마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려도, 여름의 한가운데 우리가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머지않아 여름이 지나갈 것임을 이미 예고한다. 도시 한복판에서 자연과 직접 접촉할 기회가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날씨의 변화는 우리가 자연환경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만든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계관 시인(Poet Laureate)인 아서 제(Arthur Sze)의 「한여름」("Midsummer")은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여름을 제대로 느끼지조차 못하는 힘겨운 상황에서 시작한다. 여름의 한복판에 있으면서도 계절의 뚜렷한 변화까지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삶이 고단하고 피폐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그 길을 찾는 과정과 시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적 시들로 주목받아 온 중국계 미국인 시인 제는 이 시에서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찾아나간다.

아서 제 - 한여름 (번역: 조희정)

호랑제비나비1들이 러시안 세이지2 위를 맴돈다—

나는 유칼립투스3가 없는 곳에서 유칼립투스의

향기를 맡으며 비 속에서 여름을 찾아낸다.

황혼 무렵 동굴을 빠져나오는 박쥐들처럼

한 가닥 슬픔이 하늘에 펼쳐진다.

당신도 나도 들판에 지뢰가 묻히는

일이나 그다음 폭발을 막을 수는 없다.

나는 울타리를 따라 이어진 물 호스의 막힌 곳을 뚫는다.

오월에는, 라일락이 보랏빛 꽃송이를 폭포처럼 드리우며

길 위로 굽이친다. 이제, 어둠의 한순간에

멈춘 채, 나는 머리 위에서 햇살을 향해

대나무잎이 펼쳐지는 소리를 듣는다. 서로 맞물린

금사슬로 이루어진 목걸이의 엉킴을

풀고는, 그것을 들어 올리며, 나는 짚어 낸다,

기쁨, 두려움, 당혹감, 환희, 나의 손끝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어떤 '이것'을. 나는 뿌리를 내리고

잎을 틔우는 딸기 덩굴 속으로 스며들어,

아침 별빛 속에 서서 하나의 노래를 살아낸다.



노란 빛깔의 나비들이 보라색 꽃밭 위를 떠돌아다니는 광경을 상상해 보면, 보색의 대비 때문인지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두고 싶은 인상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시의 첫 줄이 이렇게 한여름의 찬란한 풍경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시인은 이런 자연의 아름다움과 쉽사리 교감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는 오히려 거기에 없는 "유칼립투스"를 그 향기로나마 떠올리려 애쓰며, 눈앞에 펼쳐지는 꽃과 나비의 향연보다는 "비 속에서" 겨우 "여름을 찾아낼" 뿐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의 경관에 시각적으로 감응하지 못하는 시인은 마치 "황혼 무렵 동굴을 빠져나오는 박쥐들처럼" 어둡고 무거운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이어서 "한 가닥 슬픔이 하늘에 펼쳐지고", 이 가느다란 슬픔의 실은 곧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더 크고 두려운 고통으로 이어진다.


시인을 괴롭히는 현실의 고통은 "들판에 지뢰가 묻히는 일"이나 그 후에 오게 될 "폭발"에 대한 우려로 나타난다. 이 구절들은 다가올 비극을 떠올리며 몸을 움츠리게 만들고, 그 앞에서 완전히 속수무책인 개인들의 좌절감은 한여름의 자연을 제대로 감각하지조차 못하게 한다. "지뢰"나 "폭발" 등의 단어가 명시적으로 보여 주듯이 시인이 전쟁의 발발을 예상하며 괴로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구절은 좀 더 확장된 의미를 지닐 수도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과 마주하며, 그런 불행들은 삶 속에서 마치 전쟁처럼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질병, 관계의 균열, 사회의 불의, 뉴스를 통해 접하는 진짜 전쟁과 재난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너무 많은 문제를 우리에게 던져 주고, 그 앞에서 개인은 너무 작은 존재일 뿐이다. 너와 내가 노력해 봤자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은 우리를 쉽게 침묵하게 만든다.


하지만 시인은 이런 무력감 속에서 그냥 무너져 내리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실행한다. "물 호스의 막힌 곳을 뚫는" 시인의 행위는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에 최선을 다해 대처하는 것이며, 통제할 수 없는 세상 앞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손이 닿는 영역에서 돌봄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작은 움직임은 멈추어 있었던 물의 흐름을 가능하게 하고, 그 순간 시인을 둘러싼 세상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시인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시의 초반부에서 시인은 보라색 꽃밭과 그 위를 떠도는 나비를 바라보면서도 그 아름다움에 온전히 마음을 열지 못했지만, 자신이 자연의 거대한 흐름에 작은 돌봄의 행위로 참여하게 되자 라일락의 "보랏빛 꽃송이"가 "폭포처럼 드리우며 길 위로 굽이치는" 멋들어진 광경이 떠오른다. 아직 어둠 속에 있어서 주변을 잘 볼 수 없는데도, 시인은 잠시 멈추어서 자연에 귀를 기울이고 "햇살을 향해 대나무잎이 펼쳐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막혀 있던 호스를 뚫어 물이 다시 흐르게 하는 작은 행위는 시인과 자연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까지 걷어내고, 그때부터 시인은 주변의 자연과 새롭게 교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시인 아서 제. /사진=Shawn Miller/Library of Congress


시인은 "막힌 곳을 뚫는" 데 그치지 않고 곧이어 "엉킴"을 풀어낸다. "금사슬로 이루어진 목걸이"가 한번 꼬여 버리면 그것을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제대로 풀어내는 것은 상당한 끈기와 노력을 요구한다. 포기하고 싶어질 수도 있는 이 작업에 시인이 몰두하는 장면은 마구 엉켜 있는 삶의 가닥들을 섬세한 손길로 보듬으며 조금씩 온전하게 되돌려 놓는 과정을 묘사하는 듯하다. 그 과정의 끝에서 시인의 "손끝"에 남게 되는 어떤 "이것"에는 무엇이라 쉽사리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인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기쁨, 두려움, 당혹감, 환희"라고 열거된 여러 갈래의 감정들을 하나씩 "짚어 내어" 마주하는 순간, 시인은 그 복잡한 감정들에 압도당하기보다는 삶 속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느낌들을 그 자체로 금목걸이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것이라 받아들이게 된다.


이렇게 삶의 복잡한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시인은 이제 자연의 한가운데로 들어간다. "뿌리를 내리고 잎을 띄우는 딸기 덩굴" 속으로 "스며들어간" 시인은 아침의 별빛 아래 서서 "노래를 살아낸다". 호스의 막힌 곳을 뚫고, 엉킨 목걸이를 풀어내고, 자연의 작은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는 일상의 행위들이 어느 순간 시적 경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는 삶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환상이나 현실을 초월하는 특별한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고, 복잡하게 얽힌 삶의 가닥들을 하나씩 풀어내며, 눈앞의 자연과 다시 교감하는 과정에서 시는 자연스럽게 생성된다. 세상의 거대한 고통을 멈출 수는 없지만, 우리는 작은 물길 하나를 다시 흐르게 하고 엉킨 것을 풀어내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작은 돌봄의 행위들이 쌓여 삶을 다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만들고, 그것이 모여 하나의 "노래"가 되기에 이른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인 "한여름"은 일 년 중 가장 뜨겁고 생명력이 왕성한 계절을 가리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여름은 자연이 가장 무성하게 자라나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계절도 결국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품고 있는 시간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서 여름밤이 현실과 환상으로 뒤섞인 마법의 시간이라면, 제의 "한여름"은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일상의 작은 행위들을 통해 어떤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 시간이다. 이 시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거창한 기적이 아니다. 대신, 막힌 물길이 다시 흐르고, 엉킨 사슬이 풀리고, 대나무잎이 햇살을 향해 펼쳐지고, 한 사람이 마침내 자연과 노래 안에 자신을 맡기는 것과 같은 조그만 변화들이 조용히 이어진다. 어쩌면 한여름의 꿈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세상의 고통을 모두 없앨 수는 없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삶의 가닥을 하나씩 보듬어 가며 다시 빛을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작은 돌봄의 행위들이 어느 순간 한 편의 시가 되는 것 말이다.

원문: Midsummer

Tiger swallowtails hover over Russian sage—

I smell eucalyptus where there is no

eucalyptus and locate summer in rain.

Like bats emerging out of a cave at dusk,

a thread of grief unfurls in the sky.

Neither you nor I can stop the planting

of mines in a field or the next detonation.

I unclog a drip line along a fence;

in May, lilacs arced over the road in a cascade

of purple blossoms. Now, stilled in a minute

of darkness, I listen to bamboo leaves

unfurl above into sunshine. Untangling

a necklace composed of interlocking

gold chains, then lifting it, I trace

joy, fear, bewilderment, bliss, a this

resplendent in my fingertips. I slip inside

a strawberry runner that extends root, leaf,

then stand in morning starlight and inhabit a song.




조희정은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하버마스의 근대성 이론과 낭만주의 이후 현대까지의 대화시 전통을 연결한 논문으로 미시건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과 자연의 소통, 공동체 내에서의 소통, 독자와의 소통, 텍스트 사이의 소통 등 영미시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화적 소통이 이루어지는 양상에 관심을 가지고 다수의 연구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