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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80조 금융지원이 베네수엘라 경제를 되려 악화시킨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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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카스 시내의 모습 /사진=QuinteroP/Wikimedia Commons

2023.05.05 12:05

Global China Pu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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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세졌는가를 실감할 수 있는 척도 중의 하나에는 대외 차관 제공 규모가 있습니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차관 제공을 받아야 할 입장이었던 중국이 이젠 주요 강대국과 비견될 정도로 다른 개발도상국에게 금융지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차관 제공 방식은 통상적인 서구식 방식과 차이가 있어 연구 대상입니다. 혹자는 중국이 차관을 빌미로 다른 나라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는 '부채함정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중국의 차관 제공 사례를 살펴본 '글로벌 차이나 펄스'의 아래 에세이는 다른 결론을 제시합니다. 중국의 실제 차관 제공 사례를 살펴보면 자국 외교의 '내정 불간섭' 원칙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고 중국이 가장 많은 차관(80조 원 이상으로 추정)을 제공한 베네수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차관 외교는 오히려 다른 방면으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됩니다.


중국이 80조 원이 넘는 금융지원을 해줬지만 2013년 이후 베네수엘라의 경제가 초토화에 가까운 위기를 겪는 걸 막을 수는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아래 에세이는 베네수엘라의 뿌리 깊은 부패 구조를 그대로 두고 금융지원을 해준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에도 원인이 있다고 진단합니다.


코로나19의 창궐부터 러시아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세계 경제는 복합적인 위기를 맞고 있으며 글로벌 사우스1 국가들은 경제 위축과 외채 상환 능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의 부채 위기와는 달리, 중국은 지난 몇 년 간 글로벌 노스의 전통적 금융기관 및 정부와 비슷한 수준으로 차관을 제공한 결과, 이제 세계적인 채권국이 됐다. 채권국으로서 중국은 채무국의 상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다자 협상보다는 양자 협상을 선호했다. 중국 당국은 파리클럽의 주요 채권국이 확립한 선례를 종종 따르긴 했으나 한편으로는 부채 위기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결하는 것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한 주권국 파트너의 부채 문제를 다룰 때 내정 불간섭 원칙을 준수해왔다. 다시 말해 어떠한 정치적 조건, 특히 채무국의 통치 원칙이나 정책에 변화를 가져오는 식의 조건을 내걸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부채 규모가 큰 나라(주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의 무이자 차관을 탕감해준 바 있다. 많은 경우 중국 정부는 차관원금을 줄이는 것보다는 만기, 유예 기간을 연장해 상환 기간을 연장하거나 이자를 깎아주는 방식을 선호했다. 중국의 차관 관련 자료를 보면, 중국 은행과 정부 관료가 채무국이 충분한 상환 능력을 갖고 있다 판단할 경우, 탕감이나 이자율 조정보다는 상환기간 연장을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십수 년에 걸친 정치적, 사회적 갈등으로 경제에 대한 신뢰가 크게 떨어진 베네수엘라 같은 경우, 중국 정부 관료는 파트너십을 포기하고 민간 투자자 및 금융기관에게 경고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중국-베네수엘라 금융관계는 중국이 위기에 빠진 국가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베네수엘라는 대중국 채무 규모가 세계에서 가장 크다. 두 나라는 상당 기간의 차관, 투자, 무역을 통해 전략적인 관계를 형성했지만 2014년부터 시작된 뿌리 깊은 경제적, 정치적 위기로 베네수엘라는 채무 상환 능력을 잃었다. 중국-베네수엘라 관계의 핵심은 원자재 담보 차관으로,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과 중국의 개발금융 및 인프라 투자를 연결한 것이다. 덕분에 베네수엘라는 미국에 원유 수출을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베네수엘라 정부가 전통적인 금융기관에 비판적이게 되고 미국 주도의 이니셔티브와 척을 지면서 경제개발을 위한 차관을 받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중요한 도움이 됐다. 중국 입장에서 베네수엘라는 남미 시장을 위한 교두보였으며,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국가로부터 석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가 경제적 혼란을 겪자, 처음에 중국은 경제위기를 겪는 국가에 대한 자국의 전형적인 접근법을 취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자 중국 당국은 먼저 대출 상환 유예기간을 연장했다. 또한 국제제재로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생산 능력이 크게 떨어지자, 중국은 베네수엘라의 대중국 원유 수출량 감축도 허용했다. 그러나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를 구입하는 제3국에 대해서도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협박하자(그리고 베네수엘라 유정에 투자한 러시아 국영기업에 제재를 가했다) 중국은 미국의 2차 제재를 우려하게 됐다. 중국은 2015년 베네수엘라에 신규 차관을 중단해 위기에 빠진 사회주의 국가를 저버렸다. 2022년 12월 현재, 중국 정부는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중국의 전체 차관 포트폴리오에서 베네수엘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기 때문에 양국 관계의 독특한 상황과 그것이 중국의 향후 개발도상국 차관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2000~2020년까지 중국의 베네수엘라 차관액은 총 600억 달러(약 80조3000억 원) 이상이며 이는 중국의 제2채무국 앙골라의 차관액보다 43% 많다. 때문에 베네수엘라 정부와 매체 일각에서는 중국이 베네수엘라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중국은 베네수엘라가 기대했던 최후의 금융적 보루의 역할을 취하지 않았고 여신 제공을 중단했다. 중국 당국은 내정 불간섭 원칙을 지켜 어떠한 정치적 조건을 걸지 않은 한편, 남아있는 채무의 상환을 계속 기대했다.


(베이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6일 (현지시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호르헤 아레아사 베네수엘라 외교장관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베이징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16일 (현지시간) 베이징 댜오위타이 국빈관에서 호르헤 아레아사 베네수엘라 외교장관과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 AFP=뉴스1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과 그 실행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으며 중국이 채무 상환을 바란다면 기존의 원자재 담보 차관 거버넌스를 상당 부분 개혁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주장이다.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지대국가2로 살아온 데다가 권위주의 리더십으로 인해 정책의 관리·감독과 책임성을 많이 상실해 중국과 파트너십을 체결하면서 내걸었던 경제개발 목표를 달성할 수 없게 됐다. 한편으로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은 자국이 재정을 대는 사업이 성공하도록 만드는 데 제약이 된다. 중국-베네수엘라 개발기금은 결과적으로 '부채함정'3과는 거리가 있었다. 중국에게는 '빌려주는 쪽의 함정'이 됐고 베네수엘라에게는 지대의 함정이 돼, 누구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권위주의적 개발국가와 사회주의 지대국가의 충돌

베네수엘라는 오랫동안 원유수출국이었으며 종종 산유국으로 분류된다. 베네수엘라는 국제시장에 원유를 판매해서 나오는 지대에 매우 의존적이다.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지대에 의존하는 산유국은 자원 배분이 실제 사회적 구성과는 별개로 권력이 있는 측근들끼리의 후원과 충성의 연결을 통해 이뤄지기 쉬워,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수준이 낮기 일쑤다. 베네수엘라는 역사적으로 국제 석유기업과 국영 석유기업 PDVSA에 대해 유정 사용료와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지대를 추구해왔다. 1999년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되면서 시작된 볼리바르 혁명4은 새로운 방식으로 지대를 추구했는데 주로 자국 통화를 과도하게 평가절상하는 방법을 썼다. 2003~2012년의 고유가 시기에 베네수엘라 정부는 늘어난 석유 지대로 재화를 수입했고 그 덕분에 갈등이 발생하기 쉬운 정치적 환경에서도 사회 불안정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이러한 방식은 중대한 난관에 봉착했다. 가격통제와 외환관리로 인한 시장 왜곡이 인플레이션, 상품 부족, 법정 환율과 시장 환율의 격차 확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점차 화폐를 더 찍어내는 방식으로 재정적자에 대응하게 됐고 가장 생산성이 높은 산업 부문에 대한 가격 및 이윤 통제를 계속했다. 이로 인해 2021년까지 지속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베네수엘라금융관측소(OVF)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이 정점에 달한 것은 2018년으로 당시 물가상승률은 170만%5였다. 2021년 말이 되자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았지만(660%) 물가상승은 점점 안정화되고 있었으며 12개월 연속 물가상승률은 50% 미만이었다.


중국의 원자재 담보 차관은 베네수엘라의 급진적인 지대추구형 개발 모델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중국의 차관을 갖고 전통적인 감사 기구의 영향력 바깥에서 자원을 임의로 소비할 수 있었으며 원유 판매가 발생하기 전에 먼저 차관이 제공됐기 때문에 원유 채굴을 하기도 전에 지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중국의 차관을 경제개발 용도로 활용해 베네수엘라의 산업 정책을 지원할 대형 인프라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 협력 체계의 운영 방식(아래에서 더 설명할 것이다)으로 인해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없었다. 인프라 사업 중 일부는 완공이 됐는데 특히 차베스의 2012년 재선 캠페인의 핵심 공약이었던 무상 주택 제공 사업 '미시온 비비엔다(Misi?n Vivienda)' 관련 인프라 사업이 그랬다. 또한 새로운 집에 들여놓기 위해 많은 중국산 가전기기가 판매됐다. 그렇지만 이는 베네수엘라에 중국의 가전 기업 하이얼의 자회사를 세워 베네수엘라의 가전기기 수요를 충족시키고자 했던 당초의 계획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수 년의 투자(대부분 베네수엘라 정부의 투자였다) 끝에 자회사 하나가 세워졌지만 그 생산량은 미미했다. 석유 투자는 주로 합작회사에 들어갔는데 부실한 관리와 부패로 자금 오남용이 팽배했다.


완공을 보지 못한 인프라 사업 중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티나코에서 아나코까지의 베네수엘라 중부 평원 지대를 잇는 468km 짜리 철로 건설 사업이 있다. 이 사업에 70억 달러(약 9조40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2009년 착공돼 3년 후에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3분의 1만 완성됐다. 몇몇 인터뷰와 언론 보도를 보면 농업 관련 사업은 대부분 뇌물 및 부패 네트워크의 사냥감으로 전락했다. 일례로 2010년, 베네수엘라 정부는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히는 델타아마쿠로에 논을 개간하는 사업 협약을 중국의 국영기업 중공국제(中工??)6와 체결한다. 중공국제는 약 30억 달러(약 4조 원)에 몇몇 농업 관련 사업을 수행하기로 합의했지만 그 중 완공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중공국제는 한 사업에 대해 최소 1억 달러(약 1300억 원)을 청구했는데 청구액 대부분은 도급업체와 브로커(중공국제가 계약을 따낼 수 있게 도와준 것으로 알려졌다)에게 돌아갔다. 이어질 논의에서 중요한 점은 이런 문제들이 베네수엘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개발 사업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중국-베네수엘라 광둥 석유화학단지는 중요한 사례다. 2012년,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와 PDVSA는 중국 남단의 광둥성에 하루 40만 배럴의 베네수엘라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100억 달러 규모의 석유화학단지를 만들기로 합의한다(중국석유는 지분 60%, PDVSA는 40%를 갖기로 했다). 2014년 완공 예정이었으나 이후 연기됐다. PDVSA는 40% 지분을 매입할 능력이 없었고 결국 두 국영기업의 파트너십은 2018년 깨졌다.


베네수엘라의 사례는 종종 중국 정부의 '부채함정외교'의 사례로 언급되곤 한다. 특히 글로벌 노스 언론에서 이를 다루는 방식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 이런 식의 함정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중국이 베네수엘라나 글로벌 사우스의 다른 고위험군 국가의 자산을 압류하거나 중국 정부가 해당 국가 경제를 조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차관을 제공했다는 증거는 없다. 몇몇 학자들은 베네수엘라의 사례가 오히려 중국이 스스로 만든 '빌려주는 쪽의 함정'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관리·감독이 허술하고 부패가 만연한 경제에 차관을 제공했더니 차관을 상환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다.


중국-베네수엘라 관계는 내정 불간섭 원칙의 중대한 한계(일부는 본질적으로 그 원칙에 따라오는 것이다)를 잘 보여준다. 권력이란 완전히 물질적인 형태의 통제로 이해해선 안되고,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에게 그가 평소라면 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만드는 강제력으로 이해해서도 안된다. 국제정치에서 행위자들간의 관계에는 그들의 상호작용과 행동을 형성하는 '구조적' 조건들이 있다. 중국-베네수엘라 관계의 경우, 권위주의적 개발국가와 사회주의 지대국가의 국가관계를 좌우한 것은 양국 관료들이 발표한 의도나 원칙보다 양국 관계가 금융과 원자재의 교환에 기반했다는 사실이었다. 이후 살펴볼 것이지만 베네수엘라 관료들은 개발금융부터 석유 지대에 이르는 중국의 차관을 사실상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정부의 상태를 조성했다. 결국 베네수엘라의 권위주의 리더십에 대한 중국의 신뢰도와 보다 넓은 관점에서는 내정 불간섭 원칙이 이러한 차관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차관의 도입과 관리에 관련됐던 베네수엘라 고위 관료들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차관 상환에 사용되는 원유의 가격 설정에 대해 협상하는 게 양측 모두에게 중요했다고 강조한다. 이는 처음부터 원유를 차관 상환의 방식으로 상정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중국의 내정 불간섭 원칙도 명백했다. 선불로 원유를 제공받는 계약 외에는 아무런 조건이 없었다. 로드리고 카베사스 전 재무장관(2007~2008년 재임)은 차관으로 중국산 제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조건이 일부 있었다고 회고했다. 2022년 6월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중국은 특정 물품, 이를테면 차량 부품, 전자기기, 그리고 중국의 도움으로 발사한 인공위성 관련 기술 제품 등에 대해서는 중국을 주요 공급자로 하는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이러한 조건은 2010년 합의로 공식화됐고 이에 따라 200억 달러(약 27조 원) 규모의 '그랜드 볼륨' 기금이 생성됐다. 이 펀드의 절반은 미국 달러화로 표기됐으며 나머지 절반은 중국 위안화로 표기돼 앞서 설명했듯 베네수엘라 가구의 가전제품으로 대량의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데 사용될 것이었다. 다른 금융조건으로는 펀드를 사용할 때 중국 은행을 이용할 것 등이 있었다. 양측 모두 제3국 금융기관을 피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양국간 금융 인프라 건설을 추진했다. 베네수엘라경제사회개발은행(BANDES)의 고위 관계자는 중국이 투자 증대 약정, 이자율 등, 장기적으로 중국 기업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상업적 조건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다른 금융조건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카라카스 로이터=뉴스1) 권진영 기자 = 2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자가 "지금 당장 공정한 급여를"이라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카라카스 로이터=뉴스1) 권진영 기자 = 23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자가 "지금 당장 공정한 급여를"이라 적힌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다 중요한 사실은, 베네수엘라 관료들이 중국 차관의 사용에 대해 제도적 감시를 피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고안했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경제사회개발은행장을 지낸 테미르 포라스 폰첼레온은 2020년 인터뷰에서 말했다. "(중국-베네수엘라) 협력기금으로 형성된 관계 덕분에 개발 사업에 사용될 원유 판매 대금은 PDVSA 예산에 전혀 기록되지 않고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중국-베네수엘라 개발기금으로 베네수엘라 정부 관료는 통상적인 예산을 거치지 않고 제도적 감시가 가능한 영역 바깥에서 중국 차관을 사용했다. 게다가 이렇게 확보한 자원은 석유 판매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었고 석유 지대로 취급돼 석유 채굴이 발생하기도 전에 소비됐다. 이로 인해 지대국가 베네수엘라는 석유 판매 대금을 자국 산업에 재투자하기 어려웠다.


전직 베네수엘라 최고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인터뷰에서 밝혀진 것은, 베네수엘라의 정부 각료 및 정책가들이 중국-베네수엘라 개발기금을 비자금으로 여겼고 협력기금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개발사업의 시급성을 핑계로 기술적, 경제적 실현가능성과는 관계없이 BANDES나 대통령실로부터 승인을 얻었다는 것이다. 개발기금은 많은 경우 개인적 횡령을 위한 자금의 저수지로 사용됐다.


이런 행위는 오랫동안 지대국가로 존속했던 베네수엘라의 역사와 정치적으로 권위주의적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했는데 중국의 권위주의적 개발주의와 충돌했다. 이 충돌은 내정 불간섭주의에 더 실질적인 한계를 가져왔다. 곤잘레스-빈센테가 주장했듯 "중화인민공화국에서 현대화의 개념은 국가적 차원에서 측정 가능하거나 식별 가능한 결과와 긴밀하게 연결됐으며 또한 해외에서 특정한 형태의 개발 중재를 선호하게 됐다." 이러한 현대화 개념은 베네수엘라에서 달성이 불가능했다.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은 국가 발전을 국가의 현대화보다는 지대의 재분배로 간주했고 이는 중국의 현대화 개념과 양립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카플란과 펜폴드는 이를 두고 중국이 외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자국의 내정 불간섭주의 외교 원칙을 지키는 한편, 베네수엘라의 차관 상환 가능성을 높이고 개발 사업에서 더 큰 성공을 가져올 수 있는 개혁을 제안할 목적으로 정책 결정 과정에 협력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몇몇 고위 정책가들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관계자들이 폭넓은 정책 조언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정부 내부의 의견 불일치와 관료들 상호간의 불신 때문에 중국 관계자들의 정책 조언을 제대로 따르지 못했다고 했다.


이런 딜레마에 봉착하자 중국은 점진적으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지원을 끊기 시작했다. 전직 베네수엘라 고위 관계자와 석유 업계 근무자들은 중국의 파트너들이 국가가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는 데 필수적인 관료제 내의 일관성과 연속성이 베네수엘라에 결여된 것을 보고 실망했다고 주장한다. 차베스 개인에 맞춰진 정치 체제에서 기술팀은 잦은 인원 교체를 겪었다. 베네수엘라경제사회개발은행의 전직 고위 관계자는 중국 관계자들이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 노력했지만 베네수엘라 측에서 끊임없이 담당자가 바뀌는 바람에 몇 년을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했다고 말했다. 중국의 기술팀은 베네수엘라 관료제의 무능함에 실망했다. 중국의 권위주의적 개발주의는 관리감독과 국가의 역량을 중요시하는데 이는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적 지대추구와 충돌했다.


베네수엘라 관계자들이 인식한 관리감독상 문제에 대한 우려는 중국 정부 문서에도 반영돼 있다. 중국 상무부가 발행한 베네수엘라 투자 가이드를 보면 "베네수엘라 측 의사결정권자의 잦은 교체"를 지적한다. 상무부의 가이드는 "중국의 재정 지원을 받아 베네수엘라에서 경제 및 무역 협력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기업들은 베네수엘라 측이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고 적고 있다. 가이드는 또한 베네수엘라의 부실한 경제 상태도 거론한다.


"현지의 물가상승률은 매우 높고 통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다보니 도급업자의 지출은 상당히 증가한다. 그러나 가격 조정에서 이를 보상받기가 어렵다. 철, 시멘트, 흙, 자갈의 공급은 부족한 데 반해 가격은 계속 오른다. 물자 공급을 기다리며 사업이 중단되는 경우가 잦다."

경제개발에 미치는 영향

중국의 내정 불간섭주의는 국가주권의 정치적 원칙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경제적 결과의 논리에만 치중한다. 민주주의적 거버넌스의 제도적 과정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며 심지어 이것이 파트너 국가의 헌법적 의무일 때도 그렇다. 중국의 내정 불간섭주의 원칙은 철저히 국가 현대화의 유산에 근거한 측정 가능한 결과에 기반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불간섭주의가 무행동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양국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양국이 관계를 확대하기 시작했을 당시, 중국은 베네수엘라를 중국의 남미 투자 전초기지로 삼고 풍부한 에너지원(주로 원유)와 기타 천연자원을 확보하려 했다. 베네수엘라는 중국과의 관계를 통해 자국의 풍부한 원유 매장량을 자국 인프라 및 개발 사업에 활용하고 자국 원유시장의 다변화를 꾀했다. 그러나 중국-베네수엘라 개발기금의 기획에는 감시, 책임성, 민주주의가 결여돼 있었다. 두 나라 모두 자유민주주의에 어떠한 호감도 갖고 있지 않았지만 감시와 책임성의 부재는 양국의 전략적 관계가 목표하던 것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렸다. 게다가 중국의 내정 불간섭주의는 자국이 재정을 댄 사업의 성공을 담보하기 위해 필요했던 행동을 취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석유는 여전히 두 나라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리이지만 베네수엘라 원유를 정제하기 위한 정유소를 중국에 지으려다 실패했던 일과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의 붕괴로 애당초 관계를 맺은 처음의 목적마저 불투명해졌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PDVSA는 광둥성에 석유화학·정유복합단지를 공동으로 건설할 자원이나 전문성이 없었다. 다른 정유소 설립 계획도 결코 실현되지 못했다. 2019년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석유에 대해 제재를 부과하기 시작하자, 베네수엘라는 중국 기업에 원유를 할인 판매하고 중국 기업은 말레이시아 등의 제3국 중개자를 통해 석유를 국제시장에 되팔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 관계자들은 의도와는 달리, 중국의 도움을 요청함으로 인해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했던 병폐를 더 심화시켰다. 베네수엘라의 자원 민족주의자들은 석유가 국제시장을 만족시키는 데에만 사용되고 국가를 위해서는 별다른 발전을 제공하지 않는 고립지 경제에 대해 오랫동안 불만을 표했다. 사실 베네수엘라가 1980년대에 PDVSA를 필두로 추진했던 국제화 정책의 목표는 원유 구매자의 시장 내에 정유소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었다.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이 연결된 수직계열화된 석유 산업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유사한 논리로 석유회사들이 유가를 억제하고 베네수엘라 석유를 다른 나라에 재판매하는 걸 막기 위해 중국에 정유소를 짓고 대형 유조선을 도입하려 했다. 양국이 합의한 인프라 및 석유 사업의 실현이 실패하면서 베네수엘라는 자국 파트너들에 대해 상당히 불리한 입장이 됐다. 베네수엘라는 석유를 보다 큰 폭으로 할인해서 팔고 있으며 제3자에게 큰 비용을 치르면서 수송을 해야 하는데 이는 단지 미국의 제재 뿐만 아니라 베네수엘라의 원유를 정제할 시설이 중국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PDVSA는 중국에 석유를 보다 싼 가격에 팔면서 더 많은 원유를 중국에 보내야 한다. 중국은 이미 가격을 치른 상태기 때문이다.


(멕시코 로이터=뉴스1) 김정률 기자 =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북구 시우다드 화레스 리오 브라보 강둑 캠프에서 베네수엘라 이주 아동들이 추수감사절 음식을 받고 있다.2022.11.25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멕시코 로이터=뉴스1) 김정률 기자 = 24일(현지시간) 멕시코 북구 시우다드 화레스 리오 브라보 강둑 캠프에서 베네수엘라 이주 아동들이 추수감사절 음식을 받고 있다.2022.11.25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향후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차관 제공은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의 글로벌 사우스 내 활동에 대한 최근 학술 연구를 보면 중국의 접근법이 점차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양자간 차관 제공이 줄고 있는 반면 전통적 차관 제공국 및 제공기관과의 파트너십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하에서 개발도상국 정부에 차관을 제공하기보다는 '기부'를 제공하는 양상도 뚜렷하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국영은행에서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대규모 공적 차관을 제공하는 대신 중국공상은행(ICBC) 같은 상업은행을 통한 대출이나 민간 투자를 장려하고 있다. 이는 국가기관의 대출 위험 노출을 분산시키고 대외 채권에 대한 책임을 다른 대출 기관 및 국가들과 나누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개발금융에 대한 계속되는 지원과 세계 무대에서 리더십의 방식 변화를 장려하는 기존의 기조 하에 이뤄지고 있다.


배닉과 불이 지적하듯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중국은 다자주의에 대한 지지를 강화했으며 전통적 열강의 일방적 행위, 제재, 괴롭힘을 포괄적으로 반대했다. 배닉과 불은 중국의 다자주의 방어가 타국의 국가주권에 대한 중국의 존중을 강화하고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타국 지도자들과 직접 논의하도록 만드는 한편, 어느 정도는 미국과 다른 전통적 열강의 제재조치에 기인한 당사국 정부의 정치적 정당성 위기를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고 주장한다. 이는 "양자 동맹을 강화시키려 하면서도 중국을 지도적 입장에 세우는 형태의 다자주의"다. 다시 말해 중국의 행태는 여타 금융기구와 유사해 보이지만 여전히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채무조정을 하는 걸 선호한다.


지난 20년 간 베네수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중국의 개발금융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중국의 지도부와 경제개발 학자들은 개발금융을 통해 협력을 하는 것도 이미 국제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권력의 한 형태라는 걸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보다 책임감 있는 차관 제공을 위해서는 대규모 개발 차관 제공국의 구조적 권력이 국가경제의 생산 역학 내에서 깊이 작용한다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내정 불간섭주의가 중국의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원칙일 수는 있어도 천연자원에 의존적인 국가경제 같은 구조적 경제 여건과 그러한 의존을 더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맺어진 '윈-윈' 협력 합의 앞에서는 한계가 있다. 불간섭주의는 반드시 중립성이나 협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며 책임성과 감독을 해치는 기존의 지대추구적 행위를 강화시키게 되면 오히려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에서 중국의 내정 불간섭주의는 약탈적 엘리트들로 하여금 중국이 원자재를 담보로 빌려준 돈을 거의 아무런 감시 없이 쓸 수 있게 허용했다. 그로 인해 유정이나 인프라에 재투자될 수 있었던 자금이 유실되면서 지대국가 베네수엘라를 더욱 약화시켰다. 이러한 이유로 인프라 및 개발 사업의 재정 계획을 불안정한 원자재 시장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은 (특히 제도와 거버넌스가 부실한 국가에서) 주의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 차관 제공국의 구조적 권력은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원자재를 담보로 한 대출을 조건으로 걸면서 지속불가능한 지대추구형 행위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본 에세이는 노르웨이연구회의 지원으로 수행된 '중국의 다자주의가 아프리카 및 라틴아메리카의 환경, 민주주의 거버넌스에 미친 영향'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로, 연구에 도움을 준 Wei Guo와 Louis-Charles Vaillancourt에게 감사를 표한다.)



Antulio Rosales는 캐나다 뉴브룬스윅대 정치학과 부교수로 라틴아메리카의 천연자원 채취의 정치경제학과 디지털화폐의 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다.


Kelsey Shaw는 캐나다 뉴브룬스윅대 르네상스 칼리지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의 학제간 리더십을 연구했으며 최근 졸업했다.



*이 에세이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4.0 라이센스 하에 발행됐습니다.

중국의 다양한 국제 교류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오픈액세스 저널로 한 해에 두 차례 발행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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