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의학 연구에 조작이 너무 많다. 하지만 학계는 방관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2023.05.12 09:55

The Economist
icon 14min
kakao facebook twitter


2011년, 호주 멜버른의 모나쉬 의대 산부인과 교수인 벤 몰 박사는 한 이집트 연구자가 학술 저널에 발표한 자궁 근종과 불임에 관한 논문이 철회됐다는 공지를 접했다. 학술지는 게재 철회 이유로, 해당 논문보다 먼저 스페인에서 나온 자궁 용종에 대한 연구와 동일한 수치가 들어 있었다고 밝혔다. 알고 보니 저자가 용종 논문 일부를 베낀 뒤 질병만 근종으로 바꾼 것이었다.


몰 박사는 "그때부터 경각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논문 독자로서만의 경각심은 아니었다. 당시 그는 유럽 산부인과 저널의 에디터였고 종종 다른 저널에 제출된 논문도 심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조작된 데이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논문 2편의 심사를 맡게 됐다. 그는 '게재 불가'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1년 후, 그는 똑같은 논문이 의심스러웠던 데이터만 수정해 다른 저널에 실린 걸 봤다.


이후 그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데이터 조작이 의심되는 저자들의 논문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의심 가는 곳에는 꼭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논문은 환자의 특성을 보여주는 표에 짝수만 나왔다. 임상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수치가 기재된 논문도 있었다. 출산을 앞둔 산모를 의도적으로 무작위로 선택했는데도 아기의 성비가 4대 6으로 나오는 기이한 상황의 논문도 있었다. 임상 시험을 놀라운 속도로 마쳤다는 논문은 그나마 흔한 사례였다.

비현실적인 조작

몰 박사와 동료들이 우려스러운 논문을 찾아 해당 논문을 게시한 저널에 의견을 보낸 것만 750건이 넘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거나 조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금까지 그들이 문제를 제기한 연구 중 철회된 것은 80건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의심스러운 연구들이 '체계적 문헌고찰(systematic review)'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체계적 문헌고찰은 기존에 수행된 1차 연구들을 모아, 임상 진료에 정보를 제공한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은 수백만 명의 환자가 잘못된 치료를 받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선택적 제왕절개술을 받는 여성에게, 신생아의 호흡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스테로이드를 주사하는 것이 한 예다. 스테로이드 주사가 태아의 뇌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근거중심의학(EBM)을 장려하는 비영리단체 코크란이 2018년 발표한 문헌고찰이 이 기법의 의학적 근거가 됐다. 하지만 몰 박사와 동료들이 이 문헌고찰을 검토해보니 그들이 신뢰성을 지적했던 연구 3편이 문헌고찰 안에 들어 있었다. 결국 3편의 연구를 제외하고 2021년 수정 발표된 문헌고찰은 제왕절개시 사용하는 스테로이드의 이점이 불확실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래픽=The Economist, PADO

/그래픽=The Economist, PADO


몰 박사 같은 탐정들의 노력으로, 부분 혹은 전체적으로 조작된 논문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리트랙션 워치'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생물의학 부문 논문 1만9000여 편이 철회됐다(그래프 1 참조). 그중 이 분야에서 2022년에 철회된 게 약 2600건으로, 2018년 대비 2배 이상 늘었다. 일부는 의도치 않은 실수로 철회됐지만, 어떤 형태로든 부정행위에 관여된 논문이 대다수였다(그래프 2 참조).


그럼에도 저널이 논문 철회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위의 집계에 따르면 대략 논문 1000편 중 한 편 정도가 철회된다. 그다지 상황이 나쁘지 않은 듯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리트랙션 워치 공동 설립자인 이반 오란스키는 논문 조작을 다룬 다양한 연구들을 볼 때, 논문 50편 중 1편 정도가 조작과 표절 또는 심각한 오류 등 신뢰할 수 없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래픽=The Economist, PADO

/그래픽=The Economist, PADO


논문 조작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몇몇 논문, 특히 임상시험 결과를 다룬 논문은 많은 논문을 생산하는 개인 또는 집단 조작꾼의 소행이다. 몰 박사가 발견한 논문들이 여기 속한다. 다른 유형으로는 소위 '논문 공장(paper mills)'라는 곳에 돈을 주고 조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로 분자생물학 같은 기초과학 분야 논문이 많다. 논문 공장은 보통 기존에 발표된 제대로 된 논문을 베낀 뒤, 논문이 다루는 유전자나 질병만 바꾸는 식으로 조작을 한다.


리트랙션 워치 데이터에 따르면, 가장 많은 논문이 철회된 저자 200명이 1만9000건의 전체 철회 건수 중 4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큰 대학이나 병원의 선임급 연구자들이었다. 연구를 조작한 동기를 공개적으로 밝힌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연구를 조작했던 이들의 고백을 들어보면 왜 다른 연구자들도 그러한 길로 빠져들게 되는지를 알 수 있다.

곳곳에서 번성하는 부정행위

과학 연구는 고난의 행군이지만 그 결과는 연구자의 야심찬 가설에 대해 때때로 실망스러울 정도로 모호한 결과가 나온다. 네덜란드 틸뷔르흐 대학에서 심리학 교수로 재직했던 디데릭 스타펠은 연구 조작이 드러난 후, 자신이 쓴 논문 58편이 철회됐다. 그는 회고록 <페이킹 사이언스(Faking Science)>에서 조작을 하지 않으면 "단순하고 명확하며 아름답고 우아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연구를 조작하는 다른 이들처럼, 그 역시 더 높은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동기에서 논문 조작을 했다. '출판이냐 도태냐(publish or perish)'라는 말은 학계에 만연한 현실을 보여준다. 긴 논문 게재 이력은 승진 또는 더 나은 직장을 얻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학술지들은 강력하고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는 연구를 선호한다. 결국 연구자의 노력 대부분은 경력 관리의 측면에서 볼 때 그냥 낭비되는 것이다.



일부 사기꾼들은 많은 논문을 쏟아내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떠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비밀이 탄로나기 전까지 명예를 누린다. 실험심리학자 도로시 비숍은 이런 사기꾼들 중에는 연구 집단을 자체적으로 꾸리거나 다른 연구 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은퇴한 뒤, 현재 자원봉사로 의심스러운 연구를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연구 네트워크를 구축한 사기꾼의 연구 조작이 탄로나면 그 여파를 동료들이 감당하게 된다. "이런 일로 후배 학자들의 경력이 완전히 망가지는 일이 꽤 자주 일어나죠."


특히 중국에서 이런 문제가 크다. 중국 병원에서 최고의 직위를 얻기 위해 비현실적인 논문 게재량을 채워야 하는 경우가 많고 고급 저널에 논문을 게재하면 거액의 현금 보너스를 받기도 한다. 중국에서 논문 공장이 번성한 게 놀랍지 않은 이유다. 실제로 논문 공장과 연루돼 철회된 논문 거의 전부에 중국인 저자가 들어있다. 학술지에 제출된 논문 중 중국 학술 기관 소속 기고자가 1명 이상 포함된 논문은 약 5분의 1. 그런데 이 5분의 1에서 철회된 논문의 거의 절반이 나왔다.


그러나 논문 공장의 표적이 된 2개의 저널에 제출된 논문들을 검토해보면 비단 중국 만의 문제가 아니다. 70여 개국 저자들이 논문을 조작했다. 그 분포를 보면 중간 소득 국가(중국 포함, 그래프 3 참조)가 가장 많은 건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커다란 임상시험 조작 사례에는 미국과 캐나다, 유럽, 일본 저자의 것도 있었다.


/그래프=The Economist, PADO

/그래프=The Economist, PADO


아직 적발되지 않은 부정행위가 얼마나 더 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비숍 박사는 "우리에게 알려진 부정행위는 솜씨가 서툰 것들뿐"이라며 "아주 정교하게 부정행위를 하면 적발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 조작은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2009년 미국 학술지 PLOS ONE은 연구 부정에 대해 미국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설문 18개를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인정한 응답자는 2%뿐이었지만 위조한 사람을 안다는 응답은 14%였다. 응답자의 3분의 1이 "직감"에 따라, 불편한 데이터를 누락하거나 연구 프로토콜 중 중요한 부분을 바꾼다는 등의 수상한 연구 관행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 중 72%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 동료들을 비난했다.


미국만 유별난 게 아니다. 2016년에 발표된 영국의 학계 설문에 따르면, 거의 5명 중 1명이 데이터를 조작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네덜란드의 연구자들이 참여한 설문에선 생명과학 및 의학 분야 연구자 중 10%가 데이터를 위조하거나 조작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가짜 논문에는 이미 다른 연구를 통해 뒷받침된 치료법을 지지하는 연구가 많다. 때문에 보통은 가짜 논문들이 임상 진료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적다. 그러나 몇몇 사기꾼들은 쓸모없거나 심지어 해롭다고 판명된 치료법을 야기하기도 한다.


그 한 예가 수술을 받는 중환자의 혈압을 높이기 위해 녹말을 주입하는 것이다. 이 처방의 근거가 된 것 중에 독일의 마취과 의사 요하임 볼트가 발표했다 철회된 논문 7편도 있다. 볼트의 조작이 탄로난 후, 2013년 미국 의학협회 저널은 수정된 내용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녹말을 주입하면 환자의 신장 손상을 유발하고 때로는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사 이미지


마찬가지로 유럽에서는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심장병 환자에게 수술 전에 베타 차단제를 10년 이상 투여해 왔다. 2009년에 나온 한 연구가 이러한 관행의 근거가 됐다. 하지만 이 연구 역시 일정 부분 이상 조작된 데이터에 활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요법으로 영국에서만 연간 1만 명이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또한 고용량 설탕 수용액 주입이 두부 손상 후 사망률을 낮춰준다는 체계적 문헌고찰이 철회된 사례도 있다. 문헌고찰에 포함된 특정 연구원의 연구들을 조사해보니, 해당 연구자가 주장하는 임상시험들이 실제로 이뤄졌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공개하지 않는 데이터 원본

조작 논문의 발견은 (몰 박사가 그랬던 것처럼) 한 편의 조작 논문을 우연히 접한 뒤 다른 것들도 살펴보는 식으로 시작되곤 한다. 애버딘대학의 앨리슨 애버넬은 "저자가 쓴 여러 논문을 두루 살펴야만 실체가 드러나는 문제들이 많다"며 "논문 한 편만 봐서 (조작 여부를) 제대로 가려낼 수 없다"고 말했다. 애버넬은 여러 연구 그룹이 발표한 수백 건의 임상시험에 대해 조작 우려를 제기한 단체에서 활동 중이다. 그는 논문에 나오는 치료법의 효과가 비정상적으로 크거나, 참가자의 중도 탈락률이 유별나거나, 동일한 데이터가 여러 임상시험 보고에 등장하는 것 등이 수상한 논문들의 일반적 패턴이라고 말했다. "(의심스러운 논문에서는) 통계적으로 사실상 불가능한 것들이 보이죠."


칼라일 박사는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단일 논문에서 비정상적인 수치를 찾아낼 수 있는 몇 가지 통계적 검사 방법을 만들고 있다. 마취학 저널 에디터이기도 한 그는 이러한 방법을 사용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저널에 제출된 임상시험 연구 526편을 검사했다. 그 결과, 저자가 개별 환자의 근거 수치를 제출하지 않은 연구에서는 전체의 2%에 허위 데이터가 포함된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개별 환자의 근거 수치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엔 그 비율은 44%로 급증했는데 그는 이 중 26%가 '치명적 결함'이라고 판단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꾸준히 검사한다면 조작 논문의 출판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크란의 리사 베로는 논문의 학술지 게재 여부를 심사하는 이들이 "모든 데이터가 담긴 파일과 링크를 제공받지만, 대부분 자료를 살펴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문의 저자들도 '기초 자료를 요청하면 제공하겠다'고 하지만, 2022년에 나온 조사에 따르면 93%가 다른 연구자의 자료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의 이안 로버츠는 "연구의 원본 데이터를 요청해보면 '우리가 정말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데이터를 요청했다가) 홍수와 지진, 흰개미, 노트북 도난 등 데이터 손실과 관련된 온갖 변명을 들어봤다고 했다.

풍경 위의 오점

코크란은 철회된 연구들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관리중이다. 그리고 필요한 때마다 체계적 문헌고찰도 수정한다. 그러나 문헌고찰이 수정되는 것은 드문 일이다. 논문 철회 사실이 온라인 상에 눈에 띄게 표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보니 여전히 유효한 것처럼 계속 인용되는 것도 원인에 속한다. 무관심도 한 몫을 한다. 문헌고찰에 포함된 연구 중에 조작된 연구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수정을 꺼리는 이들이 많은 것이다. 이를 두고 맨체스터 대학의 생물통계학자인 잭 윌킨슨은 "당시에는 그 내용이 맞았으니까"라는 식의 태도라고 말했다.


애버넬 박사와 동료들은 철회된 임상시험 논문 27편을 대상으로 그 영향력을 평가했다. 해당 논문들은 88개의 체계적 문헌고찰 및 임상 지침에 포함되어 있었다. 철회된 임상시험 논문을 제거할 경우, 88개의 문헌고찰 중 절반의 결론이 바뀔 수 있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었다. 그래서 연구진은 모든 문헌고찰의 저자에게 논문 철회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답장은 절반뿐이었다. 1년이 지났지만, 포함된 논문 철회로 인해 결론이 달라지리라 판단했던 44건 중 39건의 문헌고찰에서는 아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논문 공장에서 나온 논문에 대한 최근의 성과도 비슷하다. 이러한 논문 상당수는 진지한 연구자라면 누구나 거를 정도로 엉성하고, 돈만 내면 무엇이든 실어주는 무명 정기간행물에 게재된 것들이 많다. 하지만 주요 저널에도 실릴 수 있을 만큼 견고해 보이는 것들도 일부 있다. 그런데 이렇게 출판된 논문들이 수백 편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출판사 6곳이 발행하는 여러 주제의 저널과 그 저널에 제출된 논문, 5만3000여 편을 대상으로 한 분석이 있다. 분석 결과, 저널별로 제출된 논문 중 2~46%가 수상한 것으로 분류됐다고 한다.


논문 공장이 활개치는 분야가 분자생물학 논문이다. 분자생물학 논문에는 단백질 연구에 사용되는 실험 기법, '웨스턴 블롯(특수 단백질 검출 검사)' 사진 자료가 종종 들어간다. 예컨대 이런 사진은 특정 약물이 인간 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논문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웨스턴 블롯은 완전히 동일한 사진을 만들 수 없다. 따라서 세밀하게 관찰해보면, 중복 사용된 사진을 찾아낼 수 있다. 미생물학자이지만 현재는 조작 논문 탐지를 전업으로 삼고 있는 네덜란드의 엘리자베스 빅은 조작된 논문을 찾는 데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는 최근 기고에서 "패턴을 확인하는 눈과 다량의 카페인"을 가지고 10만여 편의 논문을 분석했고, 그 중 6500편에서 오류 또는 부정행위로 보이는 웨스턴 블롯 증거를 찾았다고 밝혔다.


기사 이미지


위조된 웨스턴 블롯을 연구에 사용하는 것은 임상시험 조작보다는 작은 문제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 알츠하이머의 원인에 관한 일련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논문들은 미네소타 대학 실베인 레스네가 주 저자로 참여한 것들이다. (미네소타 대학은 현재 이 사안을 조사중이다.)


최근 빅 박사와 다른 연구자들은 이들 연구에서 웨스턴 블롯 사진을 포함해 이미지 조작 증거를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레스네 박사가 2006년 '네이처'에 발표한 기념비적 연구의 결과를 재현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하기도 했다. 레스네 박사의 이 연구는 알츠하이머와 두뇌의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연관 가설의 결정적 근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알츠하이머 연구에서 대단히 많이 인용된 연구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연구가 플라크를 만든 단백질인 특정한 '아밀로이드 베타'를 지목함으로써 이 가설에 대한 과학적 탐구 방향을 오도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네이처는 2022년 7월,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사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유전학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나타난다. 시드니 대학에서 암을 연구했던 제니퍼 번은 작년 동료들과 함께 연구를 한 편 발표했다.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 'Seek & Blastn'을 활용해 약 1만2000편의 논문에 나오는 NSRS(뉴클레오티드 서열 시약)라는 물질의 세부 내용을 조사한 연구다.


NSRS은 DNA 또는 RNA의 작은 조각으로 많은 유전자 연구에 등장한다. 이들은 특정한 자연적 유전 물질에 결합하도록 만들어졌다. 번의 연구팀이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논문에서 NSRS의 염기 서열을 추출했다. 그리고 이를 공개 염기 서열 데이터베이스인 Blastn과 비교해, 의도한 유전자 표적과 일치하는지 확인했다. 연구팀은 논문 중 6%에서 논문 공장과 연관됐다고 의심할만한 오류를 찾아냈다.


조작된 웨스턴 브롯만큼, 조작된 유전학 연구 역시 많은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 번 박사 연구팀은 인간 유전자에 관한 논문 10만 편 정도가 논문 공장과 관련된 것으로 보이고, 이중 4분의 1은 "향후 임상 치료 개발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규율을 규율하기

흔히들 과학은 스스로를 교정할 수 있다고 한다. 어떤 연구가 제기하는 주장이 중요한 것이라면, 그만큼 후속 연구도 많이 이뤄질 것이다. 그러다 선행 연구를 재현하지 못하거나 그 주장에 부합하는 후속 연구가 실패하면서 그 진위가 가려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연구 조작은 진실을 은폐할 수 있다. 어떤 과학자가 데이터를 조작했을 때 그 연구의 공동 저자, 즉 가장 가까운 이들조차 눈치채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질병에 대한 복합 연구에는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한다. 이 말은 서로가 다른 연구자의 분야에는 전문가가 아니란 뜻이다. 그러다보니 비숍 박사의 말처럼 "다른 사람이 제공한 데이터를 그냥 믿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출판한 논문에서 데이터 조작이 밝혀진 후에도, 저널이나 출판사가 자체 수정에 착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윌킨슨 박사는 저널과 출판사가 문제를 인지했을 때 대응하는 방식은 조사 여부는 물론, 결정에 드는 시간, 그 후의 조치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천차만별이라고 말했다.


애버넬 박사는 자신의 경험상 보통 저널이나 출판사 측에서 우려를 표명하거나 논문을 철회하기까지 2~3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논문 철회를 받아내는 유일한 방법은 학술지에 꾸준히 반복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 뿐입니다. 모든 우려 사항을 자세히 담은 이메일을 한 번 보내는 것으로는 그 누구도 조치를 취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베로 박사는 코크란의 많은 리뷰어들이 문제가 있는 연구를 발견했을 때 해당 저널 에디터에게 이를 알리는 것을 시간 낭비라 생각하며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저자들도 에디터에게 서한을 보냅니다. 하지만 아무 답변도 없거나, 에디터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전혀 조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가지 문제는 저널에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전문성을 갖춘 통계학자 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철회 여부를 조사하는 것보다는 더 많은 논문을 출판하는 게 돈이 된다. 또 논문을 조작한 이들 중에 호전적인 사기꾼이 소송을 거는 것도 두려운 일이다. 때문에 그들은 사기꾼으로 의심되는 저자가 소속된 기관에 책임을 떠넘기곤 한다.


미국에서는 연방 보조금을 받는 기관들(연구를 진지하게 하는 기관 대부분은 보조금을 받는다)은 제기된 혐의를 60일 이내에 조사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사를 수행했던 일리노이 대학의 윤리학자 C.K. 건설러스는 많은 조사가 1~2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일단 해봐

조사가 지연되는 것중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 중 하나는 복잡한 분석을 수행할 유능한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운 경우다. 논문 한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의심스러운 논문이 추가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건설러스 박사는 "사안을 급박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엔 목표가 과학 문헌의 무결성을 지키는 게 아니라 연구자 해고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대학은 해고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보통 침묵한다.


건설러스 박사는 미국 대학의 조사방식도 개선할 점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관련 규정이 없는 곳도 많다. 비숍 박사는 서구 국가에선 연구 부정으로 해고된 이들이 소속을 바꿔 같은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 대학의 앤드류 그레이와 그의 동료들은 이란 카산 의과학 대학 소속 자톨레 아세미가 이끄는 연구팀의 논문 172편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이와 함께 자신이 소속된 대학의 부총장 7명 중 5명이 이들 논문 중 최소 1편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고 밝혔다.


대학에 내부 고발자가 있다면 연구 조작을 처음부터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은 이러한 내부 고발을 위한 동기 부여에 적극적이지 않다. 대학의 규정들을 보면, 보통 허위 주장에 대한 처벌 규정은 많다. 하지만 부정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줄 의무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기사 이미지


이런 상황에서 빅 박사가 내부 고발자로서 보여준 인내심은 독보적이다. 그는 마르세유에 있는 한 대학병원 교수로 재직하다가 지금은 은퇴한 디디에르 라울트 박사의 논문 60여 편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온라인 협박을 받았고, 라울트 박사의 동료가 그의 집 주소를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라울트 박사는 그를 협박 및 괴롭힘으로 고소했다. 이 고소를 두고 정부 기관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는 "과학적 논란과 비판의 사법화"라고 비판했다. 결국 빅 박사는 2021년 존 매덕스 상(영국 과학 비영리단체 SAS와 네이처가 함께 수여한다)을 받았다. "건강한 과학과 증거를 지킨 용기와 정직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희망적인 조짐은 있다. 코크란은 철회된 논문 데이터베이스 관리만이 아니라, 논문의 무결성 확인도 시작했다. 이에 따라 최근 코크란은 조산 예방 약물에 대한 문헌고찰에서 44개의 연구를 제외했다. 문헌고찰 초기 자료에 포함된 연구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연구를 걸러낸 것이다.


영국 국립보건의료연구원이 '인스펙트-SR'에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인스팩트-SR은 윌킨슨 박사가 운영 중인 프로젝트로 체계적 문헌고찰의 무결성 검사 방법을 개발한다. 또한 출판산업 협회 STM은 제출된 논문에서 조작을 탐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이 작업을 이끄는 조리스 반 로섬은 중복 사용된 사진과 여러 학술지에 동시 제출된 논문, 해당 주제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저자 등 논문 공장의 일반적인 수법에 대한 단서를 에디터에게 제공하는 게 이 시스템이 구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윌킨슨 박사나 반 로섬 박사는 모두 조작자들과 이들을 잡기 위해 이들 사이의 군비 경쟁을 우려한다. 이런 우려는 챗GPT처럼 점점 더 정교해지는 인공지능(AI)을 통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최근 의학 연구 초록 50편을 로봇에게 만들게 한 연구에서, 인간 리뷰어나 AI 리뷰어 모두 로봇이 만든 논문의 3분의 1을 식별해내지 못했다.

신뢰하라. 하지만 검증하라

결국 과학적 기록에서 가짜를 걸러내는 일은 출판사에게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의지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임상시험 논문을 통계적으로 검증하려면, 스프레드시트에 특정 데이터를 입력하는 등 고된 수작업이 많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저널이 수익을 줄여가며 전담 직원을 고용해야 한다.


수 년간 조작된 논문을 철회시키기 위해 많은 학자들이 노력해 왔다. 이들은 부정 행위를 탐지해내는 방법을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큰 변화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버츠 박사와 몰 박사는 SNS와 언론이 일부 국가에서 규제를 받는 것처럼, 학술지도 기준에 따라 출판물에 대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분야에서 수많은 연구 부정 행위에 경종을 울린 영국의 심장 전문의, 피터 윌름서스트는 데이터를 조작하는 이들에게 형사 처벌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설러스 박사는 대학들이 연구 부정행위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기를 원했다. '출판이냐, 도태냐' 관행이 재앙의 원인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했다.


이 해결책들 중 그 어느 것도 간단하지도 효과가 빠르지도 않다. 하지만 해결을 회피하면, 해악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런던 킹스칼리지의 스튜어트 리치는 저서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s)>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과학을 위하여, 과학자들이 서로간의 신뢰를 조금 줄여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1843년 창간돼 국제정세와 정치, 경제, 사회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주간지. 정통 자유주의 성향의 논평, 분석이 두드러지며 기사에 기자의 이름(바이라인)을 넣지 않는 독특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PADO가 가장 탐독하는 매거진이기도 합니다.
 
clos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