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됐을 때 서방 방산업체들은 최신 무기를 우크라이나로 서둘러 보내 우크라이나가 훨씬 강력한 적을 밀어내는 데 도움을 줬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실전에서 검증된 기술의 흐름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뮌헨 인근의 눈에 띄지 않는 한 창고에서는 새롭게 문을 연 한 공장이 이제 우크라이나 고유 기술이 적용된 드론을 생산하고 있다. 린자(Linza)로 알려진 이 드론은 우크라이나의 전파 방해 대응 모듈을 탑재하고 있으며, 인공지능을 이용해 길을 찾고 정찰 임무나 보급품 전달, 지뢰 설치 등에 투입될 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 독일-우크라이나 공동 생산 라인이 우크라이나 전장을 우선 지원하지만, 완전히 가동되면 더 넓은 유럽 방위시장에 공급하는 것이 목표다.
유럽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최전선 노하우를 앞다퉈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드론과 전자전에 지배되는 새로운 전장 환경에 맞게 나토(NATO) 군대의 체질을 바꾸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최신 무기조차 몇 달 만에 구식이 될 수 있다.
독일과 같은 국가들에게 '우크라이나와 함께 만들자(Build With Ukraine)' 이니셔티브는 정부 보조금을 우크라이나의 혁신과 결합해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고 어려움에 처한 공장들을 재정비할 수 있게 해준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동맹국들이 비용을 부담한 무기를 더 많이 병력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뮌헨 인근의 이 공장은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문을 열었으며, 우크라이나와 유럽 방산기업들이 올해 말까지 가동할 계획인 최소 10개의 공장 가운데 하나다.
이곳 노동자의 약 80%는 우크라이나인으로, 자국이 전면 침공을 받은 이후 독일로 온 피란민과 오랫동안 독일에 거주해 온 이들이다.
15년 전 우크라이나에서 독일로 와 오페어1(au pair)로 일했던 안나는 현재 이 합작 사업에서 인사 담당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여기에 온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유용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고, 우크라이나와의 연결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며 "지금 내가 조립하고 있는 이 드론이 고국에서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젤렌스키 대통령은 독일과 미국에 기반을 둔 드론 소프트웨어 기업 오테리온(Auterion)과 우크라이나 드론 제조업체 에어로직스(Airlogix) 간의 또 다른 독일 내 파트너십도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독일 정부 보조금으로 수억 유로를 지원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덴마크에서는 우크라이나 미사일과 드론 제조업체인 파이어포인트(Fire Point)가 남부 유틀란트 지역에 로켓연료 생산시설을 설립하고 있다고 덴마크 정부가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략 담당 고문이자 군수 산업을 총괄하는 올렉산드르 카미신은 "'우크라이나와 함께 만들자' 모델은 우리에게 중요하다"며 "동맹국들이 비용을 부담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더 많은 무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이 모델이 유럽 지도자들이 자국을 더 잘 방어할 수 있는 현대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드론의 영공 침입과 사보타주로 의심되는 공격, 그리고 자국 안보에 대한 미국의 공약에 대한 불확실성에 충격을 받은 유럽 국가들은 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수천억 유로 규모의 추가 지출을 약속했다. 2025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대부분 중단되면서, 현재는 유럽이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약 1060억 달러에 해당하는 900억 유로 규모의 지원 패키지를 추진하고 있으며, 여기에 영국과 노르웨이의 추가 자금도 더해질 예정이다.
독일의 카테리나 라이헤 경제장관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새로운 자금지원 모델을 주도해 왔으며 "우리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빠르게 배워야 한다. 그곳은 새로운 무기 체계를 위한 세계 최대의 시험장이며, 그들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혁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현재 매달 1만 5000개의 전문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독일 자동차 및 기계 제조업체들과 우크라이나 방산기업 간의 협력을 구축하기 위해 키이우를 방문했다. 라이헤 장관은 독일이 이러한 프로젝트에 자금과 방대한 산업 역량을 제공하고, 우크라이나는 전장에서 검증된 기술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헤 장관은 "우리는 이 역량을 우크라이나를 돕는 데 사용해야 할 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드는 데도 활용해야 한다"며 "경제정책과 안보정책은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는 올해 우크라이나 방위를 지원하기 위해 110억 유로 이상을 배정했다. 베를린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대 20억 유로가 우크라이나의 방위산업과 함께 독일 내 방위산업에도 보조금 형태로 투입될 예정이다.
독일의 오테리온(Auterion)과 우크라이나의 에어로직스(Airlogix)는 4월부터 우크라이나와 독일, 그리고 다른 나토(NATO) 국가들에 인공지능(AI) 기반 중거리 드론을 공급할 예정이다.
뮌헨 인근에 최근 문을 연 공장은 독일 드론 제조업체 퀀텀시스템스와 우크라이나 군사 테크기업 '프런트라인 로보틱스'의 합작 사업으로, 생산에 들어간 첫 번째 '우크라이나와 함께 만들자' 프로젝트다. 초기 계획은 매년 1만 대의 린자 드론을 생산하는 것이다.
2022년 전면전이 시작됐을 때 퀀텀시스템스는 자사의 날개형 정찰 드론 '벡터(Vector)'를 우크라이나 군에 공급했다. 이 드론은 2022년 5월 루한스크 지역의 시베르스키-도네츠 강을 건너려던 러시아 대규모 기갑 부대가 파괴된, 러시아에 가장 큰 전술적 타격 가운데 하나를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몇 달 지나지 않아 러시아의 전자전 능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벡터 드론은 구식이 됐다.
합작사 대표 마티아스 레나는 "우리는 반복적으로 개선하고 적응해야 했으며, 이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우크라이나 현지가 아니라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기업들은 제품을 우크라이나에 보내고 나면 그 이후는 현지에 맡겨 버리지만, "우크라이나에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훨씬 더 빠르게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퀀텀시스템스가 우크라이나에 처음 설치했던 소규모 지원 작업장은 이후 직원 450명을 둔 완전한 생산 시설로 성장했다. 또한 이 독일 기업은 지난해 키이우 인근의 엔지니어 네 명이 2023년에 설립한 스타트업 '프런트라인 로보틱스'에 투자하게 됐다. 생산 규모가 확대되면 뮌헨 인근 시설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유럽 각국 군대에도 드론을 공급할 예정이다.
전 독일군 장교 출신인 레나는 "모든 서방 군대가 현재 드론 기술에서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그 격차를 메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독일에서의 생산 비용은 우크라이나보다 약간 더 높을 뿐이며, 러시아의 폭격에 대한 우려도 제거할 수 있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린자 드론의 가격은 중국 기업 DJI가 생산하는 상업용 매빅(Mavic) 드론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되, 군이 요구하는 전파 방해 대응 기능과 기타 장비가 기본적으로 탑재될 예정이다.
러시아 침공 이전부터 상당한 방위산업 기반을 갖고 있던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 4년 동안 방산 기업들이 특히 장거리 공중 드론, 해상 드론, 미사일 분야에서 정교한 새로운 능력을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이들 방산 시설은 러시아의 공격 목표가 되는 경우가 잦고, 러시아의 폭격으로 발생한 전국적인 정전 사태의 영향을 받고 있다.
'프런트라인 로보틱스'의 사업개발 책임자이자 퀀텀시스템스와의 합작사에서 우크라이나측 최고책임자인 미키타 로즈코프는 자사 생산시설이 러시아 샤헤드 드론 14대의 일제 공격을 받은 일을 떠올렸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장비 일부가 파손됐다. 많은 우크라이나 방산 업체들은 짧은 시간 안에 생산 시설을 옮길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크고 값비싼 설비에 투자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로즈코프는 "우리가 직면한 진짜 과제는 전시 상황의 위험 속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이 정교한 제품을 어떻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느냐였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독일)에서는 물론 위험의 성격이 다르다.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맞을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여전히 침투 가능성을 우려해야 하며 이에 대한 대응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확한 위치가 비밀로 유지되고 있는 이 공장의 대부분 직원들은 러시아 정보기관에 추적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자신의 성명을 공개하지 않거나 얼굴 촬영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독일 영토에 우크라이나 방산 공장이 등장하자 러시아 국영 TV 선전가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한 방송 진행자는 아돌프 히틀러를 흉내 내며 무고한 러시아인의 생명을 앗아가는 도구를 만드는 독일을 비난하기도 했다.
이 시설에서 드론 시험을 담당하는 엔지니어 드미트로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세 차례 부상을 입은 뒤 2024년 아내와 자녀와 함께 독일로 왔다. 그는 "우리의 동기는 분명하다.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라며 "예전에는 무기를 들고 그 일을 했고, 지금은 여기 공장에서 그것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시절부터 방위산업의 핵심 기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스탈린 사후 정권을 잡은 니키타 흐루쇼프 서기장은 우크라이나를 방산 중심지로 집중 육성했습니다. 그 결과 1991년 독립 당시 우크라이나는 구소련 방산 기업과 인력의 약 30%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현재도 독자적으로 제트 엔진을 생산할 수 있는 소수 국가 중 하나일 정도로 그 기술력은 상당합니다.
이러한 탄탄한 기반 위에서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방산은 드론 등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에 맞춰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재군비에 나선 독일 등 유럽연합(EU)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의 신흥 방산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3월 1일자 보도는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유럽 국가들이 자금 지원을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실전 기술을 이전받는 방식의 '방산 결합'을 발 빠르게 추진하는 모습을 조명합니다.
한편으로 유럽의 이러한 움직임은 방산에서의 '메이드 인 유럽' 추진과 결합해 한국 방산의 유럽 수출 가능성을 낮출 것으로 보입니다. 방산은 결국 국가 간의 거래이고 유럽 또한 자국 내 방산 인프라 확립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시점에, 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순간에 아무런 협력을 제공하지 않은 한국에게 유럽이든 우크라이나든 자국 방산의 문호를 열 가능성은 그리 커보이지 않습니다.
전쟁이 점차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의 실전 경험을 전수받기 위한 각국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물론 종전 이후 러시아로부터 관련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한은 이미 1만 명 이상의 병력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장에 파병해 현대전을 직접 경험했으며, 여기서 얻은 실전 교훈을 자국의 전투 및 전쟁 교리에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 분명합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녘에 날아오른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황혼이 곧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시대의 교훈을 얻기 위한 비상(飛上)을 서둘러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