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푸틴과 러시아정교회의 은밀한 제휴

기사이미지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 (현지시간)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열린 정교회 부활절 예배에 참석해 촛불을 들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3.10.20 12:12

Foreign Affairs
icon 12min
kakao facebook twitter

정치와 종교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테마였습니다. 근대적 '정치'를 발견했다고 평가받는 마키아벨리는 근대 공화주의의 고전 '로마사논고'의 상당한 지면을 종교 문제에 할애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의 독자성을 확보하기 위해 중세적 교회가 정치의 영역에서 물러나 순수한 영혼의 영역만을 다루는 원래의 기독교 모습으로 돌아가길 원했습니다. 종교가 정치와의 제휴를 끊고 영혼의 사적 영역으로 물러날 때 공(公)과 사(私)가 분리되어 공을 다루는 국가도 사를 다루는 시민사회도 각각 자율적으로 됩니다. 이것이 서유럽 근대 민주주의의 궤적이었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정치와 종교가 밀접하게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종교적으로 되며, 종교는 정치적으로 됩니다. 포린어페어스 9월 14일자 기사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지적합니다. 러시아 정교회가 어떻게 정치에 관여하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러시아 정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이 기사를 통해 한국의 정치-종교 관계는 어떤지 한번 돌아볼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난 7월 23일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교회당인 오데사의 정교회 대성당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심각하게 훼손을 입었다. 이 공격은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가지는 수수께끼 하나를 다시 한번 조명했다. 러시아는 이웃 나라를 공격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 대부분이 같은 정교회를 믿는 나라를 공격했던 것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군사작전에서 자기 자신의 종교를 공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점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교회의 사제들은 침공을 옹호하고 있고 해외의 정교회 지도자들은 대체적으로 비판을 삼가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 정교회와 푸틴 정권이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푸틴 정권 초기부터 정교회는 러시아 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왔고 러시아 정부 및 군과의 오랜 연계를 강화해왔다. 이번 전쟁이 시작된 후 1년 반 동안 정교회는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가 러시아 정부의 전쟁 목표를 활발히 옹호하는 등 전쟁 지지 캠페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이러한 국내적 지지 말고도 좀 덜 알려져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푸틴이 해외 정교회와 신자들로부터도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 다수는 서방에 거주하고 있다. 정교회는 미국에 2380개의 교구가 있고, 41개의 수도원과 38개의 수녀원이 있다. 신도 수는 아직 적지만(최근의 추정치에 따르면 2만5000명 정도), 서방 주요 도시들에도 교회당을 두는 등 교구의 수가 매우 많다 보니 지리상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크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침공 직후, 북미의 한 정교회 지도자는 전세계 신도들에게 러시아의 침공을 지지해달라고 요청했다. 유럽에서는, 서방에서 가장 유명한 정교회 주교 한 명이 동료 기독교인들에 대해 저질러진 만행을 거론하면서 러시아 군이 아니라 우크라이나를 비난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교회 일부 조직이 러시아 정보부 및 정부와 연결되어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야심찬 작전을 펼쳐왔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작전이 계속되자 미국 정부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금년 초 FBI는 미국 정교회 내부 채널을 통해 러시아가 교회를 이용해 서방에 첩보망을 구축하려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필자들이 접촉한 정교회 사람들은 러시아 및 그리스 정교회 교구에 배포된 FBI 문건을 보여줬다. 이 문건은 러시아 정교회 대외관계부서의 한 고위급 인사를 지목하면서 그의 행위를 공개했다. FBI는 그가 러시아 정보부와 연결되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FBI 문건에 따르면, 정교회가 전문가들이 추측하고 있는 것보다 푸틴 정부에 더 밀착해 있고, 이러한 점이 러시아 정부의 해외 영향력 강화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교회가 서방 국가들에서도 확고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정교회와 러시아 정부의 제휴는 해외에 푸틴 반대세력를 건설하는 노력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의 방파제, 푸틴의 기회

정교회가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점이 아니다. 수 세기 동안 정교회는 제정 러시아에서 소련을 거쳐 푸틴의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정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다. 18세기부터 러시아혁명까지 러시아 차르(황제)는 러시아 정교회의 수장이었고, 정교회는 러시아 제정(帝政)에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러시아 교회의 정통성1은 모스크바가 "세 번째 로마"로서 고대 로마(첫 번째 로마)와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두 번째 로마)을 계승했다라는 관념에 기반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은 러시아 우월주의의 민족주의-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떠받치고 있고, 반대로 이 이데올로기는 정교회의 영향력을 떠받치고 있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따라 러시아 정교회의 사명은 차르를 받들고 신성한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공산주의 통치가 볼셰비키 혁명 이후 교회 지도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교회의 영향력을 전반적으로 해체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이러한 성격을 바꿔내지는 않았다. 2차세계대전 기간 중에 소련 지도자 스탈린은 정교회에 소련의 방어에 인민들이 나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정교회 지도자들은 이 요청해 응했는데, 이들이 요청에 흔쾌히 응한 것은 기회주의적으로 눈치를 봤던 것이 아니라 소련의 이데올로기가 프롤레타리아 지배 및 보편적 공산주의에서 러시아제국의 영광스러운 기억을 찬양하는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이동해가고 있음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나치 독일과의 파괴적 전쟁에서 병사들이 기꺼이 목숨을 바치도록 만드는 데에는 민족주의가 훨씬 효과적임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정교회는 이러한 생각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냉전 시대의 마지막 얼마동안, 소련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무신론을 내세웠지만 정교회와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우리 필자 중 한 명(솔다토프)의 할아버지는 1980년대 초 소련군의 고위급 인사였는데, 모스크바의 옐로코보 대성당에서 거행되는 정교회 부활절 미사에 초대받은 것을 대단한 자랑거리로 생각했다. 당시 이 대성당이 러시아 정교회의 주교회당이었고, 이곳의 부활절 미사에 초대받았다는 것은 엘리트 신분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던 것이다. 또 KGB는 정교회를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단지 감시를 위한 것은 아니었고 사제나 신도들 중에서 첩보원이나 정보원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그들을 면밀히 조사하기도 했던 것이다.


KGB가 정교회 사제와 신도들 사이에서 우군을 찾으려 했던 것은 서방이 자신들을 계속해서 위협하고 있고 모스크바를 무너뜨리려는 수많은 적들이 호시탐탐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KGB와 정교회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 정교회는 가톨릭교회가 동쪽으로 팽창을 획책하고 있다고 의심했고, 서방이 슬라브문명에 자신들의 종교를 도입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KGB가 보기에, 러시아 정교회는 외부 영향에 대해 오랫동안 불안감을 품어왔기 때문에 서방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방파제로 동원하기에 적격이었던 것이다.


정교회와 공안 기관들의 밀착은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1990년대의 민주화는 러시아 사회를 구석구석 변화시켰지만, 두 개의 조직만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 하나가 KGB인데, 몇 개로 나뉘어지긴 했지만 예전과 똑같이 작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정교회였다. 민주주의 개혁파와 자유주의적 사제그룹이 러시아 정교회의 근본적 개혁을 부르짖었지만 그들의 노력은 전혀 성과가 없었다. 오히려 정교회는 새로 집권한 푸틴에게서 새로운 지원자이자 보호자를 찾아냈다.


푸틴 정권의 초창기에 이제는 FSB로 이름을 바꾼 KGB가 정교회의 영향력을 보호하는 노력에 나섰다. 2002년 FSB는 간첩행위 명분으로 다섯명의 가톨릭 신부를 국외추방 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정교회는 FSB에게 축복을 내렸다. 그해 말에 '신의 성스러운 지혜 성 소피아 대성당'이 FSB의 모스크바 본부 가까이에서 재개장했다. 총대주교 알렉세이 2세가 성 소피아 대성당 재개장 행사에 직접 참석했고, 당시 FSB 수장이었고 현재 푸틴의 안보위원회 위원장인 니콜라이 파트루셰프도 이 자리에 참석했다.


푸틴의 보호는 당연히 공짜가 아니었다. 푸틴은 정교회가 국내외 활동을 통해 정권의 안정에 기여해줄 것을 기대했다. 처음부터 푸틴은 서방에 거주하는 러시아인들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려 했고, 이를 위해 그는 해외 러시아정교회 통제 작업을 직접 챙겼다.


해외소재 러시아정교회는 볼셰비키 혁명기에 백군(白軍)의 잔당이 해외에서 자리 잡으면서 만들어져 일반적으로 '백교회'(白敎會)로 불렸다. 반면 해외에 자리 잡은 백군 잔당들은 소련 국내에 있는 정교회를 이미 KGB가 접수해버렸다고 해서 '적교회'(赤敎會)라 불렀다. 1951년 이후 백교회는 뉴욕의 파크애비뉴와 이스트 93번가 코너에 주교회당을 두었고, 냉전기 내내 모스크바의 정교회와는 완전히 연락을 끊고 독립적으로 활동해왔다. 백교회의 라이벌인 적교회도 뉴욕 이스트 97번가에 성 니콜라스 성당을 가지고 있었다.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슬라브의 전도자인 성 키릴과 메도디우스의 날을 맞아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만나고 있다. 2023.5.25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슬라브의 전도자인 성 키릴과 메도디우스의 날을 맞아 러시아 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와 만나고 있다. 2023.5.25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푸틴은 정권을 잡은 뒤 해외의 러시아 정교회를 모스크바 총대주교 아래에 두기로 결심했다. 푸틴은 백교회 사제들을 포섭하는 작업을 직접 지휘했다. 한번은 그가 백교회의 수장에게 선물을 보낸 적도 있는데, 그 선물은 마지막 차르인 니콜라스 2세와 러시아 황실 가족과 함께 볼셰비키 혁명가들에 의해 처형된 마지막 황후 알렉산드라의 엄청나게 큰 성화(聖畵)였다. 이 성화를 보냄으로써 푸틴은 이제 러시아 제정의 기억을 다시 살려야 할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2007년 5월, 백교회와 적교회는 모스크바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에서 멋진 행사를 갖고 '교회법적 일치서약'이라고 불리는 합의에 서명했다.


이후 해외의 러시아정교회는 러시아의 대외정책을 지지했고 선전선동 활동에 참여했다. 예컨대 2014년에 러시아정부가 후원하는 '불멸 연대(聯隊)' 행사가 미국에서 뉴욕 성 니콜라스 교회의 도움을 받아 열렸는데, 전승기념일을 맞아 러시아인들이 2차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혈육들의 사진을 받들고 행진하는 행사였다. 하지만 해외의 러시아정교회는 이외에도 러시아 정보부를 도와 일하기 시작했고, 서방 곳곳에 친러 세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몇 년 전, 이러한 시도는 FBI를 위시한 서방 공안기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총대주교의 계획

2023년 봄 FBI는 6쪽의 공지사항 문건을 미국내 정교회 사람들에게 배포했는데, 문건의 제목은 '러시아 및 동유럽 정교회를 노리고 있는 러시아 정보기관'이었다. FBI 마크가 인쇄된 이 경고 문건은 러시아정교회의 대외관계 기관인 '대외교회관계부'의 고위급 인사 한 명의 이름과 사진을 적시하면서 이 사람이 "민간인으로 위장은 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 정보기관원"이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적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그가 미국에서 수행하려는 일은 러시아 및 기타 정교회 사제그룹 안에서 첩보원 및 정보원으로 포섭할 사람을 물색하는 일이었다. FBI 국내언론 담당 공보관은 이러한 문건의 존재와 이 문건에 담긴 정보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지만, FBI가 "범죄 행위와 싸우기 위해 정교회 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협조를 요청하고 있고" "위협적이거나 의심스러운 활동을 목격한 분들에게는 신고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구할 수 있는 정보에 한정해 살펴보면, 이 문제의 러시아인은 모스크바에서 훈련을 받았고, 20년 이상 정교회 '대외교회관계부'에서 일했다. 그는 이러한 일을 하면서 해외방문 기회를 많이 가졌는데, 미국도 자주 방문했다. FBI 문건에 따르면, 2021년 5월 그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미국의 세관 및 출입국 관리들에 의해 조사를 받았다. 이 러시아 관리는 공식적으로 구속되거나 기소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후 FBI가 이 조사 과정에서 나온 문서들을 조사해본 결과 그는 "정보 문서들"을 소지하고 있었다. 문서 일부는 러시아의 대외정보국인 SVR과 군정보기관인 GRU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 문서들 중 하나는 "3급비밀"이라고 표시된 메모였는데, 정교회와 SVR, GRU, FSB 등 러시아 정보기관 사이에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에 대한 대략적 내용을 포함하고 있었다. 정교회와 정보기관들 사이의 "협력할 부문" 목록에서 이 문건은 정교회와 SVR 안에 "활동가를 마련해야 하며" 교회 활동가들을 SVR "작전 활동" 안으로 끌어들일 것을 명시하면서 이러한 일들은 "반드시 총대주교의 직접적인 허락을 얻어" 이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 3급비밀 문건은 또한 GRU는 "교회와 협력을 확대할 준비가 되어 있고" 협력은 "매우 점진적으로" "실제 현장 활동"을 포함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또 FSB에게 교회는 방첩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데, 이 방첩 활동에는 "분파조직 제압, 해외 조직들에 대한 통일된 행동 조성"이 포함되어 있다. (이 러시아 3급비밀 문건은 FBI 문건 뒤에 첨부되어 있다.)


FBI의 문건에 따르면 이 러시아인은 또한 "정보원/첩보원 포섭 절차" 파일과 함께 교회활동가들과 그 가족의 상세 신상자료를 담은 문서(FBI는 이러한 신상자료를 협박자료로 삼아 첩보활동에 협력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자료들은 해당 FBI 문서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고, 협박용이라는 주장 역시 확인할 길은 없다. 하지만, 정교회 사람들은 문제의 이 러시아 관리가 미국에서 정교회 인사들과 여러 차례 회합을 가졌고, 1990년대 이래 계속해서 미국을 방문했다고 확인해줬다.


필자들은 이 러시아인에 연락을 하기 위해 여러 번 시도했지만 연락할 수 없었다. 워싱턴의 러시아 대사관이나 모스크바의 대외교회관계부는 이 FBI 문서내용과 그 관리의 미국내 활동에 대한 질의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번은 답신 이메일에서 대외교회관계부 대변인이 "그 사람은 더 이상 대외교회관계부 직원이 아니며" 그가 2023년 6월에 "해고되었다"고 알려줬다.


특히 중요한 것은 정교회와 러시아 정부기관간의 새로운 관계를 대략적으로 서술한 비밀문건의 작성 날짜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쪽을 잘 아는 익명의 소식통들은 이 3급비밀 문건을 본 후 그 작성날짜가 키릴 총대주교가 취임한 2009년 2월 직후의 봄이나 여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추측은 FBI의 메타데이터 분석과 일치하는데, FBI는 2009년 3월말로 추정하고 있다. 이 소식통들은 또한 이 문건이 키릴 총대주교의 직접적인 지시에 따라 정교회 행정부서가 기안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다. 만약 이러한 추측이 옳다면 키릴이 취임하자마자 교회와 러시아 공안기관들 사이에 새로운 차원의 협력이 시작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새로운 협력 관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둔 10년간 계속 심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성전(聖戰)

2009년 이후 키릴 총대주교가 자신의 러시아 정교회 리더십을 굳히는 동안, 러시아 국가기관에서의 정교회 존재는 군에까지 확대되었다. 2010년 즈음 러시아 정교회는 군대 안에서 새로운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군종 신부 자리를 군대에 신설한 것이다. 2020년 푸틴과 쇼이구 국방장관은 키릴 대총주교와 함께 '군 대성당'의 오픈 행사에 참석했다. 이 대성당은 모스크바 근교에 조성된 군을 테마로 한 거대한 건축물로서 러시아의 군 역사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중심적 역할을 상징하도록 디자인되었다. 정교회와 군의 밀착은 2022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맞아 새로운 차원으로 심화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성화(聖畵) 이미지들이 러시아군의 승리 기원 및 전장의 병사들을 위한 기도와 함께 러시아 SNS 공간을 도배했다. 키릴 총대주교는 이 전쟁의 공식명칭인 "특별군사작전"을 옹호하는 목소리를 맨 앞에서 주도했다. 2022년 9월 푸틴이 부분 동원령을 발령하자 키릴 총대주교는 "우리가 군사적 의무를 해내는 과정에서 겪는 희생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赦)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한 서방을 비판하면서 우리 "고귀한 루스의 일원인 우크라이나인들을 루스에 적대적이고 러시아에 적대적인 나라로" 만들려는 보이지 않는 세력들의 음모가 있다고 주장했다.


정교회는 매파 사제들을 동원해 전쟁에 대한 지지를 선동하게 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안드레이 트카초프다. 그는 우크라이나 태생의 사제로서 2014년에 우크라이나를 떠난 뒤 TV 유명인으로서 지금은 정교회 내에서 가장 강경한 전쟁찬성파가 되어 있다. 전쟁이 시작되자 그의 유튜브 동영상들은 러시아 특수부대 안에서 널리 공유되었다. 한편 특수부대 등 러시아 군의 가장 전문적인 부대는 신의 보호를 기원하면서 정교의 상징을 많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러시아 대대들의 이름을 알렉산드르 네브시키 같은 러시아 성자들의 이름을 따서 짓기도 했는데, 네브스키는 스웨덴과 독일 십자군들을 부순 그의 군사적 승리를 기리기 위해 성자의 반열에 올린 13세기 러시아의 왕족이었다.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있는 대성당에서 열린 정교회 성탄절 전야 예배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모스크바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 있는 대성당에서 열린 정교회 성탄절 전야 예배에 참석을 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욱 놀라운 것은 서방을 포함한 해외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도록 여론몰이를 하는 정교회의 노력이다. 러시아가 같은 정교회 국가와 전쟁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의 러시아 정교회는 대체로 러시아편에 서있다. 모스크바 총대주교쪽에 가까운 한 인터넷 언론과의 2022년 8월 인터뷰에서 몬트리올-캐나다의 가브리엘 대주교는 러시아쪽 선전과 거의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을 정당화했다. "러시아로서는 돈바스 지역에서 8년간 민간인을 공격했고 지금도 계속 공격하고 있는 신나치주의자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었다."


2023년 3월 런던에서 영국-서유럽 교구의 수장이자 해외 러시아정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이레네이 주교는 한발 더 나가 '우크라이나에서의 기독교도 박해에 대한 공개서한'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많은 지역에서 기독교도들에 대한 놀랍고도 무자비한 비극적 박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공개서한은 이러한 박해가 러시아군이 아닌 우크라이나 당국이 저지른 것이라고 했는데, 이러한 언급은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이 러시아 정부를 지지하고 있는 것을 비판한 우크라이나에 대꾸한 것이었다.


중요한 사실은 이들 유명 정교회 지도자들이 모두 서방에서 태어나 자라난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러시아에서 파견된 관리도 아니고 러시아 정권의 선전 내용을 강제로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해외 정교회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 발발 이후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모스크바의 정교회를 배척했지만, 해외에 있는 많은 정교회와 교인들은 러시아 정교회에 남아있기로 했다. "전쟁이 시작했을 때 러시아의 일부 사제들은 반전(反戰) 입장을 취해 국가와 교회로부터 처벌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 사제들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제들은 신도들을 잃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전쟁에 대한 논의 자체를 피했다. "신도들 대부분은 전쟁을 지지했습니다." 뉴욕의 러시아정교회 사람 한 명이 우리들에게 해준 이야기다.


이렇게 친러 관점을 취하게 되는 이유는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처음 서방으로 대거 피란 온 사람들(소련 공산혁명 직후인 1920년대에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과 심지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0년대에 떠난 사람들)의 많은 후손들은 영광스러운 제정 러시아의 추억에 갇혀있다. 이들 해외거주 러시아인들은 자연스럽게 19세기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에 매혹되는데, 푸틴이 이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가 접촉한 익명의 소식통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에게 우크라이나는 별도의 국가였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러시아의 광신적 대중동원

푸틴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시작했을 때, 정교회 지도자들은 나라 전체를 완전한 근본주의로 개조하고 러시아 정교회가 러시아 국가를 떠받치던 그 오랜 역할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발견했다. 이러한 접근법의 채택에 따라 교회, 군, 정보기관 사이의 더욱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질 것이며, 그 결과 정교회는 러시아 정부의 해외 역정보 작전과 서방 침투 노력을 돕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작전과 노력에는 특히 해외의 러시아 교민들을 활용하는 것이 포함된다.


러시아의 해외 첩보활동이 갖는 제약을 감안할 때 이번에 FBI에 발각된 그 사람이 러시아 정보부에 협조하는 유일한 정교회 인사는 아닐 것이다. 러시아 스파이들이 대거 유럽에서 추방되면서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해 첩보활동 하는 방식이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로서는 해외에 폭넓게 교구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정교회가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 이러한 협조에 대한 대가로 얻은 푸틴의 전폭적 지원(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러시아정교회에게 수십년 동안의 정체와 침체를 일거에 떨쳐낼 수 있는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새롭게 부여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강조하고 있는 전통적 가치, 제국, 군국주의는 러시아정교회와 해외의 자매 교회들에게 극적인 확장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정교회의 재부상은 푸틴 정권의 정당성과 지속성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서방이 맞서 싸워야 할 안보상의 위협이 되고 있다.



공동 필자 안드레이 솔다토프Andrei Soldatov는 유럽정책분석센터의 비상임 선임연구원이며 러시아 정보기관을 감시하는 Agentura.ru의 공동창립자이자 편집장이다.


공동 필자 이리나 보로간Irina Borogan은 유럽정책분석센터의 비상임 선임연구원이며 Agentura.ru의 공동창업자이자 부편집장이다.


솔다토프와 보로간은 '동포들: 크렘린에 맞서 싸웠던 러시아 망명자들The Compatriots: The Russian Exiles Who Fought Against the Kremlin'을 공저했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clos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