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전쟁위협과 범죄에 포위된 스웨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큰 충격을 받은 스웨덴은 200년에 걸쳐 지켜온 중립원칙을 포기하고 나토에 가입하면서 국가 정체성에 큰 변화를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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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로이터/뉴스1

2024.08.30 14:50

New York Review of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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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이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복지천국' 스웨덴이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폭탄테러가 벌어지는 곳이 되었습니다. 에콰도르에서 실은 마약이 스웨덴에 도착한 후 유럽 전역에 배달됩니다. 인구가 1000만 정도인 이 나라에서 200만 명이 발칸반도와 중동 및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입니다. 이 이민자들이 스웨덴 사회에 완전히 녹아들지도 못해 별도의 슬럼을 만들어 살고 있습니다. 스웨덴어도 능숙하지 않습니다. 스웨덴 국적만 가지고 해외로 돌아다니며 범죄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스웨덴은 더이상 중립국도 아닙니다. 이제는 나토의 회원국으로서 러시아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여성들을 포함한 징병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경제도 예전같지 않아 스웨덴 젊은이들이 부국인 옆나라 노르웨이로 건너가 바나나 껍질을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위기는 이 나라를 지켜보는 많은 나라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이번에 벌어진 영국의 반이민 폭동도 스웨덴의 상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300만명의 작은 공화국에서 시작해 지금은 3억이 넘는 대국이 되었습니다. 많은 문제도 있었지만 미국의 이민자 수용정책은 대체로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이민정책은 20년도 채 되지 않아 파국을 맞고 있습니다. 어쩌면 스웨덴의 폴크헤메트(국민가족)라는 공동체주의적 정책이 가진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가족은 내부적으로는 단결되어 있지만 반대로 외부에게는 적대적일 수 있습니다. 가족의 특성을 국가 운영에까지 연결시키려는 공동체주의의 문제입니다. 과거 일본의 '가족국가' 이념 역시 내부적으로 단결을, 그리고 외부적으로는 배타적 제국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어쩌면 이민자가 원하는 것은 높은 수준의 복지와 배려가 아니라 기존 국민과의 차별을 없애는 '공정'일 것입니다. 스웨덴 같이 공동체가 강한 나라가 인구의 5분의1이나 되는 신규 멤버들을 차별없이 포용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


스웨덴의 안팎을 둘러싼 위기와 극복방안 논의를 현지에서 직접 취재한 뉴욕리뷰오브북스(NYRB)의 8월 15일자 르포기사는 인구 격감을 맞아 이민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를 던질 것입니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종교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1996년, 수정처럼 맑은 스톡홀름 군도가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여름을 보낸 후 이렇게 썼다. "그것은 근거 없는 통념이다." 그들에게도 종교가 있다.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900만 스웨덴 국민 모두가 가게 문을 닫고 산골로 향하거나 발트해의 이 좁은 국토를 둘러싼 수많은 섬이나 군도 중 한 곳으로 떠나 소박한 별장에서 길고 푸른 낮과 짧은 '백야'를 즐기는 달콤하고 강렬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너무 짧은 계절인 솜마르sommar가 바로 그 종교다."


지난 7월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왕궁에 인접한 600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에 체크인했을 때, 나는 그 종교의 외관과 정신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발견했다. 나는 오래된 페리선이 유유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1995년 여름도 이랬겠지, 아니 심지어 스톡홀름 외곽 군도를 배경으로 한 지독하고 파멸적인 로맨스를 그린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첫 영화 <모니카와의 여름>이 극장에서 상영되던 1953년 여름도 이랬겠지라고 생각했다.


TV를 켜자 나의 데자뷰는 반복되었다. TV에서는 스톡홀름의 유르가르덴 섬에 있는 야외 박물관인 스칸센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음악쇼 '알송 포 스칸센Allsång på Skansen'의 경쾌한 주제곡인 '스톡홀름 인 마이하트'의 익숙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지난 9월 즉위 50주년을 맞이한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도 실비아 왕비와 함께 '스칸센'을 찾아 어느 스웨덴 래퍼가 내키는대로 랩을 하자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연락을 해봤지만, 30년 전 전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의 모두가 섬 어딘가로 떠나 있었다. 하지만 2023년은 고전적인 의미에서 스웨덴의 마지막 '솜마르' 즉, 스웨덴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또는 비유적으로 섬에 머무르며 속세를 잊을 수 있는 마지막 여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속세가 그들 곁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스톡홀름에 있는 동안 나는 2022년 9월 선거 이후 출범한 중도우파 연립정부의 최대정파인 중도당 소속의 폴 욘손 스웨덴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그 전 주에 변덕스러운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동의했다. 그는 스웨덴 정부가 스웨덴 거주 쿠르드족 '테러리스트'에 대해 충분히 공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반대해왔었는데 갑자기 입장을 바꾼 것이다. 2023년 3월에 스웨덴 의회의 압도적인 표결에 따라 스웨덴 정부는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핀란드와 함께 같은 날 이 방위동맹 가입 신청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었는데, 에르도안은 애매한 입장을 보였고 계속 애매한 말을 했다.


스웨덴이 1990년대 중반부터 유럽연합(EU)과 나토의 준회원국 프로그램인 '평화를 위한 파트너십'에 가입한 이후 점진적으로 버려온 2세기 동안의 중립국 지위를 완전히 포기하기로 한 결정은 핀란드보다 훨씬 더 큰 심리적 도약이 필요했다. 핀란드에게 중립은 2차 세계대전 중 소련에 패한 후 어쩔 수 없이 강요된 편의적 조치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 세기에 소련 또는 소련이 지원하는 세력과 세 차례나 싸웠던 핀란드인들은 결코 마음 속으로 중립을 지킨 적이 없었다. 이에 반해 스웨덴인들은 대부분 중립이다. 아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까지만 해도 스웨덴인들은 대부분 중립적이었다. 스웨덴이 마지막으로 대규모 전쟁에 참여한 것은 1809년 러시아에 맞서 싸웠던 핀란드전쟁에서 패배했을 때다. 그 이후로 스웨덴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중립국 지위를 굳건히 지켜왔으며 이는 여전히 많은 스웨덴인의 양심을 괴롭히고 있다.


현대 스웨덴군이 비록 국제 평화유지 작전에 참여하고 있긴 했지만, 스웨덴이 소중한 중립을 포기하고 서방에 완전히 합류한다는 생각은 최근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윌리엄 셔러는 '스칸디나비아의 도전Challenge of Scandinavia' (1955)에서 이를 간결하게 표현했다. "러시아의 핀란드 진출이나 그에 못지않은 도발적인 행동을 제외하고는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스웨덴이 서방과 손을 잡을 가능성은 없다."


스웨덴은 문화적으로나 철학적으로 항상 서구적이었지만―하버드대의 스웨덴계 미국인 역사학자 프레드릭 로게발은 "꽤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유럽에서 가장 미국화된 국가라고 부른다"고 말한다―스웨덴은 필요한 경우 혼자서도 방어할 수 있는 정치군사적 상황에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 자만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군대와 의심할 여지 없는 군수 산업을 보유하고 있었다. 스웨덴 국방대학교의 연구원인 오스카 욘손은 이렇게 말했다.


"스웨덴의 중립성은 항상 허울뿐이었습니다. 1966년 칼 프리티오프손 국방장관이 스웨덴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 핵무기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밝히자 스웨덴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공개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스웨덴은 나토 항공기를 수용하기 위해 비밀리에 비행장을 확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립이 허울뿐이었다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에는 대부분의 스웨덴 사람들이 이를 열렬히 믿었다. 그러나 스웨덴군은 오랫동안 나토 가입에 찬성해 왔으며, 스웨덴군의 합동작전사령관인 칼-요한 에드스트룀 중장에 따르면 "이미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이후 러시아를 군사적 위협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2013년 발트해 출입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스웨덴의 대형 섬 고틀란드에 대해 전투기가 모의공격을 감행한 러시아의 공중 훈련은 스웨덴에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그때 우리는 전투 준비태세가 극도로 저하된 상태였다"고 지난 3월 내가 스웨덴군의 거대한 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스웨덴군 참모총장 미카엘 클라손 중장은 말했다.



그러나 스웨덴은 2022년 2월 24일이 되어서야 자국 영토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을 깨닫고 여론이 나토 가입에 찬성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기 대부분을 집권하며 비동맹을 신조로 삼았던 사회민주당은 저항했다. 욘손 국방장관(중도당)은 지난 여름 이렇게 말했다. "나 같은 강경한 대서양주의자들은 나토 가입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왔습니다." 그에 따르면, 핀란드와 함께 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러시아의 전략적 사고에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겁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핀란드와 스웨덴에 대한 한 가지 목표가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를 나토에 가입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러시아는 나토와의 접경이 1300킬로미터 더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군사문제 연구자 출신인 욘손 국방장관은 스웨덴이 나토에 가져올 수 있는 기여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스웨덴은 군사 자산과 역량을 통해 나토의 안보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잠수함과 비스뷔급 초계함으로 발트해에서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스웨덴 육군은 북극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까다로운 환경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스웨덴은 거의 100대의 그리펜 전투기와 패트리엇 시스템으로 강력한 방공망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인구 천만인 나라 중 자체적으로 전투기와 잠수함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또 어디 있을까요?"


욘손은 또한 오랜 축소기간을 거친 끝에 스웨덴군이 거의 냉전 시대의 힘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에드스트룀은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사회와 군대 사이에 어떤 단절감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전쟁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사람들 사이에 국방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스웨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클라손은 "핀란드는 여기서 예외"라고 말한다. "핀란드만이 유일하게 준비태세를 유지한 나라입니다. 나머지 서유럽 국가들은 스웨덴과 같은 길을 따라 군대를 해체하고, 기지를 폐쇄하고, 국방비를 줄였습니다."


작년에 나와의 인터뷰에서 욘손 장관은 스웨덴이 2024년 국방비로 2023년보다 34% 증가한 120억 달러, 즉 GDP의 2.1%를 지출할 것이며, 이는 나토가 권장하는 2%를 초과하고 2015년의 1.07%보다는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라고 지적한 바 있다. 2015년 내가 처음 스웨덴군 본부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스웨덴군은 현역 병력, 방위군, 예비군을 포함해 총 5만 명의 병력이 있었다. 2018년 징병제를 다시 도입한 스웨덴은 현재 징집병 8000명을 포함해 6만 명으로 늘어났다. 욘손은 징집병 1만 명을 포함해 최종적으로 총 11만 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계자들은 자원하는 스웨덴 국민들이 늘고 있고 게다가 사기가 충만한 모습에 고무되어 있다. "병역 이행에 필요한 자리보다 병역을 이행하고자 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라고 욘손은 말한다. 2022년 스웨덴군의 예비군 입대 지원자는 3만 명에 달했다.


클라손은 이러한 지원의 대부분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3주 이내에 접수되었다고 지적했다. 전쟁 하나가, 그리고 지난 10년의 기간이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당시 준장이었던 클라손을 처음 인터뷰한 2015년, 스웨덴군의 총 병력은 지금보다 20% 가까이 적었고, 그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인구의 3분의1만이 나토 가입에 찬성했고 절반 가까이는 확고하게 반대했다. 10월에 스웨덴군 총사령관이 될 예정인 클라손 중장은 "당시와는 180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1960년대와 베트남전 기간 동안 평화주의 국가인 스웨덴은 미국의 가장 노골적인 비판자였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욘손 장관은 선언했다. 오늘날 스웨덴은 전투 준비가 되어 있고 미국 및 나토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있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의도치 않게 촉발한 나토의 확장과 함께 "서방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욘손의 흥분은 시기상조였다. 2024년 1월 터키 의회가 마침내 비준을 의결하고 에르도안 대통령이 서명할 때까지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대한 불확실성은 2023년 내내 계속되었다. 그 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대통령은 시간을 더 끌었다. 마침내 그는 물러섰고 2월 26일 헝가리 의회도 비준을 의결했다. 2주 후인 3월 11일, 쏟아지는 빗속에서 빅토리아 왕세자비와 욘손, 클라손을 비롯한 스웨덴 정부 인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토 본부에 청색과 노란색의 스웨덴 국기가 게양되었다.


스웨덴이 나토에 완전히 가입한 지금, 스웨덴군은 전쟁에 대비하고 있거나 전쟁 대비를 향해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스웨덴 사회는 얼마나 준비되어 있을까? 칼 오스카 보를린 민방위부 장관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1월 7일, 그는 어느 국방관련 컨퍼런스에서 "스웨덴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 충격을 주었다. 그는 "밤에 잠을 설치게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일이 너무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보를린의 발언은 퇴임하는 스웨덴 최고사령관 미카엘 뷔덴 대장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하다"며 스웨덴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이 뒷받침했다. 2018년에는 "위기 또는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라는 제목의 소책자가 스웨덴의 모든 가정에 배포되었다. 하지만 뷔덴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며 더 많은 경각심 환기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웨덴 언론은 보를린과 뷔덴의 발언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사람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렸다. 많은 어린이들이 틱톡을 통해 두려움을 공유했다. "스웨덴 저널리스트 마르틴 겔린은 가디언에 "경고가 표현은 서툴렀을지 모르지만, 지정학적 순진함의 오랜 잠에서 깨어나게 하려는 의도였다"고 썼다.


어쨌든 지난 여름, 일련의 호수를 가로질러 동부 해안의 스톡홀름과 서부 예테보리를 잇는 120마일 길이의 수로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괴타 운하회사의 플래그쉽 유노Juno 호에 탑승했을 때만 해도 스웨덴은 꽤나 나른해 보였다. 1832년에 개통된 역사적인 운하에 맞게 특별히 제작된 세 척의 배 중 하나인 150년 된 이 배는 내가 1995년에 탔던 바로 그 배였다.


"스웨덴에서 가장 그림 같은 여행"이라고 이 목가적인 여행에 대해 광고하는 1920년대 포스터는 녹음이 우거진 스웨덴의 시골을 당당하게 지나가는 이 개장된 증기선 위에 우아하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지금도 스웨덴에서 가장 그림 같은 여행이다. 확실히 수도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대도시 스톡홀름의 인구는 현재 170만 명으로 1995년보다 50% 이상 증가하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 중 하나다. 해안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고급 아파트 옆을 지나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가 적어도 부유한 '폴크헤메트folkhemmet'(2차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황금기 시절에 나온 용어로 '국민가족'이라는 뜻) 구성원들에는 잘 작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배의 승무원들은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듯했다. 예테보리 출신의 대학생인 젊은 갑판원 중 한 명은 "나토 가입이 전쟁을 억제하는 최선의 방법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고 당직근무 중간중간 털어놓았다. "최소한 이 문제에 대해 국민투표라도 했어야 했습니다."


역시 스웨덴 중립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예테보리에 내려 그곳의 유력 신문인 예테보리-포스텐의 편집장인 크리스토퍼 알크비스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스웨덴의 '폴크헤메트' 즉 '국민가족'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유서 깊은 호텔인 에거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수의 사람들이 사회의 미래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 제가 보는 그림입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새로운 위협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이 스웨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긴 하지만, 그의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니었다. 알크비스트 편집장은 범죄, 특히 갱단 관련 범죄와 그 뒤를 이어 이민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예테보리의 아름다운 메인 공원인 예테보리 원예협회공원을 걸을 때 특별히 불안하다고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호텔 정문이 오후 10시가 되면 자동으로 닫히는 것이 아침에 스모르가스보드를 먹으며 목격한 에거스 호텔 조식 룸에서 절도 혐의로 강제연행된 두 남자처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을 막기 위한 것 같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다.


스웨덴 전국적으로 강력범죄 통계는 확실히 증가하고 있다. 2022년 스웨덴에서는 중무장한 갱단이 유혈 싸움을 계속하면서 전년 대비 3분의1 이상 증가한 391건의 총격 사건으로 62명이 사망했으며, 폭발물을 사용한 공격도 90건이나 발생했다. 2023년의 수치도 끔찍하다. 총격 사건과 총격 사망 사건은 각각 363건과 53건으로 소폭 감소했다. 후자의 수치에는 2016년 이후 가장 많은 11명의 총격 사망자가 9월에 발생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폭탄 테러 건수는 149건으로 3분의 2나 급증했다. 올해도 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에는 특히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갱단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에서 유명 래퍼 C 감비노가 예테보리 주차장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근의 범죄들은 대부분 이민자 1, 2세로 발칸 반도와 중동 출신의 비스웨덴계가 지배하는 갱단 간 구역싸움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예테보리-포스텐의 범죄 담당 기자 함푸스 도리안은 치안이 확실히 악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갱 폭력이 이제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살인 및 폭탄 테러는 더이상 밤에 빈 공단 지역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한낮에 사람들이 붐비는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민간인들"은 폭력을 목격할 뿐만 아니라 부수적인 피해의 대상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폭발물에서도 같은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수류탄이 건물에 던져지고 있고, 자동차가 폭파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말에는 울프 크리스테르손 총리가 대국민 연설을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그는 "스웨덴에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최근의 폭력 사건 중에는 운동 중이던 아이들로 붐비던 스톡홀름의 어느 스포츠필드 근처에서 한 젊은 남성이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 있었고, 웁살라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젊은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유럽의 다른 어떤 국가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폴리티코 유럽의 스톡홀름 특파원인 찰리 덕스버리는 10월에 자신의 집 근처에서 발생한 폭발을 설명하며 "내가 사는 교외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불안해집니다"라고 말했다. "얼마나 가까이에서 벌어진 일인지, 다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최근 스톡홀름 시민들은 폭탄 테러나 갱단 관련 폭력 사태에 대한 뉴스 보도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은 이어지고 있다. 7월 10일 중앙역에서는 가방에 폭발물을 소지하고 있는 남녀 한 쌍을 경찰이 붙잡고는 역에서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소동이 벌어졌다.


범죄 증가의 원인 중 하나는 스웨덴의 역사적으로 리버럴한 이민 및 난민 정책으로 인해 210만 명의 외국 태생 주민이 거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며, 더 중요한 원인은 이들을 통합하기 위한 일관되고 포괄적인 계획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갱단 범죄와 이민에 대한 논쟁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라고 이민부 장관이자 집권 중도당 소속인 마리아 스테네르가르드는 말한다.


"안타깝게도 이민 2세대의 통합이 부족하여 이러한 갱단에서 활동하는 이민 1세대, 2세대의 비율이 높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가정에서 스웨덴어를 배우지 못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시간이 지나면 갱들이 그들의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 정부가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통합의 부재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스웨덴은 이민자, 노동이주자, 일하기 위해 스웨덴에 온 사람들의 나라였습니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같은 가치를 공유했습니다. 우리는 그들도 노력해주고 우리도 관리해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통합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이 순진했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네, 우리가 순진했던 이유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적극적인 통합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훨씬 더 빨리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그의 대답이다.


스테네르가르드 장관은 누구를 탓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스웨덴 이민정책의 실패를 사회민주당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많은 정당들의" 정책 실패였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문제는 1990년대에 소말리아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들 중 상당수는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거나 거의 받지 못했고 스웨덴인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조차 전혀 몰랐습니다.


영주권을 신청한 거의 모든 사람이 받아들여졌다. "중범죄자인지 확인하는 절차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게 전부였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스테네가르드는 "스웨덴인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기여를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올바른" 이민은 반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더 양극화될까봐, 사람들이 우리가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믿게 될까봐―범죄와 슬럼의 등장을 보고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리고 스웨덴이 문을 닫아버릴까봐 정말 두렵습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이자 사례 연구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국민: 기로에 선 스웨덴의 유토피아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 Sweden's Utopia at a Crossroads'(2022)의 저자인 데보라 스파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민주당이 모든 이민자를 폴크헤메트(국민가족)에 받아들이려 했던 것은 옳은 일이었지만 "나라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더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나갔다는 암묵적 컨센서스가 있기 때문에 이를 되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2년 된 중도우파 정부가 이를 되돌리기 위해 제안한 방법, 특히 "자발적 귀환" 이주 장려 계획―이주민에게 출신지로 돌아가라고 압박하는 완곡한 표현―을 놓고는 이 민감한 문제에 대한 컨센서스가 무너졌다. 야당인 사회민주당은 정부가 너무 멀리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2년 10월 범죄와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한 엄격한 조치 프로그램에 대한 대가로 온건파 주도 연립정부를 지지하기로 한 국수주의적 스웨덴 민주당은 오히려 정부가 충분히 멀리 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민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취한 조치가 완료되지 않았거나 완전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스웨덴 민주당 언론담당자는 말한다.


요즘 스웨덴 국민들은 나토 가입을 신청하기 전에 국민투표를 했어야 했는지, 이민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 많은 부분에 대해 컨센서스를 못 찾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하버드대의 로게발은 휴가 중이던 대학 도시 웁살라에서 커피를 마시며 스웨덴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것에 컨센서스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적 맥락에서 볼 때, 미국 내에서는 심각한 분열지점인 특정 핵심 사안에 대해 스웨덴 정당들이 합의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2022년 스웨덴 선거 캠페인에서 스웨덴의 총기 규제 완화를 원하거나 보편적 의료 서비스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 또는 정부가 보다 공평한 사회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정당들 사이에 그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그 방법론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중요한 측면에서 스웨덴 정치는 과거와 같은 정도는 아니지만 여전히 컨센서스의 정치입니다."


한편 임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현 정부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국수주의적 스웨덴 민주당이 운영하는 가짜뉴스 조직이 인종주의 밈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선정적인 TV 폭로를 내보내면서 균열은 더욱 증폭되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늘 선거가 실시되면 현 연립정부에서 군소 정당인 기독민주당과 자유당은 모든 의원을 잃고 사회민주당이 이끄는 중도 좌파가 다수당을 차지할 것이며,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겪은 스웨덴 민주당은 영향력을 잃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스웨덴은 유럽 전반적인 우경화 흐름에 저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8월에 방문했을 때 1200평방마일의 고틀란드 섬은 스웨덴과 마찬가지로 양면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1808년에 창설되었다가 부활한 기갑 연대인 P18이 전쟁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나는 중령이자 고틀란드 토박이인 부사령관 안데르스 말름의 긍지에 찬 시선 아래 실사격 훈련을 하는 젊은 징집병들의 정신과 기개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말름 중령의 군 경력은 스웨덴군의 최근 역사를 대변한다. 30년 경력의 베테랑인 그는 "군대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장기적인 전략이 불분명했다"는 이유로 2013년에 스웨덴군을 떠났다. 하지만 더이상은 그렇지 않다. 말름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략적 중요성이 더욱 커진 고틀란드가 스웨덴이 정식으로 가입하면 나토의 지역방위 계획에 어떤 위상을 갖게 될지 자세히 설명한 유인물을 내게 건네주었다.


푸틴이 1700년 나르바 전투에서 스웨덴의 국왕 찰스 12세를 물리친 후 그의 영웅 피요트르 대제가 한동안 이뤄냈던 것처럼 발트해를 러시아의 호수로 만들려는 생각에 침잠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지금, 2013년과 2015년에 스웨덴군을 놀라게 했던 모의 공격이 아닌 러시아가 실제로 고틀란드를 침공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퇴임하는 미카엘 뷔덴 총사령관은 올봄 독일 특파원들에게 "푸틴이 고틀란드를 두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라고 말했다. "푸틴의 목표는 발트해를 장악하는 것입니다."


러시아 공군은 고틀란드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6월 14일 러시아 Su-24 항공기가 고틀란드 동쪽 스웨덴 영공을 침범했다. 이 비행기는 항공 관제사의 무선 경고에 응답하지 않았고 항로 변경도 거부했다. 스웨덴 공군 사령부는 즉시 두 대의 JAS-39 그리펜 전투기를 동원하여 이 항공기를 영공 밖으로 내쫓았다. 스웨덴이 나토에 공식적으로 가입한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영공 침범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스웨덴 공군의 최고지휘관 요나스 윅만은 "러시아의 행동은 용납할 수 없으며 우리의 영토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전체 과정을 지켜봤고 적절하게 개입했습니다." 모스크바에 보내는 메시지는 '스웨덴은 전쟁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지난 여름, P-18 연대의 훈련장 북쪽에 있는 뷔스비 군의 중심도시에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은 소란스럽게 술집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육지 사람들의 마음에서 여전히 멀어 보였다. 고틀란드는 스웨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름 휴가지다. 최근에 나는 말름에게 뷔덴과 보를린이 울린 경보가 고틀란드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보았다. 말름은 영향을 그다지 미치지는 않다고 답했다. "섬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지 사람들에 비해 실제 위협이 있다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덕스버리에 따르면,


"분위기에는 분명한 변화가 있었고, 뷔덴과 보를린의 발언은 이를 더욱 가속화했습니다. 이곳 고틀란드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자주, 더 냉정하게 전쟁의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 딸을 포함해 올해 18세가 되는 사람들의 징집 통지서가 1월에 전국 각지의 현관문에 도착한 것도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위기관리를 맡고 있는 스웨덴의 민방위 기관은 뷔덴과 보를린의 발언 이후 온라인 방공호 목록 방문자가 3000% 이상 증가했으며, 전쟁 대비 팸플릿 다운로드 수가 900% 증가했다고 보고했다.


한편, 도널드 트럼프는 11월에 당선되면 나토에서 미국을 탈퇴하겠다는 암묵적인 위협으로 또 한 번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는 지난 2월 한 나토 회원국에게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국에 대해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겠다"고 장담한 바 있다. 나는 클라손에게 그 부분에 대해 우려하는지 물었다. 이 신임 스웨덴군 최고사령관은 "우려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나는 서방의 단결과 결속이 깨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더이상 우크라이나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서방과 러시아의 집단적 갈등입니다. 그리고 러시아 뒤에는 중국이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과 유럽의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한 서방 외교관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웨덴은 1800년대 초반 이후 가장 심오한 정체성 변혁을 겪고 있습니다. 이는 당황스러운 과정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스웨덴의 어떤 것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스웨덴 문화 예술의 기둥인 '드라마텐'으로 더 잘 알려진 왕립극장이다. 1788년 구스타프 3세가 설립한 '드라마텐'은 그레타 가르보와 막스 폰 쉬도우 같은 스타들이 경력을 쌓기 시작한 곳으로, 여전히 건재하다. 작년에는 100년 된 이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의 다섯 개 무대에서 수십 개의 연극이 900회 이상 공연되었다.


나는 그 중 하나인 이 곳에서 과거 잉마르 베리만이 맡았던 예술감독직을 맡고 있는 마티아스 안데르손이 연출한 '유로피나'를 보았다. "유럽의 20세기 전체를 하나의 연극 공연에 담으려는 과대망상적인 시도"로 묘사되는 이 연극은 체코 작가 파트릭 오우르제드닉의 소설 '유로피나: 20세기의 간략한 역사Europeana: A Brief History of the Twentieth Century'(2001)를 각색한 작품이며, 이 연극은 음악, 사진, 소품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무대 속에서 다인종 출연진이 공연했다. 장면이 스웨덴의 반전운동이 절정에 달하고 스웨덴의 중립성이 신조로 여겨지던 1960년대에 이르렀을 때 'NO TO NATO'(나토 반대)라고 적힌 풍선이 잠시 등장해 이젠 떠나버린 시대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고든 샌더는 1977년 이후 핀란드와 북유럽을 방문하며 글을 써온 저널리스트이자 역사학자다. 그는 학술저널 외에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리뷰오브북스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의 저서로 '100일간의 겨울전쟁: 소련군에 맞선 핀란드의 용투'(캔사스대학교 출판부, 2013) 등이 있다.




1963년 뉴욕에서 창간돼 문학, 문화, 경제, 과학, 시사 등의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 격주간 잡지로, 에스콰이어가 "영어로 발행되는 최고의 문예-지성지"라고 평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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