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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과 반목으로 갈라진 미국의 모병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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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턴 상사가 오션카운티 축제에서 방문객에게 군용 차량을 소개한 후 다음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2024.09.20 16:03

Washington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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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결과인지 무엇때문인지 전세계적으로 '국가'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탈국가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막강했던 일본의 중앙부처 공직도 이젠 우수한 인재를 못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20년전만 해도 명문 도쿄대 졸업생들은 정부에서 일하는 것을 최고로 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고등고시에 해당하는 국가공무원시험 합격자 중 도쿄대 출신이 30%를 넘었는데, 현재는 10%도 못 미친다고 합니다. 요즘 도쿄대생들이 선망하는 직장은 고액연봉을 자랑하는 외국계기업이나 펀드매니징 계통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9/11 이후 애국열이 치솟던 짧은 기간을 제외하면 미군에 입대하려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어서 모병에 큰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워싱턴포스트 2024년 8월 30일자 기사에 따르면, 정치적 양극화 등 여러 이유로 국가와 공직에 대한 선망이 약해지면서 모병 자체가 어려워져 병력 유지에 애로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군 복무는 몇 년간 자유가 제한되는 정도의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유사시엔 국가를 위해, 동료 국민들을 대신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왠만한 동기부여로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입니다. 특히 늘 전쟁터에 나갈 가능성이 있고, 게다가 병역이 의무가 아니라 선택인 모병제 국가인 미국에서는 강한 동기부여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일극체제가 끝나가는 조짐이 있는 상황에서 미국내 '모병'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미국의 군대는 안과 밖으로 난제를 안게 된 것입니다. 워싱턴포스트가 전하는 미국 모병의 실태를 간접경험 해보시기 바랍니다.


데인 비스턴 상사는 미국 군대가 모병제를 실시한 50년 역사상 최악의 모병 부진으로 손꼽히는 시기의 스트레스와 좌절, 실망을 견뎌냈다.


이제 그는 이를 끝내기 위해 자신의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6월 초였고 그의 뉴저지 중부 모병소는 육군에 입대할 의사가 있는 지원자 7명을 찾아야 했다. 그 해 가장 높은 월간 할당량이었다. 비스턴은 모집소의 레이더에 잡힌 잠재적 지원자 30명 가량의 이름이 적힌 색깔별 목록을 훑어보았다.


"이걸론 턱없이 부족합니다." 31세의 상사는 월초에 모병관들에게 말했다.


팀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육군에서 자신의 경력이 위태로워질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언제나 100% 노력하는 건 가능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적합한 사람을 찾지 못하면 운이 다한 거죠."



비스턴과 그의 팀원 6명이 느끼는 끊임없는 압박감은 미군과 미국이 직면한 위기를 반영했다. 각 군은—해병대 제외—2023년 모집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2년 연속 모병 목표에 미달한 육군은 2024년에 신병 5만5000명 모집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는 작년의 미달 목표치보다 1만 명 가량 적은 수치였다. 새로운 모병 목표는 국가가 직면한 위협이나 의회가 기꺼이 지출할 수 있는 금액, 또는 펜타곤이 배치할 수 있는 탱크와 헬리콥터의 수에 따라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육군 고위 관리들 생각에 군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원수를 반영한 것이었다. 비스턴과 그의 팀은 2023년 10월의 새 회계연도 개시 후 거의 40명을 육군에 입대시켰다. 좋은 출발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늘날의 미국에서 자격을 갖추고 기꺼이 군에 지원할 후보자를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모병관들은 줄어드는 자격을 갖춘 젊은이들 사이에서 군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17~24세의 모든 미국인 중 약 23%만이 육군의 신체적, 도덕적, 교육적 기준을 충족한다.


비스턴과 그의 모집 요원들은 또한 미국인들의 자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는 시기에 잠재적 지원자를 찾고 있었다. 그와 그의 팀은 단순히 일자리를 홍보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그들을 전쟁에 보낼 수 있는 국가 지도자들과, 그들과 함께 싸울 동료 시민들을 믿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그들은 미국을 팔고 있었다.


그들이 사무실을 나설 때마다 사람들은 그들의 군 복무에 감사를 표했다. 하지만 점점 더 양극화되고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는 나라에서 헌법에 맹세하고 복무하기를 원하는 젊은이들을 찾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뉴저지 톰스리버 모병소에서 비스턴 상사(가운데)와 다른 모병관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뉴저지 톰스리버 모병소에서 비스턴 상사(가운데)와 다른 모병관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국방부 설문조사에 따르면 약 9%의 젊은이들만이 군 복무를 고려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의 16%에서 감소한 수치다. 펜타곤 관리들은 최근의 군 복무 의사 감소를 부분적으로는 활황인 취업 시장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들 또한 낮은 실업률이 문제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갤럽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대법원, 의회, 경찰, 공립학교 등 모든 미국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가 급락했다. 여전히 비교적 인기가 있는 군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3년 약 60%의 미국인들이 군대에 "매우 큰"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1997년 이후 가장 낮은 비율이었다.


"그 성향 수치와 기관에 대한 신뢰, 국가에 대한 자부심, 애국심 수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보이는 많은 것들 사이에는 관계가 있어요." 크리스틴 워머스 육군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오늘날 미군은 전 세계에 퍼져 있으며, 우크라이나 군대에게 러시아와 싸우는 훈련을 시키고 동맹국들과 함께 중국, 북한, 이란을 억제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


"군 규모가 너무 작아지면 그런 일들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위험에 빠집니다." 워머스 장관은 말했다. 그러한 임무들의 성공 또는 실패와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미래는 비스턴 같은 군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6월이 27일 남았다. 모병소의 할당량 7명을 채우기 위해서는 비스턴과 그의 팀에게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경험상 그런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스턴 상사가 12시간 일한 후 공원에서 쉬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12시간 일한 후 공원에서 쉬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육군에 입대하는 거 생각해 봤어요?'

비스턴과 그의 모병관들은 모병소 중앙의 테이블에 모여 가장 유망한 지원자들을 검토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그 주 후반에 고졸 학력인정(GED) 시험을 치르기로 한 18세 청년이 있었다. 그가 시험에 합격하고 신체검사를 통과하면 6월에 입대할 수 있었다.


다른 몇몇 가능성 있는 지원자들은 천식이나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와 같은 질환에 대한 예외 인정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는 몇 주 또는 경우에 따라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는 느리고 관료적인 과정이었다.


한 유망한 후보자는 최근에 마리화나를 피웠는데 이는 뉴저지에서는 합법이지만 미군에서는 탈락 사유였다. 그는 THC(대마초의 향정신성 성분)가 그의 체내에서 빠져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원자 중 어느 누구도 확실한 후보는 없었다.


아침 회의가 끝난 후, 비스턴과 켄 지민스키 하사는 베이글 가게와 네일샵 옆 대형몰에 위치한 모병소를 나섰다. 그들은 연간 "최대 2만7100달러(3600만 원)"의 학비 지원을 약속하는 전단지 뭉치를 들고 있었다.


저지 해안을 따라 있는 그들의 지역 주민 대부분은 중산층과 백인이지만 최근 가장 빠른 성장은 건설업과 관광업에 종사하는 라틴계 이민자들 사이에서 일어났다. 두 군인은 교외 지역을 누비며 편의점, 철물점, 스무디 가게 등의 점포 뒤편에 놓인 게시판에 전단지를 붙였다.


점포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들은 잠재적 지원자를 찾아 통로를 살폈다. 소매업 일자리에 갇혀 더는 커리어 전망이 보이지 않는 20대, 고등학교 운동선수들, 애국적인 옷차림을 한 십대 청소년들.


"육군에 입대하는 거 생각해 봤어요?" 비스턴이 물었다.


스무디 가게에서 낯선 사람과 나누는 30초 짜리 대화가 입대 신청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비스턴은 이러한 대화가 일반적으로 군 복무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씨앗을 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비스턴으로 하여금 군인이 되고 싶게 만든 계기는 2001년 9월 11일, 테러리스트들이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했을 때였다. 그날 아침 일찍 그의 학교는 문을 닫았고, 4학년이었던 비스턴은 보스턴에서 남쪽으로 50km 가량 떨어진 매사추세츠 주 이스트브리지워터에 있는 집에서 엄마와 함께 뉴스에 나오는 불타는 타워의 영상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머릿속으로 '나는 입대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회상했다. "어느 군종인지는 몰랐어요. 그냥 입대할 거란 걸 알았죠."


비스턴 상사가 네살배기 딸 테아와 함께 하고 있다. '충성'이란 단어가 그의 팔뚝 문신에 보인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네살배기 딸 테아와 함께 하고 있다. '충성'이란 단어가 그의 팔뚝 문신에 보인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3살 아들 로닌과 놀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3살 아들 로닌과 놀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와 그의 가족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와 그의 가족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그는 17세에 기초 훈련을 받기 위해 떠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1년 동안 블랙호크 헬리콥터를 수리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제 10년이 훨씬 넘은 지금, 그는 결혼하여 두 명의 미취학 아동을 둔 아버지가 되었고 20년 복무를 채워 은퇴할 수 있을 때까지 군에 남을 계획이었다. 그의 팔뚝에는 "충성"이라는 단어가 크고 빨간색과 파란색 글자로 문신되어 있었다. 그는 기초 훈련에서 만난 예쁜 여자가 문신 가게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 충동적으로 그것을 선택했다. 비스턴이 군에 오래 있을수록 그 문신은 그에게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나예요." 그가 말했다. "정확히 나를 표현하고 있죠."


그와 지민스키는 전단지 붙이기를 마쳤다. 차 안에서 두 모병관들은—둘 다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다—은 그들이 군에 입대한 이후 미국이 어떻게 변했는지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거의 모든 모병 대상자들은 9/11 테러 이후에 태어났다. 대부분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먼 역사적 사건이나 값비싼 실수로 보았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대선 후보들은 미국에 대한 가장 위험한 위협이 국경 내부에서 오고 있으며 상대방이 당선되면 국가를 독재로 몰아갈 것이라는 경고로 나라를 폭격하고 있었다.


비스턴과 지민스키는 국가가 다시는 테러 공격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가 9월 12일처럼 다시 한번 똘똘 뭉쳤으면 좋겠어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약 1500개의 모병소 중 하나인 톰스리버 모병소에 접근하면서 지민스키가 말했다.


각 육군 모병관은 한 달에 적어도 한 건의 입대 계약을 만들어내야 한다. 톰스리버 모병소 책임자로서 비스턴의 임무는 모병소가 전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날 모병소가 문을 닫기 직전, 뉴저지의 7개 모집소를 관리하는 그의 중대장이 사무실에 들렀다. 6월은 전체 중대에게 힘든 달이 될 것 같았다.


"이번 달 전망은 어떻습니까?" 벤 코트라바 대위가 물었다.


모병소가 7명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5명은 가능할 것 같다고 비스턴이 답했다. 중대장은 모자를 잡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더 필요하신 것이 있습니까?" 비스턴이 물었다.


"계약서요." 중대장이 답했다.

톰스리버 모병소에서 보행로에 세워둔 모병 키오스크에서 트래비스 힐 하사가 5세 어린이와 푸시업 경쟁을 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톰스리버 모병소에서 보행로에 세워둔 모병 키오스크에서 트래비스 힐 하사가 5세 어린이와 푸시업 경쟁을 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충성도 통역이 되나요

다음날 아침 일찍, 비스턴의 모집 요원 중 한 명인 헤수스 라모스 하사는 톰스리버 모병소 문에서 잠재적 계약자 중 한 명을 맞이했다.


그는 제레미 칼보라는 이름의 마른 체격에 조용한 말투를 가진 19세 청년으로, 짙은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멕시코에서 자란 칼보는 영어를 잘하진 못했다. 그는 군 입대 시험인 군직업적성검사(ASVAB)를 세 번째로 치를 예정이었다. 한 달 전, 그는 ASVAB에서 15퍼센타일을 기록했는데 이는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이후 군이 시작한 집중 코스인 '미래군인준비과정Future Soldier Preparatory Course'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데 필요한 최소 점수에서 1점 모자란 점수였다.


자격을 충족하는 모병 지원자 풀이 감소하는 추세는 오래된 것이지만 팬데믹과 학교 폐쇄로 더 가속화되었다. 우울증이나 ADHD로 금지된 약물을 복용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급증했다. 비만율이 상승했고 ASVAB 점수는 하락했다.


미래군인준비과정은 팬데믹 이후의 현실을 받아들인 결과다.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의 군사 기지에서 3주를 보내면서 일부 입대자들은 ASVAB 점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수학과 독해 과외를 받는다. 다른 이들은 체지방을 줄이기 위한 체력 훈련을 받는다. 올해까지 지원자 2만3000명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이는 펜타곤에서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라모스는 칼보가 시험에 대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38세의 하사는 젊은 지원자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진정해요." 라모스가 그에게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제 어떤 건지 알잖아요. 이번에는 잘 할 거예요."


비스턴 상사와 모병관들이 지나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와 모병관들이 지나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오션카운티 축제에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오션카운티 축제에서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톰스리버 모병 구역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션카운티에서 히스패닉은 인구의 약 10%를 차지하는데 이는 2000년의 약 5%에서 증가한 수치다. 이 지역 노동자 계층을 살펴보면 히스패닉의 비중은 더 커진다. 미 육군은 라모스처럼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부사관들을 찾아 라틴계 인구가 많거나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의 모병 임무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육군 고위 관리들은 여전히 이중 언어 구사 모집 요원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톰스리버에서 라모스의 가장 큰 문제는 ASVAB 시험에 통과할 만한 영어 실력을 갖춘 스페인어 원어민을 찾는 것이었는데 이는 라모스가 개인적으로 경험해 본 영역이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자란 라모스가 처음 시험을 봤을 때 그는 6퍼센타일을 기록했다. 결국 그는 입대에 필요한 최소 점수를 달성했지만 그의 영어는 여전히 불안정했다. 그래서 뉴욕 북부의 첫 근무지 지휘관은 그에게 부대 접수처에서 전화를 받고 손님을 맞이하는 연습을 하도록 시켰다. 서서히 그의 영어 실력은 향상되었다.


라모스가 톰스리버에서 만난 많은 모병 대상자들은 주방 직원들이 스페인어만 사용하는 식당에서 일하고, 스페인어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친구들과 어울렸다.


라모스는 그들에게 휴대폰의 언어 설정을 스페인어에서 영어로 바꾸고 텔레비전을 볼 때 영어 자막을 켜라고 권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영어 수업이었는데 군은 이를 광범위하게 제공하는 것을 꺼려왔다. 일부 고위 펜타곤 관리들은 영어 수업을 제공하는 건 군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신병들의 영어 실력 부족을 의지 부족과 동일시했다.


동기 부여는 칼보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군에 입대하는 것이 카르텔과 부패한 관리들이 일반 시민들을 착취하는 멕시코에서 사는 것보다 더 위험하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공부 좀 했어요?" 비스턴이 물었다.


"네." 칼보가 대답했다.


"많이 했어요, 아니면 조금?" 비스턴이 추궁했다.


"많이요." 칼보가 불확실하게 대답했다.


몇 시간 후, 비스턴은 온라인으로 칼보의 시험 결과를 확인했다. 기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것이 세 번째 실패였기 때문에 칼보는 최소 6개월 후에야 재시험이 가능하다.


라모스는 모병소에서 그에게 나쁜 소식을 전했다. 당분간 칼보는 제약 공장에서 약병에 알약을 채우는 2교대 일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올지 모르겠어요." 그가 스페인어로 말했다.


그는 무더운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차로 향했다. 모병소 안에서 라모스는 그를 지원자 목록에서 제거했다.

사람들이 미 육군 홍보 차량 옆을 지나고 있다. 차량 안에는 각종 게임기가 있고 군인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볼 수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사람들이 미 육군 홍보 차량 옆을 지나고 있다. 차량 안에는 각종 게임기가 있고 군인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볼 수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팀에 합류하기

다음 몇 주 동안, 톰스리버 모병소는 최악의 운을 겪었다. 비스턴과 모병관들은 막판에 마음 바꾸기, 낮은 ASVAB 시험 점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의료적 예외 인정 절차로 인해 지원자들을 잃었다.


육군은 예외 인정 절차를 가속화하기 위해 의료 인력을 증원했다. 이 인정 절차는 본래는 입대 실격 조건을 가진 지원자들이 군의관의 승인과 고위 지휘관의 서명을 받아 입대를 할 수 있게 해준다. 육군은 또한 의사 상담과 예외 인정 절차를 받을 때까지 ADHD와 우울증 약물을 중단해야 하는 기간을 줄이도록 펜타곤에 요청했다. 이러한 변화들은 도움이 되었지만 전국의 모병관들은 여전히 그 과정이 너무 느리다고 불평했다.


6월이 열흘 남은 시점에서 톰스리버 모병소는 여전히 한 명도 육군에 입대시키지 못했다. 중대의 선임 부사관인 후안 발렌시아 상사가 비스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하고 그의 팀을 더 독려하라고 재촉했다.


"불운한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비스턴이 설명했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잠시 수화기가 조용해졌다. "노력은 주관적이에요." 발렌시아가 그에게 말했다. 비스턴의 임무는 계약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20개월 전, 비스턴이 톰스리버를 갓 맡았을 때 이곳은 심각한 부진에 빠져 있었다. 2022회계연도에 이곳은 육군 현역 모병 목표의 23%만을 달성했다. 모병소의 사기는 "비참했다"고 비스턴은 말했다.


새로운 모병소장은 화이트보드를 가져와 맨 위에 "실패하는 방법"이라고 쓴 다음, 그가 저질렀거나 다른 모병관들이 저지르는 것을 본 40가지 실수를 나열했다: "오만해라. 상황을 탓해라. 절대 도움을 요청하지 마라. 절대 훈련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구해주기를 기대해라."


비스턴의 리더십 아래, 톰스리버 모병소는 빠르게 개선되었다. 작년에는 현역 목표의 44%를 달성했고 올해는 더 나은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화이트보드는 여전히 비스턴의 책상 옆 바닥에 놓여 있었다.


3년간 모병관으로 복무하고 있는 야전포병 브라이언 글래스 상사는 톰스리버 모병소의 그 달 최고의 지원자와 함께 작업하고 있었다. 글래스는 뉴저지 주방위군이 운영하는 GED(고교 졸업자격 검증시험) 튜터링 프로그램을 통해 세븐 와틀리를 발견했다.

세븐 와틀리(18)은 최근 미 육군에 지원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세븐 와틀리(18)은 최근 미 육군에 지원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와틀리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에서 애견 루비를 안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와틀리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에서 애견 루비를 안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올해 18세의 와틀리는 의료 검사와 ASVAB도 통과했다. 유일한 문제는 그의 어머니였다. 그는 아들이 입대하는 걸 원치않았고 특히 그가 가장 원하는 병과였던 보병을 강력히 반대했다. 31세인 글래스는 육군이 자신에게 해준 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줘 어머니의 마음을 바꿔보려 했다. 글래스는 13세 때 아버지를 암으로 여의었다. 어머니는 약물중독으로 시달렸고 그는 십대 시절을 매릴랜드 시골의 위탁 가정에서 보냈다. "전 다른 사람의 골칫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던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그는 집과 새 보트, 주말엔 남에게 렌트해 주는 두 대의 RV를 가진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기혼자였다. 글래스의 이야기는 군복무가 강력한 계층 이동의 엔진이었던 징병 시대 군대와 전원 모병제 도입 초기 시절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냉전이 끝나면서 육군은 더 작아지고, 더 선별적이 되었으며, 나라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고립되었다. "우린 우리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어요." 워머스 육군 장관은 이렇게 걱정했다. 오늘날 육군 신병의 81%가 군인 가정 출신이다. 펜타곤의 설문조사에서 젊은 미국인들과 그들의 부모들은 군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글래스와 같은 모병관들은 그 어느 때보다 돌파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데 관심 있는 사람을 아시는 분 계신가요?" 그는 6월 말 자신의 동네 커뮤니티 페이지에 글을 썼던 것을 회상했다.


"현재 이 나라 상태로는 안돼요." 글래스는 한 사람이 그렇게 댓글을 달았다고 했다. 두 번째 댓글 작성자도 비슷한 의견을 냈고, 그 후 페이지 관리자가 여기서는 정치적 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정치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글래스가 답변했다. "저는 그저 비교할 수 없는 혜택이 있는 훌륭한 직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을 뿐이에요." 몇 분 후, 관리자는 전체 글을 삭제했다.


와틀리와 그의 어머니 앤절라 아로요. 어머니는 아들의 군 입대를 반대했었지만 이제는 그 결정을 응원한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와틀리와 그의 어머니 앤절라 아로요. 어머니는 아들의 군 입대를 반대했었지만 이제는 그 결정을 응원한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6월 24일, 글래스는 와틀리를 그의 아버지의 타운하우스에서 픽업해 근처 군 기지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와틀리는 육군 직책을 선택하고,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입대할 예정이었다. 그는 전화기가 없어서 글래스의 전화기를 빌려 기지에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 서류에 서명하는 곳에 와 있어요."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뭐에 서명한다고?!" 그녀가 소리쳤다.


와틀리는 기초 훈련 입소 날짜를 8월로 선택했다. 다음은 직무를 선택할 시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컴퓨터와 관련된 것"을 택하라고 애원했지만 와틀리는 원래 계획대로 보병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건 말 그대로 3년 동안 사람들로부터 숨고, 총에 맞고, 총을 쏘는 거란다." 그녀가 답했다. "난 왜 네가 이걸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녀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네 선택을 존중하마." 그녀가 말했다.


와틀리는 전화를 끊었다.


"준비됐어요?" 글래스가 물었다. "하고 싶어요?"


와틀리는 방 앞으로 걸어가 오른손을 들고 "모든 적으로부터, 국내외를 막론하고 미국 헌법을 지지하고 방어할 것"을 맹세했다. 톰스리버 모병소는 마침내 그 달의 첫 번째 입대 계약을 확보했다. 6월은 엿새 남았고 월간 할당량을 채우려면 입대 계약을 추가로 6개 더 확보해야 했다.


와틀리와 글래스는 건물을 나와 따뜻한 햇살 속으로 걸어 나왔다. 몇 달 전만 해도 와틀리는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비디오 게임을 하고 맥도날드에서 일하는 데 보내는 고등학교 중퇴자였다. 그는 한번은 맥도날드에서 화장실 벽에서 배설물을 닦아내야 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 최저점이었다. 이제 그는 마침내 크고 중요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느꼈다.


"이게 정말 비현실적이에요." 와틀리가 글래스의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글래스는 와틀리에게 전화기를 건넸고,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이제 공식적으로 미 육군의 일원이에요." 와틀리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모병관 헤수스 라모스 하사(왼쪽)가 입대 희망자 세바스찬 빌라오르두냐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모병관 헤수스 라모스 하사(왼쪽)가 입대 희망자 세바스찬 빌라오르두냐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아메리칸 드림

6월의 마지막까지 나흘 남은 상황에서 톰스리버 모병소는 계속해서 지원자들을 잃고 있었다. 글래스의 지원자 중 하나는 대학 진학을 택했다. 다른 하나는 파티에서 마리화나를 피워 신체검사를 취소해야 했다. 아마도 90일 동안 깨끗한 검사 결과를 받지 못할 것이다.


최근 연이은 손실로 인해 모병소는 6월을 단 한 건의 입대 계약으로 마무리하게 될 게 확실해졌다. 올해 최악의 달이었다. 몇 시간 후, 비스턴은 7월에 대한 나쁜 소식을 들었다. 모병소에 남아있던 가장 유망한 지원자 두 명—육군의 미래 군인 준비 프로그램을 통해 입대할 계획이었던 고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프로그램 입과를 더 대기해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육군은 일시적으로 이 보충 훈련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있었다. 모병소의 누구도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또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비스턴은 7월에 좋은 성과를 내서 6월의 난관을 만회하고 모병소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기를 희망했었다. 이제 그는 이 부진이 여름 내내 모병소를 따라다닐까 걱정했다.


"심호흡을 하자. 심호흡을 해." 비스턴이 스스로에게 말했다. "잘 될 거야."


그는 모병소의 지원자 목록을 꺼내 턱을 괸 채로 거의 1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응시했다. 목록에서 가장 확실한 이름은 세바스찬 빌라오르두냐였다. 그는 그날 아침 일찍 라모스와 함께 ASVAB 시험에 처음으로 도전하러 갔다. 그의 점수는 곧 온라인에 게시될 것이었다.


"제발, 빌라오르두냐." 비스턴이 애원하듯 말했다.


23세의 이 지원자는 작년에 페루에서 뉴어크 리버티 국제공항에 도착했고 10년 전 그를 두고 떠났던 어머니와 재회했다. 처음에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텍사스 국경을 통해 불법으로 미국에 왔다가 이민국 직원들에게 붙잡혀 다른 50명의 이주 여성들과 함께 추운 감방에 갇혔다. 몇 주 후, 그녀는 루이지애나의 구치소로 옮겨졌고 그곳에서 그녀는 4개월을 더 머물렀다.


"아메리칸 드림이죠." 그녀가 서글프게 회상했다. "하지만 우리는 견뎌내야 했어요."

비스턴 상사가 빌라오르두냐에게 입대 관련 서류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빌라오르두냐에게 입대 관련 서류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라모스 하사(왼쪽)이 빌라오르두냐에게 육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라모스 하사(왼쪽)이 빌라오르두냐에게 육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직무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미국 시민권자인 빌라오르두냐의 의붓아버지가 그를 스폰서했다. 곧 그는 멕시코 음식과 '전통 미국식' 요리—햄버거, 타코, 14달러(1만8000원)짜리 마가리타—를 제공하는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주방 직원들은 중남미 출신이었다. 12시간 교대 근무로 사교 활동을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라모스는 빌라오르두냐에게 군에 입대한 이후 방문했던 장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랜드 캐니언, 로스앤젤레스, 양키 스타디움. 그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을 만났다.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가 말했다.


빌라오르두냐는 주의 깊게 들었다. 많은 젊은 미국인들은 군대를 그들이 꿈꾸는 삶에서 벗어나는 우회로로 보거나 그들의 수준 이하의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빌라오르두냐에게 육군에 입대하는 것은 페루에서는 닿을 수 없었던 약속과 가능성을 제공하는 나라의 일원이 되는 통로였다.


빌라오르두냐의 점수는 오후 2시 30분경에 게시되었다. 비스턴은 즉시 라모스에게 전화를 걸어 소식을 전했다. "어떻게 됐습니까?" 라모스가 긴장하며 물었다.


"아주 잘했어." 비스턴이 답했다.


라모스는 기쁨과 안도감에 욕설을 섞인 환호성을 질렀다.


빌라오르두냐는 6월에 입대할 수 없었다. 육군 신체검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검사를 통과하면, 그는 톰스리버 모병소가 6명을 더 모병해야 하는 7월에 입대할 수 있을 것이다.



비스턴 상사가 모병소에서 입대 희망자 킬리 토티(17)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모병소에서 입대 희망자 킬리 토티(17)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그들은 저기 있다'

비스턴은 톰스리버 모병소가 거의 매달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던 암흑기로 후퇴하지 않도록 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그는 늦게까지 남아 모병관들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고, 지금 그들은 모병소 중앙의 테이블에 그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다.


"누가 불 좀 꺼주게." 그가 말했다.


모병관들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 대통령의 '경기장 안의 사람' 연설 중 일부를 재생하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 연설은 "용감하게 노력하고" 자주 실패하며 계속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였다.


"이게 바로 우리 일입니다. 안그렇습니까?" 비스턴이 그들에게 말했다. "그 하나의 성공을 얻기 위해 계속해서 실패하는 겁니다... 그 '예스'를 얻기 위해서."


다음으로 주도권을 갖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잠수함 지휘관의 강연 비디오가 나왔다. 비스턴은 그들의 상황이 바다 밑에서 독자적으로 작전하는 잠수함 승무원들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비스턴과 그의 모집 요원들은 장교들에 둘러싸인 큰 군 기지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뉴저지 중부의 한 대형몰에 갇혀 있었다.


워싱턴에서는 고위 육군 관리들이 톰스리버 같은 모병소에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광고 캠페인을 시작했고, 수만 명의 잠재 지원자들 중에서 가장 유망한 후보자를 식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인공지능 도구를 테스트하고 있었다.


비스턴 상사가 지원자에서 선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비스턴 상사가 지원자에서 선발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톰스리버 모병소의 모습.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톰스리버 모병소의 모습. /사진=Michael S. Williamson/The Washington Post


지금까지 이러한 계획들은 육군이 2년간의 모병 부족으로 인한 구멍에서 헤어나오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관리들은 올해의 모병을 5만5000명의 목표에서 수천 명 초과 달성할 것으로 예상하며 2025년에는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요인들이 계속해서 지원자 풀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건 우리가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았고 이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닙니다." 육군 참모총장 랜디 조지 대장이 말했다.


비스턴은 모병관들이 모병소의 실망스러운 한 달을 넘어서 그들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에 초점을 맞추기를 원했다. 지난 회계연도에 이 모병소는 육군 정규 목표의 43%만 달성했다. 올해는 3개월이 남은 시점에 이미 72%를 달성했다. 6월에 모병소는 2명의 모병관을 더 받았는데 이는 전국적으로 약 800명의 모병관을 추가하려는 8개월간의 노력의 일환이었다.


"내년에는 여러분 모두가 대단한 성과를 낼 겁니다." 비스턴이 말했다. "톰스리버 모병소 밖에 줄이 설 겁니다. 정말이에요. 아주 기대됩니다."


"그렇게 쉬웠으면 좋겠습니다." 글래스가 답했다.


"어허, 아닐세." 비스턴이 약속했다. "우리는 그렇게 될 거야."


밖에서는 차들이 톰스리버 모병소를 지나 빠르게 달리고 있었고, 차 안에는 직장이나 해변으로 향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뉴저지 해안의 전형적인 여름날 아침이었다. "입대 자원들은 저기 있습니다." 비스턴이 말했다. "내가 잘 알아요."


그와 모병관들은 그저 그들을 찾기만 하면 됐다.


1877년 창간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손꼽힙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진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로 유명합니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이래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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