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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와 영국 소프트파워의 쇠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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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소재 BBC 본청(뉴브로드캐스팅하우스)의 정면 사진. /사진=Alexander Svensson (CC BY 2.0)

2023.09.22 11:20

Foreign Affai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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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가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언론이 된 데에는 (영국 국내 시청자가 아닌) 글로벌 시청자를 대상으로 90년 넘게 방송을 계속하고 있는 월드서비스의 영향이 큽니다. 초기 출범 취지 등이 유사한 미국의 VOA(처음에는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로 시작했다가 근래에 브랜딩을 VOA로 바꿨습니다)도 실상은 BBC 못지 않게 편집권이 독립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내에서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매체'라는 인식이 박혀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매우 대조적이죠.


우리가 평소엔 의식하지 않으나, 이는 영국의 관점을 은연 중에,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 전 세계인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영국의 매우 강력한 소프트파워 무기가 됩니다. BBC 월드서비스가 새로운 언어 서비스를 론칭하는 행위는 영국 정부의 우선 순위를 반영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하면 관련 인력들이 추가로 고용되면서 해당 분야에 대한 취재력이 증가합니다. 2017년 한국어 서비스가 신설된 것은 북한 문제에 대한 영국의 관심을 반영함과 동시에 이후 한국에 대한 BBC 보도가 증가하는 효과도 낳았습니다. (PADO 에디터는 BBC 월드서비스가 신설한 한국어 서비스 론칭팀에서 일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2010년대부터 BBC 월드서비스는 쇠퇴일로를 걷게 됩니다. BBC가 영국 대내적으로 받는 정치적 압박의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튄 격입니다. 최근 BBC의 100년 역사에 대한 책을 쓴 현대사 교수 사이먼 J 포터는 국내정치의 압력이 월드서비스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일 수 있다고 경고면서 월드서비스가 세계적으로 신뢰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설명합니다. 글로벌 신뢰도는 차치하고 아직 글로벌 인지도조차 부족한 한국의 공영방송이 나아가야 할 길을 BBC의 사례를 보며 고민해 볼 때입니다. 한국도 이러한 소프트파워를 구축해나가야 합니다.


내전 중에는 때때로 가장 믿을 만한 뉴스가 아주 먼 곳에서 오는 경우가 있다. 지난 4월 수단이 분쟁 지역이 되자 BBC 월드서비스는 긴급 '팝업' 채널을 개설했다. 현지의 청취자들에게 수단의 악화되는 상황을 알리기 위해 런던, 암만, 카이로에서 아랍어로 단신 뉴스를 제공했다. 글로벌 뉴스 채널인 BBC 월드서비스는 구식 기술과 신기술을 나란히 사용한다. 1920년대부터 국제 방송사들이 선택한 단파 라디오에 더해 디지털 및 SNS 채널로 뉴스를 전하고 있다. 월드서비스 책임자에 따르면 "중차대한 시기에 명확하고 독립적인 정보와 조언을 제공하는 것"이 팝업 채널의 목표였다고 한다. 이러한 언어는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2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이어져 온, BBC가 이타적이고 공정하게 전 세계 시청자에게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한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999년 월드서비스를 두고 "아마도 금세기 영국이 전 세계에 준 가장 큰 선물"이라 표현한 바 있다.


현재 월드서비스는 40개 이상의 언어로 방송되고 있으며 매주 약 3억6500만 명이 라디오와 디지털 매체를 통해 월드서비스를 접한다. 영국 최대 공영방송사 BBC가 운영하고 있다. BBC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일상적인 정부 개입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며 왕실 헌장에 따라 정부의 장관이나 공무원이 아닌 영국 의회의 통제를 받는다. BBC의 재정은 주로 텔레비전 수신료로 충당되며 영국에서 BBC 방송을 텔레비전 또는 온라인으로 시청하는 모든 사람은 수신료를 지불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진다.


오늘날 BBC는 전 세계적으로 전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자사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일부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 시청자 수가 5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시청자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월드서비스로, 영국이 세계인의 삶 속에서 여전히 큰 역할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그 중요성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월드서비스는 최근 재정적 위험에 처했다. 2022년 9월, BBC는 월드서비스에서 약 400명을 감원하고 여러 아시아 언어로 방송되는 라디오 서비스(디지털 서비스는 계속될 예정)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등 대대적인 긴축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1월, 월드서비스는 85년 동안 운영해 온 아랍어 방송을 종료했다.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볼 때 수단을 위한 (임시) 팝업 서비스를 만든 것은 월드서비스의 강점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최근의 예산 삭감으로 인한 피해를 보여주는 것이다.


월드서비스가 이러한 예산 삭감에 취약한 결정적인 까닭은 월드서비스를 영국 정부나 국영 방송사가 아닌, 영국 국내 시청자에게 뉴스와 엔터테인먼트의 대부분을 공급하는 BBC가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월드서비스는 막대한 기술적 자원과 인재를 확보할 수 있으며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방송하는 BBC의 명성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 방송과 국내 방송이 얽히면서 월드서비스도 국내 정치의 영향에 노출될 수 있다. 영국 사회에서 BBC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는 특정 집단, 특히 10년 넘게 영국을 통치해 온 보수당이 공영방송의 예산 조달에 큰 제약을 가하고 있다. 현재 BBC가 월드서비스 예산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고 있기 때문에 BBC의 전체 예산을 줄이려는 시도는 월드서비스에도 타격을 입혔다. 영국 국내에서 BBC를 반대하는 이들은 BBC에 대한 반대 행동이 국제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영국의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핵심 도구 중 하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전 세계 시청자를 위한 서비스

BBC와 영국 정부의 관계는 항상 복잡하고 모호한 관계였다. BBC는 개념적으로는 국가로부터 독립되어 있지만 종종 정부와 협력하기도 했다. BBC는 100여 년 전 영국에서 국가 승인 하에 독점 방송사로 설립됐다. 이 방송 독점 체제는 1955년까지 지속됐는데 신문 언론과의 경쟁을 피하고 규제가 없는 미국식 방송의 혼란을 피하려는 대내적 이유로 허용된 것이었다. 국내에서 강력한 방송사가 탄생한 덕분에 영국은 글로벌 라디오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1932년 엠파이어서비스Empire Service라는 이름으로 최초의 정기 국제 송출을 시작한 이래, BBC는 해외 라디오 청취자들에게는 영국의 유일한 목소리가 됐다.


국제 방송 분야에서 BBC와 정부 사이에는 종종 막후에서 긴밀한 협의가 이루어지곤 했다. 일례로 영국 외무부는 1938년 초 BBC에 중동 청취자들을 위한 아랍어 방송을 요청했는데 파시스트 이탈리아가 제작하는 아랍어 선전방송에 맞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같은 해 BBC는 나치의 라디오 선전방송과 히틀러의 영토 야욕에 대응하기 위해 외무부와 긴밀히 협의, 다양한 유럽 언어로 방송을 시작했다.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가 직접 자금을 지원해 BBC의 외국어 서비스를 대폭 확장했다. 이로 인해 점령지와 적지에서도 상당한 청취자가 생겨났다. 1944년 게슈타포는 나치 독일 내 BBC 청취자 수가 1500만 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냉전 시대에도 BBC는 영국 정부의 하청업체처럼 활동하며 1946년까지 신설 러시아어 서비스를 포함해 19개 언어로 방송을 계속했다. 이 무렵 '엠파이어서비스'라는 명칭은 더는 사용되지 않았고 BBC는 다양한 종류의 이른바 '대외서비스External Service'를 운영하고 있었다. 대외서비스들을 모두 합치면 BBC 직원의 4분의1 이상을 고용하고 있었다.


동구권 청취자들은 분명 BBC의 다양한 외국어 서비스가 영국이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사용하는 도구라는 점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BBC를 접근 가능한 가장 좋은 뉴스의 출처로 여겼다. BBC가 영국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기관이 아니긴 했지만 다른 국제 방송사 대부분은 직접적인 국가 통제를 받고 있었고, 국가 개입이 이들 방송사가 전하는 뉴스 내용에 미치는 영향은 종종 뚜렷했다. BBC의 명목상 독립성은 공정성과 엄격성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됐다. BBC가 영국 국내에도 방송을 하고 있으며 대체로 국내 청취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도움이 됐다. 국내 및 글로벌 라디오 업무를 모두 수행하는 단일 방송사를 설립한 국가는 영국 외에 거의 없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철의 장막'을 넘어 방송하는 일은 국내 라디오 및 텔레비전 방송국 유관 기관이 아닌 '미국의소리Voice of America' 및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처럼 국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별도 기관이 했다. 미국의 방송사는 결코 BBC와 같은 수준의 시청자 신뢰를 얻지 못했다.


냉전 시대와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월드서비스의 경영진은 영국의 대외정책상 이익과 의제에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과 시청자 신뢰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했다. 그들은 BBC의 편집권 독립성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부 관료가 정보와 조언을 제공하더라도 최종적으로 방송 내용을 결정하는 것은 BBC 직원이어야 한다는 것. BBC의 대외서비스는 동구권 청취자들에게 서구 민주주의와 토론의 역동성을 알리는 동시에 공산주의 정책에 미묘한 의문을 제기하고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키는 데 사용됐다. 런던에서 방송되는 뉴스가 다른 현지 매체보다 더 신뢰받을 수 있었던 시대에 BBC는 1956년 헝가리 혁명과 같은 냉전 위기의 순간, 동구권에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988년 대외서비스는 월드서비스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 브랜드로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종식되는 과정을 보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1년 소련에서 쿠데타가 시도되었을 때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크름(크림)반도의 별장에 갇혀 있는 동안 단파라디오로 월드서비스를 들으며 모스크바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파악했다.

국내문제와 얽히다

월드서비스의 운영이 항상 순조로웠던 건 아니다. 영국 국내용 공영 방송과 국제용 라디오를 하나의 조직이 관할하는 데는 단점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러한 구조는 중요한 순간에 월드서비스를 BBC와 전쟁을 벌이려는 영국 정치인들의 압박에 노출시켰다.. 1956년 BBC의 수에즈 위기 보도에 분노한 앤서니 이든 총리는 예산을 삭감하고 월드서비스를 정부가 직접 통제하겠다고 위협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후임 총리들은 심지어 냉전 시대에도 BBC에 대한 외무부 보조금을 삭감해 일부 외국어 서비스를 폐쇄하거나 축소하게 만들었다. 공산주의의 붕괴로 국제용 방송 지원의 주된 이유 하나가 사라지면서 예산이 더 삭감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드서비스는 냉전 이후 영국의 국제적 의제에 부응하기 위해 방향을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구 동구권과 글로벌 사우스 지역의 다양한 민주적 지역 매체와 교육 및 커뮤니티 구축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전문 지식과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새로운 시청자에게 다가가고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을 활용하기 위해 글로벌 텔레비전 채널을 만들고, 이후 온라인 서비스도 만들었다. 2001년 9/11 테러 공격과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 이후, 월드서비스는 영국 정부의 변화된 우선순위를 반영하여 중동 전역과 아프가니스탄의 시청자에게 다가가는 데 많은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럼에도 월드서비스는 BBC에 대한 국내의 새로운 적대감의 파고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민간 언론 대기업들은 영국에서 공영 방송의 입지를 약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영국 우파 일부 인사는 BBC가 영국 미디어 산업에서 민간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제한하는 동시에 국내 방송에서 좌파적 편향성을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격은 2010년부터 더욱 심해졌는데 이를 주도한 것은 BBC의 규모가 줄어들거나 아예 완전히 사라지길 바라는 다양한 정치적, 상업적 단체들이었다. 이들은 이것이 월드서비스와 영국의 소프트파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는 BBC에 가혹한 새 예산안을 내놓았다. 공공 지출을 줄이기 위한 긴축 조치의 일환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절부터 BBC 국제 방송에 지원되던 정부 보조금이 2014년 4월부로 철폐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정치적 동기에 의한 것이며 BBC에 대한 보수당의 뿌리 깊은 적대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 결과 월드서비스는 혹독한 감원을 겪어야 했고, 심지어 유서 깊은 런던 부시하우스Bush House에서 나와 BBC의 국내 뉴스 본부인 브로드캐스팅하우스Broadcasting House에 입주해야 했다. 내부자와 외부자 모두에게 이는 한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동시에 과거의 영광을 상당 부분 상실한 듯 보였다.


70년간 BBC 월드서비스 본청이었던 런던 부시하우스. 현재는 킹스칼리지런던 캠퍼스 건물로 사용 중이다. /사진=Geoff Henson (CC BY-ND 2.0)

70년간 BBC 월드서비스 본청이었던 런던 부시하우스. 현재는 킹스칼리지런던 캠퍼스 건물로 사용 중이다. /사진=Geoff Henson (CC BY-ND 2.0)


이후 월드서비스는 가끔씩 정부지원금을 받아 근근이 예산을 조달해 왔다. 경영진은 이러한 예산 지원이 계속되리라 기대할 수 없고, 이러한 자금 투입에 의존하게 되면 정부로부터의 자율성을 침해받을 수 있다. 2015년, 영국 외무부는 아랍어, 러시아어 서비스를 지원하고 아프리카, 아시아의 중요한 지정학적 이해가 걸린 지역을 공략하기 위해 공적개발원조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ODA) 기금을 서둘러 월드서비스에 투입했다.

소프트파워의 포기

영국 정부는 BBC의 국내 방송에 대한 적대감과 월드서비스가 글로벌 소프트파워의 핵심 도구라는 인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듯하다. 월드서비스는 많은 청취자가 세계를 상상하는 데 영국을 중심에 두게 만들고 또한 국제 문제에 대한 영국의 관점을 은근히 홍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갈등의 결과 영국 정부는 주기적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마지못해 긴급 자금을 산발적으로 투입하는 데 그쳤고, 미래에 대한 확신은 거의 주지 못했다. 일례로 영국 정부는 '가짜 뉴스'와 러시아와 중국의 선전이 난무하는 시대에 전 세계 시청자에게 진실하고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제공하려는 BBC의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2021년 월드서비스의 허위 정보 퇴치 사업에 800만파운드(130억원)를 일회성으로 제공했다. 2022년, 영국 정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BBC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420만파운드( 70억원)의 긴급 예산을 추가로 지원했다. BBC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청취자가 영국에서 전하는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단파라디오 방송을 재개했다. 현지 독립 언론이 폐쇄되고 방송 및 인터넷 인프라가 공격을 받고 해외 디지털 뉴스를 차단하기 위해 방화벽이 설치된 상황이었다. 지난 3월, 월드서비스는 위험에 처한 외국어 서비스를 2년 더 지속하기 위해 정부로부터 2천만파운드(330억원)의 일회성 지원금을 추가로 확보했다.


올해 초, BBC의 이사장(보리스 존슨 전 총리와의 연관 논란으로 지난 6월 사임)은 국가가 월드서비스의 예산 전체를 제공하는 역사적인 역할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해야만 BBC가 러시아와 중국의 대규모 선전과 허위 정보 캠페인에 맞서 새로운 "정보 냉전"과 "글로벌 영향력 쟁탈전"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BBC에 대한 영국 정부의 계속되는 적대감과 영국 공영 방송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허망한 희망으로 보인다.


한 가지 해결책은 영국 국내용 방송과 국제용 방송을 하나로 묶는 끈을 끊고 월드서비스를 국가가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별도의 조직으로 분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제용 방송이 국내의 정치적 압력에 덜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 청취자에 대한 월드서비스의 매력이 반감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BBC의 브랜드와 진실성에 대한 명성은 여전히 주된 자산이다. 월드서비스를 BBC 산하에 두는 것은 영국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반영하는 독립적인 목소리로서의 지위를 보호하는 것이다. 월드서비스가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게 되면 단순히 국가의 선전기관으로 보일 수 있다. 영국판 '미국의소리'가 되는 것이다. 월드서비스의 글로벌 소구력과 영향력은 분명히 감퇴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월드서비스가 지금과 같이 공영 방송의 지속가능성이나 바람직함에 대한 확신이 없는 정부로부터 끌어오는 임시 자금에 의존해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정부는 영국 방송의 대대적 개혁을 시행할 수 있으며 이는 월드서비스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는 현재의 혼란이 계속되어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이미 쇠퇴하고 있는 영국의 소프트파워와 글로벌 영향력이 더욱 약화될 수도 있다.


월드서비스와 BBC의 글로벌 상업 콘텐츠 배포 덕분에 영국은 전 세계 미디어 업계에서 여전히 그 덩치보다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영국의 동맹국과 경쟁국 모두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자원을 쏟아 붓는 요즈음, 월드서비스가 만들어 내는 소프트파워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영국 정치가들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신뢰와 선의의 자산을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파괴한다면 이는 자기파괴 행위가 될 것이다.



사이먼 J 포터는 영국 브리스톨대학교의 현대사 교수로 BBC의 역사를 다룬 책 'This is the BBC: Entertaining the Nation, Speaking for Britain, 1922-2022'을 썼다.


1922년 창간된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미국의 국제정치 싱크탱크인 외교협회(CFR)에서 발행하는데 국제정치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거진으로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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