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

육아와 우정에 대한 위대한 실험

'베프'들끼리 함께 아이를 키워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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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6.06 13:20

The Atlant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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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는 왜 이토록 힘들고 외로울까요? 애틀랜틱은 5월 11일자 기사에서 각자의 집에 고립된 채 육아 전쟁을 치르는 수많은 현대 부모들의 고충을 조명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 '스스로 선택한 가족'을 꾸리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핵가족 제도의 본질적인 결함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소개한 데이비드 브룩스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선택한 해법은 바로 친구들과 함께 의도적인 '마을'을 만드는 것입니다. 옆집이나 같은 동네로 이사해 매일의 삶과 육아의 부담을 나누는 이들의 모습은, 어쩌면 핵가족이라는 형태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낯설게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사는 이러한 공동 육아가 인류 역사적으로 훨씬 보편적인 모습이었으며, 생물학적 부모가 아닌 '동종부모(alloparent)'의 존재가 인류의 생존에 필수적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물론 이러한 삶은 든든한 지원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부모로서의 '통제권'을 일부 내려놓아야 하는 대가를 요구합니다. 서로 다른 양육 방식의 충돌과 사소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 기사는 이처럼 친구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여정의 빛과 그림자를 솔직하게 담아내며, 개인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공동체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2021년, 샬롯 그린버그와 라피 그린버그는 순간 기묘한 호기심에 이끌려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빈도로 친구들을 만난다고 가정할 때 남은 평생 '베프'들을 몇 번이나 보게 될지 계산해 보기로 했다. 결과는 암울했다. 그들이 13세에서 30세까지 친구들과 보낸 날들이 앞으로 30세에서 100세까지 친구들과 보내게 될 날들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결혼 6년 차인 샬롯과 라피 부부에겐 각자 청소년 시절떨어질 새 없이 막역했던 '베프'들이 있었다. 그러던 그들은 이제 삶의 방식에 변화를 줄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린버그 부부는 오랜 세월 각자의 베프들에 대한 우정에 헌신해 왔고, 그만큼 그들과 그들의 친구들이 다함께 공유하는 역사도 많았다. 시작은 샬롯이 대학 입학을 앞두고 떠난 여행에서 라피의 절친을 만나면서였다. 그 친구를 통해 샬럿은 라피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몇 년 뒤, 샬롯의 베프와 라피의 베프는 두 사람의 약혼 파티를 함께 준비했고, 파티 당일에는 심지어 첫키스를 나누었다. 훗날 결혼으로 이어진 로맨스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삶이 깊이 얽혀 있음에도, 이들 네 사람 모두가 한 동네에 함께 살아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샬롯과 라피는 보스턴에 살고 있었다. 반면, 그들의 절친 부부는—참고로 이들은 나(필자)의 친구들이기도 하다는 점을 밝혀 둔다—수백 마일 떨어진 워싱턴DC에 살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 넷은 중요한 순간마다 서로의 곁을 지키려 애썼다. 샬롯이 첫째와 둘째를 출산할 때 그의 절친은 산파 역할을 맡았다. 샬롯도 친구가 아이를 낳을 때 같은 역할을 했고, 코로나 팬데믹 초기에 분만실에 함께 있기 위해 8시간을 운전해 가기도 했다. 이들은 덜 특별한 일상적인 순간조차 함께하려고 애썼지만 그 노력이 허사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이려면 두 부부 중 한 쌍은 이동해야 했고, 양쪽 모두 가족 전체를 수용할 만큼 넉넉한 집에 살고 있지 않았기에 비용을 따로 지불하고 숙소를 마련해야 했다. 어른들끼리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아이 돌봄도 구해야 했다. 당시 두 가족 사이에 아이가 넷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샬롯과 라피가 그 '가혹한 계산'을 해보았던 2021년 어느 날이 오기 전, 이들은 단지 친구 부부와 밤에 함께 영화를 보기 위해서 몇 달에 걸쳐 일정을 조율하고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런데도 결국 영화가 끝나기 전에 베이비시터와 교대하러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러한 고충은 많은 미국 부모들에게 낯설지 않을 것이다. 2015년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아이와 떨어져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자녀를 '작고 귀여운 폭탄'이라 표현하며 육아가 어떻게 우정을 위협하는지를 다룬 뉴욕 매거진의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아이를 낳고 나면 친구를 만나기가 어려워지지만 사실 부모가 된 시기야말로 친구가 가장 절실한 시기일지도 모른다. 특히 가족을 위한 구조적 지원이 부족한 미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대가족연구소(Modern Family Institute)의 공동 설립자인 히스 셰킹어가 내게 한 말을 빌리자면 이렇다. "온 마을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아이를 키우는 어른들을 지탱해 주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몸소 겪어온 샬롯과 라피는 결국 자신들만의 '마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2023년 8월, 두 사람은 아이들을 데리고 보스턴을 떠나 워싱턴 DC의 타운하우스로 이사했다. 이 결정은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었다. 샬롯은 새 직장을 구하고 전문직 자격증을 새로 신청해야 했으며, 두 사람은 아이들이 다닐 새로운 학교도 찾아야 했다. 한편 절친 부부는 도시 반대편에서 이사 와 샬롯과 라피의 바로 옆집에 자리 잡았고, 라피의 절친의 형제와 그의 아내까지 같은 블록의 집을 매입하면서 세 번째 부부가 합류하게 되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되 그 경계를 완전히 나누지는 않기로 했다. 필요할 땐 서로 아이를 돌봐주며 도움을 주고받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집을 오가며 지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이삿날 밤 라피와 샬롯, 그리고 나머지 두 커플은 각자 아이들을 재웠다. 모두 5살도 안 된 아이 7명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뒤, 어른들은 위층으로 올라가 나란히 연결된 발코니에 나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비명을 질렀다.




많은 미국인들이 핵가족을 '전통적'이라 묘사하지만, 인류사를 통틀어 대부분의 아이들은 핵가족보다는 라피와 샬롯의 공동체와 같은 구성에서 생물학적 부모가 아닌 다른 어른들의 돌봄을 받으며 자라왔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이들을 동종부모(alloparent)라고 부른다. 인류학자 사라 블라퍼 허디는 자신의 저서 '어머니와 타인들'(Mothers and Others)에서 "이들이 없었다면 인류라는 종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는 확장 가족이 여전히 가장 보편적인 가족 형태로 남아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에서는 아이를 낳은 뒤 대부분 "심각할 정도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이자 '일상 유토피아'(Everyday Utopia)의 저자 크리스틴 고드시는 말했다. 아이들은 혼돈을 부른다. 많은 경우 부모 혼자 감당하기 버거운 정도의 혼란이다. 일부 부모는 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다수의 다른 부모들에게 그런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직장이 친척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가족 간 관계가 원만하지 않거나, 친척들이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거나 혹은 단순히 그럴 마음이 없을 수도 있다. 친구를 중심으로 가정생활을 꾸리는 방식은 전통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라피의 말처럼, "스스로 선택한 인연들로 이뤄진 확대 가족의 지원을 받는 셈"이다.


이런 선택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23년 질로우가 최근 2년 내 주택을 구매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4%가 친구와 함께 집을 공동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공동 주거를 택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녀가 없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리브 니어 프렌즈'(Live Near Friends)라는, 가까운 지인 근처에 집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를 창립한 필 레빈은 의미심장한 통계를 공유했다. 해당 사이트의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사전 설문을 완료한 약 2000명 중 절반 가까이가 친구들 가까이 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확대 가족 구성을 원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실현하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은 조율과 선견지명이 필요해요. 누군가에게 다가가 '나는 당신 곁에서 내 생활을 꾸려볼까 한다'고 말해야 하는데, 결코 쉬운 말이 아니죠." 레빈이 말했다. 그는 덧붙여, 설령 그런 대화가 순조롭게 흘러간다 해도 대부분의 주택 자체가 여러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으며, 가족이 아닌 사람들이 공동으로 집을 살 때 발생하는 재정 문제를 도와본 경험이 있는 부동산 중개사도 드물다고 설명했다. 라피가 부동산 중개사에게 자신들과 친구들이 원하는 조건을 설명했을 때, 중개사는 웃었다. 두 부부가 희망하는 동네에서 나란히 붙어 있는 두 집이 동시에 매물로 나올 가능성은 그에게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개인적인 사정이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예산이 서로 다른 친구들은 모두가 감당할 수 있는 서로 근접한 집을 찾기 어려울 수 있다. 친구의 도움에 기대고 싶은 이혼 부모는 자녀를 데리고 자유롭게 이사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또 위로 부모를 챙겨야 하고 아래로 아이들을 챙겨야 하는 샌드위치 세대 부모들은 친구를 돕는 것보다 위아래 가족들을 돕는 것을 우선시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를 취재하는 동안 나는 이러한 실행상의 실질적인 어려움들을 극복해낸 15명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 부모들의 가족 생활 설계가 곁에 있는 친구들로 인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의 가족은 더 이상 지지대 없이 외따로 놓인 벽돌이 아니라, 더 큰 구조 속에 단단히 자리 잡은 돌처럼 보였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완전한 공동 양육자로 여기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친구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다. 친구와 한 집에 사는 경우도 있었고, 서로 가까운 거리에 살거나, 공동주택 커뮤니티에 함께 거주하는 이들도 있었다.이 친구들은 부모인 경우도 있었지만, 아이가 없는 커플이거나 미혼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런 관계들이 항상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 대한 통제권을 일부 넘기는 데 어려움을 느꼈고, 친구와 갈등을 빚은 경우도 있었다.하지만 내가 만난 부모들은 모두 한결같이 꼭 필요했던 지원을 얻게 되었다고 말했고,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우정이 한층 깊어졌다고 이야기했다.




킴 시쇼어와 제프 홉슨은 처음 만난 날, 자연스럽게 공동주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공동주택은 거주자들이 각자의 개인 생활공간과 이웃과 함께 쓰는 공유 공간을 모두 갖춘 주거 형태다. 제프는 공동주택에서 살았던 시절의 행복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다. 막 대학을 졸업한 나이에 아홉 살배기 꼬마 동거인의 '인간 정글짐'이 되어줄 만큼 깊이 교류하며 지내던 시절이었다. 킴 역시 어린 시절 소도시에서 보낸 시간을 애틋이 여겼고, 공동주택이라면 대도시에서도 그런 공동체적 경험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새로운 공동주택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2000년 그들이 그 커뮤니티에 입주한 지 한 달쯤 지난 시점에, 킴은 첫째를 임신하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킴과 제프 부부는 두 아들을 갖게 되었고, 공동체 안에 다른 어른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부담을 덜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부모 외에도, 이를테면 이웃인 뎁 골드버그 같은 어른들에게 의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곧, 그런 든든한 뒷받침이 때로는 자신들을 겸허하게 만드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그런 날 중 하나는, 당시 두 살이었던 그들의 아들이 침대 위로 폴짝 뛰어오르며 '씨X'이라는 말을 무심코 내뱉었던 때였다. 당황하고, 욕설에 엄마가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이 된 아이는 곧장 뎁의 집으로 도망가 버렸다. "제프와 저는 서로를 멍하니 쳐다봤어요.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하고요." 킴이 말했다. 그는 몇 분을 기다리다 뎁의 집으로 가 아들과 얘기할 수 있을지 물었다. 아이는 당장 나가라며 꽥꽥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마침 뎁의 아이가 잠들어 있었던 터라 뎁은 당연한 듯 킴에게 나가달라고 했다. "'나가라니 무슨 소리야, 쟤는 내 아들이야' 라고 생각했어요." 킴은 회상했다.


당신이 긴급한 상황에 다른 어른 누군가가 대신 아이를 학교에 태워다 주거나, 힘든 밤을 보낸 다음 날 아이를 대신 돌봐주길 바란다면, 그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신이 더 많은 양육 지원을 받는 대신, 통제권은 줄어든다. 어떤 날엔 당신의 아이가 위로를 구할 때 당신이 아닌 다른 어른을 찾을 수도 있고, 다른 어른의 권위가 당신의 권위를 압도할 수도 있다. 킴은 이 트레이드오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이 뎁의 집으로 달려갔던 날 아이가 자신에게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서운함이 스쳤지만, 대부분은 고마운 마음이었다. 뎁이 상황을 잘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난 돌아가서 아침을 먹으면 되겠네. 해결은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되니까.' 킴은 당시 그렇게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킴과 제프는 이러한 감정선의 흐름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경험했다. 어떤 순간에는 고마움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예컨대 뎁이 편식이 심하던 그들의 아이들이 식탁에서 더 모험심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을 때가 그랬다. 뎁은 '토트 카페'라는 이름의 행사를 열어 공동체의 아이들을 초대했고 그들이 코스튬을 차려입고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이 친화적이면서도 우아한' 바나나, 아보카도, 두부 등을 차려놓은 메뉴에서 건강한 음식들을 직접 골라 맛보게 했다. 그의 장난기 가득한 방식은 '이게 오늘 저녁이야, 주는 대로 먹어'라 말하는 킴과 제프의 접근과는 달랐지만, 어떤 부모에게는 바로 그 다름이 아이를 더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키우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부모가 모든 걸 다 해줄 필요는 없어요." 제프는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뎁의 방식이 킴과 제프의 양육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의 또 다른 아들이 청소년이 되었을 때 성관계를 갖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뎁이 부모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 뎁이 그 이야기를 전했을 때, 제프는 당황스럽고 민망했지만 동시에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고 말했다. 뎁의 언질은 그들이 그동안 피하고만 있던 대화를 시작할 계기를 마련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에 관한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기준을 세울 이 대화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 것인지 충분히 고민해 볼 시간을 주었다. "저 혼자였으면 거기까지는 못 갔을 거예요." 킴은 말했다.


뎁의 개입을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킴과 제프는 어떤 양육 방식을 택하든 결국 아이는 보육 돌보미와 교사, 또래 친구 등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불가피한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들은 아이를 훈육하고, 생각에 영향을 주며, 부모인 당신보다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혹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다른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자랄수록 외부의 영향력은 곱절로 커질 것이다. 라피 같은 일부 부모에게 친구들과 함께하는 공동 양육은 아이가 다양한 관점에 노출될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된다. 이로써 아이는 어른이 되는 데에 서로 다른, 하지만 모두 타당한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또 다른 부모들은 외부의 영향을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특히 그것이 자신의 생활 공간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친구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나에게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갖고 놀게 해도 되는지, 어른들이 공동 공간에 술을 놔두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팽팽한 논쟁이 있었고, 그 외에도 돌봄 역할이나 주거 공간을 어떻게 나눌지를 두고 일상적인 의견 충돌이 이어졌다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인 크리스틴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 남편과 딸, 그리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가까운 친구 부부와 그들의 두 아이가 사는 집으로 이사했다. 그는 처음에는 함께 어울리기 쉬운 환경, 집안일 분담, 상호 지원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지만, 함께 살아간다는 건 결국 타협을 수반한다고 내게 말했다. (크리스틴은 자신의 주거 상황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하고 싶다며 성을 생략하고 이름만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친구 부부보다 가공식품이나 스크린 타임에 훨씬 엄격한 규칙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들은 왜 친구네 아이들은 초콜릿을 먹고 '옥토넛'을 계속 볼 수 있는데 자신들은 안 되는지 납득하기 어려워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놀이 모임이나 학교에서 각기 다른 가정의 규칙이 존재한다는 걸 어느 정도 인지하지만, 크리스틴의 아이들에게는 그런 차이가 바로 자기 집 거실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더 불공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크리스틴에게 공동 생활의 어려움은 단지 양육 규칙의 차이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아이들이 다른 필요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큰 이유다. 예를 들어, 크리스틴의 큰딸은 감각처리장애를 앓고 있어 활동을 전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만큼, 등교 준비도 자기만의 속도에 맞춰 할 때 가장 안정적인데 그로 인해 때때로 지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구 부부가 등원을 맡는 날에는 아이들이 수업 시간을 놓치지 않도록 모두가 제시간에 준비를 마쳐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만약 크리스틴 부부가 따로 살고 있었다면 비록 지원은 줄어들겠지만 큰딸과 막내딸의 필요 사이에서 스스로 균형을 조절할 자유는 있었을 것이다. 공동 가정에서는 이러한 융통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




작년 말 샬롯과 라피의 타운하우스 삼인방의 세 어머니가 모두 출산했다. 그중 둘은 불과 일주일 차이로 아기를 낳았다. 두 번째로 진통을 겪은 샬롯은 출산 후 며칠이 지나 병원에 다시 입원했고 그의 베프는 30시간 넘게 그의 곁에서 갓난아이를 달래고, 싸매고, 트림시켜 주며 회복하는 샬롯을 도왔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샬롯은 다시 한번 절친한 친구의 산파가 되었지만 이번에는 분만실에 들어가기 위해 8시간이나 운전하지 않아도 되었다. 새벽 3시 30분에 그냥 옆집에서 친구를 만나 같이 병원으로 출발하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베프 부부 옆집으로 이사한 이후 샬롯과 라피는 우정과 양육이 아주 특수한 상황은 물론 일상의 아주 평범한 순간들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모들은 서로의 발코니를 사이에 두고 아이들의 타이레놀 약과 시리얼, 우유를 서로에게 건넨다. 한 부모가 지쳐 보이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자신이 아침 시간에 아이들을 돌보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함께 살기 시작한지 반년이 지났을 무렵, 샬롯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난 6개월 동안에, 지난 양육의 기간 6년 내내보다 더 자주 친구들을 만나고 지냈어요." 대부분의 부모들이 집에만 있는 짬짬이의 시간은 이들에게는 즉흥적인 만남의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들의 아이들이 서로 놀아줄 수 있는 덕분에 더더욱 그렇다. 아이들이 잠들면 샬롯과 라피는 아기 모니터를 챙겨 발코니 담을 넘어 친구들의 집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제 밤에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을 즐기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나는 킴과 제프의 집에서도 이러한 양육과 우정의 어우러짐을 직접 목격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같은 공동체의 한 친구가 불쑥 찾아와 수다를 떨다 갔다. 잠시 후에는 또 다른 이웃이 집에 들어서기 전 문 유리에 코를 대고 눌러 김이 서린 표면에 손가락으로 하트를 그렸다. 마치 시트콤 한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의 집을 오가는 생활은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한 번은 임신 3분기에 접어든 샬롯의 절친이 두 아이를 데리고 라피와 샬롯의 집에 와서는 소파에 누워 그대로 잠든 적이 있었다. 이 행동은 부부들이 함께 정한 규칙 — 각자 자신의 아이는 스스로 책임지고, 친구에게 돌봄을 부탁할 때는 명확하게 요청할 것 — 을 본의 아니게 어긴 셈이었다. 샬롯과 라피는 답답했지만, 지쳐 잠든 친구를 차마 깨울 수는 없었다. 그녀가 편히 쉬길 바랐고, 솔직히 말해 그들 역시 예전에 자신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아이들을 떠맡긴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샬롯과 라피는 이러한 사소한 갈등들과, 그 갈등을 효과적으로 헤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들 베프와의 관계가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가끔 멀리 사는 친구들을 방문해 놀이 모임이나 저녁 식사를 함께할 때면, '어느 정도 예의를 지키는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라피는 말했다. 겉모습을 꾸미지 않고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것은 더 깊은 친밀함의 신호이자 그 친밀함이 가능해지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도 하다. 샬롯은 내게 말하길 그는 처음에 친구들 곁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상상했을 때, '양육과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는 지속적인 동반자 관계'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되었다. 친구들이 다함께 모여 모두의 가장 좋은 모습과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나누고, 평범한 일상부터 인생의 중대한 순간까지 공유하면서, 샬롯에게 친구들은 이제 단순한 동반자를 넘어 가족 같은 존재가 되었다.



레이나 코헨은 NPR 팟캐스트 '임베디드Embedded'의 프로듀서이자 에디터로 최근 저서 'The Other Significant Others: Reimagining Life With Friendship at the Center'를 출간했다.


1857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시사·문예 매거진. 진보적 성향으로 롱리드 피처, 인터뷰 기사로 유명합니다. 본래 월간지였으나 현재는 1년에 10회 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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