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브라질이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산업을 육성한 비결

기사이미지

2023년 파리 에어쇼에 전시된 엠브라에르의 소형 제트 여객기 E195-E2. /사진=AP/뉴시스

2025.05.09 16:05

기타
icon 19min
kakao facebook twitter

엠브라에르라는 기업은 항공 산업에 관심이 많은 분이 아니면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민수용 항공기 제조에서는 보잉과 에어버스에 이은 세계 3위의 기업입니다. 2023년 록히드마틴을 제치고 한국 공군의 차기 수송기를 공급하게 되기도 했죠.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회사가 브라질 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닭고기와 콩을 비롯한 농산물 수출 대국으로만 알았던 브라질이 항공기도 수출한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엠브라에르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이 성공한, 극히 드문 모범 사례입니다. 브라질 출신의 경제학자 페드로 프랑코가 설명하는 엠브라에르의 성공 비결을 PADO가 필자와의 협의 하에 한국 독자들에게도 소개합니다.


필자는 성공적인 산업정책에는 클러스터화와 적절한 시장 경쟁을 통한 규율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마나우스 자유무역지대의 '상처 뿐인 영광'은 한국 정부의 오랜 집착인 '국토 균형 발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인위적으로 인재와 생산시설을 분산시키는 것은 몇몇 지역에는 약간이나마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국가 전체로는 손해입니다. 반면, 브라질의 다른 '보조금 먹는 하마' 산업과는 달리 엠브라에르는 일찌기 수출 시장을 겨냥함으로써 시장 경쟁의 규율을 체득했습니다. 필자가 주석에서 언급하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로, 브라질의 농업은 제조업에 비해 정부 개입을 덜 받았다고 합니다. 이 또한 브라질 농업이 국가경제를 견인하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라틴아메리카를 더욱 주목해야 합니다. 올해 라틴아메리카 증시는 21% 상승해 유럽을 제치고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거 좌파 포퓰리즘의 대명사였던 라틴아메리카 정치 리더십도 아르헨티나 밀레이 대통령의 성과를 필두로 보다 전통적인(극우가 아닌) 보수 성향으로 바뀌고 있어 향후 전망이 밝습니다. 마나우스 자유무역지대(ZFM)와 엠브라에르의 두 사례를 비교하는 아래의 칼럼은 라틴아메리카 경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라틴아메리카는 경제학에서 여전히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영역이다. 20세기에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겪었던 경험과 정책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예를 들어, 수십 년간의 대규모 이민, 수입 대체를 통한 산업화 노력, 초인플레이션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대부분 중진국 함정에 빠진 라틴아메리카의 현재 상태를 이해하는 것은 남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의 신흥 경제국들에게 매우 중요할 수 있다.


노아 스미스1가 산업정책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왔기에 나는 내 조국 브라질의 경험, 특별경제구역(SEZ)인 마나우스 자유무역지대(ZFM)와 한때 국영기업이었으나2 지금은 상장 기업인 엠브라에르Embraer라는 대조적인 사례를 언급하게 되었다. 엠브라에르는 산업정책의 모범적인 성공 사례로 간주될 수 있지만 1990년대 거의 붕괴 직전의 상황을 겪은 바 있으며 그 창시자들도 엠브라에르가 이런 방식으로 성공할 것이라 예상하진 못했다. 반면 ZFM은 아마도 산업정책 역사상 가장 잘못 계획되고 비용이 많이 든 "성공 사례" 중 하나이며, 적절한 주의 없이 산업정책을 시도하는 국가들에게 반면교사다. ZFM의 보다 부정적인 사례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엠브라에르가 어떻게 고공비행할 수 있게 됐는지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사례로 마무리하자.


한 가지 작은 주의사항으로, 브라질의 군사 독재(1964~1984)가 두 정책 모두에서 과도한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나 경제학자로서 나는 독재 정권과 그것이 브라질에 끼친 영향을 혐오하지만 정권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은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ZFM의 사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ZFM은 마나우스Manaus라는 단일 도시에 주요 효과를 미치는 특별경제구역으로, 이곳의 제조업체는 낮은 세금과 다소 간소화된 관료주의의 혜택을 받는다. 1950년대 민주주의 정부에 의해 아마존을 "개발"하려는 더 큰 노력의 일환으로 잠정적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ZFM을 만들고 현재까지 지속시킨 것은 군사독재 정권의 1967년 법이었다.3 전반적인 목표는 간단했다. 아마존 지역을 산업화하여 개발하는 것이었다.



왜 마나우스인가? 마나우스 시는 아마존의 중심부인 아마조나스Amazonas주 아마존 강 유역에 위치했다. 이는 이후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데 아마존 강은 상당히 큰 컨테이너선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4 불행히도 아마존 분지는 마나우스를 다른 주요 산업 도시와 직접 연결하지 않으므로, 대부분의 해운은 먼저 아마존 강 전체를 항해한 다음 바다를 통해 계속 이동하거나 파라Pará주의 벨렝Belém에서 트럭으로 환적해야 한다. 마나우스 자체는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고무 붐으로 인해 상당한 호황과 불황을 경험했다. 불황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계속 성장하여 1950년대에는 브라질 20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아마존 열대우림 '내부'에서는 단연 가장 큰 도시였다.


브라질 마나우스 시내의 모습. /사진=신화/뉴시스

브라질 마나우스 시내의 모습. /사진=신화/뉴시스


그런데 왜 아마존 개발에 이렇게 집착하는가? 독재정권은 전반적인 경제 성장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 경우에는 경제 성장은 부차적인 고려사항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정권이 아마존 개발에 집착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사에서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 손꼽힌다. 아마존 내에 더 많은 인구가 살지 않으면 다른 나라가 브라질령 아마존의 영유권을 주장할지도 모른다는 편집증 때문이었다. 이는 당시 독재자 카스텔루 브랑쿠Castelo Branco가 1966년 연설에서 "안 쓰면 못 쓴다"라고 대강 번역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5 분명히 말해 아마존은 그다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다. 이곳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인구 밀도가 낮으며, 목재, 일부 농업 잠재력 및 고유한 생물다양성과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중요한 천연자원이 거의 없다. 브라질보다 훨씬 작은 아마존 이웃 국가들이나, 더 터무니없게는 미국이 아마존을 "차지"하는 데 관심이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신뢰성이 높지 않지만 어쩐지 최근까지도(!) 일부 브라질 사람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다.


ZFM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세금 인센티브는 매우 실질적인 의미에서 효과가 있었다. 만약 목표가 마나우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게 하는 것이었다면, 1950년대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가 현재 200만 명으로 성장했으며, 브라질 전체 평균보다 4배 더 빠르게 성장했다는 것이 단순한 팩트다. 아마존 숲과 강에 말그대로 포위된 대도시에 대규모 산업 단지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 중 어느 정도가 ZFM 덕분일까? 내가 찾을 수 있었던 가장 포괄적인 데이터 기반 연구(앞으로 여러 차례 언급할)인 홀랜드Holland 등의 연구에 따르면, ZFM의 혜택을 받지 않은 유사한 주와 도시들이 거의 그만큼 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상당히 결정적이다.


브라질 마나우스 인근의 모습. /사진=로이터/뉴스1

브라질 마나우스 인근의 모습. /사진=로이터/뉴스1


더 직접적인 증거는 다시 홀랜드 등의 연구를 통해 마나우스의 산업 활동 기준 GDP를 살펴보면 나온다. 이는 ZFM 통과 직전 약 40% 수준에서 1980년대 60% 이상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브라질의 자유화 및 초인플레이션 종료 시기인 90년대 중반에 다시 약 40%로 돌아왔다. 경제활동에 따라 수치는 다르지만, 현재 노동자 10만여 명이 ZFM에 직접 고용되어 있으며, 엔리코 모레티Enrico Moretti의 연구에 따르면 ZFM에 위치한 산업으로 인해 상당한 지역 승수효과가 발생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ZFM이 그곳에 위치한 공장들 덕분에 사람들이 마나우스에 살게 만드는 목표를 달성했다고 결론 내리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잘못된 산업정책의 결과

이제 당신은 부정적인 내용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왜 이것이 비용을 들일 가치가 없었는지 보여주는 많은 것들을 나열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스스로에게 해보자. ZFM은 과연 말이 되나?



제조산업은 왜 특정 위치에 있는 걸까? 예를 들어 왜 디트로이트에 자동차 산업이 있었고, 왜 중국은 해안에 제조 허브를 두고 있는가? 이에 대한 완전한 답변은 간단한 칼럼 이상의 내용이 필요하겠지만 클러스터링 효과(다른 회사와 노동자들과 가까이 있는 게 도움이 된다), 잘 교육된 노동력의 존재, 낮은 운송 비용이 중요한 부분이며, 이 세 가지 측면에서 ZFM은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산업 클러스터에서 떨어져 있고 교육 수준이 낮은 노동력을 가진 곳 그리고 제품이 결국 도달할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제조시설을 두고 싶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생산성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클러스터링 측면에서 90년대와 2000년대의 탈산업화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여전히 남동부 및 남부 주에 상당수의 제조 클러스터를 보유하고 있다. 놀랍지 않게도 이들은 ZFM 이전에도 가장 크고 가장 산업화된 주들이었다. ZFM의 창설은 제조시설이 마나우스로 이전함에 따라 일부 산업(전자 제품과 오토바이가 명확한 두 가지 예)의 탈집적화를 초래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듯이, 이는 거의 확실히 이들 산업 및 관련 산업이 일반적으로 제조업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클러스터링 효과를 활용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교육받은 노동력 측면에 대해서는 좀 더 추측이 필요하다. 홀랜드 등은 1980년대 이전에 마나우스의 근로자들이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 얼마나 잘 교육되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데이터가 없다고 주장하며, 나 또한 그들의 말을 신뢰하는 편이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1950~60년대에 아마존 주와 더 발전된 주들 사이에 1인당 GDP의 큰 격차가 있었다.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의 1인당 GDP는 약 7배 더 높았다.


마나우스의 주거지역과 열대우림의 경계. /사진=신화/뉴시스

마나우스의 주거지역과 열대우림의 경계. /사진=신화/뉴시스


아마존 주의 교육 수준이 다른 주들과 비슷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당시 브라질 전체의 교육 접근성이 매우 낮았으며 20세 미만의 약 30%만이 학교에 다녔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교육의 질 또한 상당히 낮았다. 즉, 마나우스는 브라질의 국민교육이 매우 부실했던 시기에 평균 이하의 교육 결과를 보였을 가능성이 높다. 아마조나스 주와 마나우스 시가 현재 유사한 저개발 주·도시에 비해 상당히 교육 수준이 높은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홀랜드 등이 ZFM를 높이 평가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 중 하나), 마나우스는 브라질 교육의 모범 사례가 아니며 좋은 대학도 많지 않다.7


마지막으로 운송 비용 측면이다. 예상할 수 있듯이, ZFM에서 이루어지는 제조의 상당 부분, 아마도 약 30%가 다른 브라질 주로 보내진다. 즉, 이 제조품의 상당 부분이 다른 인구가 많고 부유한 주에서 판매된다는 것이다.8 ZFM은 아래에서 논의된 것와 같이 많은 투입재를 수입하기도 한다. 따라서 물류에 최소 12~14일의 운송 기간9을 추가하여 시간과 비용 측면 모두에서 비용을 상당히 증가시키는 위치에 대규모 제조 기반을 두는 당혹스러운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이렇게 할까? 왜 굳이 마나우스에서 제조를 할까? 세금 인센티브가 클 뿐만 아니라, 사실상 영구적이 됐기 때문이다. 원래의 특별경제구역 사업은 1990년대에 세금 인센티브를 종료할 계획이었지만 이곳은 브라질이다. 정부가 특정 집단에게 어떠한 특권을 부여하면 그 집단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운다. ZFM의 경우, 여러 차례의 연장 끝에 현행 세금 인센티브의 기한은 2073년이다. 이는 독재정권의 결정도 아니다. 이러한 인센티브 연장은 브라질이 민주주의로 돌아온 후에 이루어졌으며, 이 산업정책이 어떻게 자연스럽고 강력한 로비 그룹을 형성했는지를 보여준다.


ZFM은 정부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떠안기는가? 홀랜드 등의 연구로 돌아가면, 그들의 가장 관대한 분석10으로도 ZFM에 의해 창출된 각 일자리는 정부에 (2018년 기준) 약 2만5000헤알(3600만 원)의 비용이 들며 이는 당시 브라질의 1인당 GDP인 3만3000헤알(4800만 원)에 매우 가깝다. 각 일자리의 실제 비용은 브라질의 1인당 GDP보다 높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ZFM으로 인해 포기한 세수는 GDP의 약 0.4%에 해당하는데 이는 브라질 인구의 0.9%를 차지하는 일개 도시에 대한 것이라고 믿기 어려운 금액이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마지막 중요한 토픽이 하나 있다. ZFM이 적어도 마나우스 산업의 기술적 발전을 가져왔는가? 앞서의 문제들에 비해 확언하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지만 내가 찾을 수 있는 증거는 그다지 좋지 않다. 초기 마나우스의 제조업은 주로 마지막의 조립 단계였으며, 상품의 구성 요소는 대부분 다른 곳에서 수입됐다. 이는 물론 지역 산업을 개발할 때 흔히 거치는 단계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인, 즉 더 큰 클러스터와 더 나은 대학의 부족, 물류 비용 등을 고려할 때 지역 공급업체나 신기술의 개발은, 내가 아는 한 일부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일례로 세계은행 보고서는 ZFM이 "경쟁력을 잃고 있으며 새로운 회사를 유치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그다지 좋은 징조가 아니다.


그러니 대신 사례 연구로 눈을 돌려보자. 브라질의 오토바이 시장의 75% 이상을 쥐고 있는 혼다는 ZFM에서의 오토바이 제조에 대해 많이 홍보를 한다. 세금 인센티브를 위해 ZFM에서 최종 조립을 하지만 공급업체의 72%는 상파울루 주(직선거리 2600km, 편도 보트로 최소 9일 소요)에 위치하고 20%는 마나우스 내에 위치한다. 그래서 마나우스에서 조립된 오토바이를 위한 제조업 일자리가 상파울루 주에 더 많다는 주장이 나온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인에서 비롯된 이 물류 배치의 불합리함을 굳이 더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나우스 소재 BYD 배터리 공장. /사진=신화/뉴시스

마나우스 소재 BYD 배터리 공장. /사진=신화/뉴시스


홀랜드 등의 연구에 따르면 ZFM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약 74억 달러(11조 원)의 투입재를 수입하고 (그리고 다른 주들로부터는 45억 달러(6조5000억 원)어치를 수입한다) 국외로 겨우 4억8000만 달러(7000억 원)어치를 수출한다.11 이는 최첨단의 경쟁력 있는 산업의 모습이 아니라 창설 50년이 지난 후에도 조립 단계에 멈춰 있는 제조업의 모습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부분의 제조품에 대한 브라질의 수입 관세가 높음을 고려할 때, 이것이 매우 과보호받는 산업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를 추가할 수 있겠지만 이 분석은 이미 너무 길어졌다. 존재하는 몇 안되는 증거에 따르면 어느 쪽으로든 환경에는 별 영향이 없음을 보여준다. 아마존 벌목의 대부분이 다른 주에서의 소 사육 수요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러나 이는 또한 ZFM이 아마존 숲에 긍정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거의 없음을 의미하며 실제로 나는 순효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의심한다.


마지막으로 더 큰 그림을 보자면, ZFM에 대한 가장 강한 방어조차도 꽤 약한 주장으로 끝난다. 세금 비용이 그렇게 높지 않다거나 교육 시스템이 브라질의 다른 지역보다 조금 낫다는 주장은 ZFM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하지 않다.12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대한 세금 인센티브가 없으면 마나우스의 제조업이 시들어버릴 것이라는 사실은 ZFM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보자. 창설 50여 년이 지난 후, ZFM은 아마존의 인구를 늘리거나 적어도 마나우스 시를 성장시키겠다는 목표를 달성했다. 일부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포기한 세금과 완전히 비논리적인 물류 창출 및 산업의 탈집적화 측면 모두에서 엄청나게 비용이 많이 드는 "성공"으로 남아있다.


꽤 충격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산업정책의 목표는 결코 세계적 수준의 산업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으며 그것은 그 결과에서도 잘 드러난다. 좋은 산업정책은 관세 및 보조금과 같은 특정 이점을 일시적으로 제공하고, 장기적인 지원은 다른 방식(인프라 및 기술 개발을 위한 다양한 방식의 정부 지원 같은)으로 제공하되 이러한 산업을 조만간 시장 경쟁에 노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보호는 해당 부문이 준비될 때까지만 지속돼야 한다. 그리고 산업정책은 어떤 자연적 이점이나 다른 방식(교육 같은)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완전히 발전할 수 있는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ZFM은 거의 모든 면에서 이 모든 것과 정반대다.


브라질에서 ZFM은 영원한 논쟁거리다. 비판론자들은 ZFM이 시작된 이후부터 공격해 왔지만 기업들의 로비는 상당히 강력했다. 그러나 이는 브라질 전체에 엄청난 비용을 초래하는 실수이며, 더 나은 제조 능력 개발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ZFM이 즉시 종료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 10만여 개가 직접적으로 ZFM에 의존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ZFM의 단계적 폐지 또는 정책 변경이 장기적으로 브라질 전체에 큰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엠브라에르의 팀원들: ITA와 DCTA

자! ZFM의 값비싼 "성공"을 살펴보고 나면 브라질 같은 나라가 산업정책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브라질이 제대로 된 산업정책을 펼친 눈에 띄는 사례가 그래도 하나 있다. 바로 항공기 제조업체 엠브라에르이며 이는 브라질 제조 역량의 놀라운 예로 널리 칭송받는다. 엠브라에르의 사례는 성공적인 산업정책도 겪을 수 있는 우여곡절과 연구 지원, 수출 등 몇 가지 핵심 측면에 대한 집중이 현재의 성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엠브라에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항공기술연구소Instituto Tecnológico de Aeronáutica와 항공우주과학기술부Departamento de Ciência e Tecnologia Aeroespacial의 설립부터 살펴봐야 한다. 항공기술연구소는 공공기관이지만 군에서 운영하는 대학으로 포르투갈어 약자인 ITA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항공우주과학기술부 역시 약자인 DCTA로 더 잘 알려진 항공학 연구 센터이며 역시 군에서 운영한다. 두 기관 모두 꽤 흥미로운 인물인 카지미루 몬치네그루 필류Casimiro Montenegro Filho가 설립했다.


여담으로 브라질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카지미루는 1930년대에 브라질에서 최초의 항공 우편을 설립하고 이 기체를 비행했으며 1940년대에 공군이 설립될 때 상대적으로 높은 계급13으로 육군에서 공군으로 이동한, 나름의 브라질 항공 선구자였으며 이는 그에게 나중에 필요해지는 영향력을 부여했다. 그는 40년대 중반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MIT가 기술 연구소로서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큰 관심을 가졌다. 당시 브라질은 매우 가난한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14 그는 브라질에 유사한 기관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심지어 MIT 교수였던 리처드 하버트 스미스Richard Habert Smith를 설득해 DCTA의 초대 총장으로 데려왔다. 연이은 정부에 대한 광범위한 로비 끝에,그는 CTA(당시 이름) 창설을 주도했고 ITA 창설을 지원했다.15


엠브라에르의 성공에 대한 두 기관의 공동 역할은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되므로 처음부터 ITA(대학)와 DCTA(연구센터) 모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두 기관 모두 항공공학에서 높은 수준의 우수성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로 만들어졌으며 이 점에서 크게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왜 그들이 고품질 교육 기관을 만들려는 브라질의 다른 여러 시도와 달리 성공할 수 있었는지는 흥미로운 난제이며, 조금 추측해 볼 가치가 있다.


군 운영 기관으로서, 다른 브라질 고등교육 및 연구기관과 비교할 만한 자금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 이유 중 하나일 수도 있지만,16 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다. 또한 브라질에서 군사 및 민간의 2중 용도로 사용하기 위한 공학 인재와 노하우를 개발하겠다는 본래의 목표를 꾸준히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기관들이 위치한 도시인 상주제두스캄푸스São José dos Campos는 브라질의 대도시인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 모두에서 운전 가능한 거리 내에 있도록 선택되었으며, 특히 ITA가 두 도시에서 학생들과 공학자들을 더 쉽게 유치할 수 있게 했다.


두 기관 모두 초기 몇 년 동안 해외에서 재능 있는 공학자들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해외와의 커넥션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ITA 자체도 엄청난 명성을 가지고 있으며, 의심의 여지 없이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입학 시험은 브라질 국내에서 가장 어렵고 브라질 고교 교과과정 외의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 명성이 중요한데 브라질의 초등 및 중등 교육 시스템이 상당히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매년 ITA와 같은 엘리트 기관에 매력을 느낄 뛰어난 학생들이 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것을 어떻게 달성했는지에 관계없이, 두 기관 모두 수년간 자격을 갖춘 인력, 전문지식 및 프로젝트를 제공함으로써 엠브라에르를 창설하고 유지하는 데 근간이 됐고 지금도 그렇다. 세 기관은 모두 자동차로 10분 안에 갈 수 있을 정도로 서로 가깝다. 상주제두스캄푸스가 브라질에서 그토록 성공적인 도시인 까닭은 이 세 기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역에 하이테크 제조업과 기술 개발을 유치하는 데 이 기관들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들 기관은 1950년 인구 5만 명의 작고 조용한 마을을 70만 명의 도시(브라질 전체 4배 성장에 비해 14배 성장)로 변모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1인당 GDP는 브라질 최고 수준으로 평균보다 50% 높다고 안전하게 추측할 수 있다.

엠브라에르의 부상

이제 엠브라에르 자체로 돌아가보자. 엠브라에르는 1969~70년에 ITA에서 공부했던 사람에 의해 설립됐는데 DCTA에서 개발에 성공한 단순한 비행기 프로토타입을 상업화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브라질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상업용 항공기 제조업에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 전성기에는 연간 250대 이상의 비행기를 생산했지만 이는 주로 군사 수요가 주도했기 때문에 이 회사들은 제2차 대전이 끝나자 빠르게 붕괴했다. 엠브라에르가 이를 능가하는 성공을 거두기 전까지 브라질에서는 소규모 생산업체 소수만 운영되고 있었다.


엠브라에르는 ITA와 DCTA 출신의 창립자들과 함께 국가가 대주주인 회사로 설립되었다. 회사는 일찍부터 틈새 제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고 그 초기 제품은 EMB-110이었는데 이는 브라질처럼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도 잘 운용할 수 있는 군사 및 민간용 소형 통근 비행기였다. 엠브라에르는 초기 20여 년간 유사한 유형의 항공기(소형 비행기)에 집중했으며 그 점에서는 효과가 있었다. 1989년 첫 정점에서 엠브라에르는 거의 10억 달러(2000년 달러 기준)의 매출을 기록했다. 그 중 절반은 수출이었고 약 2500명의 직원을 보유했다. 상대적으로 틈새 제품에 집중한 것을 고려하면 분명히 성공적인 회사였다. 하지만 이것을 '첫 번째' 정점이라고 불렀다는 걸 알아두라. 나중에 다시 논의할 것이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엠브라에르의 E195-E2 모형을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엠브라에르의 E195-E2 모형을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엠브라에르는 어떻게 이러한 성공을 거뒀나? 우리는 이미 ITA와 DCTA가 제공한 일반적이고 고품질의 전문 지식이라는 매우 중요한 요인을 살펴봤다. 하지만 다른 여러 요인들도 큰 역할을 했으며 그 중 다수는 산업정책에서 상당히 전형적인 것들이다. 첫째, 국영 기업으로서 정부는 상당한 초기 투자를 제공했다. 이는 60년대 브라질의 상대적으로 미개발된 자본시장을 고려할 때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초기 20여 년 동안 사업에 계속 자금을 지원했다. 둘째, 군대는 초기 역사 내내 중요한 발주처였으며 꾸준한 수주량을 제공했다. 셋째, 회사는 ITA 및 DCTA와 공동으로 또는 별도로 외국 항공기 제조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70년대 초반에 이미 파트너십을 구축했다.17 넷째, 비슷한 맥락에서 엠브라에르는 비교적 초기에 이미 상당량의 비행기를 수출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수출 집중은 기업의 역사 내내 유지되었다.


이것은 특히 중요하다. 앞서 간략하게 논의했듯이 브라질은 1930년대 초부터 산업화에 초점을 맞춘 수입 대체 사업을 시행했지만 1950년대가 돼서야 제대로 사업이 시작됐으며 이러한 사업은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ZFM 사례와 유사하게 이 사업들은 브라질을 빠르게 성장시키고 산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실제로 1950년부터 1980년까지 브라질의 성장률은 연간 약 7%였으며 주요 경제국 중에서 일본 다음으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국가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브라질은 1970년대에 중소득 국가 지위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입 대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수출 시장이 아닌 국내 시장 판매에 초점을 맞춘 산업을 창출하기 위한 산업정책이었다. 이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달성됐는데 한 가지 핵심 초점은 높은 수입 관세와 세금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인프라에 상당한 투자를 함으로써 외국인직접투자(FDI)를 장려하는 것이었다. 수출이 이 산업정책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던 것은 큰 실수였으며 1980년대 브라질의 '잃어버린 10년'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었다. 나는 그 이후 브라질 성장 문제의 상당 부분도 여기서 비롯된다고 본다.18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 (수출과 같은) 시장규율이 없으니 브라질의 제조업체들이 초기 FDI 이후만큼 효율적이 되기 위해 계속 투자하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하러 그런 노력을 하겠는가? 경쟁으로부터 보호받고 큰 내수 시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를 보여주는 한 가지 지표는 1980년경 이후 브라질의 총요소생산성(TFP) 성장이 대부분 매우 낮았다는 점이다.


다행히도 엠브라에르는 이러한 문제를 겪지 않았으며 항상 적어도 첨단 항공공학 기술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엠브라에르에게 수출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중요했기 때문에 거의 항상 경쟁에 직면하여 시장규율을 받아왔으며 비슷한 틈새 시장에서 다른 항공 회사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엠브라에르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는 한 가지 놀라운 요인은 바로 브라질 농업 부문의 성공인데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19 첫째로 아래에서 볼 수 있듯이 1970년대 이후 브라질의 농업 개척지가 엄청나게 확장되었다. 이러한 확장의 상당 부분은 엠브라에르 창립 초기에 일어났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의 개척지는 인프라가 극도로 열악해 통근 비행기 사용이 유리했다. 둘째로 개척지 외부 지역에서는 농업 기계화 추진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엠브라에르도 제조하며 항상 상당한 판매량을 기록해 온 농업용 비행기의 사용도 포함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브라질 국토가 워낙 크기 때문에 비행기에 대한 상당한 수요가 늘 있을 것이라고 주장도 있지만 당시 주요 브라질 항공사들은 대부분 미국 비행기를 운항했다는 점도 알아두어야 한다.

엠브라에르의 몰락과 재부상

1990년대 초가 되자 상황은 악화됐다. 브라질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다. 초인플레이션의 절정을 견뎌야 했으며 GDP 성장은 낮거나 심지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그 무렵 세계 GDP 성장은 급격히 하락했고 특히 엠브라에르 비행기의 주요 시장인 미국은 경기 침체에 빠졌다. 마지막으로 엠브라에르는 아르헨티나 항공기 제조업체인 FMA와 함께 새로운 비행기를 만드는 데 큰 베팅을 했는데 다른 외국 파트너십과 달리 이는 성공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나온 비행기는 너무 비쌌다. 전체적으로 엠브라에르의 매출은 1989년 수준의 약 25%로 무너졌고, 정부 자체가 당시 상당한 자금을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에 기업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보다 자유주의적인 정부가 권력을 잡고 있었던 상태에서 유일한 활로는 민영화였다. 반발에도 불구하고 엠브라에르는 1994년에 민영화된다. 이는 엠브라에르가 번창하게 만든 중대한 결정이었다. 자본이 절실했던 엠브라에르에 자본을 주입했고 의사결정의 자유가 확보되면서 더 많은 국제적 파트너십을 모색할 수 있게 했다는 게 중론이다. 이는 R&D 비용을 크게 줄이고 기존의 수직계열화 구조에서 탈피, 많은 구성요소를 외주화시켜 효율성을 개선했다. 엠브라에르는 또한 당시 상당한 수출 보조금 혜택을 받았는데 아마도 정부가 여전히 엠브라에르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20


엠브라에르는 또한 그 무렵 매우 성공적인 큰 투자를 했다. 이전의 초점에 더해 리저널 제트기(중단거리 여객기) 제조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21 이번에도 틈새 제품에 대한 현명한 투자 결정이었는데 리저널 여객기의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은 90년대 초반 비효율적인 터보프롭 비행기가 지배하고 있었고 연료 효율적인 제트기가 시장을 인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 제조업체 봄바디어Bombardier가 처음으로 이 시장에 과감하게 뛰어들어 초기에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는 엠브라에르 대 봄바디어의 경쟁에 관한 긴 이야기로 이어진다. 간단히 말해서, 봄바디어의 해당 분야에서의 초기 우위에도 불구하고 또는 아마도 초기 우위 때문에 엠브라에르는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었고 시장은 약 10년 동안 지속된 경쟁적인 복점duopoly 체제로 이어졌다. 그러나 엠브라에르의 비행기가 보다 저렴했고22 봄바디어가 더 큰 비행기를 제조하겠다는 엄청난 전략적 실수를 저지른 덕분에, 엠브라에르는 2000년대 중반까지 확실히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23


엠브라에르의 자회사 이브(Eve)의 전기 수직이착륙 항공기(eVTOL) 시제품. /사진=로이터/뉴스1

엠브라에르의 자회사 이브(Eve)의 전기 수직이착륙 항공기(eVTOL) 시제품. /사진=로이터/뉴스1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까지 대략적인 상황이다. 엠브라에르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리저널 제트기 제조업체이며 브라질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발전된 제조업체이다. 최근 보잉이 사업에 난항을 겪으면서 엠브라에르가 대형 제트기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봄바디어가 그런 선택을 했다가 맞이한 결과와 엠브라에르가 늘 틈새 제품에 집중하던 방식을 고려할 때, 나는 개인적으로 엠브라에르가 그렇게 할 것 같지도,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진 않지만 또 모를 일이다.


경제학으로 돌아가 보자. 이 이야기의 '교훈'은 엠브라에르가 매우 성공적인 산업정책 사례이며 여러 면에서 산업정책 관련 문헌에서 권장하는 (내가 이해하기로는) 고전적인 경로를 따랐다는 것이다. 즉, 엠브라에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강력한 초기 정부 지원, 개입을 받았지만 이 중 많은 부분이 결국에는 줄어들었다. 엠브라에르는 항상 수출에 강력히 초점을 맞추었고, 늘 외국 파트너십과 ITA, DCTA를 통한 정부의 간접적이면서도 중요한 기술 및 숙련 노동력 지원을 통해 첨단기술을 따라잡는 데 집중했으며, 처음부터 경쟁할 수 있는 틈새 제품을 선택했다. 또한 민영화되고 더 많은 자유를 얻은 게 이익이 되었으며, 이는 국영기업으로 설립될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성공했음을 의미한다. 브라질의 다른 산업정책 사례와 비교할 때, 엠브라에르의 민영화와 설립 초기부터 수출에 집중한 것은 오늘날의 성공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라틴아메리카 산업정책 전반에 대한 시사점

마무리를 위해 노아 스미스의 요청으로 한 가지를 언급하겠다. 본 칼럼을 쓰면서 참조한 출처 중 하나인 오드랏츠Odd-Lots 팟캐스트는 한 에피소드에서 엠브라에르를 다루었는데 팟캐스트에서 엠브라에르 자체에 대해 거론한 대부분의 내용은 정확하지만 브라질 전반에 대한 관점은 나의 이해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적 컨센서스에 내가 모르는 큰 변화가 있지 않는 한, 수입 대체 정책에 대한 이 팟캐스트의 주장은 주류 브라질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간략히 말해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의 수입 대체 정책의 성공은 이후 80년대의 잃어버린 10년(실제로는 15년에 가깝다)이나 그 이후의 미적지근한 성장(GDP 및 총요소생산성 측면에서)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이는 모든 산업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이 아니라, 특히 라틴아메리카가 산업정책을 추구한 방식에 대한 것이다.


게다가 팟캐스트는 80년대와 90년대의 자유화가 "시기상조"였는지, 그리고 그 이후 왜 명확한 산업정책이 부족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후자의 의문은 브라질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더 일반적인 질문과 함께 진지한 논의(그리고 아마도 다른 칼럼!)의 가치가 있지만 이 자유화가 얼마나 "시기상조"였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문이다. 50년대를 시작점으로 하여 80~90년대의 개방(관세를 인하하고 이전에 제한되었던 자동차와 같은 수입품을 허용)까지를 고려하면, 한 산업이 수입품과 경쟁할 준비를 하는 데 30~40년(!)이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24 팟캐스트가 강조하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구르겔Gurgel과 같은 토종 브라질 자동차 회사가 수십 년간의 보호(구르겔의 경우 27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는 사실은 왜 수입 대체가 장기적으로 실패로 간주되는지를 보여준다.


여담이 다소 길어지긴 했지만, 수입 대체에 대해 당신이 수입 대체에 대해 일반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와는 무관하게 팟캐스트의 주장에서 내가 명백히 틀렸다고 생각하는 점들이 있다. 예를 들어 팟캐스트는 수입 대체를 옹호하면서 "브라질의 원자력 및 컴퓨터와 같은 모호한 실패"가 있었다고 말한다. 내가 알기로, 1980년대에 다른 많은 문제들 중에서도 공학 인재의 부족이나 그것을 개발하기 위한 중요한 파이프라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수입 관세를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올려 브라질에 토종 컴퓨터 칩 산업을 구축하려 했던 시도는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산업정책으로 손꼽힌다.25


팟캐스트는 또한 엠브라에르, 페트로브라스Petrobras, 발리Vale와 같이 이 정책에 의해 창설된 기업들이 "수익을 내기까지 수십 년과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고 말한다. 엠브라에르에만 초점을 맞추면, 어떤 면에서는 엠브라에르가 리저널 제트기 사업에 진출한 후에야(즉, 창립 후 25년 이상, DCTA 창립에 초점을 맞추면 45년)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이는 산업정책이 작동하기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할 수 있겠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엠브라에르는 1990년대 초 위기 이전에 상당한 성공(그리고 수익도!)을 거뒀고, 오늘날 훨씬 더 큰 성공의 밑바탕이 된 대부분의 요인, 즉 ITA와 DCTA, 외국 파트너십, 수출 집중 등은 이미 그때 존재했다. 많은 산업정책 사례는 실현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제대로 작동되는 걸 보는 데 25년씩이나 걸릴 이유는 없다!


그리고 ZFM과 엠브라에르 두 사례 모두에 대한 마지막 핵심 교훈으로, 여기에는 강력한 아이러니가 작용하고 있다는 걸 알아둬야 한다. 두 정책 모두 (본질적으로) 군사 프로젝트였지만 다른 목표와 방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두 정책 모두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브라질 경제 전반에 미친 영향은 크게 달랐다.



페드로 프랑코 데 캄포스 핀토는 일본 도쿄 소재 무사시대학武藏大學의 경제학과 교수로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거시경제부터 정치경제학까지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서브스택에서 Economics, Frankly라는 뉴스레터를 쓴다.



 
clos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