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미국과 유럽의 격차가 15년간 더 벌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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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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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러피언 드림'(2004)이라는 책,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부의 축적을 중시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공동체와 삶의 질을 중시하는 유러피언 드림의 시대가 온다는 제러미 리프킨의 책입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전망은 그럴싸했습니다. 유럽연합은 삶의 질이나 의료, 심지어 GDP 측면에서도 미국을 앞서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아메리칸 드림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고합니다. 2008년에는 엇비슷한 수준이던 미국과 유럽연합의 GDP는 2023년이 되자 5조달러 이상 차이가 납니다. 대체 이유가 뭘까요? 흔히 제시되는 '유럽은 세금이 높고 노조가 세다'는 설명은 수십 년 전에도 사실이었기 때문에 지난 20년간 벌어진 격차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평론가 중 하나인 매튜 이글레시아스는 보다 참신한 설명을 제시합니다. 미국이 셰일 신기술을 적극 포용해 에너지 자립도를 크게 확보한 반면(미국은 현재 사우디보다 더 많은 원유를 생산하는 세계 최고의 산유국입니다) 유럽은 이를 금지하고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의존하면서 위기를 맞았습니다. 유럽연합은 그리스, 포르투갈 등이 위기를 맞았을 때 적절한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글레시아스가 보는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유럽연합에서 정치가 '실종'됐기 때문입니다. 유럽연합 전반의 정책을 시행하고 조율하는 집행위원회와 의회는 그 선출 방식이 유권자의 호오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집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권자의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영점 조정'을 하려는 정치인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정치가 현실 유권자와 점점 유리되고 있는 듯한 한국 정치도 유럽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15년 전만 해도 나는 유럽에 대해 꽤 낙관적이었다.


유럽이 미국보다 덜 부유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상당 부분이 더 긴 휴가 기간 때문이었기에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유럽은 보다 인간적이고 비용 대비 효율성이 높아 보이는 의료 부문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유럽연합(EU)이 확대되고 회원국 간의 경제 관계가 더욱 긴밀해지면서 유럽은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미국이 누렸던 일부 이점을 상쇄할 수 있는 큰 긍정적 충격의 혜택을 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편, 미국은 유럽에 비해 훨씬 나빠 보이는 재정 정책을 갖고 있었다. 예산 적자는 막대했는데 그마저도 부시 시대 적자 지출의 상당 부분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낭비될 것이었다.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은 미국 정치경제의 또 다른 중요한 약점인 외국 석유에 대한 엄청난 욕구와 관련이 있다. 미국이 거대한 산유국이던 시절에는 많은 미국인이 석유를 많이 소비했다. 그러나 70년대 초에 미국의 석유 생산 능력은 피크에 달했고 이제 회복이 불가능한 쇠퇴기에 접어든 것으로 여겨졌었다. 중국과 인도는 그 어떤 선진국보다 빠르게 성장하면서 석유 소비를 늘렸는데 이는 세계 석유 가격을 구조적으로 상승시키고 미국의 무역 여건을 구조적으로 악화시켰다. 유럽도 이로 인해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유럽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에너지 효율을 크게 개선하여 타국가들의 부상과 그에 따른 원자재 압박에 대처하기에 좀 더 나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전망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디언 래크먼Gideon Rachman파이낸셜타임스에 쓴 것처럼 "2008년 유럽연합의 경제 규모는 16조2000억달러로 14조7000억달러의 미국보다 약간 더 컸다. 2022년이 되자 미국 경제는 25조달러로 성장한 반면, 유럽은 유럽연합과 영국을 합쳐도 19조8000억달러에 불과했다."


유럽은 여전히 휴가를 보내기에 매우 좋은 곳이며 공중 보건 부문에서 많은 부분 미국을 능가하지만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대륙의 경제적 운명의 대비는 흥미로우며 충분히 설명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나는 이에 대해 흔히 제시되는 설명들 대부분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런 설명들은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차이점을 주로 거론하기 때문이다. 유럽이 미국보다 세금이 높고 노조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15년, 30년 또는 45년 전에도 사실이었다. 한동안 유럽은 미국을 잘 따라잡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 문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퇴임 이후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것이다.

거시경제 관리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의 거시경제 관리는 나빴다. 당시 재정 및 통화 정책은 경기를 제대로 부양하지 못해 불필요한 실업이 수백만 인년1person-year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하지만 미국은 비참한 상황에 빠진 유럽보다 훨씬 더 잘 해냈다. 독일과 일부 북유럽 국가 경제는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포르투갈의 경제보다 더 잘 견뎌냈지만, 이들 국가가 모두 유로화로 묶여 있었기 때문에 더 큰 타격을 입은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경기 부양 정책을 채택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경제력이 강한 국가에서는 이웃 국가를 위해 '구제 금융'을 요구받고 있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물론 독일에서 스페인으로 직접 재정을 이전하는 것도 거시경제 정책 수단의 하나이긴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자율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발행하는 채권으로 모든 국가가 동시에 더 큰 적자 재정을 충당하는 게 가능했었다. 그럼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긴축을 덜 하는 한편 독일은 부가가치세 인하를 단행할 수도 있었으리라. 아니면 고속철도망 건설을 앞당길 수도 있었다. 군사력을 강화했을 수도 있었다. 또는 이 세 가지 정책 수단을 이리저리 조합하여 사용할 수도 있었다. 내 말의 요지는 당시 유럽연합이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자'는 직관적인 해결책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창의적인 정치 지도자라면 훈계나 비난에 빠지는 대신,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재정 부양책이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화 부양책을 너무 아끼는 실수를 범한 유럽중앙은행의 태도로 인해 더욱 악화됐다. 유럽중앙은행의 태도는 자신들이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의 유권자보다 미시경제 정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유럽 국가 정부들이 자신들이 승인하는 정책을 도입할 때까지 높은 실업률로 벌을 줘야 한다는 것처럼 보였다.

셰일 혁명

미국의 재정적자 친화적인 정치가 약점에서 강점으로 바뀌면서 양 대륙간의 에너지 상황도 변했다. 중국과 인도의 수요 증가는 원자재 가격에 상승 압력을 가했다. 그리고 미국인의 1인당 석유 소비량이 매우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미국의 무역 조건을 악화시켰다. 하지만 이로 인해 석유 추출의 기술 혁신을 위한 막대한 재정적 인센티브가 생겨났고, 미국은 수압 파쇄 및 수평 시추(프래킹)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유럽은 프래킹 기술의 발전에 대해 주로 이를 금지함으로써 대응한 반면, 오바마는 프래킹을 장려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프래킹 금지 조치가 없었으며, 오바마가 2014년 국정연설에서 설명했듯이 프래킹으로 천연가스 생산량이 크게 증가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의 탈탄소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제 보다 많은 일자리를 되찾는 데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미국 에너지에 대한 우리의 공약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발표한 종합적인 에너지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여 오늘날 미국은 수십 년 만에 에너지 자립에 더 가까워졌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천연가스입니다. 안전하게 추출할 경우, 천연가스는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탄소 오염을 줄이면서 경제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과도기 연료bridge fuel입니다. 기업들은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신규 공장에 1000억달러 가까이를 투자할 계획입니다. 저는 주정부가 이러한 공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없앨 것입니다. 의회도 더 많은 자동차와 트럭을 외국산 석유에서 미국산 천연가스로 전환하는 에너지 충전소 건설에 사람들을 투입함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저희 행정부는 공기와 물, 지역사회 보호를 강화하는 동시에 생산과 일자리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업계와 계속 협력할 것입니다. 또한 저는 미래 세대를 위해 더 많은 청정한 연방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제 권한을 사용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 시대에서 가장 많은 오해를 받은 사건 중 하나다. 공화당은 민주당이 국내 화석 연료 개발에 반대하는 정도를 크게 과장하는 편이고 민주당은 공화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종종 당혹스러워하며 반박한다. 오바마의 연설은 주목할 만한 예외였다.


실제로 임기 초반에 바이든은 반석유 정책에 마음을 두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는 재빨리 이를 포기했다. 현재 미국은 기록적인 속도로 석유를 생산하고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는 전략 석유 비축량에 대한 현명하고 창의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글로벌 가격 상한제와 같은 문제를 미국의 전략적,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일일 평균 석유 생산량 변화 추이. (단위: 배럴)

미국의 일일 평균 석유 생산량 변화 추이. (단위: 배럴)


바이든 에너지 정책은 탈탄소 정책을 후퇴시키지 않으면서도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저렴한 천연가스를 백업으로 사용하면 배터리와 같은 어려운 문제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고도 저렴한 재생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다. 천연가스로 공장에 전력을 공급하면 석탄으로 공급하는 것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다. 가스와 재생 에너지를 혼합하여 자동차에 동력을 공급하면 휘발유로 자동차를 운행할 때보다 배기가스 배출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끝나는 지점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현재 미국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반면 프래킹을 금지했다고 해서 유럽이 화석연료 사용을 중단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러시아에서 가스를 수입하는 걸로 대신했을 따름이다.

실리콘밸리여 영원히

미국의 마지막 큰 승리 요소는 2008년에 이미 굳게 자리잡은 것이었다.


15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사람이라면 미국이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의 세계 선두주자였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은 세계 최고의 검색 엔진이었다. 구글은 세계 최대의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세계 최고의 이메일 서비스의 영예를 나누고 있었다. 애플의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수직통합은 독특하게 매력적인 하이엔드 기기를 만들어 냈다. 미국에는 고위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데 익숙한 벤처캐피털 회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는 풍부한 노동력 풀이 있었다. 엔지니어는 자신이 일하던 스타트업이 파산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음을 알았고 창업자는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하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 경제 부문(IT)의 상대적 중요성이 급증함에 따라 훨씬 더 중요해졌다. 컴퓨터 관련 산업의 중요도가 높아짐에 따라 관련 산업의 생산도 전 세계로 확대됐을 수도 있다. 컴퓨터 업계가 여러 측면에서 더욱 세계화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세계화의 대부분은 미국 내에서 이루어진다.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에서 태어나 학생 비자로 미국에 와서 영주권을 받았고, 약혼녀를 데려오기 위해 영주권을 포기하고 H-1B 비자로 전환한 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가 됐다. 순다르 피차이 역시 인도에서 학생 비자로 미국에 들어와 H-1B로 전환해 맥킨지에 취업했고, 그 후 줄곧 미국에서 살면서 구글의 CEO가 됐다.


다니엘 에크의 스포티파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테크 스타트업이다. 하지만 유럽 사람이 만든 스타트업 중 두 번째로 큰 스트라이프Stripe는 본사가 샌프란시스코 남부에 있고 창업자 콜리슨 형제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미국은 과도한 포퓰리즘 표현들과 이민 규제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실제로 존재하는 H-1B 비자의 결함을 프로그램을 개혁하기보다는 폐지하려는 구실로 계속 활용하려 했고, 민주당은 망명 신청의 혼란이 합법적인 이민까지 방해할 위험을 초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국은 첨단기술이 자국에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유지하고 있다.

성공의 근간

물론 이 시기에 일어난 또 다른 사건은 2010년 환자보호 및 부담적정보험법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으로 인해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훨씬 더 개선되었다는 것이다. 무보험 비율이 줄었고 비용 곡선이 꺾였다. 미국의 의료 서비스 공급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건 아니다. 그리고 미국의 시스템은 여전히 독일과 프랑스에 비해 주요한 면에서 뒤쳐져 있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핵심 분야 중 하나에서 진전을 이룬 반면, 유럽은 어떤 핵심 분야에서도 미국을 따라잡지 못했다고 본다.


왜일까?


가장 피상적인 수준에서 보면 버락 오바마는 중요하지만 과소평가된 진보적 변화를 이끌어낸 동시에 진보가 반발하던 중대한 변화를 받아들이도록 만든 정말 훌륭한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라고 본다. 2009년에 몇몇 미국 기자들과 함께 독일에 갔던 기억이 난다. 독일 동부의 어느 도시에서 밴을 타고 좁은 골목을 지나고 있었는데 한 골목에서 멈춰야 했다. 스마트Smart 자동차 하나가 골목에 무단 주차를 해 지나갈 공간이 없었다. 우리 밴을 운전하던 기사는 후진할 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으니 그냥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일행 중 하나였던 중년 미국인 여성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기사 당신과 일행 중 젊은 남성 몇 명이 그냥 내려서 작은 스마트 자동차를 들어서 옮기면 된다고 말했다. 운전기사는 "안 돼요, 불가능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은 우리 넷이 내려서 차를 옮기자고 했고, 우리는 마치 멘토스 광고처럼 그렇게 차를 옮겼다.



우리가 다시 밴에 올라타자 여성은 운전사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게 바로 미국 정신이죠!"


난 이것이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공공 문화는 실용적인 문제 해결을 매우 중시한다. 미국의 공공 정책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모습은 대중교통 같은 부문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저 유럽과 아시아에 이미 존재하는 모범 사례를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개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우버 풀2!)를 고집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직성이 덜하고 적응을 잘한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에서 정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은 매우 큰 권력을 갖고 있지만 유럽연합 자체는 인식 가능한 형태의 민주주의 정치를 수행하지 않는다.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 선거는 데이비드 슐라이처가 '2차 투표second order'라고 이르는 패턴을 갖는다. 유럽의회 선거에 투표할 때 스페인 유권자들은 자국 총리의 직무 수행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도구로 투표를 활용한다3. 이는 이탈리아, 폴란드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선거 결과와 관계없이 유럽의회는 항상 중도 우파 연합과 사민주의 연합으로 구성된 대연정에 의해 통제된다. 유럽연합의 내각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는 각 국가에 한 개의 위원회 자리를 보장하기 때문에, 각 국가의 집권세력이 누구냐에 따라 실제 위원회 구성은 엉망진창이 된다. 그리고 심지어 중소 규모의 유럽연합 국가 총리들도 브뤼셀의 유럽연합 본부에 가는 걸 미국 주지사가 상원의원이 되거나 장관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것처럼 '승진'으로 여기지 않는다.


'비민주적'이라고 할 순 없지만 매우 탈정치화된 시스템이다. 명확한 당파적 연합이나 실제 정책 토론도 없고, 재선을 걱정하는 현직자나 권력에 대한 야심에 가득한 야당 인사도 없다. 이로 인해 유럽은 이해득실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하고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협상을 타결하는 능력을 점차 잃게 됐다고 본다.

남아 있는 과제

이 미국 우월주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예외는 기대수명이다. 미국은 15년 전에도 유럽보다 기대수명이 더 낮았는데 이후 격차는 더 커졌다.


바꿔 말하자면 과거에는 이탈리아나 독일과 같은 유럽 선진국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폴란드처럼 유럽 기준에서는 가난한 나라와 비슷해졌다.


유럽 국가와 미국의 기대수명(1980년~2021년) 비교.

유럽 국가와 미국의 기대수명(1980년~2021년) 비교.


이 글은 기대수명에 대한 글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수명 문제를 해결하는 데 경제 부문에서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지는 않는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미국의 살인, 자동차 사고, 약물 과다 복용이 유럽보다 많은 게 미국의 번영의 원인이나 결과라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면 미국은 더 부유해질 것이다. 미국의 높은 비만율 및 비만 관련 질병과 경제적 번영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미국인이 더 부유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보다 더 뚱뚱하다는 설명은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보다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는 미국의 이 골치 아픈 경향은 실용주의와 문제 해결의 정신으로 훨씬 더 많은 정책 토론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미국은 많은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때이른 죽음을 피하는 건 대부분의 사람이 바라는 일이건만 미국의 물질적 번영은 아직 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매튜 이글레시아스는 미국의 정치평론가로 2014년 에즈라 클라인, 멜리사 벨과 함께 인터넷 매체 복스Vox를 창간했다. 블룸버그, 애틀랜틱, 슬레이트, Think Progress, TPM,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등에 기고한 바 있다. 현재 개인 블로그 Slow Boring에 주로 글을 쓰고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 인사들이 SNS에서 팔로우하는 주요 인사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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