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우디 알울라의 거울 건물 마라야 홀. /사진=신화/뉴시스
2025.05.30 14:47
20년 전 부라이다는 사우디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였다. 종교경찰이 거리를 순찰하면서 하루 다섯 번 기도 시간에 상점들이 문을 닫는지, 여성이 외출 시 남성 보호자와 동행하고 있는지, 어디서든 남녀가 한데 어울리지는 않는지 감시했다. 영화관이나 공연도 없었고, 식당은 대부분 남성 전용이었다. 20여 년간 상대적으로 낮은 유가가 지속되면서, 사우디 국민은 쉽사리 고임금의 공공부문에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전제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계약 해체에 따른 불만은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또 하나의 사우디 수출품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 2005년, 이 지역에서 활동하던 무장 세력은 거의 48시간이나 보안군과 충돌을 벌였다.
지금 부라이다에서 과거의 모습은 찾기 어렵다. 따뜻한 금요일 저녁, 번화한 시내 거리에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다름없이 자유롭게 오가고, 커플들은 함께 산책하거나 식당에서 나란히 앉아 식사를 즐긴다. 영화관들은 아랍 영화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상영하고, 도시 외곽의 여성 전용 운전 학원은 성업 중이다. 종교경찰은 자취를 감추었고, 테러의 기억도 흐릿하다.
하지만 부라이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 즉 경제 다각화의 부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영화관이나 운전학원 같은 일부 서비스 업종에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일자리는 공직에 집중되어 있다. 부라이다에서 주목할 만한 다른 산업으로는 대추야자 농업이 유일하며, 이는 대부분 이주 노동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왕실 주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실질적 통치자이자 흔히 MBS로 알려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10년간 경직된 사회 규범을 완화하고, 석유와 국가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힘써왔다. 사회와 경제 양 부문의 개혁 전략 중 사회 개혁은 놀라운 속도로 진전했다. 그러나 경제 개혁은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관대한 국가 보조금 체계, 강요된 종교적 경건함, 자원에 편중된 경제 구조라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과거 시스템을 불안정하고 지속 불가능하게 만든 구조적 압력들 즉, 불안한 유가, 출렁이는 재정 적자, 불충분한 청년층 일자리 창출과 같은 문제들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회 개혁으로 MBS에 대한 대중적 호감은 커졌지만, 사우디의 지속적 안정을 위해서는 '비전 2030' 가운데 경제 개혁의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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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S의 계획은 웅장한 구상부터 세부적 규정까지 아우른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초대형 프로젝트, 이른바 '기가 프로젝트'다. 2030년까지 거의 9000억 달러가 투입될 예정인 이 프로젝트는 방대한 미래형 '직선 도시', 뜨거운 사막을 내려다보는 스키 마을, 홍해를 따라 늘어선 50개의 고급 호텔, 리야드에 들어설 세계 최대의 건축물 등을 포함한다. 외형적으로는 덜 화려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관광에서 자동차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노력이다. 한때 한직에서 졸고 있던 공무원들이 이제 이혼부터 외국인 투자에 이르기까지 온갖 규정을 서둘러 재정비하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모두 600건이 넘는 개혁 조치들을 추진했다.
MBS의 사회 혁명은 개인의 자유를 확대했을 뿐 아니라 경제 활동도 촉진시켰다. 2018년 이후 여성은 이동, 취업, 창업에서 훨씬 더 많은 자유를 얻었으며, 채용이나 임금에서의 성차별은 이제 불법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20%에서 36%로 급증했다. 특히 고졸 여성들 사이에서 증가 폭이 가장 컸으며, 이들 다수는 민간 부문에 취업했다고 스와스모어 대학의 제니퍼 펙 교수는 지적한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나면서 가계 소득도 함께 증가했다.
행운 덕인지 통찰력 덕인지, 이러한 변화는 절묘하게 사우디 사회가 준비된 시점에 이뤄졌다. MBS가 종교 경찰을 배제했을 때 보수층의 반발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시카고대학교의 레오나르도 부르스틴과 동료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다수의 기혼 남성들이 개인적으로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지지하지만, 단지 사우디 사회 전체가 여전히 너무 보수적이어서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기업가 라티파 알타미미는 '비전 2030'이 자신을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만든 계기였다고 말한다. 놀랍게도 보수적인 노년의 아버지조차 사회 변화에 순응하고 있었다. 그녀는 덧붙였다. "저는 문화 충격을 두 번 겪었어요. 한 번은 미국에 도착했을 때, 또 한 번은 사우디로 돌아왔을 때였죠."
정부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육성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올해 초 제다에서 열린 포뮬러1(F1) 그랑프리 행사에서는 전신 레깅스 차림의 제니퍼 로페즈가 무대에 올랐다. 보다 일상적인 장면으로, 리야드의 야외 쇼핑몰 '불르바드 시티'에서는 DJ를 중심으로 젊은이들이 모여 춤을 추는 모습이 펼쳐진다. 20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다. 최근 몇 년간 비석유 부문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한 산업은 소매업과 호스피탤리티(숙박·외식) 분야였다. 사우디 중앙은행에 따르면, 외식·여가·문화에 쓰이는 가계 소비는 2017년 12%에서 2024년에는 거의 20%에 달했다.
관광 산업의 성장 또한 당국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로 2016년에 약 6천만 건이던 국내 숙박은 2023년에는 1억 건을 돌파했다. 대부분은 사우디인들의 국내 여행이었다. 알타미미는 2017년 사우디의 에어비앤비라 할 '개더른(Gathern)'을 창업했다. 현재 이 기업은 사우디 내 최대 스타트업 중 하나로 성장해 대가족 단위의 휴가 숙소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대규모 투자를 들여 화려한 리조트와 관광지를 조성했음에도 외국인 관광객의 비중은 전체 증가분에서 여전히 미미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관계 당국으로서는 실망스럽게도 경제 개혁은 진척이 더디다. 석유는 여전히 수출과 정부 세입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 활동에서 석유 부문의 비중은 2016년 국내총생산(GDP)의 36%에서 작년 기준 26%로 다소 감소하긴 했지만 여전히 압도적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덕분에 건설업이 활기를 띠고 있고, 소매업과 호스피탤리티 산업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의욕적으로 육성하려 한 다른 산업들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렇게 진척이 더딜까? 사회적 변화는 하룻밤 사이에도 가능하지만 경제 구조의 개편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한 가지 이유다. 몇몇 산업은 전망이 밝다. 사우디는 지질학적 조건뿐 아니라, 원유·가스 추출과 광물 채굴 간의 유사성 덕분에 광업 분야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소유한 기업 마아덴(Ma'aden)은 곧 보크사이트(알루미늄 원광) 개발에 착수할 예정이며, 이미 금광을 채굴하고 있다. 인도 기업 베단타(Vedanta)는 구리 정제 시설에 20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태양광 발전과 수소 생산 잠재력을 고려하면 재생에너지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사우디 내에 뿌리내릴 가능성이 있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론지(LONGi)와 같은 중국 회사들과 태양광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합작 투자에 착수했다. 홍해 연안의 고급 호텔들이 언젠가는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할 수도 있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 관광지를 중심으로 음주(飮酒) 금지를 해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계속 돌고 있다. 공공 조달에서 국산화 의무 규정 강화에 힘입어 일부 기초 산업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군용 탄환은 이제 국내에서 생산되는데, 대부분의 산업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행해진 일이다.
그러나 사우디가 필수적인 노하우 자체를 갖추지 못해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산업들도 있다. 자동차 제조가 그 대표적인 예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2030년까지 전기차를 연간 50만 대 생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로이터에 따르면, 2023년 말까지 사우디 유일의 자동차 공장이 미국에서 수입한 키트를 사용해 800대 차량을 조립한 데 그쳤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파루크 수사는 반도체 산업 추진도 유사한 난관에 봉착했다고 지적한다.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선도적인 입지를 점한 아랍에미리트(UAE)와 같은 다른 산유국들과 경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첨단 제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숙련된 인력과 기업 역량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유치 활동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가 쇄도하지는 않고 있다. 2024년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입액은 오히려 전년 대비 감소했다. 2030년 목표치에 도달하려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FDI 비중이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나야 한다.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 /사진=로이터/뉴스1
왕자들의 인질 몸값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2017~18년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MBS)가 리야드의 한 고급 호텔에 부유한 사우디 인사들(대부분 왕족)을 사실상 인질로 잡고, 막대한 자산을 정부에 헌납하게 한 기억이 여전히 남아있다. 또 2018년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인을 살해하고 그 시신을 훼손시킨 정부와 거래할 경우 기업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도 있다. 컨설팅 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분석가들은 사우디에서 사업을 하려면 여전히 정치적 인맥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또 현실적인 이유로, 정부 계약에서 대금 지급 관련 분쟁이나 지연이 드물지 않다는 점도 투자자들에게 부담이다.
트럼프의 무역전쟁도 외국인 투자 유치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관세 정책이 전 세계 경제를 냉각시킬것을 가정할 때, 세계 무역과 자본 흐름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5월 13일 사우디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방문 중 트럼프와 빈살만은 수천억 달러 규모의 상호 투자 계획, 즉 사우디가 미국에, 미국이 사우디에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양측 모두 실질적으로는 자국에 투자 자금을 끌어들이는 데 더 관심이 크다. 트럼프는 "사우디 친구들로부터 1조 달러를 유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가져온 무역 재편이 사우디에 일부 유리하게 작용할 여지도 있다. 트럼프는 사우디 제품에 최소 수준인 10%의 관세만을 부과했는데, 이는 대부분의 국가들에 예고했던 수준, 특히 중국에 이미 부과한 관세 수준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예컨대, 사우디의 석유화학 산업은 중국시장에서 특정 제품 공급업체로서 미국을 대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관세를 감안해도 사우디가 많은 제품에서 비용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새로운 제조 시설을 유치하기에도 UAE만큼 안정적인 환경으로 평가받지 못할 것이다.
또 하나의 제약 요인은 인적 자본이다. 사우디 남성의 절반은 공무원으로 일한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최근 증가하고 있으나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중동 전역 학생들의 수학, 독해, 과학 영역 학업 성취도는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 교육에 대한 정부의 막대한 투자가 무색하게 사우디 학생들의 성적은 UAE나 카타르 학생들보다도 저조하다. 종교 교육에 치우쳤던 과거 교육 정책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을 수 있다. 공공 부문에서의 안락한 일자리 보장이 학생들의 학업 의욕을 약화시켰다는 분석도 있다.
긍정적인 점은 사우디 정부가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는 사실이다. 사우디 정부는 중등 교육에서 종교 과목 수업 시간을 60% 줄이는 등 교육 체계를 현대화시켰다. 아직 실효성이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계약상의 권리를 명확히 규정하려는 새 투자법도 최근 발효시켰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는 정부가 민간 기업 활동에 점점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많은 기업인들은 유능하고 헌신적인 고위 기술관료들과 장관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정부가 추진하는 과업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오히려 이들이 병목 요인이 되기도 한다. 세세한 사안까지 정부가 직접 관리하려 들면서, 단순한 의사결정조차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왕세자 본인이 국영 자동차 업체의 모델 디자인까지 관여한다는 소문도 있다. 한편, 하위 관료 조직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해 일이 진척되기 어렵다. 이런 전반적 현실이 숨막히는 지체와 경직성으로 귀결된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제 '구축효과'의 교과서적인 사례가 되었다. MBS의 초대형 프로젝트들은 자본, 관심, 건설 자재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들 사업은 당초 예산 범위 내에서 완수한다고 가정해도 2030년까지 무려 8790억 달러를 소진할 예정이었으나, 현실은 이를 훨씬 초과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장기적으로 경제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다른 프로젝트들이 지장을 받고 있다. 예컨대, 광산 개발은 세계 다른 지역과 달리 인허가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굴착 장비의 부족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 경제가 과열되면서 전반적인 물가와 임대료가 급등했다.
차입 비용도 상승했다. 원유 수익이 감소하자, 정부는 은행과 채권 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전반적인 금리 상승을 초래했다고 골드만삭스의 파루크 수사는 지적한다. 국내 은행 대출 중 공공부문에 대한 대출은 약 20퍼센트로, 2015년 약 10퍼센트였던 데 비하면 비중이 크게 늘었다. 예금 대비 대출 비율(LDR)이 높아지면서, 은행들은 규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 상업적 차입에 나서야 했고, 이는 결국 대출 금리를 더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았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유망한 국내 사업에 자금을 공급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민간 부문 투자자들을 밀어내고 있다. 국부펀드의 연간 지출은 내년에 400억 달러에서 700억 달러로 늘어날 예정이며, 이는 국내총생산의 약 7%에 해당한다. 정부가 자금을 빠르게 집행하는 데 몰두한 나머지, 굳이 정부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사업들에까지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투자처의 자산 가치가 과도하게 부풀려지고, 정부의 투자 수익률은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들이 당국에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사우디의 재정 건전성 악화는 조만간 중대한 전환점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 지출이 급증하면서, 재정 균형 유가 수준은 2021년 배럴당 82달러에서 작년에는 96달러로 상승했다. 그러나 작년 실제 평균 유가는 약 80달러에 그쳤다. 그 결과 국가 부채는 꾸준히 증가했다. 2016년 GDP의 13% 수준이던 국가 부채는 작년에는 30%로 늘었으며, 올해는 그보다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사우디는 달러 표시 채권 발행 규모에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신흥시장 발행국이 되었다.
유가가 정부에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 향후 재정 전망은 한층 더 어두워지고 있다. 최근 몇 달간 고조된 무역 갈등의 여파로 세계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유가는 하락세를 보였다. 최근 몇 년간 사우디는 감산을 통해 유가를 끌어 올리려 했지만, 일부 OPEC 회원국들이 할당량을 초과해 원유를 생산하면서 효과는 반감됐다. 이에 사우디는 5월 3일 OPEC에 더 이상 편법 생산을 감내하지 않겠다며, 생산량 확대를 선언하고 시장 점유율 확보에 나섰다. 브렌트유 가격은 예상대로 배럴당 약 60달러 선까지 급락했다.
왕실의 고통
최근 유가가 떨어지기 전부터도, 2025년 1분기의 재정 적자는 이미 연간 예상 적자의 절반을 초과했다. 수출 수익 감소와 건설 관련 수입 급증으로 인해, 작년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섰다. 자원 수출국으로서는 드문 일이다.
자연스레 긴축 기조가 다가오고 있다. 당국자들은 이를 완곡하게 "우선순위 재조정"이라 설명한다. 가장 각광 받던 일부 초대형 프로젝트가 조용히 축소되고 있으며, 몇몇은 사실상 보류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점차 투자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 이를테면 관광 사업에 집중한다는 기조가 자리잡고 있다. 사우디 정부의 공식 입장은, 네옴의 선형(線形) 도시는 처음부터 사막 170km를 가로질러 조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 훨씬 규모가 적은 '개념 검증' 단계로 기획했다는 것이다. 사우디 국부펀드 역시 지출 삭감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유가 하락이 사우디 정부로 하여금 과시용 초대형 사업들을 축소하게 만든다면, 여타 사업에 대한 구축효과를 완화하는 추가적 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의 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은 더욱 과감한 전환을 요구한다. 일부 산업에서 정부의 철수, 국부펀드가 보유한 성공적인 기업들의 조속한 민영화, 교육 시스템의 급진적 개혁,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경제 혁신에 있어 더 신중하고 선별적이며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소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간의 역할 분담은 더 명확해져야 한다.
사우디가 추진해 온 전면적 사회 개혁은 정부에 경제 구조를 재편할 시간과 국민적 신뢰를 확보해 주었다. 젊은 세대는 여전히 새롭게 얻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변화에 익숙해지면, 그들의 기대는 더욱 커질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의지로, 이 왕국은 많은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변화를 이루어 냈다. 지금 방대한 국가 주도 기계가 나라의 미래를 재설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가동 중이다. 문제는 그 기계가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가이다.
역자 음해린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이코노미스트 5월 8일자 '브리핑'은 빈살만 왕세자, 일명 MBS가 이끈 사우디아라비아의 사회경제 혁신의 현주소를 짚어봅니다. 사회적 혁신은 상당히 이뤄졌지만, 아직 경제적 혁신은 불투명하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MBS는 '탈석유' 시대를 대비해 더이상 사우디가 석유에만 의존하지 않는 체질로 변모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과거 고유가로 넘치는 재정을 이용해 국민들 대다수는 힘들지 않고 생활할 수 있도록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사우디는 석유로 지탱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석유 외의 산업기반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여성들도 산업에 참여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상공업에 종사해야 하고 이를 위해 좋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또 해외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 사우디의 거버넌스, 즉 '법의 지배'에 대한 깊은 불신이 있습니다. MBS와 사우디 왕실의 변덕에 자신들의 투자가 위태로워질 위험성을 해외투자가들은 느낍니다. 이슬람권에서 정신적 맏형격인 사우디는 중동의 그 어떤 나라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첫 중동 순방이 사우디에서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중동외교에서 임기내 최종 목표는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정상화일 것입니다. 트럼프가 보는 미국의 국가이익, 그리고 MBS가 보는 사우디의 국가이익이 일치할 때 미-사우디는 새로운 중동의 핵심 동맹관계를 만들어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