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조 투입한 마이크로파이낸스 미소금융의 실패

번영을 촉진한다던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외려 수많은 차입자의 고통을 키웠다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을 제공하는 대형 은행인 아클레다 은행(ACLEDA Bank) 건물 앞을 현지 주민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고 있다. /사진=AP/뉴시스

마이크로파이낸스(소액금융)는 2006년 무하마드 유누스의 노벨평화상 수상 이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개념입니다. 금융이라는 자본주의적 도구로 빈곤을 해소할 수 있다는 매력으로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로 확산됐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 성적표는 초라합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6월 10일 기사는 전 세계 마이크로파이낸스 시장이 어느 지점에서 실패했는지를 짚어봅니다.


기사에서 인용하는 연구들은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빈곤 탈출과 자립의 도구로서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자금 융통'만으로는 빈곤 탈출에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교육훈련이나 멘토링 없이 자금 지원만 받고 창업을 해서 성공하기란 극히 어렵습니다('국제원조보다 현지 창업이 효과적인 까닭'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그보다는 생계비나 병원비 등의 단기적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에 그 유용성이 있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이들 연구의 결론을 그대로 따르자면 이 문제는 '금융'보다는 '복지'로 접근해서 풀어야 합니다. 상환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대출을 제공했다가 오히려 신용불량자가 되고 추심으로 고통받는 경우도 적지 않기때문입니다. 국가에 복지 재정 여력이 없거나 '재정 착시'를 의도한 경우를 의심할 수 있습니다. 2009년 한국 정부가 시작한 미소금융은 최근 6000억 원으로 두 배 확대될 예정입니다. 다른 나라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영세한 자본으로 사업하는 이들에게 소액을 빌려주는 방식은 세계 빈곤을 해결할 자본주의적 해법으로 여겨졌다.


기성 은행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지역사회에 대출을 제공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는 개발도상국의 빈곤층이 사업을 시작해 스스로 번영을 일굴 수 있게 도울 것으로 기대됐다. 1970년대 방글라데시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개척한 미국 유학파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었다.


"빈곤이 없는 세상에서 빈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빈곤 박물관일 겁니다." 유누스는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오슬로의 청중에게 말했다.


이후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들은 '수익도 내고 선행도 한다'는 격언을 앞세워 알바니아에서 짐바브웨에 이르는 여러 나라의 빈곤층에 수천억 달러(수백조 원)를 빌려줬다. 힐러리 클린턴과 내털리 포트먼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은 여성 기업가들이 지역사회의 형편을 개선한 고무적인 이야기를 전했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빈곤 완화와 더불어 교육접근성을 확대하고 젠더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도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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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누스가 노벨상을 받은 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러한 염원 가운데 실현된 것은 거의 없다.


무작위대조시험(RCT)을 포함한 학술 연구들은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대다수 차입자의 경제적 형편을 개선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제학자들은 과도한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이 보스니아·인도·캄보디아 등 6개국에서 차입자들의 상환 위기를 촉발했다고 밝혔다.


일부 중남미 국가에서는 100%가 넘기도 하는 고금리와 대출 담당자들의 압박 전술이 자살, 노숙,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에 내몰리는 사태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차입자는 대출금을 소규모 사업에 투자하기보다 의료비와 그 밖의 생필품 비용으로 쓴다.


오늘날 대다수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은 유누스의 구상과 거의 닮은 게 없다.


높은 금리와 낮은 채무불이행(디폴트)률에 이끌린 월가 금융회사들과 다른 은행들이 이 시장에 몰려들었다. 이들은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의 지분을 사들이고 자금을 지원하거나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채권을 유동화해 판매했다.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DFC)와 세계은행처럼 납세자의 돈으로 운영되는 개발기관에서도 더 많은 자본이 유입됐다.


이탈리아계 신용평가사 MFR을 위해 업계의 연간 자료를 수집하는 아틀라스의 계산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이 1억4000만 명이 넘는 차입자에게 내준 대출의 미상환 잔액은 2197억 달러(330조 원)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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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규모도 급증하면서 상환 부담이 커졌다. 아틀라스에 따르면 2025년 차입자 1인당 평균 채무는 1381달러(207만 원)로 2009년의 거의 두 배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확인한 개별 대출 계약 가운데는 금액이 수만 달러(수천만 원)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마이크로파이낸스 관련 학술 연구를 분석해온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학교의 레이프 미거Rafe Meager 부교수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빈곤 완화에 실패했다는 증거가 확고해진 만큼 이를 개발 도구로 사용하는 방안을 재고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반성이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았어요." 미거 부교수는 말했다.


유누스가 빈곤층 차입자에게 소액을 빌려준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1974년이었다. 당시 방글라데시 치타공대학교의 젊은 경제학 교수였던 유누스는 전국적인 기근 속에서 한 마을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유누스는 대나무 의자를 만들어 팔던 젊은 어머니 수피아 베굼을 만났다.


베굼과 마을의 다른 여성들은 현지 상인에게서 재료값을 빌린 뒤 물건을 팔아도 몇 센트(수십 원)밖에 벌지 못했다. 유누스는 여성들이 빚을 갚도록 27달러(4만 원) 상당을 건넸으며 극소 영세사업자들에게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의 신용을 제공할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유누스는 1983년 이 같은 대출을 제공하기 위해 그라민은행을 설립했고 곧 빈곤층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세계적 운동의 상징이 됐다.


비슷한 시기 미국 사회학자 제프리 애시Jeffrey Ashe는 엘살바도르에서 이른바 '연대 집단solidarity group'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는 그라민은행의 초기 방식처럼 차입자 5명이 공동으로 대출을 받는 제도다. 한 명이 대출금을 갚지 못하면 나머지가 대신 갚는다.


애시는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을 받아 매사추세츠주 소재 비영리단체 액시온인터내셔널을 위해 중남미와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시험했다. 이후 액시온은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100곳이 넘는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을 설립하거나 투자했다. 2007년 멕시코 최대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인 콤파르타모스방코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약 4억5000만 달러(6750억 원)를 조달했다. 액시온과 세계은행의 민간부문 투자기구인 국제금융공사(IFC)를 비롯한 이 대출기관의 초기 후원자들은 수천만 달러(수백억 원)의 이익을 거뒀다.


전환점은 2010년에 찾아왔다.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정치인들은 잇따른 자살의 원인으로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을 지목했다. 현지 당국자들은 수십 곳의 대출기관이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대출자산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빈곤층의 상환 능력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채 대출을 내줬다고 말했다.


유누스는 영리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들이 자신들이 대체하려 했던 고리대금업자와 닮아가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5년 뒤 학술지 '아메리칸 이코노믹 저널: 응용경제학'은 6개국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무작위 평가한 결과가 실망스러웠다는 내용으로 계간호 한 권을 구성했다. 어느 연구에서도 소액대출을 받은 가구의 소득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에티오피아를 다룬 한 연구에서는 대출을 받은 가구의 식량 소비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 바탐방에 사는 세 자녀의 어머니 삼리트 사라브(47)는 2015년 부모의 집 지붕을 수리하고 작은 농지에서 쓸 비료를 사기 위해 3000달러(450만 원)를 빌리며 첫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1년 뒤 사라브는 상환금을 연체했다. 사라브는 남은 빚을 갚고 농자재를 더 사기 위해 어머니에게 다른 대출기관에서 다시 3000달러(450만 원)를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부모의 토지를 담보로 받은 그 대출금은 아직도 갚는 중이다.


수입을 늘리려던 가족은 농촌을 떠나 바탐방으로 이주했다. 사라브는 오토바이 택시 운전으로 하루 5~7달러(7500~1만500원)를 버는 남편의 수입을 보태기 위해 재활용 공장에서 하루 최저 1달러를 받고 쓰레기를 분류했다.


그래도 돈이 부족하자 사라브의 아들은 13세에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와 함께 재활용 공장에서 일했다. 사라브는 매달 마이크로파이낸스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웃과 고리대금업자에게서 돈을 빌렸다고 말했다.


원금은 줄이지 못한 채 이자만 내는 월 80달러(12만 원)의 상환 부담과 부모가 토지를 잃을 수 있다는 위협이 사라브를 괴롭힌다. "지난 1년은 힘들었어요." 사라브는 말했다. "더는 살고 싶지 않았어요. 머릿속이 빙빙 돌고 잠을 잘 수 없었어요."


사라브는 자신의 빚을 아들들이 지게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목숨을 끊지 못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의 마이크로파이낸스 차입자 1인당 평균 채무는 3900달러(585만 원)가 넘으며 이는 1인당 연간 소득 중앙값의 거의 세 배다. 현재 상업은행으로 전환해 다른 금융 서비스도 제공하는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의 소액대출까지 포함하면 차입자 1인당 평균 채무는 6000달러(900만 원)가 넘는다.


2025년 말 캄보디아의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 10건 중 1건은 30일 넘게 연체됐고, 7.4%는 대출기관이 금리를 낮추거나 기존 대출을 갚도록 신규 대출을 내주는 방식으로 조건이 재조정됐다. 이 관행은 워낙 흔해져 크메르어로 '빙불 로이'(돈 돌려막기)라는 별도의 명칭까지 생겼다.


인도에서도 압박의 징후가 나타난다. 최신 자료에 따르면 2025년 3월까지 12개월 동안 30일 이상 연체된 소액대출의 비율이 세 배로 늘어 6.2%가 됐다.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들이 400%가 넘는 실효 연이율을 부과해 비판받아온 멕시코에서는 유명 대출기관인 '콘세호 데 아시스텐시아 알 미크로엠프렌데도르'가 지난해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2010년대 초 캄보디아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숨 가쁘게 팽창한 시기는 정부가 토지 소유권을 공식화하던 때와 겹쳤다. 채무에 담보를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유누스의 구상과 달리, 캄보디아에서 3000달러(450만 원)가 넘는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은 대부분 차입자의 토지를 담보로 한다. 토지는 대다수 빈곤 가정의 주된 실물자산이다.


일부 마을에서는 마이크로파이낸스 담당자들이 신규 대출 계약서를 쓸 준비를 갖추고 오토바이를 타고 토지 소유권 증서 배부 행사에 나타났다.


캄보디아 마이크로파이낸스협회(CMA)에 따르면 현재 개별 소액대출의 규모는 수백 달러(수십만 원)에서 최대 100만 달러(15억 원)에 이른다. 이 협회는 캄보디아의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 80여 곳을 대표하며 이들 기관의 지점은 수많은 도시와 마을의 주요 도로를 따라 줄지어 있다.


2016년 사라브의 어머니에게 3000달러(450만 원)를 빌려준 대출기관 프라삭은 1990년대 유럽연합(EU)의 원조 사업으로 출발했다. 프라삭은 현재 한국의 KB국민은행 소유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지분 70%를 6억340만 달러(9051억 원)에 인수했다. 사라브 본인도 아일랜드 비영리단체 컨선월드와이드가 설립한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 AMK에서 1000달러(150만 원)를 빌렸다.


이후 상업화된 캄보디아의 다른 주요 대출기관들을 설립한 단체로는 미국 볼티모어에 본부를 둔 가톨릭구호서비스(CRS)와 옥스팜 퀘벡 지부가 있다. 모건스탠리가 운용하는 사모펀드 '노스헤이븐 타이 프라이빗에쿼티 룸둘'은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에서 은행으로 전환한 아클레다의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다. 아클레다는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개발계획(UNDP)이 설립했다.


모건스탠리는 논평을 거부했고 KB는 논평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캄보디아 인권단체 두 곳은 국제금융공사 옴부즈맨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들은 국제금융공사가 약탈적 관행의 증거가 있는데도 프라삭을 비롯한 캄보디아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기관에 계속 자금을 지원하며 자체 기준을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마이크로파이낸스 대출 담당자들이 차입자들에게 상환금을 마련하기 위해 토지를 팔고 공식·비공식 경로에서 돈을 더 빌리라고 압박한 사례 수백 건을 기록했습니다." 진정을 제기한 인권단체 중 하나인 리카도의 날리 필로지 대외협력국장은 말했다.


리카도는 마이크로파이낸스 채무와 연관된 자살 23건과 이주, 아동 노동, 식량 소비 감소 사례 수십 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세계은행그룹 대변인은 위험 관리를 개선하고 차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국가 신용정보기관과 금융소비자센터 설립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캄보디아의 규제 및 소비자 보호 공백을 해소해왔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캄보디아 중앙은행(NBC)과 국제금융공사에서 직접 자금을 지원받는 대출기관들이 민원을 제기한 차입자에게 상환 부담을 덜어준 실적이 우수하다고 말했다.


"마이크로파이낸스는 사람들이 사업을 키우고 소득을 늘리며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돕는 중요한 금융 접근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은행그룹 대변인은 말했다.


캄보디아 중앙은행은 차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일부 개별 사례를 알고 있으나 이를 캄보디아 마이크로파이낸스 업계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최근 몇 년간 대출기관과 연구자들은 전통적인 기업대출처럼 첫 상환까지 유예 기간을 늘리거나 대출과 금융이해력 교육을 함께 제공하는 등 마이크로파이낸스를 개선할 방법을 모색해왔다.


최근 연구에서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기존 기업가의 사업 확장을 돕는 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욕대학교 와그너공공서비스대학원의 조너선 모르두크Jonathan Morduch 교수는 마이크로파이낸스가 유누스의 구상처럼 차입자나 지역사회의 삶을 바꾸지는 못했지만, 빈곤층에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업적으로 지속 가능한 기관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다고 말했다.


대출은 의료비가 생겼을 때나 파종부터 수확까지 몇 달 동안처럼 차입자가 단기적인 자금난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이크로파이낸스가 많은 곳에서 완벽하지는 않지만 비교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해요." 모르두크 교수는 말했다. "유동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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