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

작은 생물에 주목한 전시, 커다란 질문을 던지다

미 내셔널갤러리, 17세기 네덜란드·플랑드르 회화의 정수를 통해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조명하다

2025.06.20 14:45

Washington Post
icon 7min
kakao facebook twitter


얀 판 케셀 1세, <곤충과 파충류 연구>, (Oak Spring Garden Foundation)

얀 판 케셀 1세, <곤충과 파충류 연구>, (Oak Spring Garden Foundation)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흥미로운 인물이 조개껍데기, 작은 돌, 그 밖의 자연 수집용으로 제작된 정교한 장식장의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다. 이 인물은 근육질의 체격에 커다란 곤봉을 들고 있어 십중팔구 헤라클레스일 것이다.


그가 싸우고 있는 존재는 더욱 미스터리다. 하반신은 헤라클레스가 아내와 자식을 살해한 죄를 묻기 위해 처치한 네메아의 사자처럼 보이지만, 그 위에는 또 다른 괴물인 히드라의 여러 머리가 얹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히드라 역시 이 영웅이 물리친 존재다.


"경계를 흐리는 일은 그들을 완전히 매혹시켰다"고 스테이시 셀은 말한다. 셀은 알렉산드라 리비, 브룩스 리치와 함께 미국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작은 짐승들: 예술, 경이, 그리고 자연세계》를 공동 기획했다. 전시된 장식장을 가리키며 그녀가 말한 '그들'은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활동한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의 예술가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자연 세계에 대한 지식이 급격히 확산되던 시기를 살며, 예술과 과학, 호기심과 공포,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흐리는 이미지들을 만들어냈다.


이는 훌륭한 전시로, 비록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약 75점의 소형 판화, 드로잉, 회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금 이 시점에 꼭 들어맞는 전시처럼 느껴진다. 내셔널갤러리는 전시장 입구 외부에 팝업 기념품 숍까지 설치했는데, 이는 전시의 인기를 기관 측이 기대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내셔널갤러리는 한때 황금기의 네덜란드 미술 전시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했지만, 북유럽 바로크 회화 분야에서 오랜 기간 활약하며 큰 존경을 받았던 아서 K. 휠록 주니어Arthur K. Wheelock Jr. 큐레이터가 2018년에 은퇴하면서 그 전통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번에 그 전통이 돌아왔다. 전시는 집중력 있고 세련된 구성으로, 뛰어난 솜씨의 미니어처 회화들과 스미소니언에서 대여한 곤충 표본과 박제 등 다양한 샘플을 함께 아우르고 있다.


자코포 리고치, <자두나무 가지와 우드척[마멋]>, 1605년(National Gallery of Art)

자코포 리고치, <자두나무 가지와 우드척[마멋]>, 1605년(National Gallery of Art)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소장의 우드척 한 마리도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다. (James Di Loreto and Phillip R. Lee/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소장의 우드척 한 마리도 이번 전시에 포함되어 있다. (James Di Loreto and Phillip R. Lee/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회화와 실물 표본을 나란히 비교해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묘미 중 하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요소는 괴이한 헤라클레스 이미지가 등장하는 장식장이 제기하는 이중성과 모순들이다. 이 장식용 나무 서랍 상자의 상단에는 신화 속 영웅 조각 옆으로 실제 곤충과 도마뱀의 몸을 본떠 만든 금속 주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그 생생한 생동감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번 전시에는 실제 나비의 날개를 이용해 나비의 이미지를 '인쇄'하는 기법인 레피도크로미lepidocromy 작품들도 함께 소개된다.


실제 곤충의 날개로 색채의 인상을 남기거나, 동물의 실물 몸체를 이용해 삼차원적 형상을 본뜨는 방식은 이 작품들을 '전정한 예술'과 구별짓는 일종의 속임수이자 과도한 사실성에 이르는 지름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가들 — 요리스 회프나헬, 얀 반 케셀 더 엘더, 알브레히트 뒤러, 벤체슬라우스 홀라르 등 — 은 결코 그런 '속임수'을 쓸 필요가 없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나비를 '인쇄'(이 기법은 날개를 접착성 있는 종이에 눌러 색을 옮기는 방식이다)하는 것 만큼이나 쉽게 손을 움직여 사실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던 실력자들이었다.


이러한 인쇄 작품들을 감상하는 이들은 그 정밀한 재현성에 분명 높은 가치를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작동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지를 만든다는 행위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 자연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유럽 열강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를 식민화하던 시기, 세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은 급속히 확장되고 있었다. 동시에, 자연을 '길들이고 소유하려는' 욕망 역시 이 이미지들에 내포되어 있었다. 생물을 종이에 눌러 자취를 남기거나 금속으로 본을 뜨는 행위는 곧 그것을 문자 그대로 '소유한다'는 의미를 암시한다. 네메아의 사자와 히드라가 결합된 형상처럼 동물은 상상 속에서 창조될 수 있지만, 동시에 부유한 수집가의 동물원이나 이와 같은 장식장의 작은 서랍 속으로 실제 '소유'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얀 판 케셀 1세, <곤충과 파충류 속의 예술가의 이름>, 1658년(Alex Jamison/Oak Spring Garden Foundation)

얀 판 케셀 1세, <곤충과 파충류 속의 예술가의 이름>, 1658년(Alex Jamison/Oak Spring Garden Foundation)


전시 전반에 걸쳐 경이로움과 공포는 나란히 공존한다. 식민지에서 가져온 생명체들, 살아 있든 죽어 있든, 이들은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장시키는 동시에 기존의 범주와 사유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첫 번째 전시실은 후프나겔Hoefnagel이 16세기 후반에 제작한 동물계 조사 시리즈 『네 가지 원소The Four Elements』에 할애되어 있다. 총 네 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약 300점에 달하는 정밀하고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수채화들로 이뤄져 있다. 후프나겔은 고대의 네 가지 원소인 공기, 물, 흙, 불을 분류 체계의 기초로 차용했으며, 흥미롭게도 곤충은 '불'의 범주에 속하는 존재로 분류되었다.

이는 고전적 전통과 기독교적 유산이 혼재된 세계관의 일부였다. 이러한 유산은 때로 자연을 바라보는 데 유용했지만, 종종 실제 세계를 관찰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노아의 방주와 같은 성경 이야기는 동물들을 시각적으로 배열하고 서사화하는 데 있어 편리한 도식 역할을 했지만, 이처럼 그려진 생물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과 함께 중세의 잘못된 정보, 그리고 종교적 도덕주의의 껍질을 함께 지니고 있었다. 후프나겔이 그린 고슴도치 그림(이 유럽 동물은 신세계에서 온 기니피그와 함께 등장한다)에는 오래된 우화를 가리키는 라틴어 문구가 적혀 있다. 이 우화는 살아남기 위한 수 많은 꾀를 지닌 여우와, 오직 하나뿐인 꾀—몸을 말아 방어하는 것—를 지닌 고슴도치를 대비시키는 이야기다.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이 대비를 알레고리로 풀어낸 유명한 에세이1를 쓴 것은 1953년의 일이지만,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후프나겔과 같은 화가들은 라틴어 문구를 통해 이 대비를 해석하고 있었다. 특히 고슴도치의 제한적이고 철저히 수동적인 방어 방식이 여우의 수많은 술수보다 더 강력한 힘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덕으로 나를 감쌀 뿐"Mea virtute me inuoluo이라고 고슴도치는 말한다. 이는 권력 앞에서의 수동성이 바람직한 태도라는 함의를 담고 있는데, 물론 이것은 권력을 가진 쪽의 시선에서 본 것이다.


벤체슬라우스 홀라르, <조개껍데기 (대추고둥)>, 1645년경(National Gallery of Art)

벤체슬라우스 홀라르, <조개껍데기 (대추고둥)>, 1645년경(National Gallery of Art)

이러한 종류의 문구들은 비반성적, 본능적 사유였다. 새로운 세계를 이해해야 한다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 과제 앞에서, 마치 사고를 둥글게 말아 움츠리는 듯한 방식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쇠퇴해가는 계몽주의의 먼발치에서 이 시기를 돌아볼 때, 고전적 전통과 기독교적 유산을 단지 합리주의적 신세계를 만들어낸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간단히 쓸어버릴 장애물쯤으로 치부하기 쉽다.

그러나 많은 경우 탁월한 관찰력과 분석력이 담긴 이 작은 작품들은 르네상스가 결코 낡은 마법적 사고방식을 억압하는 데만 초점을 맞춘 시대가 아니었음을 일깨워준다. 오히려 르네상스는 그러한 전통들을 새로운 합리적 탐구의 형식 속에 수용하려 했던 시기였다. 어쩌면 사실적으로 묘사된 곤충과 파충류 옆에 위치한 헤라클레스의 등장은 과학과 신화가 우연히 뒤섞인 결과물이 아니라, 서로 충돌하는 인식 체계들을 길들이고 조화롭게 만들려는 치열한 투쟁의 정직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스포일러 주의: 르네상스의 이 과업은 대체로 실패했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식민주의를 논하지 않고서는 결코 온전히 설명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트럼프 행정부가 언어를 통제하고, 억압의 유산 수혜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역사의 장면들을 지우려 하는 현 시기에,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들이 이를 정면으로 다룬 점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식민주의는 단순히 이 작품들의 재료를 제공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한 기본적인 인식의 틀까지도 제공했다. 세계를 탐험하는 일과 그 세계를 기독교화하는 작업은 하나의 세계적 과업으로 결합되었고, '앎'과 '소유'의 경계는 점점 흐려졌다. 유럽의 진기한 물건들을 담은 장식장에 들어가 있는 조개, 화석, 동물 표본들 중 상당수는 식민 통치 하에서 강제된 노동, 혹은 노예 신분의 사람들에 의해 처음 수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원주민 공동체에게 동식물은 신성한 친족이다." 전시의 한 공간 벽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처럼 표본을 수집하는 행위는 최소한 이중적인 성격을 지녔다. 어떤 공동체를 위해 지식을 축적하는 동시에, 다른 공동체로부터는 그 존재에 담긴 의미를 박탈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다리오 로블레토Dario Robleto의 신작 영상 작품《우리가 만들어질 때까지: 자연을 위한 찬가Until We Are Forged: Hymns for the Elements》가 상영된다. 작품 제목은 회프나헬의 희귀하고 귀중한 동물 미니어처 도감에서 따온 것이다. 이 43분 분량의 영상은 내셔널갤러리와 같은 기관들이 예술과 지식의 유산을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수행해온 노력에 바치는 황홀한 찬가이며, 그 행위에 우주적이고 영적 의미를 부여한다. 식민주의의 보물이 보관된 장소였던 박물관은 이 작품 속에서 공감과 연대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과거의 모든 편린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망각할 권리가 있는가?" 영상의 내레이터는 연이어 이어지는 실존적 물음 속에서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파괴와 상처의 유산을 치유할 수 있을까? 생명을 서로 단절시키는 고립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새로운 감수성을 발명해야 하는가?"


이 영상은 지적인 동시에 지금 이 시점에 꼭 필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릴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영상의 말들이 지나치게 뜨겁고 과장되게 시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 (스테로이드를 맞은 켄 번즈를 생각해보라.) 반면 좀 더 냉소적인 관객들은 애초에 박물관이라는 공간에 도덕적 차원이 존재한다는 전제 자체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영상을 볼 것 같지는 않다. 불쾌감을 느낄 만한 무언가를 일부러 찾아보려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다.


얀 판 케셀 1세, <곤충과 로즈마리 가지>, 1653년(National Gallery of Art)

얀 판 케셀 1세, <곤충과 로즈마리 가지>, 1653년(National Gallery of Art)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곤충학 부서는 자체 소장 중인 곤충 표본을 활용해 이번 전시를 위한 장면 연출물을 구성했다. (James Di Loreto/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 곤충학 부서는 자체 소장 중인 곤충 표본을 활용해 이번 전시를 위한 장면 연출물을 구성했다. (James Di Loreto/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


놓쳐서는 안 될 전시품 중 하나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큐레이터들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작품이다. 이는 얀 브뤼헐 더 엘더의 손자이자 미니어처 회화의 대가였던 얀 반 케셀의 작품을 모방한 구성으로, 실제 사물들을 조합한 콜라주 형식이다. 이 실물들의 조합은 반 케셀의 회화에 담긴 이미지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작품에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장치와 인위성이 숨겨져 있는데, 그 중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다. 바로 그림 속 공간이 추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림에는 그림자는 있지만 배경은 없고, 위아래의 방향성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저 하얀 공허 속에서 각 표본이 '고립의 간극'에 의해 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콜라주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표본들은 핀으로 고정되어 있었고, 이는 곤충을 전시할 때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핀으로 고정한다"는 표현은 이제 어떤 개념이나 입장, 정의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일종의 관용구가 되었다. 명확성은 자발적으로 제공될 때 타인에 대한 배려일 수 있지만, 어떤 생각이나 존재를 억지로 '고정'하려는 행위는 폭력의 한 형태가 되기도 한다. 핀으로 고정된 대상은 반드시 죽어 있어야 하며, 그래야 그것은 '소유물'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유일하게 사라진 것은 '생명' 그 자체다 — 우리가 애초에 핀으로 고정하려 했던 바로 그것.


《작은 짐승들: 예술, 경이, 그리고 자연 세계Little Beasts: Art, Wonder, and the Natural World

전시는 내셔널갤러리오브아트National Gallery of Art에서 11월 2일까지 개최된다.

웹사이트: [nga.gov](https://www.nga.gov)



필립 케니콧(Philip Kennicott)은 퓰리처상 수상자로 현재 워싱턴포스트의 미술&건축 평론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1999년 이후 워싱턴포스트에서 고전음악 평론, 문화평론을 맡아왔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대영박물관 어시스턴트를 거쳐 현재 국민대 강사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역서로 '중국 근현대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미진사, 2023)가 있다.


1877년 창간돼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인 일간지로 손꼽힙니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으로까지 이어진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로 유명합니다. 2013년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인수한 이래 디지털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습니다.
 
clos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