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첨벙>, 1967, Acrylic on canvas, 242.5 x 243.9 x 3 cm © David Hockney/Tate, U.K.
2025.05.16 15:40
이곳은 노인을 위한 나라다. 파리 루이비통 재단에서 '호크니랜드'의 가장 밝고 유쾌한 최신 버전이자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가 막 문을 열었다. 올해 76세인 재단 회장 베르나르 아르노는 87세의 데이비드 호크니에게 전시를 의뢰했으며, 전시는 호크니의 오랜 친구 96세의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름 같은 모습의 미술관 공간에 마련됐다. 전시 기획은 또 다른 친구인 80세의 노먼 로젠탈이 맡았다. 전시의 주제는? 호크니는 건물 입구 외벽에 분홍색으로 이렇게 써놓았다. "기억해두세요, 그들은 이 봄을 취소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 전시의 진짜 주제는 삶의 순환, 자연의 흐름이자 호크니 자신의 인생 여정이다. 우아하고 화려하게 구성된 이번 호크니가 직접 선택한 대표작 전시는 그의 생애 마지막 전시가 될 가능성이 크며, 전후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명의 작품세계를 스스로 농축해낸 결과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 25》David Hockney 25 전은 21세기 들어 호크니가 요크셔와 노르망디에서 그려낸 사계절 풍경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작품은 초현실주의적이자 점묘주의적인 기법으로 자연을 확대 재현한 <큰 산사나무>The Big Hawthorn, <로마 도로의 5월 꽃>May Blossom on the Roman Road, 그리고 환하게 빛나는, 단순화된 노랑과 마젠타 색조로 그려진 <겨울 목재>Winter Timber다. 동시에 이번 전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대표작들을 총망라한 회고전이기도 하다.
미국의 자유와 할리우드적 색채는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과 <태평양 해안 고속도로와 산타모니카>Pacific Coast Highway and Santa Monica에서 강렬하게 표현된다. 청춘의 욕망은 <타잔나의 방>The Room, Tarzana에서 깨어난다. 오후 햇살은 반쯤 옷을 벗은 피터 슐레진저에게 쏟아진다. 프로방스의 쓸쓸함은 <예술가의 초상(두 인물이 있는 수영장)>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에서 묻어난다. 슐레진저는 투명한 푸른 수영장을 응시하고 있으며, 이 작품은 경매에서 9천만 달러에 낙찰되어 생존 작가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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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가장 최근 작품은 2024~25년에 제작된 <연극 속의 연극 속의 연극, 그리고 담배 든 나>Play Within a Play Within a Play and Me with a Cigarette이다. 이 작품에서 호크니는 트위드 정장에 둥근 안경을 쓰고, 맨몸의 뒤틀린 나무를 배경 삼아, 자신을 그리는 장면을 그렸다. 주변에는 수선화와 붓꽃이 희미하게 그려져 있어 봄의 도래를 알린다. 이 자화상은 호크니가 1963년에 그린 <연극 속의 연극>Play Within a Play과 대구를 이룬다. 이 초기작에서는 호크니의 딜러(화상) 존 캐스민이 토템 조각과 태피스트리가 그려진 그림과 플렉시글라스 사이에 갇혀 손을 들어올린채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이 작품은 동시에 전시의 서두를 장식하는 초기 무대 세트 그림들과 연결된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기묘한 두 쌍의 결혼 그림이다. 첫 번째는 <첫 번째 결혼(양식의 결합 I)>The First Marriage(A Marriage of Styles I) (1962)으로, 줄무늬 양복을 입은 남편과 목조 조각상이 등장한다. 두 번째는 1963년작 <두 번째 결혼>The Second Marriage으로, 호주 멜버른에서 특별 대여된 이 작품은 특이하게 잘린 캔버스 안에 장례 분위기의 신부를 묘사한다. 이 신부는 이집트 미라를 닮은 얼굴, 검정 스틸레토 힐을 신고 소파에 앉아 있으며, 옆에는 사실적으로 그려진 양복 차림의 남편이 커튼으로 둘러싸인 채 등장한다. 이들 작품은 허구와 투명한 리얼리즘 사이를 유쾌하게 오가는 긴장감을 드러내며, 성숙기 호크니의 회화 세계를 예고한다. 그의 작품은 누구에게나 쉽게 접근 가능하면서도, 시각적 세계를 정교하게 구축하는 깊이 있는 창작자의 면모를 지닌다.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랜드 캐니언>, 1998, Oil on sixty canvases, 207 x 744.2 cm,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with the support of Kerry Stokes, Carol and Tony Berg and the O’Reilly family 1999 © David Hockney/Courtesy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이번 전시는 2017년 테이트 모던 미술관 회고전에서 빠졌던 대표작들을 파리로 가져오기 위해 막대한 노력과 설득이 동원됐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호주 캔버라에서 빌려온 <더 큰 그랜드 캐니언>A Bigger Grand Canyon(1998)이다. 이 작품은 60개 패널로 이루어진 다중 시점의 입체주의적 구성으로, 총 7미터에 달하는 화면에 금색, 진홍색, 선홍색이 어우러져 황홀한 색채를 뿜어낸다. 회화성과 디자인 사이의 긴장감, 관능적인 색채와 모더니즘의 기하학적 그리드가 놀랍도록 조화를 이루며 관객을 압도한다.

데이비드 호크니, <접착력>, 1960, Oil on board, 127 × 101.6 cm © David Hockney/Modern Art Museum of Fort Worth
유럽 관객들에게는 처음 공개되는 작품 <접착력>Adhesiveness(1960)은 미국 포트워스 현대미술관 소장작으로,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낙서풍 양식을 연상케 하는 두 블록형 인물이 '69'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작품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온 <함께 샤워 중인 두 남자>Two Menin a Shower는 동성애가 불법이던 시절인 1960년대에 호크니가 동성애적 사랑을 찬미하며 그린 가장 노골적이고 대담한 예에 속한다.
호크니는 리스본 국립현대미술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좀처럼 외부 대여되지 않는 결정적 작품인 <르네상스의 머리>Renaissance Head(1963)를 확보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폴라이우올로Antonio Pollaiuolo의 옆모습 초상에 대해 일부러 조야하게 응답한 것으로, 거친 제스처로 채색되었지만 선묘는 극도로 정밀하다. 차가운 양식화와 해석의 여지를 남긴 구성은, 이후 호크니가 선보이게 될 간결한 이중 초상화 시리즈의 선구를 이룬다. 그 대표작 중 하나인 <헨리와 레이먼드>Henry and Raymond에서는 미술관 큐레이터 헨리 겔드잘러Henry Geldzahler와 작가 레이먼드 포이Raymond Foye가 느슨한 추상적 배경 앞에서 활기차게 대화 중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 작품은 놀라움을 안긴다. 한편 유명 인사를 담은 초상도 이번 전시의 백미다.

데이비드 호크니,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와 돈 바차디>, 1968, Acrylic on canvas, 212.09 x 303.53 cm © David Hockney/Private collection/Photo credit: Fabrice Gibert

데이비드 호크니, <클라크 부부와 퍼시>, 1970–71, Acrylic on canvas 213.4 × 304.8 cm © David Hockney/Tate, U.K./Photo Credit: Richard Schmidt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와 돈 바차디Don Bachardy>는 남근 상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바나나와 옥수수가 놓인 식탁 뒤에서 서먹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등장한다. 부부인 텍스타일 디자이너 셀리아 버트웰Celia Birtwell과 패션 디자이너 오지 클라크Ossie Clark는 <클라크 부부와 퍼시>Mr and Mrs Clark and Percy(퍼시는 고양이 이름)에서 완벽한 스타일의 1970년대 인테리어 속에서 무기력하고 불행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이들 작품은 단순한 초상을 넘어, 심리적 거리와 사회 변화, 전후 시대의 풍요와 개성, 스타일의 전환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전시장의 위층으로 올라가면, 다시 셀리아 버트웰을 마주하게 된다. 금발 곱슬머리, 큰 파란 눈, 부드러운 얼굴선을 지닌 그녀는 호크니의 오랜 뮤즈이자, 패턴으로서의 패션을 구현한 동반자였다. <스트라이프 셀리아>Celia in Stripes, <검은 드레스의 셀리아>Celia in Black Dress는 같은 전시실에 함께 걸려 있으며, 그 옆에는 호크니의 파트너 장-피에르 곤살브스 드 리마의 조카를 모델로 한 경쾌한 잉크젯 초상화 1<더 큰 수병, 케벤 드뤼즈 1>A Bigger Matelot, Keven Druez 1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마티스의 <젊은 선원>Young Sailor을 참조한 것이다. 이 후기 작품들은 1960~70년대의 날카롭고 대담한 천재성은 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뜻함과 유려한 표현력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셀리아는 호크니의 화폭 안에서 '스윙잉 런던'2의 상징이자 우아한 노년의 아이콘으로 자리한다. 호크니는 말한다. "나는 이미지를 만든다. 기억될 만한 이미지를, 꽤 많이 만들었지. 대부분 사람은 하나도 못 만들어."
루이비통 재단의 전시 공간은 거대한 갤러리와 아담한 방들을 교차 배치해, 호크니의 장대한 스펙터클에 적절한 무대를 제공하면서도 소규모 작품을 압도하지 않는다. 최상층에서는 오페라 음악이 울려 퍼진다. 호크니가 무대를 디자인한 오페라 장면들이 영상 설치물로 구현되어 있다. 역동적인 교차 해칭 기법이 돋보이는 <난봉자의 행각>Rake's Progress, 청화백자처럼 그려진 <꾀꼬리>Le Rossignol, 그리고 거대한 배가 출렁이는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 무대가 그것이다. 이 장면들은 감각적으로 몰입되게 하지만, 못지않게 인상적인 것은 2018~19년에 제작된 목탄 및 크레용 초상화들이다. 이 작품들에서 호크니의 손길은 여전히 가볍고 정확하며, 청소년기의 정체성 형성과 노년기의 체념과 내면성을 동등하게 공감 있게 다룬다. 푸른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진지한 청년 <루퍼스 헤일>Rufus Hale, 그리고 그림을 그렸던 당시 94세였던 피카소 전기 작가 존 리처드슨의 거대한 주저앉은 모습은, 세대를 초월한 생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데이비드 호크니, <J-P 곤살브스 드 리마, 2013년 7월 11일, 12일, 13일>, 2013,《82개의 초상화와 1개의 정물》, 2013-2016, Acrylic on canvas 121.9 × 91.4 cm © David Hockney/Collection of the artist/Photo credit: Richard Schmidt
젊음과 노년, 기억과 욕망, 잃어버린 시간과 되찾은 시간—이 모든 주제는 이번 전시의 다양한 작품들을 하나로 관통하는 핵심 실타래다. 전시 도록에서 공동 큐레이터 쉬잔 파제Suzanne Pagé는 이렇게 언급한다. "호크니는 '어린 왕자'의 동심을 간직한 작가이자 동시에 프루스트적인 기억의 탐구자이기도 하다."
<이탈리아로의 비행 — 스위스 풍경> (1962)에서는, 호크니가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지도 같은 도로 위에서 자동차 뒷좌석에 몸을 맡긴 채 휘청이며 이동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안전 난간이 없이 뻥뚫린 이 도로는 이후 <니콜스 캐니언>Nichols Canyon(1980)에서 짜릿한 포비즘 색감의 폭포 옆을 지나며 계속되고, <개로비 언덕>Garrowby Hill(1998)에서는 자줏빛의 강렬한 선이 조각조각 나뉜 들판을 가로지르며 내려간다. 캘리포니아의 광활한 풍경은 훗날 호크니가 그리는 요크셔와 노르망디의 시야에도 영향을 주었다. 2019년부터 노르망디에 거주하며 그린 이 풍경들은 자연과 삶의 기억을 담은 시각적 일기이자, 거처의 변화를 반영하는 연작이기도 하다. 건강 문제로 인해 2023년 런던으로 다시 이주한 이후, 노르망디는 또 하나의 기억 속 '에덴'으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호크니는 이 시리즈를 익살스럽게 시작한다. 비가 끊임없이 내리는 풍경을 아이패드iPad로 그린 애니메이션 드로잉으로 개시하며, 자연에 대한 관찰과 유머, 삶에 대한 감응을 함께 담아낸다.

데이비드 호크니, <데이비드 호크니의 지베르니>, 2023, Acrylic on canvas, 91.4 × 121.9 cm © David Hockney/Collection of the artist/Photo credit: Jonathan Wilkinson
호크니는 때로 무심하거나, 혹은 아이러니한 제목을 붙인다. <나무에 핀 수많은 꽃들>Lots of Blossoms on Trees, <조금 더 작은 첨벙들>Some Smaller Splashes 같은 작품 제목은, 노르망디 풍경화와 아이패드 드로잉들이 일부러 단순하게 보이도록 꾸며졌음을 시사한다. 이는 그가 평생 펼쳐온 명징한 관찰력과 활기 넘치는 리얼리즘의 느긋한 종결부이자, '가장한 순수'faux-naïf의 전략적 장르 전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크니는 여전히 프랑스 회화의 감각적 쾌락을 극대화한 거장들과 대화하고 있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지베르니>Giverny by DH는 클로드 모네의 연못을 기반으로, 나무와 구름의 곡선 반사와 군집된 형상들을 도식화한 작품이다. 수련은 노란 얼룩처럼 표현되며, 앙리 마티스가 지베르니에 반응해 만든 평면적 추상화 <이시의 정원>Garden at Issy을 떠올리게 한다.
호크니의 아이패드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노르망디의 사계절을 담은 12개 패널이 압권이다. 새벽부터 황혼까지의 변화가 이어지다, 마지막에는 모든 장면이 하나로 합쳐지며 태양이 폭발하는 듯한 이미지로 귀결된다. 이 장면에는 라 로슈푸코의 문장이 인용된다.
"태양이나 죽음을 오래 바라볼 수는 없다."
이번 전시는 8월 31일까지 파리 루이비통 재단(fondationlouisvuitton.fr)에서 열린다.
재키 불슐래거(Jackie Wullschläger)는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예술평론가로 활동중이다. 그는 '한스 크리스챤 안데르센: 이야기꾼의 삶'과 '샤갈: 삶과 망명'으로 스피어(Spear) '금년의 전기' 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역자 이희정은 영국 맨체스터대 미술사학 박사로 대영박물관 어시스턴트를 거쳐 현재 국민대 강사로 강의와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역서로 '중국 근현대미술: 1842년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미진사,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