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예술

종이 위의 인상파, 삶의 생동을 포착하다

드가와 세잔이 런던의 영국왕립미술원 전시회를 압도하고 있다. 드로잉의 위상을 높이고 드로잉이 그들 예술세계에서 근본적 의미를 갖게 만든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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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데리코 잔도메네기, <뒤에서 본 여인 습작>, 1890-97. 판지 위에 파스텔, 48 x 38 cm. Galleria D'Arte Moderna, Milan. / Photo: © Comune di Milano – All Rights Reserved

2023.12.29 13:27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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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미술원의 흥미로운 새 전시 '종이 위의 인상파 화가들'에서 19세기의 수도 파리가 우리에게 다채롭고 직접적이며 친근하게 다가온다.


마네는 비오는 어느 날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연필과 잉크 붓을 날세워 쓱쓱 연속된 선으로 오가는 우산들과 흔들리는 마차들을 <빗속의 모스니에 거리>(1878)에 담아낸다. 르느와르는 풍성한 검은 망사 장식을 두르고 지나가는 한 여인을 파스텔로 그린다. 여인은 힐끗 곁눈질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몽마르트르 윤락가에 있는 툴루즈 로트렉 <두 친구>(1895)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부드러운 윤곽선을 채찍을 휘두르듯 빠르고 단절 없는 선과 연한 구아슈 물감으로 그린다.


녹음이 우거진 파리의 한쪽, 베르트 모리조는 <불로뉴 숲의 말과 마차>(1883년 이후)를 공기처럼 가볍고 능숙하게 수채화로 그려낸다. 작가의 우아함은 거의 무심에 가깝다. 전시 자체가 마치 흩뿌려진 진주를 보는 것 같다. 여기저기 흩어진 점, 선, 번진 자국, 소용돌이 모양들은 스치듯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며, 작가들이 이런 새로운 표현 방식을 맘껏 즐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뿌려진 진주들을 아울러 엮는 끈이 부재한 듯 전시가 하나로 응집되지 않고, 작품의 수준도 고르지 않다.


관람객들을 즐겁게 하는 또 다른 작품 중에는 느슨하면서도 유쾌한, 구름 가득한 파스텔 풍경화들도 있다. 아르망 기요맹의 <하늘 습작>(1869), 외젠 부댕의 불타는 듯한 <바다 위의 일몰> (1860-70년 경), 수채화지만 파리한 겨울빛 아래 얕게 눈 덮인 에라니 근교 전원을 그린 피사로의 <흰 서리>(1890)가 있다. 반 고흐가 수채 물감과 초크로 그린 <집들이 있는 파리의 요새>(1887)는 밝고 단순화된 여름 도시풍경으로, 평면적이고 대담한 일본 판화 구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길가의 엉겅퀴> (1888)는 고흐의 리드미컬하고 빠른 갈대 펜 드로잉 능력을―갈대 펜은 빨리 건조되기에 속도와 결단력을 요한다―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빈센트 반 고흐, <집들이 있는 파리의 요새>, 1887, 종이에 흑연, 검은 초크, 수채물감, 구아슈, 38.7 x 53.4 cm. / Photo: © The Whitworth,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Photography: Michael Pollard

빈센트 반 고흐, <집들이 있는 파리의 요새>, 1887, 종이에 흑연, 검은 초크, 수채물감, 구아슈, 38.7 x 53.4 cm. / Photo: © The Whitworth,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Photography: Michael Pollard


모든 것이 신선하다. 작가들의 이름은 대체로 친숙하지만, 대부분의 전시작들은 그렇지 않다. 종이 작품들은 영구 전시를 하기엔 너무 민감하기 때문이다.


1870년대 인상파 화가들이 그림은 완벽하게 완결되어야 한다는 이상을 내던지고, 빠르고 찰나적인 근대의 삶을 생생하게 포착한 스케치풍의 즉흥적인 그림들을 선호하게 되면서, 드로잉의 위상은 즉시 올라갔다. 이전에는 작품 준비를 위한 습작으로 여겨져 전시나 판매 목적으로는 거의 의도되지 않았던 드로잉 작품들이 회화에 가까운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드로잉과 파스텔 작품들은 파리의 전통적인 아카데미 살롱전에서는 격조가 덜한 별관에 방치되었지만, 인상파 전시에서는 당당하게 유화 캔버스들 사이에 자리를 차지했다.


이같은 드로잉의 위상적 도약은 19세기 최정상의 두 혁신가 드가와 세잔에게 종이 위의 작업이 근본적으로 중요해진 하나의 이유가 된다. 다양한 재료로 작업을 하던 드가는 나중에는 주로 파스텔화를, 세잔은 수채화를 그리게 된다.


젖은 모래의 축축함이 느껴질 것만 같은 선명한 파스텔화 <썰물의 해변>(1869)부터, 신비로운 금은 빛을 감고 실크 부채 위를 유영하는 <두 명의 무용수>(1878-79)를 거쳐, 둥글고 볼품없는 인체들을 고도의 기법으로 입체감 있게 표현한 검은 초크 드로잉 <누드 습작>(1901년 경)까지 15점의 작품을 통해 만나는 드가는 경이롭고 압도적이다. 초록빛 종이 위에, 희석된 오일인 '에센스'로 그린 <하품하는 무용수>(1873)가 전시장에 들어서는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그림은 전형적인 '졸리레이드1' 인물화로, 팔을 목 뒤로 감고 몸을 젖히고 위를 바라보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옆에 걸린 분홍빛 종이의 <뒤에서 본 무용수>(1873)는 화려하면서 생경하다.



에드가 드가,  <뒤에서 본 무용수>, c. 1873. 분홍빛 종이에 에센스(희석된 유채), 28.4 x 32 cm. / Collection of David Lachenmann

에드가 드가, <뒤에서 본 무용수>, c. 1873. 분홍빛 종이에 에센스(희석된 유채), 28.4 x 32 cm. / Collection of David Lachenmann


드가의 친구인 시인 폴 발레리는 드가를 "여성이 빚어내는 모든 형상과 태도에 관한 냉혹한 감식가"이며 "세상에서 가장 지성적이고 까다로우며 가장 무자비한 소묘 화가"로 불렀다.


세심하고 치열하게 몰두하는 성격의 드가에게 '에센스'의 유동성은 즉흥적 표현을 보다 용이하게 했고 때로는 극적인 효과도 가능케 했다. '에센스'는 1870년대 중반까지 드가가 선호한 재료였다. 초기의 예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놀랍도록 분위기를 잘 연출해 냈는지를 볼 수 있다. 검은 옷을 입고, 쌍안경으로 눈을 감춘 채 관람객의 시선을 되받아치는 <리다, 쌍안경의 여인>(1866-68년 경)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퇴색한 파리에서 소리죽인 채 창밖을 내다보는 회갈색 <창가의 여인>은 1870년 프러시아의 포위 하에 파리가 기아에 허덕일 때 제작되었다. 여인은 모델료로 고기 한 덩이를 받고, 그 자리에서 날고기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1870년대 중반부터 드가는 칼라 스틱들, 특히 부서지기 쉽고 광택을 가진 파스텔로 왕성한 창의력을 보였다. 분말성의 조밀한 층을 이루는 파스텔화의 표면은 반짝이는 빛의 반사를 생생하게 구현한다. 드가는 갈지자로 선을 휘갈겨, 드로잉에 열중하고 있는 친구 화가의 어린 아들 <쟈크 드 니티>를 그린다. 검은 잉크로 덮인 커튼 위에 그림을 그리듯 모노타이프 위에 파스텔을 칠하면서 그는 <루도빅 알레비가 분장실에서 카디널 부인을 만나는 순간>의 장면을 드러낸다.


1890년대의 작품들을 보면, <벤치 위의 무용수>, <두 명의 무용수>에서, 혹은 영국 내셔널 갤러리에 소장된 <목욕 후 몸을 말리는 여인>의 늘어뜨린 붉은 머리, 연분홍빛 수건과 선명한 노란색 의자에서 보듯 질감 표현 방식은 넘치도록 다양해진다. 손가락으로 문지른 자국, 중첩되고 선명하게 대조되는 색조, 추상에 근접하는 활기찬 비구상적 필치 등이 다채롭다. 모든 조형에 의해 창조된 공간의 복잡성은 현란하기까지 하다. "나는 선을 사용하는 색채주의자이다." 드가는 말했다. 인상주의의 색과 빛의 풍성한 효과를 수용하면서도 1855년 앵그르의 "선을 그리게, 젊은이, 더욱더 선을 많이 그리게"라는 충고에 충실하였던 드가는 모더니즘을 향한 하나의 길을 개척하였다.



에드가 드가, <목욕 후 몸을 말리는 여인>, 1890-95년 경. 마분지(馬糞紙)에 놓인 그물 무늬를 넣은 고급 종이 위에 파스텔, 103.5 x 98.5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Bought, 1959. / Photo: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에드가 드가, <목욕 후 몸을 말리는 여인>, 1890-95년 경. 마분지(馬糞紙)에 놓인 그물 무늬를 넣은 고급 종이 위에 파스텔, 103.5 x 98.5 cm. The National Gallery, London. Bought, 1959. / Photo: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수채화에서 세잔의 여정은 이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세잔은 차츰 생략하고 줄여갔고, 그 결과후기 작품들은 반투명 수채로 자리 잡게 되며, 구도의 일부로서 여백을 두기에 이른다. 가히 걸작이라 할 작품 <화분들>(1885)을 보면, 선반 위 10개의 테라코타 화분들이 있고, 이를 아래에서 바라보아 움트는 새순들을 강조하고 있다. 초록 이파리들은 흐릿한 햇빛 아래 푸른 그림자를 배경으로 벽 장식(frieze)을 이루고 있어 그림 전체가 견고한 느낌이다. 반면 <레 로베즈의 화실 테라스에 놓인 화분들> (1902-06년 경)에서는 화분들과 식물 그리고 나무들이 빛을 발하는 색채 조각들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


<화장대>(1890)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단지 타월 한 장이 걸려있는데, 접혀진 모양새가 마치 장대하고 험준한 산의 경사를 닮았다. 가장 표현이 절제된 작품은 <생 빅투아르 산이 있는 풍경>(1904-06)이다. 여기에서 산은 무게감 없이 공중에 떠있다. 엷은 색조의 푸른색, 녹색, 갈색 붓 터치들이 망처럼 엮여 불규칙한 삼각형 모양의 산을 두른다. 전체적으로 빛이 퍼져 있지만 우수도 어려있다. "나는 푸생이 그러했듯 초원에 이성을 하늘에 눈물을 놓기를 원한다." 세잔이 후기의 풍경화들에 대해 한 말이다. 그의 친구 요하임 가스케는 후기 풍경화들이 세잔 예술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가장 탐구적인 합리성과 치열하게 씨름하는 가장 예민한 감수성"이라 통찰했다.


여기 전시된 세잔의 수채화 몇 작품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에 더 많은 것을 원하는 것은 욕심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지적인 관심이 전시회의 수십 명의 화가들 중 드가와 세잔에게 계속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술사의 넓은 반경에서 마네와 모네 역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만, 종이 작품들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캔버스에서 혁명적이었다. 전시된 모네의 파스텔 작품들 중 비껴가는 땅거미를 포착한 <에트레타의 해안절벽>(1885년 경)에서 창백한 바다와 어두워지는 하늘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는 덩치 큰 바위산은 그의 유화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순전한 야수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과감하게 실험적이면서도 그 시대의 대가들 중 명백히 가장 고전적이었으며 고집스럽게 소묘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고수했던 세잔과 드가는 당대의 유화가 성취한 것을 넘어서는 급진성으로 수채화와 파스텔 고유의 물성을 살려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 전시가 오직 그들의 종이 작품들만을 위해 헌정되었다해도 참으로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앙리 드 틀루즈 로트렉, <서커스에서: 앙코르>, 1899. 종이 위에 초크, 35.5 x 25 cm. / Collection of David Lachenmann

앙리 드 틀루즈 로트렉, <서커스에서: 앙코르>, 1899. 종이 위에 초크, 35.5 x 25 cm. / Collection of David Lachenmann



* 영국 왕립미술원(royalacademy.org.uk)의 <종이 위의 인상파 화가들>은 2024년 3월 10일까지 전시한다.



필자 잭키 불쉬래거(Jackie Wullschläger)는 1986년부터 파이낸셜타임스(FT)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예술비평가이다. 대표적인 저작으로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스토리텔러의 일생'이 있다.


역자 음해린은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에서 수학한 시각예술 전문 번역가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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