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럼프, '달러 패권' 붕괴에 가속페달 밟다: 마틴 울프·케네스 로고프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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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16 15:43

Financial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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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경제의 기축 통화 자리를 굳건히 지켜온 미국 달러의 위상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를 소개합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격적인 관세 정책 등으로 달러 가치가 수년 내 최저치로 하락하면서, '달러 헤게모니' 시대의 종말 가능성에 대한 질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과연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경제 논설위원 마틴 울프와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 교수이자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케네스 로고프가 날카로운 대담을 펼칩니다.


이 논의는 특히 한국의 독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한국은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어 국제 무역에서 달러의 역할과 안정성이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로고프 교수는 인터뷰에서 미국이 러시아 자산을 동결한 이후 인도, 브라질과 함께 한국 역시 달러 자산의 안전성에 대해 이전보다 더 주저하게 되었다고 직접 언급합니다. 이는 한국의 외환보유고 관리 및 통상 전략에 있어 달러의 미래가 얼마나 민감한 문제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나아가, 본 대담은 단순히 달러 가치의 등락을 넘어 미국 중심의 금융 시스템과 국제 질서의 재편 가능성까지 탐구합니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막대한 재정 적자, 그리고 금융 제재의 남용 등은 달러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유로나 위안화 등 대안 통화의 부상 가능성을 높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 경제와 금융 시장이 마주할 도전과 기회는 무엇일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 경제는 40년간 멈춰섰습니다. 미국과의 주요 협정 하나가 한 나라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생각하면 한미 통상협상, 금융협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마틴 울프Martin Wolf

20세기 중반부터 미 달러는 세계의 지배적 통화로 자리해왔지만, 그 긴 패권의 시대도 충격 없이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 관세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전통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안전자산으로 여겨져온 달러의 가치는 수년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달러 패권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는 걸까요? 암호화폐나 중국 위안화가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여기는 '이코노믹스 쇼'입니다. 저는 파이낸셜타임스 수석 경제 논설위원 마틴 울프입니다. 오늘은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를 모셨습니다. 저는 켄을 2001년부터 알고 지냈습니다. 그는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했고, 경제학자가 되기 전에는 체스 국제그랜드마스터이기도 했습니다. 로고프 교수는 국제 통화 및 금융 경제학 분야에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카르멘 라인하트와 공저한 '이번엔 다르다: 800년간의 금융적 실책This Time Is Different: Eight Centuries of Financial Folly'은 2009년 9월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최근에는 달러의 역사와 미래를 다룬 '우리의 달러, 당신의 문제Our Dollar, Your Problem'를 출간했습니다. 켄, 출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틴. 정말 영광입니다.


울프

우리는 지금 도널드 트럼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글로벌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미래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우려해야 할까요? 그 우려는 미국의 고질적인 재정 적자나 국가 부채, 대외정책 수단으로서의 금융 제재 의존 등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취약성에서 비롯된 것인가요, 아니면 트럼프 개인에 대한 우려가 더 큰 것인가요?


로고프

달러는 사실상 완만한 하락세에 들어서 있었다고 봅니다. 정점을 찍은 시점은 2015년경이었죠. 수십년 동안 완만하게 하락할 것입니다. 물론 시장점유율이나 이자율과 관련해 여전히 '지나치게 큰 특권'은 갖고 있지만, 예전만큼은 아닙니다. 제재를 가하거나 타국을 감시할 수 있는 능력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일종의 가속페달, 촉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로화나 위안화가 달러와 더 근접하게 경쟁할 것이라는 예측이 15년 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훨씬 더 빨리 현실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말이죠.



울프

미국은 실제로 자국 금융 시스템의 지배력을 이용해 '지나치게 큰 특권'을 향유하고 있습니다. 국제 금융 거래가 뉴욕에 집중되면서 미국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고, 유럽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이에 대해 불만을 표해왔습니다. 미국이 힘을 멋대로 남용해왔다는 다른 나라들의 불만이 결국 미국 달러의 지위 약화를 초래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보십니까?


로고프

물론 그렇습니다. 중국은 특히 그렇게 느낍니다. 과거 달러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아시아가 달러 블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왜 중국이 달러에 고정된 환율을 유지해야 하느냐는 회의가 있었는데, 말이 안된느거죠. 중국 관료들은 이것을 바꾸려 했죠. 이미 2015년부터 중국 내부에서도 고정환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죠. 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미국의 대(對) 러시아 제재였죠. 미국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3000억~3500억 달러를 동결했고, '디폴트'(채무불이행)라고 부르진 않지만 사실상 디폴트입니다. 중국도 저의 추산으로 약 2조 달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 단위의 달러를 직접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미 재무부 추산에 따르면 중국은 조 단위의 달러를 다른 방식으로 숨겨놓고 있다고 합니다. 인도, 브라질, 한국 등도 이제는 '내 달러 자산이 과연 안전한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있습니다.


울프

2015년이 달러의 정점이었다고 보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표들이 달러가 정점을 지났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시나요? 보유액 외에 무엇을 보면 될까요?


로고프

경제학자들이 참고하는 여러 지표가 있습니다. 지표들이 제 각각이긴 합니다만, 우선 달러로 거래되는 국제 무역의 비중을 볼 수 있습니다.


울프

달러 표시 무역이죠.


로고프

달러 표시 무역이 생각보다 적습니다. 물론 유럽 내부 거래를 제외하면 그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커지긴 합니다. 또 하나는 각국 기업이나 정부가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달러의 비중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포괄적이어서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지표는 외국 중앙은행들이 환율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는 점입니다. 환율을 안정화시키려 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안정화시키려는 것이냐? 유로화냐 달러냐? 이런 것입니다. 사우디나 홍콩처럼 특정 화폐에 고정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나라들은 인플레이션 타게팅을 이야기할 때도 유로화나 달러 대비 환율을 주시합니다. 이 기준에 따르면, 2015년 당시 달러의 지배력은 압도적이었고, 유로는 지역통화 수준, 위안화와 엔화는 미미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달러의 위상은 약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점점 줄어들 것이라 봅니다. 물론 다른 지표들이 있습니다만, 제가 말한 이 지표에 따르면 확실히 약화되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다른 지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킬 것입니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사진=로이터/뉴스1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사진=로이터/뉴스1


울프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의 무역을 축소시키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 시장이 폐쇄적이 된다면, GDP 대비 무역의 비중이 줄어들게 분명합니다. 타국이 자국 통화를 달러에 연동시킬 유인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달러에 자국 화폐를 어느 정도 고정시키는 것은 결국 미국 시장에서의 제품 경쟁력 유지를 위한 것이거든요. 미국 시장에 폐쇄되어간다면 달러에 자국 화폐를 연동시킬 유인이 사라지겠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처럼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달러 패권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데, 트럼프 측은 이런 연결고리를 인식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트럼프 정부는 '우리는 시장을 닫고 싶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달러를 사용하기를 원한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까?


로고프

가장 간단하게 말해봅시다. 제 말을 도널드 트럼프는 받아들이지 않을지 몰라도 이해는 할겁니다. 우리는 엄청난 규모의 무역수지 적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역수지 적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국은 달러로 돈을 쌓고 있고 이것을 미국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해외 자금의 국내 유입은 미국에서 일자리를 만들고,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립니다. 그런데 보호무역으로 무역이라는 기계에 '모래'를 뿌리면, 국제 금융의 흐름에도 모래가 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모든 국가가 100% 관세를 부과하면 해외 투자에서 수익을 얻기 어려워집니다. 이 원리는 10% 관세만으로도 적용됩니다. 금융 부문이 축소되는 것이죠. 그런데 미국은 글로벌 금융 통합의 최대 수혜자입니다. 트럼프의 정책은 절대적으로 금융 부문을 축소시킵니다. 우리가 손해를 봅니다. 제가 보기에 트럼프의 정책은 한마디로 "미국을 팔아치워라" 정책입니다. 미국 주식을 팔고, 미국 채권을 팔고, 미국 자산을 팔라는 말입니다. 매우 비생산적인 접근입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런 구조를 이해하고 있지만, 이런 이해가 트럼프에게 전달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울프

트럼프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트럼프쪽 사람들은 무역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낮추더라도 경상수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역의 중요성은 줄고, 결과적으로 무역 관련 경상수지 적자가 더 커질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대규모 적자와 함께 높은 관세 수익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는 거죠. 물론 그들이 그런 식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분석해보면 그렇게 볼 수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접근하는 건 꽤 이상해 보이죠. 그건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로고프

정부 재정적자를 더 늘릴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경상수지를 줄이고 싶다면, 정부 예산적자부터 줄이는 게 가장 눈에 띄는 출발점이겠죠. 지금 예산적자는 경상수지 적자의 세 배나 되니까요. 개인적으로도 그건 꽤 괜찮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경상수지를 줄이고 싶지 않다면, 민간 부문의 차입을 줄여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차입이 늘면 경상수지 적자가 늘어나죠. 어쩌면 이것이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일 수도 있겠죠. 그의 정책을 설명할 적절한 단어를 찾고 싶은데, 솔직히 말해 떠오르는 단어들이 '여러모로 어리석다'같은 거친 표현뿐이군요. 정치적으로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는 본인의 경제 정책이 굉장히 탁월하다고 믿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됩니다.


울프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꽤 진지하게 이 개념을 이해해보려 했습니다만 아직까진 이해가 잘 안됩니다. 이 개념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가 G5 즉 주요 5개국 사이에서―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맺었던 환율 조정 합의와 비슷한 걸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일본과 독일이 중심이었죠. 이 1985년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의 목적은 달러 가치를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볼커-레이건의 정책 조합, 즉 대규모 재정적자와 긴축 통화정책이 동시에 펼쳐지면서 달러가 급등했고, 결과적으로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죠. 그래서 주요국들로 하여금 자국 통화를 절상시켜 달러 가치를 낮추려 했던 겁니다. 그리고 2년 후에는 절하가 지나쳤다고 판단해, 루브르 합의Louvre Accord로 새로운 조정을 시도했죠.


이번 '마러라고 합의'라는 것도 보호무역 정책이 트리거가 되고 이에 따라 환율 조정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유사한 맥락입니다. 이 모델이 의미 있다고 보시나요? 스티븐 마이런, 스콧 베센트 같은 이코노미스트들이 이런 주장들을 하고 있던데요. 이런 플라자합의와의 유사성이 실제로 있다고 보십니까?


로고프

플라자 합의 얘기를 실제로 들여다보면 흥미롭습니다.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 총재가 그때 사용된 문서를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거기엔 엔화를 10% 절상시키는 게 목표로 명시돼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제임스 베이커와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길, '맞습니다, 그런 계획이었습니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10% 절상을 목표로 합의했고, 2주 뒤 실제로 정확히 10%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그가 웃으면서 말하길, 4주 뒤에는 25%까지 올라버렸고, 그때부터는 통제불능에 빠져버렸다고 하더군요.


울프

엄청난 충격이었죠.


로고프

그들은 금융 시장을 과감하게 규제 완화했습니다. 그러자 통제불능에 빠져버렸던거죠. 제 생각엔...


울프

일본을 박살내버렸죠.


로고프

네, 결국 일본을 박살냈습니다. 저는 한때 그건 너무 심한 조치였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다른 요소들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박살날 때까지 꽤 시간이 있었습니다. 언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원래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제 책에도 그 이야기를 썼습니다. 문제는 일본이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던 상태에서 규제를 풀도록 강요했다는 점입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템포에 맞춰 천천히 개혁을 진행했다면 그렇게 큰 위기는 없었을 겁니다. 일본 측에 엄청난 실수가 있었죠. 미국은 분명히 그 과정을 너무 빠르게 밀어붙였고, 일본은 이에 맞서지 못하고 너무 쉽게 굴복했습니다.


지금 거론되는 '마러라고 합의'는 화려한 장식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해외 중앙은행들에게 '보유 중인 미 국채 2조 달러를 100년 만기 채권으로 바꿔주겠다, 다만 시장에서 거래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겁니다. 금리는 우리가 정하고요. 사실상 디폴트 선언입니다. 우리가 빚을 져놓고 안 갚겠다고 하는거죠. 저는 원래 달러는 자연스럽게 하락할 것이라고 봤습니다. 하락을 유도할 필요도 없죠. 과거 1985년, 2002년에도 그랬듯이 달러가 과대평가되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게 됩니다. 해리스 행정부가 들어섰어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정책은 전혀 달랐겠지만, 결과는 비슷했을 겁니다.


울프

달러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현재의 상황은 1970년대 닉슨 쇼크, 즉 브레턴우즈 체제 해체와 달러의 금태환 폐기 등과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이 지금 다시 한 번 글로벌 통화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려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현대판 닉슨 쇼크로 볼 수 있을까요? 1970년대와 닮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로고프

틀림없이 닉슨 쇼크 이후 최대의 충격이며, 어떤 면에서는 더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는 닉슨보다 더 불안정한 인물입니다. 그를 잘 모르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 부당할 수도 있지만, 최소한 그의 정책은 그렇게 보입니다. 그래서 이 상황은 더 나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엔드게임'은 유사할 수 있습니다. 재정적자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트럼프는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하겠지만, 시장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고, 그 결과 국채 금리는 급등하게 될 겁니다. 그때 트럼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가격 통제 정책 같은 것도 나올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저금리로 강제 저축을 유도하는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이 펼쳐질 수도 있죠. 그는 '작은 정부' 주의자가 아닙니다. 당신이 '왕'이라고 묘사했던 것처럼, 아마 미친 왕이겠죠, 그는 제왕적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원래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혼란의 시대가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트럼프의 경우 그것이 스테로이드 맞은 극혼란 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의 관세 정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모합니다.


울프

결국 핵심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런 불안정성이 달러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전통적으로 사람들은 달러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중국은 자본시장을 개방하려 하지 않고, 유로존은 통합되어 있지도 않고 공공채권 시장도 없습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채권 시장이 따로따로 존재하죠. 유로존은 군사적으로도 제대로 힘을 쓸 수 있는 주권이 없습니다. 또, 암호화폐는 화폐라고 보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결국 달러가 패권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많았는데, 이런 시각에 동의하시나요? 이런 시각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하시나요?


로고프

그렇습니다.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15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UC버클리의 배리 아이켄그린, 하버드의 제프 프랭클 같은 경제학자들이 위안화, 유로, 달러의 3극 체제로 가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중국의 정치적 궤도 이탈, 유럽의 유로 위기, 미국 연준의 비교적 성공적인 대응 등이 맞물리면서 달러는 도리어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복잡합니다. 중국은 '장벽'을 세우고 있고, 그 장벽을 확정해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을 장벽 안에 두려 합니다. 사람들은 '중국을 어떻게 믿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미국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많은 나라들이 과거보다 미국을 덜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울프

많은 사람들이 예전보다 미국을 덜 신뢰하고 있습니다.


로고프

그렇습니다. 유럽인들은 늘 미국이 그런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만스러워했습니다.


울프

그들이 유로화를 창설한 이유 중 하나였죠.


로고프

네, 유로화 창설의 목적 중 하나가 미국의 달러 패권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유로화 프로젝트는 여러 한계를 가졌지만요. 트럼프가 딱 좋을 때 등장해 유럽이 자신들도 지정학적 힘을 가져야겠다는 의지에 불을 붙여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도 달러가 우위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만, 그 지위는 예전같지 않다고 봅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트럼프는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혁신의 원천인 학술연구기관을 공격하고, 우수한 외국 인재의 유입을 막고 있습니다. 비자 발급이 어려워졌는데, 경제 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경제학 박사가 아니라도 알 수 있는 거죠. 정부 지출은 대폭 늘고 세금은 줄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결국 심각한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세계의 종말은 아닙니다. 1970년대 닉슨 쇼크로 세계가 종말하진 않았죠. 저는 책에서도 언급했듯 5~7년 안에 또 한 차례 인플레이션 충격이 올 것이라 봅니다. 금융 억압도 다시 등장할 겁니다. 유럽과 일본처럼 보험회사, 연금펀드, 은행에 국가 부채를 강제로 떠넘기게 되는 것이죠. 미국은 더 큰 규모로 할 겁니다. 이는 민간 부문에 유입되는 자금을 줄여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습니다. 결국 더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누가 먼저 금융 위기를 맞을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무언가는 터질 것입니다. 아직 언급하지 않았지만 실질 금리는 오르고 있고, 온갖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선 반드시 뭔가가 터지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막상 터졌을 때 사람들은 '그게 당연히 터질 일이었지라고 말할 겁니다. 지금은 매우 변동성이 큰 시기입니다. 1970년대도 미국에게는 좋지 않은 시기였고, 이번에도 단지 향후 4년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때문입니다. 일단 벌어진 일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신뢰의 상실 같은 문제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모든 걸 트럼프 탓으로 돌리는 건,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일 겁니다. 근본적인 문제들은 그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왔습니다. 그는 분명히 가속페달이었고, 여러모로 촉매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울프

지금까지 미국이 유지해온 힘은 바로 경제의 역동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그것마저 훼손한다면,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도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고프

물론 트럼프가 돌연 태도를 바꿀 수도 있겠지만, 이미 벌어진 피해는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관세를 모두에게 10% 부과하고 "협상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4년 전 지난 임기 당시 캐나다, 멕시코와 그런 식으로 협상을 마무리했죠. 하룻밤 사이에 입장을 번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이에 따라 세계는 무역과 금융의 물꼬를 다른 곳으로 틀고,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 할 것입니다. 암호화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전 세계 GDP의 20% 정도가 지하경제인데, 그 영역에서 암호화폐는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늘리고 있습니다. 달러가 곧바로 대체되는 것은 아니지만, 단계적으로 위상이 깎이고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 변화는 수십 년에 걸쳐 이뤄졌어야 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울프

이제 달러의 엔드게임, 중기 엔드게임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저도 이전에는 '대안이 없으니 달러는 계속 우위를 유지할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미국이 여러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경제라는거죠. 경제의 통합성과 제도적 강점을 감안하면 비교적 안정적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이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습니다. 채권 시장과 환율에 나타난 자본 도피 현상은 그 증거입니다. 이 같은 불안정성은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당신이 말한 대로 재정이 계속 악화되고 금융 억압을 시도한다면, 달러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의 미국에 대한 신뢰가 서로 얽히면서 충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로고프

결국 어디엔가 안착하겠지만, 그 전환 과정은 상당히 불안정할 겁니다. 이런 전환 자체가 본질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트럼프가 일정 수준에서 통제력을 유지한다는 전제를 두었을 때조차 말이죠. 그 역시 확실하지 않습니다.


울프

결국 당신의 말은 이렇습니다. 어차피 자연스럽게 하락할 달러 자체보다는 달러 하락과 함께 나타날 엄청난 불안정성—즉 충격의 연쇄와 정치적, 지정학적 격변—이야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문제라는 거죠. 지난 20년을 돌아봐도 우리는 이미 상당한 혼란을 겪어왔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그 이후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 유럽의 교역조건 충격까지. 그리고 이제 트럼프라는 요소가 더해졌습니다. 지금 당신은 앞으로 이보다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전망하는 것이군요. 그것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고 지정학적인 혼란을 동반하겠죠?


로고프

그렇습니다. 저는 학자라 당신처럼 간결하고 멋지게 말하지는 못하지만, 요지는 같습니다. 매우 어려운 시기가 올 것이라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2028년에는 누가 나올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오카시오-코르테즈일지, 아니면 마가(MAGA) 후계자일지. 우리가 길을 찾는데 꽤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물론 과거 빌 클린턴이 민주당을 중도 성향으로 끌어올렸던 것처럼, 또 다른 균형점이 찾아질 수도 있겠죠. 그러나 향후 5년, 어쩌면 10년까지도 극도로 불안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현 정부가 어떤 충격을 '관리'할 수 있을까요? 현 정부가 충격이 되고 있는데요. 저는 중국을 오랫동안 그렇게 봐왔습니다. 그들은 실력으로 관리를 뽑지 않습니다. 그런 관리들이 문제를 관리할 수 있을까요? 이제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 팀에도 유능한 인물도 있지만, 결국 모든 결정을 트럼프가 내립니다. 진짜 위기가 발생할 때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엔 어렵습니다.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물론 저도 미국인으로서 잘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을 보면 너무나도 안일합니다. 모두가 연준을 믿고 있죠. 저도 연준을 신뢰하지만, 연준은 결국 의회의 피조물입니다. 대통령과 의회가 마음만 먹으면 연준을 없애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금 상황에 대한 과신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울프

청취자들에게 기운을 좀 줍시다. 만약 트럼프 팀이 지금의 잘못된 길을 인식하고, 당신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무엇을 가장 먼저 고치라고 조언하고 싶나요? 무역정책은 명백히 문제니까 논외로 하고요. 당신의 조언은 '재정 문제부터 해결하라'가 될까요? 결국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지출을 약속해왔고, 이를 고치려면 세금 인상과 지출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신 거죠? 아니면 다른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로고프

그렇습니다. 가장 손쉬운 답은 '생산성을 높이자'겠죠.


울프

미국은 그 점에선 크게 뒤처지진 않았습니다.


로고프

그렇죠. 예전엔 꽤 잘해왔습니다.


울프

지금은 조금 문제지만, 예전의 흐름으로 돌아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로고프

하지만 우리는 지금 GDP 대비 7%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기록 중입니다.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사회보장제도도 현재 방식으로는 지속 불가능합니다. 정치권 누구도 이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일관된 입장은 이렇습니다. '피를 봐야 바뀐다.' 사람들이 '비 오는 날을 대비하자'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실제로 위기가 닥친 후입니다.


부채 문제에 대해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채 수준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대개 재정 부양책은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죠. 그러나 저는 이게 하나의 커다란 역설이라고 봅니다. 재정 부양책은 좋은데, 재정 적자는 원하지 않는다? 특히 진보적 담론에서 이러한 상충 관계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부양책은 좋지만, 부채는 무시하자? 이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반면 공화당은 '세금을 깎으면 경제가 성장할 것이다'라고 하며 부채를 신경 쓰지 않죠. 하지만 그 결과는 결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울프

그 가설은 반복적으로 실험되어왔죠.


로고프

네. 정말 수차례요. 재정 지출도 좋고 감세도 좋다지만, 이제는 이 둘의 '상충'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울프

오늘 멋진 대화 정말 감사합니다, 케네스 로고프 교수님. 경제학이 왜 '음울한 학문dismal science'으로 불리는지를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대화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앞에 놓인 선택지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정말 피하고 싶은 미래가 닥칠 수 있다는 것도 큰 교훈으로 남습니다.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888년 창간된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 경제지. 특유의 분홍빛 종이가 트레이드마크로 웹사이트도 같은 색상을 배경으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중도 자유주의 성향으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지식을 갖고 있는 화이트 칼라 계층이 주 독자층입니다. 2015년 일본의 닛케이(일본경제신문)가 인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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