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한때 날렵했던 우크라이나군, 소련군의 잔재에 발목잡히다

우크라이나군 내 일선 장병과 지휘부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멍청하고 순종적이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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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제93기계화여단 공보실이 제공한 이 사진은 2025년 8월 26일 화요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코스탼티니우카 인근 최전선 참호에서 한 군인이 밖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AP/뉴시스

2025.09.05 16:20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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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병력 뿐만 아니라 경제력부터 기술력까지 국가의 모든 역량이 동원되어 부딪히는 행위입니다. 상대보다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조직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열병식에서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칼각' 대오를 자랑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군대가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보다 더 강력할 것이라고 짐작하곤 하지만 실제로는 현장의 판단과 주도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군대가 상명하복만 강조하는 권위주의 국가의 군대보다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때 기민하고 혁신적인 전술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우크라이나군이 요즘들어 안타깝게도 과거 소련군 시절의 지휘체계에 의존하면서 여러 차례 패착을 두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여기 소개하는 월스트리트저널 8월 12일자 기사(WSJ에서 보기 드문 장문입니다)는 우크라이나군이 겪고 있는 조직론적 문제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사가 소개하는 군대의 조직 문화를 '나토(NATO)식'과 '소련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과연 한국군은, 나아가서는 우리 각자가 속한 조직들은 나토군과 소련군 중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러시아의 전면 침공 첫해, 우크라이나군은 현장 병력의 즉흥성과 판단에 의존해 육중한 러시아군의 허를 여러 차례 찔렀다.


3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군은 소련 시대에 뿌리를 둔 경직되고 상명하복의 전투 방식으로 회귀했다. 이는 불필요한 사상자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키는 한편, 민간의 사기와 군의 모병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소련식 관행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우크라이나 정복 의지를 꺾지 않고 있는 러시아에 맞서 방어선을 유지하는 우크라이나의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장교들과 보병들은 종종 주도성initiative을 억압하고 군인들의 목숨을 낭비하는 중앙집권적 지휘 문화를 비판한다. 장군들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정면 공격의 반복을 명령하고 포위된 부대가 병력을 보존하기 위해 요청하는 전술적 후퇴를 거부한다. 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는 작전에서 사상자가 누적되고 있다.


"우리군은 주로 대대장급까지의 인원들이 발휘하는 주도성 덕분에 버티고 있어요." 상부의 시급한 변화를 주장하는 베테랑 장교 올렉시 파스테르나크 소령이 말했다.



그러나 모든 전선에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며칠간(8월 초) 러시아군 소규모 부대들이 우크라이나의 보병 부족을 틈타 동부 도네츠크 지역의 주요 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을 돌파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진격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러시아군은 병력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철권통치식 위계질서라는 훨씬 더 큰 문제를 겪고 있다. 러시아가 수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하고 지난 2년간 막대한 희생을 치르며 조금씩 전진하는 데 그친 까닭에는 이러한 비효율성이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러시아만큼 쉽게 손실을 보충할 수 없는 우크라이나에게 더욱 치명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자신의 전략의 핵심으로 삼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을 소진시키고 서방의 지원보다 더 오래 버텨 결국 우크라이나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알래스카에서 열릴 예정임에도 불구하고 휴전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영토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이 이를 단호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정타

사석에서 많은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큰 소련군이 작은 소련군을 이긴다"는 씁쓸한 말을 되풀이한다.



우크라이나 제47기계화여단 대대장인 올렉산드르 시르신 대위는 자신의 불만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지난 5월,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군 최고 지휘부를 비난했다. "어리석은" 명령과 손실을 비난하며 그는 "견책, 조사, 처벌만 할 줄 아는" 장군들에 대한 군 내 만연한 공포를 언급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를 향해 말했다. "당신들 자식들도 보병이 되어 당신들이 지시한 임무를 수행하길 바랍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자신의 대대가 상급 지휘관들로부터 부대의 제한된 능력으로는 비현실적인 공격을 감행하라는 명령을 반복적으로 받은 후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고 밝혔다.


시르신 대위에게 결정타가 된 것은 그의 부하들에게 쿠르스크로 다시 진격하라는 명령이었다고 말했다. 쿠르스크는 우크라이나군이 1년 전 일부 점령했다가 결국 철수해야 했던 러시아 지역이다. 그는 명령된 공격 방향이 예측 가능했고 러시아군이 이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파상적으로 이어진 러시아 보병의 반격에 결국 후퇴해야만 했다. 많은 병사들이 전사했다고 시르신 대위는 말했다. 이제는 구하기 힘든 잘 훈련된 신병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젊고 의욕이 넘쳤어요. 저는 그들에게 희망을 걸었죠. 그런데 우리는 그들을 그냥 잃고 말았어요."


"우리는 양이 아닌 질로 방법을 바꿔야 해요." 시르신 대위가 말했다. "우리가 가진 자원으로는 러시아를 이길 수 없어요. 그들은 더 커요. 우리는 더 잘해야 합니다."


페이스북 게시물 이후, 군 지휘부는 시르신 대위를 기강 해이를 이유로 견책했다. 올렉산드르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그가 그저 주목을 받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많은 동료 병사들은 그의 비판을 지지했다.


시르스키 총사령관이 이끄는 지휘부인 우크라이나군 총참모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낸 성명에서 일부 문제를 인정하면서, 훈련 전면 개편과 더 많은 결정을 위임하는 미국식 지휘 방식으로의 전환 등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총참모부는 부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엄격한 하향식 통제가 필요할 때가 있으며 너무 많은 병력을 잃는 여단장은 교체된다고 말했다.


"전면전은 모든 부분에서 강점과 약점을 모두 드러냈습니다." 총참모부가 성명에서 밝혔다.


우크라이나군 내에서 문화적 갈등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는, 탈소련 시대의 젊은 세대의 가장 재능 있는 장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42세의 미하일로 드라파티 소장이 지난 6월 지상군 사령관직에서 사임한 일이다.


드라파티 소장은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훈련 기지에 대한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공포 분위기, 주도성 결여, 피드백에 대한 폐쇄성"과 "사령부와 부대 간의 깊은 괴리"에 기반한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한 자신의 노력도 언급했다. 그는 개혁을 시작했지만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5년 1월 17일 금요일 늦은 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한 응급 진료소에서 군의관들이 부상당한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025년 1월 17일 금요일 늦은 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한 응급 진료소에서 군의관들이 부상당한 우크라이나 군인에게 응급 처치를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소련군의 전통

1200km에 달하는 전선 곳곳에서 많은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시르신 대위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한다. 한 가지 공통된 경험은 상급 지휘관들이 여러 차례 시기적절한 전술적 후퇴를 승인하지 않아 병사들을 포위와 섬멸의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 일선 장교들은 후퇴 거부가 고위급 지휘관들이 퇴각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군대 내 인명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작년 말, 세르히 코스티신 중령은 도네츠크 남부 지역의 심하게 노출된 진지에서 자신의 대통령 여단 예하 대대를 철수시키고 싶었다. 그는 대대를 포위하려는 러시아의 계획을 감청했지만 더 큰 규모의 러시아군이 부대를 우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본부는 계속해서 현 위치를 사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코스티신 중령은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비에 흠뻑 젖은 사흘 동안 그는 교전하며 철수를 감행했다. 대대 대부분은 함정에서 벗어났지만 후퇴하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남았던 한 개 소대는 거의 전멸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코스티신 중령은 진지 이탈 혐의로 헌병대와 우크라이나 보안국(SBU)의 조사를 받았다. 결국 심문은 흐지부지 끝났다고 한다.


"멍청하고 순종적이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요." 코스티신 중령이 말했다. "그게 소련군의 전통이죠."


코스티신 중령은 후에 부여단장으로 진급했다. "아마 윗분 중 누군가가 제 행동에 일리가 있었음을 알아본 것 같아요." 그가 말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논평을 거부했다. 총참모부는 전장에서의 주도성은 명령을 위반하거나 무단으로 진지를 이탈하지 않는 한 장려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 내의 긴장은 권위주의적인 과거에서 벗어나 보다 서구화되고 민주적인 사회로 나아가려는 우크라이나가 겪고 있는 더 큰 투쟁을 반영한다. 1991년 독립 이후 우크라이나의 극적인 변화는 두 차례의 대규모 반정부 봉기를 포함하여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주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많은 기관들은 통제에 대한 관료제적 본능을 포함하여 여전히 과거 소련의 유산을 지니고 있다.


전쟁 초기, 병사들은 서방제, 소련제, 그리고 수제 무기를 혼합하여 들고 참전용사 및 민간인들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 상업용 드론을 사용하여 진격하는 러시아 부대를 발견하는 방법을 개발하는 등 이들의 독창성은 2022년 일련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신속한 정복을 예상했던 러시아와 서방 정부들의 예상을 깨고, 우크라이나 방어군은 침략군이 점령했던 영토의 절반을 되찾았다.

'도살자'

그러나 곧이어 보다 구식의 지휘체계가 등장했다. 이 지휘체계는 논란을 일으키며 군의 사기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 결정을 내렸다. 동부 우크라이나의 도시 바흐무트를 9개월 동안 방어하며 숙련된 육군 여단 상당수를 '고기 분쇄기' 같은 소모전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바흐무트 전투는 우크라이나군이 폐허가 된 바흐무트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2023년 5월에 철수했다. 이 전투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전투로 남아 있다.


2025년 8월 2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광장에서 아리나 예브히엔카가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의 장례 행렬을 보며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5년 8월 25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키이우 독립광장에서 아리나 예브히엔카가 사망한 우크라이나 군인의 장례 행렬을 보며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뉴스1


당시 지상군 사령관이었던 시르스키 장군은 이 암울한 소모전을 지휘했고 이로 인해 그는 일선 장병들로부터 '도살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바흐무트 전투는 우크라이나군에게 우려스러운 패턴의 시작이었다. 더 많은 러시아군을 사살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병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전투를 선택하고 있었던 것이다.


2024년에 군 총사령관이 된 60세의 시르스키 장군은 우크라이나 병사들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가 없다. 많은 병사들은 그를 소련병의 전형으로 본다. 모스크바에서 훈련받은 직업군인으로 현장 부대를 '마이크로매니징'하며 후퇴를 지연시키거나 수목선tree line이나 기타 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는 목표를 위해 사기를 꺾는 사상자를 내는 공격을 명령한다는 것이다.


총참모부는 병사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존하는 것이 군 지도부의 핵심 우선순위라고 밝혔다. 성명에 따르면 시르스키 총사령관은 2024년부터 더 나은 훈련, 드론 기술 사용, 전투 경험 학습을 통해 인명을 구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많은 우크라이나 장교들은 문제가 시르스키 개인보다 더 깊다고 말한다. 참모본부에는 여전히 전쟁이 일어나기 오래 전 소련식 군대에서 훈련받은 장교들이 많다. 2022년부터 전투에 참여한 베테랑들은 군의 급격한 확장으로 인해 많은 퇴역 장교들이 현역으로 복귀했는데 이들은 빠르게 진화하는 첨단 드론 전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일부 장교들은 일선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 승진하면서 상황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한다. "변화가, 크게 거대하지는 않지만 일어나고 있어요." 풍부한 실전 경험으로 동부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제93기계화여단의 대대를 지휘하는 예호르 데레비얀코 중령이 말했다.

'진지를 사수하라'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있기 몇 년 전부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군의 현대화를 돕기 위해 우크라이나 장교들을 위한 훈련을 주선했다.


2022년, 파스테르나크 소령은 영국에서 상급 지휘관이 목표를 설정하면 현장의 부하들이 최선의 달성 방법을 찾아내는 전쟁 접근 방식인 '임무형 지휘'와 같은 나토의 개념을 연구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이는 소련의 상명하복식 전통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파스테르나크 소령은 지휘관들이 서구식 군사 방식을 따르지 않는 것에 좌절하여 올해 초 제108영토방위여단에서 사임했다.


"아마 몇몇 여단을 제외하고는, 군 전체에 나토의 임무형 지휘 원칙이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들은 소련식 원칙을 사용하고 있어요. 자기 밑의 사람들을 믿지 않는 거죠."


파스테르나크 소령에 따르면, 2023년 남부 자포리자 지역에서 실패한 우크라이나의 반격 작전 동안, 상급 부대의 장군들은 부대가 사상자로 인해 전투 불능 상태가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전으로 여단장, 심지어 전장의 부사관들에게까지 계속해서 공격하라고 소리쳤다.


2025년 8월 24일 일요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러시아군과의 격전지인 코스탼티니우카 마을에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 FPV 드론을 향해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2025년 8월 24일 일요일, 우크라이나 도네츠크 지역의 러시아군과의 격전지인 코스탼티니우카 마을에서 한 우크라이나 군인이 러시아 FPV 드론을 향해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그는 지난해 후방의 포병 및 드론 부대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 보병 14명이 기갑과 드론을 동원한 러시아군 수백 명의 공격에 맞서 자포리자 지역의 건물을 방어했던 전투를 회상했다. 그는 상급 지휘관들이 진지를 사수할 것을 고집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다른 여단이 우측 측면 지역을 잃었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다. 러시아군은 측면에서 들어와 보병 14명을 모두 사살했다고 그는 말했다.


파스테르나크 소령과 다른 장교들은 여단장들이 해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지를 잃었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파스테르나크 소령은 현재 새로운 제3군단에서 훈련 중이다. 이 군단은 소련식 전통과의 단절로 유명한 정예 여단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 여단은 하급 부대의 신속한 의사결정에 의존하며 엄격한 훈련과 끊임없는 전술 분석 및 개선을 통해 병력을 보존하려 노력한다.


한편 그는 이전 부대에서 무단이탈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총 한 번 못 쏴본 군사 훈련

미국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최근 추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최대 10만 명의 전사자를 포함해 총 40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CSIS 추정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총 사상자는 100만 명에 육박하며 이 중 전사자는 최대 25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러시아의 총인구는 우크라이나의 거의 네 배에 달한다.


모든 사람이 친구 또는 친척이 전장에서 싸우고 있는 나라에서, 훈련을 거의 받지 않은 징집병들이 전투에 투입된다는 이야기는 우크라이나의 모병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2022년 애국적 열정에 힘입은 초기의 입대 열풍 이후, 자원입대자는 급격히 줄었다. 일부 병사들은 친구들에게 입대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키이우 출신의 한 50세 남성은 올해 초 군에 자원입대했다가 곧 후회했다고 말했다. 훈련은 장작을 모으는 것 정도였다. "총은 구경도 못 해봤어요." 그는 입대 당시 드론 부대 운전병 자리를 약속받았지만 러시아 공세의 또 다른 주요 목표인 포크로우스크 인근의 최전선 보병 부대로 보내졌다고 말했다. 그는 키이우로 차를 몰고 돌아가 무단이탈하거나 탈영한 수만 명의 남성들과 합류했다.


"전 기꺼이 복무할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말했다. "하지만 총 한 번 쏴보지 못한 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전선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총참모부는 작년부터 훈련이 개선되어 모든 병사들이 사격을 포함한 기본기술을 교육받고 있다고 밝혔다.

쿠르스크의 혼돈

많은 병사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쿠르스크 침공은 남아있는 소련식 관행이 어떻게 생명을 앗아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공격은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 최고의 돌격 부대 일부가 지난 여름 국경을 넘어 러시아군을 기습하고 1000km² 이상의 영토를 점령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 영토가 평화협상에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러시아 본토로 전투를 확대하는 것은 세계의 인식을 바꾸고 국내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쿠르스크는 곧 또 다른 소모전으로 변했다. 러시아는 최정예 드론 부대와 북한군 1만여 명을 포함한 증원군을 투입했다.


"그들은 우리의 보급로를 차단하기 시작했어요." 쿠르스크 침공에 참여했던 제47기계화여단의 시르신 대위가 말했다. "겨울이 되자 우리는 작전을 효과적으로 계속할 수 없었어요." 그는 문제를 설명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는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지휘관들은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전장의 상황을 바꾸거나 철수해야 했어요. 하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까지 그냥 기다리기만 했죠."


결정에 대한 두려움은 점점 확대되는 마비 상태로 이어졌다. 제41기계화여단 소속 병사 두 명은 부대가 개활지에 있는 러시아군 무리를 발견하자 지휘관에게 박격포 공격을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상부의 허가를 받을 때까지 공격을 거부했다.


"만약 실패하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지휘관이 말했다. 그가 승인을 받았을 때, 러시아군은 사라진 후였다. 그 지휘관의 말은 부하들 사이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또 다른 경우, 제41여단 소속 한 상병은 자신과 다른 다섯 명의 병사들이 러시아 드론과 포격으로 강타당하는 참호에 웅크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머리 위 엄폐물은 파괴되었다. 그들은 수백 미터 떨어진 다른 수목선으로 후퇴할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했다.


"그 구역은 지켜지고 있나?" 한 지휘관이 군사 좌표 지도상의 색칠된 사각형을 언급하며 답했다. 당장은 대답이 '그렇다'였기 때문에 그는 철수 승인을 거부했다.


몇 시간 동안 포격을 받은 후에야 그들은 걷지 못하는 두 명의 병사를 부축하며 후퇴할 수 있었다.


"지도상에서는 그냥 깔끔해 보이는 녹색 사각형일 뿐이죠." 그 병사가 말했다. "하지만 결심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탕으로 내려져야 해요."


우크라이나군이 마침내 쿠르스크에서 철수했을 때, 상황은 절망적이고 혼란스러울 때가 많았다. 부대들은 차량을 버렸다. 병사들은 먼 거리를 걸어서 이동했다. 철수한 병사들에 따르면, 이제는 격렬한 러시아의 포화 아래에 놓인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주요 도로는 불타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의 시신과 내부에 더 많은 전사자가 있는 피격된 차량들로 널려 있었다.


부하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허가 없이 철수한 일부 소대장들은 조사를 받았다. 다른 병사들은 명령 없이 쿠르스크에 내버려졌다.


콜사인 '바르시크'로 알려진 제17전차여단 소속 드론 조종사는 이전에 현 위치를 사수하라는 지시를 받은 후 자신의 팀이 러시아군에게 포위되었다고 말했다. 그와 다른 세 명은 간신히 탈출했다.


바르시크는 자신의 여단을 버리고 도네츠크 지역에서 싸우는 대대인 '다빈치 울브스'에 합류했다. 자원병과 개인 기부에 의존하는 이 대대는 이례적인 수준의 독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소속 병사들을 잘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빈치 울브스'의 다른 병사들은 이전 부대에서 무단이탈한 병사들을 점점 더 많이 모집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가고 있었어요. 지휘관들은 병력에 신경 쓰지 않았죠." 바르시크가 말했다.


1889년 창간된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지. USA투데이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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