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 1일, 홍콩의 한 쇼핑몰에 중국 국기와 홍콩 특별행정구 깃발이 게양되어 있는 가운데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이날은 중국의 건국 76주년 국경절이다. /사진=로이터/뉴스1
2025.10.03 15:49
- 0
홍콩 소호에 자리한 금빛 장식의 현대식 중식 레스토랑 홀리푹Ho Lee Fook은 금융인들이 거래 성사와 주가 급등을 축하하며 모여드는 장소다.
이름은 광둥어로는 "입안의 행운"을 뜻하지만, 영어로는 일부 사람들이 홍콩의 빠른 부활을 두고 놀라움을 표현할 때 쓰는 표현과 비슷하다.
"저는 지금처럼 홍콩에 낙관적인 적이 없었습니다." 홀리푹 등 여러 고급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외국인과 금융인들이 즐겨 찾는 '블랙쉽 레스토랑 그룹'을 창립한 사이드 아심 후세인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올해 12월 기업 고객 예약 실적이 지난 5년 어느 때보다 좋다고 덧붙였다.
고급 식당에 대한 금융인들의 수요가 다시 살아난 것처럼, 도시 전반도 장기간의 거래 부진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새로운 PADO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카톡으로 알려드립니다 (무료)]
한때 홍콩이 민주화 운동을 짓밟고, 논란 많은 법 개정을 강행하며, 강도 높은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숙련된 이민 노동자를 대거 내몰자 글로벌 금융 허브로서의 위상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지식 노동자를 불러들이고 세수 대부분을 책임져온 홍콩 금융 산업은 반등했다. 현재 홍콩은 기업공개(IPO) 자금 조달 부문에서 뉴욕, 런던, 뭄바이 등 경쟁 도시에 앞서 있으며, 항셍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주가지수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이번 회복은 과거의 호황기와는 양상이 크게 다르다. 새로 상장하는 기업의 절대다수가 중국 기업이며, 상당수는 이미 다른 증시에 상장된 경험이 있다. 홍콩으로 유입되는 자금 또한 점점 더 중국발이며, 홍콩 증시와 상하이, 선전 증시를 각각 연결하는 이른바 후강퉁(滬港通), 선강퉁(深港通)을 통해 들어오고 있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중국이 홍콩 자본시장에 짙은 흔적을 남기면서 홍콩의 '중국화'를 가속화하고 있는 셈이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회장을 지낸 스티븐 로치 전 의장은 "중국 정부는 홍콩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재구성했다. 동시에 홍콩이 활발한 금융 중심지라는 이미지를 유지하려 한다"며 "불과 4~5년 전 우리가 생각했던 홍콩과는 전혀 다른 도시이자 금융 허브가 됐다"고 지적했다.
홍콩은 이미 수없이 스스로를 재창조해온 도시다. 어촌에서 교역 거점으로, 섬유 중심지에서 제조업 기지로, 영국에 종속되어 있던 영토에서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변모해왔다. 이번 전환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이는 1950~60년대 본토 이주민과 미국 주도의 중화인민공화국 금수조치 덕에 급속히 산업화했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홍콩의 역할은 외국 자본과 기업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창구라기보다, 중국 투자자와 기업이 세계로 나아가는 관문에 가깝다. 이는 홍콩의 '실물경제'뿐 아니라, 비슷한 위치를 노렸던 또 한때 비슷한 역할을 맡으려 했던 다른 국제 도시인 상하이의 미래에도 의문을 던진다.
후세인 대표는 "우리의 옛 슬로건은 '아시아의 세계 도시'였지만, 이제 새로운 정체성은 '중국의 세계 도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홍콩거래소에서는 새 기업이 상장하는 첫날, 기업 임원이 출범을 알리는 징을 울리며 거래 개시를 알린다. 지난 7월 한 상장식에서는 새로 거래를 시작한 주식이 워낙 많아 거래소 직원들이 무대에 징 여섯 개를 배치하느라 애를 먹었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홍콩거래소 상장 신청 기업 수가 사상 최대치인 200곳을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이는 홍콩에서 자본 조달 열풍이 불고 있음을 보여준다.
홍콩의 부활을 위한 사실상의 청사진은 2024년 4월 중국 국가금융감독기관인 중국증권감독관리위원회(CSRC)가 내놨는데, 시진핑 국가주석의 "홍콩의 국제 금융센터 지위를 공고히 하고 강화하라"는 지침에 부응하는 다섯 가지 방안이 담겼다. 여기에는 중국 본토 투자자가 홍콩 상장 자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후강퉁을 확대하는 것, 중국 기업들의 홍콩 상장을 장려하는 것 등이 포함됐다.
홍콩 금융업계를 대표하는 로버트 리 홍콩 입법회의원은 "실질적 촉매제는 지난해 CSRC가 다섯 가지 조치를 발표했을 때였다. 특히 주요 중국 기업들이 홍콩에서 IPO를 추진하게 된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은 이에 호응했다. 글로벌 IPO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홍콩은 올해 상반기 상장 자금 조달 규모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전기차 배터리 제조업체 CATL은 50억 달러 이상을 조달하며 2023년 이후 세계 최대 규모의 상장을 성사시켰다. 이 거래는 글로벌 자금과 관심을 다시 홍콩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됐다.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한 대형 거래 대부분은 이미 상하이나 선전에 상장돼 있던 기업들이 홍콩에서 2차 상장을 한 경우다. 지난해 상장한 CATL, 장쑤 헝루이제약, 가전업체 메이디아가 대표적이다. 다른 기업들은 샤오미처럼 3월에 55억 달러를 조달하는 대형 주식 매각을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 본토 기업들이 글로벌 자본과 연결되고 글로벌 규모로 확장하기 위해 홍콩거래소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보니 찬 홍콩거래소 최고경영자는 이렇게 말하며, 아시아 다른 지역 기업들의 관심도 일부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 서방 은행가들은 이미 본토에서 상장된 기업들의 홍콩 2차 상장을 "진짜 IPO"와 비교할 수 없다고 본다. 수수료, 업무 규모, 명성 면에서 '후속 주식 발행follow-on equity sales'에 가깝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상장이 홍콩으로 돌아오면서 서방 은행들도 바빠졌다. 홍콩 주식 발행에서 상위 3대 서방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26%에서 올해는 40% 이상으로 뛰었다.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UBS는 올해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와 중신증권을 제치고 홍콩 주식 발행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 투자은행보다 수수료는 높지만, 이들 글로벌 은행이 유럽, 미국, 중동의 투자자 네트워크를 쥐고 있어 대규모 거래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CATL의 홍콩 상장에는 미국 투자자 하워드 막스의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 이탈리아 아녤리 가문이 후원하는 투자회사, 쿠웨이트 국부펀드 등이 참여했다.
이 같은 상장—즉 지분 판매—은 중국 기업들이 해외 확장을 위한 자금 조달 거점으로 홍콩을 활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전 회장 스티븐 로치는 "중국 기업은 막대한 자본 수요가 있다. 중국 정부가 홍콩으로 자본 흐름을 유도하는 데 그렇게 관심을 보인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신기술 분야 기업들은 해외 시장으로 빠르게 확장하며 본토의 자본 통제 밖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보유할 필요가 커지고 있다. 이는 중국 본토 경제가 디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고 소비가 부진한 상황에서 필연적 선택이기도 하다.
과거 알리바바 같은 중국 기업이 해외 자금을 조달하는 전통적 무대는 뉴욕이었으나, 트럼프 행정부 시절 국가안보 또는 데이터 유출 우려를 명분으로 한 중국 기업의 '상장폐지' 위협이 불거지면서 매력도가 떨어졌다. 반면 본토 자본 통제가 유지되는 상하이는 금융 당국이 안정성을 중시하며 주식시장 개방을 주저한 탓에 국제 금융 허브로 성장하지 못했다.
홍콩은 자본 통제가 없고 '달러페그'제를 유지하는 데다, 이른바 A-H 프리미엄(본토 상장 기업과 홍콩 상장 기업의 주가 격차)이 줄어들면서 더 많은 본토 기업이 홍콩행을 택하고 있다.
그 결과 올해 홍콩 증시는 사상 최대 거래량을 기록했다. 홍콩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2개월 동안 역대 거래량 상위 20일이 모두 나왔다.
일부 해외 투자자들도 미국 편중을 피하고 중국 시장에 노출되기 위해 홍콩으로 돌아오고 있지만, 시장의 주력은 여전히 본토 자금이다.
올해 본토 투자자들의 홍콩 증시 투자액은 사상 최고치를 찍었으며, 항셍지수는 연초 대비 30% 가까이 상승해 세계에서 가장 성과가 좋은 지수 중 하나가 됐다.
중국 정부의 정책 지원도 홍콩 증시에 힘을 보탰다. 판궁성 인민은행장은 1월 홍콩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중국 외환보유액 중 홍콩 배정 비중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중국의 기관투자가들이 홍콩 증시에 투자하는 데 사실상 허용 신호를 부여한 셈이다. 롯터스애셋매니지먼트의 홍하오 최고투자책임자는 "홍콩으로 돈이 오는 건 확실히 '정치적 옳음'에 해당하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중국 본토 투자자들은 본토 증시에 없는 알리바바, 텐센트 같은 중국 기술주를 사들이고 있다. 올해 "딥시크 모멘트"라 불린 AI 열풍은 중국 기술주에 대한 세계의 관심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렸지만, 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관심이 가장 강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 가장 큰 보험사들과와 뮤추얼펀드에도 자국 증시에 더 많이 투자하라고 압박해왔고, 핑안 같은 보험사는 수백억 달러를 홍콩에 상장된 고배당 국유 은행 주식에 투자했다.
홍콩 입법회의 로버트 리 의원은 "거래 활동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달했다. 거래소에서 이런 광경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 자본과 기업들의 홍콩 유입은 중국 본토의 화이트칼라 인력 이동도 동반했다. 홍콩 이민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말 도입된 고급 인재 유치 비자 제도를 통해 지난해 본토 출신 신청자 3만 9010명이 승인을 받았는데, 이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일반 고용 비자 승인 수(3만 5058명)를 웃돌았다. 이로 인해 홍콩의 주요 지역 주거 임대료는 다시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홍콩은 중국 금융 개혁의 실험실로도 자리 잡았다. 특히 위안화 국제화 계획의 핵심 무대로 활용되고 있다. 홍콩 정부는 2024년 예산안에서 역외 위안화 거래의 약 75%가 홍콩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무역결제와 무역금융에서 위안화 사용 확대가 핵심 과제로 추진되고 있으며, 진전은 더디지만 지정학적 변화가 위안화 채택을 가속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골드만삭스의 허이산 중국 전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는 자본 통제가 있기 때문에 전형적인 통화 국제화 과정과는 다를 것"이라며 "합리적 해법은 역외 위안화 시장을 키우는 것이며, 이는 분명히 홍콩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은 역외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되찾았다. 2022년 이후 연간 발행액은 계속 2014년 기록을 돌파했으며, 중국과 해외 기업들이 저렴한 위안화 조달 비용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홍콩 금융 인프라도 중국 정부의 필요에 맞춰 확장되고 있다. 홍콩거래소와 금융관리국은 3월 유로클리어Euroclear, 클리어스트림Clearstream과 유사한 신규 증권예탁소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서방 금융기관 의존도를 줄이고 러시아식 자산 몰수 위험을 피하려는 의도다.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도 홍콩은 홍콩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허가를 추진 중이다. 이는 장차 중국이 위안화 스테이블코인을 자본 통제 체제 속에서 어떻게 운용할지를 시험하는 모델로 간주된다. "샌드박스"라 불리는 이 실험에는 스탠다드차타드, 징둥닷컴 등이 참여해 현지 통화 준비금으로 뒷받침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홍콩의 앞길이 단선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서방 금융기관들은 여전히 미중(美中)의 지정학적 긴장이 홍콩으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해 과도한 투자에는 신중하다.
빈번히 나오는 해외 홍콩 시위자 현상수배와 함께 애플데일리 창업자 지미 라이의 국가보안법 재판은 정치가 기업 환경과 무관할 수 없음을 상기시킨다.
홍콩 재계 일각에서는 최근 중국 정부가 홍콩 현지 대기업 CK허치슨의 해외 항만 지분 매각에 공개적으로 반발한 일이, 그동안 홍콩 기업들이 번영해온 자유로운 기업 환경을 훼손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더 넓게 보면, 홍콩 경제가 중국 본토 경제와 밀착되면서 본토가 디플레이션 국면에 접어드는 현 시점에 그 영향에 너무 노출되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모건스탠리 아시아 전 회장 스티븐 로치는 "중국 경제의 부침은 홍콩 경제의 부침과 매우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레스토랑 그룹 블랙쉽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홍콩의 소매업과 관광, 접객업 전반은 고전 중이다. 지하철로 쉽게 닿는 인접 도시 선전과의 경쟁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디플레이션 요인이 겹친 탓이 크다.
홍콩의 최근 국내총생산(GDP) 통계에 따르면 올해 1, 2분기 경제성장률은 각각 약 3% 수준을 기록했으나, 관광객 지출 부진 속에 소매 판매는 14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다만 최근 들어서야 근소한 반등을 보였다.
이 때문에 홍콩 금융 산업이 홍콩의 실물경제와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홍콩의 글로벌 도시로서의 위상에도 불확실성을 드리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ANZ은행의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레이먼드 영은 "홍콩은 지금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다"며 "결국 홍콩은 중국의 맨해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일요일에는 이곳에 머무는 사람조차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콩은 아편전쟁 이후 서방의 인력과 자본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관문 역할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 이러한 역할이 약화되면서 홍콩의 기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전망도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쇠퇴할 것이라는 홍콩이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엔 자본과 인력이 중국 본토에서 오고 있습니다. 홍콩이 중국 자본이 해외로 진출하는 관문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중국 기업들이 홍콩에 상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식 거래뿐만 아니라 위안화 표시 해외채권의 발행도 홍콩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만들려는 중국이 이를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 9월 9일자 '빅리드' 기사는 어느 레스토랑 체인 대표의 말을 인용해 홍콩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홍콩은 과거 '아시아의 세계 도시'였지만, 이제는 '중국의 세계 도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