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탈진실'의 시대, 포퓰리즘에 맞서는 저널리즘의 전략

미디어는 민주주의의 몰락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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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PADO

2025.12.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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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양극화와 포퓰리즘의 득세로 전 세계 민주주의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를 감시해야 할 언론은 '가짜 뉴스'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었고, 대중은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자극적인 '쇼츠'와 선동에 더 쉽게 매료됩니다. 바야흐로 사실보다 믿음이 앞서는 '탈진실'의 시대입니다. 영국 언론인이자 작가로 현대 프로파간다와 허위정보 분석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피터 포메란체프의 노에마 매거진 11월 18일자 기고문은 이 절망적인 풍경 속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다시 진실의 힘을 회복할 수 있을지, 헝가리 등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전략'을 모색합니다. 무력감에 빠져 있는 레거시 미디어에 던지는 실전 지침서라 할 만합니다.


이 글은 저널리즘에 대한 조언 뿐만 아니라 기존의 계급·세대 구분이 잘 통하지 않는 오늘날의 유권자층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는 정치 전략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 프로파간다에 대항하여 러시아 대중을 설득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전사자 수나 엘리트의 부패가 아닌 러시아 국내 범죄율 증가 문제였다는 지적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선거 전략가들이 이 글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저널리스트로서 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뿐만 아니라 직업적 사명을 진전시키는 데 내 경력을 바쳐왔다. 미디어 종사자 다수는 폭정에 맞서는 방어벽이자 자유의 수호자, 민주주의의 옹호자가 되기를 열망한다.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우리의 직업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패하고 있다. 그것도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서, 사람들은 선거 결과를 포함한 기본적인 사실에 대해서 합의를 갖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전통적인 미디어 채널을 외면하고 있다.


한편 거짓과 혐오를 퍼뜨리는 자들은 정보를 무기 삼아 자유민주주의를 전복하고 열린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블라디미르 푸틴, 빅토르 오르반을 포함한 세계 지도자들은 조직적으로 미디어를 악마화하고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켰으며, 진영주의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진실 자체에 대한 믿음을 훼손했다.


점점 더 권위주의화되는 이 시대에 저널리스트는 어떻게 제4부1로서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을까? 우리가 섬겨야 할 독자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허위 조작 정보에 맞서고 권력에 책임을 물으며 진실과 정의를 옹호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사회 내 저널리즘의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가정으로 돌아가 현시대에 맞게 접근 방식을 조정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지난 8년 동안 걸어온 여정이다. 나는 런던정경대(LSE)와 존스홉킨스대학교를 거점으로 사회학자, 데이터 과학자, 변호사, 동료 저널리스트들과 협력하여 사람들이 권위주의자들이 밀어붙이는 선전에 왜 끌리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저널리스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연구해 왔다.


이 연구 과정에서 우리는 여론조사, 포커스 그룹, 실험을 수행하여 권위주의적 거짓말, 선전, 음모론에 굴복한 것으로 보이는 청중에게 다가갈 전략을 시험했다. 연구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이루어졌지만 우리가 얻은 교훈은 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최저치로 떨어진 미국을 포함하여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우리의 목표는 전 세계에서 이미 진행 중인 팩트체크나 타운홀 이니셔티브2와는 다른 것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거짓을 폭로하는 것은 냉소적인 시대에 진실의 불꽃을 지키는 필수적이고 숭고한 노력이지만 많은 연구에 따르면 팩트체크는 사람들의 당파적 편견과 충돌할 때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경향이 있다. 또한 온라인 타운홀이나 서로 다른 정치성향의 구성원 간의 1대1 교류도 유용하지만 이는 애초에 그런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만 포함한다는 한계가 있다.


대신 나는 권위주의적 선전의 초기 매력을 약화시키는 대중적인 팩트 기반 콘텐츠, 즉 TV 다큐멘터리, 팟캐스트 시리즈, 뉴스 기사, 사회적 의식이 담긴 오락물을 만드는 방법에 집중해 왔다. 이는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저널리스트에게만 해당하는 과제가 아니다. 온라인에 무언가를 게시하는 순간 누구나 디지털 크리에이터가 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미디어 개혁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 업계는 재정 불안정과 광고 수익 감소 등 무수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변화에 적응하고 우리의 사명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노력이다. 민주국가의 미래 결속력, 안보, 생존 가능성이 여기에 달려 있다.

포퓰리즘 연합 깨뜨리기

권위주의자들과 비자유주의적 포퓰리스트들은 종종 문화전쟁 전선을 따라 사회를 애국자 대 세계화주의자, 전통적 가치를 지닌 보수주의자 대 워우크woke 진보주의자라는 투박한 이분법으로 나누려 한다. 저널리스트는 이러한 범주를 강화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소위 '반대편'이 균질한 집단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선전가들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대신 저널리스트는 연합 내의 균열을 찾아내고 독자들을 더 넓은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헝가리의 사례를 살펴보자. 오르반의 리더십 아래 변화하는 헝가리의 정치적 분위기는 미디어가 사람들의 진짜 불안에 초점을 맞출 때 포퓰리즘 선전이 깨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2010년 집권한 이후 오르반 총리는 유럽연합(EU)과 유대인 금융가 조지 소로스가 종교와 가족을 파괴하려는 사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이에 맞서 전통적인 가톨릭 헝가리인을 지키는 수호자로 정의해 왔다. 이를 통해 오르반 총리는 더 쉽게 독립 언론을 장악하고, 사법부를 약화시키며, 시민 사회의 자금 줄을 끊는 법을 만들고, 학문의 자유를 축소하며, 부패를 일상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르반의 선전은 그가 기대한 만큼 견고하지 않았다. 이제 그 선전은 붕괴하고 있다. 재계와 언론에 대한 그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당은 퍼블리쿠스연구소Publicus Institute 여론조사에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운동에 밀려 약 10% 뒤처져 있다.


2020년 헝가리에서 여론조사와 포커스 그룹을 진행했을 때 우리는 이미 오르반 체제에 균열이 생긴 것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소로스에 대한 음모론을 믿는 사람은 22%에 불과했다. 이민이나 '헝가리 정체성 수호'를 포함한 문화전쟁 이슈는 투표에 있어 빈곤이나 부패 문제보다 중요도가 낮았다.


우리는 우파 성향이지만 오르반에게 환멸을 느끼고 그의 권위주의적 성향과 부패를 우려하는 유권자 9%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들은 좌파 성향 정당을 더 싫어했고 독립언론 대부분이 야당에 너무 관대하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헝가리인들은 유럽에서 2등 시민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는데 오르반의 선전은 종종 이러한 열등감을 자극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르반의 선전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을까? 보수 진영 내부에서 등장한 새로운 야당 지도자 페테르 마자르는 대중의 관심을 정부 내부의 부패와 소아성애 의혹에 집중시켰다. 그는 페이스북과 신세대 유튜브 뉴스 채널을 이용해 자신이 부패와 싸우는 동시에 국제 무대에서 헝가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오르반의 레토릭이 조장했던 분열은 뒤섞여버렸다. 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한 우려는 적극적인 애국심과 결합했다.


미디어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선전가들이 강요한 문화전쟁의 이분법을 뚫고 나간다면 다양한 청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를 선택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두 번째는 권위주의적 선전이 악용하는 기저의 불안과 트라우마를 더 깊이 파고드는 것인데 이는 나와 동료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일할 때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접근 방식이다.

더 깊이 파고들기

권위주의적 선전은 사이비종교처럼 기능한다. 사람들의 고통과 두려움을 악용해 지도자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우리는 미디어가 사람들의 공유된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독립성을 기르는 데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탐구하고자 했고 그 결과 2018년 우크라이나로 가게 되었다.


수십 년 동안 러시아 정부는 영화부터 밈meme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친소비에트 선전을 퍼뜨려 왔다. 독립 우크라이나 정부가 소련에 대한 기억을 모욕하고 제2차 세계대전 승리에 바친 소련의 희생을 더럽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러시아의 선전은 또한 독립 우크라이나가 친나치 유격대원들의 후예라고 주장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소련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 특히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지역 사람들을 나머지 우크라이나와 분열시켜 2022년 침공을 위한 길을 닦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이러한 선전에 맞서 용감하게 팩트체크를 했다. 그들은 많은 우크라이나 유격대원들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나치 모두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팩트체크는 소련군에서 싸웠던 가족에 대한 기억에 초점을 맞춘 러시아 선전의 깊은 감성적 이야기와 경쟁하기 어려웠다. 친유럽적이고 민주적인 서부와 친소비에트적이고 러시아 성향인 동부로 나라가 분열되어 있다는 관념은 지속되었다.


우리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동부 지역에 소련에 대한 향수가 약간 더 강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이 단일한 현상은 아니었다. 소수의 골수 소련 수정주의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소련에 대해 미묘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과 사회복지 분야의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경제적 권리와 인권이 제한되었던 점은 부끄러워했다.


동부 대도시 거주자들은 서부 대도시 사람들과 정치적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기업가적이고 개방적이며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는 열의가 강했다. 압도적인 다수는 민주적이고 유럽지향적인 미래를 원했다.


포커스그룹을 진행했을 때 우리는 전국의 사람들이 거의 논의되지 않았던 트라우마를 이야기할 때 가장 활발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비참했던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친척들, 체르노빌 원자력 재난, 소련 붕괴 후 가족들이 겪은 어려움 등이 그것이었다.


러시아 선전은 이러한 원한과 혼란의 웅덩이를 이용하고 있었다. 러시아 선전은 크렘린이 초래한 굴욕은 무시한 채 사람들에게 지위와 위엄을 부여하려 했다. 선전의 힘은 그것이 주장하는 역사적 진실(더 정확히 말하면 거짓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제공하는 정서적 위안에 있었다. 그러한 거짓말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요점을 놓치는 것이다. 대신 저널리스트는 기저에 깔린 감정적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2019~2020년 우리는 우크라이나 저널리스트 및 영화 제작자들과 협력하여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은 트라우마에 대한 깊이 있는 인간적 이야기를 담고, 사람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회복력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제작했다. 일부 영화는 소련에 저항한 우크라이나 동부 광부들의 파업을 다루었고 다른 영화들은 소련 정권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와 체르노빌 생존자들의 삶을 탐구했다.


이런 종류의 스토리텔링은 신뢰를 쌓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표현하고 치유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크렘린의 선전이 그 고통을 조작하는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우리는 하향식 서사를 피하고 '올바른' 역사관을 강요하는 내레이션을 최소화했다. 대신 사람들이 직접 영화를 이끌어가고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도록 했다.


이 콘텐츠를 테스트하면서 우리는 공통의 트라우마와 회복력에 대한 이야기가 전국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영화들은 동부와 서부 지역에서 동등한 수준의 참여와 신뢰를 얻었다. 저널리스트는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될 경우 선전가들에게 악용되기 쉬운 사람들의 근본적인 우려, 기억, 트라우마를 활용함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로

오늘날의 '탈진실' 시대에는 팩트가 당파적 정체성과 충돌할 경우 버려질 수 있다. 진영에 대한 충성심이 현실을 압도하는 경우가 많다. 저널리스트는 단순히 허위정보를 폭로하는 대신 권위주의적 신념 체계를 뒷받침하는 정서적 정체성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조지타운대학교와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의 동료들과 함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에 대한 러시아 내 지지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이 이론을 탐구했다. 우리는 그것이 러시아가 타국보다 우월한 동시에 글로벌 음모의 피해자라는 집단정체성 관념과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러시아인의 65%가 이러한 믿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학계에서 집단적 나르시시즘으로 알려진 이러한 심리는 러시아에 대한 어떠한 공격이나 비판도 러시아인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다. 전쟁을 지지하고 이러한 정체성 모델을 선호한 사람들은 푸틴의 권위주의적 행보에 대해 우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러시아인처럼 그들도 강력한 리더십이 나라를 이끌기를 원했다.


러시아 독립언론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전쟁 범죄의 증거를 보여주었지만 전쟁에 대한 주류의 지지를 바꾸는 데는 별 효과가 없었다.


우크라이나 인지전 기업인 오픈마인즈연구소OpenMinds Institute 연구원들이 다양한 뉴스 기사를 테스트했을 때, 지지율을 낮추는 데 가장 효과적인 주제는 전사자 수나 엘리트층의 부패가 아니라 범죄율 증가였다. 러시아 정부가 강력범죄자들을 군 복무를 위해 석방하고 있으며 전선에서 돌아온 이들이 러시아 마을에서 강간과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보도였다.


왜 이런 뉴스 기사가 더 큰 파급력을 가졌을까? 전쟁 지지자들은 푸틴이 러시아의 위엄을 회복하기를 원했다. 그들은 러시아가 1990년대의 혼란을 끝내고 질서와 힘을 확립하고 있다는 푸틴의 주장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범죄의 증가는 전쟁이 국내 전선에 불안정을 가져오고 있음을 의미했고 이는 그들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범죄 통계를 검열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악의적인 선전의 힘에 맞서고자 하는 매체의 에디터이거나 디지털 뉴스 콘텐츠 제작자라면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선전의 힘을 약화시킬 이야기가 항상 도덕적으로 가장 중요하거나 뉴스 가치가 있어 보이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여전히 조사와 스토리텔링이라는 저널리즘 과정에 충실하면서도 권위주의적 서사를 전복시킬 가능성이 더 높은 이슈를 선택할 수 있다.

보다 큰 그림 보여주기

저널리스트가 어떻게 소통할지 선택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만큼 중요할 수 있다. 휴먼스토리 대신 인포그래픽을 선택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 분석적인 텍스트 대신 감성적인 영상을 선택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


2018년 이탈리아에서 우리는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델라세라Corriere della Sera와 함께 매우 논란이 많은 이민 주제를 보도하는 다양한 방법을 실험했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이민자 수십만 명이 도착하자 우파 민족주의 정당들은 NGO와 진보 정당들이 이민자들의 침략을 가능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당시 이민율은 실제로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둘러싼 소음이 너무 커서 숫자가 급증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언론매체들은 딜레마에 직면했다. 이 주제를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하면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대한 믿음을 높이고 유해한 담론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보도할 수 있을까?


9개월 동안 우리는 코리에레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다양한 유형의 콘텐츠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시험했다. 오피니언 기사와 자극적인 논평은 예상대로 가장 양극화를 초래했다. 우리는 또한 이민자 수에 대한 인포그래픽과 팩트체크가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민 반대론자들은 그저 데이터와 매체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할 뿐이었다.


이민자들의 고난을 다룬 휴먼스토리 기사 역시 매우 양극화되었고 가장 많은 부정적 댓글을 유발했다. 이는 저널리스트들이 독자를 위해 이슈에 인간미를 부여하는 단골 장르지만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일부 독자는 감정적으로 조종당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왜 소수 이민자의 이야기가 전체 이슈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조차 여전히 멈출 수 없는 이민의 홍수라는 느낌을 주었다.


가장 정중한 대화와 높은 수준의 신뢰를 이끌어낸 기사는 우리가 '맥락이 있는 기사'라고 부른 솔직한 기사들이었다. 이 기사들은 중동의 전쟁과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기근을 분석하며 애초에 이민 위기가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배경 정보를 제공하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있는 잠재적 개입 방안을 고찰했다.


맥락을 제공하고 근본 원인을 설명하며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함으로써 저널리스트는 논란이 되는 주제를 둘러싼 공황 상태의 압박감을 덜어주고 사람들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시민적 주체성 함양하기

권위주의적 선전가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종종 너무나 많은 의심과 혼란을 심어주어 사람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고 자신의 주체성을 독재자에게 기꺼이 넘겨주게 만드는 것이다. 음모론적 서사는 이에 특히 유용하다. 숨겨진 음모와 이해할 수 없는 권력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사람들은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선전은 이미 그럴만한 조건을 갖춘 토양에서 주효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왜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서방이 우크라이나 정부를 몰래 통제하고 토지를 빼앗기 위해 원조를 이용한다는 러시아의 서사를 믿으려 하는지 살펴보았다. 포커스그룹에서 사람들이 밝힌 이유는 시사하는 바가 컸다. 그들은 이러한 주장이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정했지만 사람들의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경험을 반영하고 있기에 여전히 옳다고 느껴진다고 했다.


그들에게 우크라이나는 항상 강대국들에 의해 조종당해 왔고 올리가르히와 은행의 파라미드형 사기, 착취적인 정부는 항상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반면 음모론을 거부한 사람들은 그것이 거짓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뭔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는데 한 참가자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자수성가한 사람이고 내 인생은 내가 통제해요."


그렇다면 음모론에 대한 믿음을 공략하기 위해 개별 서사를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피해의식과 무력감에서 벗어나 나 자신이 더 큰 권한을 갖고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사람들을 전환해야 한다. 저널리스트는 정보 전달자 이상이 되어야 한다. 스토리텔링과 청중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시민적 주체성을 기르도록 도울 수 있다.


이를 이미 선도하고 있는 이니셔티브들이 있다. 하큰Hearken은 사용자가 언론매체의 취재 주제 선정을 도울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이는 관여 저널리즘engagement journalism의 한 예로, 청중이 편집부의 의제를 형성하는 데 참여하도록 장려하여 신뢰를 구축하는 접근방식이다. 이는 언론매체와 대중의 관계를 단순한 정보 제공자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필요에 뿌리를 둔 사회적 서비스가 되는 쪽으로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원칙을 구현하려면 사고방식과 측정 방식 모두의 변화가 필요하다. 저널리스트와 디지털 크리에이터는 콘텐츠가 트래픽과 참여도 측면에서 어떤 성과를 내는지뿐만 아니라 청중을 어떻게 화합시키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신뢰를 높이고 분열을 넘어 건설적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


나는 2026년 미국 건국 250주년을 앞두고 NGO '밀리언스 오브 컨버세이션스Millions of Conversations' 및 '모어 인 커먼More in Common'과 협력하여 분열된 미국과 언론매체가 과거의 진실을 어떻게 탐구할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 곧 발표될 우리의 여론조사와 질적 연구는 양극화된 논쟁 대신 다양한 청중이 관심을 갖는 문제에 대해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공격적인 선전의 이면에서 사람들은 함께 과거를 탐구하는 데 더 열린 태도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공화당원의 49%는 비판적 인종 이론3에 반대한다고 답했지만 당파적 용어를 빼고 '과거에 특정 집단에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었던 정책과 법률이 오늘날까지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명했을 때 이에 동의하지 않은 비율은 24%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꼭 불변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그것을 강화하는 정치적 담론이다. 더 나은 미디어 전략은 양극화된 언어를 피하면서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 문제를 풀 수 있다.


미디어 개혁은 벅차지만 시급한 과제이며 저널리스트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권력을 감시하고 선전 모델을 해체하는 데 헌신하는, 시민 의식을 가진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기술자들의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저널리즘은 여러 번 진화해 왔다. 다음 변혁에는 저널리스트들이 민주주의의 몰락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진정한 전환이 포함되어야 한다.



피터 포메란체프는 존스홉킨스대학교 SNF아고라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이다. 최근 저서로 '정보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히틀러를 이긴 선전가How to Win an Information War: The Propagandist Who Outwitted Hitler'(2024)가 있다.



‘집 없는 억만장자’로 유명했던 투자가 겸 자선가 니콜라스 베르그루엔(이젠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이 설립한 베르그루엔연구소에서 발행하는 매거진. 2014년 허핑턴포스트와 파트너십으로 발행했던 월드포스트가 그 시초로, 현재는 자체 웹사이트 위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정치적 성향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대체로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국제정세, 철학, 테크놀러지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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